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마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구려와 비류의 두 임금이 만나게 해야 한다는 주몽의 어명을 받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거기에는 기어코 두 임금이 만나 겨레의 통일을 이루려는 주몽의 굳은 의지가 담겨져있었다.
그것은 마리에게 넉넉한 배짱을 주었다. 마리는 이틀동안 도노가 어떻게 나오겠는지, 그에 따라 자기가 어떻게 대하겠는지 궁리하느라고 머리를 썩였다.
만나자! 이것이 주몽의 뜻이자 마리의 뜻이며 그 뜻을 이룩하는 길로 가는 첫걸음이였다.
마리는 웃는 얼굴로 도노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서로 좋은 열매를 가지고 돌아가리라고 믿소이다.》 하고 마리는 먼저 말했다.
도노는 메마른 낯빛을 짓고있었다.
《글쎄요, 그야 그렇지만 두고봐야 알지요.》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고구려는 두 임금이 만나자는것이오이다.》
《우리 비류도 반대없소이다.》
《그렇다면 좋소이다. 그래 언제 어디서 만났으면 하오이까? 귀측에서 먼저 말씀하시오이다.》
도노는 속으로 코웃음쳤다. 입으로는 만나자고 하지만 도노의 속궁냥은 딴판이였다. 버들이 끼여들어 할수없이 또다시 마리와 만나게는 되였지만 그리고 송양이 소박맞은 녀편네 그래도 사내 미련가지듯 주몽과 만났으면 하지만 도노는 주몽과 송양이 만나게 하고싶지 않았다. 아니, 만나게 해서는 안된다. 도노는 마리가 어떻게 하나 두 임금이 만나게 하려고 애쓰는것을 보며 앞이 환하게 내다보였다. 마리가 안달아하면 할수록 그것은 마리에게 약점이다. 도노는 속이 그대로 드러나는 마리를 보며 이런 일에는 적당치 않다고 혀를 찼다. 이런 일이란 될수록 양대가리 걸어놓고 개고기 파는 식으로 그리고 말은 구렁이 담넘어가듯 해야 하는 법인데 마리는 고지식하고 너무 덤빈다. 그러니 끝은 불보듯 뻔하다. 실컷 마리를 가지고놀다가 나중에 가서 《안돼.》 하면 멋있겠다. 닭 쫓던 개 울담 쳐다보는 꼴 보기 좋겠다. 전번에는 천만뜻밖에 마리가 고구려측의 대표로 나오는 바람에 얼떨떨해졌지만 이번에는 어림없다. 봉창을 할테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어서 말씀하시오이다.》
마리가 재촉했다.
도노는 헛기침을 톺았다.
《에헴, 나는 두 나라 임금님들이 만나는 때와 곳을 상론하기에 앞서 풀어야 할게 있다고 보오이다. 에헴…》
마리의 얼굴에 그늘이 스쳐지났다.
《무엇이오이까?》
《사신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이오이다.》
《그건 임금님들이 만나 풀어야 할거라고 보오이다.》
《허어, 그렇게 보시오이까?》
《그렇소이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소이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했는지 까밝히지 않고 임금님들이 만나서 뭘 하겠소이까? 무슨 여가가 많아 아웅다웅 다투다말자고 만나겠소이까? 안될 말씀이지요. 이런 일은 임금님들이 만나기에 앞서 우리가 응당 아퀴를 지어야 하는것이오이다.》
도노는 풋바둑군 마리와 마주앉아 몇패 앞질러 두수 보기 바둑씨를 놓았다. 그는 흐뭇해하였다.
마리는 도노를 바라보며 눈섭을 슴벅이였다.
이것은 트집이다. 그럴듯해보이는 소리지만 앙탈부리는것이다.
《그래 귀측에서는 어떻게 아퀴를 지어야 한다고 보시오이까?》
《글쎄요.》
《어서 말씀하시오이다. 보아하니 고견이 있는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임금님들이 만날수 있다고 보시오이까?》
《그야 쌍방이 서로 다르겠지오만 우리로서는 고구려사신들이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것이오이다.》
이것은 잘 따져본 셈속이였다. 도노는 골라골라 마리의 아픈데를 찔렀다. 마리는 사신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이다. 그런 마리에게 도노의 말은 생트집이 아닐수 없다. 마리는 절대로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받아들일수 없다. 도노는 바로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도저히 넘을수 없는 이 고개를 넘지 못하는 한 임금들의 만나는 일은 물건너가고만다. 비류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고구려의 잘못으로 해서 말이다. 고구려가 제풀에 물러앉지 않고 견뎌?
도노는 참새를 구워놓고 그 고소한 냄새를 맡고있었다.
마리의 속은 한창 달아오른 기름가마처럼 끓었다. 주먹이 우들우들 떨렸다. 임금의 회담이고 뭐고 깨고소한 웃음을 짓고있는 낯짝을 한대 쳐 박살내고싶었다.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야살을 깔수 있는가? 이 사람의 속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걸가? 그속에는 피가 아니라 재와 얼음이 들어찼단 말인가? 어쩌면 이렇게도 사람의 아픈데를 빡빡 긁어놓고 찢어놓으며 여우웃음을 지을수 있는가? 죄많은 사람! 협보나 절노부대가의 말이 옳다. 이런 사람과 마주앉아 무슨 큰뜻을 론할수 있겠는가!
