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마리가 타고 갈 수레는 여느 말수레와 달랐다.
말 두필이 끌게 돼있고 먼길에도 편안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안에 타고있는 사람을 들여다볼수 없게 되였다. 이 말수레는 주몽이 보내온것이였다.
수레는 마리의 집앞에 멎어있었다.
동틀무렵.
마리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서 나와 수레에 올랐다.
거무가 마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마리, 정작 이렇게 헤여지자니 섭섭하구만. 다문 며칠이라도 있다가 가든지 아니면 내가 자네를 무골에게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가다가 탈이 나도 그래…》
《참, 거무님은 벌써 몇번이나 말씀하시오이까?》
마리가 웃으며 말했다.
《흠, 그랬던가? 하여튼…》
《거무님의 심정은 잘 아오이다. 제 심정도 거무님과 다를바 없소이다. 하지만 임금님의 령을 따라야 하지 않소이까?》
《그야 그렇지. 내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네, 허…》
《어서 들어가시오이다.》
마리는 거무의 손을 떠밀어주었다.
말수레는 떠났다.
거무는 못박힌듯 서있었다.
어제 밤 거무는 마리와 함께 샐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리가 무골에게 떠나게 된것은 놀라운것이 아니였지만 갑자기 떠나라니 거무로서는 얼떠름해졌다. 아무리 제가평의회결정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쫓아버리듯 할수 있는가. 안 그런다 하면서도 또 주몽에게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한 얼굴이였다. 기다리고있었는듯 가벼이 한숨을 쉬였다.
마리가 떠나면 거무로서는 이 고구려에 알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마리가 떠나는것이 서운하였는지도 모른다. 그사이에 거무는 마리에게 정이 들었다. 이제 헤여지면 또 언제 만나게 될지 어떻게 알랴! 거무는 마음이 쓸쓸해났다. 마음같아서는 얼마만큼이라도 따라가 마리를 바래주고싶었다. 그러나 마리는 한사코 말렸다. 뭘 장한 일이라고 그러겠는가, 차라리 남들이 깨여나지 않은 새벽에 조용히 떠나겠다, 어차피 떠나야 할 길이라면 질질 끌며 헤여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보았댔자 마음들이나 더 괴로울것이라고 마리는 말했다.
거무는 무겁게 한숨을 쉬고 맥이 빠져 돌아섰다.
문득 거무는 굳어졌다.
그는 자기가 뭔가 잘못 보지 않았는가 하여 방금 마리가 떠나간쪽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어렴풋이 밝아오는 속에 말을 탄 사람들이 보이였다.
그들은 굳어진듯 마리가 가는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거무는 눈을 끔벅이고 다시 보았다.
거무는 놀랐다.
말을 탄 사람들은 주몽과 부분노였다.
거무는 저도 모르게 주몽쪽으로 다가갔다.
주몽은 여전히 굳어진듯 말우에 앉아있었다.
《마리가 몹시 서운했겠소이다.》 하고 거무가 말을 달았다.
《그렇게 생각하시오이까?》
《예.》
주몽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마리는 임금을 친부모보다 더 따르는 사람이였소이다. 그는 보기 드문 신하이고 사나이다운 사나이오이다.》
거무의 말에 주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어느덧 노을빛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주몽은 거무에게 돌아섰다.
《거무님께서 그동안 마리를 잘 돌봐주어서 고맙소이다.》
《아니하실 말씀이오이다. 오히려 마리에게서 이 늙은이가 더 많은것을 배웠소이다.》
《허허, 무슨 말씀을…》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사귀는데 사람이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오이다.》
《좋은 말씀이시오이다.》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마리가 없는 고구려는 이 늙은이에게 텅 빈것 같소이다. 저는 떠날가 하오이다.》
주몽은 빙그레 웃었다.
