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1
리승만은 광신적인 의심병환자였다.
그는 이해도 저물어가자 아래사람들을 더욱 광기를 내서 몰아대며 조봉암을 붙잡아들이라고 매일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고아댔다.
그는 어떤 날에는 깊은 잠에 들었다가 조봉암이 흉맹한 뿔을 가진 괴물로 둔갑하여 자기의 배허벅을 연방 찔러드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셔가지고 자리에서 《저… 저놈을…》 하며 일어나 프란체스까까지 깜짝 놀래워놓았다. 주치의사가 련일 옆에서 지켜보고 프란체스까가 측근인물들을 들볶았으나 신통한 비방이 없고 약물로써도 효험이 없었다.
오히려 생시는 악몽보다도 더 무시무시하다. 련일 조봉암과 진보당의 움직임과 관련한 자료가 들어오는데 조봉암이라는 인물이 나날이 자기 가까이로 압박해들어오는것 같다.
대세가 기울어지고 경무대의 보짱이 흔들리우는것이 사면팔방에서 느껴진다. 그것은 무겁고도 으스스한 장송곡처럼 그냥 그의 뇌리를 휘저으며 염통까지 죄여든다.
리승만의 미친병은 롤만이 서울을 떠나갔다는 통보가 들어온 다음에야 다소 가라앉았다.
리승만은 롤만의 귀국소식을 듣자 인차 버드부터 경무대에 청하였다.
리승만은 의기양양해서 찾아든 버드에게서 롤만을 쫓아낸 무훈담을 들어주고나서 여러날만에 처음으로 껄껄 웃었다. 속이 후련해진 그는 프란체스까가 내온 자그마한 가방을 버드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리승만이 선사한 그 가방에는 딸라가 빼꼭이 채워져있었다.
《대좌가 력사적인 과제를 참 솜씨있게 해냈구려. 과시 미군방첩대가 솜씨가 있소. 롤만, 그놈이 이 우남을 물어먹지 못해 세월을 넘기며 그악을 부리더니 제가 쏴갈긴 똥에 미끄러져 개코망신을 당했네그려.
어, 대좌! 손을 댄김에 그 어벌뚝지 큰 조가의 뿌리를 마저 좀 쭉 뽑아주오.》
버드가 들가방을 곁눈질해보며 울대를 움씰거리다가 다소 늘어진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각하, 생각이 있습니다. 조봉암까지 쓸어내야 서울정치가 편안해질겁니다. 헌데 그런 일이 그렇게 꿀빵넘기듯이 척척 되겠습니까? 롤만을 제껴놓았으니 좀 한숨 돌리고 봐야지 않을가요?!》
버드는 리승만이 내놓은 사례금이라는게 《력사적인 과제》라는 요란한 찬사에 비해 너무 가벼워보이는데다가 또다시 엄청난 흉계에 로골적으로 자기를 몰아가는게 마뜩지 않아 심술궂게 배짱을 부려보았다.
《어쩌겠소. 우리 사람들이 그런 일에서는 국민학교수준이 돼서 해놓구두 바람새가 많아 소리나기마련이거던.
내게는 시간이 없다오. 이제 설이나 쇠고나면 4대국회선거놀음을 인차 시작해야 하오. 진보당놈들이 저들 후보를 쭉 내세우고 민심을 휘여잡을 판인데 국회라는 물건짝이 조봉암의 판이 되고 말면 전쟁판에 있었던 정치란리가 또 터질 판이요.
서울정치가 혼란에 빠지면 저 북쪽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으니 당신들 미군도 큰 랑패가 아닌가. 대좌네 방첩이 그때 가서 일을 바로잡자고 나선다고 해도 수렁판에서 달구지 끌어내는 격이라 피차에 고역이 아니겠소.》
리승만은 버드가 갑자르며 속시원하게 대답을 주지 않자 등이 달아 구구하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대사와 의논해보겠습니다.》
버드는 그냥 굳이 입을 다물고있다가 리승만이 내미는 돈가방을 그리 시답지 않게 받아들고 경무대를 나섰다.
버드는 경무대 대문을 나서자 다울링에게로 곧바로 찾아갔다. 그는 리승만을 만난 정형을 요약하고나서 리승만앞에서와는 달리 강단있게 호기를 부리였다.
