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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와 비류가 잇닿아있는 수림의 공지.
태자 대소는 기다리기에 지쳤다. 벌써 며칠째 대소는 도노의 소식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되돌아가고말가부다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어오르군 하였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건 떠나올 때 큰소리친것이 걸려서이다. 《비류를 속국으로 만들고야말테다!》 하는 태자의 장담에 임금은 물론 대가들도 시쁘둥해하는 눈치였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왜 저러오?》 하는 말없는 소리가 누구에게나 배여있었다.
그들은 대소가 별안간 왜 그러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소에게는 배짱이 있었다. 그는 도노를 믿었다. 산천경개 구경삼아 한번 행차에 이때껏 누구도 감히 해보지 못한 큰일을 이룬다는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봐라, 대소태자는 이런분이시다. 놀고있는것 같지만 한번 나가기만 하면 나라 하나쯤은 쉽사리 손안에 넣고 오는분이시다. 하늘이 보살피시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이런 팔자를 타고난단 말인가 하고 으시댈수 있다. 이런 일이라면 무엇인들 마다하랴! 그래서 군사들을 이끌고 울긋불긋 치장도 요란하게 하고 그만큼 소리도 들썩하게 치고 온 놀음이 이게 뭐란 말인가?
《저 대소태자는 아무래도 뒤웅박차고 바람잡는노릇에 미쳤는가보오.》
《그러게 이름좋은 하늘타리라고 하지들 않소?》
손가락질들 하고 고개고개 끄덕거리며 비웃는 꼴들이 눈앞에 삼삼하게 떠올랐다.
《도노는 뒈졌나?》 하고 대소는 험하게 소리쳤다.
《태자마마, 도노는 믿을수 없소이다. 이제라도 일찌감치 돌아가시오이다.》
해리가 안타깝게 하는 말이였다.
해리는 떠나올 때부터 그랬다.
《돌아간다? 말은 쉽지. 하지만 내 체면은 뭐가 돼, 뭐가?》
《한번 한다고 큰소리치고 못하는수도 있는것이오이다. 더우기 임금이나 태자마마와 같으신분이 그러시는건 아주 남다른것으로 되시오이다. 다만 그까짓 일로 여념치 마시고 호호탕탕 웃으시기만 하시오면 백성들은 어리둥절하여 그게 하늘이 낸 사람만이 그러는가부다 하고 더욱 좋아하오이다. 무슨 신의라느니, 장부일언 중천금이라느니 하는것들은 별로 볼것 없는것들이나 지껄이는 소리이지 하늘의 명을 받아 땅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그런걸 알기를 우습게 아오이다.》
대소의 마음이 해리의 말을 듣고 기우뚱기우뚱하는데 도노가 온다는 소리가 왔다.
군사들이 도노의 한쪽팔을 옆에서 부축하고 거의 끌다싶이 하며 대소앞에 왔다.
도노를 보는 순간 대소의 뒤통수에는 기쁨과 고까움, 불안이 회오리쳐올랐다.
《어찌된 일이냐?》 하고 대소는 물었다.
《태자마마, 볼낯이 없소이다.》
《볼낯이고 나발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묻지 않냐?》
도노는 울상이 된 얼굴로 대소를 바라보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태자마마, 태자마마! 안타깝소이다. 가슴터지오이다!》
《그건 무슨 넉두리인가?》
《태자마마,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했거늘 어찌하여 태자께서는 제가 여러번 비류에 와주십사 하는데도 들어주시지 않으셨소이까?》
《그건 또 무슨 잠꼬댄가? 나는 도노의 소식만 기다렸는데 바람소리 하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날 보고 오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뭣이라고? 오지 않았다? 아, 아… 그럼 내가 보낸 사람들이 고구려놈들에게 다 잡혀 죽었소이다. 아…》
대소는 어리둥절해졌다.
해리가 가만히 대소곁으로 다가와 속살거렸다.
《태자마마, 도노는 미쳤소이다. 그의 말은 들을게 못되오이다. 생각해보시오이다. 저앞은 비류인데 고구려놈들이 어디서 나타난단 말이오이까? 저건 도노가 변명하느라고 꾸며낸 소리오이다.》
대소는 아래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괘씸하다. 제가 잘못하고선 이제 와서 이 태자를 원망해?》
대소의 눈치를 살피던 해리가 나섰다.
《여보 도노어른, 태자마마께서는 도노의 말을 믿고 여기서 벌써 사흘나마 기다렸소. 그런데 이제 나타나서는 뭐가 어쨌다는거요? 너무하지 않소? 잘못했으면 솔직하게 태자마마께 여사여사했다고 말씀올리는게지 그게 뭐요? 아낙네들처럼 울고불고, 쯧쯧…》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던가? 도노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대소는 도노를 보며 코웃음쳤다.
《기군망상, 임금을 속이는 죄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겠지?》
도노는 놀라지 않았다.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대소는 성이 났다.
