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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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은 학교의 교장실에서 한시간동안 시민대표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함께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리 크지 않은 녀자고등학교 운동장은 시와 주변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부랴부랴 책상들을 련결하고 그우에 돗자리를 편 가설무대에 오른 조봉암은 군중의 열광적인 박수소리에 허리를 깊이 꺾어보였다.
그는 주석단에 앉아 운동장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곳곳에 《조봉암후보를 지지한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민중은 뭉치자!》라는 구호판들을 든 학생들이 군중을 에워싸고있었다. 대전시 대학생련합회가 대전시안의 각 대학들에서 선발한 학생청년들이였다.
우익깡패들이 선거선전도중에 집회장에 몰려들어 소란을 피우는 전례가 많았다. 저렇게 끌끌한 대학생들이 울바자를 치고있다가 일단 불량한 움직임만 있으면 주저없이 맞받아나가군 한다.
먼저 대전시민대표가 연탁에 나와 연설자를 소개하였다. 소개끝에 관악산기슭에서 변을 당한 소식을 전달하였다.
립추의 여지없이 운집한 수만명의 군중이 삽시에 술렁거리였다. 운동장의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올랐다.
《도발자들을 징벌하라!》
《죽산선생님을 지키자!》
조봉암이 드디여 연탁에 나섰다. 도발자들의 소식에 격동된 군중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올리면서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조봉암이 말을 떼려고 하는데 연경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연탁우에 한장의 종이장을 펴놓고 다른 말없이 물러갔다.
조봉암은 재빨리 눈으로 훑었다.
《연설할 때 군중들가까이에 다가서지 말것. 연설은 짧게 하되 15분을 초과하지 말것. 연설을 시작하여 30분후에 도발이 예견됨. 연설후 즉시 현지를 떠나되 절대로 서울에 돌아오느라고 하지 말고 잠행할것. 관악산과 서울행 대도로에서 도발이 예견됨.
죽산선생님을 사모하는 민중의 벗으로부터.》
《연경이 보충함. 방금 서울에서 패장이 택시를 타고 이 정보를 가지고 도착함.》
조봉암은 뒤를 돌아보고 연경이와 그옆에 서있는 부회장청년에게로 마음을 놓으라는듯 빙그레 웃어보였다.
조봉암은 그 투서장을 들고 연설을 시작하였다.
《대전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모두들 생업에 바쁘신 시간에 이렇게 저를 기다려주고 성심성의로 맞아주시니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방금 쪽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고하니 한마디로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자리를 뜨라는 경고장입니다.
방금전에 대전시민대표선생이 전달하였지만 나는 관악산기슭에서 이미 고의적인 책동이 틀림없는 자동차충돌사고를 당하고 왔습니다. 바로 저기에 앉아있는…》
조봉암은 돌아서서 시민대표들속에 앉아있는 김봉무와 청년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내 비서 겸 운전수이고 그옆의 젊은이가 저를 지켜주느라고 자원하여온 고려대학교 학생입니다.》
호명을 받은 김봉무와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군중을 향해 인사를 하였다. 이마와 목에 붕대를 두른 그들이 굽석 허리를 굽히자 군중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내였다.
《저는 계속 이러한 공격과 비방과 음해를 받고있습니다.
저의 집에는 돌멩이가 끊임없이 날아들고 집주변에서는 어둠을 기다린 우익망나니들이 모여들어 새벽까지 소란을 피우군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반대파들이 이렇게 저를 모해하려고 그냥 악을 쓰고 제가 여러분들과 만나는것조차 두려워하고 방해하고 더러운짓을 하는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제가 여러분들의 지지표를 받아 대통령으로 되면 여러분들을 위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나라의 통일이 가까워오기때문입니다.
수탈을 당하고 착취를 받으며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로동자, 농민, 지식인, 중소기업가와 소상인들, 청년학생들이 주인이 되고 잘사는 세상이 되기때문입니다.
이걸 어떤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생하여 사는 부자들과 권세가들, 거기에 붙어사는 간신무리들입니다.
어떻습니까? 제 말이 옳습니까, 그릅니까?》
조봉암이 이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담한 어조로 마치도 무릎을 맞대고 옛말을 들려주듯 귀에 쏙쏙 들어가게 엮어가다가 슬쩍 물음을 던져놓자 그의 연설에 취해들었던 군중이 웃고 떠들며 박수를 쳤다.
《옳소!》
조봉암은 손을 저어 그들의 환호에 답례를 보내고나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더 구체적으로 이 조봉암이 만들려는 세상이 어떤지 설명해봅시다.
길게 설명해야 되겠지만 간추려서 말씀드린다면 첫째로, 진실로 집권자가 선거자들앞에서 모든것을 책임지는 정치를 한다는것입니다. 민중이 먹고 입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음편히 살수 있는 생활환경에 이르기까지 집권자가 책임진다는 뜻이올시다.
여러분들의 밥상에 하루 세끼 멀건 죽물그릇이 놓여도, 곳곳마다 거지가 떼지어 다녀도, 권세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말 한마디로 애매한 사람들이 가막소에 끌려가도 마땅히 대통령부터 목달아매야 한다는것이 바로 책임정치입니다.
