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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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만의 사무실로 비서가 한통의 정보문을 들고 들어섰다.
어제 밤 자정이 지나 진보당추진위원회 간사장 윤기중이 일간신문의 출입기자들을 불의에 서울 숙명녀자대학교의 학생회 회의실에 불러놓고 조봉암에 대한 테로행위를 일일이 상세하게 폭로했다는 정보였다.
윤기중은 구체적인 증언기록과 사진자료까지 제공하면서 이번 선거기간에 감행된 진보당반대세력의 도발을 빠짐없이 렬거하고 이에 대한 법정소송을 벌릴것이라는것을 선언하였다.
이 자료는 내무부계통이 아니라 미군방첩대를 통하여 새벽무렵에 경무대비서실에 와닿았다.
그것은 리승만에게서 1급정보에 속하는 특종소식이였다.
1급정보는 리승만이 어디에 있건 어떤 일을 하건 관계없이 지체없이 보고하고 긴급해결을 바라는 긴급한 정보들이였다.
비서실이 복닥소동을 벌리고 침방에서 코를 골던 리승만도 하품질을 하며 사무실에 나와야 했다.
프란체스까까지도 토달거리며 령감을 부축하고 나왔다.
아니나다를가 정보문을 받아든 령감의 상통에 말짱 잠기가 가셔지고 비린청이 몰방으로 터져나왔다.
《이놈들!… 이놈들!… 이 우남의 목에 그예 바줄을 매는구나. 이놈들!》
리승만의 욕지거리가 그냥 《이놈들!》을 련발하는것이였는데 측근비서들은 그게 어느 놈들을 념두에 두는지 몰라 쩔쩔 매기만 하였다.
리승만이 당장 권태구를 찾으니 집에서 전화를 받는데 침대에서 화닥닥 깨여나 전화받는게 헨둥해서 전화를 놓아버렸다.
언제나 계절에 관계없이 밤색잠바를 걸치고 다니는 금발머리사나이인 미군방첩대장 버드가 맨 먼저 오고 뒤미처 당도한 수급졸개들의 참가밑에 긴급모의가 벌어졌다.
《버드대좌, 참말로 귀한 정보 뽑아냈소. 날 좀더 도와주오. 이 불을 꺼야지 이게 그대로 세간에 나가면 이번 선거는 다한거요. 이건 거기서 맡아서 딱 부러지게 해주시오.》
리승만은 오십대밖에 안되는 버드대좌에게 낮추 붙으며 비루하게 구걸하였다.
렴치고 체면이고 차릴 계제가 아니였다.
《지금 여론이 입을 모아 신익희를 내가 어쨌노라고 걸고들고있는 판에 이게 신문에 나가보시오. 숱한 돈과 재물을 뿌린 선거가 막판에 와서 뒤집힐건 뻔한 일이요.
미국이 아무리 수를 써야 이것만 헤집어놓으면 행차뒤 나발이 되오. 대좌가 좀 도와주오. 이제 이틀, 이틀만 견디면 되오. 선거후에야 까짓거 그따위 나발 백번 불어야 크게 흠될게 없지. 선거를 치른 다음에야 어디서나 있는 일이 아니겠소.》
리승만이 이렇게 징징 우는소리를 늘어놓자 버드는 자신만만해서 흰목을 내둘렀다.
《믿어주십시오.》
버드는 이 한마디 남겨놓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는 리승만의 집무실 문턱을 넘어서자 즉시 미군방첩대 서울본부에 전화를 걸어 비상을 선포하게 하였다.
버드대좌의 방에 정보제공자가 호출되고 진보당출입기자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방첩대의 풍차에 실려 끌려왔다.
매개 신문사에 미군장교들이 직접 파견되여 제출된 원고와 사진자료들이 소각되고 이미 인쇄에 들어간 신문들도 재편집으로 신문발행이 늦어지게 되였다. 신문사 사장들에게서 앞으로 승인되지 않은 원고는 절대 싣지 않겠다는 담보를 받아냈다.
때없이 총칼의 란무속에 벌어진 소동에 언론기관들이 화들짝거리고 매문에 이골난 언론인들도 몸살을 앓았다.
서울언론이란 약자들앞에서는 영웅호걸들처럼 으시대지만 강자앞에서는 웃음과 몸을 파는 기녀들처럼 가련하고 좀스럽기 그지없다.