《지금 이 나라에는 우리가 리권을 상실할수 있는 위기사태가 조성되였습니다. 5월선거전이 시작되였으며 그 선거에서 진보당이 승자가 될수 있는 가능성이 확고해졌습니다. 우리는 더는 공론만 거듭할수 없습니다. 정치구도를 시급히 바꾸어놓아야 합니다. 대책은 하나입니다. 조봉암과 진보당을 결정적으로 분쇄하여야 합니다.》
버드는 분쇄라는 말을 할 때 입술을 악물며 특별히 힘을 주었다. 다울링은 다소 흥분되여있는 버드의 말을 가로채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분쇄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겠소?》
《말 그대로입니다. 진보당은 단핵정당입니다. 조봉암에 의하여 조봉암을 중심으로 조직된 당입니다. 따라서 그를 완전히 제거하면 진보당은 자연분쇄될것입니다.》
이번에도 버드는 완전히 제거한다는 말에 방점을 찍었다.
다울링이 얼른 그걸 물어채가지고 따지였다.
《조봉암을 완전히 제거한다는것은 어떤 의미요?》
《말 그대로입니다. 난 이미전에 이에 대한 백악관의 합의를 받았습니다.》
버드는 거만하게 대꾸하였다.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다울링이 귀머거리행세를 하며 건주정을 부리는것이 불쾌하였던것이다. 그쯤 되면 알아차리고도 남으련만 도대체 대사는 내 속내의까지 말짱 벗겨보자는 심산이다.
다울링은 백악관을 거들며 퉁방울눈을 사납게 희뜩거리는 버드의 상통을 쓰겁게 외면한채 더 캐여물으려 하지 않았다.
원래 미군이 강점하고있는 식민지에서 미국의 외교적결정은 군사정책의 기초우에서 이루어지는것이 상례이다. 국무성이란 국방성의 정책결정에 대한 외교적사무처리나 하는데 불과하다. 다울링은 흔히 워싱톤의 외교무대에서 오가는 외교관들의 흔해빠진 불만과 굴욕을 지금 이 자리에서 또다시 실감하고있는것이였다.
리승만이 대사가 아니라 이따위 대좌급의 제복쟁이나 끼고돌며 그들에게 매소부의 미소와 같은 추파를 던지는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다울링은 국방성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외교관으로서의 자기 힘의 한계를 똑똑히 깨달으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여주는것으로써 너의 립장을 지지한다는것인지, 너의 립장을 알겠다는것인지 도대체 명료치 않은 대답을 심드렁하게 주었을뿐이였다.
이 시각 경무대의 리승만의 응접실에서도 이 문제가 랭랭한 분위기속에서 론의되고있었다.
리승만은 즉시 정제관과 리기붕을 불러들였다. 그는 영문도 모르는 그들에게 자기의 요구에 속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고 떠나간 버드에 대한 불만과 분통을 터뜨려놓고 마구 행패질하였다.
리승만은 눈을 치뜨고 두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난 당신네가 국록에 살쪄가지고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어. 당신네들 지금 이 나라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들고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엉?!
의장도 그래, 내가 자유당안에서 쉬쉬거리는 소리를 쑥 들어가게 하고 부통령으로 내세웠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릴 따내야지. 그 허수아비같은 장면따위에게 자리를 떼웠은즉 후계체제도 다 물건너 가지 않았나?
이제 국회까지 조봉암이 점거해서 쥐고흔들 판인데 이제 성쌓고남은 막돌신세되지 않는가 두고보게. 조봉암에게 당까지 안겨주면 호랑이한테 뿔달아주고 날개돋쳐주는 격이라고 내가 임자들에게 몇번이나 말해주었나? 지금 일사가 그렇게 되지 않았나?
정제관이! 임자는 손탁이 너무 물러. 나라치안을 신방에 드는 새색시처럼 아기장아기장해서야 어떻게 다스려내겠나? 자네 사실인즉 서림이 찜쪄먹을 재주군이라 해서 나라의 실세자리 넌떡 주었더니 그래 재주 하나 가지고 그 감투자리 지켜낼상싶은가? 임자 그렇게 멍청해있다가 바지벗기우고 수염뽑혀도 찍소리 한마디 못하지 않겠나?!
