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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여간만 승벽이 세지 않았다. 아이는 코를 훌쩍거리며 열심히 꼬니판을 들여다보았다. 마리도 꼬니판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첫판은 이기고 두번째 판은 비겼다. 세번째 판은 결승이다. 사마는 세번만에 기어이 이겨 마리에게서 비파형단검을 따려고 했다.
《자, 놨소이다. 마리님 차례오이다.》
사마는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 판을 들여다보았다.
마리는 말로 쓰는 밤알만 한 차돌을 쥔채 꼬니판만 들여다보고있었다.
《빨리 쓰시오이다.》
사마가 독촉하는데도 마리는 멍하니 판만 들여다보았다.
《쓰겠나이까, 안 쓰겠나이까?》
사마는 마리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음, 내 차례란 말이지? 좋아. 자, 놓았다.》
《으응, 내 말을 잡아먹으려고 하는구나?》
아이는 제법 이마살을 찌프리며 수를 생각했다.
마리의 머리속에는 오이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부위염과 비류의 2천 군사는 독안에 든 쥐와 같네. 그들은 절망에 빠져있네. 부위염과 비류군사들을 살리는가 마는가 하는건 마리에게 달렸네. 그러지 않아도 조정에서는 부위염과 비류군사들의 침입을 놓고 말이 많네. 풀어주자는 사람, 놓아주어서는 안된다는 사람, 몹시 복잡하네. 임금님께서 마리와 의논해보라고 해서 왔네. 자네의 결심여하에 따라 나라의 결정이 나는걸세. 그러니 깊이 생각해서 말해주게.》 하고 오이는 심중한 낯빛을 짓고 말했다.
부위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리는 얼굴이 하얘졌다.
《살린다구? 누구 말인가? 억울하게 죽은 우리 사신들을 잊으라는건가? 그러고도 모자라 함부로 우리 고구려에 제멋대로 쳐들어온 그놈들을 잊으라는건가?》
《마리! 이건 분풀이로 될 일이 아닐세. 부위염은 그렇다치고 그럼 비류의 군사들은 어떻게 할텐가? 그들을 손들게 해서 우리 고구려의 노예로 삼든가 우리 군사에 편입시키든가 하자는 사람도 있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고구려와 비류의 사이가 다 풀리리라고 생각하나? 아니, 그렇게는 안되네. 이건 누굴 놔주고말고가 아니라 수천 사람들의 생사여탈이 달려있고, 또 앞으로 고구려와 비류가 손잡고 나가는가 마는가 하는 앞날이 걸린 일일세.》
《알만 하네, 다 알만 해! … 하지만 내 입에서 풀어주자는 말이 나오리라고 생각지 말게. 내 입은 설사 그럴지 몰라도 내 마음은 절대로 풀어주지 못해. 나도 아량이 없는 사나이는 아닐세. 그건 오이, 자네도 알겠지? 이 마리는 제가 어떤 모욕을 받았다던가 무슨 손해를 보았다고 해서 기어코 따라다니며 복수하는 그런 비렬한 놈은 아닐세. 그렇다고 아무때나 너 좋고 나 좋고 히히거리는 바보도 아니야. 정당한 앙갚음이라면 나도 마다하지 않네.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말일세. 그건 그렇고… 놔주자니 뭐니 하는 말을 다시는 내앞에서 하지 말게. 난 내 혼자의 분풀이로 그러는것도 아니고 아량이나 그러루한 뭐가 없어서도 아니네. 부위염과 우리 고구려에 쳐들어온 비류군사들을 풀어준다고? 그럼, 억울하게 죽은 우리 고구려사신들은, 그들의 령혼은, 그들의 부모형제들과 살붙이들은 어쩔텐가? 산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세. 그래, 죽은 령혼들은 어쩔텐가? 나에겐 부위염에게 그 일을 겪은 다음부터 흐린 날 부는 바람소리도 무심하게 들리지 않네. 어두운 밤에 들리는 새소리도 무심하게 들리지 않아. 우리 사신들의 령혼이 울부짖는 소리같아서…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령혼을 달래주지 못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나? 비렬한짓을 하고도 응당 벌을 받지 않고 마음놓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나 말일세. 산 사람은 그냥 사는게 아닐세. 산 사람은 하늘을 대신하여 죄를 지은 사람의 탈을 쓴 놈들을 처벌할 짐을 지고 살아가는걸세. 이 일이 두려워 피하거나 너그러운체 하면서 풀어주자거니 뭐니 하는것이야말로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인생, 종놈의 인생으로 하늘과 인륜에 두벌 죄를 짓고 사는걸세. 사람아닌 사람,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의 흉내를 내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그런 무리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세상이 아무리 살기 좋다한들 그게 무슨 살만 한것이겠나?》
오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였다.
