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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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리승만일파를 비롯한 진보당반대세력의 악랄하고도 집요한 공격이 조봉암에게로 집중되였다.

조봉암은 사정없이 쏟아지는 십자포화를 맞으면서도 의연히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수난자의 심정으로 꿋꿋이 버티였다.

조봉암을 향하여 마구 총포탄을 날리는 적진에는 리승만일파가 정면에서 돌격해왔다. 그 린접으로 민주당이 검질기게 지원포를 쏘고있었다. 그뒤에는 다울링을 사령탑으로 하는 미국것들이 웅크리고 앉아서 이쪽으로 저쪽으로 지휘봉을 흔들고있었다.

조봉암은 선거날이 림박해오자 하루에 열곳이상 장소를 옮겨가면서 군중들앞에서 자신과 진보당의 선거공약을 선전하고 지지를 호소하였다.

도시의 장마당에 나서기도 했고 산간벽지에도 찾아갔다. 군인들앞에 나서기도 하였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새벽닭이 홰를 칠 때까지 각지에서 들어오는 선거관계자료들을 들여다보았다. 신문을 읽고 방송의 론조들도 연구하였다. 측근인물들과 전술협의를 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눈확이 꺼져들었다.

그래 효경이가 시장에서 영계를 사다가 곰을 해서 대접하고 연경이도 좀 쉬기도 하면서 건강을 돌봐달라며 옆에서 그냥 애원하군 한다.

조봉암은 딸들의 성의를 받아주면서 헌헌하게 웃군 하였다.

《일없다. 내 몸이 꺼질라면 아직은 만리는 더 가야 한다.》

그러나 자유당과 경찰들이 돌리는 흑색선전은 그를 크게 괴롭히고 격노하게 하였다. 예상은 했으나 너무도 졸렬하고 파렴치하였던것이다. 경찰지서장들과 자유당의 지부장들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치면서 주민들을 모여놓고 공공연하게 위협한다고 한다.

《이 동리에서 만약 조봉암지지표가 나오면 다 계산하여놓았다가 북진을 할 때 다 몰살을 시키겠다. 북진은 한두해후에 꼭 시작된다.》

지난 전쟁시기 거창과 남원, 함평과 고창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참극을 직접 목격하였거나 전해들은 주민들은 이 말이 뜻하는 무시무시한 참변을 련상하며 벌써부터 벌벌 떨고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선거에 참가하여 자기의 의사를 어떻게 표현하겠는가는 가히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선거날이 박두하자 극히 소극적으로 진행되고있는 진보당의 선거운동마저 봉쇄하려는 관권의 움직임도 더욱 광포하여졌다.

중앙의 간부들이 각 도 선거선전반을 편성하여 지방에 나갔으나 그들모두가 한사람도 빠짐없이 현지에 도착하는 즉시로 경찰들이나 지방깡패들에게 체포되여 매를 맞고 취조당하였다.

선거자금출처를 대라고도 하고 무턱대고 때리고 협박하였으며 알수 없는 곳으로 눈을 싸맨채 끌고 가 가두어넣기도 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전역에서 조봉암을 중상하고 모해하는 너무도 졸렬하고 야비한 놀음이 권태구가 기안한대로 벌어졌다.

선거장에 미국에서 수입한 이상한 기계가 도입되여 누가 누구에게 표를 찍어주는가 하는것이 다 알게 된다거니, 투표용지에 무슨 장치가 되여있어 투표하자마자 바깥에 다 알려진다거니 하는 괴이한 요언까지 널리 류포되였다.

서울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따금 여러 기관들의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그시그시 선거자들의 지지률이 발표되였다. 의례히 리승만이 압도적으로 앞서고있는것으로 조작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서울 수송국민학교에 자리잡은 선거대책본부의 윤기중이 민심을 조작하는 언론계의 어용사기적행위에 강하게 항의하였으나 관계자들은 랭소를 지을뿐이였다.

조봉암은 그놈들에게서 아무렴 고운 소리 듣겠느냐며 개의치 말라고 윤기중을 위로했다.