복닥소동은 버드의 지휘밑에 빠른 속도로 빈틈없이 마무리되였다.
버드는 10시경에 리승만에게 전화로 직접 통보하였다.
《각하, 당신의 의도대로 일은 끝났습니다.》
전화를 받고나서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쉰 리승만은 즉시 비서실에 지시하여 권태구와 량지학을 불러오게 하였다.
리승만은 그들이 들어서자 앉으라는 소리도 없이 정보문을 던져 읽어보게 하고는 줄욕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임자들 이따위로 일하고도 국록에 살쪄볼 면목이 있어?!
내무가 하는 일 도대체 서툴러. 이렇게 한 구멍이 터져나가는줄도 모르고 그냥 총소리만 내?! 왜 내무가 하는짓 돌아서기 바쁘게 빵짝이 나? 지금껏 임자가 해놓은 일 뭐이고 이렇게 저질러놓은 일은 얼마나 되나?
여기저기서 미주알고주알 걸고들게만 만들어놓으니 이거야 어디 잠자리에 든들 잘수 있으며 성찬인들 입에 넘길수 있나?!
이런게 오늘신문에 나갔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선거승리는 고사하고 자네 목이 서울남대문앞에 달리울걸세.
이 우남 잡아먹지 못해 기를 쓰는 세상앞에 이런 큰 미끼 던져지는것도 모르구 제 집에서 비단이불 감아쓰고
녀편네 끼고 자
는 임자가 그래 내무의 총수가 확실해?!》
리승만은 권태구를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듣기가 거북한 비린청으로 그냥 고아댔다.
권태구는 그 비둔한 몸을 어떻게 건사할지 몰라 령감이 악을 쓸 때마다 흠칫흠칫 떨기만 하였다. 그리고 쥐구멍이라도 찾는 시늉을 내며 눈건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허둥거렸다.
평소에 자기의 무게와 중심을 잃지 않군 하던 량지학도 리승만이 만나자바람으로 다짜고짜 호통질이니 기절초풍하여 굳어질수밖에 없었다.
《래일… 모레… 글피… 글피야. 자유당, 어때? 한번 임자가 말해보지. 자네들 선거에서 자신이 있어?》
《아, 물론입지요. 각하께서 된고비를 단신으로 또 막아주셨는데 이제야 무슨 불집이 또 터지겠습니까? 엊그제 여론조사결과를 보니 각하께서 비할바가 없이 앞섰습니다.》
《내앞에서도 여론조사결과야? 참말로 경쟁할것 같으면 어떻게 될것 같은가?! 내 알고싶고 해야 할 소리도 있어 그러니 보태지 말고 그대로 보고하게.》
그 소리에 량지학은 정신을 바짝 도사렸다.
정작 바른소리를 할것 같으면 당장 《이놈-》 하고 리승만의 부아통이 터질것이고 그 다음에는 끝장이 날 판이다.
그는 프란체스까의 눈에서 불꽃이 튕겨지고있는것을 육감으로 느꼈다.
어떤 경우에도 리승만의 속을 허비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그 녀자의 주장이다. 각하의 건강에 해되는 말은 이 경무대의 안에서는 백해무익이라는것이다.
《글쎄…》
량지학은 끝내 뒤말을 삼키고 입속으로 웅얼거리였다.
리승만이 권태구쪽을 살피니 그쪽은 이제는 고삐를 자유당쪽에 넘기게 되여 다행이라는듯 시치미를 떼고 아닌보살이다.
두사람을 번갈아 노려보던 리승만이 버럭 증을 냈다.
《그런즉… 백성이 이 우남을 배신했다는건가? … 건국을 해주고 공산당으로부터 나라 반쪽을 지켜준 이 우남을?! 변괴로다! … 말해보게! 자유당, 임자부터!》
량지학이 하는수없이 무슨 소리든지 해야 될것 같아 쓰거운대로 입을 열었다.
목구멍으로 기여드는듯 한 어조로 천천히 말마디를 씹었다.
《아니올시다. 실은 조봉암의 그 공약이라는게… 민심을 부채질해서…》
힘들게 더듬거리던 량지학은 리승만의 뭉툭한 입부리가 삐져나오는것을 보자 얼른 눈길을 꺾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리승만의 입에서 탄식조의 넉두리가 시름겹게 흘러나왔다.