《끝내 놓아줄수 없다는건가?》
《없네.》
《그럼, 이전의 일들은 뭔가? 그렇게 쓴맛을 보면서도 비류와 손잡아야 한다고 하던 말은 뭔가 말일세?》
《그거하고는 다른 일이야.》
《끝내 마음을 돌릴수 없다는건가?》
《그렇네.》
오이는 꺼지게 숨을 내쉬였다.
《할수 없지. 임금님께 그렇게 말씀올리는수밖에…》
마리는 오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지켜보고있었다.
《잘 있게. 그리고 무리하지 말라구. 자주 와보겠네.》
《마리님, 마리님! 뭘 하시오이까? 마리님 차례!》
마리는 엉겁결에 쥐고있던 말을 아무렇게나 놓았다.
사마는 히죽이 웃었다.
《물릴내기 없나이다, 그렇지요?》
《응, 그렇지…》
《그럼, 요놈을 먹겠나이다.》
사마는 좋아라고 마리의 말을 딱 소리나게 잡아먹었다.
《이젠 마리님이 졌나이다. 암만 해도…》
마리는 꼬니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래그래, 내가 졌구나.》
《졌지요?》 마리는 두손을 들었다.
《꼬니에서 사마가 이기고 마리가 졌소이다.》
아이는 재미있게 웃었다.
《에헴, 그럼 어서 약속대로 단검을 바치도록 할지어다.》
《알겠나이다.》
마리는 허리에 찼던 단검을 아이에게 주었다.
《정말 주오이까?》
《정말 아니면? 사나이들이 약속을 어기면 못쓰지.》
《야, 좋구나!》
아이는 단검을 쥐고 높이 쳐들었다.
《나한테 단검이 있다! 멋있는 단검이다!》
마리는 좋아서 깡충깡충 뛰는 아이를 웃음짓고 바라보았다.
《얘야, 하나 물어보자.》
《뭐나이까?》
마리는 빤히 쳐다보는 사마의 눈을 피하며 물었다.
《만일 너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쑤를 놓아주라면 어떻게 할테냐?》
사마는 찬물을 맞은듯 웃음이 싹 가셔졌다.
그는 물끄러미 마리를 쳐다보았다.
마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사마가 마리에게 단검을 내밀었다.
《이건 뭐냐?》
아이는 울상이 되였다. 입을 꼭 다물며 마리를 쏘아보았다.
《싫소이다. 단검은 안 가져도 되나이다. 아버지 원쑤를 놓아줄수는 없나이다.》
《누가 너더러 놓아주라더냐? 그러면 어쩌겠는가 물어보았지?》
《싫소이다. 싫소이다.》
사마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였다.
아이는 단검을 마리에게 주고 돌아섰다.
마리는 사마를 잡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래 아버지 원쑤를 놓아주어서는 안된다. 안되구말구…》
《마리님…》
아이는 마리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쳐라! 사내대장부가 눈물이 헤퍼서는 못쓴다. 그리고 이 단검은 가져라. 언제부터 너에게 주려고 했다. 넌 이걸 몹시 가지고싶어했지?》
거무가 마리를 찾아왔다.
《내가 보기엔 부위염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네. 그는 도노의 살을 맞은 사람일뿐이네.》 하고 거무는 말했다.
《살박힌 사람도 나쁜 사람이오이다.》
《그 말은 옳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네. 나쁜건 살 맞는가 안 맞는가 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살이 박혔다고 하더라도 그걸 깨닫고 제때에 벗어나려고 하는가 못하는가 하는데 있다고 보네.》
《거무님은 부위염이 송양임금을 만나게 해주었다고 해서 그러시오이까?》
《마리는 비수를 알겠지?》
버들이 수리산을 내린 뒤 만났다는 사나이. 어느 작은 산적의 부두령을 하였다는 그 사나이를 마리는 한때 잘못 보았다. 그가 버들을 따라다니는 놈팽이로 보지 않았던가! 눈먼사랑의 적수로… 마리는 그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는 버들을 오라비로 돌봐주고싶어하는 외로운 사나이였다. 마리의 질투어린 눈길을 너그러운 웃음으로 받아주던 사나이. 마리는 그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있었다. 그 사나이를 통해서 마리는 흔히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다른 남녀사이에 인습의 인연, 오라비니, 누이니 하는 인연이란 있을수 없으며 오로지 사랑으로 끝나기마련이라는 소리를 믿지 않게 되였다. 가끔은 흔한것들속에 진짜보물이 있기도 하다. 그 보물이야말로 사람에게 귀한것이다. 비수는 바로 그런 사람이였다. 마리는 그를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의 형으로 삼았다. 마음속으로 깊이…
《비수가 어디에 있소이까? 버들에게서 듣자니 비류궁성을 떠났다고 하던데…》
《오이에게서 들은 말인데 그사이 건건이와 묵거의 부대에 들어가있었더군. 버들이 고구려로 온 뒤에 비수는 버들을 만나려 비류궁성에 내려왔었네. 그러다가 도노의 종들에게 들켜 그놈들과 싸우다 죽게 된걸 바로 부위염이 구원해주었다네. 도노가 냄새맡고 비수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부위염은 딱 잘랐다더군. 쉽지 않은 일이네. 어떤가? 뭔가 도노와 부위염사이에 이전과는 다른것이 생겨난게 아닐가?》
《모르겠소이다. 참새도 봄철 한때 벌레를 잡아먹는 좋은 일 할 때가 있고 족제비도 쥐잡아먹을 때가 있다질 않소이까?》
거무는 시무룩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보았네. 본태가 나쁜 사람은 아닐세. 이번에 고구려에 쳐들어온것도 소나공주를 사랑하기때문이네.》
《사랑이라구요? 그가?》
《그렇네.》
《거무님은 저더러 부위염을 놓아주라는것이오이까?》
《난 부위염이 어떤 사람인가 말해주었을뿐이네.》
마리는 마음이 괴로웠다.