한데 서울통치권을 살펴보시오.
옛날에 장수 하나가 공을 세울 때 수백군사가 백골이 된다고 했다면 지금은 집권자 한사람을 내세우느라 수천만이 고역에 몸살을 앓고있단 말이요. 이래서는 안됩니다.
둘째로는 모두가 화목해서 골고루 살고 함께 번영할수 있게 수탈이 없고 착취가 없고 제 오륙을 놀린것만큼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것입니다. 부자가 돼도 반드시 모두가 함께 부자가 되자는겁니다.
이렇게 하자면 지금과 같이 몇몇 사람이 권력의 힘을 빌어 국가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벼락치부를 하는 페단을 일소하고 국가가 경제를 틀어쥐고 다같이 일하고 균등하게 분배를 받도록 경제체계를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처럼 쌀밥에 고기국 한번 배부르게 먹어보지도 못하고 속에 있는 말 한마디 번지자 해도 이 눈치 저 눈치 살펴야 하는 세상이 좋다는분이 있으면 어디 한번 손을 들어보시오.》
조봉암은 말을 끊고 청중을 휘휘 둘러보았다.
한명도 손을 올리는 사람이 없다. 그럴수밖에…
누가 자유가 질식되고 존엄이 무시되고 인간다운 생활기반이 망가진 삶의 불모지를 원하겠는가.
《그렇다면 사람들모두가 마음이 편해서 의좋게 지내고 고루고루 잘 먹고 잘 입고 자식공부도 마음껏 시키고 병이 나면 국가가 무료로 고쳐주는 세상을 바라는분들은 손을 들어주시오.》
《옳수다! 그런 세상 제발 만들어주시우!》
《우린 죽산선생만 믿수다!》
운동장의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팔들이 수풀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조봉암에게 봐달라는듯 저마끔 두팔을 높이 추켜들고 흔들었다.
운동장이 통채로 환희에 휩싸여 설레인다.
조봉암은 그들과 더불어 자기도 두주먹을 번쩍 쳐들며 소리높이 선언하였다.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게 우리 진보당입니다!》
그러자 또다시 청중속에서 우렁찬 박수가 터지고 환호가 울리고 운동장을 에워싼 오색기발과 구호판들이 춤을 추었다.
《셋째로, 중요한것이 있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북통일을 하자는것입니다.
전쟁이 어떠한가는 우리모두가 뼈저리게 목격하고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꼭 북진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진이란 뭡니까? 전쟁입니다.
나는 결사반대입니다. 한번 치러본 전쟁에서 수백만의 아들, 딸, 남편을 잃고 온 나라가 재더미로 되여 아직도 재가루를 다 가셔내지 못하고있는데 또 이제 전쟁을 해요?
전쟁으로 해서 겨레가 흘린 피와 눈물이 아직도 강산을 적시고 민심도 층층 열백으로 갈라져 조상대대로 한동네에서 오손도손 살아온 이웃들이 하루아침새에 등지고 살게 되였는데 통일시킨다는 명분으로 또 전쟁을 해야 한다니…
이게 당초에 이 나라에 태를 묻은 사람들이 입에 올릴 말입니까?! 원체 동족끼리 싸우는건 머저리들이나 할짓입니다. 전쟁이란 무고한 백성에 대한 대살륙전이며 국력의 대소모전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해서 잘살아볼 궁리만 해야 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네들이 대전사람들을 대표해서 대답하여보시오. 북진을 해서 숱한 아들딸 죽이고 남북삼천리를 재더미로 만들면서 나라통일을 해야 한다는분들은 손을 들어주시오.》
조봉암이 또다시 물음을 던져놓자 주먹 몇개가 주밋거리며 올라갔다. 그나마 군중의 악에 받친 욕설에 묻혀 쑥 움츠러들고말았다.
《미치지 않았나? 주먹을 내리지 못해?!》
《주먹 올린 놈들을 몰아내라! 젠장, 너희들이나 아들딸 총 메우고 림진강을 넘어라.》
《저것들도 대전사람이야? 전쟁을 하겠다는 놈 들어내서 조리돌림 시켜라!》
《전쟁통에 난 팔 하나 떼웠다. 너희들은 팔다리 성한게 한스러우냐?!》
조봉암은 대양의 파도같이 움씰거리는 군중을 굽어보며 무등 커다란 감개에 휩싸였다.
(누가 민중은 때리는대로 맞아죽고 몰아가는대로 쫓겨가는 금수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던가. 폭군들이 그렇게 공공연하게 지껄여왔지. 력사책들에 현명하다는 기록이 남겨진 통치자들도 백성은 나라의 뿌리라고 꿀맛같은 소리를 부지기수로 외워왔지만 그것은 어데까지나 백성을 달래이는 감언리설이였고 자기를 내세우기 위한 정치의 술수에 불과한것이였다. 얼마 안되는 그 소수의 현인군자들의 눈에도 실은 백성이란 녀왕의 날개짓을 따르는 로동벌과 같은 존재로 비천하게만 보아졌을뿐이였다.
