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굴이 물물 나는 불난 집 문을 열기 바쁘게 바람맞은 집안에서 불기둥이 치솟는것과 마찬가지로 《설마…》, 《혹시…》 하는 위안의 거미줄에 매달려 간신히 마음을 달래고있던 고구려에 마리가 돌아온것은 불난 집에 문을 열어제낀것과 같았다. 내굴은 삽시에 불길로 변했다. 그 불길은 아우성치며 집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놀라움이 분노로 폭발하였다. 어떻게 돼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따지려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다만 고구려사신들이 애매하게, 무참히 죽었다는 그 분노만이 무서운 불길로 돼버렸다.
고구려는 불맞은 범이였다.
죽었소 하고 가만있을수 없다. 원쑤를 갚자! 피는 피로써! 피값이 어떤것인지 똑똑히 알게 해주자, 비류에 톡톡히 맛을 보여주자, 남의 눈에서 눈물내면 제 눈에는 피라고 했거늘 눈물
도 아니고 피를 흘리게 하고 뼈와 살을 에이는 아픔을 준 죄가 얼마나 값비싼것인가를 사무치게 해주자, 고구려를 감히 건드린다면 어떻게 되는지 뼈저리게 새겨주자.
불길은 걷잡을수 없이 번져갔다. 불길은 고구려의 나라일을 판가름하는 제가평의회에까지 옮겨갔다.
마리는 속이 조마조마했다.
검불에 불당기면 솔도 탄다. 작은 불이 큰 산을 태워버릴수도 있다. 옥돌, 막돌 가리지 않는 이 불길이 적대나라들사이에는 어쩔지 모르나 형제의 나라, 겨레의 나라들사이에는 있어서는 안될 날벼락이다. 하다면 나라와 겨레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제가평의회에 그런 불이 일어서야 되겠는가.
마리는 제가평의회에서 될수록이면 불티가 될수 있는 말들을 피하면서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기로 고구려사신사건이 어떻게 벌어졌는가를 말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마리가 애써도 회초리로 불끄기다. 오히려 마리의 말은 그 불의 씨로 되여갔다.
유가족들뿐아니라 대가들도 비류가 밉고 괘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구려사신사건, 그것은 응당 고구려에서는 비류가 잘못했다고 하고 비류에서는 또 고구려가 잘못했다고 한다. 그 옳고그름을 가르는것은 쉽지 않다. 사건이 벌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더욱 그렇다. 고구려에서는 엄연히 고구려사신들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비류가 그들을 전멸시켰다고 보았다. 그러니 비류가 잘못했다고 하고 거꾸로 비류에서는 자기들은 잘못이 없고 고구려에서 잘못했다고 한다. 제가평의회에 참가한 대가들은 누구나 고구려사신들을 옹호하여 비류를 꾸짖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은 옳은것을 옳다고 하는 정의이기 전에 고구려를 위한 성스러운 일이였다. 설사 고구려의 사신들에게 잘못이 좀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잘못은 덮어두고 비류의 잘못을 날카롭게 따져야 한다. 이것이 삶의 궤도이다.
사건을 처음 겪던 그때에는 마리도 가랑잎에 불이 달렸었다. 그러나 고구려에 돌아온 뒤 그간 겪은 일을 곰곰히 돌이켜보면서, 더우기는 주몽의 말을 듣고 제정신을 차렸다. 이번 일이 아이싸움, 아낙네싸움으로 번져서는 안된다. 치욕을 받았다고 해서 비류와 네 주먹 하나면 내 주먹 열이라는 식으로 싸워서는 안된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고구려와 비류, 두 나라의 사이는 물론 겨레를 하나로 묶어세우려는 큰뜻이 흔들리게 된다. 제가평의회에서까지 물불 가리지 못하는건 좋지 못하다. 아니, 큰집이 재가루가 될수 있다.
회의전부터 그런 조바심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 대가들의 얼굴과 눈빛을 보니 마리의 마음은 더욱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았다.
마리는 써늘한 기분으로 이야기매듭을 지었다.
마리의 이야기가 끝난 뒤 대가들은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길이 잠들어서가 아니라 터져나올 틈을 찾고있는것이였다.
