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머리를 짓수그린 구도는 말채찍을 툭- 툭- 치며 거닐고있었다. 얼마동안 걷다가는 멈춰서고 그러다가는 다시 걸었다.
그는 난생처음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연줄연줄 이어간 산줄기들과 그우의 하늘을 바라보며 구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사람에게 복종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사나이라면… 사나이들은 제딴의 자존심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것이다. 누군들 남의 밑에서 굽신거리며 사는걸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것은 묘하게 돼먹어서 복종하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다. 복종이라는것이 없어가지고는 애당초 무리라는것이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말 못하는 짐승도 무리를 지으면 복종관계라는것이 있기마련이지만 사람의 그것과는 다르다. 짐승들은 오로지 먹고 먹히우는 관계에 따라 힘에 의해 복종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도 물론 살아가는 필요에 따라 복종이 이루어지지만 보다 복잡하다. 어쩔수 없어 복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복종이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진심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짐승과 달리 바로 그 마음이라는것이 있어서 복종은 하면서도 늘 복종하지 않으려는 반항심이 있게 되는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무턱대고 복종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다. 설사 복종한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되는 복종이란 쉽지 않다. 개와 고양이 그리고 계집은 쓸어주는쪽으로 눕는다고들 한다. 자기를 고와하는 사람을 따르는것은 고양이나 계집뿐이 아니다. 사나이들도 저를 알아주는 사람을 가려서 일한다는 말도 있다. 같고같은 말이다. 고와하는 사람을 따른다? 물론 그렇다. 누구인들 사랑받기를 바라지 않으랴! 사람은 센것 같지만 물과 공기처럼 또한 사랑도 목마르게 바란다는쪽에서 보면 약한 물건이기도 하다. 다 그런것은 아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 따르고 사랑에 주려 따른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켠에는 늘 저를 살리려는 대가 살아있다. 뼈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받기보다 사랑을 주기를 좋아한다. 밥과 재물, 권세따위는 사람을 복종시키기는 하지만 진심의 복종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복종하게 하는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영웅, 신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진심으로 복종하기 힘들어하는것은 천성적으로 복종하기 싫어해서가 아니다. 거꾸로 사람은 복종하기를 좋아한다. 복종하고싶어하는것은 어쩌면 사람의 천성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복종하기를 싫어하는것은 복종할 대상이 없기때문이지 결코 복종하는걸 싫어하기때문은 아니다. 진심으로 따르고싶은 사람이 있다는것은 그리고 그것이 어느 한때의 충동이 아니고 날이 갈수록 더 따르고싶은 사람이 있다는것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쉽게 차례지지 않는 행복이다. 사람은 먹을것이나 입을것보다 따르고싶은 사람을 더 찾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그래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을것이다.
구도는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있었다. 아득한 하늘을 오래도록 올려다보던 그는 어깨를 솟구며 깊은숨을 들이켰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진혼제라는게 뭔가 했더니 그런것이였구나.》 하고 구도는 중얼거렸다.
《좋아, 아주 좋아!》
구도는 힘이 뻗치였다. 그는 말채찍을 멋지게 후려치고 박차를 찼다. 주인을 닮은 말은 앞발을 내들었다 껑충 뛰며 달리기 시작하였다.
고구려, 비류지경을 지키고있던 일구와 분구는 구도를 반갑게 맞았다.
《형님이 진혼제에 갔다오더니 기분이 아주 좋았소이다.》
말고삐를 잡으며 일구가 말했다.
《누가 들으면 욕하겠다. 진혼제에 갔던 사람이 좋아한다는게 무슨 말인가?》
구도가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욕을 먹어야 한다면 형님이 먼저 먹어야지요. 난 그저 형님을 본대로 말했소이다.》
구도는 웃고말았다.
《다른 일은 없나?》
《없소이다. 쥐죽은듯 조용하오이다. 비류놈들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이다.》
《일구, 자넨 싸움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것 같구만?!》
《그렇소. 형님은 뭐 그렇지 않소?》
《무턱대고 싸울 생각은 좀 그만두게!》
《속이 근질거려서 어디…》
구도는 일구와 분구를 데리고 군사를 돌아보러 나섰다.
