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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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이 밤이 썩 깊어 아서원에서 돌아오니 강화섬에서 사람들이 넘어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조봉암이 일전에 강화섬에 갔을 때 산소에서 만났던 소꿉시절 친구들인 바위쇠와 몽득이였다.
조봉암은 아서원에서부터 줄창 당의 중진들의 상반되는 립장으로 속이 착잡해서 대문을 넘었는데 예고없이 문득 나타난 그들을 보자 너무도 반가워 크게 부르며 얼싸안았다.
《하, 이게 누구들이야?! 바위쇠! 몽득이!》
《죽산! 이 사람아, 고생했네!》
바위쇠가 호물때기입을 크게 벌리고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보고싶어서… 어디 견디겠더라구!》
바위쇠보다 한뽐이나 더 큰 몽득이도 조봉암의 한팔을 잡고 아이들처럼 좋아하였다.
그들은 한덩어리로 마당복판에서 엉키여 서로 잔등을 치며 돌아갔다.
조봉암을 따라 아서원에 갔다가 속이 한줌만해서 돌아온 김봉무도 장인과 그의 옛친구들의 무랍없는 포옹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조봉암이 그들의 손목을 잡고 집안에 들어서니 이내 효경이 저녁상을 차렸다.
《아니, 지금 몇시라고… 이제야…》
손님대접을 소홀히 한것 같아 조봉암이 책망하려고 하자 효경이가 변명조로 대답하였다.
《아버님들이 저녁을 꼭 함께 들겠다고 그냥 마다하셔서…》
《사람들두… 난 아서원에서 배를 채우고 왔는데… 자, 어서 이리들 나앉으라구.》
《여기 올린 해산물들과 산나물들은 다 강화섬아버님들이 가져오신겁니다.》
효경이 잔들에 국화술을 부으며 설명하였다.
《에, 사람들도 그 먼길에 몸 가볍게 올노릇이지.》
조봉암이 송아지친구들을 나무람하자 강화사람들은 열적은 웃음을 지었다.
《허허… 뭐 섬사람들이 이런 멋도 없이야 무슨 재미로 살텐가? 난 죽산이 심화병에 걸렸다기에…》
《이 사람, 몽득이! 그 소리는 왜 또 하노? 선거에서 지기는 누가 졌다고… 그리고 이렇게 오륙이 성성한 사람을 두고…》
바위쇠가 몽득이 옆구리를 치며 핀잔하였다. 그러자 몽득이가 광대뼈가 삐쭉 솟은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담으며 변명조로 말하였다.
《뭐, 이렇게 펀펀한 친구를 보니 너무 기뻐하는 소릴세.》
몽득이가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자 조봉암이 허허- 사람좋게 웃기만 하였다. 그들이 입을 다물어버리자 효경이가 약간 기분이 처져서 그들을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아니 글쎄 아버지가 선거에 패하여 심화병에 걸렸을거라나요? 사찰에 가서 정양을 하고계실것으로 짐작했대요.》
《뭘? 내가 심화병에 걸려 사찰에서 정양을 할거라고?!》
조봉암이 방안이 들썩하게 호탕하게 웃었다.
유쾌한 그 웃음에 섬사람들도 속이 후련해져 입을 한껏 벌리고 덩달아 껄껄 웃었다.
《하하… 그런데 넌 뭘 기가 죽어 그러느냐? 이 친구들이 들고온 말이 그리도 마음을 상하게 하더냐?》
조봉암이 딸의 속도 풀어주느라고 말끝에 또 즐겁게 웃었다.
《에에, 우리 마을 고 여우새끼같은 리장녀석이 그렇게 쏙닥거리더라니 어디 맘편히 앉아있겠더라구?
우리 친구 죽산이 어떤 인물인가? 대처럼 곧고 쇠붙이처럼 강하거늘. 그게 어디 당한 수작인가?
그래서 사실인즉 사찰에까지라도 기어이 가볼 심산으로 떠난 길일세. 병문안겸 한바탕 욕지거리라도 후련히 하자는 심산으로 떠난 길이라니.
사실인즉 우리 강화섬엔 죽산이 이겨도 크게 이겼는데 자유당것들이 롱간질해서 죽산에게 미안하게 됐다는 말이 파다하다네. 그 소식도 전해주고싶었지.》
바위쇠가 찾아온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암, 강화사람들속에서 리승만을 찍어줄 놈 몇될라구? 서울에서 몰려온 마지광의 따벌단이라는게 제아무리 못난짓을 다했어두 우리 강화사람들은 마니산처럼 솟아오른 죽산을 지켜냈네.》
《그렇구말구. 우리 강화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구?! 그 따벌단놈들 싹 쓸어버려야 돼!》
바위쇠와 몽득이가 겨끔내기로 강화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하면서 따벌단놈들의 행패를 놓고 진저리를 치며 저주를 퍼부었다.