《거무님께서 노여우신 일이 있는가 보오이다. 제가 미처 거무님을 잘 모시지 못하였소이다.》
《아, 그런건 없었소이다. 오히려 제가 주책없이 논게 많았소이다.》
《거무님, 그러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있는것이 어떻소이까?》
《말씀은 고마우나 늙은게 여기서 뭘 더 하겠소이까?》
《언제부터 말씀드리자고 했지만 틈이 없어 미루어왔소이다. 거무님은 이전에 비류의 대부로 있었고 또 우리 겨레가 어떻게 하면 옛 박달임금의 뜻을 받들어 하나로 뭉쳐 잘살겠는가 깊이 생각해오신분이시오이다. 지금 고구려와 비류사이에 뜻밖에 좋지 못한 일이 터졌지만 그건 잠간이고 반드시 거무님이 바라는 그런 날이 올것이오이다. 거무님께서는 이런 마당에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지 가르쳐주실수 있다고 보오이다.》
《저는 성쌓고 남은 돌이오이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소이다.》
《고맙소이다. 하지만 고구려에 와서 보고 들은것이 많아질수록 저는 그저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 고구려의 일이 부럽기만 할뿐이오이다.》
《허, 거무님. 이 주몽은 칭찬하는걸 좋아하지 않소이다.》
《이건 아첨이 아니오이다.》
《아첨이라… 허, 아첨이 아니라도 그렇소이다. 할 일 많은 저에게는 좋은 칭찬받는것보다 채찍맞는것이 더 좋소이다. 그러니 도와주시는 뜻에서 말씀을 해주시오이다.》
《임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소이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소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소이다. 거무님께서는 꼭 우리 고구려가 앞으로 비류와 어떻게 사귀여야 하겠는지 뜻이 있으리라고 보오이다. 어느때라도 기다리겠소이다. 가르쳐주시오이다.》
거무는 코허리가 시큰해왔다.
《그러하시오면 좋소이다. 제 힘껏 해보겠소이다.》
《꼭 써야 될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시오이다.》
《아니오이다. 지금 돌봐주시는것만도 지나치오이다.》
마리를 태운 수레는 인적드문 산기슭의 길로 가고있었다. 앞뒤에 각각 말을 탄 두 군사들이 수레를 지키며 갔다. 군사들의 앞에는 재사가 길잡이로 나섰다.
새벽기운이 어린 한적한 길에 나서자 재사는 마리에게 다가갔다.
《어떤가, 마리. 수레가 들추지 않나?》
재사가 물으며 수레의 가림천을 열어보았다.
《괜찮네.》 하고 마리는 재사에게 빙긋이 웃어보였다.
《그렇다면 좋고… 하여튼 불편한게 있으면 말해주게.》
《재사, 자넨 괜히 따라오누만. 내가 뭐 어린애인가? 무골이 있는 곳을 내가 모를가봐?》
《이건 임금님의 령이네. 마리를 아무일없이 무골이 있는 곳까지 모시라는건…》
《핑게좋다.》
《핑게라니?》
재사는 짐짓 놀라는 시늉을 내며 웃었다.
《마리, 날 원망하겠지?》
《그건 무슨 말인가?》
재사는 후- 하고 숨을 내쉬였다.