얼마쯤 가던 일구가 구도에게 말을 걸었다.
《참 형님, 요새 치미를 만나군 하오?》
《치미?》
구도는 치미를 본지 열흘 잘되였다.
《언제 만나고 뭐하고 할새 있나? 헌데 그건 왜 갑자기 묻나?》
《거 치미를 좀 잘 다루어야 하겠소이다.》
《무슨 소리야?》
《우리 아이들이 그러는데 치미가 요새 바람났다오이다.》
《바람? 그게 어째서?》
너무도 천연스러운 구도의 물음에 일구는 놀랐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시오?》
일구가 그러건말건 구도는 꿈만해하였다.
《무우도 바람든다는데 사람이 바람났다고 뭐 큰일나나?》
《롱담이 아니오이다.》
《나도 같아.》
《아니 그럼, 형님은 치미가 딴 놈에게 꼬리를 쳐도 좋다는거요 뭐요?》
《계집이 좀 딴 놈에게 꼬리도 칠줄 알아야지. 그게 어쨌다는거야? 말뚝처럼 한번 박아놓으면 죽을 때까지 그러고있는거야 또 어떻게 봐줘? 치미가 꼬리를 친다? 그럴수도 있는거야.》
《거 얼빠진 소리는 좀 작작하시오이다. 이 일구는 모르긴 하지만 계집이란 사내와 달라서 여기저기 웃음팔며 다니는게 좋지 못한것으로 알고있소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치미가 형님의 간나이라는건 다 알고있는데 이제 치미가 딴 사내에게 반해 돌아다닌다는 말이 떠돌면 형님체면이 뭐가 되겠소? 그리고 우리 사람들은? 우리 간나이들은 다 바람잡이들이라고 하지 않겠소?》
《자넨 사서 걱정하는구만. 이봐, 설레바리가 다리 하나하나가 어떻게 노나 보려다가 어찌된줄 아나?》
《이거 정말 내 말을 귀등으로 듣소? 계집, 사내정이라는게 나눌수 없는거라는데 한번 깨지면 그 그릇은 쓰지 못한다는거요. 그래도 좋다는거요?》
《치미가 정말 그렇다면 할수 없지.》
《형님답지 않소이다. 망아지와 계집은 채찍으로 쳐서라도…》
《내버려둬! 내가 싫으면 딴 사내에게 가라지… 뭐 계집이 없어서? 흥, 별꼴 다 본다. 워낙 계집과 노는 재미라는게 다 반짝 한때야. 사내라는게 하는 일없이 계집이나 끼고 논다거나 그짓에 빠져 다른 일에 실뚱해있거나 징징 우는따위는 못 봐줄거야. 사내사는 재미야 신바람나게 말을 달려 천하를 밟아보는거지. 그렇지 않나?》
《나도 모르겠소이다.》 하고 일구는 실뚱하게 말했다.
《그래, 치미가 따라다닌다는 녀석은 어떤 놈인가?》
《흥, 그래도 속은 없지 않는게지?》
《재미있어서 그래.》
《나도 보지는 못했소. 듣자니 곱살하게 생긴 녀석이라고 하던데… 그녀석을 본 아이들이 그러는데 계집들은 물론이고 사내들도 홀딱 반할만 하다오이다.》
《그래?》
《형님, 그녀석을 홀쳐오는게 어떻겠소?》
《홀쳐와?》
《그렇소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홀치면 치미에게도 좋고 우리한테도…》
구도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코등을 찡그렸다.
《시시해!》
얼굴에 달라붙는 하루살이떼를 쫓듯 손을 휘젓고난 구도는 입을 다시며 딴소리했다.
《마리가 보고싶은걸… 아, 며칠 안됐는데도 한 천날 된것 같구만. 아무래도 한번 갔다와야겠어. 뭘 좀 꾸려야지?》
거무는 발길가는대로 걸었다. 어디 다녀와야겠기에 떠난 길이 아니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바람이나 쏘이려 나온것이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걸으면서 생각하느라면 답답하지도 않고 막혔던 고리도 제법 풀려나오군 하였다. 때로는 생각에 파묻혀 걷다가 아름드리나무앞에 멈춰서서 오래동안 우두커니 있을 때도 있었다.