마리는 대가들을 불안스럽게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마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꼼짝않고 앉아 이마살을 찌프리기도 하고 입술을 우물거리며 분을 삭이느라 애쓰던 절노부대가가 손을 들어 말할 뜻을 알렸다.
다른 대가들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대주부! 여기는 제가평의회요. 알고있겠지만…》 하고 말머리를 뗀 절노부대가는 앉은채 눈앞의 어느 한점에 눈그루를 박고 마리를 불렀다.
《그래 제가평의회의 이름으로 묻건대 대주부는 고구려사신으로서 잘못한 일이 없소?》
잔잔한 물음이였다. 뭘 따지는것도 아니고 몰라서 물어보는것도 아니였다. 누구에게나 그것은 하나의 겉치레이고 또 이제 터치게 될 나팔소리의 전주라는게 알렸다.
그러나 마리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마리는 귀를 곤두세웠다.
무슨 말을 하는건가?
절노부대가는 마리의 눈길은 아랑곳않고 대답을 기다리고있었다.
마리는 한숨을 내쉬였다.
잘못한 일? 누가? 내가? 아니면 사신들이 잘못한 일?
마리는 거리낄것이 없었다.
《없소이다.》 하고 마리는 한참만에 대답하였다.
절노부대가는 그제야 마리를 보았다.
《그럼 좋소!》 하고 절노부대가는 일어났다.
《임금께 아뢰오이다. 나 절노부대가는 고구려의 사신 마리 대주부의 말을 믿어마지 않으면서 말씀드리나이다.》
절노부대가는 주먹을 획 후려치며 말을 이었다.
《더 끌게 없다고 보오이다. 우리 고구려는 군사를 일으켜 비류와 전쟁을 벌릴것을 주장하오이다.》
다른 대가들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절노부대가의 말이 바로 자기들이 하려던 말이였다. 응당 그렇게 될 일이다.
전쟁! 원쑤를 갚기 위한 전쟁!
모두의 눈길이 주몽에게 쏠렸다.
이제 임금이 선언하면 그것으로 전쟁은 돌이킬수 없다.
주몽은 아무 말 없었다.
비류와의 화친으로 불함산으로 가는 길을 열며 나가서는 겨레의 통일을 이룩하자는것이 주몽의 뜻이였고 그것이 곧 고구려 제가평의회에서 그대로 결정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사신들이 비류로 가게 된것이 바로 얼마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고구려의 그 정책이 흔들리고있다. 아니 뒤집히려고 하고있다.
물론 주몽의 그 뜻이 얼음에 박밀듯 결정된것은 아니다. 그때에 벌써 절노부대가는 우려했다.
《뜻은 좋소이다만 그게 쉽게 되겠소이까?》 하고 절노부대가는 말했다. 그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다들 찬성하면 그렇게 하자고 손을 들었다. 마지못해 찬동한것이지 믿음은 없었다.
그렇다고 절노부대가를 나쁘다고 할수 있는가? 아니다. 충분히 그럴수 있는것이다. 제나름의 주장이 있는 사람에게는 비록 화친이 좋다고 할지라도 반대할수 있는것이다. 겨레의 통일을 누구인들 바라지 않으랴. 그러나 그것은 먼 앞날의 일이요,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한갖 꿈일수도 있는것이다.
소뿔도 각각, 사람도 뿔뿔이라고 세상사람들이 다 하나같지 않다. 겨레의 통일을 이룩하자면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을 싸리나무 묶듯 하나로 묶어세워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들 제밥 먹고 큰집일 해주길 좋아하랴. 살아가는 구멍이 삼천 몇가지라고 사람은 누구든지 당장 눈앞의 제 밥그릇에 무심할수 없다. 그런데 그것은 종종 아름다운 꿈을 이룩하는데 절벽으로 된다.
전쟁! 복수!
겨레통일을 미심쩍어하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들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애초의 고구려정책 즉 겨레의 통일을 이룩하려는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는것이다. 이것은 겨레의 화친, 통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첫걸음을 뗀 주몽에게 있어서 스쳐지낼수 없는 일이였다. 뜻이 흔들린다고 하여 무작정 복수와 전쟁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할수 없다.
겨레의 통일이냐? 나라의 위신이냐?
꿈이냐? 현실이냐? 꿈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엄혹하다.