《조봉암이 어쨌다는거나? 이 우남과 어깨를 견준다는거야? 민의운동은 뭐고? 련판장에만도 300만이나 제 이름들을 적어넣었노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내무? …》
《예!》
권태구가 흠칫거리였다. 그는 리승만을 사뭇 공경스럽게 바라보며 우선 배창에 힘을 주었다.
(래일은 어찌되든 우선 당장은 이 자리에서 화액은 피해야 상책이다. 저 자유당 밥통같이 말 굴리는 재간이
없이야 명이 얼
마나 갈가? 그러니 밤낮으로 자유당보고 먹통, 죽통 야단이지. 도대체 각하께 심사 틀어질 소릴 해서 줄줄이 매 살건 뭐람?!)
권태구는 리승만과 자주 상종하면서 한가지만은 똑똑하게 파악하고 알맞는 변신술을 터득해두었다. 그건 령감이 제 잔등 가려운데를 긁어주는 사람을 제일 귀애한다는것이다. 그 처방은 간단하다.
권태구는 자신만만하게 굵은 소리로 천연스럽게 주어섬기기 시작하였다.
《각하! 그 무슨 지지요, 공약이요, 민심이요 두루 소리가 많지만 각하께서 심려하실건 하나도 없습니다.
서울이나 산골동네나 모두가 한입처럼 각하의 장생불로를 바라마지 않는데 그깟놈들 송사리무리가 요동친다고 한강물 흐려지겠습니까?
선거전의 승패라는거야 우리 내무부의 소관인데 사실이야 그게 요식절차이지 그 무슨 의미가 있는 놀음입니까.
미국어른들이 각하를 이미 선택하고 각하께서 백성의 충의를 가엾게 여기시여 팔순고령에 대통령선거에 나서시였으면 그로써 만사가 끝난 잔치가 아니겠습니까.
념려하실게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이 떠드는대로 공명선거를 합시다.
저희들이 각하의 승전에 흠집이 없도록 알아서 하겠으니 그저 장생불로에만 류념하여주십시오.
각하께서 귀중한 옥체 보존하셔야 나라가 억척이구 백성들도 태평하게 살게 될것이니 그리 아시고 장생불로만 하십시오.》
권태구는 령감의 비위를 맞춰가며 구렝이 담 넘듯 이말저말 굴려 어려운 고비를 어물쩍하니 넘겨버렸다.
리승만의 안색에 화기가 돌고 입이 호함지게 벌어졌다.
그러고보면 권태구의 머리도 정 아둔한편은 아니라는 대견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허허… 내무의 말은 그럴사한데 두고보세나. 헌데 내무도 이번 일은 신통치 않아. 어째 임자네는 진보당쪽에 사람 하나 똑똑히 박아넣지 못했나?》
《그건 저… 정 없는것도 아닌데…》
《그리고 일처리가 거칠거던. 좀 소리가 나지 않게 일하지 못하겠나. 하여간 조봉암은 저대로 놔두어서는 안될 인물이야. 김창룡이 잘못 죽었어. 그놈이 제구실 다하고 죽어야 하는건데…》
리승만이 심심치 않게 꺼내놓군 하는 지청구에 권태구는 넌덜머리가 났으나 여전히 개올려야만 하였다.
《각하, 그래도 조봉암이 줄행랑을 놓지 않았습니까?》
《어저께 대전에서는 조봉암만세소리가 하늘을 찔렀다면서?》
《거야 뭐… 민심이라는거야 물고를 째주기탓이 아니겠습니까. 조봉암이 만세 하니깐 무지렁이백성놈들도 만세 해본거지요.
이제는 그것마저 아예 눌러버렸으니 다시는 선거날까지 그런 괴이한 소리가 나오지 않을겁니다.》
《음, 그러고보면 내무도 제 몫은 가히 하는것이 분명해.》
리승만은 이렇게 제놈의 선거놀음을 받드는 쌍기둥인 자유당과 내무부의 우두머리들을 말뚝쥐들처럼 세워놓고 올려췄다 내리깎았다 하다가 식당에 끌고 가 프란체스까가 하사하는 양주 한잔씩 걸치게 한 다음 돌려보냈다.
