9

 

돌이켜볼수록 억이 막혀 분통이 터졌다.

도노는 반짝거리는 은술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잔을 상우에 냅다 던졌다. 술잔은 에따 너 잘 논다 상우에서 튀여나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버들에게서 뒤집어쓴 모닥불이 내려가지 않았다. 제아무리 공주라 해도 도노에게는 이름좋은 하늘타리이다. 젖비린내나는 어릴 때도 그래, 제법 앞가슴이 부푼 처녀꼴이 잡힌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한발로 짓밟아놓을수 있다. 그런데 그런 계집애에게 이 무슨 봉변이람. 참, 기가 막혔다.

도노의 눈앞에는 고구려에 갔다온 일을 임금에게 아뢰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하하, 별수있소이까?》

도노는 호기있게 웃어제끼고나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제까짓것들이…》

도노는 얇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넓은 궁전안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송양도 소나도 부위염도 버들도 깎은듯 앉아있었다.

오히려 도노가 제풀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에 기름기가 도는 동부대가와 남부대가가 멋없이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끄덕이고있었다.

《아, 음-》

도노는 가래를 톺았다. 그 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궁전안에 메아리를 일으켰다.

《그래 고구려에서는 사신들에 대하여 더 말이 없었소?》 하고 송양이 시들하게 물었다.

《사신… 말이오이까?》

《그래, 사신말이요.》

《무슨 할 말이 있겠소이까?》

송양은 쓰겁게 입을 다셨다.

도노의 메밀눈이 잽싸게 돌아갔다.

《사신문제는 제가 이때껏 말씀드린것처럼 우물고누 첫수라고 오금을 박았소이다.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찍소리 못했소이다.》

송양은 덤덤하다.

소나의 눈길이 해빛이 드는 문쪽으로 쏠리고있었다.

부위염은 늘 그러듯 방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이번에 고구려에 가서 똑똑하게 안것은…》 하고 도노는 밥먹던 숟가락 떨구듯 말을 끊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오나 하고 눈을 굴렸다.

이것은 도노의 수법이였다. 도노는 이런 수법으로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귀담아듣게 하는 묘리가 있었다. 아닐세라 도노가 무슨 말을 하는가 하여 귀바퀴들이 움직였다.

도노는 기가 살아났다.

《고구려는 군사를 키우느라고 여념이 없었소이다.》

《그건 뭘 말하자는거요?》

송양이 물었다.

《고구려가 우리를 노리고있다는것이오이다.》

《우리를? 고구려가? …》

《그렇소이다.》

송양은 헛기침을 깇었다.

《모를 소리요.》

《틀림없소이다.》

도노가 자신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가만있을수 없지요.》

동부대가가 얼굴이 벌개져 엉거주춤 일어나며 침방울을 튕겼다.

《옳은 말이요.》

남부대가도 잠에서 깨여나 맞장구를 쳤다.

도노의 낯에 웃음이 건너갔다.

《고구려는 믿을수 없소이다. 사신만 놓고보더라도 얼마나 흉측한 놈들이요?》

《그러게 말이요. 겉 다르고 속 다르다더니 고구려사신들이 그런 놈들일줄이야, 허 참…》

동부대가가 도노가 끓여놓은 국에 제밥 말며 하는 소리였다.

도노는 웃음을 거두고 한숨을 쉬였다.

《이번에 내가 없었다면 이 비류가 어찌될번 했소? 사신도 그래, 고구려의 기를 꺾어놓는것도 그래…》

《이를 말씀이요? 도노대부가 아니였더라면 우리 비류가 어찌될번 했소?》 하고 도노의 말을 따라하던 동부대가가 얼결에 송양쪽을 보더니 별안간 어물어물 말꼬리를 흐렸다.

비류궁성에서 열리는 제가들의 모임은 알짜 도노판이였다. 고구려에 갔던 도노대부의 말을 듣는다는데도 있겠지만 주인인 송양이 꿔온 보리짝처럼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니 그럴수밖에 없다. 한쪽은 나무우에서 울어대는 까치요, 다른쪽은 너구리인가. 판은 어쩌자고 벌어진 조가비처럼 둘로 갈라졌는데 송양과 소나, 버들, 부위염이 한편이고, 도노와 두 대가가 한편이다. 조가비안의 속살은 아마 도노쪽에 간 꼴이라 딱딱딱 소리내는 패는 도노쪽이다.

《그건 그렇고… 임금님!》 하고 도노가 소대가리 파리쫓듯 송양에게 머리를 돌렸다.

