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1
워싱톤에 가서 서울대사임명장을 정식 받고 돌아온 다울링은 리승만에게 신임장을 봉정한 다음 자기 방에 미8군방첩대장 버드대좌와 주임연구원 롤만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두사람사이에 론쟁을 벌려놓았다.
다울링이 그들을 맞세워 론쟁을 벌려놓은데는 리유가 있었다.
버드는 선거후 진보당을 해체시키며 조봉암을 정치권에서 추방하기 위한 비밀공작을 추진시켜온 막후인물이기에 다울링의 신경을 바싹 긴장하게 만들어놓았다.
자칫 잘못하면 대사로 부임되자마자 대사관이 여론에 어지럽게 떠오를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래 제때에 불러들여 경종을 울려놓아야겠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버드를 그대로 놔두다가는 자기의 어깨너머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지 예측할수 없었다.
롤만을 불러들인 리유는 버드의 위험천만한 도박을 견제하고 현시점에서 조봉암에 대한 종합평가를 받기 위함이였다.
다울링은 롤만이 벌써 45년 미군진주와 함께 남조선땅에 들어온이래 지금까지 남조선을 떠나지 않고있는 미국의 유일한 현지인물이라는데서 그의 몸값을 비싸게 매기고있었다.
《조선의 남과 북의 정치세력들의 력학관계》라는 론문을 제출하여 일찌기 모교인 스탠포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은바 있는 롤만은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기초로 되는 여러건의 론문들로 하여 워싱톤정계와 학계에서 권위있는 조선문제전문가로 공인되여있었다. 롤만이 련속 써내여 미국의 2대신문들인 《뉴욕 타임스》, 《워싱톤 포스트》와 주요정치리론잡지들에 투고하는 론문들은 높은 지성과 함께 공정성을 가지고 조선의 정세를 분석평가하는것으로 하여 항상 미국무성과 백악관의 조선문제관계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워싱톤의 국책립안자들과 력대 미국대사 혹은 강점군사령관들이 조선반도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분석평가와 편견이나 선입감이 없는 공정한 실태보고를 받고싶어할 때면 언제나 롤만을 찾군 한다. 미중앙정보국은 그에게 사례금까지 지불하면서 특정한 문제들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군 한다.
그러면 롤만은 그 어떤 압력이나 공갈에도 위축됨이 없이 자기의 주장을 내놓았다. 례컨대 워싱톤과 서울정가에서 북조선은 쏘련의 위성국이라고 요란하게 떠들어댈 때에도 롤만은 주저없이 《아니다! 북은 지구상에 보기 드문 자주의 대가 강한 나라이다!》고 평가하여 미국의 통치권자들을 대경실색하게 하였다.
현지주민들의 친미성향에 대하여 물을 때도 롤만은 이렇게 대답하여 미국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당신들은 환상에 젖어있다. 남조선사람들속에서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10%미만이다. 미국이 이미 해방자로서의 허울마저 버렸는데 어떻게 현지주민들에게서 따스한 눈길을 기대할수 있느냐.》
리승만의 정치체제를 극구 찬양하는 미국의 눈뜬 소경들에게는 이렇게 짐짓 꾸짖기도 하였다.
《당신도 미국의 권익을 지키려는 사람인가? 미국이 이 나라에서 자기의 리권을 하루라도 더 길게 챙기려 한다면 하루라도 앞당겨 리승만을 제껴버려야 한다.》
1950년대초에 당시 미국대사 무쵸와 미강점군사령부가 시도하였던 《에레버디》작전도 롤만의 정세보고서에 기초하여 벌어졌다. 무인도사건도 롤만의 보고에 따라 벌어진 사건이다.
롤만이 남조선에 와있는 미국인 최장수자로 되여있는 비결은 바로 이와 같은 정직하고도 강직한 성품에 고급한 지성과 심오한 분석력에 있었다.
그러기에 50년대초에 미국을 휩쓴 《붉은마녀사냥》에 롤만이 걸려들었을 때 그를 구출해낸것은 당시의 미국대사 무쵸와 1948년까지 강점군사령관을 한바 있는 하지중장이였다.
나중에는 당시 미극동군총사령관이던 맥아더와 미중앙정보국 도꾜지국장까지 나서서 롤만과 같은 인재를 말살하는것은 미국의 남조선정책의 기초를 허무는 우둔한짓이라고 강하게 들이대였다. 결국 롤만의 족보와 그의 발언들과 정세판단자료를 걸고 《크레물리의 붉은 첩자》요, 《서울에 숨어든 미국의 붉은 마녀》요 하면서 목에 피대를 세우고 걸고들던 당시 《마녀사냥》의 발기자인 미국회의원 맥카란은 피해보상까지 지불하는수밖에 없었다.
족보때문에 롤만은 인격이나 지성에 있어서 미국의 남조선관계자들속에서 견줄이 별로 없는 인물이였지만 고작해서 령사부의 주임연구원자리에 머물러있었으며 당자도 이에 만족해하고있었다.
다울링도 서울에 온이래 북과 남의 정치정세와 관련한 가장 과학적인 실태자료가 필요할 때면 반드시 롤만에게로 찾아가거나 자기 방에 불러들이군 한다.