어느쪽을 택할것인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그 불에만 미쳐 염통 곪는것을 못 본다면 뜻은 물거품이 되고만다. 주몽 한사람의 뜻, 고구려의 뜻이 이루어지는가 못 이루어지는가 하는것은 버금이다. 겨레의 운명이 당장 굴러내릴 바위처럼 된 판이다. 참새가 짜르냐 기냐, 세상은 언제까지나 서로의 작은 리해를 다투며 쪼각쪼각 갈라져 제뿔뿔이 살라고 놓아두지 않는다. 그렇게 살다가는 언제 남에게 먹히울지 모른다. 이것은 불보듯 뻔한 하늘의 리치요, 사람들의 살아가는 리치이다. 그러니 우리의 뜻을 이루는 길에서 물러설수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렇다면 눈섭우에 떨어진 불은 어떻게 끈단 말인가?
주몽은 덫에 치운 범처럼 오래 말이 없었다.
자리는 벙어리들 잔치마당이 되였다.
주몽과 대가들의 얼굴을 살피는 마리의 낯빛은 어두웠다. 더는 참고있을수 없었다.
《나는 반대오이다. 전쟁을 해서는 안되오이다.》
마리가 웨치다싶이 말했다.
놀란 눈길들이 마리에게 쏠렸다.
누구보다 놀란것은 절노부대가였다. 그는 한동안 마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입가에는 차츰 비웃음이 어리였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타이르듯이 말했다.
《마리대주부는 좀 쉬여야겠소. 제가평의회는 전쟁을 하는가 마는가 하는걸 대주부에게 묻지 않소.》
그건 옳다. 마리는 사신사건을 설명하러 왔지 그 결과를 토의할 자격은 없다. 그것은 임금과 대가들만이 할뿐이다.
그러나 마리는 잠자코 있을수가 없었다.
《알고있소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을수 없소이다. 비류와 전쟁을 하여서는 안되오이다.》
절노부대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럼 마리는 어쩌자는거요? 숱한 우리 사람들이 죄없이 죽었는데도 죽었소 하고 참아야 한다는거요 뭐요? 마리는 혹시 이번 사건을 겪고나서 겁을 먹은게 아니요?》
《나는 비류와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만 하였소이다. 우리가 비류와 전쟁을 하면 죽은 사신들의 원한도 풀고 산 사람들의 분노도 풀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희생된 사람들이 바라던 뜻을 이룰수는 없소이다.》
절노부대가의 뺨이 푸들푸들 뛰였다.
《마리대주부, 아무 말이나 하면 되겠소? 대주부는 마치도 여기 있는 나나 다른 대가들이 철부지아이들처럼 얻어맞은 분풀이나 하려고 하는것처럼 말하는데? …》
마리는 입을 다물고있었다. 속으로 바로 그렇다 하고싶었으나 애써 참았다.
절노부대가는 요란하게 코웃음쳤다.
《그건 우리 대가들을 숫보는거요. 정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요. 지금 백성들은 전쟁할것을 바라고있소. 백성들이 바라는것은 언제나 옳은거요. 마리는 뭘 말하자는지 모르겠지만 백성들의 원한과 분노에 찬물 끼얹어서야 되겠소? 우리는 응당 백성들의 뜻을 따라야 하오. 우리 대가들은 백성들의 뜻과 기개를 따를뿐이란 말이요.》
마리는 그 누구와 뭐가 옳니 그르니 따지고싶지 않았다. 절노부대가의 태도를 보아 이제 더 엇서면 다음에는 고구려와 비류가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대가들을 무시하는 이른바 버릇없는 태도를 걸고들것이 뻔하였다. 하면 돼지값은 칠푼이요, 나무값이 서돈이라 한푼짜리 푸닥거리에 두부가 오푼으로 될수 있다. 그렇다고 자기의 주장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야 한단 말인가? 대가들이 마리더러 나이로 보나 지위로 보나 어린 사람이 버릇없다고 하는것이 무서워서?
마리는 물러설수 없었다. 물러서서는 안된다. 주몽의 뜻, 아니 우리모두의 뜻, 겨레의 뜻이 한여름 우박맞아 꺾이우느냐 마느냐 하는 마당에 와서 자기의 체면이나 건지려고 물러서서는 안된다.
