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4

 

도전세력이 쏘아대는 직격탄이 이제는 조봉암에게로 곧추 날아들었다.

어느날 아침 연경이 《조선일보》의 조간지를 들고 조봉암의 방으로 허겁지겁 숨이 차서 뛰여들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정말 비렬한 놈들이예요!》

연경이 아버지앞에서 너무 억이 막혀 눈에 불찌를 날리며 크게 소리쳤다.

가뜩이나 청높은 연경의 목소리가 이방저방을 때려 식솔들과 류선녀까지 조봉암의 방으로 바삐 들어왔다.

《에? 떠들어대기는… 금룡이 네 목청은 게사니목청 한가지라 하더니 그른데 없구나.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냐?》

조봉암은 전에 없이 헤덤비는 연경의 모습에 덩달아 가슴이 쩡해졌으나 롱조로 물었다. 연경이 저쯤되면 그 무슨 불길한 소식을 들고온게 분명하다.

연경이는 덜렁거리는 성격이면서도 만사를 속크게 받아들이고 자기나름으로 려과할줄도 알며 자극적인 일에도 자제할줄 아는 리지적인 처녀였다.

조봉암은 그가 막 구겨쥐고있는 신문을 넘겨다보며 침착하게 그의 뒤말을 기다렸다.

《아니, 이것들이 글쎄…》

연경은 손에 들고있는 신문을 마구 흔들며 숨이 차서 말을 떠듬거리기까지 하였다.

《이것들이 글쎄 아버지더러 간첩이래요, 간첩… 뭐, 망책이라나요?!》

《간첩?! 망책?!》

문가에 서있던 세사람의 입에서 비명같은 웨침이 일제히 튀여나왔다.

《나 좀…》

류선녀가 겁에 질려 연경의 손에서 신문을 받아 재빨리 훑었다.

《간첩?! 내가 망책이라… 어디 간첩? 미국간첩이래? 하하 … 그건 좀 비슷해. 왜냐면 내 친구 롤만이 미국공민이고 정보분석에 종사한 사람이였으니깐. 우린 자주 시국평가를 교환하였거던.

아니면 국제공산당 간첩이래? 그것도 비슷해. 난 20대, 30대시절에 국제당의 파견원으로 그리고 대표로 서울과 만주와 상해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거던. 허허… 거, 나두 좀 봅시다.》

조봉암이 어이없어 웃다가 류선녀로부터 신문을 받았다.

신문에는 최근에 부산지역에서 암약하던 《국제공산당의 간첩단》을 적발했는데 그들이 조봉암의 지도를 받아왔다는 글이 모특수기관에서 입수한 자료라고 출처를 대면서 주먹같은 활자로 간단히 소개되여있었다. 글은 서울지방검찰청이 조봉암을 곧 호출할것이라는것도 전하고있었다.

《허허…》

조봉암은 신문을 책상우에 내던지였다. 그리고 다시 온몸을 들썩거리며 또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아유, 아버진 태평하시네.》

효경이가 가슴팍을 움켜쥐고있다가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나둬라. 동리 개짖는 소리에 일일이 따져볼 멋이 있겠느냐?

떠들어대다가 맥이 진하면 입다물지 않으리, 허허…》

조봉암의 장쾌한 웃음과 흔들림없는 웅건한 자세가 식솔들의 마음을 다소 가라앉게 하였다.

그러나 연경이만은 여전히 분격을 금할수 없어 오연하게 부르짖었다.

《당장 신문사를 고발하겠어요. 도대체 국제공산당이란게 지금 있기나 해요?! 이건 불손하고도 의도적인 명예훼손이예요. 난 법원을 찾아갈테예요. 아니, 법무부를 찾아가겠습니다. 류선생님도 함께 가시지요?》

연경이가 돌아보며 묻자 너무도 심한 충격에 가슴을 부둥켜안고있던 류선녀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게 해요. 선생님, 이건 정말 가만 놔두어서는 안될 일인줄 압니다. 제가 긴급조치를 취하도록 오빠에게 말해보겠습니다.》

류선녀는 인차 제 할바를 깨닫고 침착하게 자기 립장을 조봉암에게 밝혔다.

조봉암이 류선녀의 말에서 놈들이 벌려놓은 너무도 위험천만한 광대놀음에 파들짝거리는 식솔들의 맥박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무겁게 눌러놓았다.

《음… 고맙지만 그렇게 하지는 마오. 오빠를 난처하게 만드는건 선녀선생을 위하여서도 삼가해야 하오.》

《그래도 덮어두고 넘어가진 못합니다. 저의 오빠도 진실을 알고 문제를 바로잡도록 움직이게 하는것이 꼭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류선녀가 깔끔한 어조로 찍어 말했다.

《선녀선생, 내 말을 듣는게 좋다오. 괜히 나섰다가 이번에는 정말 오빠가 이 집에 들어오는 출입증을 회수해버리면 어쩔라구 그러시오.》

조봉암이 너무도 무사태평하게 넘기는 우스개소리에 류선녀는 그만에야 낯이 새빨개졌다.

그럴만 한 일이 있었다.

류선녀의 오빠인 류선민은 조봉암과는 동갑나이의 오랜 지식인이였다.

영국에 가서 법률공부를 하고 경성제국대학에 와서 법학을 가르치다가 해방을 맞은 류선민은 그후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있었다. 조봉암이 《국회》부의장노릇을 할 때 그에게 련정을 품고 다가선 동생을 붙여주느라고 무척 왼심을 썼다.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요,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은 남편과 석달밖에 살지 못하고 외로이 살아오는 불쌍한 동생이였다.

재색을 겸비한데다가 서울의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리화녀대의 교수로 있어 숱한 남자들이 추파를 던져오는것을 한사코 도리질해오더니 어느해 설에 조봉암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숱한 구혼자들을 뿌리쳐온 동생의 심경의 변화가 다행이라 생각하고 조봉암에게 달라붙어보았는데 상대가 생각보다는 완고하여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조봉암이 류선녀의 나이가 자기보다 썩 아래이고 출신으로 보아 부자집 귀동녀로 고이 자라난데다가 자기는 두 딸에게 짝을 다 맞춰주기 전에는 재취할 생각이 없다는 등 여러가지 리유로 류선녀뿐아니라 다가서는 녀인들을 다 마다하는것이였다.

류선민은 모처럼 동생이 마음의 뿌리를 내린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앞뒤로 자주 오가며 자기 동생을 가까이 두라고, 큰 자리를 맡고있는분에게는 의당히 안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력설하군 하였다.

류선민이 몇차례 가까이에서 만나보니 조봉암은 확실히 신념이 강하고 지략이 있으며 절제가 있고 인간됨이 고매한 거목이였다.

그런데 조봉암이 벼슬을 내놓고 리승만의 빈축을 받고있는것이 세상이 다 아는 사실로 정해지자 립장을 바꾸었다. 더구나 리승만의 수하에 들어가 조봉암에 대한 리승만의 한을 가까이에서 목격하자 동생이 더이상 조봉암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단단히 빗장을 질러놓아왔다. 조봉암의 정치적장래는 물론 그 인간의 신변이 질풍에 휘청거리는 갈대처럼 위태롭게만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들의 혼사를 성사시키려고 마음을 쓰던게 언제였더냐싶게 조봉암을 따라서는것은 수렁판에 들어서는 자살적인짓이라며 동생을 달래고 막아나섰다.

근래에는 등가려운 일이기는 해도 렴치불문하고 조봉암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동생을 돌려보내달라고, 류선녀에게서 출입증을 거두면 그만이 아닌가고 인간불륜의 부탁도 하면서 역증을 내기도 하였다.

물론 류선녀는 그러루한 압력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돌아설 녀인이 아니였다.

조봉암과 가까이 접촉할수록 그의 가슴에는 오직 조봉암의 모습만이 꽉 차있을뿐이였다. 류선녀가 애모하는 조봉암은 그가 일찌기 그려봤던 사랑의 리상을 무색하게 하는 아름답고 고결하고 억세고 미더운 남성이였다.

