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송양은 손에 홰를 들고 좁은 동굴안으로 들어섰다.
십년나마 발길 않던 곳이여서 그런지 서먹서먹하다. 여기에 동굴이 있다는것은 누구도 모른다. 개구쟁이아이들이 혹 한둘 알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굴입구에서 몇길밖에 들어가보지 못하였을것이다. 굴은 들어가서 인차 가지굴이 나있는데 그 가지굴들은 두길 못미처 막혀버렸다. 멋모르는 사람들은 그로 해서 굴이 끝나는줄 알지만 실상 그 끝나는 곁굴에서부터 이 동굴의 진짜길이 시작되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송양과 이 동굴의 비밀을 만든 장공만이 알고있었다.
송양은 홰에 불을 달았다. 그리고는 굴을 비치며 속으로 들어갔다. 가지굴은 인차 끝났다.
송양은 홰불로 바닥을 비쳤다. 거기에 밥상만 한 너럭바위가 있을것이다. 그 바위는 얼핏 보기에는 굴바닥같지만 조금만 힘을 주면 돌아가게 생겼다. 그 바위를 돌리면 베개통만 한 돌이 있고 그 돌밑에 청동열쇠가 있을것이다.
이제는 여기 들어와본지 십년이 넘었다.
그사이 무슨 달라진게 없는지… 달라질게 뭘 있겠는가? 그것은 이 세상에 송양밖에 모르는 일인걸…
홰를 굴벽에 세우고 너럭바위로 다가가던 송양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너럭바위가 움직인것 같았다.
송양은 섬뜩한 생각이 들어 홰를 집어 비쳤다. 너럭바위는 그대로 있었다.
《후-》 하고 숨을 내쉰 송양은 다시 홰불을 굴벽에 세우고 너럭바위를 밀었다. 바위는 스르르 움직였다. 바위밑에 다래끼 하나 들어갈만 한 자리가 있고 거기에 베개통돌이 있었다. 송양은 그 돌밑에 손을 넣었다.
문득 송양은 굳어졌다.
이게 뭐야? 눈앞이 아찔해졌다.
송양은 황급히 홰불로 비쳐보았다. 그러나 열쇠는 없었다. 송양은 당황해났다. 그는 홰불을 비치며 굴속 여기저기를 훑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홰가 타며 내는 자욱한 연기속에서 송양은 멍청하니 생각에 잠겼다.
열쇠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누가 가져갔을가? 아니다. 그럴수는 없다.
그렇다면? …
가만! 열쇠를 분명 여기에 두게 되였던가?
아리숭해졌다. 너무 오래된 일이여서 오락가락했다. 여기에 열쇠가 있겠거니 했지 언제 없어질줄이야 알았는가?
송양은 머리가 뗑해졌다. 내굴에 기침을 터쳤다. 홰도 벌써 다 탔다.
송양은 할수없이 굴밖으로 나왔다.
어찌된 일인가?
송양은 오래동안 굴앞에 주저앉아있었다. 아무리 생각해야 열쇠는 분명 거기에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열쇠를 치웠다는 소리다. 장난삼아 치웠다면 별일없다. 그러나 누가 알고 열쇠를 가져갔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몸을 부르르 떨던 송양은 굳어 졌다. 그는 무슨 생각이 얼핏 들어 서둘러 다른 홰에 불을 지피고 굴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가지굴이 아니라 본굴로 들어갔다.
열쇠를 가져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열쇠의 비밀을 안다면 본굴로 들어갔을것이다. 본굴이 끝나는 곳에 열쇠구멍이 있다. 그 열쇠구멍은 묘하게 바위뒤에 숨겨져있어 아는 사람이나 열쇠를 열게 되여있었다.
본굴도 깊지 않았다.
홰불을 앞으로 비치고 들어가던 송양은 우뚝 굳어졌다.
비밀문이 열려있었다. 누군가가 열쇠를 열고 들어갔다.
그가 누굴가?