리승만일파의 너무도 렴치없고 뻔뻔스러운 행위에 모두가 치를 떨었다.

어느날 저녁 대문을 지키고있던 부회장청년이 담너머에서 돌멩이와 함께 날아든 투서 한장을 들고 조봉암에게 직접 들어왔다.

그는 대기실을 차지하고있는 신창균도 걸치지 않고 방에 들어서더니 열적은 낯색을 하고 멈칫거렸다.

《저 미안합니다, 이렇게 버릇없이 들어와서.》

청년이 미안쩍어하는데는 사연이 있었다.

지금 투서들이 매일 락엽처럼 날아든다.

밖에서 경호원들이 누구도 담장곁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니 지나가는척 하다가는 날쌔게 돌멩이에 비끄러맨 투서를 마당으로 던지고 달아나군 한다. 투서가 너무 많이 들어와 사람들은 극히 조심해서 마당을 지나가군 하였다.

투서가 많아지자 신창균은 질서를 세우고 함부로 조봉암에게 직접 가져가지 않도록 하였다. 1차로는 부회장청년이 투서의 가치를 판별해서 연경에게 넘겨준다. 연경이가 또 2차적으로 골라서 가치있는것만 신창균에게 보고했다. 마지막으로 신창균이 그중 참고가 될수 있는 투서만을 골라서 조봉암에게 제출하군 한다.

《괜찮아. 고생들이 많지… 날 찾아온게 후회가 되지 않아?》

조봉암이 청년을 스스럼없이 맞아주며 허물없이 물었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선생님의 슬하에 와서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합니다.》

《허, 그래? … 음, 아마 정치라는게 너절하다는 생각이 들거야. 누구의탓이냐고 밝히기 전에 아무튼 이 시대 정치인으로서 임자들에게 부끄럽네.

자네들이 주인노릇을 하게 될 때는 아마 달라질걸세. 암, 달라지구말구. 그걸 위해서 우리가 지금 고생도 락으로 달게 여기는거지.

뭣때문에 왔나? 서슴지 말고 말하라구.》

조봉암이 청년의 말구멍을 틔워주자 그는 조심스럽게 찾아온 리유를 밝히였다.

《저, 다른게 아니구 이건 선생님께서 직접 보셔야 되겠기에 제가 절차를 뛰여넘어 이렇게 들고 왔습니다. 신부장선생님에게 량해를 받았습니다.》

《하, 그래…》

부회장청년은 그에게 투서 한장을 내밀고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석하고는 방에서 조용히 나갔다.

조봉암은 그 무슨 긴한 내용이 담겼을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투서를 다 읽고난 조봉암은 방으로 신창균과 우달수와 연경이도 불러들였다.

투서가 그들에게 한바퀴 돌아갔다.

신창균이 읽어보다가 대뜸 격정에 넘쳐 투서를 손에 들고 흔들며 부르짖었다.

《그러면 그렇겠지!》

《마지막까지 읽어보시우. 아니 연경서기가 읽어보라구.》

우달수가 혼자 떠들어대는 그를 못마땅하게 흘겨보며 질책조로 말하였다.

우달수의 핀잔에 연경이 투서를 받아들고 큰소리로 첫줄부터 읽어내려갔다.

《진보당후보와 중진들에게… 제목부터 야단스럽네. 어제 바로 5월 12일 미국회여론조사단이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마지막으로 비밀여론조사를 진행하였다.

그에 의하면 여론조사에 참가한 선거자들의 조봉암후보에 대한 지지률은 서울 70%, 부산 65%, 강릉 68%, 충주 48%, 대전 38%였다.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군인이 태반이였다. 지역별로 보면 도시가 농촌을 앞섰다.

그러나 진보당은 이 경하할만 한 성과에 순간의 유예도 허용해서는 안될줄로 안다.

이와 관련하여 리승만세력과 미대사관측은 혼비백산해졌고 미국의 묵인밑에 비상수단을 강행하려고 모의하였다.

따라서 귀 당은 시급히 다음과 같은 문제를 토의결정해야 한다.