조봉암은 류선녀가 두볼이 타오르는것을 보자 괜한 말을 꺼냈다고 후회하면서 연경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 선녀선생님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놔두어라. 신문쟁이들이라는건 이따금 세상을 들썩거리게 할 특종뉴스를 만들어내야 밥벌이가 되는거야. 독자들이 많아지니깐.

허허… 그것들이 돈 먹고 세상에 대고 장난치는건데 곁들어 맞장구칠게 있느냐. 가랭이 시커먼 놈들과 맞붙어봐야 제 바지가랭이도 덞어지기마련이다.》

조봉암은 대수롭지 않게 만류하며 웃었다.

《아유, 아버지는 그냥 웃으시네. 어디 웃고계실 경황이 있어요? 이런 모함을 당하시고도…》

《그럼, 아버지도 너처럼 눈물을 찔끔거리라니? … 일없다. 그것들이 그래 보는거다. 늬 아버지 힘줄이 어느정도 질겨먹었는가 한번 저쪽에서 재부랑거려보는거다. 부닥쳐봐야 피차에 기운뽑히는 일이니 굳이 건건이 신경쓰며 대응할 필요가 없다. 애꾸러기장난도 곱게 봐주느라면 제김에 물러서는거야. 놔두어라. 차라리 내 이름 걸고 돈벌이하는 놈들 꼬바기 적어두었다가 뒤날에 벌어들인 돈이나 나눠먹자고 송사를 걸어봐라, 허허허…》

너무도 배포유한 아버지의 모습에 다소 마음이 가라앉은 연경은 어글어글한 눈에 이슬기를 머금고 해쭉 웃음을 담아보였다.

일진광풍에도 끄떡없는 조봉암의 반석같은 자세가 엄습해오는 공포로부터 녀인들을 일단 지켜주었다.

만사를 초탈한듯 한 조봉암의 그 거연한 모습은 새로운 믿음과 정으로 채색되여 류선녀의 뇌리에 소중하게 찍혀졌다.

가까이에서 지낼수록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치고싶은 애틋한 련모의 정을 더욱 불붙게 한다. 한생을 다 기울여 아껴주고 위해주고싶은 갈망을 굳게 해주는 그 모습에 류선녀도 어쩐지 쉽게 폭풍의 전조를 낌새맡은 새들처럼 파들거리던 가슴이 평온을 되찾고 마음이 훈훈해왔다.

신문에 실린 기사는 조봉암에게로 도전세력의 화력을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버드와 정제관이 날린 신호탄이였다.

이날 석간신문들과 방송들에서는 기다린듯 앞을 다투어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붙이는 기사들을 집요하게 공개하였다. 거기에는 반드시 조봉암이 망책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국체가 흔들리고있다고 엄살을 떨었다.

그런 소식에 접할 때마다 조봉암은 호방한 웃음으로 대답을 보내군 하였다. 신문이나 방송과 일일이 시비를 캐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행으로 어느 한 신문에 《간첩이라니, 헝!》 하는 해학적인 제목을 달아 그 무슨 설명이나 반론도 없이 활짝 웃고있는 조봉암의 태연한 모습만으로 반면을 가득 채워 도전세력들과 야료를 부리고있는 언론들을 압도하여버렸다.

조봉암은 이렇게 자기와 자기 당에 비발치듯 날아드는 흉악무도한 압살행위에 거연히 버티면서 4대《국회》선거를 위한 준비사업을 과감하게 밀고나갔다.

드디여 그렇게도 기다려지던 새해 첫날이 왔다.

1958년 1월 1일!

시련에 찬 한해가 지나갔다. 지겹기 그지없던 해였다.

새해는 어떨가. 상서롭지 않았다.

다가오는 새해를 조봉암은 비장하게 맞았다.

이날 조봉암은 자기에게로 몰려드는 서울신문들과 외국의 특파기자들을 자기 집의 응접실에 다 받아들여놓았다. 개중에는 내무부와 미군방첩대가 들이민 밀정들도 섞여있었다.

조봉암도 알고있었다. 차라리 잘되였다. 리승만과 맞선 심정이였다. 단호하게 내외에 천명하였다.

《우리 진보당은 이제 넉달후에 진행될 선거에 만전을 기하고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우리 당은 지금 도전세력의 음해책동으로 모든 선전수단을 잃었으며 전역에 정연하게 세워놓은 당기구들에 대한 통일적인 지휘체계도 상실하였다.

따라서 나는 당신들 언론의 붓을 빌어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간부들과 지지자들에게 새해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아울러 올해에는 모두가 근로민중속에 깊이 들어가 민중의 훌륭한 대표를 국회에 보내기 위한 투쟁에 총력을 기울일것을 호소한다!》

조봉암은 이 자리에서 간첩단사건기사들과 관련한 립장을 밝혀달라는 샹강신문 서울특파기자의 요청에 명쾌한 어조로 답변하였다.

《관권의 창녀들의 요사스러운 아양이요.》

또다른 기자가 재차 물었다.

《죽산선생님, 지금 서울의 언론들이 선생님을 세워놓고 도리깨로 콩마당질하듯 두드려패고있는데 왜 반론 한마디 내놓지 않습니까?》

그러자 조봉암은 기자들을 향하여 의연히 껄껄 웃기부터 하였다.

《내 이미 우리 둘째딸에게 한마디 했소. <동리개 짖는 소리에 일일이 따져볼 멋이 있겠느냐. 떠들어대다가 맥 진하면 입다물지 않으리.> 하구 말이요. 허허허…》

그 장쾌하고 장부다운 웃음을 담느라고 사처에서 사진기의 조명불빛이 번쩍거리였다.

조봉암은 자기의 선언, 자기의 웃음소리가 경무대의 보짱을 흔들어 놓으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기자회견을 마친 조봉암은 그길로 또다시 우달수를 앞세우고 충청북도를 향하여 집을 나섰다.

설날 하루동안 조봉암은 충청북도의 단양군으로부터 제천과 충주 등 여러 시, 군들을 찾아 험한 산길을 줄곧 달리였다.

조봉암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숨어있거나 사기가 떨어져 락심천만해있던 진보당 당원들과 당간부들, 지지자들이 떨쳐나서 그를 마중하였다.

어디서나 환호성이 하늘을 찌르고 숨이 꺼져가던 조직들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가 충청북도의 절반에 가까운 시와 군들을 돌아보고 도의 서쪽에 있는 영동군으로 가려고 려관을 나설 때 신창균이 온다는 기별도 없이 불쑥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아나섰다.

치안국에서 자문위원으로 있는 상해시절의 옛친구가 신창균과 함께 왔다.

자문위원은 치안국에 아직까지 붙어있는 유일한 상해림시정부출신인물이였다. 그는 장개석군대에서 소좌로서 군경독찰관으로 항일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어 오래전부터 경찰기관에서 복무하여왔다.

해방후 리범석이 조직한 민족청년단 인천지부 단장으로 지낼 때 인천에서 활동하던 조봉암과 자주 만나면서 교제가 깊어졌던 사람이였다. 그는 그 시절부터 조봉암을 진심으로 존경하여왔다. 때때로 자금지원까지 하였고 경찰기관의 움직임을 통보해주기도 하였다. 이번에 진보당이 설 때 특수부에 소속된 당원이 되여 신창균의 지도를 받고있다.

신창균은 조봉암과 문안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급히 올릴 소식이 있다고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봉암은 신창균이 치안국의 자문위원까지 달고 서울에서 급히 달려온데는 그 무슨 긴한 사연이 있을것이라고 짐작하고 방금 나선 려관방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연경이와 김봉무가 따라들어오자 신창균은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여느때없이 서늘하게 이르고는 출입문을 쿵 소리가 나게 닫아버렸다. 그리고 까스스한 상고머리를 연신 쓸어올리다가 다소 덤비는 어조로 찾아온 사유를 밝혔다.