이제 우리 정치가들도 민중에 대한 그러한 시각이 시대착오적이며 그러한 인식이야말로 나라를 멸망시키며 자신도 멸망시킨다는 원숙한 의식을 가질 때가 되였다.
백성이야말로 정치의 터밭이며 정치의 목적이며 정치의 우렬이 드러나는 시금석이며 정치의 종말도 선언하는 무한의 존재이다.
리승만이 한갖 쌀을 먹는 마소무리로 취급해온 민중이 지금 자기의 붉은 주먹으로 패당의 악정을 심판하고 리승만정치의 종식을 선언하고있지 않는가.)
조봉암은 이렇게 앙양된 흥분속에서 정치가라는 자기의 존재에 대하여 다시금 랭엄하게 그 의미를 되새기고있었다.
어깨가 뻐근해오고 심장이 더 급하게 뛰여올랐다.
(정치가가 영원히 자기 존재의 빛을 가지려면 어차피 저 민중과 맥을 같이해야 한다.
민중의 눈은 한번 닦아주면 예지롭다.
민중의 심장은 한번 울려주면 정의롭게 박동한다.
민중의 기상은 한번 나래를 주면 꺾임을 모른다.
다만 그 눈빛, 그 심장, 그 기상이 지금은 권력이 휘두르는 칼날에 잠시 꺼져있을뿐이다.
이제 그들의 눈앞에서 력사의 어둠에 가려있던 진실의 실체가 자락자락 드러나고 현대사에 묻혀있는 회한과 오욕의 퇴적물에서 그 진저리나는 악취를 찾아낼 때 민중이라는 거대한 노도는 이를 쓸어버리고 그 무엇도 막을수 없는 힘과 기상을 과시하고야말것이다.)
지금 조봉암은 자기의 인생사에 비껴든 진실을 가지고 민중의 잠자던 의식을 두드리고있는것이다.
조봉암은 온몸에 비상한 투지와 열정이 파도치듯 밀려들었다.
군중의 열기는 더욱 고조되였다. 웃고 떠들고 환호하는 군중의 기세는 움씰거리는 해솟는 바다처럼 웅장했다.
(저들의 저 힘, 저 기상, 저 주먹들을 하나로 묶어세운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미국놈들이 무서우랴. 리승만이 두려우랴. 나에게는 민중이 있다!)
《좋습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고 남과 북이 다시 화해를 하고 마음을 모아 강토를 합치고 서로 의좋게 도와주면서 반만년 이어온 통일조국을 세워나갈것을 소원하는분들은 손을 들어주시오.》
조봉암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수천수만의 주먹들이 불끈 쳐들리였다.
쉬익- 팔 올라가는 소리에 탄성까지 합쳐져 사뭇 우뢰처럼 장엄하게 운동장을 흔들었다.
방금전에 《북진통일》에 손을 쳐들던 사람들도 운동장의 기세에 위압되여 손을 올리였다.
조봉암은 운동장에 펼쳐진 주먹의 숲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러한 통일을 할것을 우리 진보당은 바라며 주장합니다. 분렬은 망국이요, 통일만이 번영의 길입니다. 분렬은 민족을 갈라놓고 혈육을 갈라놓고 불행만을 가져오기마련입니다. 우리 진보당이 집권하면 곧 평화적인 통일환경을 마련하고 남북이 서로 돕고 함께 번영해가는 새시대를 열어놓고 구경에는 다시 하나로 합치는 통일회담을 하겠습니다. 북에서는 이미 평화통일하자고 손을 내밀어주었으니 우리가 <좋수다!> 하며 그 손을 잡으면 그게 통일이 아니겠습니까. 통일을 어렵게 생각할게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옳소!》
《좋수다!》
《평화통일해야 한다!》
또다시 군중의 박수와 환호가 조봉암의 연설을 중단시켰다.
조봉암은 군중의 호응에 크게 격앙되여 부르짖었다.
《대전은 예로부터 중요한 요충으로서 나라 지켜싸운 지사들이 적지 않게 배출된 력사의 고장입니다.
대전시민 여러분! 정의를 위하여, 우리의 삶과 후손들의 복락을 위하여 잘사는 세상, 행복한 세상, 통일된 세상을 만드는 이번 선거에서도 우리 진보당과 더불어 선구자가 됩시다.
저는 이 말을 여러분들에게 직접 전하며 여러분들앞에서 그 실천을 진보당을 대표하여 맹세하고저 갖은 방해를 무릅쓰고 여기로 왔습니다. 어떤이들은 이런 집회뒤끝에 세수수건이나 양말을 기념으로 나누어주고 국수 한그릇씩 대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와 진보당은 여러분들처럼 가난해서 그저 말 몇마디만 가지고 이렇게 왔습니다. 저는 다만 여러분들에게 약속만 드립니다.