그때마다 롤만은 다울링이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들을수 없는 공정하고도 편견이 없는 랭정한 분석으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청사진을 완벽하게 펼쳐보이군 하였다.
다울링이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롤만을 은근히 당기려 하는것은 그가 력대로 남조선에서 총독행세를 해오는 미국대사들의 활동정형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정례적으로 국무성 정보국을 통하여 백악관에까지 통보한다는것을 선임자들로부터 귀띔을 받았다는데도 있었다.
롤만이 령사부의 기구편제에도 없는 주임연구원이라는 직무를 가지고있는것도 그의 특별신분을 강조하고있다.
롤만은 전쟁전에 자기의 직계상관이였던 하지의 정치보좌관 테일러가 워싱톤으로 소환되게 되였을 때 함께 돌아가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본인의 요청에 따라 서울대학교에 교환교수의 자격으로 눌러앉았다가 전쟁후에 미국무성의 끈질긴 요구로 령사부의 주임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앉았다.
미국무성은 롤만을 자기들의 관할권에 앉혀놓음으로써 대조선정책의 작성과 집행에서 그의 지성과 인격을 보다 효률적으로 리용하려고 하였던것이다.
주임연구원은 대사관 참사급의 높은 대우를 받고있는 자리로서 롤만을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기구직제이다. 이 자리는 롤만의 인격이나 학구적인 탐구와 활동에 대한 국무성과 백악관의 특별한 관심과 평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있다.
롤만의 활동에 대하여서는 대사도 간섭하지 않게 되여있다.
아무튼 롤만은 권세가 보잘것없는 지위에는 관계없이 그의 지성의 무게로 보나 경력과 사회적발언권으로 보나 다울링이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되는 인물이였다.
다울링은 롤만이 해방직후부터 조봉암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어온것도 알고있었다.
그에게서 조봉암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오랜 독립운동가이며 철저한 민족주의자라는 말도 여러번 들은바가 있었다. 다만 조봉암은 리승만의 정치적수라는 리유로 권력자의 탄압과 피해를 계속 받아오고있다고 평가하였다.
사실 다울링이 이번 선거에서 조봉암이 내세운 선거공약을 가져다가 밑줄까지 그어가며 분석적으로 읽어보았으나 거기에서 공산주의자로 의심할 근거는 찾아낼수 없었다.
그런데 리승만세력권에서는 그냥 조봉암을 공산주의자로 몰고있으며 서울정치무대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하고있었다.
이번에 다울링은 롤만을 통하여 미8군방첩대가 조봉암의 정계퇴진과 진보당해체를 목적으로 한 비밀공작인 《쌍-프》작전을 추진하다가 저지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롤만은 그에 대하여 통보하면서 매우 심중하게 경고하였다.
《조봉암을 정계에서 퇴진시키는것은 잘못된 편견이며 진보당을 해체시키는것은 남조선사회의 정치적발전에 제동을 거는 오유입니다. 특히 버드대좌의 망동을 묵인하는 경우 미국대사관도 곤경에 빠질수 있습니다.》
다울링은 롤만의 통보가 처음에는 리해되지 않았다.
조봉암과 진보당은 이렇든저렇든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앞으로 4년은 리승만의 통치가 법적으로 인정되였으며 미국도 담보한다는것을 이미 여러차례 확약하였다.
그렇다면 리승만은 차례진 승리에 만족하고 통치임기를 무난히 치르어나가면 될노릇이지 무엇때문에 선거의 경쟁대상을 아예 질식시켜버리려고 하는가? 이것은 정치의 미숙성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버드를 불러가지고 화제를 꺼내놓으니 처음에는 아닌보살을 하다가 나중에는 시인하고 그 필요성을 열을 내서 력설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다울링은 두세마디안팎에 역증부터 앞세우고 거품을 물고 궤변투성이만 늘어놓군 하는 이 동갑나이의 무관과 대상하기 싫어서 롤만을 청해놓고 두사람사이에 론쟁을 걸어놓은것이다. 지혜가 모자라면 남의 지혜를 빌리는것이 현자라고 다울링은 생각했다.
다울링은 두사람에게 이따금 서기가 가져온 커피만 권할뿐이고 그들의 론쟁에서는 피해서서 듣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론쟁을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화제거리를 하나하나 띄워놓기도 하고 론쟁이 필요없는 가지를 칠 때에는 툭툭 잘라주기도 하면서 두사람의 공방전이 치렬하게 벌어지도록 소리없이 교묘하게 끌고나갔다.
두사람의 립장과 주장을 들어보니 다 일리가 있고 새겨볼바가 있었다.
세세히 들어보면 롤만의 주장은 양복에 회색의 비단넥타이를 단정하게 두르고 이목구비가 어느 하나 빠진데 없이 잘 들이박힌 얼굴처럼 빈틈이 없고 수려한 멋이 있다.
그런데 버드의 말은 살진 돼지에게 잠바를 걸쳐준것처럼 우직스러워보이는 몸통과 앞으로 불거져나온 되박이마에 마구 헝클어져내린 머리칼이며 입을 열 때마다 튀여나오는 침방울이며 희번득거리는 눈방울처럼 종작이 없고 거칠기가 이를데 없다.