따벌단이란 벌써 오래전부터 존재하여온 극우익망나니깡패조직이다. 두목인 마지광은 해방전부터 서울일판을 휩쓸며 도적질과 강간, 살인행위로 악명을 떨치던 범죄세계의 왕초였다. 마지광의 깡패기질이 얼마나 포악하고 더러웠던지 항간에서는 마지광이 온다면 동자질하던 아낙네들도 괴춤을 쥐고 뒤간으로 내뺀다고 하였다. 이놈들은 해방이 되자 리승만으로부터 사례금까지 받아가며 주로 정치적행위에 끼여들어 리승만의 반대파들에 대한 집단테로에 동원되군 하였다.
전쟁시기 부산에서 리승만의 《개헌》놀음에 《국회》의원들이 반기를 들고나섰을 때에도 이 마지광의 따벌단깡패들이 탄압의 앞장에 섰다. 집단적으로 때리고 붙잡아 지하실에 가두어넣고 야수적인 고문까지 들이댄 무지막지한 놈들이다.
이번 선거에도 이놈들이 여러 패로 나뉘여가지고 조봉암의 지지자들이 압도적인 도시와 농촌들에 출몰하면서 경찰에 못지 않게 피비린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번 복새통에 병수가 그만 숨이 졌다네.》
《병수가? … 어떻게? …》
조봉암이 뜻밖의 비보에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이 우리 동리에서는 두번째로 투표를 하고 나왔지.
헌데 마당에서 리장녀석이 따라서며 묻더구만.
<누구한테 찍었나요?>
그러니 병수가 마뜩지 않게 대꾸하더라구.
<아무한테 찍었으면 어쩔테냐? 선정을 베풀 큰 인물에게 했지.>
리장녀석이 기세가 올라 소리친다는데…
<글쎄, 아무렴 령감이 그까짓 조씨에게 귀한 표 찍었겠나요? 여러분, 보시오. 조봉암의 친구되는 병수령감도 리박사께 찍었다우. 모두들 병수아바이 본을 따라야겠시다.>
리장이 이렇게 들썩거리니 일이 어떻게 되였겠나?
병수성미에 그 소리를 듣고 가만있을리 있나?!
<야, 이놈아! 내가 언제 리박사 찍었다 했냐? 내 이렇게 늙구 병들구 초라해도 속은 멀쩡하다. 난 리박사가 아니라 우리 고향의 자랑인 죽산께 정히 표를 드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흐뭇하던지 우린 그저 만세라도 부르고싶은 생각들이였네.
헌데 이런 난사라구야.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지.
슬그머니 꼬리를 사린 리장놈이 글쎄 그 따벌단을 몰고 오지 않았겠나?! 그놈이 선거전날에도 우리를 모여놓고 이제 우리 동리에서 조봉암지지표가 하나라도 나오면 생야단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사람 집은 물론 온 동리가 선참으로 몰살된다, 뭐 이런 말을 열번, 스무번 곱씹었다네. 그랬는데 두번째로 투표한 병수가 죽산을 지지했다고 자랑까지 했으니 그놈이야 복장이 갈라질 판이였겠지.
따벌단이라는게 정말 미친개떼들일세. 동리사람들이 다 모인 선거장앞에서 그놈들이 병수한테 달려들었다네. 강약이 부동이라 병수 그 사람이 그놈들의 야구방망이에 얻어맞구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
우리 동리 젊은이들이 분을 참을수 없어 나섰다네. 따벌단놈들과 무리싸움이 벌어졌지. 굉장했어. 우리 강화사람들이 어데 얻어맞기만 할 사람들인가. 나도 그 판에 말장을 뽑아들고 그놈들에게 강화섬의 본때를 보여주었네. 그리고 우리 동리사람들은 누구라 없이 죽산에게 표를 드렸다네.
헌데 저놈들이 온통 협잡군들이야. 그날 저녁에 개표결과를 발표했는데 9할이 반대라나? 신문에도 그렇게 났다니 날도적놈들 아닌가?! 천부당만부당한짓이네.》
바위쇠가 돌처럼 옹쳐든 주먹을 부르르 떨며 그날의 처절한 광경을 울분에 차서 펼쳐놓았다.
조봉암은 연경이가 부어주는 국화술을 받아들고 불같이 기염을 토하던 옛친구의 얼굴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가 그렇게 숨이 지다니.