리승만의 비상수단이 조봉암후보에 대한 음해라는 전제밑에 첫째, 조봉암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집을 나서는 경우 그 어떤 곳에서도 물 한모금, 술 한잔, 밥 한술도 준비하여간것외에는 들지 말아야 할것이다.

둘째, 조봉암후보는 이 시각부터 지방선전을 중지하며 좋기는 비공개된 곳에서 선거일까지 지내는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상대방의 도발에 걸려들지 말며 진보당선거참관인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도록 강한 지령을 내려야 할것이다.

죽산선생님을 사모하는 민중의 벗으로부터.》

환희에 들떠있던 연경의 목소리는 점차 가늘게 떨다가 마지막에는 혼자소리처럼 잦아들었다.

《확실히 뭐가 있는것 같은데… 투서의 저의가 분명치 않거던. 사모하는 민중의 벗?! …

축하, 동정… 로골적인 공갈? 은페된 봉쇄? …》

신창균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아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심중하게 제기하였다.

《중진회의를 속히 가집시다. 전체 선거운동원들에게 비상을 겁시다. 공개투쟁을 벌리고 사회적여론도 크게 떠들도록 합시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 시각부터 지하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우달수가 생각에 잠겨있다가 난색을 표시하였다.

《난 좀 생각이 다른데… 물론 선생님이 지하로 들어가셔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중진회의를 열고 이 투서의 내용을 공개하고 그에 기초한 투쟁을 강도높게 벌리는것은 신중한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분명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있는 량심있고 대바른 투서자를 보호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투서의 정확성여부를 재확인할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우리의 공세가 역공격에 좌절될수 있는 여지도 있습니다. 당안에 위기감을 조성할수도 있고…》

신창균이 일어서려고 하는것을 조봉암이 손을 저어 제지하였다.

《우부위원장의 견해가 옳을듯싶소. 크게 떠들 일이 아니요. 무시하여버립시다. 쥐새끼들이 바스럭거린다고 거기에 말려들어 부산을 피우다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놓칠수 있소.

그리고 우리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준 투서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도 옳다고 보오. 정보의 신빙성문제는 기본적으로 정확하다고 보오. 투서자가 적진에 연줄을 갖고있는것 같소. 좋기는 찾아냈으면 좋겠는데 아마 쉽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을것 같소. 그러니 더 건드리지 말며 그에게 해되는 일도 극력 피합시다.

그리고… 난 예정대로 오늘 오전에 대전으로 내려가겠소. 그곳 사람들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오. 그쪽이 확실히 우리의 영향력이 약한게 사실이요. 우리에 대한 지지률이 38%라니 제일 척박한 곳이요. 그러니 후보인 내가 직접 나서서 진보당선전을 하는것이 마땅하오. 선거가 눈섭밑까지 왔는데 더 미루거나 내버려둘수가 없소. 마지막싸움일수 있소.

다른 문제, 일체 식료품을 준비해가지고 다니는것은 지방사람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나 여러모로 좋은 일이니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지방의 선거운동원들에 대한 통제도 강화합시다. 문제는 겁을 먹지 않는거요. 간사장과 서정후위원장에게도 알려주어 지령을 빨리 내려보내도록 하시오.》

조봉암은 제기된 문제를 놓고 일일이 결론을 내렸다.

《안됩니다. 선생님은…》

조봉암은 신창균이 도리머리질을 하자 그의 뒤말을 결연한 어조로 막았다.

《몽양 려운형선생이 언젠가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나오. 몽양은 투사는 투쟁하는 멋에 산다고 하였소. 그는 투사답게 투쟁의 길에서 절명하였소.

죽음을 두려워해서야 무슨 투쟁이고 투사겠소?! 투서에서 지적된 우리의 약진이 어떻게 이루어진것이요? 우리모두의 희생적인 투쟁으로 쟁취한 귀중한 성과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마지막결전에서 피해서란 말이요? 안될 말이요.

나 하나의 피값이 이 땅에서 독재를 청산하고 통일조국을 앞당기는데 바쳐진다면 그것으로 보람있고 행복한게 아니겠소.