송양의 머리속에는 호수의 비밀을 알려고 하던 사람들이 얼핏얼핏 떠올랐다. 그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벌써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두사람이 걸렸다. 한사람은 마리였다. 마리는 호수의 비밀을 알려고 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마리는 호수의 비밀따위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송양이 그를 떠보느라고 호수의 비밀이야기를 했을뿐이다. 그때 마리는 송양에게 속에 맺히는 말을 했다. 한사람만이 알고있는 비밀이라면 그 비밀을 알고있는 사람이 잘못되면 비밀은 영원히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니 남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믿을게 못된다고 했다. 마리가 정말 호수의 비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런체 하는지 이제 와서 보면 모를 일이다. 어쨌든 호수의 비밀에 대해서 마리는 알고있다. 그런데 마리처럼 알고있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호수의 비밀에 대해서는, 더 정확히는 호수에 어떤 비밀이 있다는 정도로 알고있는 사람은 많다. 마리만이 아니다. 그런데 왜 마리가 걸리는가? 송양이 직접 그 말을 해주었기때문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마리가 호수의 비밀을 알자꾸나 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알수 있기때문이다. 마리는 똑똑하고 눈치가 여간만 빠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버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있다. 버들이 마리에게 호수의 비밀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고 장담할수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마리가?
송양은 맥없이 머리를 저었다.
그건 황당한 생각이다. 설사 마리가 호수의 비밀을 알려고 한다고 하자.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버들에게 알아낸다? 아니다. 호수의 비밀은 버들도 모른다.
송양은 갈팡질팡했다.
문득 도노가 떠올랐다.
《전하! 일이란 어떻게 될지 내다보기 어려우니 있을수 있는 일을 미리미리 내다보고 갖추어두는것이 나쁘지 않다고 보나이다. 갑자기 당한 일에는 누구나 놀라지만 미리 갖추어놓은 일은 힘을 주니까요. 그러니 고구려가 쳐들어올수도 있다는걸 생각해두는것도 나쁘지 않소이다. 다른건 다 이 도노가 마련하겠사오나 그…》
《그라는건 뭐요?》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호수의 비밀말이오이다. 그러루한 소리는 무성한데 실지 그런지… 세월이 흐르면 못쓰게 되지 않는게 없다고들 하는데 전하께옵서 직접 보셨소이까?》
도노, 도노가 호수의 비밀을 알려고 했다. 그러고보니 한두번이 아니다. 이제 와서 더듬어보니 도노는 알게 모르게 집요하게 호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였다.
도노가? 그렇다면 버들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버들은 도노에 대해서 말했다. 그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꾸몄으며 이제 무슨짓을 하려고 하는가고…
송양은 믿지 않았다. 믿지 않는체 하였다. 그것은 송양의 파멸이다. 등잔불밑이 어둡다고 송양이 믿고 모든 일을 맡기다싶이 한 대부가 부여의 끄나불이며 그가 버들을 산속에 버리도록 했고 고구려의 사신 마리를 죽이려고 했으며 소나를 죽이려고 했다. 나중에는 부여에 요청하여 비류를 치게 하려고 했다는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뭐가 이리도 어지러우냐? 그만해라, 그만해!》
송양은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버들의 말을 다 뒤집을수는 없다. 그도 날이 가면서 도노에 대해 의심하지 않은건 아니였다. 다만 그걸 믿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여서 그저 아니였으면 하고 빌뿐이였다.
부여의 원정군? 우리 비류를?
임금은 뭐니뭐니해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 반란이요 뭐요 하는건 뒤일이다. 만약 부여의 원정군이 쳐들어온다면? …
송양은 호수의 비밀을 써먹을 때가 되였다고 속으로 벼르었다.