게다가 버드는 이따금 피비린내를 풍기는 스산한 제안을 련발하는데 그때면 귀밑으로 쭉 내려간 흉한 칼자리가 어울려 그의 인상이 여간 으스스해지는게 아니다.
다울링이 귀동냥으로 들어둔것은 그 흉터가 계집질에 미쳐있던 젊은 시절에 아버지가 경영하던 도박굴의 미인아가씨때문에 벌린 동료끼리의 칼부림으로 생겨난것이라 한다. 헌데 본인은 오끼나와상륙작전때에 창격전에서 입은 상처자리라고 시치미를 떼고 무훈담까지 벌리군 하니 그대로 믿어주는수밖에 없다.
지금은 롤만이 상대를 쓰거운대로 받아주며 자기의 주장에 사개가 딱딱 들어맞는 론리를 세운다.
《대좌! 리승만은 이제는 오늘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80객의 늙은이요. 원래 리승만은 부도덕한 인간으로서 오로지 미국의 힘과 철권에 의거하여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여왔소.
그래 아직도 미국이 이런자에게 주패장을 던져야 하겠소?
바야흐로 성숙해가는 현지의 정치권을 위해서는 권력자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것은 만인이 주지하는 공론이요.
그를 위하여서는 중도적인 인물을 내세우는것이 이곳에서 미국의 지위를 안전하게 하는 유일한 방책이요. 오죽했으면 우리가 리승만제거작전을 두차례에 걸쳐 벌리고 한차례는 아예 죽여버릴려고 총소리까지 냈겠소?!
리승만을 저대로 놔두었다가는 남북의 전쟁이 아니라 반드시 남조선내부에서 국내동란이 일어날수 있소. 그렇게 되면 미국의 존재도 위태로워질것이요. 따라서 버드대좌가 리승만을 일방적으로 두던하고 지지하며 리승만의 풍에 따라 서울정계를 흔들어대는 행위는 반드시 종식되여야 하오.》
롤만은 랭철하게 리승만의 실체를 분석하고 강한 어조로 버드의 무분별한 뒤공작을 타매하였다.
이것은 롤만의 진심의 권고이고 주장이였다. 그의 분석과 결론은 철저히 미국의 국익과 리해관계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롤만은 가장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결론을 미국의 통치자들에게 제시하는것이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편향과 실패를 사전에 막아주는 자신의 의무라는것을 명심하고있었다.
《아닙니다!》
버드가 주먹을 쳐들어 신경질적으로 허공을 내리찍었다.
《그래도 아직 미국은 리승만에게 의거하여야 합니다. 리승만을 대체할 인물을 점지하여보시오. 리승만의 측근에서는 찾아낼수 없소. 리승만은 리기붕을 내세우려고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 멍텅구리는 우리까지 지원을 했는데도 민주당의 장면에게 꺼꾸러졌습니다.
그러면 고병직의 민주당에서 찾아내야겠지요? 민주당에도 현시점에서는 그런 인물이 없습니다. 장면이는 아직 안되지요. 미국에 대한 태도는 리승만에 못지 않지만 매우 우유부단한 인물이요. 장면은 독실한 그리스도교신자인데 사실 그 사람에게는 명동성당 주교노릇이 알맞소. 그 사람의 손아귀를 가지고는 통치권을 장악할수 없단 말입니다.》
《그런 인물은 이미 준비되여있소. 이 나라의 민심이 이번에 어디로 쏠렸는지 당신이 정말 모르고있단 말이요?》
《조봉암? … 당신이 선망하는 인물이지요.》
《대좌, 말을 똑똑히 찍어해버릇해야 하오. 내가 선망하는 인물이여서 여기 사람들이 선택한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인물이기때문에 내가 선망하게 되는거요.》
롤만이 불쾌한 어조로 날카롭게 면박을 가하였다. 버드는 제 말의 실수를 느끼고 두볼이 시뻘겋게 익었다.
버드는 한음계 높은 목청으로 상대의 공세를 눌러버릴듯 연방 침방울을 날리며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난 무인이요. 무관답게 직방 말하겠소.
조봉암은 확실히 서울정치권에서 최중량급의 정치가요. 능히 이 나라를 통치할 정치적력량과 덕망을 갖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것을 리해해야 합니다.
롤만박사, 당신이 정말로 미국의 국익의 견지에서 평가해보시오. 그 사람이 미국의 리권을 보장하는데서 믿을만 한 인물이 될수 있겠는가?》
《난 장담하오!》
《천만에요. 그 사람에게는 절대로 통치권을 줄수가 없습니다.》
《무엇때문에? … 여기 사람들이 요구하고있는데도? …》
《여기 사람들이 요구한다구요? 흥!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요? 여기 사람들의 요구?! 어느 나라 사람들말입니까? 하하…》
버드가 무례하게 코방귀를 뀌다가 갑자기 허파에 바람든 놈처럼 너털거리기 시작하였다.
롤만이 버드의 몰지각한 태도에 골이 나서 일어나려고 하자 다울링이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그리고는 례의를 지키라고 엄하게 눈총을 쏘는것으로써 제때에 버드를 훈계하였다.