너무 엄살을 피우지들 마오. 도전세력이 바로 그걸 노리고있소.》

《죽산선생님이 없는 진보당은 사실상 사상루각입니다. 지금 우리 당이 존재하고 위세를 떨치는것은 선생님의 명함과 떼여놓을수 없습니다. 사실 우달수부위원장이나 저도 선생님을 보고 모여들지 않았습니까.》

신창균이 절절한 어조로 주장하였다.

《신부장의 말이 천만지당합니다. 선생님은 신변을 놓고 모험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이 문제만은 즉시 중진회의를 열어 토의결정해야 합니다.》

우달수도 강경하게 자기 주장을 세웠다.

그들의 주장에는 티 한점 없는 진심이 비껴있었다. 그들은 조봉암의 인격에 끌리우고 그의 리념과 정치적무게에서 자기들의 리상과 미래와 삶의 지탱점을 찾고 달려온 사람들이였다.

조봉암을 따라가느라면 독재사회의 종말도 오고 민중의 나라도 서며 나라의 통일도 실현할수 있다는것이 그들로 하여금 조봉암을 찾아오게 한 동기였고 기대였다.

뜨거운 심장들이 뿜어올리는 열렬한 주장과 열기에 조봉암은 속이 확확 달아오르기만 하였다. 그리고 산악같은 무게를 가진 힘과 용기가 가슴속에 웅건하게 자리잡았다.

(이들의 기대를 내가 어찌 저버릴수 있는가.

살아도 이들과 함께, 죽어도 이들과 함께!

나의 삶이 필요하다면, 시대가 나의 피와 목숨을 요구한다면 이 한몸을 민족의 제단에, 통일의 제단에 기꺼이 바치리라!)

다시금 조봉암의 흉중에 천만근의 무게를 가진 결심이 자리잡았다.

조봉암은 지금 이 자리에서는 터질듯이 격앙된 동지들과 자기의 신변문제를 가지고 더 론해야 다른 소리가 나올수 없을것이라는것을 깨닫고 일단 입을 꾹 닫아붙이고말았다.

이때 전화가 걸려왔다.

연경이 얼른 송수화기를 드니 대전이라고 하면서 죽산선생님을 바꾸어달라는것이였다.

《대전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를 바꾸어달랍니다.》

《음, 래일행사와 관련된 전화일거다. 인다오.》

연경이 송수화기를 조봉암에게 내미는데 신창균이 중간에서 가로채듯 받아들었다.

《아, 신부장 그러지 마오.》

조봉암이 예정행사를 취소시키려는 신창균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급히 말렸으나 신창균은 송수화기를 꽉 틀어잡은채 상대를 불렀다.

《여보시오-》

그런데 인차 통화가 끊어졌다.

신창균이 그냥 전화기를 두드렸다. 수화구에서는 붕-붕- 소리만 날뿐 끝내 통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신창균이 신경질이 나서 송수화기를 전화통우에 절컥 놓으며 투덜거렸다.

《개자식들! 코코에 덤벼드는구나.》

신창균이 다시 서울시우편국을 찾아 대전을 련결하여달라고 하였다. 우편국에서는 상대의 주소를 알아보고나서 대전은 고장이라고 단마디로 거절하였다.

신창균이 울화가 치밀어 당장 서울시우편국에 쳐들어갈듯 한 기세로 문쪽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바깥에서 함성이 터졌다.

《죽산은 즉살하라!》

《죽산은 공산당괴수이다.》

《국제공산당간첩 죽산을 추방하라!》

함성은 끊기지 않고 어지러이 울렸다.

《저것들을 그저…》

이모저모로 심사가 뒤틀린 신창균이 문을 와락 열어제끼더니 주먹을 부르쥐고 내달았다.

《신부장을 붙잡게. 괜히 돌멩이벼락에 일을 내겠네.》

조봉암이 걱정스러워하자 우달수가 뒤미처 좇아갔다.

며칠전부터 밤마다 도로 맞은편에 우익깡패들이 떼를 지어 몰려온다. 온밤 고아대고 꽹과리를 울리며 소동을 부리다가 날이 밝을무렵에야 달아나군 한다.