뭐라고 줄곧 이야기하는 절노부대가를 보며 마리는 결을 삭이고있었다.
문득 관노부대가가 손을 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리는 관노부대가에게 눈을 주었다.
《마리대주부의 주장도 옳소.》 하고 관노부대가가 말했다.
그 소리에 절노부대가의 풀어질사 하던 낯빛이 다시 굳어졌다.
《뭐, 뭐라구요? 아니 관노부대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요?》
절노부대가가 물었다.
《비류와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대주부의 주장이 옳다고 말했소이다. 전쟁이라는게 아이들 놀음이 아니지요.》
관노부대가의 말에 절노부대가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관노부대가는 비류의 피해를 받아보지 못했으니 그렇게 말할지 모르나 우리 절노부는 다르오이다. 우리 절노부는 이미 비류의 피해를 한두번만 받지 않았단 말이요. 뭘 말하자는건가? 참고 가만있으면 있을수록 비류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거요. 이제 더 고구려가 참고있어야 한다면 나는, 아니 우리 절노부는… 따를수 없소이다. 백성들이 우릴 용서치 않을것이고 세상이 우릴 비웃을거란 말이요. 난 참을수 없소. 가랭이 무는것도 어느 정도지 멋모르고 집적거리는 놈들에게 제일 좋은 약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대 먹이는거요.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얕잡아보고 더욱 집적거리는게 세상 고약한 인심이란 말이요. 비류도 같소. 우리에게 힘이 없으면 몰라라 고구려가 서서 이젠 우리의 힘이 적지 않게 컸는데 뭘 주저한단 말이요? 난 비류와 전쟁을 하여 비류가 다시는 우리에게 집적거리지 못하게 납작하게 눌러놓자는거요. 그래야 우리 고구려백성들에게도 자랑스러울게 아니겠소. 사람이 순하면 업수이보기마련이고 말이 순하면 타려는 놈이 많아지는 법이요.》
절노부대가는 성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나서 그 누가 다시 자기의 주장을 반대하기라도 하면 용서치 않을 낯빛으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절노부대가의 그 서슬에 질렸는지 아니면 그의 말이 맞아서인지 누구도 말이 없었다.
주몽이 나섰다. 그는 절노부대가를 보며 물었다.
《절노부대가는 기어이 비류와 전쟁을 하자는거요?》
《그렇소이다.》
《그렇다…》
《이 절노부대가는 한때의 분기로 말씀드리는게 아니오이다. 그리고 단지 우리 절노부켠에서만 보고 그러는것도 아니오이다. 세상의 눈길을 고려해서 말씀드리는것이오이다.》
《알만 하오.》 하며 주몽은 웃었다.
절노부대가는 주몽의 웃음을 보며 멍해있었다.
《절노부대가는 멋모르고 집적대는 놈에게 제일 좋은 약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대 먹이는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참 그럴듯 하오. 그래야 시원하지.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란 말이겠다, 그렇지 않소? 하하…》
주몽의 웃음에 여러 사람이 따라웃었다.
《전쟁이 아이들 놀음이 아니라고 한 관노부대가의 말씀도 옳소. 전쟁은 어느 한쪽이 없어지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니까. 죽든지 살든지 결판을 내는 싸움중의 싸움이 전쟁이지. 때문에 전쟁은 한때의 분기나 자그마한 리익을 위해서 벌리는게 아니요. 한때의 노여움이나 원망은 기쁨으로 다시 변할수 있고 또 오늘 손해를 보았다고 해도 살아있으면 래일 리익을 볼수도 있지만 전쟁은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하기때문에 노여움이나 손해를 기쁨이나 리익으로 돌이킬수 없는것이요.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하면 자고로 모든걸 심중히 따져왔소. 나라의 운명을 걸고 먼 래일까지 내다보면서 말이요. 전쟁을 하는데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는 전쟁하려는 상대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쑤인지 아닌지 먼저 가려보아야 한다고 보오. 만약 상대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쑤가 아니라면 한때의 만족이나 리익을 위해서 전쟁으로까지 가서는 안된다고 보오. 쌍방의 력량관계, 전쟁의 리익, 전쟁의 시기 같은것도 다 중요한 전쟁승리의 요인이겠지만 기본은 상대가 누구인가 하는것을 잘 가려서 전쟁을 하는거요. 그렇다면 우리가 전쟁을 하려는 상대가 누구인가? 비류요. 우리는 비류와 어떤 관계인가? 우리 고구려에 있어서 비류는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쑤인가?