《음- 그렇게 됐구만. 병수가 그렇게 가다니… 리승만이 꺼꾸러지는것을 보고야말겠다고 하더니…》
조봉암은 이렇게 침통하게 중얼거리며 술잔을 들었다.
《친구를 위해서… 병수의 명복을 빌어서 들자구.》
괴롭고도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조봉암은 북에 다녀온 사연을 들려주면서 오래 살아서 통일이 되는걸 꼭 봐야겠다고 절절하게 말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귀가에 쟁쟁히 울려왔다.
(내가 옥좌에 오르면 경무대에 와서 잔디깎는 일이라도 해주겠다던 사람이 그렇게 숨지고말다니.)
조봉암은 울대를 움씰거리며 비분을 금치 못해 눈물을 떨구었다.
바위쇠가 잔을 들어 꿀꺽 삼키고나서 조봉암에게로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았다. 그는 뼈마디가 앙상한 새까만 손으로 조봉암의 커다란 주먹을 조심히 부여잡았다.
《이보게, 죽산! 이러지 말게. 너무 상심말라구. 그 사람은 강화사람들의 뜻을 지켰으니 죽어도 극락에 갈거네. 제 할바를 한걸세. 그 사람이 숨지면서 뭐랬는지 아나? 죽산에게 전해달라 했다네. 자기는 죽산에게 지지표를 드렸다구. 통일세상에서 살구싶다구… 그러면서 그냥 임자를 찾겠지. …
우린 이렇게 죽산이 하늘을 향해 머리들고있는 의연한 모습을 보니 또 앞이 탁 트이는것만 같네. 우리 강화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다네. 그 희망마저 깨지면 우리 사는 재미가 뭐 있겠나? 속이 덜컹해서 바다를 넘어왔지. 떠나오기 전에 우리 토배기친구들이 여럿이 모여앉아 의논들을 했다네. 신문쟁이들이 조봉암의 고향땅사람들까지 다 반대표를 던졌다고 까불었는데 이게 어디 면목이 서게 됐나?! 고향땅이 죽산을 배반하다니… 이런 망신이 또 어데 있나? 죽산이 그 소식을 듣고 더구나 심화병에 몸져누운게 아닐가 하고 더럭 근심이 들겠지.》
《참, 사람들두… 내가 우리 고향사람들의 인심을 잊고 살가?! 내가 어찌 민중의 기대를 의심할수 있겠나?!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우리는 더 론의하지 않기로 했네. 따져봐야 구린내나는 일이거던. 력사가 공정하게 심판해줄걸세. 후손들이 정확한 답을 찾아 전해갈것이네. 정말 고맙네. 내 고향 사람들이 고마워…》
조봉암은 속이 그저 열받은듯 확확 달아올랐다.
고향사람들의 진정에 넘치는 념려와 인사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되겠는지 그저 뜨거운것만이 목을 메이게 할뿐이다.
《그래, 이 사람아! 내 하던 말 마저 하려네. 바다건너온 사연말일세. 그래 대표를 뽑았네. 사찰에라도 가기로 하고 말일세.
너도나도 가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죽산의 속 손바닥처럼 아는 우리가 적임자라고 의논이 돼서 이렇게 나선거지. 내가 <4서3경>을 두루 읽었다고 단장이라나? 하하… 식자없는 우리가 무슨 대표냐고 해도 막무가내야.
빈손에야 어떻게 오겠나? 모아봤는데 뭐이 어깨가 가벼운것 같아 마음이 자꾸 켕기더구만. 그래서 다시 모여 의논들 했지. 의논끝에 련판장을 만들기로 했네.》
《련판장? 나한테? 그건 왜?》
《왜라니? 리승만에게도 련판장을 만들어보내는 판인데 정말루 우리가 받들어야 할이가 과연 누구냐… 그래 의논이 모아져 우린 진짜련판장을 만들어왔네. 진짜일세.
우리 강화사람들이 리승만에게 보내는 련판장에는 시커먼 종이에다 도장이나 대강 찍어주었네만 죽산한테야 그래서는 안되지. 그래 진짜배기를 만들어왔어.
몽득이, 이 사람! 어서 그걸 내놓게.》
바위쇠의 소리에 몽득이가 일어나더니 저고리를 벗었다.
그리고는 살점은 별로 없이 등뼈만 불룩하게 솟은 긴 허리에 둘둘 감은 명주필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몽득이는 다 풀어놓고 다시 저고리를 입었다.
그리고 두사람이 각각 비단필의 한끝씩 잡고 방 한복판에 벌려섰다.