《이번에 신이 목숨을 걸고 고구려에 갔다오는 사이에 여기서는 좋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하오니 어찌된 일이오이까?》

《고구려사신 마리말이요?》

《그렇소이다.》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일이요. 난 오히려 대부가 오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

도노의 눈이 놀라 세모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왜 그러오? 미초리가 대부의 사람이 아니요?》

《미초리?》

《그렇소, 미초리말이요. 어떻게 되여 그가 고구려사신이 갇힌 방에 들어갔는지, 어떻게 되여 고구려사신이 사라지고 미초리는 죽었는지 알수 있소? 미초리를 아는 사람은 도노대부뿐인데…》

도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참, 귀신이 곡할노릇이요.》

남부대가가 얼떠름해서 끼여들었다.

《죽은 미초리의 입을 열수도 없고…》

도노는 남부대가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도노의 눈치를 보던 동부대가가 누구 들으라고 그러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거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마리인지 뭔지 하는 고구려사신이 감쪽같이 사라진건 수상한데가 많단 말이요.》

《누가 아니라오? 수상한데가 많단 말이요.》 하며 남부대가는 하품을 했다.

갑자기 화로불에 밤알 튀듯 웃음소리가 터졌다.

뭇눈길이 웃음을 터친 사람에게 쏠렸다.

그는 버들이였다.

버들은 어정쩡한 남부대가를 보다못해 참을수 없어 웃긴 하였지만 자리를 보고나서 쓴 얼굴빛을 지었다.

도노의 눈길이 버들에게 가시처럼 박혔다.

버들도 맞받아 도노를 쏘아보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고드름처럼 부딪쳤다.

《왜 웃는거요?》

도노가 따졌다.

《웃겨서요!》

《뭐라구?》

누에번데기인가, 가물철 모래우의 지렁이인가. 도노의 얄팍한 입술이 떨렸다.

《버릇없이…》

도노는 이를 사려물었다.

좀해서 볼수 없는 도노의 얼굴이였다.

이제 무슨 일이 터질것이다.

궁전이 얼어붙는듯 했다.

소나공주는 불안한 눈으로 버들을 보았다.

버들은 눈 한번 까딱않고 도노를 쏘아보고있었다.

《내가 누군데 감히…》

도노가 참지 못하고 벼룩씹듯 내뱉았다.

그 소리에 버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오, 그래요. 당신은 누구예요?》

별로 소리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소리도 아니였다. 하지만 매서운 서리발이 배여있었다. 무사태평 홀아비 뭘 같은 남부대가가 다 놀라 엉거주춤 일어날 정도로 사람들이 놀랐다.

비류의 대부 도노, 그를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류는 물론이요, 이웃나라들에서도 허술히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노와 버들의 사이는 다치면 터질듯 한 긴장이 어렸다.

도노는 갑자기 속이 섬찟했다.

이때껏 그는 이렇게 따지는 물음을 받아보지 못했다. 더구나 뭔가 알고있는듯 한, 그러면서도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따짐을 받을줄 꿈이나 꾸었는가. 그러지 않아도 버들을 수리산에 버리도록 송양을 꼬드긴 죄도 있는데다 하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자기가 없는 사이에 궁성으로 돌아온 버들이요,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도 모를 수수께끼가 겹쳤는데 마리일까지 얽혀있는 버들이다. 버들이 고구려의 마리와 심상치 않은 사이라는 륙감이 서물서물 드는데, 만일 그렇다면 버들이 도노 자기의 정체를 모른다고 어떻게 장담할수 있겠는가. 위험한 일이다. 도노는 재빨리 자기를 다잡았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 버들공주님! 늙은게 눈이 어두워 미처 알아뵙지 못했소이다.》

버들은 눈을 내리깔았다.

도노는 이를 갈다가 눈을 쪼프렸다.

그는 한숨을 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뭔가 달라졌다.

버들은 이전의 버들이 아니다.

《공주마마는 어버이로서, 나라의 임금으로서 아바마마께서 내리신 처벌을 원망하시오이까? 그것은 설사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오이다. 그때문에 이제 와서 나라의 원쑤인 마리, 고구려가 하는 말을 따라해서야 쓰겠소이까?》

도노는 버들을 수리산에 버리게 송양을 꼬드긴것이 다름아닌 자기임에도 모든걸 송양의탓으로 돌렸다. 도노는 소나와 버들이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우겨댔다. 그것이 도노에게는 쾌락이였다. 뻔뻔스러운것이 때로는 하나의 무기라는것을 도노는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버들이다.

《나는 아바마마를 원망하지 않나이다. 그건 대부님이 잘못 보신것이나이다. 나는 아바마마에 대한 원망으로 마리의 말을 옳다고 하는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비류가 서로 화친하여 사이좋게 지내자는 그 말이 옳기때문에 그러는것이나이다. 그래 그것이 우리 두 나라에 리롭지 않다는 말씀이나이까? 이상하지 않나이까? 대부님은 그렇게 보시나이까?》

입에는 꿀을 바르고 말은 깃털처럼 부드럽게 하나 도노에게는 날이 새파랗게 선 말들이였다. 버들은 도노를 가지고놀고있었다.