비류밖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비류안의 사람들도 비류궁성에서 멀지 않게 있는 호수가 이전부터 있던 호수이거나 혹은 경치나 즐기려고 만들어놓은것인줄 알고있다. 하지만 그 호수는 비류의 궁성이 위험하게 되였을 때 비류궁성을 보위하는 위력한 무기이다. 송양임금만이 알고있는 비밀장치를 돌리면 바다와 같은 호수의 물은 눈깜빡할 사이에 비류궁성앞을 에워싸게 된다. 그렇게 되면 비류궁성을 먹으려던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물속에 잠기게 된다. 병법에 대해서 뭔가 좀 아는 사람들은 적을 불로 공격하는것과 함께 물로 공격하는것도 위력하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싸움할 때 적이 모르게 물동을 막았다가 터뜨려 공격해오는 적을 몰살해버리는 꾀를 쓰기도 한다. 비류궁성의 호수는 이를테면 만일을 대비하여 물로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물동이나 같았다.
부여가 오겠으면 오라! 모두 물귀신으로 만들어놓을테다. 그 때면 이 송양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게다.
그런데 그렇게도 믿던 호수의 비밀이 낱낱이 헤쳐졌다.
다름아닌 부여를 끌어들이려는 그 도노에게…
소름이 끼쳤다.
송양은 한동안 어쩔줄 모르고 서있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들어가봐야 한다. 어떻게 되였는지 눈으로 봐야 한다. 만약 도노에게 이 호수의 비밀이 드러났다면 그가 써먹지 못하게 묻어버려야 한다. 비류의 호수는 겹으로 된 비밀이 있다. 하나는 호수의 물을 터쳐놓는 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장치를 메워버리는것이다. 호수에 겹으로 된 비밀장치를 만든것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마지막장치, 호수의 비밀을 묻어버리게 하는 마지막장치는 설사 열쇠를 열고 들어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를것이다.
비류의 궁성은 호수의 비밀이 담보되는 한 천연요새다. 적들이 비류의 궁성을 먹으려고 아무리 많이 달려들어도 소용없다. 동굴에 있는 비밀장치만 움직이면 순식간에 비류궁성을 내놓고 주위는 물바다가 된다. 설사 홍수처럼 골짜기와 골짜기를 휩쓰는 물의 공격에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비류의 궁성으로 달려들지는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호수의 비밀이 이렇게 끝장나다니…
송양은 홰불을 안고 허청허청 굴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악마의 아가리로 들어가는것 같았다. 얼마쯤 들어갔을가? 이제는 거의 닿았음직 했다.
송양의 귀에는 불현듯 먼 옛날에 있은 말이 들려왔다.
《전하! 이것은 정말 마지막수단이오이다. 저는 전하께서 이 마지막장치를 전하의 손으로 쓰지 않기를 바라오이다. 그렇게 되오면 전하께서도 그렇고 저도 애써 이 호수의 비밀을 만든 보람이 없지 않소이까?》 하고 장공은 말했다.
아직은 젊었다고도 할수 있는 송양은 그때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마오. 아무렴, 내 손으로 이 호수의 비밀장치를 묻어버리게야 되겠소? 호수의 비밀은 영원할것이고 이 비류도 영원할거요, 내가 있는 한…》
아, 그때의 그 장공! 씩씩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기 이를데 없는 그 장공! 그와 함께 밤을 밝히며 일하던 그때야말로 송양의 인생에 기쁨이고 행복이였다. 그대는 왜 일찌기 이 송양의 곁을 떠났던가?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송양의 삶은 이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송양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번 하다가 겨우 섰다.
불을 비쳐보았다. 굴바닥에 돌이 널려있었다.
이상하다. 여기에 이런 돌이 없었는데…
송양은 홰불을 쳐들었다. 홰불에 비쳐 앞을 보던 송양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굴은 돌무더기로 막혀있었다. 그러니 누가 들어와 호수비밀의 마지막장치까지 써버렸단 말인가? 그 장치를 쓰면 굴은 무너져 호수의 물을 영원히 쓸수 없게 되는것이다.
아, 아,
이렇게까지 말끔히!
홰불로 무너져 막힌 굴안을 둘러보던 송양은 섬찟했다.
