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비수는 《생쥐》오누이한테 갔다오고있었다. 거무의 부탁도 있고 또 버들도 그래서 오누이를 찾아보았는데 만나보니 첫눈에 정이 갔다. 어딘가 비수의 처지와 비슷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수는 짬짬이, 틈틈이 그 오누이를 찾아가군 하였다. 오누이를 돌봐주는 떡장사아주머니에게 필요한걸 가져다 주고 돌아올 때면 비수의 기분이 좋아지군 했다. 《생쥐》가 비수의 마음에 꼭 들었다. 부모없이 자라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제법 사내자존심 세우느라고 우뚤거리는게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그녀석이 알면 싫어하기에 녀석이 모르게 먹을거며 입을걸 마련해주는것이 그렇게 좋을리 없었다. 물론 버들이 주는걸 비수는 그저 날라다 줄뿐이지만 그래도 비수에게는 사람이 사는것 같았다.
비수는 저도 모르게 코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궁성의 네거리에 들어섰다. 거리는 여느데와 달리 몹시 붐비였다. 비수는 산에서 오래동안 살아서 사람들이 왁작거리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거리를 지날 때면 될수록 바닥만 보며 지나군 했다. 머리를 쳐들면 보지 못한것들이 많아 저도 모르게 눈길이 허둥거리게 되고 그러느라면 스스로 얼뜬한 놈팽이로 보였다. 그까짓 비수 혼자라면 얼뜬한 놈이든 뭐든 개의치 않지만 자기는 버들공주와 련결되여있어 자칫 잘못하면 버들공주의 낯을 깎을수 있었다. 그것이 비수에게는 죽기보다 싫었다. 비수는 부지런히 거리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비수의 앞을 막아섰다. 비수는 우뚝 멎어서며 눈을 들었다.
그의 앞을 막아선 사람은 애꾸였다.
《야, 귀구멍에 말뚝박았어? 아, 아니면… 아, 사… 사람을 숫보는거야 뭐야?》
애꾸는 숨이 차 씩씩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찾는데 왜 들은척만척 하는거야, 엉? 이게…》
비수는 벙벙해졌다. 낯도 코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가지고 풀무질해대는게 속이 살아났지만 참았다.
《안됐소이다. 미처 듣지 못했소.》
《그 말이면 단가? 돼먹지 못하게…》
《그럼 날더러 어찌라는거요?》
《아직도? 야, 너 내가 누군줄 알아?》
《글쎄, 누구던 안됐다고 하지 않소.》
《난 도노대부님을 모시는 사람이야.》
《아, 그러시오?》
《그래! 두눈깔 뜨고 뭘 봐?》
애꾸는 절로 시뚝해서 턱을 쳐들었다.
《잘 알았소이다. 그럼 난 바빠서…》
비수는 애꾸 노는게 가소로워 자리를 피하려고 하였다. 더구나 사람들로 붐비는 네거리에서 별로 시원치 않아보이는 사람과 가타부타하고싶지 않았다.
《거기 서라!》
애꾸가 목구멍이 째지게 소리쳤다.
비수는 못 들은척 걸음을 재촉했다.
애꾸는 비수의 뒤를 따라오며 소리질렀다.
《야, 이 수개야! 네가 버들공주와 붙어볼가 해서 비류궁성에 왔지만 어림없다, 어림없어!》
비수는 굳어졌다. 까마귀 아래턱 떨어질 소리래도 푼수가 있지, 악다구니질하는 애꾸를 당장 쳐눕히고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그러자니 주먹이 와들와들 떨렸다. 비수는 큰숨을 긋고 다시 걸었다.
비수가 멈춰서자 저도 따라서서 잠간 다물었던 애꾸의 입이 다시 터졌다.
《산속에서 뭘 해먹던지도 모를 이 수개야! 얼럭궁덜럭궁 수개가 뭘, 버들공주를 어째 보겠다고? 나 참…》
애꾸의 수작에 오가던 사람들이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모여 들었다.
애꾸는 더 신바람이 났다.
《글쎄, 여러분네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세상이 다돼도 분수가 있지, 글쎄 저놈이 말이요. 저놈이 글쎄…》
비수를 가리키며 입방아를 찧던 애꾸의 손가락이 멎었다.
비수가 홱 돌아섰다.
《아…》
애꾸의 한눈이 떼꾼해졌다.
애꾸는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아뿔싸! 늦었다. 비수가 어느새 몸을 날렸다. 비수의 발이 애꾸의 입을 찼다. 애꾸는 비명도 못 지르고 두어길 나가떨어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흩어졌다.
비수는 우뚝 서서 땅에 넘어져 버둥거리는 애꾸를 노려보았다.
《사람 죽인다. 사람 살려라!》
애꾸가 소리질렀다.
그 소리 나기 바쁘게 열대여섯 되는 사내들이 말죽은 밭에 까마귀 모여들듯 비수를 에워쌌다. 억대우같은 사내들의 눈에는 살기가 어려있었다.
함정이구나! 하고 비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피할래야 피할수 없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비수는 날고뛰며 서너명을 쓸어눕혔지만 쪽박쓰고 비 피하기라 수적으로 당해낼수가 없었다. 비수는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매타작에 몰이당했다.
그는 끝내 쓰러졌다. 애꾸와 사내들은 늘어진 비수의 팔과 다리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노는 펄펄 뛰였다.