두자정도의 폭에 길이가 예닐곱자가량 돼보이는 흰 천우에 이런 붓글이 씌여있었다.
《강화도민은 죽산을 지지한다. 죽산은 다시 일어나 기어이 민중세상, 통일세상 만들어주소서.》
그리고 그아래로는 서로 다른 필체로 이름자들이 정성껏 적혀져있다. 바위쇠가 몽당수염을 정하게 쓸어내리며 자랑스럽게 설명하였다.
《찬찬히 들여다보게. 제 이름 석자는 다들 저네 피로써 쓴거라네.》
《피로써 쓰다니?》
고향사람들의 정성에 크게 감동되여있던 조봉암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이번에는 몽득이가 호기있게 뒤말을 달았다.
《글쎄 그렇다니까. 처음에는 도장을 찍자고 약속이 됐지. 헌데 막상 도장을 찍자니 내키지 않더구만.
마침 자네 조카가 이런데다가 도장 한번 달랑 찍어보내는게 말이 안된다면서 장도칼로 손가락을 썩둑 베여 이름을 올리지 않겠나? 다들 그게 옳은 법도라며 따라한거라네.
이게 아마 한주일은 섬을 돌아갔네만 누구 하나 고발하지 않았네. 이렇게 모두들 제 이름을 올려놓았네그려.》
말끝에 몽득이가 씩 웃었다.
키가 작고 강단있어보이는 바위쇠와는 대조되게 허우대 크고 맺힌데가 없어보이는 몽득의 여윈 얼굴이 온통 기쁨과 자랑과 행복감으로 무척 선해보였다.
《원 참, 사람들두. 피로 이름을 적어넣다니…
이렇게 하지 않은들 내가 민중의 마음을 모를라구. 더우기 내 고향사람들의…》
조봉암은 고향사람들의 갸륵한 정성이 그대로 모아져있는 비단필을 두손에 받쳐들고 얼굴을 비비며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아래방을 향하여 목갈린 소리로 자식들을 불렀다.
《다들 올라오너라! 봉무, 효경이, 이리로 오너라.》
아래방에 딴 상을 차려놓고 마주앉아있던 효경이내외가 조봉암의 부름에 웃방으로 올라왔다.
조봉암이 그들에게 후더움에 목멘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저걸 보느냐?》
조봉암이 두손으로 명주필을 가리켰다.
두 로인이 들고있는 명주필을 가까이 다가가서 훑어보고 만져본 효경이와 김봉무는 대번에 모든것을 헤아려보고 삽시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아버님들! 참…》
효경이가 비단필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이리 오너라. 고향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자. 내 혼자 할수 없어 너희들을 찾았다. 이게 우리 민중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피와 땀을 다 바치기로 한 우리의 민중이다. 우리 고향사람들이다. 얘들아, 우리 절을 올리자. 고맙다고,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다고…》
조봉암이 흥분해서 한걸음 나서며 비단필앞에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김봉무과 효경이도 돗자리우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였다.
조봉암은 이윽토록 고향사람들을 향하여 허리를 굽힌채 가슴을 들먹거리며 쇠물처럼 끓어번지는 격렬한 흥분에 사로잡혀있었다.
그의 눈앞에 문득 자기의 주장을 지지하며 수풀처럼 솟아오르던 대전시민들의 주먹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속을 끓이던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이 다시 이어졌다.
조봉암은 비단필에서 고향사람들의 드놀지 않는 량심과 각성된 민중의 강직한 기상과 힘을 보았다.
이것은 시대를 떠메고 이제 바야흐로 주인의 사명감을 감수하고 떨쳐나서게 될 민중이 우리 선각자들에게 보내온 최대의 표창이고 영예이다. 우리에게 얹어주는 믿음이고 기대이다.
누가 이들을 감히 무지렁이로 력사의 변두리에 내던질수 있겠는가.
리승만의 학정에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우리 민중, 리승만의 눈치를 보며 목을 조이는 악덕에도 한마디 거스르는 일이 없이 덮어놓고 순종하고 차례지는 가난과 무권리를 숙명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던 우리 민중, 그 민중이 드디여 리승만을 상대로 《아니다!》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것이다. 드디여 리승만을 향하여 주먹을 든것이다.
조봉암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민중은 이제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민중의 심장이 정의를 지켜 달아오르고있다. 저 거룩한 뜻을 내 절대로 저버리지 않으리라. 피바다, 불바다도 피하지 않으리라.)
그는 천지를 진동하는 민중의 숨결을 듣고있었다. 다시금 결사의 각오를 가다듬고있었다.