사람의 손, 사람의 손이다. 돌밑에 깔린 사람의 손이 송양에게 내뻗치고있었다. 송양은 흠칫 놀라 물러났다. 다시 굴안을 비쳐보았다. 아마 이 굴을 묻어버리는 마지막장치를 쓰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아, 그래서 장공이 이 마지막장치는 송양의 손으로 쓰지 말기를 바란것이다. 송양도 이 마지막장치를 쓰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있었다. 그저 호수의 물을 터치는 비밀장치들이 모두 묻히는줄 알았지 마지막장치를 쓴 사람까지 묻히는줄 어찌 알았으랴… 하마트면 송양이 묻힐번 했다. 그런데 송양대신 돌에 묻힌 사람은 도대체 누굴가?
도노?
송양은 돌밑에 깔린 사람의 손을 비쳐보았다.
그 손에 무엇인가 쥐여있었다. 청동열쇠였다. 큼직한 장농열쇠와 같은것이였다.
묻힌 사람은 누구인가?
송양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싶었다. 그는 돌을 치우기 시작하였다. 겨우 사람의 웃몸을 볼수 있게 되였다.
가까이 홰불을 비쳐보던 송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아! 장공의 딸 고아!
아, 아…
송양은 비칠거리다가 무너졌다.
본의아니게 송양의 노여움을 사 궁궐에서 쫓겨난 뒤 고아는 실성했다. 사람들은 그를 《흰사슴 고아》라고 불렀다. 그는 실성한채로 여러번 송양앞에 나타나군 했다. 그때마다 송양은 악귀를 본듯이 치를 떨며 그를 쫓아내라고 소리쳤다. 그로 해서 여러번 좋지 못한 일도 있었다.
고아는 사흘전에도 송양앞에 나타났다. 심사가 울적하여 호수가를 거닐던 송양은 미친 고아를 보고 시종들에게 당장 잡아 죽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아를 잡을수는 없었다.
고아는 새가 우는듯 한 야릇한 웃음을 날리며 사라졌다. 아마도 고아는 그길로 이 동굴에 온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고아는 송양만이 알고있는 호수의 비밀을 다 알고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알고있었다.
아버지인 장공에게서 알았을가? 아니면 송양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다가 알았을가?
그러고보면 장공의 까닭모를 자결도 우연치 않다.
어쨌든 송양이 그렇게 미워하던 고아는 송양이 그렇게도 깊숙이 감추고있던 호수의 비밀을 자기의 몸과 함께 고스란히 묻어버리고말았다.
그것은 송양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였다.
송양은 정신을 잃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누가 안타깝게 흔드는 바람에 송양은 정신을 차렸다.
버들이 눈물을 흘리며 송양을 보고있었다.
송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편전이였다.
꿈을 꾸었는가? 아니, 그것은 꿈이 아니였다.
《버들아…》
송양은 애끊는 소리를 내며 손을 내밀었다.
《아바마마, 버들이 여기 있나이다. 진정하시오이다.》
《버들아, 너를 볼낯이 없다. 너의 언니에게도… 이제는 모든게 끝장이다, 끝장…》
《아바마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이다. 다 잘될것이나이다. 다…》
비수가 편전으로 소리없이 들어왔다.
그는 서부대가에게 갔다가 버들이 걱정되여 그길로 돌아서서 궁성에 들어섰다. 비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버들을 홀로 남겨둘수 없었다. 그는 궁성에 들어와 서부대가에게 갔던 일을 말하고 그길로 건건이를 찾아갔다가 지금 돌아선 참이였다.
《버들, 일이 급하게 되였소. 동부대가와 도노가 군사들을 모아 궁성을 치려고 하고있소. 그리고 그 동부대가에게 간 부여의 괴한들이 임금님을 해치려고 한다오. 그들이 인차 여기로 올거요. 서둘러야겠소.》
비수가 숨을 눅잦힐 사이없이 바쁘게 시종이 들어왔다.
《공주마마, 도노대부께서 임금님을 뵙겠다 하오이다.》
《무슨 일이지?》
《다른 나라 상인들이 전하께 례물을 올리려고 한다 하오이다.》
버들은 비수를 보았다.