《실례했습니다.》
버드는 말이발같은 버덩이를 드러내며 주빗이 웃어보이고는 다소 어조를 낮추어가지고 그냥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서울의 통치자를 선발하는 기준은 이 나라 사람들의 요구가 아니라 미국의 요구입니다. 따라서 조봉암에게 절대로 진보당이라는 무장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조봉암이 앞으로도 정계인물로 생존한다면 좋기는 조직이 없는 무소속인사로서 불만세력의 배출구정도의 소임을 맡아주면 됩니다. 그건 리승만을 견제하는데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그 이상은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조봉암에게 진보당을 맡긴다는것은 호랑이에게 뿔을 주고 날개까지 주는만큼 위험천만한 일이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당신의 소린가요? 아니면 리승만의 주장이요?》
《리승만의 소리라면 어떻다는겁니까? 그것이 우리에게도 현실적인 위협으로 존재하는 이상 접수해야 합니다.》
《대좌, 당신은 조봉암과 대면한적이 있는가요?》
《아니요. 그럴 필요가 있을가요?》
《글자와 수자로 인간을 파악하는것은 과학성이 결여되기마련이요. 나는 그와 10여년간 교제하였소. 친구가 되였소. 당신도 한번 사귀여보시오. 보는 눈이 따뜻해질거요.》
롤만이 진심으로 충고를 하였으나 버드는 여전히 코방귀만 불어던졌다.
《유감스럽지만 학자들과 외교관들의 감상적인 정서는 우리 무관들의 체질에 배여들지 못합니다.
다시 주장하건대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진보당을 해체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조봉암이 스스로 2선으로 물러나도록 사면팔방에서 압을 가하여야 합니다.
조봉암이 해방후부터 노리고있는것은 좌경적인 정치세력화입니다. 조봉암은 정계일선에 서있는 한 끝까지 자기 당을 완전히 꾸려놓을것입니다. 그것을 무기로 남조선사회의 적색화를 추진시키려고 시도할것입니다.
나는 박사님도 조봉암에 대한 지나친 접근은 삼가할것을 권고하고싶습니다. 당신의 제기로 영어공부까지 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이 나라 정치권을 자극하였다는것을 류의하기 바랍니다.》
《대좌, 당신이 이제는 내게도 삿대질이구만. 그 문제는 이미 미국무성의 지시에 의하여 시작된것이요. 씨아이에이(미중앙정보국 략칭)계통에서도 필요하다고 인정하였던바요.
조봉암과의 나의 접촉에 대하여 당신이 신경을 쓰는것도 리해되지 않소. 우리에게는 한명이라도 더 미국의 우인을 만들어낼 의무와 권리가 있소.》
《나는 롤만박사가 조봉암과 교제하는데 대하여 딴 의미를 두고있는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조봉암에게 미국의 지지를 확약하는 잘못된 신호로 전달될수 있다는데 대하여 상기시켰을뿐입니다.》
《괜한 걱정이요. 미국의 지지를 확약하는 신호라면 어떻단 말이요.
버드대좌, 원칙론으로 돌아갑시다. 그건 당신이 아직도 미국의 진의도를 모르고 하는 오판이요.
우리는 야권인물들에게도 미국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것을 부단히 깨우쳐주고 감각하게 해야 합니다.
미국은 언제나 만약의 경우에 대처하여 제2의 인물, 제3의 인물을 물색하여놓고 준비시켜야 합니다.》
《아니요. 난 반대입니다. 지금 리승만은 조봉암에 대한 박사님의 관심을 가지고 계속 미국을 걸고들고있습니다.
조봉암에 대한 당신의 견해와 그에 기초한 미국의 일부 인물들의 론조를 놓고 리승만의 감정과 정서가 매우 좋지 않다는것을 리해하여주기 바랍니다.》
《버드대좌, 미국은 리승만과 같은 늙은 주구의 감정이나 정서까지 념려할 하등의 리유가 없습니다. 못되게 놀면 차던지면 되는거요. 뭘 싸고돌 가치가 있다구.
리승만은 백악관과 국방성의 후광을 받아 그 무슨 정치적배심이 있는것처럼 허장성세하지만 실은 아무런 정치적방략이나 주대도 없는, 조선사람들이 흔히 만들어먹는 엿가락같은 인물입니다. 엿가락은 약한 열에도 흐물흐물해지고 자기 본태를 잃고맙니다. 이런 인간에게 의거한다는것은 미국의 수치이고 비극이요. 그리고 위험천만한 도박이요. 리승만에게는 아무런 주의주장도 없소.》
《그게 어쨌다는겁니까?》
《그게 어쨌다니? … 그래도 일국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당신은 도대체 국제적인 여론이 있다는걸 모르는 사람이요?》
《난 박사선생의 그 생각부터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조선이 어떻게 되여 일국이 되는거며 도대체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겁니까? 더구나 이 나라 대통령에게 친미, 숭미를 떠난 그 무슨 주의주장이 필요된다는겁니까?》
버드가 도전조로 걸고들었으나 다울링은 이번에는 개의치 않고 롤만의 대답을 기다렸다. 버드가 내뱉은 말은 다소 직선적인감이 있기는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말 같다. 이제 롤만이 어떻게 대답할가.