잠시후에야 조봉암은 눈물에 젖은 얼굴로 친구들을 향해 열정적으로 부르짖었다.
《바위쇠! 몽득이! 이제 돌아가면 고향사람들에게 전하여주게. 네해, 네해만 더 기다려달라구…》
조봉암은 자기의 말에 온 심혼을 다 묻듯 저력있게 당부하였다. 이것은 고향사람들에게 보내는 그의 불같은 맹세였다. 민중에게 다지는 조봉암의 불변의 서약이였다.
바위쇠가 그 말을 받았다.
《네해? … 그러면 될가?》
좀 미심쩍기도 한 모양이다.
조봉암은 반신반의하는 옛친구들의 심중을 헤아리고 마치도 연탁에 나선듯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설명하였다.
《이건 확정적일세. 난 52년도에 당은 고사하고 열명도 안되는 선거운동원들을 가지고도 리승만과 맞붙어 령감을 기겁하게 만들었지. 이번 역시 아직 간판도 걸지 못한 당을 가지고 압도적으로 이겼어. 사실인즉은 이번에 우리가 이길것이라고 기대하고 선거에 뛰여든것은 아니였네. 선거전을 통하여 민중을 각성시키고 당의 기반을 다지자는데 기본목적이 있었다네.
이제 그 당이 도처에 뿌리내리고 줄기를 뻗고 잎새가 무성해질 때를 생각해보라구. 민중이 진보당주위에 굳게 뭉친 큰 힘을 독재가 당해내겠나, 외세가 감히 밟아낼텐가?!
내 말을 믿게. 우리에게는 자신이 생겼소. 절대다수 민중의 지지, 민주의 돛을 올린 우리 당,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심, 이것만 있으면 승리는 우리걸세.》
《그 말 그대로 전해도 될가?》
몽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과 기백이 느껴지는 조봉암의 말이였으나 바위쇠나 몽득이는 어쩐지 뜨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한생을 속히워 살아온 농사군들이다. 일본놈들이 속여먹고 리승만이 속여먹고… 정치인들이라는것들이 노상 살살 얼리고 속이면서 농사군들의 등살을 벗겨왔다. 세상이 농사군들로 하여금 귀맛좋은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고 만사에 의심부터 앞서게 해준것이다.
그들은 오직 자기자신만을 믿을뿐이다. 자기 주먹과 자기의 머리를 믿을뿐이다. 그리고 자기가 땀을 뿌려 가꾸는 땅만을 믿을뿐이다. 땅이야말로 농사군의 수고와 소원을 아껴주고 뿌리는 땀만큼 열매를 맺어주는 미덥고 진실한 친구이다.
아직 그들의 눈에는 리승만이 총칼로 쌓아놓은 폭압의 성벽이 너무도 견고하고 너무도 무섭게 비쳐들어있다.
그들에게는 애당초 선거라는 짓거리가 공연한 놀음처럼 보일것이다.
선거표라는게 종이장인데 종이장이나 가지고 리승만을 꺼꾸러뜨린다는게 너무 허망하고 더구나 리승만이 미국을 끼고 빈번히 선거때마다 제 하고픈대로 지랄발광을 하는 판에 4년후 선거라고 공정하게 될거냐는 그들의 뒤말이 느껴졌다.
《참, 임자들은… 그렇다면 어째서 날 찾아왔나, 이 귀한것까지 들고?!》
조봉암은 친구들의 심중이 리해는 되였으나 한켠으로는 자기 말에 회의심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에게 슬그머니 노여움도 들었다.
두사람중에서 주장이 강하고 비교적 사리도 밝은 바위쇠가 에돌지 않고 진속을 툭 빠개놓았다.
《고맙기때문일세. 우리 농군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속 후련하게 소리쳐주는 죽산이 고맙기때문일세. 나라가 해방되여 10년도 지났는데 어느 누가 농군세상 만들자고 온 나라를 들썩하게 흔들어보았나?! 죽산뿐이지.
헌데 농사군들도 짐작이 있다네. 종이장이나 가지고 리승만의 총칼을 이겨낸다는게 헐치 않을것 같애서 그러니 과히 속쓰지는 말라구. 그래도 우리 농사군들에게 이렇게 하소할데가 있고 바라볼데가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바위쇠는 말끝에 히죽이 웃어보이는데 그 웃음에 오히려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그 목소리, 그 웃음에는 성취될수 없는 래일에 대한 미련과 비애가 절절하다.
조봉암은 친구들의 애바른 심정에 가슴이 바싹 타들었다. 네가 하는 일이 그닥 미덥지 못해도 한풀이정도는 되니 그것만으로도 고맙다는것이다.