《좀더 두고보겠소이다. 비류는 어떻게 될것 같소이까?》 하고 마리가 물었다.
거무는 낯을 찡그렸다.
《이제 비류에 큰 란이 일어날거네.》
《그건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마리는 버들이 걱정되여 물었다.
《송양의 귀가 그렇게 어두우니 별수있나? 이쪽저쪽 다 들으라고 사람의 귀가 두개인데 비류의 임금은 한귀만 듣거던. 그나마 절벽이 되였으니 바스락거리며 기둥을 써는 쥐소리를 어떻게 듣겠나?》
《무슨 기미라도?》
《아니, 내 륙감일세.》
마리는 뜬눈으로 밤을 밝혔다. 버들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 버들의 언니인 소나와 비류의 임금이고 버들의 아버지인 송양 그리고 소나의 애인인 부위염과 도노, 그밖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눈앞에서 떠날줄 몰랐다. 그들에 대한 사랑과 미움과 안타까움이 서리고서려 마리의 속을 태웠다. 때로 그것은 마리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그래서 될대로 되라고 털어버리고 잠들려 해도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생각은 밤도와 더욱 가지를 뻗고뻗었다. 손에 잡힐듯이 뻗어가는 그 생각의 넌출들은 새벽기운과 함께 버들에게로 잇닿아갔다.
그렇다! 버들 그리고 버들과 잇닿아있는 사람들의 일은 결코 마리에게 남의 사람들이 아니고 남의 일이 아니였다. 그들이, 그 일이 비록 밉고 너절한것이 없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마리의 일이고 고구려의 일이고 겨레의 일이고 앞날에 대한 일이였다. 그것을 팔짱끼고 강건너 불보듯 할수 있는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마리는 이때껏 보지 못한 새로운 자기를 보았다. 새로운 마리는 남이 시키는 일이나 따라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땅에 기여다니는 작은 사람도 아니였다. 그는 주몽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사람들과 겨레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하는 사람으로 된것이다. 말로가 아니라 자기의 삶을 걸고… 그것이 비록 달콤한 일이 아니라도, 어찌 보면 더더욱 고달픈 일이라 해도 주몽을 따라나선 사나이로서 걸어갈 인생의 길이였다.
젊은 마리는 이렇게 컸다. 한밤사이에. 한밤이라고 하지만 그가 새운 한밤은 그의 이때까지의 삶이 묶어져 폭발하는 한밤이였다.
날이 밝아왔다. 마리는 일어났다.
텁석부리의 아들 사마는 허리에 마리가 준 비파형단검을 보란듯이 차고있었다. 단검집은 무골이 만들어준것이였는데 거기에 사슴의 가죽을 씌워준것이며 단검을 허리에 차게 만든 소가죽띠는 그의 엄마가 만들어준것이였다.
사마는 반짝이는 눈으로 마리를 올려다보았다.
《너 나와 함께 가겠니?》 하고 마리가 물었다.
《가겠나이다.》
아이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럼 말을 타라. 우린 먼길을 가야 하니까.》
아이는 말에 올랐다.
그들은 주몽을 찾아갔다.
기발이 나붓기고 창검이 번쩍거렸다.
그것은 멋이 아니였다.
싸움을 앞두고 산과 들을 덮은 군사들의 기발들과 창검들은 살기를 풍기고있었다. 이제 저 창검들은 성한 사람의 목을 베고 팔과 다리, 가슴과 잔등을 찌르고 베여 내장이 쏟아지고 피가 흐르게 할것이며 고통과 아픔의 아우성소리를 자아내게 될것이다. 기발은 피로 물들어 그 살륙을 부추길것이다. 그리고 난 뒤 까마귀들이 찾아드는 이 전쟁판에는 죽고산 사람들이 남을것이고 그들의 머리속에 싸움에서 졌다는 수치감과 혹은 이겼다는 기쁨이 희미하게 감돌것이다. 고난과 슬픔을 이기려는 환호성과 함께…
고구려군사들과 비류군사들은 판가리싸움을 벌리려고 마주섰다.