《용서하게, 마리. 난 자네가 제가평의회에서 어떤 처벌을 받는지도 모르고…》
《뭘 그러나? 나도 자네 이야기를 알고있네. 그 아리라는 처녀를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프네. 다 내 잘못이네. 난 오히려 자네와 아리에게 잘못을 빌어야 할 죄인이네.》
《마리! 그만하게. 그게 어찌 자네의 죄로 되나? 비류놈들 때문이지.》
《나야 어쨌든 사신을 거느리고 가지 않았나? 모든건 다 내가 잘못했기때문이네.》
《잘못을 남의탓으로만 돌리는것도 나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잘못이 다 자기에게만 있다고 하는것도 좋은게 못되네. 됐네, 마리. 그런 말은 그만두세. 협보가 있었으면 따라나설걸 소밀을 모셔오려고 가서 못 왔구만.》
《바쁜데 뭘 나때문에 페를 끼치겠나? 자네에게도 안됐네.》
《또 그 소리… 아까 떠날 때 보니 임금께서 지켜보시더군. 임금께서 몹시 걱정하시네. 마리,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자네를 떠나게 한건 임금께서 자네를 생각해서이네. 임금께서는 자네를 여기 머물러있게 하면 여러가지로 봐서 더 큰 마음고생시킬것 같다고 하셨다네. 그럴바엔 차라리 무골이 있는 곳에 보내서 마음도 상처도 치료하게 하는게 낫다고 하셨다네. 그러니 속편하게 가지고 어서 몸을 추켜세울 생각이나 하게. 그래야 임금님의 뜻을 받들어 일을 하지? 내 말 알겠나?》
《알겠네, 재사.》
마리는 재사가 절노부대가를 비롯한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마리를 처벌한것이 잘못되였다는걸 인정하게 하느라고 몹시 애썼다는 소리를 부분노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제가평의회에서 한번 결정된것을 다시 뒤집는것도 어려운 일이였다.
재사는 그것을 자기의 잘못으로 여기며 주몽에게 기어이 마리를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주몽은 할수없이 마리를 데려다주고는 인차 돌아선다는 조건으로 마리와 함께 가는걸 승인하였다.
어쨌든 재사로서는 마리와 함께 가는것이 기분좋았다.
《가만!》
갑자기 재사가 손을 들어 말수레를 멈추게 하고 앞을 보았다.
말을 탄 웬 사람이 앞을 막아섰다.
머리에 검은 수건을 맨 젊은이였다.
재사는 서둘러 수레의 가림천을 내리고 박차를 차 앞으로 달려갔다.
《뭔가?》 하고 재사가 굳어진 낯빛으로 물었다.
젊은이가 재사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순간 재사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이건 또 뭐야? 무슨 놈의 사내꼬투리가 저렇게 생겼어?
도토리를 모로 세운듯 한 젊은이의 고운 눈이 재사를 당황하게 하였다.
어느새 재사의 마음은 누그러지고있었다.
앞을 막아선 젊은이는 보건대 악의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고추대가! 이 젊은이가 글쎄 마리대주부님을 안다면서 만나려고…》
앞머리에 섰던 군사가 젊은이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 재사의 가슴을 찔렀다. 재사는 다시 머리카락을 곤두세웠다.
《뭐? 무슨 소리 하는거야?》
재사는 버럭 소리질렀다. 여느때라면 몰라라 지금엔 누구도 맘을 놓을수 없다. 재사는 얼마전에 있었다는 자객사건이 떠올랐다. 겉은 곱살해도 속에 칼을 품고있는지 어찌 알랴! 낯선 사람앞에서 군사가 마리소리를 망탕 하는것이 싫었다. 재사는 젊은이의 의아한 눈길을 받으며 군사를 흘겨보았다.
재사는 굳어진 얼굴로 젊은이에게 돌아섰다.
《마리를 안다?》
재사의 물음에 젊은이는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재사는 여전히 시펄뚱한 얼굴을 풀지 않았다.
《마리를 안단 말이지. 그래 어느 부 사람이요?》
재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절노부…》
《절노부?》
재사의 이마살이 찌프러졌다.
절노부사람이라면서 어째서 관노부쪽에서 올가?
뭔가 수상하다.
재사는 마뜩지 않은 눈길로 젊은이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마리대주부를 안단 말이지… 그런데 무슨 일이요? 왜 길가는 사람의 앞을 막아서면서 그러는거요?》
재사는 큰일난듯 공연히 제편에서 뻣뻣하게 소리를 높였다. 말해놓고도 저절로 쓰거워 입을 다시였다.
검은 수건을 이마에 동인 젊은이는 왜 이러니 하는 의아한 눈길을 재사에게 던졌다.