(왜 이들은 우리의 승리를 믿어주지 않을가? 어째서? 무엇때문에? … 리승만의 총칼에 억눌려서? …
이들에게 대답을 주자! 희망을 주자! 난 자신이 있다. 리승만을 기어이 권력의 자리에서 들어낼수 있다. 그렇게 못한다면 이 조봉암이 어찌 하늘에 머리들고 살수 있으랴.)
그는 목갈린 어조로 자기의 속을 활짝 헤쳐놓았다.
《이보게, 바위쇠! 몽득이! 난 빈말하지 않네. 고향사람들에게 전해주게, 이 조봉암이 약속한다구.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구 전해주게. 내 말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기로 합세.》
조봉암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신도 다시한번 의지와 힘을 가다듬고싶어 이미 들려준바를 되풀이하면서 보다 강약을 찍어 력설하였다.
《우리는 인차 전지역에서 진보당을 일떠세우게 되네. 난 10년전부터 이걸 위해 간난신고를 다 겪었네. 정연한 지방당조직까지 만들어가지고 본격적인 정의의 전쟁을 시작하겠네.
임자들이 인정한것처럼 이번에 우린 선거투표에서는 리승만을 타승하였네. 추진위원회의 얼마 안되는 간부들이 전화료금도 미처 물 돈이 없어 도시락을 차고 다니면서 이겼단 말일세. 그런데… 진보당이 우뚝 서면야… 네해후 선거때엔 민중과 하나가 된 우리 당은 마침내 승리하게 될걸세.》
《그럼 정말 네해 지나면 세상이 뒤집힌다 이건가?!》
바위쇠가 다짐을 받듯 따지고 드는 소리에 조봉암은 헌걸차게 대꾸하였다.
《여부가 있나!》
《에, 씨원한 소리다. 10년묵은 체증이 뚝 떨어진것 같다더니…》
바위쇠가 허벅다리를 철썩 치며 환성을 올렸다. 드디여 의심증이 해소된것인가. 한동안 흥떠있던 바위쇠가 《헌데…》 하고 뜨아한 어조로 말꼭지를 떼놓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것이다.
《또 무엇이 걱정스러운가?! 꿍져두지 말고 활 털어놓으세. 우리가 짜개바지입고 동락천에서 딩굴 때 난 무서운게 그리 없었는데 사실인즉 바위쇠, 임자의 매운 손찌검은 무서웠다네.》
《에- 내가 언제 우리 무리의 뚝치노릇 하던 임자에게 따귀를 붙였다구.》
그들은 술잔을 든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좌중에 웃음이 가라앉자 조봉암이 다시 각근한 어조로 재촉하였다.
《말해보게. 내 한번 임자따귀건사를 해두지.》
《허허… 사실이야 죽산어른이 촌놈한테서 무슨 쓸말을 들어보겠다구. 에, 그럼 내 속 활 털어놓아봅세. 다름아니구… 리승만 몰아내구 그 다음 정말 민중정권 섰다고 하세. 그 다음에 통일세상이 어떻게 될고? …》
《왜? … 무엇때문에 걱정스럽소?》
《양놈들 있지 않나. 그놈들이 쉽사리 38선철조망을 걷어내겠다고 할가? …아니, 당초에 미국이 정말 리승만이 무너지는걸 보고만 있자 할가? 우리 강화사람들이야 오랑캐들의 심보를 알고도 남음이 있지 않나. 난 사실인즉 이게 제일 걱정일세. 이번 선거까지 치르고나니 부질없는 꿈만 꾸는것 같은게…》
바위쇠는 말끝에 긴 한숨을 달아놓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조봉암은 바위쇠의 걱정스러운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옛친구의 무랍없는 진언이 무등 고맙기만 하다. 그 의미에 공감되는바도 있다. 조봉암은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생각에 잠겼다가 결패있게 대답을 주었다.
《물론! … 임자의 걱정이 정 허망한게 아닐세. 나도 그런 걱정이 바이 없는바도 아니구. 허지만… 우리가 주인구실을 잘하면 미국도 어쩌지 못해.》
《미국것들이 정말 손털고 나앉게 될가?》
《걱정말게.》
조봉암은 자신만만해서 부르짖었다.