《여보시오, 대좌! 장마당에 나가 강아지 한마리 사올 때도 요구사항이 많소. 집대문 지킬 노복이나 동자질 시킬 하녀를 구할 때도 이것저것 기준이 있소. 하물며 식민지국가를 다스리게 할 통치의 하수인을 내세우는 기준이 그렇게 단순하고 허술해서야 될말이요?
그러지 않아도 미국은 리승만때문에 여러번 망신을 당해왔소. <에레버디>작전이 왜 제기되였는지 대좌는 모르고있단 말이요? 군복을 감고있다고 해서 정치의 복잡한 속성을 외면해서야 안되지요. 우리는 한시바삐 미국이 수습할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기 전에 랭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사태를 바로잡아야 하오.
따라서 대안적인 인물들에 대하여 그 정적들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제거하는 어리석은 놀음은 걷어치워야 하오. 당신은 지금 미국의 영상마저 더럽히고 이 나라 사람들을 반미대결에 나서게 할 위험천만한 도박에 손을 뻗치고있소.》
롤만은 또다시 궤변을 늘어놓아보려고 눈망울을 굴리는 버드의 살진 상판을 쏘아보며 힘을 주어 강조하였다.
다울링은 해점도록 이어질것 같은 그들의 상반되는 견해의 충돌을 들으면서 자기나름으로의 립장을 세우려고 애를 썼다.
리승만과 조봉암-두사람이 미국에 대한 립장에서는 다를바 없다고 하자.
조봉암의 친미성향에 대하여서는 이미 씨아이씨에서 파견하였던 공보원의 영어교사도 인정하였다.
《조봉암은 미국의 지지를 기대하고있다. 그는 미국이 신뢰할수 있는 인물이다.》
문제는 어느 인물이 미국에 더 리로운 인물로 되겠는가.
조봉암은 리승만과 상치되게 남조선통치권에서 찾아볼수 없는 주견있고 심지가 바른 정치인이다.
그와의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가. 아니, 대화가 가능할가.
다울링은 하나의 미지수를 찾아내자 손을 쳐들었다.
《좋습니다. 다음문제… 버드대좌가 진보당과 조봉암을 거세하려던 공작이 실패하였습니다. 먼저 경고하건대 차후에는 이러한 공작들은 대사관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이에 대하여 롤만선생에게 이미 통보하였습니다.》
롤만은 자기에게로 향한 다울링의 질책기어린 시선을 받자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난 그에 대하여 국무성에 직보하였습니다.
국무성은 이에 개입하지 말것이며 서울대사관에 따로 통보할것이라는 지시를 보내왔습니다.》
자기의 움직임은 대사관에서 개입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것을 분명히 밝혀놓은 롤만의 단호한 대답에 다울링은 불쾌해서 이마살을 찌프렸다.
《롤만박사, 아시겠지만 이러한 문제는 정치적성격의 문제이며 여론의 주목을 끌게 될 문제입니다. 따라서 현지기관들의 대표인 대사가 모르고있는것은 비정상입니다.》
롤만은 다울링과의 론쟁을 벌려놓는것이 이 자리에서는 무익하다는것을 깨달은듯 대사의 비난을 선선히 받아물었다.
《좋습니다. 앞으로 류의하겠습니다.》
《일부 견해에 의하면 조봉암은 급진적공산주의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즉 우선 조봉암의 사상적경향에 대하여 합의점을 만들어봅시다.》
다울링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롤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10년째 조봉암과 가까이에서 사귀여왔습니다. 물론 미국의 특수기관의 요구에 의하여 시작된 교제였는데 오늘에 와서는 친구로 되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패전후 서울땅에서 몰아친 복잡다단한 정치적격변기를 함께 겪었고 이 과정에 상대의 진속을 밑뿌리까지 캐볼수 있었습니다.
확언하건대 조봉암은 반대파들이 주장하는 급진적공산주의자가 결코 아닙니다.
그는 해방전에 공산당계에서 활동하였으나 해방후에는 일관하게 제3의 길-즉 민족주의 내지 유럽식사회민주주의를 제창하여왔습니다.
조봉암의 비극은 그의 민족주의가 리승만세력과 일부 미국의 근시안적이고 단세포적인 인물들의 리해를 받지 못한데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다울링은 자기도 모르게 버드의 얼굴에로 눈길이 돌아갔다.
롤만은 단세포적인 인물들속에 서슴없이 버드도 포함시킨것이다.
아니나다를가 버드의 언덕이마가 더 솟아오르고 두눈이 거칠게 번뜩이는것이 금시라도 일어나 주먹을 쳐들 자세다.
다울링은 길게 코소리를 내는것으로 두사람에게 주의를 주어 자중하도록 하였다.
《해방직후 리승만과 당시 미국의 현지인물들의 합의로 사살된 김구나 려운형, 송진우, 장덕수 등 인물들은 공산주의자가 되여 정치무대에서 제거된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리승만세력에게 도전했다는것으로 하여 공산주의자 혹은 공산주의련루자가 되여 죽었습니다.