《무엇이 어째? 네놈들이 누구를 뭐 어쨌다구?》
《그 비수인지 뭔지 하는 놈을…》
애꾸는 얼떠름해서 중얼거렸다.
도노는 애꾸의 꼴에 더 성을 냈다.
《너 이놈! 그가 누군지 알기나 하느냐?》
《네, 버들공주… 님의…》
《알면서도 그따위짓을 했다? 하, 이런…》
도노는 랭수에 이 부러질노릇인듯 코나발을 불고나서 바락 소리질렀다.
《여봐라!》
도노의 호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우악스럽게 생긴 종들이 푸주간에 수개 끓이듯 우르르 쓸어나왔다.
《저놈을 사정보지 말고 쳐라!》
도노가 애꾸를 가리키며 소리질렀다.
《아니, 저… 주인님! 저는 사실…》
송편으로 목딸 일이라는듯 애꾸가 뭐라고 말하려 했다.
도노의 눈길이 사나워졌다.
《뭘 하느냐? 쳐라!》
가을말같이 몸좋은 종들이 술취해 마른 콩단 도리깨질하듯 애꾸를 두들겨팼다.
애꾸는 늘어지게 매를 맞고 나중에는 기절해버리고말았다.
도노는 애꾸가 깨여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식경이 지나서야 애꾸는 눈을 떴다.
도노는 애꾸의 터진 상처를 싸매주도록 했다.
《이제 당장 비수에게 가 잘못을 빌어라. 알아들었느냐?》
도노가 여전히 노여움이 밴 소리로 물었다.
《알았소이다.》
애꾸는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리고 비수를 집에 모셔가고 나에게 와 알려!》
《알았소이다.》
애꾸는 비칠거리며 일어났다.
도노는 애꾸의 뒤를 쏘아보았다.
버들은 눈길을 내려깔고있었다.
도노는 고개를 숙인채 버들의 동정을 엿보았다.
송양도 소나도 말이 없었다. 그들은 버들을 조심히 바라보았다.
이윽토록 잠잠해있던 버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도노에게 말했다.
《알았나이다.》
도노는 버들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버들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공주마마, 물러가겠소이다.》
도노는 공손히 허리를 꺾어보이고 살얼음장을 디디듯 문으로 다가갔다. 버들이 뭔가 말할것 같은데 끝내 기다리는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도노는 문을 열었다.
도노가 나간 뒤에도 한동안 즘즉하였다.
점도록 있다가 소나가 숨을 돌리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서쪽에서 해뜨겠는걸? …》
소나는 송양을 보았다.
송양은 수염발에 묻힌 입술을 비죽이 모아 우로 쳐들고있었다.
《하여튼 버들이 대단하구나. 도노대부는 복수심이 강해서 그보다 더한 일에도 절대 사죄라는걸 모르던 사람인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거던. 대부가 버들에게 겁을 먹은게 아니야? 호…》 하고 소나가 혀를 찼다.
버들이 소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송양에게 말했다.
《아바마마! 어찌하여 우리 궁성에서는 저 도노대부에게 다들 쩔쩔매나이까?》
송양은 뜻밖인듯 버들을 힐끔 보고나서 모았던 입술을 풀었다.
송양이 뭐라고 하기 전에 소나가 발끈하였다.
《그건 무슨 말이냐? 누가 도노대부에게 쩔쩔맨다는거야?》
소나가 못마땅해서 눈을 흘겼다.
《내가 보기엔 언니도 그런것 같던데, 내가 잘못 보았나?》
《잘못 봤겠지.》
버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도노대부가 사죄를 했으니 됐다. 버들! 그만 삭여라.》
송양이 말했다.
《아바마마! 소녀는 아무래도 내려가지 않나이다. 저 사람이 뭐길래 우리 궁성에서 함부로 날뛰나이까?》
《그건 무슨 점잖지 못한 소리냐? 날뛰다니?》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나이까?》
《버들, 너는…》
송양은 말꼬리를 흐렸다. 《산속에서 살다나니…》 하는 소리가 하마트면 튀여나올번 하는걸 가까스로 참았다.
《버들, 궁성에는 지켜야 할 례의가 있느니라.》
버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병주고 약주는 도노다. 비수를 모욕하고 상처까지 입힌건 도저히 참을수 없다. 상처는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 내뱉은 말은 주어담지 못한다. 더구나 네거리에서 다 들으라고 떠벌인 소리일 때야…
버들에게는 분명 아바마마가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척 덮어버리려는게 더욱 참을수 없었다. 버들은 새침해있었다.
《아바마마! 저의 잘못이나이다.》
소나가 변명해나섰다.
송양은 천정을 쳐다보았다.
버들은 소나를 따라 방을 나섰다.
버들은 그길로 비수에게 갔다.
비수는 버들이 들어오자 일어나려고 하였다.
버들은 서둘러 비수를 눕게 하였다.
《공주님, 볼낯이 없소이다.》
《내가 할 말이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더 궁성에 머물러있을것 같지 못하오이다.》
《무슨 소리예요?》
《공주님을 잘 모시자고 한노릇이 오히려…》
《다른 생각말아요.》
《아니오이다. 저는 산속에서 살던 놈이라 이런 궁실에는 어울리지 않소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딴맘 먹지 말고 상처나 낫도록 해요.》
비수는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