《다른게 아니구 이제 곧 죽산선생님은 이곳을 탈출해야겠습니다. 죽산선생님을 제거하는것이 경무대의 지시로 정식 눌러졌다고 합니다. 래일모레부터 진보당 중앙간부들에 대한 검거가 진행됩니다. 죽산선생님이 그 첫번째 대상으로 되여있습니다.》

《늘 들어온 소리요. 그 다음 통보해줄게 뭐요?》

조봉암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신창균이 꺼내놓은 말은 무시하고 뒤말을 독촉하였다. 빨리 떠나야 오전안으로 두개 군을 돌아볼수 있다.

조봉암이 자기의 보고에 그닥 흥미를 보이지 않자 신창균은 급해맞아 어성을 높였다.

《아, 이번에는 다릅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이길로 해외로 나가셔야 합니다. 필요한 조직사업은 제가 부산쪽에 먼저 가서 다 해놓겠습니다.》

《뭐요? 해외로?!》

조봉암이 벌써 세번째로 들어보는 해외도피소리에 버럭 화를 냈다.

신창균은 아침도 건늬고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온 자기의 성의를 묵살해버리는 조봉암의 데설궂은 소리는 타내지 않고 빠른 말씨로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해외로 가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사태가 다르다는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있던 자문위원이 그냥 듣고만 있을수 없어 무겁게 삐쳐들었다.

《죽산선생님, 부장님의 보고에는 과장이 없습니다. 이건 저도 참가한 내무부의 회의에서 정제관이 발언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정제관은 이제는 구태여 비밀이랄것도 없다고 떠들었습니다.

간첩단을 소탕하는건 눈 가리우고 아웅하는짓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번은 다르다는 부장님의 설명이 전혀 보태지 않은 사실 그대롭니다.》

《나도 알고있소. 경찰이 신문에 날리는 날조된 소식정보나 내게로 직접 들려오는 소식들이 이번에는 잡도리가 다르고 무지하고 악착한 결말을 시사하고있는것은 사실이요.》

조봉암은 미소를 거두고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러자 신창균이 격한 어조로 다시 주장을 강하게 세웠다.

《그러니 떠나셔야 합니다. 윤기중간사장과 오랜 시간 이 문제를 론의하였습니다.

진보당이 드디여 자기 구조를 완비하고 첫 싸움이 박두하고 한편으로는 놈들의 책동이 극도에 달하고 당이 시련을 겪고있는 시기에 당수가 자리를 비우는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겠는지 우리도 크게 우려하고 불안스러운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영상에도 다소 그늘이 생기리라는것도 다 예견하였습니다.

그래 오래동안 숙의하던 끝에 서울에 남아있는 상무위원들을 불러 비상위원회를 열고 이 문제를 협의하였습니다.

결론은 선생님께서 해외에 망명하시여 국내의 반독재투쟁을 해외에서 지도하시도록 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당중앙위원회 비상상무위원회의 특별결정입니다.》

《뭘?! 결정을 했단 말이요?! 본인도 당수도 참가하지 않고?! … 결정으로 나를 몰아가지 마오. 그래, 동지들은 다 감방으로 가는데 이 조봉암만은 외국으로 도망쳐서 편안히 제 목숨 부지하라는거요?》

《선생님! 왜 그렇게만 생각하십니까?! 선생님의 지론이 있지 않습니까, 1보전진, 2보후퇴…

지금은 후퇴할 때입니다. 후퇴가 우리 당의 1보전진으로 됩니다!》

《레닌의 유명한 그 명제를 내 목숨 구할 방편으로 리용하면 되겠소?!》

조봉암이 퉁명스럽게 신창균의 열띤 청을 밀막아버렸다.

《전에 롤만선생도 그걸 가지고 날 훈계하더니 모두 어찌된 일이요?! 해외도피는 우리가 추켜든 기치를 내리는거요. 우린 감옥에 가더라도, 지하에 들어가더라도 그 기치를 내려서는 안되오. 좋소. 내가 요새 좀 생각해본게 있소.

신창균부장은 이제 서울로 돌아가서 속히 리기붕이 출마한 <국회>선거 1번선거구인 서대문동에 내가 립후보하도록 등록하시오. 그렇게 되면 관권이 로골적으로 나를 탄압하지는 못할것이요.

리기붕이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자기의 경쟁후보를 감옥에 보내놓고 여론의 질타에 견디여내겠소?! 그건 리기붕의 자존심에도 어울리지 않는 일로 될거요.》

《예, 그거 참 묘안입니다.》

자문위원이 조봉암이 내세운 책략이 그럴듯 해서 무릎을 치는데 신창균은 뜨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그냥 기웃거리였다.

《이보우, 신부장! 바꾸어 립장을 가진다면 난 그렇게 못할거요. 결국 사회여론은 자기가 선거에 패할듯싶으니깐 자기 경쟁자를 감옥에 처넣었다고 평가할거란 말이요.

이미 이번 선거에 내세우기로 했던 상무위원들과 간사들 그리고 부장들도 래일중으로 다 해당한 선거구들에 가서 후보등록을 하도록 하시오. 이건 우리의 반타격전이요. 어떻소, 신창균부장?!》

그제야 신창균은 고개를 끄덕이였는데 아직도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였다.

《자, 그러면 다들 움직입시다. 중요한건 시간이요. 시간을 놓치지 말고 신속하게 과단성있게 행동해야 하오.》

조봉암이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려고 하자 자문위원이 정중하게 제기하였다.

《내려올 때 간사장이 신창균부장님에게 당수가 부산을 떠날 때까지 곁에서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러니 죽산선생님은 상무위원들의 이 뜻만은 존중해야 될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정황으로 보아 죽산선생님은 며칠간만이라도 잠적하여 사태를 지켜보고 선생님의 주변은 우의 결정대로 신창균부장님이 맡아주시는게 옳을듯싶습니다.

제 혼자 돌아가서 죽산선생님의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간사장에게 보내는 지시문을 만들어주십시오.》

신창균이 그게 좋겠다고 지지하였다.

조봉암도 더는 고집을 부릴수 없어 상무위원회결정대로 신창균을 떨구어 같이 행동하며 지시문을 작성하여 상무위원들에게 보내주기로 하였다.

자문위원은 인차 조봉암이 작성해준 지시문을 받아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런데 밥을 날라다먹으며 당사를 지키고있던 윤기중이 조봉암의 지시문과 자문위원의 보충설명을 듣고나서 난색을 표시하였다.

이 문제는 당상무위원회를 열어 결정하고 공포해야 법적으로 인정받을수 있는데 상무위원들을 다 피신시켰다는것이였다.

즉시 불러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하니 각자의 향방은 누구도 알수 없게 되였으니 며칠안으로는 모여앉을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여기에 간사장도 있고 당수와 특수부장도 이미 동의한것으로 되니 비상한 환경에서 비상한 방법으로 당신네가 당상무위원회를 대표할수 있지 않는가고 자문위원이 들이댔다.

윤기중과 자리를 함께 한 총무간사가 그건 당규약에 없는 일로서 뒤날에 당안의 시비를 들을수 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되자 자문위원은 그렇다면 당수의 후보등록이라도 시급히 하자, 여기서 등록문건을 만들어 저녁전으로 1호선거구로 정해진 서대문선거구에 가서 등록부터 해놓자, 그 다음에는 각 언론사들에 이에 대하여 통보하자, 래일 아침 신문에 실려 전체 선거자들이 다 알도록 하면 당수에 대한 관권의 태도가 조심스러워질것이라고 력설하였다.

윤기중은 생각을 굴려보더니 이에 대하여서도 여전히 도리질을 하였다.

그건 또 하나의 《선거법》위반으로 뒤날에 반드시 상정될것이니 좀더 토론을 해봐야 할 일이라는것이였다.

자문위원은 그의 우유부단함에 벌컥 성을 냈다.