오늘 이 모임을 마련해준분들이 학생들의 체육시간이 있으므로 30분을 초과하지 않도록 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이제는 약정된 시간이 돼오므로 저의 연설을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조봉암이 군중에게 허리를 굽히는데 여러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죽산선생님! 좀더 들려주십시오.》
《속이 확 트이는 말씀 해종일이라도 해주세요.》
《학교당국은 관권에 눌리지 말고 시간을 보장하라!》
운동장이 소란해졌다. 군중은 지지리도 고달프고 초라한 저들의 인생을 사랑으로 어루만져주고 래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주는 연사의 말을 더 듣고싶어 그냥 흩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지자 연경이는 불안에 잠겨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불현듯 연경이가 《아버지-》 하고 비명치듯 다급하게 부르짖으며 조봉암에게로 몸을 날려 앞을 막아섰다. 군중쪽에서 아버지를 겨눈 쇠붙이가 번쩍 하는 반사광을 띄여보았던것이다.
그 순간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고 연경이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그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그놈을 잡아라!》
군중속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조봉암의 수원들이 연탁주위에 달려나와 조봉암을 에워쌌다.
그러나 조봉암만은 마치도 조각상처럼 의연한 자세로 군중을 굽어보고있었다.
총소리가 울린 곳으로 뒤에 서있던 경호원들과 대전에서 나온 경찰들이 군중을 헤집고 들어갔다.
군중의 무리매에 벌써 반주검이 된 괴한이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나왔다. 격노한 군중이 괴한에게 저주를 퍼붓고 그냥 주먹질을 하며 달려들었다.
경찰들은 괴한을 차고 때리는척 하다가 신창균이 진상을 알고싶어 자기들쪽으로 다가오는것을 보고는 주변에 세워두고있던 경찰백차에 짐짝싣듯 올려싣고 황급히 달아나버렸다.
군중속에서 다시 함성소리가 드높아졌다.
《대전을 망신시킨 놈 때려죽여라!》
《대전은 죽산을 지지한다!》
군중은 조봉암의 손을 잡아보고싶어 무대우로 몰려들었다.
당황해진 시민대표들이 기발대를 들고 운동장을 에워싼 학생청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재빨리 무대를 빙 둘러서서 군중앞에 저지선을 만들어놓았다.
시민대표가 마이크를 들고 웨쳤다.
《이러면 안됩니다.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나쁜 놈들이 혼란을 리용하여 또 우리 대전을 망신시킬수 있습니다.》
그 소리에 군중의 소요는 가라앉았다.
《대전시민 여러분, 당신들의 지지의 목소리에 이 조봉암은 용기백배하여 돌아갑니다. 승리하고 다시 만납시다.》
조봉암은 이렇게 목청껏 작별인사를 하고 시민대표들과 청년들에게 에워싸여 무대를 내렸다.
《죽산을 지지한다!》
누구인가가 선창을 떼자 군중은 일제히 화답하여 환호를 올렸다.
조봉암일행은 대전시민대표들이 그새 마련하여놓은 새 소형뻐스를 타고 서울길에 올랐다.
연경이가 관통상을 입었으므로 연경이와 김봉무 그리고 청년의 처치때문에 일단 대전에서 철수하기로 했던것이다.
차가 대전시에서 벗어날 때 신창균이 차를 세우게 하였다.
《선생님, 아까 받아보신 투서에 주의를 돌려야 하지 않을가요? 그 경고장이 많은것을 시사하고있습니다.》
신창균의 말에 우달수도 심중한 어조로 맞장구를 쳤다.
《신부장의 말이 옳습니다. 저도 지금껏 그 투서자의 경고장을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것을 알고 우리를 진심으로 도와주고있습니다. 그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결정적인 시각에 모험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있던 김봉무도 걱정스럽게 말했다.
《투서를 보내온 사람은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알고 우리를 돕고있습니다. 오늘 저 연경이가 아버님을 막았으니망정이지 어쩔번했습니까. 저놈들이 이제는 선거에서 이길수 없으니 마지막방법으로 테로작전에 기대를 걸고있습니다.
아버님, 이제부터 그가 권고한대로 잠행으로 넘어갑시다.》
우달수가 심중하게 주장하였다.
《그렇게 합시다. 우리 부모님이 계시는 군산으로 갑시다. 집뒤에 감밭이 있는데 선거당일까지 거기 원두막에 계시면 될것 같습니다. 날씨도 따뜻하니 거기서 숨을 돌리며 선거를 지켜보는게 옳을듯싶습니다.》
신창균의 소리에 조봉암이 벌컥 성을 냈다.
《무슨 소리요?! 병사가 총탄이 무서워 돌격선에서 도망친단 말이요?! 방금 대전사람들의 함성을 들으며 뭘 생각했소? 난 끝까지 민중과 함께 있겠소. 고작해야 이제 이틀이요. 여적 견뎌냈는데 이틀을 견지 못해 도중에서 물러서겠소?! 자, 출발!》
조봉암은 운전대를 쥐고있는 김봉무에게 엄하게 지시하였다.
김봉무가 신창균에게 묻는듯 한 눈길을 보내다가 그가 외면하자 가속답판을 꾹 밟았다.