비수의 낯빛이 굳어졌다.
《틀림없이 그놈들이요. 어떻게 하겠소?》
《내가 놈들을 막겠어요. 비수는 아바마마를 모시고 서부대가에게 가세요. 여기는 안전치 못해요. 도노가 벌써 다 짜놓았을거예요.》
《차라리 내가 놈들을 막겠소. 버들이 임금님 모시고…》
《내가 나가야 틈을 얻을수 있어요. 그러니 비수는 빨리 시종과 함께 아바마마를 모시고 빠지세요. 길은 알겠지요?》
《아오. 버들, 조심하오.》
《서둘러요.》
버들은 편전을 나섰다.
문밖에서 도노가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웬 일인지 초조하게 오락가락하다가 버들이 나오자 홱 돌아섰다.
버들과 도노의 눈길이 부딪쳤다. 두사람의 눈길이 불꽃을 튕기였다.
버들이 먼저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이나이까, 도노님?》
도노는 헤식은 웃음을 지었다.
《공주마마, 다른게 아니고 저 멀리 서쪽나라에서 오신 이 상인들이 전하를 뵈옵고 례물을 올리겠다고 해서…》
《그래요?》 하며 버들은 상인들에게 돌아섰다.
그들은 버들이 나오는 순간 긴장하여 일어났다. 차림새는 제법 다른 나라 상인들같으나 얼굴에는 살기가 내비치였다.
《여러분,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오이다.》
버들이 고개를 가벼이 숙여 례절을 차렸다.
《뭘요. 오히려 우리가 비류의 임금님을 만나뵙게 되여 기쁘오이다.》
우두머리인듯 한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들은 서쪽 어느 나라에서 오셨는가요?》 하고 버들이 다시 물었다.
《예, 여기서 아득히 먼 나라, 모래만 날리는 나라에서 왔소이다.》
《그것 참, 수고로이 오셨나이다. 이렇게 서쪽 멀리에서 오신 여러분을 뵈오니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더구나 우리 겨레의 말을 그렇게 잘하시는 손님들을 대하니 말이오이다.》
버들의 말에 우두머리인듯 한 사람은 실수했다고 느꼈는지 황급히 돌려댔다.
《비류에는 처음이지만 저는 이 동방나라에 와서 산지 오랬소이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공주마마, 임금님께서는…》
《임금님께서는 지금 옥체가 미령하시와 시의를 불렀나이다.》
상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은 도노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하고 버들이 그들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살벌한 빛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임금님께옵서는 여러분의 성의를 어여쁘게 여기시여 이제 곧 만나시겠다고 하나이다. 조금 기다리시오이다.》
버들의 말에 도노와 상인들은 안도의 빛을 띠였다.
《나도 전하께서 옥체가 미령하시다는건 알고있었소. 참, 전하께선 어찌하여 시종도 없이 동굴에 거둥하셨는지 안타까웠소이다. 듣자니 전하께서 거둥하시였던 그 굴이 호수의 비밀과 관련된 굴이라고 하던데…》
버들은 담담한 웃음을 지었다.
《글쎄, 그건 저도 잘 모르는것이오이다.》
《공주마마께서 제때에 전하를 따랐으니망정이지 하마트면 큰일날번 했소이다.》
《대부님은 꼭 보신듯이 말씀하시오이다. 혹시 지켜보신건 아니시오이까?》
도노는 당황함을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아래사람들에게서 들었소이다. 그건 그렇고 전하께서 오래 걸리겠는데 저는 돌아갈가 하오이다.》
《무슨 말씀, 다른 나라 손님들을 임금님께서 만나시는데 대부님이 안 참가하시면 되오이까?》 하고 버들은 짐짓 정색한 낯빛으로 말했다.
《저는 그저 이 사람들이 하두 조르기에 나선 길이오이다. 그럼, 전…》
도노는 서둘러 나갔다.
