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도노는 손채양을 하고 강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쪽은 조용하였다. 그것이 도노를 기분나쁘게 하였다. 원래 되자면 도노가 아니라 고구려쪽에서 기다리고있어야 하였다.
도노는 얼굴을 찡그렸다.
《왜 고구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가?》
도노가 누구에게라 없이 화를 내자 시종이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저, 아직 만나자는 때가 되지 않았소이다.》
《뭐 말라빠진 때야, 때가?》 하고 도노는 소리쳤다.
시종은 단박에 찬물맞은 번데기대가리가 되였다.
도노는 혀를 깨물었다. 시종의 말이 옳다. 아직 만나자는 때가 되지 않았다. 잘못은 도노에게 있다. 이렇게 먼저 와서 기다리는것이 아니라는걸 그도 잘 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도노는 그에는 아랑곳않고 빨리 떠나야 한다고 독촉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런 도노를 보고 고구려와 만나는 일에 성심을 보인다고 혀를 차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도노는 고구려와 만나는 일이 맞갖지 않다. 도노는 할수없이 이 일을 맡아가지고 나섰다.
도노는 얼굴을 찌프리며 지렁이입을 다시였다.
송양은 두 나라 임금이 서로 만나자는 고구려의 제의에 처음에는 우물쭈물하였다. 그러다가 무슨 꾀가 났는지 하루가 지나자 만나겠다고 나섰다.
도노는 쪼간을 알수 없어 아연해졌다. 고구려에서 공문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도노는 열에 아홉 송양이 받자 하지 않을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두드려봐야 하지 않겠소이까? 지금 사신사건으로 해서 고구려가 메밀꽃 필적의 독사대가리가 되였겠는데…》 하고 도노는 눈을 가늘게 올려뜨며 버팀목을 가져다댔다.
《아니, 내 만나겠소.》
송양은 흔들리지 않았다.
《만나야 좋을게 없을것 같소이다.》
《주몽을 만나 따질게 있소.》
기어코 만나겠다는 소리다.
도노는 송양이 어째서 그렇게 나오는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송양은 소나더러 당장 고구려사람을 만나 임금들이 만나는 일을 토의하라고 하였다.
안되겠다. 뒤그물을 쳐야겠다고 도노는 서둘렀다.
《소나공주마마가 나갈것까지 있겠소이까? 제가 나가서 만나보겠소이다.》
도노를 바라보는 송양의 눈길이 시쁘둥하다. 그것이 도노의 속을 더 긁어놓았다.
《이런 일이야 응당 대부인 제가 나서야 하지 않겠소이까?》
송양은 눈을 두어번 끔벅이다가 시답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처삼촌무덤에 벌초하듯 하는 일이지만 그런대로 겨우 됐다 하고 숨을 들이키던 도노는 별안간 굳어졌다.
버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소녀도 가고싶나이다.》
요게, 무슨 침놓는 소리냐? 도노는 마른침을 삼켰다.
《공주마마, 혹시 이 도노가 못미더워서 그런게 아니오이까?》
버들은 눈웃음 지었다.
《무슨 말씀… 난 고구려사람들을 보고싶어 그러나이다.》
언제 봐야 속에 칼을 품고 하는 소리로 들리는 버들의 말이다. 도노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공주마마, 저는 고구려의 마리를 만나러 가는것이 아니오이다.》
《그렇나이까? 난 또 고구려에서 마리가 나오는가 했지요?》
도노는 억이 막혔다. 요렇게 매울수가 있나? 여느 계집 같으면 마리소리가 나오기 바쁘게 부끄러워서라도 꼬리를 사리겠는데 이건 하나 하면 열, 백을 소리치니…
《그럼, 좋나이다. 대부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겠나이다.》 하고 버들은 여전히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빌어먹을! 도노는 소태를 핥은것 같았다.
뿔나팔소리가 뚜-뚜- 울리는 바람에 도노는 머리를 쳐들었다.
강건너에 말을 탄 사람들이 나타났다. 세사람이다. 너무 적다. 도노는 뒤에 더 있는가 하여 눈을 밝혔다. 걸리는게 없었다. 이상한데? … 혹시 고구려에서 제풀에 물러서려는게 아닐가?