김봉무는 대전시민들에게서 크게 감동되고 흥분한 조봉암의 의지를 더 꺾을수 없다는 생각에 속도를 높이여 서울을 향해 달리였다. 응급처치는 하였으나 의식을 잃은채 신음하는 연경의 피기가 가셔진 얼굴이 길가에서 지체할수 없게 하였다.
그런데 뻐스가 굽이많은 령길을 힘겹게 에돌아 관악산의 산정인 연주대에 올라섰을 때였다.
거기에 한대의 승용차가 서있었다. 차문이 열리더니 윤기중과 서정후가 내렸다. 서정후의 입에는 언제나처럼 굵은 곰방대가 물려있었다. 아마도 차를 돌리기 쉬운 펑퍼짐한 곳을 선택하여 조봉암일행을 기다리고있었던 모양이였다.
명주로 지은 바지저고리에 흰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서정후가 맨앞에서 허둥거리며 걸어왔다.
《이거 큰일났소, 죽산!》
서정후가 만나자바람으로 겁질린 소리를 내질렀다.
윤기중도 대전소식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 소리에 북을 돋군다.
《서울로 가시면 안되겠습니다. 바로 한시간전에 정체가 분명치 않은 괴한들 수십명이 우리 선거본부에 쳐들어와 기물을 까부시고 선거선전물을 채가지고 달아났습니다. 우리 자원봉사대 청년들과 몸싸움이 벌어져 여러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신당동 댁도 완전히 수라장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습격행위가 계속될것이라는겁니다.》
《우리 집에야 경호원들까지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요?》
《경호원? … 같고같은 놈들이지요. 여느때는 시위군중들에게 마구 총을 쏘고 최루탄을 갈겨대던 놈들이 집에 쳐들어오는 괴한무리에게는 총탄은 고사하고 주먹찜질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열두시까지 초소막을 철수하고 경무대로 물러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윤기중이 중절모를 벗어 부채질을 활활 하면서 이렇게 제기된 정황을 느리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하였다.
《나쁜 놈들! 우리도 오늘 두차례나 선생님을 겨냥한 테로행위를 당하였소.》
우달수가 분노에 차서 아침에 벌어진 자동차충돌사건과 집회장에서 벌어진 저격사건에 대하여 짤막하게 설명하였다.
윤기중과 서정후가 연경이가 총탄을 받았고 두명이 상했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뻐스에로 몰려갔다. 그들은 아픔을 참느라고 이를 옥물고있는 연경이와 김봉무와 청년의 상처를 살펴보며 격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중태에 빠진 연경을 보며 윤기중의 얼굴빛이 더 컴컴해졌다.
《간사장! 사태가 심각한만치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소.》
우달수가 신중하게 의견을 제기하자 윤기중이 그제야 자기의 직분을 의식한듯 일행을 둘러보며 간단히 선포하였다.
《여기는 진보당추진위원회를 대표하는분들이 다 모였습니다. 걱정이나 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결정합시다.》
《결정? 뭘 말이요?!》
조봉암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다들 저기 승용차로 갑시다.》
윤기중이 제 먼저 승용차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조봉암이 따라서고 서정후, 신창균, 우달수가 연줄연줄 승용차안으로 들어가 비좁게 자리를 잡았다.
윤기중이 운전사좌석에 앉아서 지도부회의를 시작하겠다고 하고는 우달수부위원장이 보고를 제기하겠다고 하였다.
좌중에 반대의견이 없자 우달수가 엄숙하게 첫 발언을 하였다.
《선거당일까지 이틀이 남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이틀동안에도 선거승리를 위해 크게 성과를 올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의 운명, 선거의 운명이 걸려있는 매우 불길한 사변적인 정황이 조성되고있는 이 책임적인 시각에 우리는 절대로 모험을 할수 없습니다. 우리 지도부는 이 위급한 사태앞에서 마땅히 책임적이며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것은 민중의 요구이며 시대의 요구입니다.
이틀, 이틀동안 현 계선에서 일단 물러섭시다. 따라서 저는 이 시각부터 개표가 있을 때까지 당수가 잠적해있어야 한다는것을 제기합니다. 결정합시다.》
우달수는 시간도 촉박하고 더는 에누리할수 없는 중대문제라는 확고한 인식에서 단호하고 드팀없이 제기하고 촉구하였다.
사태의 엄중성과 긴박성을 그대로 함축한 그의 간단명료한 보고는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좋습니다. 더 론의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가결합시다.》
윤기중이 우달수의 보고를 넘겨받아 회의를 결속하려고 하였다.
《그건 안되오! 그건 후퇴요! 도피요! 안되오! 나를 비겁분자로 만드는 그런 결정을 내려서는 안되오!》
조봉암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심장에 불쑥 불꽃을 날린 전률이 그의 온몸과 심혼을 휘감아 흔들었다.
서정후가 빈 곰방대를 잡은 손을 후들거리며 갈린 어조로 간사장의 가결제의를 지지했다.