《그러지 말구 서대문선거구에 이제 당장 나와 같이 가봅시다.》

자문위원이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안타까워 당장 가보자고 윽윽하며 윤기중의 팔소매를 잡는데 그옆에서 총무간사라는 사람이 주어섬기는게 겁에 질린 소리였다.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메는 법이요. 심사숙고합시다. 방도없이 갔다가 문전에서 퇴맞으면 랑패가 아니요. 생각을 좀더 굴려보고 가장 안전한 길을 찾읍시다.》

《길고짧은것은 대봐야 안다지 않습니까. 한번 맞붙어보는거지요.》

《짐작이 천리라는 말이 있잖소. 맞붙어봐야 뻔한 일이요.》

《지금은 한초가 천금같은데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시렵니까?》

《글쎄… 열흘 나그네가 하루길 바빠해서 일을 그르치면 어쩌겠소.》

자문위원은 애초에 혼비백산해있는 총무간사의 소심하고 뼈대여린 대꾸에 드디여 격노를 터뜨려놓고야말았다.

《이거 모두 귀 떨어지면 다음 장날에 주어갈 사람들이군. 이제 보니 우리 당중앙에는 얼간이들만 모여들어있었구려. 이제 보시오, 일이 어떻게 돼가는지. 어디 지금 요식절차나 걱정하고있을 때요?! 선거법이요, 당안의 시비요, 념불이나 외우고있을 땐가 말이요?! 언젠가 죽산선생이 하던 말이 생각되는구만. 승자는 달려가며 계산하고 패자는 출발도 하기 전에 계산부터 한다고 했지. 당신네는 패자요. 당신들의 모양이 꼭 도살장에 제발로 어정어정 들어가는 황소꼴이요!》

그가 울컥 밸을 쓰고 돌아가자 충격을 받은 윤기중이 그냥 바재이는 총무간사를 끌고 서대문선거구부터 찾아갔다. 바삐 작성한 조봉암의 등록문건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선거위원장이 하는 말이 진보당의 후보들을 접수하지 말라는 특별지령이 내려왔다고 하였다.

열띤 론쟁이 여러 시간 벌어졌으나 경무대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은 놈들이라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조봉암의 마지막기대마저 권력의 전횡에 허물어졌다.

도전세력의 이 횡포에 맞불질을 해야 되겠으나 윤기중이나 총무간사는 이런데서는 체질이 강하지 못한 사람들이였다.

뒤날 이때 일을 전해들은 조봉암은 당시 그옆에 신창균이나 우달수가 있었으면 일은 다르게 벌어졌을것이라며 락심천만해 하였다.

신창균은 충청북도 도당부에서 마련해준 충주시교외에 있는 자그마한 려관에 조봉암일행이 자리를 잡도록 하였다. 그리고 영동군에 가있는 우달수더러 현재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전하였다.

려관은 진보당 당원이 운영하는 려관이였다. 대소한추위라 그리 손님도 없어 조용하였다.

조봉암은 려관에서 서울형편을 면밀히 살피였다.

드디여 며칠후 새벽에 서울과 각 도당의 간부들이 일제히 검거되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김봉무가 충주시내에 나가서 집에 전화를 하니 집을 지키고있던 효경이가 울면서 소식을 전하였다. 이날 새벽 경찰들이 불의에 달려들어 아래웃층을 샅샅이 뒤졌다는것이다. 그리고 수사관들이 지금도 물러가지 않고 아버지를 체포하겠다며 접수실에 진을 치고있다는것이다.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하여 서울경찰청이 전부 투입되였다고 한다.

《아버지더러 서울에 돌아오지 마시라 하세요. 내 걱정은 말구요. 절대로 돌아오지 마세요!》

효경은 이렇게 흐느껴울며 소리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효경은 경찰이 옆방에서 도청하고있다는것을 알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사태를 그대로 설명하였던것이다.

효경이가 전화를 끝냈을 때 경찰이 그의 방에 들이닥쳤다.

그자는 다짜고짜로 전화줄을 홱 잡아채서 끊어버리고 눈을 부라리다가 효경의 눈총에 기가 질려 비실비실 뒤걸음쳤다.

김봉무는 충주시안의 신문팔이소년들에게서 서울소식을 실은 신문들도 여러장 사가지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도당부를 한바퀴 돌아보니 간판이 없어지고 유리창들도 깨여진게 분명 란장판이 된것 같았다.

《아버님, 이제는 완전히 지하에로 들어갑시다.》

김봉무는 효경이 들려준 소식을 전하고나서 다급한 어조로 제기하였다.

곁에 서있던 신창균도 얼굴이 무거워졌다. 그도 지하에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하에로? …》

조봉암은 심장을 떠박지르는 강한 충격을 느꼈으나 침착하게 물었다.

《이 미친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그렇게 해야 될것 같습니다.》

《음, 우리 당에 어느것이 유익하겠는지… 명백한것은 미친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는것은 파멸을 앉아서 기다리는것으로 된다는거요. 미친바람을 제압해야 하오. 어떻게? … 좀 생각해보자구.》

조봉암은 다들 방안에서 내보내고 신문으로 도배를 한 벽에 허리를 붙이였다.

오래동안 바위처럼 올방자를 틀고앉아 깊은 상념에 잠겨들었다.

이제는 막연한 위기감이 아니였다. 치명적인 타격이 걸음걸음을 막아서고있다.

《음-》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미간의 골이 더 깊어지고 이따금 볼이 경련을 일으키듯 푸들쩍거렸다.

중앙당을 결성한 때로부터 한해가 조금 지나갔다. 지방당조직이 완성된것은 몇달전이다. 그런데 벌써 당은 말그대로 바람앞에서 흔들리는 초불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예상을 못한것은 아니였다. 각오도 되여있었다. 방략도 서있었다. 하지만 놈들의 공격이 너무 앞당겨지고 그 강도가 너무 상상밖이여서 손쓸 여지가 없게 되였다.

조봉암은 당전체에 가하여진 리승만과 버드의 드센 타격앞에서 당황해진 자기를 의식하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육체를 결박하고있는 불안과 공포를 쫓아버리려고 애를 썼다.

이대로 넘어질수는 없다. 절대로 넘어져서는 안된다. 고심참담한 싸움속에 기어이 민중속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있는 당을 지켜내야 한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낀 두팔을 가슴에 올리고 방안을 거닐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가. 지체말고 행동해야 한다. 중심고리가 어데일가. 어데를 쳐야 이 광대극을 제압할수 있을가. 저놈들이 과연 어떤 명분을 세워놓고 이렇게 대검거선풍을 일으키는걸가. 정말로 진보당을 간첩당으로 몰아붙일수 있는 그 무슨 실마리라도 잡았다는걸가.)

그는 신문에 도간도간 심심치 않게 실리군 하던 자기와 관계되는 기사내용들을 더듬어보았다.

모든 자료가 허위와 기만과 억측으로 만들어낸 자료였다. 거기에는 티끌만 한 진실도 없었다. 따라서 법의 심판을 받아봐야 애당초 범죄로 구성해볼만 한것이란 없다. 그런데 경찰은 바로 그 날조된 자료를 걸고 나를 《간첩단의 우두머리》라고 찍어놓았다. 거기에 당전체를 련관시켜 서울뿐아니라 지방의 당부들을 벌둥지처럼 쑤셔놓고 진보당을 통채로 자빠뜨리려 하고있다. 백색테로의 광란에 진보당은 다시 솟구치는가 아니면 이대로 지리멸렬되는가 하는 존망의 기로에 놓이게 되였다. 이 판가리시각에 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그것도 놈들이 우두머리라고 락인을 찍고 이른바 《모든 범죄의 왕초》라고 수사의 초점을 집중하고있는 주범이 숨어서 대세를 관망이나 해서야 될법인가. 정정당당히 맞서서 싸워야 될게 아닌가. 내가 만약 이렇게 잠적해있으면 결국 자기의 《범죄》를 시인하는것으로 된다.

당전체에 들이닥친 미친바람은 언제 가야 제압할수도 가라앉힐수도 없다. 놈들은 나를 걸고 오히려 당을 산산쪼각으로 깨버리려고 할것이다.