거무는 마음이 악하지 못한 사람이다. 도노와 같은 악한 무리에게 롱락당한것을 두고 슬프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무자비하게 복수하고야말겠다는 모진 마음을 먹는 그런 사람은 못된다. 이런 사람은 늘 피해를 보기마련이다. 주먹에는 주먹으로 해대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그런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다만 격이 다른 상대에 대한 싸움의 필요성을 두고 회의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원래 성인이라면 부류가 다른 무리와의 싸움을 한바탕 웃음으로 넘겨버리며 갈길을 훨훨 가거나 상대가 겁에 질려 땅에 납작 엎드려 감히 일어날 엄두를 못 내게 짓눌러 놓겠지만 거무는 그러지 못한다. 그는 현실속에서 흔히 보는 천한 개돌파리는 아니로되 제딴에는 낫다고 자부하는 그런 사람이다.
거무는 그저 마리를 데려다 주고 조용히 고구려가 어떤 나라 인지 볼 결심이였다.
그는 고구려에서 무엇을 보는가?
권세욕, 재부욕, 색욕, 이 세가지를 뜻을 품은 사내대장부가 멀리해야 할 3대금욕이라고 보는 거무였다. 사람이, 더구나 사나이가 그 3대욕에 빠지면 그때그때 어떨지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사람이 비루해지고 가벼워지며 따라서 귀중한 인생을 헛살게 된다고 보는 거무로서는 고구려에 와서 사람들이 무엇인가 할 일이 있어 바쁘고 그것도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법 나라를 위해서 애쓰는것을 보며 느끼는바가 컸다. 다만 마리에게서만 그런 인격을 보게 되는것은 아니다. 일을 하는, 더구나 제 하나만 잘살자고 하지 않는 사람을 내세우는 주몽을 보며 거무는 정치가 잘된다고 감탄한다. 제것만 제것이라고 하지 않고 나눌줄 아는 사람들, 이것이면 잘되는것이지 뭘 더 말할게 있는가!
거무를 더욱 놀라게 한것은 고구려사신들의 진혼제였다. 그것은 단순히 죽은 사람들을 위한 제사가 아니였다. 산 사람들을 위한 제사이기도 하였다. 산 사람들의 슬픔이나 달래는 제사가 아니라 큰 힘을 주어 앞으로 나가게 하는 제사였다.
나라의 앞날은 사람들이 무엇을 중하게 여기며 무엇을 가벼이 여기는가 하는것을 보면 알수 있다. 잘돼가는 일에 자기가 이래라저래라 할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거무는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안다. 그는 수리산으로 돌아가 제자들이나 잘 키워 겨레의 화목을 위하는데 조그만치나마 기여하는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몽은 마리가 떠난 뒤에 거무더러 고구려에 남아 고구려와 비류사이의 일이 잘되도록 도와달라고 하였다. 거무는 그걸 고맙게 여겨 이때껏 생각해오던 뜻을 주몽에게 전하기도 하였다. 주몽은 그때마다 거무의 뜻을 높이 샀지만 지내볼수록 별로 큰것은 못되였다. 거무는 자기가 없어도 고구려의 일이 잘돼가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할일없이 밥이나 축내는것은 거무같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 떠나자!
깊이 생각하여 결심을 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문득 거무는 굳어졌다.
잘못 보았는가? 그럴수 없다. 그럴수 없어.
그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단 말인가!
거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버들이?
틀림없다. 거무는 잘못 보지 않았다. 사내차림을 한 버들이 말을 타고 거리로 오고있었다. 무슨 생각엔지 골똘히 파묻힌 버들은 어째선지 맥이 없었다. 비류궁성에 있어야 할 버들이 어떻게 여기서 돌아가고있는가. 그것도 파김치가 되여…
거무는 알수 없었다.
의아한 눈으로 버들을 살피던 거무는 저도 모르게 이마살을 찌프렸다. 거무는 버들의 뒤를 따르는 사람을 보았다. 한사람이 아니였다. 서너명의 사내들이 서로 눈짓을 하며 버들의 뒤를 따르고있었다. 그런데 버들은 그것을 모르고있었다.