권태구, 그 사람이 머리통은 지독히 아둔했어도 손탁 하나만은 과시 대장부였어.
자네 역시 쉽사리 그 자리에 오른줄 아나? 왜정때 판사노릇 하면서 왜놈사타구니에 코박고 살쪘다고 우리 비서실에서도 삐쭉거리는걸 그래도 곱게 봐주어 나라체통 세우는 큰 자릴 주었는데 뭘 부족해서 진보당 하나 분질러놓지 못해 이 우남이 분주탕을 피우게 하나?!
지금 산골막바지까지 진보당간판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판에 국회선거를 어떻게 치르겠나?! 임자 조봉암천하가 되는걸 보고파 그러는게 아니야?!》
리승만은 원래 다변가이고 독설가이기도 하다.
입만 한번 열면 상대의 지체나 기분에는 관계없이 종작없는 이말저말로 끝없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욕을 퍼부어댈 때는 어디서 주어모아둔 고담과 욕지거리를 뒤섞어가며 상대의 얼을 뽑고 쥐구멍을 찾게 만든다.
리승만이 기가 펄펄해서 두사람을 번갈아 짓조겨대자 프란체스까가 핀잔조로 끼여들었다.
《각하, 조봉암이 호랑이같다는 말씀은 거두세요. 그런 말씀을 자꾸하시니 꿈자리에까지 나타나서 야료를 부리는게 아닌가요?!》
그 말에 줄욕을 퍼붓고나서 제김에 지쳐서 헐떡거리던 리승만이 머쓱해져서 헤식은 웃음을 지었다.
《어르신들이 좀 국사때문에 잠 못 드시는 각하의 심뇌를 깊이 알아주세요. 이런 일이야 어르신들이 앞질러가며 처리해야 각하께서 편하게 지내실게 아닙니까?》
프란체스까까지 끼여들어 야멸차게 책망을 하자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던 리기붕이 시계를 공단조끼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위로삼아 한마디 하려고 입을 열었다.
《너무 심려하시지 말아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자유당에서는…》
시커먼 로인반점이 다문다문 박힌 리기붕의 병색짙은 얼굴을 가로보던 리승만은 그의 셈평좋은 위로에 화증이 또다시 끓어올랐다.
《듣기 싫어, 자유당! 이젠 이 문제는 입만 까서 찧고 까불기만 하는 자유당의 대문을 넘어선 일이야. 추진위원회라는 달랑한 물건짝도 까부시지 못한 주제에 이제는 과반수표밭을 만들어냈다고 기고만장해진 그놈들을 입방아 찧어서 부셔버릴수 있을것 같애?!》
리기붕이 골이 잔뜩 올라 된서리를 치는 리승만의 서슬에 무안하기도 하고 망신살이 쭉 뻗쳐 굳어져있다가 자리에 슬그머니 도로 앉았다. 가뜩이나 창백하던 낯빛이 아예 배추속같이 하얗게 질리고 심장이 강한 충격을 받을 때마다 발작하는 신경통으로 눈시울이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리승만은 리기붕을 여지없이 쳐갈겨버리고 이번에는 정제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무, 임자가 어디 한번 시원스럽게 말해보게. 진보당의 기둥뿌리를 어떻게 뽑아버릴텐가?》
정제관이 엉거주춤이 일어나 리승만의 벌겋게 충혈된 눈과 이마에 막 구겨놓은듯 얼기설기 어지럽게 질러간 주름살을 보자 역스러운 생각이 들어 천정을 쳐다보며 대답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요즈음 정제관도 밤샘을 해가며 내무부의 모사들이라고 불리우는 작자들을 부서의 전용아지트에 가두어두고 모의를 거듭하고있었다.
정제관은 어느 정도 자신있게 보고하였다.
《에- 저희들은 시급히 두번째 단계의 작전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이미 그 준비공정 이를테면 방안작성과 력량편성, 전술세부들이 확정되였습니다.