놈들에게 마음껏 우리 당을 롱락할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더 이상 주지 말아야 한다. 옳다, 그것이다! 놈들에게서 도전세력을 완전분쇄할수 있는 공간을 빼앗아내야 한다. 이것은 다름아닌 나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적들을 제압하기 위한 중심고리는 나에게 얽혀있다. 그를 뚫고나갈 주동인물도 이 조봉암이다.

조봉암이 비장한 결심을 더 굳게 가다듬게 한것은 이날 저녁 김봉무가 또 시안에 가서 얻어온 《조선일보》의 1면 상단에 실린 이른바 《특종뉴스》였다.

거기에는 《검사의 고발》이라는 표제밑에 조인수라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가 기자와 나눈 담화내용이 짤막히 실려있었다. 조봉암은 조인수라는 이름을 이미 들어왔었다. 그와 맞섰던 일도 있다. 조인수는 해방후에 주로는 정치사건들을 담당하면서 정치검사로 악평을 받아오고있다.

《진보당이 자기의 강령에서 제창한 평화통일론은 사실상 북의 남침구호의 복사판이다. 따라서 <보안법>에 따라 엄단하게 된다.》

기사에는 조봉암이 북으로부터 평화통일구호를 드는 대가로 많은 공작금을 받았으며 국제공산당에서 파견된 여러명의 공작원들과 접촉하였으며 가택수색에서 북에서 받은것이 분명한 보신용권총 한정과 수많은 불온문서들이 압수되였다고 소개되여있었다.

김봉무는 이날에 배포된 다른 신문들에도 조인수의 담화내용이 신문 1면 상단에 일제히 실렸다고 보고하였다.

언론도 관권의 통제와 조종에 따라 움직이고있는것이다. 리승만이 드디여 공개적인 결투에로 나선것이다.

조봉암은 몸가까이로 육박하여오는 싸움을 더는 피할수 없으며 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신창균과 김봉무를 앉혀놓고 자기의 결심을 내놓았다.

《이게 바로 여론재판이라는거요. 세상여론이 그놈은 확실히 죽어야 할 놈이다 하고 소리칠수 있도록 먼저 바람을 일구어놓고 그 바람을 타고 권력이 칼을 들어 요정을 내는거요!

그러니 다른 방법이 없소. 맞받아나가야 돼!

저놈들이 날 이렇게 벼랑턱으로 몰아놓았는데 내가 더 숨어지낼수 없지 않는가. 그건 제손으로 올가미를 걸어놓는 일이야.

역풍을 몰아가야 되오. 역풍을 몰아 미친바람을 제압해야 된다 그거요!》

《아버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무슨 결심을 하신겁니까?》

김봉무가 조봉암의 소리에 진저리를 치며 갈린 어조로 부르짖었다.

《나를 막지 말아달라는거다. 더이상 이렇게 숨어지내서는 안된다. 사람마다 사회앞에서 짊어진 자기 과제가 있고 자기 몫이 있다. 누가 눈에 피발이 서서 덤벼드는 독재정권의 공세를 막아낼수 있겠느냐?! 내가 나서야 한다! 싸움은 기필코 나와 리승만, 나와 미국, 아니 미제국주의가 붙게 되였다. 그러니 내가 이 싸움을 피해서는것은 사명감도 없고 량심도 없는 무책임한 일이다.》

신창균이 더는 참지 못하고 격렬하게 웨쳤다.

《안됩니다. 놈들은 지금 죽산선생님을 유인하고있는겁니다. 싸움을 걸어오는겁니다. 나오지 않으면 배겨내지 못하도록 여론기만공세를 펴는겁니다.

당의 운명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괴로워도 이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와신상담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당상무위원회가 내린 마지막결정을 지켜주실것을 부탁합니다! 아니, 당상무위원회의 이름으로 요구합니다!》

그러나 조봉암은 일단 마음속에 질정이 되여있는지라 굽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일단 결심을 하고나니 시골에 박혀있는 한초한초가 죄스럽고 초조해졌다.

뜨끈뜨끈한 구름노전우에 앉아있는것이 아니라 꼭 바늘방석에 앉아있는것 같다.

이제는 정정당당하게 리승만일파와 맞서야 한다.

감옥과 심문대와 법정에서 불의와 맞서서 정의를 지켜야 한다. 파쑈와 맞서서 진리를 지켜내고 당을 옹호해야 한다.

이렇게 강심을 다져먹으니 배짱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겨났다.

《이보게, 부장! 임자야 나를 상해시절부터 30년가까이 알고 지내온 사람이 아닌가. 예로부터 지사들에게 금언처럼 전해져오는 말이 있다네. 의를 위한 죽음은 만년행운이라고 했어. 백범이 바로 그렇게 요절하였고 몽양이 그렇게 산화하였지. 강진호가 그렇게 비명에 숨이 졌네. 그네들의 넋이 지금 나를 지켜보는것 같네. 마땅히 나서야 할 자리를 제 한목숨이 중해 피한다면 그게 무슨 당수이고 투사겠나. 나를 놓아주게. 내가 나서야 하네. 아무도 나를 대신해줄수가 없네. 저놈들에게 더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하네. 빨리 미친바람을 잡아야 하네. 내가 이렇게 숨어지내면 저놈들이 내키는대로 마구 쏟아놓은 혐의가 기정사실화되고 애꿎은 우리 동지들만 피해를 보게 되네. 내가 나가서 정정당당히 싸우는 길만이 우리 당을 구출할수 있는 길일세.

저눔들이 분명 이번 선거에서 몰릴게 헨둥하니 막판수로 이렇게 몰지각한 행태를 보이고있는거니 너무 걱정할게 없네. 난 언제든지 이런 날이 올것이라는것을 알고 준비를 갖추어왔네. 날더러 간첩단우두머리라고 하는데 내가 이렇게 입을 다물고있으면 누가 날 대신하여 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변호하여주겠나? 또 그런 변호가 무슨 의미가 있고… 더는 쫓겨다닐수만 없네. 이건 완전한 피동이고 수세요. 주동적인 공격전으로 넘어가야 하오. 어쩌면 우리의 법정투쟁이 민중을 또 한번 크게 각성시키고 그들속에서 진보당의 권위를 높이는데서 보다 효률적인것으로도 될수 있소.

너무 걱정들 하지 말라구. 감옥이라는게 어떤건지 나도 잘 알고있으니 마음쓸것도 없어. 고작해야 몇해간 콩밥을 먹으며 좀 쉬다가 나올셈 치면 만사가 든든해지는거요.》

조봉암은 아까부터 방안에 소리없이 들어와 장정들의 열띤 론쟁에는 끼여들지 못하고 오돌오돌 떨고있는 연경이와 류선녀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버지!》

연경이 아버지의 옆구리에 고개를 박고 슬프게 흐느껴울었다. 이제는 누구도 아버지의 의지를 꺾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신들메를 죄여맨것 같다.

조봉암은 딸의 잔등을 어루쓸어주며 다심하게 달래였다.

《얘야, 안심하거라. 숱한 마음착한 사람들이 날 따라나섰다가 나를 멨다꽂으려는 독재의 칼날을 날 대신해서 받아 숨지고 철창에 끌려가 페인이 되기도 했지. 그네들을 생각해라. 자, 이렇게 합시다. 신부장! 우선 영동군에 가있는 우달수부위원장을 철수시키시오. 차라리 잠적하라고 하시오.

연경이는 집에 전화를 해서 효경이더러 마음을 놓으라고 전해라. 그 다음에는 신부장, 서울경찰청을 찾아주시오. 전화는 내가 직접 하겠소. 여기로 전화를 련결하도록 하오! 시간이 없소. 움직입시다. 봉무, 임자는 차를 움직일수 있도록 방열기에 더운물도 넣고 기관점검도 해보게. 관악산을 넘어야 하니 수고해야 될걸세.》

조봉암은 례사로운 어조로 간단명료하게 지시를 내렸다. 사람들은 조봉암의 비장한 용단과 의지에 더는 거슬림이 없이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얼마후 조봉암은 서울경찰청장과 전화로 만났다.