도노가 기껏 맞장구, 손벽치느라고 한 말이 《공주마마는 혹시 마리에게 반한게 아니오이까?》 하는 소리였다. 그것도 아첨이 뚝뚝 흐르는 웃음을 게발라서…

《그렇다면 어쩔셈이나이까, 대부님?》

버들이 웃으며 물었다.

《뭐… 어쩔게 있소이까? 진짜 그렇다면 공주마마가 어째서 바득바득 마리의 말을 들어 우리 비류를 몰아대는지 뻔한걸… 사랑에 빠지면 나라도 아비도 몰라본다고 하오이다, 공주마마.》

《호호… 깨우쳐주어서 고맙나이다, 대부님!》

이런 찜찜한 수작이 이전에는 없었다. 이 비류에서 도노가 쩔쩔매며 엉터리수작을 개올린적이 과연 언제 있었단 말인가? 고약한…

죽은줄 알고있던 그가 살아 돌아온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어째서 수리산에 내던져진 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였는가. 수리산에 버려지면 누구나 죽는다는것은 의심할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을 놓았다. 더구나 그때 버들은 아직 젖비린내가 가셔지지 않은 아이였다. 수리산이 아니라 아무데나 내버려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릴것이였다. 일은 바로 거기서 벌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노는 그럴수 없는 사람이다.

바로 그것이다. 마리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미초리의 말을 믿고 마리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마리는 살아있었다. 도노가 고구려에 갔을 때 마리가 나타났기망정이지 비류에 있을 때라면 어쩔번 했는가? 생각만 해도 도노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제는 모든 일이 마음먹은대로 돼간다고 탕개를 풀어놓은것이 잘못이다. 도노는, 다름아닌 도노는 어느 한때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정체를 숨기고 큰일을 하려고 하는것도 그렇고 서로서로 싸우게 하여 리득을 얻으려는 도노는 당장 무너지려는 산우에 앉은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칫하면 목숨이 왔다갔다한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서글픈 일이였으나 할수 없다. 이왕 떠난 길 다시 돌아설수도 없다.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면 모르지만 가던 길은 끝까지 가봐야 한다. 뭐가 어떻게 되든 뭐가 기다리든 가야 한다. 가되 어떻게 하든 잘되도록 혼신을 다해야 한다.

후회란 있을수 없다.

도노는 바닥에 떨어진 술잔을 다시 집어 상우에 올려놓았다. 그는 메밀눈을 깜박거리며 머리를 굴렸다. 무엇부터 어떻게 할것인가? 마리사건, 그건 당장 바쁜게 아니다. 마리가 죽었으면 시원하겠지만 살아있다 해도 바쁘지 않다. 한번 호되게 죽다 살았으니 다시 얼씬거릴 엄두를 내지 못할것이다. 과연 그럴가? 마리가 다시 머리를 들여밀면? 아니, 그러지는 못할것이다. 하다면 당장 눈섭에 떨어진 불은 버들이다. 임금인 송양은 물론 불같은 성격이라고 다들 꺼리는 소나와 부위염도 양의 뿔처럼 다스려놓은 도노다. 그래서 이 비류궁성의 실제 주인이 도노로 되게 만들었다. 다시 그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굽신거려야 한다는건 도저히 참을수 없다. 버들! 그년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된다.

도노는 일에 달라붙었다. 자기의 종들과 끄나불들을 불러들여 꼬치꼬치 캐물어 버들이 궁성에 나타날 때의 일을 따져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수리산에 사람을 보내 버들과 비수가 살았다는 곳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물론 도노는 이 모든 일을 누구도 모르게 하였다.

마침내 버들을 잡아치울 그물이 갖추어졌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잔가시같은게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고 매달려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게 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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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혁 - 프랑스 - 류학생 - 2016-08-25
[우리민족끼리]열성독자입니다.
장편력사소설 [고구려의 새벽] 3부가 10회부터는 나오지 않습니다.
1달전까지만 해도 내용이 현시되였는데 오래간만에 시간을 내여 보자고 하니 3부의 9회이후로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데 볼수 있도록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자 - 우리민족끼리 - - 2016-08-26
안녕하십니까

현재 장편력사소설 [고구려의 새벽] 3부 정상적으로 현시되고있습니다.

우리 홈페지에 대한 선생의 깊은 관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별 - 해외기업 - 택시운전수 - 2018-01-11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아주 뜻이 있는 책입니다
그 후의 일어난 일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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