마리는 참을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노도 우뜰 놀랐다.
마리는 도노를 내려다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좀 생각해보겠소이다.》 하고 마리는 팔짱을 끼고 거닐었다.
한동안 거닐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것은 단순히 송양과 만나기 위한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고구려를 위한것이며 겨레를 위한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살을 에이는 아픔이라도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마리는 들숨을 긋고 자리로 돌아왔다.
《안됐소이다. 다시 의논합시다.》
마리의 말에 도노의 메밀눈이 대추알만큼 커졌다. 그는 엉거주춤 마리를 바라보았다.
《우리 고구려사신들이 잘못했다고 하면 귀측에서는 회담을 하겠소이까?》 하고 마리가 물었다.
도노는 당황하고 질겁하였다.
그는 한참 마리를 머룩머룩 보다가 말을 흘렸다.
《그건, 저… 귀측 임금의 뜻이여야 하오이다.》
마리는 대뜸 대답했다.
《나는 우리 임금님의 전권을 받고 이 자리에 나왔소이다.》
도노는 궁지에 몰리는감을 느꼈다. 발버둥쳐 벗어나야 한다.
《예… 물론 그렇겠지요.》
《어서 대답하시오이다. 그렇게 하면 회담을 할수 있겠소이까?》
마리가 다그어댔다.
《그렇다면야…》
《좋소이다. 그럼 그건 매듭을 지은것으로 하고 회담의 때와 곳을 정하시오이다.》
도노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제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마리는 도노의 생트집을 받아들이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바보인가? 아니면 송양과 만나는것에 도노가 모르는 다른것이 있다는건가? 마리는 무엇때문에 기어코 주몽과 송양을 만나게 하려고 하는가? 송양도 주몽을 만나고싶어하였다. 그러고보면 도노가 송양의 어딘가를 모르고있다는 소리로 되지 않는가?
도노는 더럭 겁이 났다. 이때껏 도노는 자기가 세상을 주무른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것 같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어서 말씀하시오이다.》 하는 마리의 목소리에 도노는 푸들쩍 놀랐다.
《뭘 말이오이까?》
도노가 물었다.
마리는 빙그레 웃었다.
《회담의 때와 곳말이오이다.》
《에… 그것 말이오이까?》
도노는 다시 헛기침하였다.
《에… 그건 귀측에서 정하시오이다.》 하고 도노는 말했다.
《그럼, 좋소이다. 날자는 삼일안으로 하되 우리 고구려에서 하는것이 어떻소이까?》 하고 마리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삼일안으로… 고구려에서 말이오이까?》
《그렇소이다.》
《안됐소이다만 나에게 좀 짬을 주시오이다.》
도노는 한동안 눈을 깜박거리며 손가락을 꼽았다 폈다 하다가 입을 열었다.
《삼일안으로는 바쁠것 같소이다. 임금님들의 회담이라 두루 마련할것이 많고 게다가 제가들과 의논도 해야겠고… 에, 그리고 회담을 고구려에서 한다는것은 아무래도… 회담은 우리 비류에서 하는것이 좋겠소이다.》
《그럼, 그렇게 하시오이다. 날자는 좀더 따져보고 정하고 회담은 비류에서 한다, 그러면 되겠소이까?》
《에… 그러문요.》 하면서도 도노는 무엇인가 께름직하다.
마리가 너무 물러서는것이 의심스럽다. 큼직한 리득이 없이 어찌 고구려가 도노의 낚시를 꿀꺽꿀꺽 삼킨단 말인가?
《큰 대목의 매듭을 지었으니 기쁘오이다.》
마리의 얼굴에 회담을 성사시킨데 대한 흐뭇한 웃음이 피여 났다. 그 밝은 웃음을 보자 도노의 속이 싸늘해졌다.
《가만…》 하고 도노가 서둘러 손을 들며 소리쳤다.
《뭣이오이까?》
《다른 한가지가 또 있소이다.》
《말씀하시오이다.》
《회담에 부여의 대표를 참가시키자는것이오이다.》
《그건 무슨 말씀이오이까?》 하고 마리가 놀라 물었다.
도노의 얼굴에 다시 여유있는 웃음이 피였다.