《청장인가? … 조봉암이요. … 허허, 숨어있다니? 내가 무슨 죄를 졌다구. 이제 곧 서울로 가겠으니 종로네거리에서 만납시다. 다섯시쯤이면 거기 도착할거요. 눈꽃이 날리는걸 보니 관악산을 넘을 때 시간이 지체될것 같구만.

청장이 직접 오겠다구? 마음대로 하오. …

뭘, 임자가 죄스러울게 없소. 임자도 시켜서 하는 일이니 어쩌겠소. … 괜찮아. 아니아니, 난 숨어지낼 리유도 없는데 숱한 경찰들을 수고시키며 임자까지 대소한추위에 고생시킬게 있나. 그러니 인차 떠나겠소. … 뭘? 자수했다고 발표하면 형량도 덜어질거라구?

허허… 임자, 이건 자수가 아니야. 그렇게 떠들지 말게. 힘들게 체포했다고 해야 리승만에게서 좋은 소리 한마디라도 더 얻어들을거네. 체포작전을 크게 했다구 하게. 사실 난 자수가 아니라 전투장을 찾아가는 길일세. 허허… 그렇게 합세.》

조봉암은 서울경찰청장과 전화를 끝내자 숨을 돌리고나서 연경에게 또 하나의 전화번호를 대주며 찾아보라고 하였다.

무심결에 아버지가 불러준대로 번호판을 돌려가던 연경이가 언뜻 떠오른 생각으로 번호판에 손가락을 붙인채 아버지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서! 시간이 없다.》

조봉암이 딸의 불만을 눈치채고 엄하게 분부하였다.

연경이가 하는수없이 아버지가 불러준 번호대로 다 돌리고나자 그쪽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전류를 타고 흘러왔다.

최금룡의 아버지 최기오의 목소리임을 확인한 연경은 수화기를 아버지에게 넘겨주었다.

조봉암이 느닷없이 짧은 웃음부터 터쳐놓았다.

《허허, 최기오! 임자 오래간만일세. 그새 무고한가? 안사람두…》

《아, 그럼! 나야 뭐… 헌데 죽산, 여긴 온통 란리판인데 어데서 전화하는가? 건재하여있구?》

최기오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서울경찰청으로 가는 길일세. 여기는 충청도요. 난 건강하오.》

《뭐라구? 경찰청으로 간다구? 제발로? …》

최기오가 소스라치듯 놀라며 목갈린 비명을 내질렀다.

《남도로 내뛰여야지 어데로 온다고 그러오?! 그게 제정신 가지고 하는 소리요?!》

《허허허… 뛰기는 왜 뛰겠소? 내가 무슨 죄인이라구. 일없소.》

《에, 죽산! 그것 보라구. 내가 뭐랬나? 이제는 나이도 있는데 제발 은둔하라구 했지?! 늘그막에라도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구 그랬지?! 리승만의 철권통치하에서, 더구나 미국놈들이 틀고있는판에 표놀음이 될법인가 했지?! 에 참, 늘그막에 이게 뭔가? 이 일을 어쩌면 좋담. 저눔들이 뭐 죄 지었다구 잡아가는 놈들인가? 지금 저쪽에서 서두르는품을 보니 난 살이 떨리기만 하오. 에잇, 참! 이 일을 어쩌면 좋담! 임자는 또 패하지 않았나?!》

최기오의 목소리가 비분에 떨고있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텅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통탄해서 온몸을 들썩거리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았다.

조봉암은 자신이 벌려온 정치투쟁에 대하여 표놀음이라는 한마디로 그 의미를 여지없이 비하하여버리는 친구의 소리에 속이 울컥해올랐으나 친구의 지극한 념려인지라 내색을 하지 않고 흔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최기오를 안심시키려고 너부죽한 철색얼굴에 우선우선한 미소를 담은채 선선하게 대답을 하였다.

《이보게, 친구! 마음을 놓게. 언제는 뭐 우리가 순풍에 돛달고 살아왔나?! 칠성판을 등에 지고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누가 패했는가는 더 론의말자구. 그건 싸움의 결과가 아니라 력사만이 판결을 내릴수 있는 일일세. 그 기준은 명백하네. 누가 민중을 등졌는가, 누가 민중을 위해 살았는가?! 허허… 그건 그렇구, 우리 연경이는 어쩔셈인가?》

《연경이? … 연경이… 이보게, 거야 금룡이에게 달린 문제라… 아니, 내가… 이거 참, 죽산! … 내가 죽을죄를 졌네. 내 난생처음 친구를 저버리는 몹쓸짓을 했구려. 자네에게 어떻게 빌었으면 좋을런지… 이런 불륜에는 용서가 없다구 했는데…》

최기오가 두서없이 이말저말 주어섬기다가 꺼이꺼이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최후의 결사전을 앞둔 순간에는 누구나 속이 커지고 인간이 제모습을 찾는다고 하더니 최기오가 바로 평생의 벗의 비장한 소식에 접하여 자기를 심심히 참회하는것이 조봉암의 속을 후더웁게 하였다.

그래 조봉암은 몸둘바를 몰라 허둥거리는 친구를 눈앞에 보는것만 같아 진심으로 위로하였다.

《허허… 뭘 그러나, 친구… 난 다 리해했다네. 최금룡이는 전도가 있는 애야. 난 금룡의 앞날을 믿어. … 부탁하네. 그애들은 지금두 서로 그리워하고있네.》

《이보, 죽산! … 제발 풀려나와주게. 애들걱정은 말구. 그동안 내가 연경이도 효경이도 살림도 다 맡아주겠네. 부자집은 망해도 삼년 간다지 않나. 이보게, 내 말 듣나? … 연경이 걱정은 말라는데. 그리고 이 못난놈을 용서해달라구.》

《친구! 고맙네, 고마워.》

조봉암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조봉암은 품에 안겨 슬피 우는 연경이를 한동안 쓰다듬어주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금룡이를 버리지 말아라.》

연경이 머리를 끄덕이며 그냥 흐느꼈다.

《자, 이제는 서울로 떠날 준비를 합시다.》

그 소리에 다들 문밖으로 시름겹게 향하는데 조봉암이 류선녀를 불러세웠다.

《선녀선생, 잠간…》

그러자 류선녀가 돌아와 조봉암의 앞에 금시 터져나올듯싶은 통곡을 참아내느라고 눈물에 젖은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우고 어깨를 실그러뜨리고 섰다.

《여기 가까이 와서 앉으시우.》

조봉암의 말에 류선녀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았다.

녀인을 지켜보던 조봉암은 말없이 그의 두손을 감싸잡았다. 류선녀와 만나기 시작한게 여러해 되지만 이렇게 손을 잡아보기는 처음이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망막에 새기고있었다. 맞잡은 두손으로는 빠른 맥박이 전해지고 오가는 눈빛에는 다 쏟아붓지 못한 애욕과 후회와 비통함이 사무쳐있었다.

조봉암은 자기를 위해 여러해 허위단심 깨끗한 애정을 바쳐온 녀인에게 자기는 아무 보답도 못했으며 너무도 박정했다는 때늦은 자책이 밀물처럼 가슴에 쓸어들었다.

정말 내가 이 녀인의 정을 일찌감치 받아들이는것이 사나이로서의 륜리가 아니였을가. 자기의 리상이나 도의심을 위하여 한 녀인의 불같은 사랑을 외면해도 되는가. 무슨 큰일도 치지 못하면서도 세월의 변덕에 발목이 잡히여 녀인에게로 향하는 한걸음을 끝내 옮기지 못한탓으로 이 사랑스러운 녀인에게 회한과 눈물을 남겨주게 되였다.

그 무슨 명분을 세우든지 류선녀의 지조굳고 아름다운 사랑과 헌신을 아껴주지 못한것이 하잘것없는 변명으로, 어리석음으로 후회될뿐이다.

류선녀는 사나이의 손에 손목을 잡히자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속에서도 바라마지 않던 사나이의 뜨거운 손에 접한 행복의 순간이였건만 류선녀는 너무도 통분하고 절망적인 비애에 휩싸여 자신을 다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바로 이런 순간에 그렇게도 애모하여온 소중한 사람에게 무슨 말로 화답해야 할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갑자기 머리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여버렸다.