고요하다.
나붓기는 기발들과 이따금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전령들이 아니라면 이것은 회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비류군의 장수 부위염은 찌프린 눈으로 고구려진과 자기의 군사들을 둘러보았다. 볼수록 그것은 서글픔과 까닭모를 증오심을 돋구어주었다. 부위염과 마주선 고구려군은 부분노의 부대였다. 그러나 부분노가 고구려군의 전부는 아니였다. 비류군의 옆과 뒤에도 그 수를 알수 없는 군사들이 지켜서있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군사들이 모여들었단 말인가? 군사들의 머리수도 머리수이지만 그들의 말과 무기들은 또 얼마나 멋있는가! 부위염은 비록 적일망정 장수로서 부러웠다. 고구려는 부위염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런 고구려를 모른 부위염, 아니 비류는 얼마나 얼빠진 소경들이였던가!
하지만 이미 깨진 그릇이요, 엎지른 물이다.
소나를 구원하고 이긴다는 결심과 의지가 처음에는 얇아도 날카로운 검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검이 아니였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그것은 가느다란 막대기로 되였다가 바줄로 되였고 이제 와서는 실오리로 변해버렸다. 그나마 마구 엉켜진 실오리로…
부위염은 슬프고 괴로웠다. 자기를 따라나선 군사들의 운명으로 하여 슬프고 괴로웠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부위염의 어리석은 충동과 강압에 몰려 개미가 절구통 물고 가듯 이 길에 들어섰다. 그 슬픔과 괴로움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였다. 오로지 어리석은 부위염의 잘못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한탄이나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 차라리 힘껏 싸우고 죽어 뒤날에 치욕이나 덜자!
군사들이여, 부위염을 용서하라!
부위염은 숨을 들이키고 검을 잡은 손을 들었다.
마지막돌격이다.
문득 부위염의 손이 흠칠했다.
고구려쪽에서 이상한 신호가 왔다.
《뭐라고 하는가?》
《장군을 만나자고 하오이다.》
부위염은 눈을 쪼프렸다.
또 그 소리일것이다.
고구려의 부분노가 얼마전에도 글을 보내왔다.
《그대의 용기 하늘을 찌르고 세운 공도 높으니 그만 돌아감이 어떠하리오.》 하는 내용이다.
겉은 부드러워도 속은 칼날같은, 넉넉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힘없고 푼수없는 사람에게 너그럽게 타이르는듯 한 소리였다.
부위염은 코웃음쳤다.
싸움은 해봐야 하거늘 어찌 야료를 부리느냐?
그때까지만 해도 배심이 있었다.
뭔가 잘 생각해보았더라면 다른 길도 있었을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늦었다. 부분노장군!
패전할망정 굴복이란 없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의 마음은 편안하다.
부위염은 부분노와 맞서서 처음으로 웃었다. 쓰디쓴 웃음일망정 그것은 부위염자신의것이였다.
《할 말은 없다.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 그뿐이다!》
다시 손을 들던 부위염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갈라지는 고구려의 진에서 부위염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소나였다.
부위염은 저도 모르게 등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소나공주?》 하고 부위염은 중얼거렸다.
비류의 진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소나는 비류의 군사들에게 자기들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줄수 있는 녀신으로 보였다.
부분노와 고구려의 장수들이 멎어서고 소나 홀로 비류의 진으로 걸어왔다.
부위염은 말에서 내려 소나에게 달려갔다.
고구려와 비류의 수천 군사들이 창과 검을 잡고 마주선 가운데서 소나와 부위염은 만났다.
두사람은 마치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들처럼 서로 마주보았다.
《소나, 이게 꿈은 아니겠지?》
부위염은 소나의 손을 잡고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소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부위염, 돌아가시오이다. 비류로…》
《비류로?》
《그렇나이다. 아바마마가 계시는 곳으로, 우리 비류로!》
소나의 웃는 눈에서는 맑은 이슬이 고였다.
《그러나 고구려군이…》
부위염의 얼굴에 그늘이 비꼈다.
《가면서 말씀드리겠나이다.》
소나는 부위염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비류의 진중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고구려진에서도 북소리가 울렸다.
고구려군사들은 비류군을 에워쌌던 진을 풀었다.
그사이로 비류의 군사들이 소나와 부위염의 뒤를 따라갔다.
고구려의 지경이 끝나는 산중턱에 말을 탄 사람들이 서서 비류로 가는 부위염과 소나를 보고있었다.
그들은 마리와 사마 그리고 구도와 일구, 분구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