웬 일인가? 거무에게 무술을 배운 버들답지 않다. 거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홱 돌아섰다. 어떻게 할것인가? 잠시 굳어진 눈을 내리깔고있던 거무는 발에 힘을 주어 몸을 날렸다. 그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거무는 큰길에서 골목길로 꺾어드는 곳에서 버들을 기다렸다. 거기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 사람들이 나타날지 알수 없다. 사람들의 눈에 띄우는것은 좋지 못하다. 버들이 누구인지 알려지면 좋을것이 없다.
버들도, 버들을 따르는 패들도 거무를 보지 못했다.
버들이 다가왔다. 거무는 버들의 뒤에서 보이지 않게 돌담벽에 기대였던 몸을 돌렸다. 버들이 탄 말이 갑자기 나타난 거무를 보고 놀랐다. 그바람에 버들이 눈을 들었다. 버들도 거무를 보았다. 거무는 손벽을 세워 버들이 소리내지 않게 하고 말고삐를 당겼다. 말이 큰길에서 보이지 않게 골목으로 들어섰다. 거무는 버들을 끌어내리여 사람 하나 겨우 나드는 사이길로 떠밀고 제가 말에 올랐다.
《어서 빠져라. 골목길이 강가로 이어졌다. 거기서 기다려라.》
거무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는 버들을 남겨놓고 말을 몰았다.
거무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느릿느릿 가고있었다. 그의 촉감은 날카롭게 뒤로 쏠려있었다.
버들을 따르던 패들이 큰길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벅적 고면 일이 좀 시끄러워진다. 다행히 별일없다. 그들은 아까처럼 거무의 뒤를 따라왔다. 거무는 한숨을 쉬였다. 그러니 저들은 자기들이 따르는 버들이 누군지 모르고있는것이 분명하다. 만약 안다면 저렇게 허술하게 놀지 않을것이다. 거무가 감쪽같이 버들을 따돌리기는 했지만 노는걸 봐서는 아무래도 서툴다. 저들은 누구인가? 얼핏 보건대 군사들 같은데 어떻게 돼서 버들을 따르게 됐을가? 분명 협보의 사람들은 아니다. 거무는 협보의 사람들을 알고있다. 그들은 눈이 밝은 사람들이다. 만약 협보의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뒤모습이라고 하더라도 버들과 다른 거무를 알아차렸을것이다. 그리고 인차 따라와 자기들이 쫓던 사람인지 아닌지 어떤 방법으로든 알아볼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눈먼 망아지들이다. 거무는 그들을 달고 한식경이나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나중에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떨어지지도 않고 졸졸 따라다니는것은 도깨비가시라 그럴듯한데 누군지도 모르고 그러니 오히려 거무쪽에서 의심이 들었다.
저들이 버들이 아니라 거무 자기를 따르는건 아닐가?
안되겠다. 이러다가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숨박곡질노릇 하다말겠다.
거무는 말을 세웠다. 그러자 망아지들도 섰다. 그들은 이쪽을 보며 뭐라고 수군거렸다. 거무는 말을 돌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망아지들이 거무를 보더니 눈이 둥그래졌다.
《나는 거무라는 사람이요. 당신들은 누구요?》
《우린 저…》
《바른대로 말하오?》
《우린 저, 구… 구도님의…》
《구도?》
《아니, 그런게 아니라 우린 일구의 사람들인데 치미…》
《치미? 치미는 또 뭐요?》
《치미는 구도님의…》
《그러니 일구의 사람들이라 그 말이지?》
《예, 그렇소이다.》
《그런데 왜 날 따라다니오? 일구가 시켰소?》
《아니오이다. 우린 그만 잘못 보고…》
《뭘 잘못 보았다는거요?》
《우린 사실 웬 곱살하게 생긴 녀석을 쫓았는데 그만 삭갈렸소이다.》
《녀석이라는건 또 뭐요? 왜 그를 쫓지?》
《별게 아니오이다. 그녀석이 어디 사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알아보느라고 그랬소이다.》
《뭣때문에?》
《예, 그건 저 치미가…》
《한심하군, 한심해. 피가 한동이씩이나 고인 사내들이 부끄럽지도 않소? 썩 사라지오.》
그들은 비실비실 사라졌다.