《가결합시다! 이런 문제는 더 시비를 캘게 없다니깐.》
신창균이 주먹을 머리우로 올리며 적극 호응하였다.
《보고를 지지합니다, 옳습니다. 모험할수 없습니다. 민중은 우리 지도부에 모험할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난
절대찬성입
니다!》
윤기중도 우달수도 서정후도 손을 들었다.
조봉암이 모두 주먹들을 올리자 아연해져서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결정되였습니다!》
윤기중이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조봉암은 어쩌는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조봉암은 신창균과 두명의 자원봉사대청년들과 함께 군산으로 가기로 하고 윤기중일행은 부상자들과 나머지 청년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되였다.
윤기중이 모임을 끝내려고 하는데 우달수가 버릇처럼 넥타이를 조이며 손을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저 경호원들도 이 기회에 철수시켜야 하겠습니다. 더구나 선생님의 주변에서 철저히 격리시켜야 하겠습니다. 저놈들속에 리승만일파가 마지막주패장으로 박아놓은 놈이 끼여있을수 있습니다. 이런 수 저런 수 다 튀여버렸으니 이제 마지막주패장을 내밀수 있습니다.》
《옳소! 그게 그럴듯싶소!》
서정후가 선뜻 지지해나섰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사실 우달수의 제의는 매우 다행스러운것이였다.
조봉암을 따라다니는 경호원들속에는 미군방첩대장 버드가 파견한 특수요원 2명이 박혀있었던것이였다.
그자들은 버드의 보좌관과 단선으로 련결되여있었다.
보좌관의 지령만 떨어지면 그들중 한놈이 자폭공격용으로 옆구리에 품고 다니는 고성능극소형폭탄을 터뜨려 조봉암을 살해하며 다른 놈은 자폭공격자가 살아남는 경우 즉시 총탄을 안기도록 각각 임무를 받고 지령을 기다리고있었다.
거사와 관련한 수만금의 보상금이 이미 버드가 수표한 계약서로 약속되여있었다.
이에 대하여서는 경호관도 전혀 모르고있었다.
경호관은 다만 조봉암의 주변에서 한시도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지시만 받았을뿐이였다.
오토바이에 앉아서 사태를 지켜보던 경호원들이 조봉암일행이 승용차에 옮겨타는것을 보자 저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오토바이를 돌려세웠다.
우달수가 경호관을 손가락으로 가까이 불러 좋은 말로 타일렀다.
《다같이 서울로 가야겠소. 선생님은 조용히 돌아볼 곳이 있어 돌아서니 당신네도 함께 돌아가기요.》
우달수의 말에 경호관은 상대를 마뜩지 않게 쳐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내뱉았다.
《안됩니다.》
키가 작달막하고 딱 바라지게 생겨먹은 경호관은 씹어뱉듯 퇴매한 단마디로 일축하였다.
《안되다니? … 이건 주객이 바뀌여졌다?
우리가 돌아가라면 돌아가는거야! 주인이 손님을 원하지 않는데 구들목에 엉치붙이고있을 체면이 있나.》
우달수가 사리가 분명하면서도 엄하게 타일렀다.
《뭐라구요? 우리가 뭐 당신들이 원하면 남아있구 당신들이 물러서라면 물러서는 노복들처럼 보입니까? 우리는 명령받은 경찰입니다.》
경호관은 흰줄이 세로 난 까만 양복에 넥타이를 두른 우달수의 단정한 외모와 타협조의 말투를 얕잡아보고 그냥 코를 세웠다.
그러자 우달수가 조여맨 넥타이를 늦추어놓으며 어성을 높였다.
《명령? … 명령은 우리가 한다. 철수해!》
《안됩니다.》
《안된다?!》
두사람이 서로 양보없이 티각태각하는데 신창균이 그들에게로 뛰여갔다.
《좋아! 여, 친구! 우릴 따라오겠으면 그 괴춤에 있는것을 내놓으라구.》
신창균이 눈을 부라리며 손을 내밀었다.
《괴춤에 있는거라니요?》
《그것말이야, 휴대용전화기. 그걸 내놓든지 늬 친구들에게 맡기고 두어명만 따라와. 그것도 우리가 선발해야겠다. 알겠어?》
신창균이 무섭게 다불러대자 경호관이 주접이 들어있다가 다시 자신을 수습한듯 버티였다.
《안됩니다.》
《그렇다면 타협이 안돼. 물러가. 아예 경무대로 가고말아!》
《안됩니다.》
《안돼? … 늬들이 성가시여 쫓아버리는데 그냥 버틸셈이냐. 그래 이 산속에서 우리 친구들과 한바탕 겨루어보자는가?! 이놈! 다시한번 말한다. 물러갓!》
신창균이 경호관의 어깨를 잡아 북쪽으로 돌려세우려고 하자 그놈이 기다린듯 신창균의 팔을 비틀어잡으려고 손을 뻗쳤다.
순간 신창균이 상대의 실한 목을 억센 팔로 휘감아잡았다.