류선녀는 더는 자신을 다잡을길 없어 타드는 입술을 감빨며 목메여 불렀다.

《선생님!》

녀인은 조봉암의 든든한 무릎에 와락 몸을 던지며 오열을 터치였다.

《어째서… 어찌하여 외국으로 나가지 않으십니까?! 저도 다 들었습니다. 선생님을 하늘땅 끝까지라도 모시고 가리라고 자기를 가다듬어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예?!》

류선녀는 이렇게 안타까이 물으며 자기의 손목을 꼭 잡고있는 조봉암의 손등에 까실까실 보풀이 인 입술을 갖다붙이고 머리를 떨었다.

《선녀선생, 그사이 정말 고마왔소. 그리고 미안하오.》

《그런 말씀은 거두어주십시오. 저를 곁에 받아주신 선생님이 저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선생님, 저는 종종 선생님을 처음 뵈옵던 50년 설날을 생각합니다.》

《50년 설날?!》

조봉암은 너무도 엄혹한 시각에 녀인이 떠올려놓은 추억의 한토막에 속이 저릿해왔다. 그들의 인연이 얽혀들던 잊을수 없는 추억이였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을 뵈오면서 소녀처럼 황홀하여졌습니다. 명성이 뜨르르하던 선생님이 가까이에선 너무도 소탈한 남자였습니다. 뒤날 저는 선생님의 신상에 눈길이 자꾸 돌아가는 자신이 짝사랑에 빠져들었다는것을 알고 당황해지기는 했으나 돌아설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선생님만 따라 걸을겁니다.》

류선녀의 두볼에 발깃하게 홍조가 물들여졌다. 첫 상면의 그자리로부터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조봉암만을 마음에 두겠다는 자기의 진속을 길지 않은 말에 다 담은 류선녀는 연한 속눈섭을 살풋이 내리고 조봉암의 말을 기다렸다.

조봉암이 《후-》 하고 길게 숨을 내긋고나서 김빠진 어조로 녀인에게 처음으로 내심을 고백하였다.

《선녀선생, 난 사실 진보당이나 세워놓고는 내 처지에 이모저모로 부족하고 렴치가 없지만 내 사람으로 되여달라구 선녀선생에게 청을 드려보자고 생각하여왔지요.》

《선생님!》

녀인의 두볼로 또 더운 눈물이 주르르 이랑을 지었다.

(조봉암과 사귀여 해와 달을 보내면서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오던 사랑의 화답인가! 헌데 그 대답을 이 준엄한 리별의 시각에 받게 되다니… 이것이 행복일가, 아니면 불행일가?)

조봉암의 목소리도 전에없이 갈려있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물론 나는 이번 길에서 우리의 승리를 믿어마지 않소. 이 싸움이 언제 끝나려는지는 기약할수 없구려. 그래 내 하나 부탁할게 있으니 꼭 들어주겠다는것을 약속해주오.》

《선생님! 저를 믿어주십시오. 어떤 당부라도 제 꼭 하늘의 뜻으로 페부에 새기고 해내겠습니다.》

류선녀는 조봉암에게서 떨어져나와 다시 무릎을 꿇고 단아하게 앉았다.

조봉암은 가리마가 반듯하게 넘어간 녀인의 함함한 머리를 이윽토록 아픔이 서린 눈길로 굽어보다가 말하였다.

《선녀선생, 인생이란 참 오묘하기도 해서 제 마음 하나만 가지고서는 곧바로 펴나가기 어렵나 보오. 우린 끌리는 정은 하나 같아도 아무래도 연분은 없는가 보오.》

《죽산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자는겁니까?》

류선녀는 그 총명하고도 예리한 감각으로 벌써 조봉암의 취지를 넘겨짚자 고개를 오연히 들었다.

《내 부탁 마저 들어보시오.》

《선생님!》

《아, 아… 선생은 지금 사십대요.》

조봉암의 말이 빨라졌다.

《녀인들에게는 한창시절이요. 무르녹는 인생의 향훈을 즐겨야 할 때요. 그런즉 내가 이제 떠나면 선생은 꼭 집으로 돌아가주오. 지금껏 류선녀선생의 고운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리유에는 내 운명이 이렇게 또 곡절이 많을듯싶은 기우도 있어서였다오. 이제 보면 그게 참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르겠소. 내가 지각있는 사람으로 남아있게 해주오. 아마 제 뜻대로 되지 않는게 이런 일 같소. 앞날에 대한 담보도 없이 선녀선생을 내곁에 묶어두는것은 사나이로서 너무 량심없는 일이요.

그러니 류선녀선생, 아까 약속했던대로 내 부탁대로 돌아가주오. 그리고 부디 좋은분을 맞아들여 행복하게 살아주오. 부탁이요!》

조봉암은 속에 맺혀있던 문제라 진정을 담아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선생님!》

류선녀는 무엇인가 먼곳에서 울려오는 차고 서름서름한 그리고 메마른 우뢰를 들은것 같았다.

자기를 지켜보는 사나이의 눈은 이 긴박한 정황에 어울리지 않게 침착하고 여유작작하였으며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고요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류선녀의 섬세하고도 예민한 감각은 일부러 여느때없이 랭정하게, 그러면서도 례사롭게 하는 조봉암의 일깨움과 부탁에서 사나이의 심혼의 깊은 바닥을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는 자기를 애써 멀리로 밀어내려는 조봉암의 마음에서 어지러운 풍설과 노도로부터 련인의 순정과 명예와 행복을 지켜주고 아껴주려는 그의 불같은 사랑을 읽고있었다. 이것은 그 녀자에게서 또다시 새롭게 받아안는 기쁨이고 행복이였다.

그렇게도 해를 이어오며 사모하여왔던 사나이는 이렇듯 그 어떤 용렬하고 범속한 례의나 격식에도 구애됨이 없이 인간사랑의 창공에서 나래치는 수리개였다. 깨끗하고 성실하고 다감한 남자였다.

믿어마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의 부탁을 받아줄수 없는것이 그 녀자의 또 하나의 설음이요, 슬픔이였다. 그 녀자의 가슴 한끝에 뿌리내린 사랑이고 존엄이기도 하였다.

류선녀는 또다시 눈물만 쏟았다.

조봉암은 녀인의 그 눈물에 마음이 흔들릴가봐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류선녀는 기회를 놓칠세라 입귀로 흘러드는 눈물을 감빨며 낮고 빠르고 마디마디 명료하게 대답을 주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마음을 잘 알았습니다. 저는 그 마음 하나면 됩니다. 저는 좋은 말씀만 페부에 남겨두렵니다. 그리고 감히 선생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어서 하시오.》

《선생님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권리도 있습니다. 이걸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이걸 포기하는것은 인생을 포기하는것입니다. 저도 다를바 없구요. 저도 그 권리를 지키고저 합니다.》

《선녀선생!》

《저를 일으켜주세요.》

조봉암은 부지불식간에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를 삼킨듯 속이 화끈해오고 목이 꺽 메였다. 이 긴박하고 처절한 시각에도 강렬한 애모의 정과 리지를 잃지 않고 인간아름다움의 상상봉에 우뚝 솟아오른 녀인앞에서 금시 심장이 파렬될듯 세차게 뜀박질하였다. 조봉암은 말없이 녀인이 내민 두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류선녀는 그 손길에 잡히자 몸을 부르르 떨다가 조봉암의 품에 왈칵 안기였다. …

일행이 려관을 떠날 때부터 희끗희끗 날리던 눈송이가 충주시내를 벗어날 때부터는 주먹만큼 커지면서 자동차에 흰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김봉무는 시창솔을 그냥 휘저어 시창에 날려오는 눈을 쓸어버렸다.

《올해에는 좀 농사가 될려나. 뭐니뭐니해도 농사가 잘되여야겠는데…》

조봉암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너무도 태평스러운 소리에 류선녀도 신창균도 코마루가 시큰해졌다.