여기서 기본은 … 에, 우선은 진보당의 활동을 완전히 차단하여버리는것입니다. 진보당의 당원흡수, 가두선전, 집회, 사회단체조직, 출판물인쇄와 보급 등 각 방면에서 압력을 가하고 진보당의 내부를 끊임없이 교란시키려고 합니다.
진보당의 자금수입과 지출에 대하여서도 자주 검열하여 사건을 만들어내며 당원명부도 검열하고 전화도청과 미행감시도 공개적으로 벌려 진보당이 숨쉴 구멍을 철저히 봉쇄하겠습니다.
조봉암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작전도 벌리려고 합니다. 특히 공산당으로 살아온 그의 경력과 공산당의 주장과 대동소이한 진보당의 통일강령을 걸고 <빨갱이몰이>작전을 전역에서 벌려 공포감을 조성하여 조봉암을 당원들과 철저히 격리시키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진보당 당원들의 생존권을 타격하는 방법으로 중간층이 진보당에 접근하는것을 불허하여 당원들도 당에서 리탈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제관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지껄이다가 제 입에서 저들이 고안해낸 여러가지 간특하고도 무지한 술책들이 줄줄이 풀려나오자 점차 신명이 나서 손세까지 써가며 그냥 떠들었다. 그런데 리승만이 해종일이라도 끊어지지 않을것 같은 정제관의 보고에 짜증이 난듯 갑자기 손을 들어올려 홱홱 내저었다.
《에, 시끄럽다. 무슨 사설이 그리도 소바줄처럼 기노? 내앞에서 토끼꼬리만 한 식자자랑이야?!》
정제관이 리승만의 신경질에 휘뚤 놀라 자라처럼 빼들었던 목대를 쑥 움츠리고 얼른 입을 닫아붙이였다.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두상의 입에서 또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자못 송구스러운 자세를 취하였다.
정제관은 한달에 한두번씩은 이 집에 들어와서 재구를 치군 한다. 대체로 조변석개하는 리승만의 의중을 헛짚어 얻어맞는 날벼락들이다. 그런가 하면 두상의 기분상태를 제때에 타진 못한채 말을 꺼냈다가는 시어미 역정에 개배때기 채운다는 격으로 화난 발길질에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아닐세라 리승만의 호령이 넓다란 방안을 드르릉 울렸다.
《다 써먹은 수법이야. 세난 아이도 그쯤한건 생각해낼수 있는거야. 그 무지스런 권태구까지 뚜져먹은 보따리를 내앞에 와서 또 풀어놓으니… 임자네 내무부것들은 도대체 모여들어 뭘 해먹고있나?!
자네 전일에도 <독나비>작전이요 뭐요 하며 아지트에 요술쟁이들을 한구들 모아놓고 쑥덕공론한다더니 도대체 경개좋은 산속에 엎디여 배를 튕기며 술독에 빠져 기생놀이하고있는거 아니여?!》
리승만은 말꼬리를 버쩍 쳐들며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정제관이 그 소리에 살멱을 찔리우기라도 한듯 진저리를 쳤다. 술독에 빠져 기생놀이한다는 말이 신통하였던것이다.
《지금쯤 조봉암은 쩔쩔 매는 임자들의 꼬락서닐 셈평좋게 바라보며 코웃음치고있을거야. 이봐 내무, 이젠 자네도 기운이 진한것 같은데 보따리싸는게 어떤가?!》
《예? … 각하!》
정제관이 금시 우거지상이 되였다. 소문도 없이 저세상으로 자리를 옮긴 권태구부터 생각이 났다. 금시 어디선가 독이 발린 비수라도 날아올듯싶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왜? 한번 더 기회를 달라는거야?》
《각하, 가르치심을 주십시오.》
정제관은 속이 졸아들어 벌벌 떨면서도 도대체 이 두상태기가 무엇이 불만이며 무엇을 의도하고있는지 도무지 가량이 되지 않아 한번 어눌하게 늘어붙어보았다.
《조봉암의 목을 쳐!》
리승만의 입에서 너무도 잔인한 호령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터져나왔다.
《예?!》
정제관은 깜짝 놀라 고개를 건듯 들어올리였다. 비명같은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리기붕이까지 혼맹이가 단박에 쭉 빠져 엉치를 들썩거렸다.