도노는 고구려켠에 사람이 적은것으로 하여 우선 마음이 가라앉았다. 도노는 무슨 일에서든지 많은쪽이 이긴다고 땅파기 해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일도 잘될것이라고 짐작했다.
도노는 고구려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도노쪽에서 뿔나팔소리가 울리자 강건너 사람들이 다리우로 올라섰다.
도노는 그들을 마중하려고 수레에서 내려 다리목으로 다가갔다. 푼푼한 웃음이 도노의 얼굴에 떠올랐다. 도노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겠는지 속에 환했다.
앞선 사람은 벌써 다리 절반을 넘었다.
《어서 오시오.》 하는 반가운 소리가 벌써부터 도노의 목구멍에서 간질거렸다.
문득 도노의 얼굴이 띠끔했다. 도노는 눈시울에 힘을 주어 끔벅이고 다리우로 건너오는 사람을 다시 보았다.
《이게 누구야?》
도노는 흠칫 놀라며 뒤걸음쳤다.
마리, 마리다!
눈앞이 아뜩하다. 원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도노는 숨이 막혔다. 그의 얼굴에 소금기가 하얗게 내불리였다.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마리를 바라보고있었다.
마리가 싱긋이 웃으며 오고있었다.
마침내 마리는 이쪽 다리목에 이르렀다.
두사람이 마주섰다.
《고구려 대주부 마리오이다.》
씩씩한 목소리가 강기슭에 울렸다.
《아, 저… 나는 도노라고…》
기여들어가는 소리가 꼬리를 흐렸다.
비류의 사람들은 도노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 도노대부님이시군요? 말씀은 많이 들었소이다. 이렇게 만나니 반갑소이다.》
도노는 어줍게 웃었다.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도노의 촉각은 마리가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데 쏠려있었다. 온몸의 털이란 털이 다 추워서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넌 부여태자의 끄나불, 꼬리를 감추고 비류의 송양임금에게 붙어 딴꿈꾸는 놈! 난 너를 잘 알고있다. 너는 이때껏 숱한 여우꾀를 내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였다. 너는 더러운 낯짝을 숨기려고 고구려사신들을 없애버릴 음모를 꾸미였고 그들을 죽였다. 내 너를 발가놓아 원쑤를 갚고야말리라!》 하며 눈을 부릅뜬 마리가 칼을 빼들고 당장 달려들것 같았다.
무서워도 그래야 바로되는 일이다.
그런데 마리는 너무나 스스럼없다. 그것이 도노에게는 더 죽을 맛이다.
《어디 편치않소이까?》 하는 마리의 물음에 도노는 흠칫 놀랐다.
《아, 아니요.》
《낯빛이 좋지 않소이다. 땀이…》
도노는 엉겁결에 이마의 땀을 훔쳤다.
《괜찮소.》
도노는 억지로 웃어보였다.
마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하는듯 했다.
도노는 마리의 얼굴을 훔쳐보며 도대체 그가 자기의 정체를 알고있는가 모르고있는가 하는걸 알아내느라고 속을 썩였다. 회담의 알맹이같은것은 멀리 있었다. 목이 왔다갔다하는 일이 풀어지지 않는 한 마리와 이러쿵저러쿵할 계제가 못된다. 그런데 도노가 보건대 마리는 자기의 정체를 모르는듯 하다. 도노를 처음 본다고 한다. 그게 의심스럽다. 알고있으면서도 모르는체 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마리와의 대결에서 한수 지고 들어가는것이다.
《두 나라 임금님들께서 서로 무릎을 마주하고 속을 터놓자는 우리 고구려의 뜻은 이미 귀측에 알린바이므로 더 할 말이 없는줄 아오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도노대부께서 이렇게 나온것을 우리의 제의에 대한 긍정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소이까?》 하고 마리가 헌헌하게 물었다.
도노는 마리의 입을 멍하니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도노는 자기를 꾸짖었다. 마리가 어떻게 보는가, 자기의 탈을 와락와락 벗겨버리지나 않겠는가 하는 걱정은 철부지들이나 하라고 해. 이런 마당에서 지나간 일을 두고 무슨 가책이요 뭐요 하고 속을 태우는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따위는 세속에 찌들대로 찌든 도노에게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런 때는 무작정 뻔뻔스러워야 하는것이다. 그것이 정치이고 살아가는 묘리이다. 남이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나면 결국 넘어지고만다. 더구나 마리같은 애숭이와 마주서서 솜털까지 떨어서야 되겠는가.