그들이 나가자 리승만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권태구는 사람은 노죽이 있고 늘어붙는 재주가 있어서 좋은데 주먹패출신이라 거칠어서 탈이야.》
《이번에는 좀 내무를 머리가 도는 사람으로 골라보세요. 저사람은 밤강도처럼 보기에도 스산한게 꿈자리에 나타날가봐 걱정이예요. 꼭 상통이 하마상인데 마주앉아 식사나 한끼 하겠어요? 아유, 우직하기란…》
《마미소원이 그렇다면야 이번 내무는 임자가 흠뻑해할만 한 사내를 골라보지. 그래도 이런 선거놀음에는 주먹센 놈이 나아. 우리 속담에도 우악한 놈이 범을 잡는다고 했는데 저 사람의 손탁이 이제 크게 일을 낼걸세.
그리구 저 권태구가 실은 우직한 녀석이 아니지. 아주 엉큼하고 속궁리가 늘어빠진 작자야. 이 우남을 등에 업고 축 처져붙어가지고서는 제 빼먹을것은 우물쩍하게 다 뽑아삼키는 아주 의뭉스런 놈이야.
그까짓 눈을 꾹 감고 곱게 봐주면 되는거요. 내게 입안의 혀같은 인물로 돼주는데야 뭐 탓할게 있나. 허허…》
리승만은 그제야 속이 풀려서 흥그럽게 벌씬거렸다.
이날 저녁 량지학과 권태구는 조선호텔에 가서 또다시 다울링에게서 진땀을 뽑아야 했다.
다울링은 이날 보고하러 온 남조선의 정계와 행정부의 인물들을 미국무성이 직접 진행한 비밀여론조사결과를 가지고 사정없이 몰아댔다. 더구나 량지학까지 이번 선거에서 리승만이 이길수 있는 확률이 낮다고 미국무성조사결과를 긍정하자 그들을 두고 서울의 《베감투》요, 《바지저고리》요, 《아메바》들이요 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다울링은 제일 다루기 쉬운 권태구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로골적으로 그를 불법무법에로 부추겼다.
《내무부 장관! 이제는 당신이 선거승패의 상벌을 받게 돼있다는것을 명심하시오. 개표에서 이겨야 하오.》
다울링은 《민주의 사도》라는 허울마저 벗어던지였다.
《개표… 개표가 중요하오. 리승만은 이미 투표에서는 패했소. 그러니 필요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하시오. 다만 서울에서는… 여론의 눈이 많단 말이요. 그러니 여기서는 민주선거의 시늉을 하는게 좋소. 내무부 장관, 내가 뭘 념두에 두는지 알겠는가?》
《예예, 알다마다요.》
권태구는 다울링의 방에서 나오자 이미 불러놓은 도경찰국장들을 거느리고 곧바로 비밀료정으로 갔다.
여기서 권태구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술상을 펴놓고 수하참모들이 며칠 밤샘을 하면서 작성한 선거요령서라는것을 제법 장중하게 발표하였다.
《첫째, 무조건 구실을 붙여 진보당참관인을 개표장소에서 추방할것.
둘째, 무데기선거표를 사전에 준비했다가 리용할것.
셋째, 선거장에서 먼저 진보당지지자들이 투표를 하도록 한 다음 선거자들앞에서 주리를 틀어놓을것.
넷째, 개표시 민주당 장면후보에 대한 찬반표는 그대로 계산해줄것이며 이를 걸고 민주당참관인들의 지지, 묵인을 유도할것.
자유당의 부통령후보 리기붕의 당선여하는 내무부가 책임지지 않기로 할것임.
다섯째, 선거장에 기계가 도입되였다는 등 각종 필요한 류언비어를 만들어 실정에 맞게 리용하여 진보당후보지지표를 최소화시킬것.
여섯째, 모든 수단을 강구하였음에도 조봉암지지표가 우세할 때에는 선거발표를 거꾸로 해버릴것.
력사는 전승장군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 리박사를 승자로 만들면 된다. 선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로 인한 차후 시비는 내무부가 책임질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내무부는 각 도경찰국장들과 수하경찰관들의 행동여하를 엄밀히 분석, 평가할것이며 선거후 해당한 상벌을 적용할것이다.》
이어 권태구는 만약 선거에서 패하면 즉각 파직될것이라는 문서장을 내놓고 도경찰국장들이 일일이 지장을 누르게 하였다.
이것은 력사에 류례가 없는 피비린 란투극에로 깡패들을 부추기는 서곡이였다.
이로써 《법》과 《민주주의수호자》로 자처하는 치안의 최고책임자가 그 초보적절차를 정면에서 배격하고 유린하는 깡패두목으로 공개적으로 나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