그 눈길에 재사는 입을 삐죽이 내밀며 고개를 돌렸다.
제길, 무슨 사내의 눈길이 저렇게 생겼어? 재사는 젊은이의 고운 눈을 털어버리지 못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만나보려고 하오이다.》
젊은이가 약간 실망한 기색을 지으며 말했다.
《누굴 만나겠다는거요?》
재사가 뻔히 알면서 물었다.
《마리대주부…》
《무슨 일로?》
《그건 말할수 없소이다.》
재사는 갑자기 헛기침을 깇었다.
뭘 흐지부지하는거야, 재사! 시끄러워. 당장 물러서! 소리치고 돌아서라, 재사!
하지만 계집애처럼 곱살한 젊은이의 얼굴을 보고서는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랬다가 저 고운 눈에 이슬이라도 고이는 날에는… 제기랄! 젊은이의 그 눈을 똑바로 보기가 두려웠다.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재사는 알수 없었다. 재사는 속으로 한숨을 쉬였다.
《그래 꼭 마리대주부를 만나야겠다는거요?》
《그렇소이다.》
《그럼 좋소. 좀 기다리시오. 어디 봅시다.》
재사는 뒤를 힐끔힐끔 보며 말수레쪽으로 다가갔다.
재사는 수레곁으로 다가가서도 멀찍이 떨어져있는 젊은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수레의 가림천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리! 내 말 듣게!》
재사는 혀소리로 수군거렸다.
《자네 절노부에 아는 젊은이가 있나?》
수레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마리, 내 말 듣나?》
《듣네.》
《있나 없나?》
《모르네. 아는 사람이… 더우기 젊은이는 생각나지 않네.》
《그래? 내 짐작이 틀림없군. 수상한 놈이야…》 하고 중얼 거리며 재사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매복이 아닐가?
재사의 머리속에는 떠나기 전에 거무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괜한 걱정인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에 주의하도록 하시오. 마리가 걱정되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비류의 자객들이 아닐가?
재사는 속이 덜컥했다. 저 아련해보이는 사내는 수레를 멈춰세우고 흐지부지하려고 한다. 마리를 안다 어쩐다 하는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산속 어느 덤불속에서 지금 수레를 겨누고 화살을 당기고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재사의 눈에는 그 화살의 촉이 보이는듯 했다.
《재사!》
수레안에서 마리가 불렀다.
《왜 그러나?》
《그에게 말하게.》
《그에게라니? 누구 말인가?》
《그 절노부 젊은이에게…》
《뭐라고…》
《마리는 죽었다고.》
《뭐라고? 자네 정신나갔나? 말이 씨가 되네. 롱담이라도 그런 말은 말게.》
《재사, 내 말대로 하게. 마리는 죽었다고, 그러니 더 찾을 생각말고 돌아가라고 딱 잘라말하게. 알겠나? 그리고 뭐라고
더하면 아예 모른다고 하게!》
수레안에서는 마리의 괴로운 숨소리가 새여나왔다.
재사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마리의 말이 그럴듯해보였다.
그는 다시 말을 몰아 젊은이에게 다가갔다.
《이것 보게 친구, 마리를 찾는다지?》
재사는 저도 모르게 턱에 힘을 주었다.
《그렇소이다.》
《음, 그런데 말이요.》
《만날수 있소이까? 어떻게 힘써주시오이다.》
고운 눈의 젊은이는 기쁜 빛을 지었다.
재사는 없는 가래를 톺았다.
《으흠, 마리는 죽었소!》 하고 으름장놓은 재사는 물러가라고 손짓하며 무뚝뚝하게 내뱉았다.
《그러니 더 찾을 생각말고 갈데로 가보시오. 안됐소만…》
젊은이가 어리둥절했다.