도노가 나간 뒤에 버들은 상인 한사람한사람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버들과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상인들은 눈을 돌렸다.
그렇게 얼마간 흘렀다.
상인들이 초조해하기 시작하였다.
우두머리가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공주마마, 임금께서는 언제 나오시오이까?》
《인차 나오시오이다.》
《저, 우린 바쁜 사람들이라…》
《한 나라의 임금께서는 더욱 바쁘시오이다.》
상인들이 저희들끼리 눈을 마주쳤다.
버들이 그들의 꼴을 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한가지 묻겠는데…》
《무엇이오이까?》
《여러분의 나라에서는 임금을 얼마에 사고 팔고 하나이까?》
우두머리가 긴장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시온지?》
버들이 소리없이 웃었다.
우두머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공주님, 우리는 실없는 소리나 하고있을 사이가 없소이다. 당장 임금님을 만나게 해주시오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어쩔텐가요?》
우두머리가 이를 사려물다가 갑자기 칼을 뺐다. 그러자 그것이 신호인듯 모두 칼을 뽑았다.
상인의 탈은 벗어졌다.
버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웃었다.
《이제 보니 상인이 아니고 칼부림이나 하는 패거리들이였군요?》
《닥쳐라!》
우두머리가 칼로 버들을 찔렀다.
버들은 잽싸게 몸을 돌려 칼을 피하며 한손으로 우두머리의 칼쥔 손을 잡아채고 다른 팔꿈치로 명치 급소를 찔렀다.
우두머리는 칼을 떨구고 나가뻗었다. 그걸 본 무리가 한꺼번에 와락 달려들었다.
버들은 발뒤꿈치로 우두머리가 떨어뜨린 칼자루를 찼다. 칼이 날아가 앞에서 달려들던 사람의 목에 꽂혔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미처 모르고 입 한번 벙긋 벌리며 넘어졌다. 그 꼴을 보고 달려들던 무리들이 흠칫했다.
버들은 숨쉴 틈도 없이 몸을 날려 자객무리의 머리꼭지들을 짓밟았다. 그바람에 두사람이 김빠진 돼지오줌통처럼 무너져 쓰러졌다.
나머지는 그제야 자기들이 아련한 처녀공주가 아니라 무서운 적수와 맞다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겁을 먹었다. 이런 때는 달아나는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그들은 늦었다.
어느새 버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임금님을 만나시겠다고 했으면 만나는게 례절이 아닌가요, 상인나리들!》
절망에 빠진 두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버들은 기둥을 기대고 섰다가 돌며 덤벼드는 둘의 뒤통수를 발꿈치로 련달아 찼다. 두사람은 달려오던 기세로 칼을 기둥에 박고 저희들은 어쩌자고 바닥에 코를 박았다.
눈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나머지들은 얼이 빠졌다. 칼을 쥔 한다하는 무리들이 처녀 하나 당하지 못해 맥없이 쓰러졌다. 귀신에게 홀리웠나?
남은 세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시오이다, 공주마마, 제발 잘못했소이다.》
그들은 머리를 바닥에 짓쪼았다.
버들은 그들을 남겨두고 편전으로 돌아서 걸었다. 문을 열려던 버들이 몸을 피했다. 단검이 날아와 문에 박혔다.
버들은 단검을 뽑아들고 돌아섰다.
두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아직 바닥에 머리를 짓쫏고있는데 단검을 던진 사람이 달아나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버들의 손에서 단검이 번쩍하더니 달아나려던 사람의 목에 깊숙이 꽂혔다.
《소나언니 몫이다.》 하고 버들은 편전의 문을 열었다.
버들이 편전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간지 얼마 있지 않아 도노가 들어왔다. 이제는 일이 다 됐겠지 하고 웃는 얼굴로 들어서던 도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죽은 시체들이 너저분한 방에 살아있는 두사람이 도노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머리를 조아리며 뭐라고 중얼거리고있었다.
도노는 방을 사납게 둘러보고나서 밖으로 나갔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울리고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임금의 거처에 찬바람이 들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