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협보는 조용한 틈을 보아 주몽을 만났다.

《이번에 마리에게 달려들었던 놈들을 처리하게 해주시오이다.》 하고 협보는 말했다.

주몽은 협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건 왜?》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도 그렇고 또 마리를 위해서도… 마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을 저는 도저히 참을수 없소이다. 마리에 대한 모욕은 이 협보에 대한 모욕보다 더하오이다.》

협보는 입술을 깨물다가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가만히 놔두면 앞으로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르오이다. 도대체 백성들이 대주부에게 달려들어 행패질한다는것이 말이 되오이까, 그것도 대낮에 무리지어…》

《기어코 분풀이하자는건가?》

《이건 분풀이가 아니오이다.》

《그런데 마리는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마리는 용서해도 저는 용서할수 없소이다.》

《그게 마리를 더 욕되게 할수 있다는건 생각해보지 못했나?》

《어쨌든 백성들에게 나라가 무서운줄 알게 해야겠소이다.》

주몽은 가는 숨을 내쉬였다.

《마리가 한 말이 있네. 백성들이 나라를 무서워하는게 결코 좋은 일이 못돼.》

《그렇다고 무턱대고 어루만질수야 없지 않소이까? 예로부터 나라라는것은 엄한 벌이 있어서…》

《허, 협보의 고집이 여간 아니군.》

《이건 고집이 아니오이다.》

《난 사람들에게 억울한 매를 맞고도 오히려 그들의 심정을 리해해주려는 마리가 더 돋보이네. 마리를 욕보인 사람들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도 협보 자네와 마찬가지로 당장 그들을 혼내우고싶었네. 하지만 그들은 혈육을 잃은 사람들이네. 마리에게 그렇게 행풀이한건 잘못이지만 그 사람들의 심정도 알수 있지 않나? 바꾸어놓고 생각해보게. 그런데 그들을 엄하게 처리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들이 단순히 혈육을 잃은 가슴아픔으로 해서 마리에게 행패질했다면 저로서도 할 말이 없소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때문에 그런것이 결코 아니오이다. 나쁜 놈들의 부추김을 받고 그랬소이다.》

《그건 무슨 소린가? 근거가 있나?》

《있소이다.》

협보는 팔소매자락에서 무엇인가 끄집어내였다.

《이건 비류의 도노가 우리 고구려의 절노부대가에게 보낸 서신이오이다.》 하며 협보는 그것을 주몽에게 올렸다.

《이게 어떻게 협보의 손에 들어왔나?》

《이번에 마리에게 행패질한 사람들을 캐보는데 나왔소이다. 알아보니 도노가 몰래 보낸 이 서신을 절노부대가가 보았다고 하오이다. 절노부대가는 그 서신을 보고나서 자기 종들에게 불태우라고 한 모양인데 그 종이 어떻게 글을 알아 서신을 보고는 불태우지 않고 숨겼다가 나중에는 유가족들에게 보인 모양이오이다.》

협보는 아래입술을 깨물다가 숨을 들이키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대가들에게도 이 비슷한 서신이 갔다고 하오이다. 그런데 순노, 관노대가들은 받자마자 찢어버리고 연노, 절노대가들은 무슨 내용인지 보고나서야 불태웠다고 하오이다. 연노, 절노대가들은 죄를 따져야 할줄 아오이다. 보지 않고 찢어버린 순노, 관노대가들도 별일이 없지만 비류의 대부에게서 글을 받고도 그 사실을 임금님께 알리지 않은데 대해서는 스쳐지날수 없소이다. 밝게 조처해주시오이다.》

《누가 보냈든 받은 서신이야 읽어보는게 잘못은 아니지. 하여튼 도노가 보냈다는 서신을 보자. 협보는 보았나?》

《보았소이다.》

주몽은 협보를 바라보다가 도노의 서신을 펼쳐들었다.

 

《비류의 대부 도노는 고구려의 명망높고 사려깊은 절노부대가에게 삼가 글을 보내오이다.