지금도 남조선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리승만세력이 아니면 공산당이라는 지극히 무지하고 단순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피해를 보고있습니다.
조봉암도 리승만의 정치적적수라는 리유에 의하여 공산당으로 불리우고 탄압을 받고있을따름입니다.
이것은 마치도 지난 50년대에 미국무성과 국회의 80~90%가 친쏘분자이거나 공산주의자라고 떠들어댄 맥카시즘을 련상하게 합니다.
내가 알고있기로는 다울링대사도 당시 피해를 입었던것 같은데요. 친쏘, 친공분자라는 혐의였겠지요?
나 역시 그때 미국회조사위원회에 출두하여 두달간 심문을 받은바가 있습니다.》
《허허허…》
다울링이 그 소리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비극이였지요. 추억하고싶지 않는 악몽이지요. 아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거요. 맥카시즘은 미친 개떼들의 지랄이였소.》
다울링은 악에 받쳐 소리치다가 김빠진 웃음을 지었다.
버드도 피식 웃었으나 얼굴이 벌겋게 익어들었다.
버드는 앞에 앉아있는 두사람이 미국의 극우매파들이 벌려놓은 《붉은 마녀사냥》의 피해자들이라는것을 이미전부터 알고있었다.
반면에 그자신은 당시 마녀사냥놀이에 몰이군으로 참가하였다. 그 공로로 40대까지 겨우 위급장교로 앉아뭉개다가 벼락승진하여 40대 후반에는 대좌까지 껑충껑충 뛰여올랐던것이다.
버드는 두사람이 그때 일을 미친 개떼들의 놀음으로 타매하는 바람에 저으기 면접스러워졌다. 사실 그건 정말 미친 개떼들의 발작같은것이였다.
그도 그때 일을 생각해보면 무슨 광기가 나서 제 사람들을 마구 물어메쳤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공명심이였던가. 미친 바람에 휘말려야 했던 운명의 장난에서였던가. 아니면 자기를 지켜내자니 어차피 주변인물들을 제물로 섬겨야 했던 본능적인 자기 보호의식이였던가.
《그건 그렇고… 버드대좌의 말을 들어봅시다.》
다울링이 기가 죽어버린 버드의 체면을 봐주느라고 그에게 언권을 넘겨주었다.
버드는 그 소리에 인차 대답하지 못하고 롤만의 눈치를 흘끔 살피고는 어정쩡하게 대답하였다.
《나도 그 이상으로 언급할것이 없습니다. 내가 알고있는것은 조봉암은 민족주의자로서 좌익도 우익도 아닌 제3의 길을 걸어왔다는것입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에 말입니다. 물론 그전에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던것도 사실이구…》
버드는 그 이상 더 전개하지 않고 제때에 입을 다물었다.
괜히 자신없는 주장을 펴놓았다가 또다시 롤만의 드센 공격에 수치를 당할수 있다는 우려가 함구령을 내리게 했던것이다.
어쨌든 그 무슨 리론이나 분석에 있어서 롤만을 당해낼 재주가 없다는것을 버드는 인정하고있었다.
《좋습니다. 이 문제에서는 두분이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다른 문제로 넘어갑시다. 차후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한 대책입니다. 롤만박사가 발언하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그 문제에서 론의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조선을 지금대로 둬두면 미국의 영상만 어지럽히게 될것입니다. 마땅히 제3의 세력을 키워서 정치의 균형을 보장하도록 하고 리승만의 독재정권을 견제하게 해야 합니다. 리승만의 전횡을 더이상 묵인하면 위험사태가 벌어질것은 명백합니다.》
다울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버드가 그에 즉시 반발하였다.
《나는 다른 견해입니다. 조봉암은 정치무대에서 철저히 격리시켜야 하며 진보당과 같은 민중적인 당의 확대진출을 봉쇄하여야 합니다.
전번 선거에서 우리는 제3의 세력이라고 자칭하는 진보당세력이 미국의 전통적인 우호세력을 위협하고 압도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위험합니다. 지금 세계적판도에서 민족주의세력은 점차적으로 반미에로 접근하고있다는것을 잊지 마십시오.
현 단계에서 남조선에서 미국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이미 남조선사회에서 리승만을 정점으로 집결된 친미반공세력을 보호하고 더욱 강화시켜주는것이 유일한 방도입니다.
우리는 이번 공작이 실패한 조건에서 2단계작전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진보당의 확대를 저지시키고 그 지지세력을 극소화하며 서울정치권에 미치는 조봉암의 영향력을 최소화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58년에 있게 될 국회선거에서 조봉암세력의 진출을 봉쇄하고 미국의 전통적인 지반을 다질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공작에는 현 집권세력의 요구도 반영되여있습니다.》
버드가 너희들 사복쟁이들은 비켜서라는 투로 오만하게 자기 립장을 밝히자 우선 그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울링은 이마살을 잔뜩 찌프렸다.