조봉암은 등이 달아 나간 사람들이 쉬이 돌아서지 않자 마당으로 나갔다. 연경이도 아버지의 덧옷을 찾아들고 뒤따라 문을 나섰다.

서울시의 변두리라 신당동은 밤에는 암흑천지다. 달도 없는 그믐께의 자정무렵이여서 어둠은 더욱 짙었다. 그속에서 망나니들은 그냥 기세를 올렸다.

조봉암이 바깥대문쪽에 나서는데 대문을 지켜선 청년들이 여러명 버티고 서서 조봉암의 앞을 막아섰다.

《선생님, 위험합니다.》

《우리 신부장이 어디 있소?》

조봉암이 불안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경무초소에 나가 경호원놈들을 다불리구있습니다.》

《그래? … 들어오라구 하오. 가재도 게편이라고 그 사람들이 저 망나니들을 쫓아버릴것 같소? 부추기지 않으면 다행이지.》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청년들도 저 망나니짓을 제압하지 않느냐고 경호원들과 여러번 다툰바가 있어 조봉암의 말을 수긍하였다.

초소막에서는 신창균과 우달수가 경호원들을 세워놓고 답새기고있었다.

《왜 당신들은 저놈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나? 왜 총소리 한번 울리지 못해?!》

《아, 부장님! 저 도로 맞은편은 우리 관할구역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기서야 무슨 소리인들 못 치겠습니까? 그것도 일종의 선거선전이 아닙니까? 뭐, 반대세력만 옵니까? 지지세력도 와서 소리치는뎁쇼.》

《뭐?! 선거선전이라구?! 당장 저놈들을 쫓아보내게!》

《안됩니다. 그건 권한밖이니깐요.》

《뭘?! … 그럼 도대체 당신네는 무엇때문에 여기 왔는가?》

《거야 죽산후보님의 신변경호때문이지요.》

《신변경호란 뭔가?! 저렇게 문앞에까지 와서 소리지르며 북치고 꽹과리치고 해서 한잠도 잘수 없는데 이건 신변경호에 속하지 않나?!》

신창균이 경호원들앞에서 삿대질을 해가며 꽥 소리쳤다. 경호원들도 만만치 않게 반발하였다.

《하여튼 우린 도로 이쪽만 관할합니다. 민주경찰이 아닙니까?!》

《뭘? 민주경찰?! 허, 과시 대단하구만. 래일중으로 당장 철수해!》

《부장님! 그건 부장님의 소관밖이지요.》

《안돼! 래일 경무대 비서를 불러내겠소. 이따위로 경호하는 경찰도 민주경찰이야?!》

《그건 뭐 마음대로 하시지요. 리박사가 응하시겠는지…》

《음, 이제야 너희들 시커먼 배속을 다 드러내는군.

이놈! 리승만의 이름을 거들면 대수냐?! 너희들 경호 껄끄름해서 우리가 쫓아보내는건데!》

그들의 시비가 끝이 없을듯싶어 우달수가 신창균을 돌려세웠다.

《그만하시우. 공연히 똘만이들과 시비를 따질게 있나요?! 이녀석들은 원체 저따위 짓거리를 보호해주라고 왔겠는데 아무리 말해봐야 소 귀에 경 읽기지.》

《가만! 좀더… 저눔들을 그저…》

신창균이 맞다든 《민주경찰》을 아예 묵사발을 내주지 못하는게 분해서 우달수에게 끌려오면서도 그냥 주먹을 떨었다.

우달수와 신창균이 대문의 쪽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조봉암이 그때까지 기다리고있다가 분연한 어조로 출동지시를 떨구었다.

《보시오. 놈들이 안팎으로 조여들고있는데 우리까지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준다면 저놈들이 아예 만세를 부를게 아닌가. 새벽일찍 조반을 치르고 곧장 대전으로 갑시다! 민중은 나를 필요로 하오!》

그 비장한 명령에 신창균도 우달수도 더는 뿔을 세우지 못하였다.