《우린 리승만을 몰아낸 다음에는 즉시 미군철거를 미국에 공개적으로 요구할걸세. 주인이 물러가라고 주먹질인데야 미국것들이 구들에 엉치붙이고 앉아있을 체면이 있겠는가. 주변환경을 봐도 해방후 미군에 앞서 들어왔던 쏘련군은 돌아간지 옛날이요. 전쟁때 들어왔던 중국군대도 불원장래에 돌아갈거라 하네. 그러니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구 미국이 더이상 눌러배길 명분은 없지 않나. 그 다음엔 북과 마주앉으면 그게 통일이 아닐가? 물론 여기까지는 복잡한 문제가 산적하겠지만 쉽게 추려 설명한다면 이렇게 되는거요. 우린 기어이 해낼거요. 어떤가, 이 사람들아?!》
《옳지. 딴은 그렇겠구만. 우리 농사군들이 그 속내를 다 알수 있나.》
바위쇠는 아직도 미타해서 중얼거리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속이 무른 몽득이가 벙시레 웃으며 떠들었다.
《이보게, 바위쇠! 우리가 이 소리 듣자구 왔네그려! 어? 숨이 나간다! 바다건너온 보람이 있어.
파도가 인다구 배가 떠나지 못하겠다는걸 저 바위쇠가 선장더러 네놈도 강화사람이냐고 추상같이 호령해서 풍랑을 넘어왔지. 배값을 백배천배로 받아안고 가게 되였네그려.》
바위쇠도 너무도 투지만만한 조봉암의 기상과 몽득의 좀 들뜬듯 한 기분에 말려들어 호기있게 소리쳤다.
《얘, 효경아! 연경이 총에 맞았다지? 아버지를 지켜 총탄을 받았다구?!
아버지 고향사람들이 죽산을 지켜낸 따님에게 절을 한다고 해라. 아무렴, 연경인 진짜 강화처녀야. 강화사람들은 예로부터 꺾이지 않았다. 정말 용해!
자, 술 한잔 더 부어다오. 속이 답답해왔다가 천금만금을 안고 간다. 자, 또 한잔! 그래그래… 내 좀 푹 취해보련다.》
바위쇠가 혀가 꼬부라진 소리를 내면서도 그냥 술잔을 받는다.
효경이가 몽득의 술잔에도 술을 찰찰 부어주자 몽득이는 술잔을 쳐들고 갈린 어조로 효경에게 말했다.
《고맙다. 난 지금도 북으로 간 맏이와 딸년을 꿈속에서 자주 보군 한단다. 그애들을 만나보지 못하구서야 어떻게 눈을 감을수 있겠느냐?! 그런즉 늬 아버지 통일세상 만들어줄 때까지는 꼭 살아야겠다.》
몽득이는 북에 가있을 자식들의 모습이 사무쳐들어 눈물을 떨구면서도 껄껄 웃었다.
조봉암은 전번 섬에서도 가슴을 두드리며 아들딸얘기를 하던 친구의 물기어린 눈을 보며 그냥 속이 저릿해왔다.
몽득의 애끓는 소원이 속에 재가 차게 한다.
효경이도 몽득의 심정에 속이 쓰려와 곡진하게 위로를 하였다.
《아버님, 오래오래 사세요. 북녘의 아드님이랑 따님네를 꼭 만나시게 될거예요.》
《참말 그렇게 될가?》
《그러문요…》
《고맙다. 효경아, 그 말 한마디만 해도 산삼, 록용 한가락씩 먹은것만 하다. 병수 말이 생각나는구나. 눈꺼풀 버티고라도 길게 살아야 한댔지. 통일세상 못 보구 북에서 생겼을 내 손자, 손녀들 얼굴 보지 못하고야 내사 어떻게 눈감겠니?! 또 한잔 마시겠다.》
효경이는 그들의 술잔을 또 채워주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앉았다.
《아버지도 드세요.》 하고 아버지의 잔에 술을 붓는 효경의 고운 눈에 이슬이 반짝이였다.
꺼칠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희열이 넘치고 락관이 어려있는것이 그의 가슴에도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었던것이다.
꺾이지 않는 신념, 바위같은 의지, 민중의 변함없는 격찬, 진심의 격려… 이 모든것이 이 방안에서 하나로 융합되여 모두의 가슴을 눈물겹게 덥혀주고있었다.
《연경이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아마 그앤 너무 기뻐 엉엉 울었을지두 몰라요.》
효경이가 가만히 속삭이였다.
《그 덜렁이가 왜 울겠니?! 한바탕 떠들썩대다가 신이 나서 바이올린을 들고 나서겠지.》
《그럴가요? … 참, 이 뜻깊은 날 제가 피아노라도 탈가요?》
《피아노? 한곡 듣고싶기는 한데… 그만둬라. 밤이 너무 깊었구나. 그러지 않아도 밤마다 이웃집들에서 우리때문에 껴묻어 욕보군 하는데… 옛날부터 팔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 했는데 우린 사실 이웃들에게 미안한 일이 두루 많다.》
캄캄한 창밖을 언뜻 일별하고난 조봉암은 아쉬운대로 효경을 만류하였다.