도노는 눌렸던 숨을 내불었다.
《에, 그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비류는 달리 보오이다.》
《무엇을 말이오이까?》
《두 임금이 만나는것 말이오이다.》
《그건 어째서이오이까?》
《지난 일도 그렇지만 지금 벌어지고있는 일을 보아도 두 임금이 만나는것이 좋지 못할듯 하오이다.》
《지난 일? 지금? 도노께서는 어떤 일을 두고 하는 말이오 이까?》
《사신사건이라든가 또…》 하고 말하던 도노는 입술을 모아 내밀었다. 마리가 자기의 말을 재촉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마리는 도노의 말을 기다리고있었다. 언제든지 하고 싶은 말은 다하라는 투였다.
마리는 뚫어지게 도노의 얼굴을 보고있었다.
도노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사람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한참 있다가 마리가 입을 열었다.
《그건 비류의 송양임금의 뜻이오이까?》
마리의 물음에 도노는 눈을 들었다.
《뭘 말이오이까?》
《두 임금이 만나지 않겠다는 말.》
《난 좋지 않다고 한것 같은데요?》
《같은 말이지요. 똑바로 말씀해주시오이다. 만나지 않겠다는것이 귀측 송양임금의 뜻이오이까? 아니면 도노대부의 생각이오이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이까? 전권을 받고 나온 사람에게 제 말이 어디 따로 있겠소이까?》
《그럼 송양임금의 뜻이오이까?》
《그렇소이다.》
마리는 크게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소이다. 귀측 임금의 뜻이 그렇다면 나는 두 임금님께서 만나자는 우리 임금님의 령을 받고 나온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귀측 임금의 확답을 받기 바라오이다.》
《그건 무슨 말씀이시오?》 하고 도노가 놀라 물었다.
《귀측의 임금 송양께서 직접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던지 아니면 우리 임금께 보내는 서신이라도 받아야겠소이다.》
《그건…》
《사신사건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귀측의 임금께서 시노를 보내 우리 고구려사신을 청했기때문에 간건데 귀측은 안팎이 다르게 행동했소이다. 사신사건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두 임금께서 만나 풀지 않고서는 두 나라 사이가 좋게 되리라고 볼수 없소이다. 나는 만나지 않겠다는 귀측의 뜻이 무엇인지 알수 없소이다.》
도노는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한동안 갑자르고나서 말했다.
《그럼 좋소이다. 귀측의 뜻을 우리 임금님께 아뢰겠소이다.》
《나는 이틀뒤에 다시 이 자리에 나오겠소이다.》
마리는 도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서 다리우로 올라섰다.
도노는 쪼프린 눈으로 마리의 뒤를 보고있었다.
랑패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였는가? 고구려에서 마리가 나올줄 어찌 알았는가? 지금쯤은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고있을줄 알았는데 뜻밖에 마리가 나오는 바람에 도노는 할 말도 못하고 개 몰리듯 하였다. 마리하고 부딪치면 어찌하여 당당하던 도노는 어디로 가고 쭈그렁박이 되고마는가? 마리가 자기의 정체를 알고있다는 위구심때문인가? 모를 일이다. 도노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애당초 임금들끼리 만나자는 고구려의 제의를 묵살해치워야 하는건데 괜히 말려들어가지고… 그랬으면 마리를 만나지도 않았을것이고 이렇게 쭈그렁박이 되지도 않았을게 아닌가? 그 바보같은 송양은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거야, 주대없이…
문득 도노는 웃고있는 버들의 얼굴이 떠올라 낯을 찡그리였다. 버들은 저도 고구려사람을 만나겠다고 하고 나중에는 도노를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왜 그랬을가?
도노는 이마를 쓸어만지던 손을 멈추었다.
고구려임금을 만나야 한다고 송양을 꼬드긴것은 버들이다! 틀림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고구려와 아무 관계도 없지 않는가?
버들만 아니라면 송양은 고구려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을것이다. 에이, 코코에 막아나서면서 시끄럽게 노는구나. 버들인지 뭔지… 안되겠다.
도노는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