아침을 치르자 우달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한발 먼저 떠나갔다. 집회장에 대한 사전료해를 하고 준비사업을 조직하기 위해서였다. 매사에 침착하고 실수가 없는 우달수는 후보사퇴를 하고나자 집회와 관련한 번거롭고 위험한 일들을 뒤에서 솜씨있게 조직하고 조봉암의 선거활동을 믿음직하게 보장하여온다.

조봉암이 일행과 함께 수송국민학교에 들려 선거대책본부의 관계자들과 협의를 하고 국민학교를 나서는데 경호원들이 두대의 오토바이에 나누어 타고 따라섰다.

신창균이 간밤에 티각태각했던 경호원을 알아보고 엄하게 일렀다.

《당신들은 떨어지오!》

그러자 곁에 서있던 서정후가 곰방대를 흔들며 말렸다.

《놔두라구. 우리 당수행차에 금줄을 두른 제복쟁이들이 오토바이를 척 몰고 따라서는게 구색에 맞지 않나. 눈맛이 좋은데 뭘 그러나?》

서정후는 간밤에 있었던 언쟁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신창균은 서정후의 말이 그럴듯싶기도 하여 받아들였다.

조봉암이 탄 소형뻐스에는 신창균과 연경이 나란히 앉고 앞뒤좌우로 여덟명의 청년들이 둘러앉았다. 운전대는 언제나처럼 김봉무가 잡고 자신만만하게 뻐스를 몰아갔다.

뻐스는 서울 남쪽의 구릉지대를 벗어나 산세가 험한 관악산에 들어섰다. 관악산은 서울과 경기도 과천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고는 600메터 조금 남짓하지만 봉우리가 많고 골짜기가 많아 운전사들은 이 산에 들어서기를 끔찍해한다. 과연 오불고불 굽이가 많고 물매가 급한데다가 도로가 나빠 모두가 긴장되여있었다.

떠나기 전에 신창균이 렬차편을 리용하자고 했으나 조봉암이 반대하였다. 렬차시간에 맞추어 움직이면 시간랑비가 많다는것이다. 이날도 대전에 이어 충청남도의 농어촌마을들을 돌아보도록 일정이 빈틈없이 짜있었다.

뻐스가 관악산의 령길을 넘어 기슭으로 내려서는데 굽인돌이에서 짐을 잔뜩 실은 대형화물차가 경적소리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앗!》

김봉무가 비명소리를 지르는 순간 뻐스가 화물차의 앞코숭이를 받으며 옆으로 기울어졌다. 길옆은 낭떠러지였다. 아차하면 차가 백길이 넘을 낭떠러지아래로 허궁 떨어져 뻐스도 사람들도 산산이 부서질 판이였다.

김봉무는 재빨리 운전대를 틀었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아츠럽게 나더니 뻐스의 창유리들이 순식간에 박산이 났다. 뻐스는 길가에 박아놓은 안전나무기둥들을 밀고 나가다가 위기일발의 순간에 멈춰섰다. 뻐스의 한쪽바퀴는 낭떠러지쪽으로 들려있었다.

뒤따라오던 오토바이도 길이 막혀 더 나가지 못하고 화물차앞에서 급정거하였다.

김봉무와 앞좌석에 앉아있던 청년이 유리쪼각에 맞았을뿐 다행히도 조봉암과 다른 사람들은 무사하였다.

연경이가 늘 가지고 다니던 비상의료함에서 약과 붕대를 꺼내 김봉무와 청년의 상처를 처치하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모두들 낭떠러지와 허궁 들린 뻐스의 한쪽바퀴를 보며 간담이 서늘하여졌다. 한치만 더 옆으로 나갔더라면 뻐스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고 무리죽음이 났을것이였다.

경호원들 몇이 화물차운전사를 끌어내려 덮어놓고 따귀를 몇번 후려치더니 수첩을 꺼내 뭘 조사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조봉암은 김봉무와 청년에게서 물러났다.

짜고들어 하는짓이 분명한 그들의 조사놀음을 쓰겁게 보고있다가 경호관을 엄하게 불렀다.

화물차운전사를 상대하고있던 경호관이 뛰여와서 손부터 번쩍 쳐들어 귀전에 올린다.