《뭐라고 하셨소이까?》
《흥, 귀가 먹었나. 제길…》
《안됐지만 다시 말씀해주시오이다.》
《이거야, 제길… 마리는 죽었다질 않소? 그러니 더 찾네 어쩌네 하지 말고 갈데나 가보란 말이요. 우린 바쁜 사람들
이요.》
재사는 고운 눈과 마주치기를 피하며 앞선 군사들에게 소리 쳤다.
《아, 뭘 말뚝처럼 우두커니 서있는거야? 빨리 떠나지 못 하고…》
재사는 젊은이가 뭐라 할새없이 그의 앞으로 말을 몰았다.
그 서슬에 젊은이의 말이 놀라 앞발을 쳐들며 소리질렀다.
재사는 그에 아랑곳않고 젊은이를 등지고 버티고 서서 마리가 탄 수레가 지나가게 하였다.
수레는 무슨 일인지 몰라 벙벙해진 젊은이의 앞을 지나갔다.
재사는 잔등이 뻣뻣해오는것을 참으며 수레가 저만치 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말을 몰았다.
수레를 따라선 재사는 길주위를 날카롭게 살폈다. 금시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올것 같아 진땀이 돋았다.
수레는 산굽이를 돌아섰다. 그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제야 재사는 후- 하고 숨을 내쉬였다.
재사는 이마를 팔소매로 훔치며 수레곁으로 다가갔다. 문득 아까 마리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자네 그녀석을 아나?》
마리는 대답이 없었다.
재사는 수레의 가림천을 들었다.
《어딘가 꺼림직한 녀석이야. 그렇지 않나?》
마리는 대답이 없었다.
《왜 그러나, 마리. 얼굴색이 좋지 않구만. 어디 말짼가?》
마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심장은 걷잡을수 없이 뛰였다.
마리는 젊은이가 누군지 벌써 알았다. 보지는 못했어도 그 목소리와 숨소리를 듣고 그가 누구인지 마리는 알았다.
버들이다. 버들!
땅속에서 끓어번지던 돌물이 터져나오듯 마리의 심장은 웨치고있었다.
수레가 지나갈 때 마리는 가림천의 틈으로 버들을 보았다. 그를 부르고싶었다. 몸을 일으켜 버들에게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치며 수레에서 뛰여내리고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참아야 한다. 마리는 숨을 가쁘게 내쉬였다. 마리는 입술을 깨물며 수레의 손잡이를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만나서는 안된다.
마리는 눈을 감았다.
버들은 오로지 마리를 만나러 고구려에 왔을것이다. 그는 고구려와 비류사이가 얼마나 험악해졌는지 모른다. 사신들을 잃은 고구려사람들이 비류에 대해서 어떻게 이를 가는지, 더구나 마리를 죽이려던 자객이 바로 소나공주가 보낸 사람들이라는 소문이 퍼져 가뜩이나 날카로워진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고있다는걸 모른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버들은 왔을것이다. 그는 바로 그런 성격의 처녀다. 이제 마리가 그를 만난다면 버들이 누구인지 사람들이 알게 된다.
비류의 공주!
버들이 어떤 처녀인지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을것이다. 원쑤의 나라, 고구려사신들을 죽인 나라의 공주로만 알것이다. 마리를 보아서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음들은 그렇지 않을것이며 눈길이 곱지 않을것이다. 마리는 버들을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버들이 고구려사람들에게 털끝만 한 미움이라도 받는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마리가 처벌을 받지 않았다면 또 모른다.
아니다. 버들을 만나서는 안된다. 마리가 버들을 만나서 그에게 기쁨을 줄 아무것도 없다.
마리는 가슴이 아팠다. 눈을 뻔히 뜨고도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지 못하는 이 심정, 오로지 마리를 만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고구려에 온 버들에게 모질게도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 심정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사랑만을 아는 버들의 가슴에 칼질을 해야 하다니…
마리는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마리! 왜 그러나, 응?》
재사가 놀라 마리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