《이놈아, 이 팔이 왜병모가지를 닭의 목대비틀듯 하던 팔이다. 어따 대고 뚝심자랑이냐?! 여기 있는 모두가, 저기 우리가 모시고있는 조봉암선생도 네놈따위는 열스물도 병아리잡듯 할수 있는 주먹장수들이다. 이놈아! 갈테야 안 갈테야?! 버틸테냐? 말해!》
신창균은 제 말대로 김구를 보좌하면서 신변경호원으로도 복무한바가 있는 장사다. 일찌기 중국 운남에 있는 강무당에서 해를 넘기며 중국의 격술을 련마한 신창균의 명성은 왜놈들속에서도 무술장수로 널리 알려져있었다.
왜놈들은 여러번 자객을 보내여 신창균을 없애치우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자객들은 무주고혼이 되여 볕보기를 끝내군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제노라고 떡떡거리던 경호관이라는 녀석 역시 신창균이 가볍게 둘러감은 팔에서 혈색좋던 상통이 재빛으로 변했다.
《말해, 어쩔테냐?》
짧게 깎은 상고머리조차 당장 찌를듯이 솟아오른 총창처럼 느껴지는 신창균의 기상은 기어이 일을 낼듯 무서웠다.
턱주가리가 잔뜩 들리운채 헉헉거리던 경호관이 목구멍에 기여드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누구의 명령?》
신창균은 팔을 풀어주지 않은채 다그었다.
《아, 아… 선생님의 명령입지요. 아, 그럼요.》
《내 명령이라니? 진보당의 결정이야. 결정은 곧 명령이란 말이야. 팔삭둥이같은것들! 언제면 셈이 들가?》
그제야 신창균이 그놈의 목에서 팔을 풀어주었다.
그놈은 그 자리에 모래기둥 무너지듯 주저앉더니 우거지상을 하고 그냥 헐떡거렸다.
그때까지 신창균의 험악한 기상과 자칫하면 저들에게 덮쳐들어 일격에 쓰러뜨릴 기세로 윽윽거리고있는 청년들에게 위압이 되여 감히 범접하지 못하고있던 졸개들이 저들의 우두머리한테로 우르르 몰려갔다.
경호원들은 저희들끼리 한참 수군거리였다. 서로 티각거리기도 하였다.
버드의 지령을 받고 파견된 놈들이 절대로 서울로 돌아갈수 없노라고 허세를 부렸으나 신창균의 손맛을 보고난 경호관은 한사코 도리질이였다.
《철수!》
경호관은 두주먹으로 땅을 짚고 하늘을 쳐다보며 가련하게 앉아있다가 기운없이 명령을 내렸다.
윤기중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올라가면 다 걷어가지고 경무대로 돌아가! 나도 올라가면 경무대비서실에 쫓아보냈다고 통보하겠다. 선거집회장에 가는 곳마다 번번이 소란이야. 네놈들이 덫을 놓은게 아니야?! 이건 선거가 아니라 피투성이전쟁이란 말이야, 전쟁! … 그러니 진보당의 명령대로 완전히 철수해!》
윤기중은 여전히 늘어진 말투에도 박력을 가하여 경호원들을 눈코뜰새없이 답새겨놓았다. 선해보이던 두눈에 분노가 서리니 마치도 두덩이의 숯덩이가 이글거리는것 같다.
중절모를 점잖게 눌러쓴 풍신좋은 신사가 당장 상대를 요정낼듯 성깔드세게 호령질하자 경호원들은 더욱 주눅이 들어 쩔쩔 맸다.
《알았습니다.》
우두머리가 더는 뻗대볼 여력이 없어 대답하였다.
경호원들은 저들의 우두머리를 부축하여 오토바이에 싣고 도망치듯 산정을 벗어났다.
《저런, 우리 삼총사가 윽윽하니 하늘에도 구멍을 낼것 같군.》
서정후가 흡족해서 껄껄 웃었다.
조봉암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권력의 후광을 믿고 목대가 뻣뻣하기 이를데 없는 경무대 경호원들을 단박에 답새겨버리는 삼총사를 바라보았다.
《어서 떠나시오. 서울일은 걱정마시고 거동을 살펴하소.》
서정후가 년장자답게 자심하게 마음쓰며 작별을 서둘렀다.
《예, 선생님도 각별히 신상에 류의하십시오. 이번 선거를 선생님이 주관했으니 아마도 나 다음에는 선생님이 표적일겁니다.》
《일없네. 그까짓 이 나이에 적수의 총탄에 쓰러지면 그것도 력사에 남을 죽음이니 복이라 할수 있지.》
서정후는 채수염을 쓸어내리며 배심있게 대꾸하였다.
조봉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생님은 아직도 하셔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인차 윤기중의 일행을 태운 뻐스는 서울로 향하였다. 신창균이 몰아가는 승용차는 군산을 향하였다.
조봉암은 부지중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놈의 불법무법천지! 이 정치의 란투극을 내 기어이 끝장내고야말테다.
리승만! 내 네놈을 기어이 심판하고야말테다!