문득 피로로 밀려드는 잠기로 눈을 떴다감았다하던 바위쇠가 허리를 폈다.
《참 이보게, 죽산! 내 여기 올 때 우리 집에 가보로 내려오는 그 누구더라…》
바위쇠가 분주하게 주머니를 뒤지는데 몽득이가 퉁을 놓았다.
《임자 오늘 너무 마시고 말이 많아. 그건 왜 꺼낼라구 하나. 우리 죽산어르신이 그걸 모르고있을가봐?! 단장이라는게 쯧쯧… 내 그렇게 말렸는데두 종시…》
《알겠지, 알구말구… 하지만 내 다시금 귀에 새겨주고싶어 이렇게 써가지고 왔네. 죽산어르신이 리승만을 몰아내고나면 우리같은 촌사람 다시 만나볼새나 있을라구. 김시습이라고… 거 있잖나…》
《오… 그런 인물이 있었지. 15세기더라… 김시습이라는 시인이 있었소. 일생을 불우하게 살면서도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며 좋은 글을 많이 남긴 지조있는 문장가였지.》
《아아, 옳소… 그분의 문집이 우리 집에 한권 있는데 내 이따금 들춰보며 한숨을 짓군 한다오. 한번 들어보시겠소? 이런게 있수다.》
바위쇠는 몽득이가 그냥 눈을 흘기였으나 개의치 않고 부등부등 안주머니에서 참지 한장을 펴들었다.
《한번 읽어주오.》
조봉암은 정색하고 사뭇 곰살궂게 부탁하였다.
그리고는 엄한 스승앞에 앉아있는 학동들처럼 정하게 자세를 가지였다.
《이런거라우.
<…나라님은 언제나 백성을 잊지 말어야 한다.
수라상을 받을 때마다 백성이 지금 무엇을 먹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대궐에 들어갈 때면 백성이 집을 쓰고사는것을 걱정해야 하며 수레를 타고 행차할 때는 백성이 당하는 페해부터 념려해야 한다.…>
또 읽을가?》
바위쇠는 마치 글방도령이 맹자 왈 공자 왈 하듯 허리를 앞뒤로 흔들며 읽어내려가다가 제풀에 좀 어색하였던지 씩 웃으며 물었다.
《그만하게.》
몽득이가 또 손을 내저었다.
《계속해주게. 참 뜻이 깊고 바른말이요.》
조봉암이 고무해주자 바위쇠는 신명이 나서 또다시 제법 운까지 붙여 위엄있게 훈시조로 읽어내려갔다.
조봉암은 속이 뭉클해왔다.
섬을 떠나오면서 김시습의 글까지 따로 적어 품에 간수하고 온 그 뜻과 애모쁜 소원이야말로 얼마나 의로운가. 이것은 사실 이 땅의 정치가들에게 내리는 백성의 회초리이다. 자기에게 새겨주는 백성의 부탁이고 신성한 가르침이다.
《…자고로 동헌대청에서는 애민을 잠꼬대처럼 외우고있으나 실은 문무백관들은 백성을 등지고 산다.
그네들이 떠들기는 백성은 나라의 근간이요, 백성의 기름으로 나라가 살찐다, 그러니 수령방백은 고을의 부모라 백성을 적자처럼 사랑해야 하느니라고 한다. 하건만 그게 다 백성을 다스리는 얼림수작이라…
뭐 이러루한거요… 에, 땀이 난다. 훈도질도 헐치 않겠네.》
바위쇠는 읽다말고 번들거리는 고동색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땀기를 팔소매로 벅벅 지우며 헤식게 웃었다.
《이보게, 그걸 날 주게나.》
조봉암은 손을 내밀었다.
《이거 말인가? 그건 웨? …》
바위쇠가 당치않은 일이라는듯 고개를 흔들었다.
《내 그 글을 아침저녁으로 외우며 살아가려네.》
그러자 바위쇠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몽득에게 눈을 흘기더니 참지를 두손에 받쳐 내밀었다.
조봉암은 바위쇠가 한 글자 두 글자 또박또박 네모방정하게 써온 글들을 한번 읽고나서 정히 접어 웃주머니에 넣었다.
바위쇠는 물론 몽득이도 하찮은 종이장을 귀하게 받아들이는 조봉암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졸음기에 지쳐 꺼덕꺼덕 졸기 시작하였다.
조봉암은 고향땅의 미더운 친구들을 자기 방에 눕혀놓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