리승만이 겁기에 질려 어리벙벙해있는 두사람을 쓰겁게 훑어보고나서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범 본 아낙네들처럼 놀라기는… 그렇게 신경줄이 가늘어가지고 어떻게 정사를 다루겠나? 쯔쯔…
뭘 복잡하게 궁리할게 없어. 까짓놈, 썩둑 목 쳐버리면 만사가 끝장날게 아닌가!》
리기붕과 정제관은 푸르락붉으락거리는 리승만의 상통을 쳐다보며 콰당탕 급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움켜잡고있었다.
《뭘 어째서 아직도 그 꼴들인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되는거 아냐?!》
리승만이 약간 어조를 누그러뜨려가지고 얼쳐있는 두사람에게 기운을 돋구어주듯 말하자 정제관이 그 살인지령의 집행자가 자기라는 어수선한 생각에 몰려 말을 받았다.
《그런데 아직은 조봉암을 목 칠만 한 시비거리는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한 4~5년쯤 흑산도에 연금을 시켜볼 생각은 해보기는 했는데…
아예 흑산도에 내쳐버리는게 어떻습니까? 그 일이라면 한주일 안팎으로 해내겠습니다.》
《고작해야 4~5년 흑산도에 가두어?! 흑산도는 어디 황천에 있다던가? 가두어둔 호랑이가 더 무서운거야.
시비거리라는건 뭐 말라빠진 수작이야? 임자 수십만 경찰을 수하에 두고도 그냥 간덩이 엷은 소릴 하나? 내무부것들이 하는짓이란 전탕, 쯔쯔쯔…
그전에 김창룡이더러 목을 쳐던지라고 했는데 그녀석이 미국이 알고있소, 여론이 어떻소 하면서 꼭 알품은 암닭처럼 골골거리기만 하다가 제 먼저 뒈졌지. 그 꼴 꼭 임자꼬락서니야.
이봐 내무! 시비거리라는건 만들어내면 되는거야. 그런 재주도 없이 장관감투 쓰고있어?
권태구가 백치같은 놈이라 이번에는 뭐 식자있는 사람을 골라 쓰자고 임자를 내세웠는데 같고같은 백치야.
이봐, 목 친 다음에야 그까짓 미국이 어떻소, 여론이 끓소 한들 그건 한소리씩 의례히 질러보는 속빈 소리라 개의할게 없어. 그쯤도 모르고 장관질해?!
그리구 나라의 화근을 뿌리채 들어내는 일인데 좀 나라체면이 상한다고 무슨 대수야?! 우리끼리니 하는 말인데 한번 조봉암을 간첩단수괴라고 세워놓고 그리로 세론을 몰아가보게.
요즈음은 공산당사건이 없나? 간첩단사건이라면 더욱 좋구…》
《뭐, 별로…》
정제관은 자기를 세워놓고 구정물바가지 들씌워주듯 마구 던지는 조롱과 모욕, 훈계에 염통이 졸아들어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조봉암을 《간첩단수괴》로 세워보라는 소리까지 듣자 더구나 아래다리가 그냥 후들거려 서있기가 여간 베차지 않았다.
안깐힘과 갖은 요술을 다 부려 가까스로 사두었던 리승만의 호의가 일순간에 허물어지는 판이다.
《쯔쯔쯔-》
리승만은 입술이 퍼렇게 질려든 정제관의 안면표정에 더욱 골이 나서 씨근거렸다.
《도대체 내무라는게 뭐야, 엉?! 정치가 헐떡거릴 때면 갑작쇼를 일으켜 그를 제압해버릴 그 무슨 시비거리를 가지고있다가 요긴할 때 써먹도록 해야지. 그래 미리미리 간첩단 몇개 만들어 건사해두라고 내 언젠가 일러둔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무사태평이야?!》
《각하, 황송합니다. 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급해서…》
《간첩단이라는게 별게인가! 아무 놈이나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 내가 평양에서 내려온 아무개올시다 하게 하면 간첩단이 될게 아니여?! 그런걸 미리미리 마련해놓고있다가 정치가 흔들릴 때마다 하나하나 주머니에서 엿가락꺼내듯 하면 되는거야. 내무부가 일을 하루살이식으로 한단 말이야. 자네 반공이 정권안보의 첫째가는 수단이라는 말의미를 아직도 잘 모르는것 같아.