대양건너에서 기여든 오랑캐놈들! 언젠가는 우리 진보당이 정권을 틀어쥐는 날이 올게다. 그때면 네놈들부터 이 땅에서 내쫓아버릴테다!
두고보자, 이놈들!)
조봉암은 백주에 피난처를 찾아가야만 하는 기막힌 현실앞에서 너무도 통분하여 주먹을 떨었다.
승용차는 대전시내를 벗어나 30분간 달리다가 군산이 있는 서남쪽으로부터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디로 가오?》
조봉암이 도로에 세워져있는 리정표를 띄여보고 앞에 앉아있는 신창균에게 물었다.
《가야산으로 갑니다.》
신창균이 침착하면서도 무게있게 단호한 말투로 대답하였다.
《가야산? … 그럼 군산에 간다는건 어찌된 일이요?》
조봉암이 의아해서 물었다.
신창균이 씨익 웃었다.
《잠행이 아닙니까?! 군산에 가는걸 여러명이 알게 됐는데… 잠행이 되겠습니까?! 그쪽으로 이목을 돌려놓았습니다. 가야산에 가면 내 어린시절 친구가 주지노릇 하는 사찰이 있습니다. 며칠동안 우리를 잘 지켜줄겁니다.》
《음… 그랬구만.》
조봉암은 오랜 지하활동경험자다운 신창균의 용의주도한 조직사업에 혀를 차면서도 사찰에 가서 숨어지내야 할 자기 처지가 한심스러워 허거픈 미소를 지었다.
이런 선거가 또 어데 있을가.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후보라는 사람이 숨어지내야 하다니…
조봉암의 피신과 함께 진보당의 선거운동은 완전히 마비되고말았다.
윤기중이 지방에 그냥 선거운동원들을 파견하였지만 그들은 현지에 도착하는 즉시로 이런저런 리유로 경찰서들에 붙잡혀가 문초를 당하고 갇히웠다.
큰 도시들에 띠염띠염 붙어있던 조봉암의 사진과 진보당선거선전물들이 괴한들에게 뜯기우고 찢겨졌다.
다만 서울 수송국민학교에 있는 윤기중과 몇명 지도부일군들이 지방의 진보당선거지부들과 련락을 맺어보느라고 전화통에 매달려 목이 터지게 소리치고있을뿐이였다. 그 전화들마저 번번이 고장이 나서 되지 않았고 전해오는 보고내용이라는것도 처참한 사건들뿐이였다.
선거운동은 완전히 리승만의 독판치기와 장면에 대한 민주당의 선전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조봉암에게로 쏠린 민심은 리승만의 칼부림에도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나날이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크고 단단해졌다.
사처에서 조봉암을 찾아 집에도 오고 선거본부에도 왔다. 시민대표들도 오고 촌에서도 오고 군인들도 찾아왔다. 대학생들도 찾아와서 자기 대학에 초청한다는 련명청원서를 내놓기도 하였다.
어느날에는 제주도에서 중년의 부부가 제주도의 해산물을 한짐 이고 지고 찾아와서 제주도민들의 간절한 청원이라면서 죽산선생님이 바다를 건너와서 연설 한마디라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부재중이라고 여러번 설명했으나 그들은 곧이듣지 않고 하루종일 윤기중의 사무실에서 버티다가 돌아갔다.
진보당선거대책본부는 제주도민들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수가 없어 우달수를 파견하여 조봉암의 이름으로 선거연설을 하도록 하였다.
민중의 간절한 부탁을 받을 때면 윤기중과 우달수는 자기들의 존경하는 당수가 이미 각계각층의 신뢰와 사랑을 완전히 그러안았다는 확신으로 가슴들이 세차게 들먹거리군 하였다.
윤기중은 그들을 만날 때면 조봉암후보가 집요하게 감행되고있는 테로에 대처하여 당의 결정으로 당분간 피신하였다는것을 공개하였다.
이 사실이 한입 건너 두입 건너 바람처럼 날려갔다. 그 소식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대중속에서 조봉암에 대한 애정을 더욱 두터이 하고 지지률을 부쩍 높이는 놀라운 효과를 거두게 하였다.
사처에서 리승만일파의 독재적전횡을 폭로규탄하는 시위와 항의투쟁이 벌어졌다.
가늘게 시작된 선전이 예상밖의 결실을 가져오자 윤기중은 신바람이 났다.
서정후도 밤잠을 잊고 뛰여다니며 표밭을 넓히느라고 애를 썼다.
비록 조직화되지 못하고 자연발생적으로 벌어지는것이였으나 그것은 또 그대로 선거운동 못지 않게 위력을 보이고 군중속으로 깊이 파급되여 새로운 지지세력을 만들었다.
조봉암의 집을 지켜선 청년들은 저들 조직의 결정에 따라 서울과 지방의 곳곳에 동료들을 몇명씩 데리고 가서 청년학생들을 모아놓고 리승만일파의 비렬한 행위를 직접 목격한것을 가지고 제나름으로 민심을 이끌어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민심은 완전히 조봉암에게로 기울어졌다. 선거전망은 너무도 명백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