《비류와 고구려임금들의 회담에 부여의 대표가 꼭 참가해야 한다고 보오이다. 그렇게 못한다면 우리 비류는 두 나라 임금들의 회담이 쓸데없다고 보오이다.》
《이번 회담은 두 나라사이에 엉킨 매듭을 풀자는건데 무엇때문에 삼자인 부여를 끌어들이겠소이까?》
《바로 부여가 삼자이기때문이오이다.》
《나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이다.》
《어째서요? 뻔한건데요. 비류와 고구려가 회담하자는것이 뭐 서로 좋아 손벽이나 마주치자고 그러는건 아니고 얽힌게 있어 풀자는건데 얽힌게 있으니 서로 제가 옳다고 우기게 될게고… 설사 회담이 성사되여 매듭을 풀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앞으로 쌍방이 성실하게 실행해나가는가 어쩌는가 하는걸 봐주기 위해
서도 제삼자가 꼭 있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회담이 두 나라
임금들이 얼굴이나 보자고 하는게 아니니 반드시 무슨 앞으로 맺는 약속이 있지 않겠소이까? 제나름의 리익이 있어 맺은 약속을 어길 때는 누가 심판하겠소이까? 그러니 공정한 심판자이자 증인이 될 제삼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런 대상으로는 비류나 고구려의 어느 한쪽에 치우칠수 있는 나라가 되여서도 안되고 두 나라를 능히 꾸짖을수 있는 믿음직한 나라가 합당할게고, 그런 나라로는 우리 두 나라주변에 부여밖에 없기에 그러는것이오이다.》
빨래줄처럼 긴 도노의 설명이였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다고 할수도 없다. 한켠으로는 옳은 소리도 있다. 그런데 그 뼈가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귀측의 주장은 고구려와 비류 두 나라가 서로 믿지 못한다는데로부터 나온것이오이다. 그렇지 않소이까?》
《딴은 그렇소이다. 서로 믿었다면 어찌하여 사신사건… 음, 두 나라사이에 피를 뿌리는 좋지 못한 일이 벌어졌겠소이까?》
《우리 고구려는 그렇게 보지 않소이다. 고구려나 비류는 다같이 저 박달임금때부터 하나의 겨레였소이다. 한피줄, 한형제, 한겨레가 믿지 못할 아무런 리유도 없소이다. 그런 일이 있다면 무슨 오해가 있거나 혹은 한피줄, 한형제, 한겨레가 화목하게 살아가는걸 싫어하는 악한 무리가 있기때문이오이다. 낟알에만 눈이 먼 참새같은 그런 무리말이오이다. 우리 고구려나 비류에 그런 약은 무리들이 영 없다고 장담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그런 무리가 어떻게 큰 하늘을 날수 있겠소이까? 그렇지 않소이까?》
《그렇소이다.》 하고 도노는 서둘러 대답했다.
《하다면 부여를 끌어들이는 일은 거두시는것이 어떻소이까?》
도노는 버쩍 정신을 차렸다.
《고구려의 뜻대로라면 부여도 우리와 한겨레가 아니오이까?》
《옳소이다. 저나 우리 임금님도 부여에서 왔소이다.》
《그러니 부여를 우리 두 나라 회담의 심판자, 중재자로 불러들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할수 있지 않소이까? 자식들이 싸우다가 부모에게 의탁하여 시비를 갈라달라고 하는건 인륜에 있는 일이 아니오이까?》
《더 좋기는 형제가 싸우지 않는것이고 싸웠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고 저희들끼리 삭이는것이지요. 그게 효도가 아니겠소이까?》
도노는 아래입술을 감빨았다.
《어쨌든 나는 비류, 고구려임금들의 회담이 이루어지려면 부여가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오이다.》
《그건 귀측 임금이신 송양의 주장인가요?》
《난 우리 임금의 전권을 받은 사람이요.》
《우리 고구려는 두 나라사이에 얽힌 일을 풀고 서로 한겨레로 화목하게 살아갈수 있다면 설사 뼈를 에이고 살이 찢기는 아픔이라도 물러설수 있소이다. 하지만 우리들끼리 일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것은 응할수 없소이다.》
《그렇다면 회담은 안되는것으로 되지요.》 하고 도노가 배짱을 부렸다.
마리는 더 참을수 없었다.
《똑똑히 들으시오이다. 나는 비류의 대부인 도노에 대해서 달리 보게 되오이다.》
《이건 협박이오이까, 마리대주부?》
도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오이다.》
《나라일에 나 하나의 분풀이가 끼여들어서야 되겠소이까?》
《하하… 대부는 고작 그렇게 보시오이까?》
마리의 눈에 번개불이 일었다.
《나는 나 하나의 분풀이로 그러는것이 아니라 겨레의 앞날이 가슴아파 그러는것이오이다.》
《나도 우리 비류, 우리 겨레를 위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이오이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소이다.》
《부여를 불러들이는가 마는가는 우리 임금님께 다시 아뢰 겠소이다.》
《좋소이다. 그리고 날자도…》
《예, 그러지요.》
《우리 고구려는 기다리겠소이다. 그러되 될수록 빨리 회답을 주길 바라오이다.》
도노는 어서 이 자리를 피하고싶었다. 세상에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더니 마리가 그렇고 마리를 만나는 길이 그렇다. 마리와의 담판에서 비류, 아니 도노에게 유리한 리득을 얻은것도 많고 두 나라 임금이 만나지 못하게 어물쩍해버린것도 많았지만 어째서 속이 좋지 못한가? 도노는 세상이 뭔가 달라지고있다는 낌새를 챘다. 흔들흔들하면서 살아갈 때가 아니다. 왜 이렇게 돼가는가? 마리, 마리때문이다. 그를 이 세상에 놔두고는 도노가 마음놓고 살수 없다.
도노는 마리와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그리고 부여태자에게 기별을 보낼 때가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