이제 미8군방첩대장 버드를 찾아가게. 도와줄걸세. 이번에 그 사람들이 인천에 해묵은 구렁이처럼 틀고앉아 사사건건 걸고들던 롤만이라는 인물을 찍소리 한마디도 못지르고 워싱톤으로 줄행랑을 놓게 하였네. 그 사람들이 여름철에 내가 한마디 튕겨주었더니 다울링대사까지 움직여 기어이 쫓아냈거던. 일은 그렇게 뚝소리나게 제껴야 하는걸세. 자네들은 수가 얕아. 천길은 못돼도 열길쯤은 깊어야 되는건데 들여다보면 바닥이 빤드름해보이거던.
임자, 내무는 우선 불을 걸게. 시비거리도 만들어내구. 그 다음에는 법무에 넘겨서 뒤치닥거리를 맡아보라고 하세. 검찰이나 법원이 간첩단제조공장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런 일에서 검찰이 내무쪽보다 수가 있고 제낄손이 있거던. 알아듣겠나?!》
리승만은 부하들에게 불법무법의 사기극을 장황하게 설교하다가 또다시 제김에 증이 나서 따져물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기로 하느님같고 권세가 무소불위라 해도 부하종졸들을 눈코뜰새없이 달구어대는 날벼락이 너무 상상밖인데다가 철면피에 가까운 직선적인데가 있어 리기붕은 물론 정제관이조차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러나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지탱하는 길은 이제 다른 길이 없기에 허리를 굽신거리는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나저렇게나 손에 피가 발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게 종복의 운명이니 피해설수도 없다.
《예, 각하의 뜻을 알았으니 꼭 해내겠습니다. 각하께서 그 일을 두고 더는 심뇌하시지 않도록 제가 차질없이 해내겠습니다.》
리승만의 흉악한 기도를 비로소 똑똑히 깨달은 정제관은 혈관에 살기가 차넘쳐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벌써 조봉암을 제끼기 위한 행동방향이 쭉 그어졌다.
《좋아, 어디 두고보세. 자유당에서는 민주당의 고병직이와 짝을 맞추어보게. 선거때 고병직이 잘해주었는데 조봉암고사작전에도 그 사람 손을 빌려보게. 일이 터져도 그것들이 설레발을 치지 않으면 이 서울땅에서 뒤발질을 할 놈들이 나타나지 않을걸세. 이 일은 의장이 한번 나서보게. 고병직이 원래 나하구는 척을 져서는 안되는 녀석이야. 48년때 한민당에 가붙어있기에 장관자리 주지 못했는데 앵돌아져가지고 세배 한번 오지 않아. 그래, 세밑에라도 한번 찾아와 각하 장생불로하십쇼 한마디 하면 입이 부르트나, 민주당에서 목 치겠다며 반변이라도 하겠나?!
사람이 그렇게 그릇이 작아서는 못쓰네. 제 장인과 이 우남이 사생동고지간이였는데 그 사람 행실이 괘씸하기 이를데 없어.
이 우남 등지고 권세를 탐하는것도 어리석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얄밉게 살다가 제명에 죽기나 할가?!》
리승만은 무고한 한 인간에 대한 소름끼치는 살인지령을 내리고나니 절제를 모르는 권력의 막강한 위력에 더욱 살기가 뻗쳐 이번에는 고병직을 끌어내서 이를 갈았다.