세상을 돌이켜보건대 비류와 고구려가 이웃하고 살아오면서 그리 가깝고 살틀하게 지내온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항간에서 속되게 이르듯 개와 고양이같은 사이는 아닌줄 아오이다. 하지만 요즘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보면 결코 팔짱끼고 강건너 불보듯 스쳐보낼 일도 아니오이다. 어이하여 이렇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지 뜻이 있고 기개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인들 근심하지 않겠나이까? 절노부대가께서 어련히 살피고 정한 뜻이 있을줄 알지만 먼저 이 도노가 보는바를 그대로 비치자고 하오니 잘못이 있다면 너그럽게 꾸짖어주시오이다. 오늘에 있어서 비류와 고구려에 어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고구려의 임금과 이른바 그 충복들이라고 하는 신하들에게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나이다. 그 뿌리의 됨됨을 알수 없는 주몽과 그 충복들이 나타남으로 하여 이전 구려는 물론 우리 비류도 지난날의 편안함을 잃어버렸소이다. 고구려의 절노부대가에게 이렇게 말씀드리오면 무엄한 일인줄 알지만 주몽은 고구려의 임금이지 비류의 임금이 아니옵고 도노 또한 비류의 대부이지 고구려의 대부가 아닌지라 서슴없이 속에 있는 소리를 하오이다. 주몽과 그의 충복들이 계루부의 대가였던 연타발과 구려임금의 신임을 얻어 우연히 고구려의 임금, 개국공신이 되였다고 하나 나라의 운명을 어찌 젖비린내나는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발편잠을 자겠소이까? 구려나 비류의 운명은 어디까지나 절노부대가를 비롯한 원로들에게 달려있다고 세상은 알고있소이다. 고구려와 비류에 대하여 말한다면 유감스럽게도 이때까지 두 나라 일을 보살펴온 원로들의 뜻대로 되여왔다고 볼수 없나이다. 한것은 두 나라 원로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혈기만 믿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분수없이 날뛰는 이른바 개국공신이라는 젊은이들때문이오이다. 이번 고구려사신사건도 바로 그러하오이다. 절노부대가께서는 밝은 눈을 지니신분이라 이번 일을 꿰뚫어보실테지만 구태여 뱀의 몸뚱이에 발을 다는 격으로 미련한 소견을 보탠다면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고구려사신 마리에게 그 잘못이 있소이다. 이 도노가 전번에 고구려에 가서도 말씀드린바이지만 마리는 고구려와 비류 두 나라의 화친을 이룩할 사명을 받고 비류로 왔다고 하나 그때를 타서 엉뚱한짓을 저질렀나이다. 한마디로 마리는 우리 비류의 임금이신 송양을 해치려고 하였나이다. 그리하여 비류가 소란해지면 고구려가 비류를 손쉽게 먹어치울수 있다고 어리석게 타산한것이겠지요. 하지만 임금은 천명을 지닌 법, 한 나라의 임금을 해치려는짓이 어찌 하늘의 벌을 받지 아니하겠나이까? 마리는 마땅한 벌을 받았소이다. 헌데 그 벌은 마리에게 바로 간것이 아니라 애매한 고구려사신일행이 억울하게 받았소이다. 그에 대해서는 우리 비류도 잘못을 느끼고있지만 범을 잡으려고 놓은 불이 아까운 산만 태운 격이랄가. … 이번 사건에 대해서 대가께서는 이 도노의 말을 믿지 아니할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그 사실을 고발한 우리 송양임금님의 조카였던 시노의 편지가 있소이다. 시노가 마리와 함께 비류로 오던 과정에 알게 된 사실을 써보낸것이오이다. 저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노까지 믿지 않을수 없었소이다. 일은 그렇게 되였소이다. 이번 사신사건으로 하여 두 나라사이에 안타깝게도 이때까지 볼수 없었던 피가 흐르게 되였소이다. 대가를 비롯한 고구려의 임금과 원로들은 물론 이 도노의 말을 믿지 않을줄 알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소이다. 고구려가 사신 마리를 믿듯이, 그래서 우리 비류가 잘못했다고 하는것은 지극히 옳소이다. 왜냐면 쌍방간의 잘못은 언제나 자기가 아닌 남의 잘못으로 벌어지기때문이오이다. 이번 사신사건을 놓고 고구려가 보는바가 옳은것이라면 마리와 고구려사신들에 대한 우리 비류의 보는바도 옳은것으로 되오이다. 고구려가 자기의 대주부인 마리를 믿듯이 우리 비류도 임금의 조카인 시노를 믿소이다. 이 도노는 사신사건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구태여 따지려고 이 글을 드리는것이 아니오이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죽은 뒤 약방문이요, 행차뒤 나발이라 현명한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일을 두고 더 많이 근심해야 할줄 아오이다. 절노부대가께 글을 보내옴은 앞으로 비류와 고구려가 화친하는데 지극히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볼수 없는 일이 있기때문이오이다. 마리가 비류의 임금을 해치려고 한것은 젊은 혈기에 큰 공을 세워보려고 그런것이고 다행히 실패로 끝났지만 세상일이란 사람이 도저히 헤아릴수 없는것 같소이다. 아비를 해치려던 마리를 우리 송양임금님의 따님인 버들공주께옵서 사모하게 될줄 어찌 알았겠나이까? 이것이 무슨 악연인지 희롱인지 참으로 허망하기만 하오이다. 아아, 하필 아비의 원쑤, 나라의 원쑤를 사랑하게 되다니… 아무리 인지상정이 얄궂은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럴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는 꾸며낸것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이로 하여 우리 송양임금께옵서는 마리는 물론 공주마마 버들까지 용서치 않으려 하오나 나라일이란 천명에 따르는 일이라 어찌 일신의 분노로 풀수 있겠나이까? 이는 물론 고구려보다 우리 비류의 허물이 아닐수 없지만 잘만 하면 화를 복으로 만들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이 미련한 도노는 헤아려보자고 하여 이렇게 글을 보내오이다. 마리와 버들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이는 칼로도 벨수 없는 일이라 그들을 떼여놓을것이 아니라 더 붙여줌으로써 두 나라의 화친을 이룩함이 어떠하겠사온지… 이런 일이란 곁에서 잘 도와주어야만 되는 일이라 만일 이룩되기만 하면 두 나라에 이만한 다행이 없을것이며 이만한 아름다움 또한 없을줄 아나이다. 하여 삼가 글을 올리오니 절노부대가께서 살펴 정하기를 바라나이다.》