《롤만박사는 물론 반대이겠지요?》
《예, 그것은 서울정국을 더욱 복잡하게 할뿐입니다.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현지선거자들의 정치성이 이번 선거를 통하여 크게 성숙되였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식민지의 집권세력이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버드대좌도 자신이 종주국의 주요기관장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집권세력의 파수장노릇으로 만족하여서는 안됩니다. 게다가 조봉암을 지지하는 세력이 사회의 압도적인 세력으로 부상되여있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미국이 이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면 오히려 소외계층의 반미열풍을 격발시키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중국대륙에서 부패무능한 쟝지에스(장개석)일파를 지지하다가 쟝지에스와 함께 대륙에서 쫓겨난 쓰디쓴 교훈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우리는 광대한 중국대륙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있습니다. 프랑스도 남부윁남에서 포악한 독재자를 내세우고 그에 의거하여 식민지통치를 하다가 호지명에게 쫓겨나고 인도지나반도에서 발붙일 땅을 잃고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것입니다.》
버드가 롤만의 설명에서 빈틈을 찾아낸듯 불시에 공세를 들이대였다.
《지금 인도네시아, 에짚트, 과떼말라, 꾸바, 남부윁남, 필리핀, 이란을 비롯한 나라들에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그것이 반미운동으로 확산되여 세계적판도에서 미국의 립지를 위협하고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조선에서 조봉암을 대표로 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의 급진적진출에 주목을 돌려야 하며 좋기는 더 세력화되기전에 봉쇄하여야 합니다. 더구나 북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있는 특수한 환경에서 공산주의위험요소를 그 맹아단계에서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지난 시기 우익적이던 김구를 두령으로 한 완고한 우익민족주의세력까지 친북, 련공으로 기울어졌다는 력사의 교훈을 롤만박사도 기억하고있을것입니다.》
《버드대좌, 상기시켜주어 고맙소. 헌데 당신의 주장은 리승만세력의 정권안보원리와 일맥상통하고있습니다. 지금 리승만세력은 자기들의 집권기반이 흔들리고있는 리유를 바로 거기서 찾고있습니다. 반공이데올로기는 리승만정권의 정신적지주이며 독재비호의 가장 상투적이고 유치한 명분이요.》
다울링은 또다시 그들의 론쟁이 심화되여가자 손을 신경질적으로 내저었다.
그들의 론쟁은 끝이 없을것 같았으나 쥐여짜면 단순한것이였다. 한쪽은 조봉암에 대한 지지요, 다른쪽은 반대다.
다울링은 더는 자기의 립장을 내놓지 않고 타협식으로 협의를 끝내기로 결심하였다.
《좋습니다. 두분의 립장을 국무성에 그대로 보고하겠습니다.
롤만선생은 우리 대사관에서 제일 년조가 있는 고참전문가로서 심도있는 의견들을 많이 제기하고있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롤만선생이 조봉암과의 오랜 친분을 유지하여 그가 미국의 지인으로 되도록 힘써줄것을 부탁합니다.
버드대좌가 구상하고있는 공작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으로 대사관과의 협력을 밀접히 하며 공작에서 차질이 없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루한 공작은 반미세력의 확산을 가속화할수 있다는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공작의 비밀류출을 경계하여 조봉암과 진보당이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으로써 그들의 모임은 끝났다.
다울링이 문밖에까지 그들을 바래워줄 때 롤만이 문득 지나가는 어조로 물었다.
《참, 조봉암을 한번 직접 만나보지 않겠습니까?》
《조봉암을요? 필요할가요?》
《민중의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고있는 야권대표인데 이미전에 만나봐야 할 일이였지요.》
《아, 옳습니다. 면담을 주선하여주시오.》
다울링은 마지못해 응하면서도 대답은 흔연하게 하였다.
다울링은 그들을 떠나보내고나서 창문가에 서서 오래동안 무거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두억시니같은 리승만의 상통이 그냥 그를 괴롭혔다. 력대 서울주재 대사들도 리승만의 지나친 독선과 오만과 전횡때문에 크게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더구나 종신《대통령》직을 노리는 독재자의 개꿈을 부채질한탓으로 미국은 불법무법의 비호자라는 세론의 비난을 줄소나기처럼 받아온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어떻게 되여 리승만이 여든살나이에, 그것도 아무런 정치적탁견도 없이 오로지 미국과 철권에만 의지하고있는 처지에 죽어도 옥좌에서 죽겠다고 버둥거리는걸가. 그런데 문제는 리승만의 그 구역질나는 체통에 환멸을 가지고 더럽고 용렬한 두상태기라고 손가락질은 하면서도 미국의 어느 집권자도 그를 제껴버리지 못하고 귀먹은 욕설만 퍼붓는것이다.
다울링은 서울로 부임하여오기 전에 초대남조선대사였던 무쵸와 주둔군사령관을 하였던 하지와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뭐, 서울로 간다구? … 대사라… 좋지…. 헌데 서울대사노릇이 쉽지 않을거요. 서울령감이 너무 부산을 피워서 정말 골치가 아팠소.》
이것은 하지의 첫 인사말이였다.