거무는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버들을 사내녀석으로 잘못 알고 쫓아다니는 패거리들도 웃기고 그걸 무슨 큰일이 난것으로 잘못 알고 잔뜩 도사렸던 자기도 우스웠다.
거무는 버들을 찾아 강가로 갔다.
버들에게서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듣는 거무는 어지간히 놀랐다. 비류궁성의 일이며 도노에 대한 말은 어느 정도 예견했던바이라 그렇겠거니 하지만 버들이 다만 마리를 만나보려고 고구려에 왔다는 소리는 거무에게 충격이였다. 버들을 키워오면서 거무가 몰랐던 버들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사나이를 만나보려고 왔다. 어찌 보면 무서운걸 모르고 덤비는 철부지같고 어찌 보면 너무나 당돌하다.
《그런데…》 하며 버들이 울상지었다. 눈에 핑- 하니 눈물이 고이였다.
《잘못되였다고 하지 않나이까?!》
거무는 버들을 보았다.
《누가? …》
《마리…》
버들은 눈물을 삼키며 겨우 말했다.
《마리가?》
버들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누가 그러더냐?》
버들은 며칠전에 웬 말수레를 만난 이야기를 하였다.
거무는 숨을 들이키며 얼굴을 들었다. 버들은 재사가 한 말을 그대로 믿고있다. 젊은이들의 사랑이란 얼마나 연약한것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오는걸 보면 그건 또 놀라운 일인데 스쳐지날수 있는 말에도 곧잘 넘어진다. 사랑이란 이렇듯 여느 사람으로서는 리해할수 없는 일인가? 강한것 같으면서도 약하고 약한것 같으면서도 강하다. 거무는 마리가 잘못되였다고 눈물흘리는 버들보다 마리가 더 안겨왔다. 마리는 버들을 몰라보지 않았을것이다. 재사는 버들을 모르겠지만 마리는 아무리 수레를 타고있어도 버들을 알아보았을것이다.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가. …
《마리는 살아있다.》
버들이 놀랐다.
《그게 정말이나이까? 어디 있나이까?》
《네가 강가에서 만났다던 그 수레에 바로 마리가 있었다.》
버들은 뗑해졌다.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그럴수 없나이다.》
《그날 아침 나도 마리를 바래주었다.》
버들의 입술이 파르르 떨었다.
《그러면서도, 그러면서도 죽었다고… 날 만나지 않았나이까?》
《그건 아마 재사가 그랬을것이다.》
《누가 그랬든 마찬가지나이다. 마찬가지…》
버들은 얼굴을 가리며 몸부림쳤다.
《버들아, 마리는 아마 널 생각해서 그랬을거다.》
《아니오이다, 아니오이다.》
거무는 웃으며 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허허, 됐다. 죽은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있으면 좋은거지. 마리를 만나보아라.》
버들은 눈을 내리깔고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낯에 고집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한참 지나 버들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두겠나이다.》
《그건 무슨 소리냐? 여기까지 어렵게 왔다가 그냥 간단 말이냐? 마리가 안다면 섭섭해할게다.》
《소녀가 가벼웠나이다. 사람을 잘못 보았나이다. 마리는, 마리는 저를 생각하지 않나이다.》
버들의 얼굴에는 때아닌 서리가 불리였다.
《그래서는 안된다. 버들! 마리는 여기 고구려에 와서도 어느 하루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죽음속에서 살아오고도 그는 억울하게 처벌까지 받았다. 그러면서도 아무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참 훌륭한 젊은이다. 나도 마리가 너를 알아보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비류의 공주가 고구려에서 모욕을 받을가봐 꺼리였을게다. 버들에 대해서 알고있는 사람이 고구려에 누가 있느냐? 버들을 아는 사람은 나와 마리인데 나는 그렇다 치고 마리는 처벌받은 처지에서 너를 보호해줄수 없다고 보았겠지.》
버들은 거무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해 버들을 키워온 거무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뜻밖이였다. 이것을 고집이라 한다면 송양의 두 딸은 닮은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