 

주몽은 도노의 서신이 재미있었다.

서신을 다 읽고나서 주몽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담고 혼자소리로 말했다.

《참 아까운 사람이구나.》

《그 도노인지 뭔지 하는 놈을 가만 놔두어서는 안되겠소이다.》

협보가 말했다.

《왜?》

《그놈이 황당한 소리를 해가며 우리를 욕하지 않았소이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뭐라고 하겠소이까? 마리에게 행패질하는 본때가 별로 사납다 했더니 그게 다 도노의 추동질에 그렇게 된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도노라는 사람이 허술히 볼 사람이 아니다. 제법 옳은 소리를 하는것도 있거던. 마리와 버들의 사랑을 붙여주자는 소리는 내 마음에도 드는걸. 어떤가, 협보가 보기엔?》

《그놈이 진실로 그럴게 뭐겠소이까? 고양이 쥐 놀리듯 하는 소리오이다.》

《그럴수도 있지. 그 사람이 조금 더 생각을 크고 넓게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일에도 한몫할 사람인데, 문장도 좋고 나름대로 사리가 정연하거던. 나부터 도노의 말에 끌려드는걸…》

협보는 놀라운 눈으로 주몽을 보았다. 롱담인지 진담인지 헤아릴수가 없었다.

주몽은 우스개를 몰랐다. 지금도 진심으로 말하고있었다. 그것이 협보의 속을 좋지 않게 하였다. 도노에 대한 질투, 증오, 엉터리소리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도노의 글을 본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사온지 령을 내려주시오이다.》

협보가 눈시울을 쪼프리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주몽이 되물었다.