《저놈을 마땅히 벌주어라!》
군사들이 법석거리며 대여섯길 잘될 나무우듬지에 바줄을 걸어당겨 활등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도노를 나무우듬지에 묶어놓았다.
일이 다되자 대소가 도노곁으로 다가왔다.
《도노, 할 말이 없는가?》
《태자마마! 고구려를 허술히 보지 마시오이다.》
대소는 쓴웃음을 지었다.
《흥, 미쳤군. 도노, 날 원망하지 마오. 이건 다 도노탓이요.》
《알고있소이다. 마땅한 벌이오이다. 천벌…》
대소는 물러났다.
해리가 대소의 눈치를 보고 손을 내리웠다.
도끼를 든 군사가 활등처럼 휘여놓은 나무우듬지를 매놓았던 바줄을 찍었다.
《휘익-》 하는 소리를 내며 나무가 바로섰다.
바줄에 묶인 도노가 나무우듬지에 높이 매달렸다.
숲속에서 까마귀떼가 울부짖으며 날아올랐다.
부여의 군사들은 태자를 모시고 며칠만에 돌아갔다.
주몽의 초청을 받고 송양이 고구려에 왔다.
주몽은 궁성 멀리까지 마중나왔다.
두사람은 반갑게 만났다.
그것은 고구려와 비류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이였다. 맞붙어 싸우는것도 사람의 삶이고 이렇게 반갑게 만나는것도 사람의 삶이다. 하나가 이그러지고 괴롭고 슬픈 삶이라면 하나는 바로서고 기쁘고 즐거운 삶이다. 사람은 이그러진 삶에서 바로되는 삶을 끝없이 바라며 산다.
반갑게 만나는 두사람의 모습은 마치도 봄을 맞아 물기오르고 꽃망울진 나무와 같았다. 활짝 핀 꽃도 아름답지만 물기어린 꽃망울은 더 아름답다. 이제 멀지 않아 활짝 피는 아름다움과 열매가 열릴것이라는것을 소리없이 알려주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이 저절로 우러나는 그 모습은 행복을 약속하는것과 같았다. 그것을 보는것만으로도 사람은 세상에 살만 하다.
두 임금이 만나고 신하들과 지기들이 만났다.
그들은 인차 한덩어리가 되였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슬프고 괴로운 일도 많았고 안타깝고 원망스러운 일도 많았다. 그속에서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되려는 삶은 비겁과 비굴을 털어버리고 용기를 가지고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그래서 마침내 만나는 오늘이 마련된것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그 희망과 용기가 없었더라면 결코 오늘은 마련되지 못했을것이다.
반갑게 만나는것은 새로운것이다. 반갑게 만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서로 만난다는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것은 잊혀지기 쉬운 사람의 삶인것이다.
이제 삶은 달라질것이다.
어둠이 새고 날이 밝아왔다.
거무가 두 임금앞에 나섰다.
《이 기쁜 날 아뢸 말씀이 있소이다.》
거무는 마리와 버들을 불렀다.
두사람이 거무에게 다가왔다.
거무는 환하게 웃으며 마리와 버들을 보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두 임금께서 이 젊은이들이 짝을 뭇게 함이 어떠하오이까?》
주몽과 송양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여났다.
《나는 찬성하지만 송양임금님께서 어떠하신지…》 하며 주몽이 송양을 바라보았다.
《주몽임금께서 찬성하신다면 되였소이다. 그러지 않아도 버들의 아비로서 나는 벌써부터 마리가 마음에 들었소이다.》
《그러시다면 좋소이다. 잔치를 크게 차리시오이다. 우리 고구려도 지지 않겠소이다.》
《어느쪽이 더 크게 차리는가 겨루어보는것이 어떻소이까?》
《그런 겨루기라면 해볼만 하오이다.》
주몽과 송양, 거무는 소리내여 웃었다.
《앞으로 짝을 무을 젊은이들이 많소이다.》 하고 거무가 곁달았다.
주몽과 송양도 머리를 끄덕이였다.
《마리와 버들의 잔치를 차린 다음 그들의 첫나들이는 불함산으로 가게 하는것이 어떻소이까?》 하고 주몽이 물었다.
《첫나들이로 불함산에 간다? 그게 좋겠소이다. 불함산에 가면 내 겨레의 큰얼도 깨닫게 될게고 살아가는 지혜도 배우게 될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짝을 무은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불함산으로 가겠다고 하겠소이다.》
송양과 거무도 좋아하였다.
축복을 받은 마리와 버들은 말을 타고 달려갔다.
불함산이 그들을 부르고있었다.
사마가 마리를 따라가려고 하는걸 거무가 잡았다.
《지금은 안돼. 너는 이담에 이 할아버지와 함께 가자!》
《좋아요.》
아이는 마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고구려건국 2년. 송양은 주몽에게 나라를 바쳤다.
주몽은 송양을 《다물후》로 봉했다.
《다물》이란 고구려말로 《회복한 땅》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