절노부대가! 어디 말씀을 해보시오. 이전 구려와 비류가 이웃하고 산지도 오랜것으로 알고있는데 우리 고구려에 와서 이제는 더 비류와 이웃하고 살수 없게 된 무엇이라도 있소? 비류가 우리 고구려에, 절노부에 못되게 놀기도 하고 이번에 사신들까지 죽이는짓을 저질렀는데 그건 비류가 우리 고구려를 없애려고 하는짓이요?》
《그렇게까지 볼수는 없소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고구려가 비류를 먹었으면 하오이다. 못되게 노는걸 트집잡아… 그렇게 안되면 하다못해 한번 혼뜨검이라도 내주고싶소이다.》
《대가의 솔직한 심정이 리해되오. 이제는 힘이 커졌으니 한번 으시대보고싶다는 말이겠소? 그건 좋소. 절노부대가가 우리 고구려에 대해서 큰 긍지를 가지고있다는것으로 되니까. 사람은 마땅히 자기에 대해서 긍지를 가져야 하는거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수 없소.》
절노부대가는 말문이 막혀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그러자 제가평의회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주몽이 웃음을 거두고 일어났다.
《그렇다고 하여 대가 여러분! 우리가 이번 고구려사신사건을 어물쩍 넘겨버릴수는 없소. 우리 사신들의 억울한 령혼을 달래기 위해서도 그렇고 또 아까 마리가 이야기했듯이 우리 사신들이 바라던 겨레의 뜻을 이룩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팔짱끼고 강건너 불구경하듯 가만 앉아있을수는 없소.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딛고 일어나 겨레의 뜻을 이룩해야 하오. 불함산아래 한 식솔로 살아가려는 겨레의 뜻을 말이요. 그래서 난 이번에 비류의 임금 송양을 직접 만나려고 하오.》
절노부대가가 물었다.
《저, 송양이 만나자고 소식이 왔소이까?》
《아니요.》
기대가 어렸던 절노부대가의 낯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먼저 송양더러 만나자고 할것까지 없지 않소이까?》
《우리의 뜻은 서로 마음을 합치자는거요. 서로 마음을 합치려면 반드시 만나야 하오. 한번 만나는것이 백번 생각하는것보다 낫소. 만나는것은 온갖 억측을 푸는 명약이요. 만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과 진실을 알수 없소. 남의 말을 듣고 또는 제나름으로 아무리 상대를 알려고 해도 진실을 알기는 어렵소. 내는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는 말이 바로 그렇소. 설사 한번 만나 아무것도 쥐는것이 없이 헤여진다 해도 우리는 만나야 하오. 만나고 또 만나야 하오. 무릎을 마주하고 만나야 서로의 얽힌 옹이를 풀수 있소. 더구나 겨레의 통일은 서로 만나는것을 대전제로 하기때문에 설사 리익이 없고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만나야 하오.》
주몽의 말은 절절하였다. 그것은 별안간 떠오른 생각도 아니고 무엇을 변명하는 말은 더욱 아니였다. 오래동안 깊이 생각을 거듭해오다가 터져나온 말이라는것이 누구에게나 알렸다. 그래서인지 주몽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제가평의회에 참가한 사람들가운데 절노부대가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주몽이 송양을 만나겠다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몽의 말을 거절할수는 없었다.
주몽이 송양을 만나는것은 마무리지어졌다.
《이 일은 대주부 마리가 맡아야겠소.》
주몽이 말했다.
절노부대가가 무엇인가 다른 말을 하려는것을 주몽이 손을 들어 막으며 마리에게 말했다.
《쉬운 일이 아니요. 대주부는 송양을 만나보았으니 이 일을 맡는것이 그중 적당할것 같소. 다만 아직 몸이 추서지 못한것이 걸리는데…》
《걱정마시오이다.》
《될수록 빨리 만나야 되겠소.》
《알겠소이다.》
제가평의회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