《이제 와서 비류와 고구려는 어차피 원쑤가 되였으니 적국의 글을 보았다면 적들에게 넘어간것이나 같소이다. 모두 엄하게 처벌해야 할줄 아나이다.》

《이것이 만일 도노의 꾀라면? 도노는 잔꾀가 많은 사람이라는게 뻔한데 혹시 그가 협보의 말대로 우리가 하길 바라는건 아닐가? 우리 손으로 우리 사람들을 처벌하기를 바라는 꾀가 아닌지…》

협보는 말문이 막혔다.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글을 마리가 보았나?》

《보여주지 않았소이다. 제가 보기에도 속이 끓는데 마리가 보면…》

《나와 함께 가서 마리에게 보여주자구.》

《일없겠소이까?》

《일은 무슨…》

주몽은 협보를 데리고 몸조리를 하고있는 마리에게 갔다.

도노의 글을 본 마리는 빙그레 웃었다.

협보는 놀라운 눈으로 마리를 보았다.

《그래 어떤가?》 하고 주몽이 마리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오이다. 나름대로 주장도 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사람에게서 배우는바도 없지 않소이다. 사람이 제 잔등은 보지 못한다는데 이 사람은 그 보지 못하는걸 우리에게 보여주고있지 않소이까. 우리뒤에서, 우리 일에 대해서 세상이 어떻게 보는지 하는것 말이오이다. 그건 세상을 넓게 볼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는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리고 저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기도 하오이다.》

《버들에 대한 소리말인가?》

마리는 주몽의 웃음어린 물음에 씩- 웃었다.

《그렇소이다. 버들에 대해서 들으니 저도 기쁘오이다.》

협보가 놀라운 눈으로 마리를 보다가 끼여들었다.

《마리, 자네가 버들인지 하는 비류공주를 사랑한다는게 사실인가?》

《그렇네.》

협보는 입을 벌리고 마리를 보았다.

《협보, 고맙네. 자네가 아니였다면 도노의 글을 어떻게 구경했겠나?》

마리가 순진한 웃음을 지으며 진심으로 말하였다.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곁에서 주몽이 웃어댔다.

협보는 마리와 주몽을 보다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마리가 주몽에게 돌아섰다.

《주몽형, 그사이 자리에 누워 느껴지는게 많았소이다. 이번에 유가족들이 나에게 한 분풀이는 응당한것이오이다. 저는 그들을 탓하지 않소이다. 제가 잘못한 일이오이다. 그래서 늦게나마 말씀드리온데 억울하게 희생된 고구려사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제를 치르도록 해주시오이다.》

《진혼제?》

《그렇소이다. 진혼제라도 하면 저도 그래, 유가족들도 어느 정도 마음이 위로될것 같소이다.》

《좋은 생각이다. 음, 마리가 좋은 생각을 했다. 진혼제를 하자. 하되 나라제사로 하자.》

《나라제사로 말이오이까?》

《그래.》

《고맙소이다.》

《도노의 서신은 어떻게 하겠소이까?》

협보가 물었다.

《그건 내가 따로 건사해두겠네. 대가들과 이걸 본 사람들에게는 서신에 대해서 다시 말을 꺼내지 말게.》

《알겠소이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강철혁 - 프랑스 - 류학생 - 2016-08-25
[우리민족끼리]열성독자입니다.
장편력사소설 [고구려의 새벽] 3부가 10회부터는 나오지 않습니다.
1달전까지만 해도 내용이 현시되였는데 오래간만에 시간을 내여 보자고 하니 3부의 9회이후로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데 볼수 있도록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자 - 우리민족끼리 - - 2016-08-26
안녕하십니까

현재 장편력사소설 [고구려의 새벽] 3부 정상적으로 현시되고있습니다.

우리 홈페지에 대한 선생의 깊은 관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별 - 해외기업 - 택시운전수 - 2018-01-11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아주 뜻이 있는 책입니다
그 후의 일어난 일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