《선생님,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일없소. 그런데 우리 운전사와 저 청년이 크게 다쳤는데 서울로 데려가야겠소. 이 뻐스도 몰고 가고.》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우리 말이요? 별수없지. 당신네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지. 지금 대전운동장에서 사람들이 날 기다리고있단 말이요. 오토바이에 탄 사람들은 이 뻐스와 함께 돌아가고 당신과 다른 한명이 우리를 태우고 대전에 가야겠소. 시간이 없소. 빨리 움직이시오.》

《알았습니다.》

《오토바이에 몇명을 더 태울수 있겠소?》

《규정상 세명이니 각각 두명씩, 네명을 태울수가 있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구.》

경호관은 조봉암의 위엄앞에서 군소리없이 복종하였다.

뻐스를 길에 들여세우느라고 다들 애를 쓰고났을 때 길옆에 누워 잠시 안정을 하고난 김봉무가 서울로 되돌아가라는 소리에 그냥 아버님을 모시고 가겠다고 우겼다. 조봉암이 돌아가 치료도 받고 안정도 하라고 여러 말로 권고했으나 김봉무는 막무가내였다. 옆에 함께 누워있던 청년까지 따라가겠노라며 떼질을 하였다.

김봉무는 유리가 박산난 뻐스와 이마에 붕대를 처맨 자기네 얼굴들을 보여주는것도 선거운동이라고 하면서 기어이 대전에 가겠노라고 그냥 뻗치였다.

김봉무의 말이 옳다고 모두들 윽윽 기세를 올리였다.

마침내 조봉암도 동의하였다.

이리하여 일행모두가 대전을 향하여 다시 떠났다.

대전시내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대전시의 시민대표들과 함께 기다리고있던 우달수가 그들을 맞이했다.

《장소를 대전녀자고등학교로 옮겼습니다. 공설운동장관리인이 운동장보수공사를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그냥 뻗치면서 운동장을 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달수가 간단히 보고하였다.

《크게 신경쓸거야 있소? 아무 곳에서나 시민들이 우리 선전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거지.

대전시민대표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조봉암은 대전시민대표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시민대표들은 다 대전에 진보당지부가 서면 핵심으로 활동할 진보당의 지지자들이였다. 그들은 조봉암이 무사히 도착한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미 관악산기슭에서 당한 사고에 대하여 들었던것이다.

유리창이 깨진 뻐스와 얼굴을 붕대로 처맨 운전수와 청년을 보자 대표들은 하마트면 큰 사고를 낼번 했다며 치를 떨었다.

《이건 우발적이 아니라 의식적인 범행입니다.》

《옳습니다. 의도적인 린치입니다.》

시민대표들은 이렇게 떠들썩거리며 당국의 죄행을 규탄하였다.

《김봉무비서, 이 뻐스를 가지고 한바탕 대전시내를 들었다놓소. 이건 일명 가두시위요. 네놈들이 하나 하면 우리는 둘을 한다!》

신창균이 성깔이 내돋쳐 소리치자 시민대표들은 성수가 나서 박수까지 쳤다.

조봉암과 기본성원들은 시민대표들이 마련하여온 다른 뻐스에 옮겨타고 학교운동장으로 향하였다. 청년들과 시민대표들은 김봉무의 뻐스를 타고 함께 시내를 돌았다.

김봉무는 경적소리를 야단스럽게 울리면서 대전시내를 여러 바퀴 천천히 돌아갔다. 뻐스에 있던 청년들과 시민대표들이 메가폰에 입을 대고 웨쳤다.

《조봉암후보를 모시고 오던 뻐스다! 관악산에서 대형화물차가 이렇게 해놓았다!》

《이것은 반대세력들의 고의적인 도발이다! 항의한다! 항의한다!》

청년들과 시민대표들의 웨침에 길가의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빠트의 창문들이 벌컥벌컥 열리였다. 시민들은 유리창이 부서져나간 뻐스의 참혹한 형체를 보며 혀를 차면서 항의한다는 이들의 소리에 박수를 보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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