리승만이 고병직을 미워하는데는 다른 리유도 있다. 측근에 두고 쓸 인물을 채용하는데서 관상을 첫 순서로 꼽는 리승만은 고병직의 너무 못난 상판과 거방스러운 체격과 행동거지가 눈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보통정도의 인간들이 리승만에게는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고 편하였다. 키도 보통키, 몸통도 생김새도 보통이요, 두뇌도 보통이요, 재주도 보통인 인간사회에서 서너번째 부류에 속하는 인간들이 돼야 다루기 쉽고 쓸모도 있다는것이 인사문제에서 리승만이 내세우는 지론이다. 그들은 집권자에게 도전할수 없는 인물들이며 집권자의 옥좌를 감히 넘볼 용기도 힘도 재주도 없고 오직 집권자가 하사하는 일정한 정도의 권세와 부귀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인간들이다. 너무 총명하거나 너무 욕심꾸러기거나 너무 손탁이 드세거나 너무 부지런한 사람들을 측근에 세워놓고 권세를 주면 권력야심이 부풀어올라 쉽게 자기의 터밭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게 커지면 통치권을 넘겨다보며 혀를 날름거리고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기의 측근에 비범한 재사나 장수를 두는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투기인가 하는것은 고금동서의 제왕들의 운명이 이미 증명하여왔다고 리승만은 믿어왔다. 현인들은 마땅히 보통의 가치를 가진 인간들의 지휘밑에 묶어두어 더 솟구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리승만은 고병직이 바로 자리만 주면 목대를 뻗치고 자기 옥좌를 노릴것이라는 생각을 벌써 오래전부터 그의 관상을 보면서 해왔다. 그가 자기의 이러루한 통치술의 피해자라고 인식하고있으며 물어제낄 기회만 노리고있다는것도 알고있었다. 따라서 리승만은 자기가 서울정치권에 틀고앉아있는 한 절대로 고병직에게 권력을 주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앙심을 먹어온다.
리승만은 장시간을 수하심복들을 불러다놓고 그냥 조봉암의 목을 치라고 기운을 뽑고나자 맥이 풀려 길다란 쏘파에 어정어정 걸어와 무너지듯 허리를 붙이고 앉아 헐떡거렸다. 그의 눈길이 맞은편 벽을 가득 채운 산수화쪽으로 돌아갔다.
지난 선거를 치른 후 갈아붙인 대형그림이였다.
절벽우에서 수북이 쌓인 눈에 깔려 허리도 펴지 못하는 늙은 소나무가 기분을 언짢게 한다고 경호실장 곽영주에게 한마디 비쳤더니 한달도 못미쳐 서울 그림쟁이들을 다 모아가지고 저렇게 화려한 그림을 만들어가지고 왔다.
만산을 뒤덮은 일만꽃이 향기를 그윽히 풍기는 봄계절의 설악산풍경이 응접실을 활짝 밝게 해주는듯싶은 화폭이다.
곽영주는 저 산수화를 바꿔붙이고나서 설명하였다.
《화가들이 이르기를 이 산수화의 제목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지금껏 이 방에 들어서면 속을 따뜻하게 해주던 그림이 이날따라 비위에 슬그머니 거슬렸다.
(지나치게 화사하고 밝은 저 그림이 이 경무대의 무게와 기운을 가볍게 해주는것이 아닐가? 그러니 리기붕이마저 이 우남의 심중을 중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코코에 시름만 가득 짊어지고 이 집 문턱을 넘어서는게 아닐가? 안되겠다. 저 그림도 바꿔야겠다. 통 은근한 멋이 없어.)
리승만은 이렇게 속으로 괴망한 수작을 늘여가다가 기진한듯 두터운 눈덕을 내려붙이였다.
리기붕도 어리어리해졌던 눈길을 리승만의 상통에서 거두었다.
《헝, 주먹구구에 박 터지게 됐군!》
리기붕이 속이 으스스해져서 입속으로 뇌이였다. 그리고는 바싹 죄여맨 넥타이를 더 옥죄이며 회중시계를 꺼냈다.
저쯤되면 고병직의 운명도 칼도마에 오른셈이다.
리기붕은 오싹오싹 죄여드는 육신의 고통을 금치 못하며 공포의 전률에 사지를 떨었다.
저하고는 태종왕을 한조상으로 모신 혈족이라고 호젓한 자리가 있을 때마다 깨우쳐주고 녀편네들끼리 늘 안방에서 소곤소곤 나라정사를 거론하는 자별한 사이라 해도 리승만의 눈밖에 한번 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이러루한 화제거리에 오르거나 저승길을 앞당기게 될수 있는것이다.
이때라도 리기붕은 권력과 민중에 대하여, 독재와 하수인들의 운명에 대하여 더 깊이 굴려봐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이 인간도 이미 권력욕에 뼈속까지 오염되여 리성이 마비되여있었다. 그런즉 리기붕의 저승길도 가까워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