삽시에 만상은 눈천지로 되였다. 도회지도 마을도 산과 들도 흰눈속에 묻혔다.

자동차가 조심스럽게 관악산의 가파로운 령길을 넘어설 때부터 때없이 불어오는 광풍이 눈보라를 말아가지고 대지를 미친듯이 후려때린다.

눈보라는 일행이 서울시가지에 들어섰을 때까지도 그냥 멎지 않았다. 오히려 광야를 휩쓸던 눈바람이 골목골목에 모여들어 더욱 기승사납게 자동차를 뒤집어놓기라도 할듯 무섭게 덮쳐들었다. 서울땅이 통채로 아츠러운 소리를 내지르는 광풍과 지동치는 눈보라에 휩싸여 괴롭게 숨을 헐떡거리는것만 같았다.

(하늘도 노했구나.)

류선녀는 지꿎게 앞길에 대드는 눈보라를 보며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입속으로 흐느끼듯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또 한번 그 녀자의 희맑은 두볼에 물이랑이 뻗쳐내렸다.

자동차가 종로네거리에 도착하니 잡화가게앞에 두대의 경찰백차가 서있었다.

《저기에 세우게.》

조봉암은 도로 맞은편에 차를 세우게 하고는 자동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그는 네거리를 휩쓰는 눈보라를 제압하듯 그 자리에 서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아버지! 못가요!》

연경이 애절하게 웨치며 조봉암의 앞을 팔을 쩍 벌리고 막아섰다.

《이러지 말아, 둘째야!》

그때 경찰차에서 쏟아져내린 경찰들이 이쪽을 향하여 도로복판을 가로질러 먹이를 본 사냥개들마냥 달려오고있었다.

조봉암은 자기 허리를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연경이를 밀어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엄하게 꾸짖었다.

《얘야, 너도 진보당의 한 당원이 아니냐?! 어디서, 어떤 놈들앞에서 눈물을 보이느냐! 저길 봐라! 저눔들은 원쑤들이다! 똑똑히 봐두어라! 저놈들과는 타협을 말아야 한다! 난 원통하게도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한다. 눈물을 씻고 똑똑히 봐두어라! 원쑤들에게는 무자비한 철추만을 내려야 한다!》

조봉암이 이렇게 준엄하게 자기의 한생을 비로소 정리하듯 궁글은 어조로 책망하자 연경이도 그제야 아버지에게서 물러섰다.

경찰들은 다짜고짜로 조봉암의 손목에 차디찬 쇠고랑부터 절컥 채웠다.

김봉무가 달려가 조봉암에게 쇠고랑을 채운 놈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흔들었다. 그놈이 뒤로 허궁 나자빠졌다. 김봉무가 다른 놈들을 향해 사납게 따지고 들었다.

《자진출두야! 왜 쇠고랑을 함부로 채우는거냐?!》

《뭐야?! 공무집행을 방해할테냐?》

뒤에 있던 경찰녀석이 경찰방망이를 쳐드는 순간 조봉암이 벽력같이 호통을 쳤다.

《이놈! 그 방망이 내리지 못할가! 누구한테 함부로 방망이질이야?!》

경찰이 웅웅거리는 눈보라를 꽉 누르는 조봉암의 호령에 깜짝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방망이를 내리였다.

조봉암이 그 꼬락서니를 보고 껄껄 웃으며 김봉무를 타일렀다.

《이 사람, 다투지 말게. 그래 봐야 헛기운만 뽑을뿐이야. 상명하복이 이들의 기률이지. 우에서 시킨 일이겠는데 그래야 피차에 무익한 힘의 소모야. 힘을 아꼈다가 써야 할 때가 오면 아끼지 말고 사정을 보지 말고 도전자들을 후려치게!》

조봉암이 마디마디에 력점을 찍고나서 경찰들을 향해 분연히 호령하였다.

《자, 가자!》

이때 자동차에 앉아있던 신창균이 차문을 열고 도로에 뛰여내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들아! 내게도 쇠고랑 하나 다오. 난 신창균이다!》

《아니, 이 사람아!》

조봉암이 자기에게로 허둥지둥 달려오는 신창균을 보자 랑패스러워 혀를 찼다.

특수부와 재정사업을 담당해보는 신창균은 당의 재건을 위해서 제일 요긴한 인물이였던것이다.

조봉암이 진보당기구를 짤 때 특수부를 내오고 특수당원들은 따로 비밀리에 받아들이게 한데는 지금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하자는데도 그 목적이 있었다.

오래동안 지하활동을 해본 조봉암은 이 부서의 특수한 지위와 중요성을 고려하여 중앙위원회에서 투쟁력이 가장 강하고 견결하며 지난 시기에도 상해림시정부나 해방후 여러 단체에서 주로 특별임무를 맡아한 신창균에게 부서를 맡기였다.

그런데 지금 로출되여있는 당간부들과 당원들이 백색테로에 사지를 묶이우고 당이 비틀거리고있을 때 끝까지 용마루를 버티고있어야 할 특수부장이 자제력을 잃어버리고말았던것이다. 애초에 충청도에 남겨두고 올걸 잘못하였다.

《다 감옥에 들어가면 누가 밖을 지킨다는거요?! 원 참!》

조봉암은 쇠고랑을 기꺼이 받는 신창균에게 눈을 부릅뜨고 노염을 썼다.

순간 신창균이 자기의 커다란 실책에 눈앞이 아찔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요 또 경찰들앞이라 주눅들지 않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닙니다! 저도 이젠 좌지를 감옥으로 옮기겠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우리는 혈연의 동지들이 아닙니까! 난 선생님곁에 가있겠습니다!》

신창균은 쇠고랑을 번쩍 쳐들며 우렁차게 선언하였다.

《참, 사람두!》

조봉암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더 나무람해야 행차뒤다.

경찰백차들이 기승사납게 경적소리를 야단스레 울리며 도로의 중심을 타고 미친듯이 질주하였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안깐힘을 다해 몸을 지탱하고있던 연경이와 류선녀가 서로 끌어안고 포도우에 폭삭 주저앉으며 통곡을 터뜨렸다.

《아버지-》

《선생님-》

뼈가 바스러지는듯 한 녀인들의 아츠러운 웨침이 눈보라가 태질하는 꽁꽁 얼어붙은 서울의 대기를 짓째며 울려갔다.

김봉무는 그옆에 우두커니 서서 부둥켜안고 목놓아우는 녀인들을 내려보다가 콩알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눈보라는 여전히 멎지 않고 우-우- 아우성을 친다. 거리를 굽어보며 높이 솟은 시청의 담벽들이며 촘촘히 사이사이 들어앉은 가게방의 창문들이며 가로수들과 듬성듬성 서있는 전주들이 그 눈보라속에서 떨고 비명을 내지른다. 서울시가지가 통채로 하늘이 내리는 벌을 받고있는듯싶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쓸어나온 감때사나운 눈보라가 종로네거리에서 이마받이하며 공중으로 길길이 솟구쳐 눈기둥을 말아세운다. 기운이 진한듯 땅바닥으로 늘어졌다가 다시 힘을 모아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가 골목으로 내뺀다.

김봉무는 유리가루같이 깔깃깔깃 두볼을 때리는 눈가루를 쓸어던지며 고개를 들었다.

서쪽하늘가가 점차 엷어지는지 시뻘건 해가 련봉너머로 곤두박질하는것이 보였다.

빛도 잃고 열도 없는 자그마한 불덩이같다.

겨울의 해는 원체 성미가 급하다. 광풍에 찢기고 추위에 척박해진 대지가 볼썽사나운지 급하게 떠올랐다가 급하게 떠나간다.

눈보라에 묻힌 삼라만상에 설핏한 노을빛이 어울려들었다.

저녁해는 세상의 추한 꼴이 역겨운듯 급급히 피빛색조마저 거두고 서쪽련봉너머로 숨어버린다. 그러자 어둠이 덮쳐들었다.

기다린듯 눈보라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갈기를 쳐들고 목놓아 우는 세사람을 삽시에 눈사람처럼 만들어버렸다.

(제2부 끝)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