《에? 리승만, 그 두상태기 말두 마오. 오죽했으면 내가 8군사령관하던 밴플리트와 짜고들어 리승만을 몰아낼 작전까지 꾸몄댔겠소. 뭐, 내 있을 때뿐이요? 내 후임으로 왔던 브리그스대사때도 그랬지. 한번은 씨아이에이와 짜구서 리승만을 서해섬 어디라고 했더라? 이름은 까먹었구만. 좌우간 그쪽으로 오게 해놓고는 기관총사격으로 숨통을 눌러놓으려고 했다더구만. 그런데 저격수들이라는게 망탕 사격을 해서 실패하였다오. 허허… 옛말이요. 그때 브리그스대사가 그 일때문에 리승만에게서 땀개나 뽑았다우. … 잘해보오.》
이것은 무쵸가 자기의 잔등을 두드려주며 해주던 소리다.
다울링은 서울에 와서 리승만과 만나거나 정치권의 혼란을 목격할 때마다 그들의 구차한 소리가 다시 들리는것만 같았다.
권력미치광이… 아니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력에 로망든 미치광이… 이게 보다 적절한 인물평가일것 같다.
그런데 미국대사들의 비극과 고충은 무엇인가?
하지도 무쵸도 한입처럼 떠들었다.
《리승만을 대신할 인물이 나서야지. 이게 난사야. 그러니 미국대사는 마땅히 그런 인물을 키워내야 한다. 미국대사는 자신있게 바로 이 사람이다 하고 말할수 있게 될 때에 가서 리승만을 제껴야 될것이다. 그때까지는 밉든곱든 그 두상을 내세우고 그 령감의 잔등을 긁어주는수밖에 없다.》
롤만도 그에 대하여 인정하고있다.
그리고 미중앙정보국이 이미 후임자선정에 착수했다고 한다. 군부에서 두세명 점을 찍어두고 관찰하고 키우고있는데 아직은 정치권에 내세우기는 여러모로 미흡하다고 한다.
자기더러 선택의 권리를 준다면 조봉암을 자신있게 찍었을것이라고 여러차례 말한다. 그에 대하여 미중앙정보국에도 자주 건의하고있다고 한다.
다울링도 조봉암에 대하여 나쁜 소리도 들었지만 좋은 소리도 듣고있다. 사뭇 그 인격과 론조와 지성에 끌려들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롤만의 말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롤만과 같은 점잖고 지성감이 넘치며 사리정연한 인간이 반할 정도로 취하여있고 신뢰하는 인간이라면 그 진가가 어렵지 않게 헤아려지는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금새를 보려거든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다울링은 결코 쉽게 롤만의 손을 들어줄수가 없었다. 버드의 견해가 보다 현실적이며 미국의 국익의 견지에서 부합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때문이다.
버드의 견해는 어떤 의미에서는 론리성이 결여되고 감정적인데가 있지만 하지나 무쵸의 견해와도 대동소이하다.
남조선정계를 오르내리빗질해봐야 리승만과 같이 친미적인 주구배는 찾아낼수 없다는것이다. 대역이 준비되지 못한 조건에서 어차피 미국의 리권을 지키자면 리승만을 보호해주는수밖에 없다는것이다. 본질은 같고같은 주장이다.
국제문제에 대한 분석도 버드는 기본상 옳게 하고있다.
최근에는 에짚트에서도 민족주의적인 인물인 나쎄르가 정권을 잡았는데 인차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포하고 반미, 반제적인 로선에로 지향하고있다. 여기에 쏘련이 날쌔게 손을 뻗쳐 나쎄르로 하여금 공산권에로 급선회하도록 하고있다. 인도네시아와 이란과 아메리카나라들에서도 류사한 사변들이 벌어지고있다.
그러니 조봉암의 진보적경향에 위험을 느끼고있는 버드의 립장은 옳은것이라고 볼수 있다.
미국의 리해관계에 대한 분석에서도 얼간망둥이같은 그 무장이 꽤 씨박힌 소리를 한것 같다.
제 소리 내고 제발로 걷는 시늉을 하는 인물이 나을가 아니면 팔삭둥이같애도 미국의 소매에 매달려 시키는대로 소리내고 걸어가는 인물이 나을가?
미국이 너무하다는 귀따가운 소리를 들어도 전자보다 후자를 끼고도는것이 서울에서 대사노릇 하기가 한결 편하고 믿음직할수 있다.
물론 그러한 견해는 남조선사회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있으며 학자일뿐아니라 정치가로서의 넓은 안목도 겸비하고있는 롤만의 눈에는 매우 조야스럽고 저급한것으로 비쳐질것이다.
군부는 역시 군부다. 무인들의 립장이란 항용 힘의 원리에 기초한것으로서 분석이 단순하다. 시야가 좁으며 결론이 유치하고 원칙이 결여되기마련이다. 그들의 행동은 신속하고 명쾌하다. 외교관들이나 정치가들이 좋으냐 나쁘냐 시비를 캐고 론리를 캐고 명분을 세워보고 합의를 만들어보느라고 애를 쓸 때 무인들은 돌격구령을 내려 우선 타고앉아서 만세부터 부른다. 그로부터 생겨나는 온갖 고달픈 뒤치닥거리는 외교관들이나 정치가들에게 던져주고 돌아앉아 저희들은 샴팡이나 터뜨린다.
다울링은 버드에게 제때에 대사관의 위엄을 보여주고 신호를 보내준것을 다행으로 여기였다.
저것들이 이제 서울정치권을 벌둥지처럼 쑤셔놓으면 그를 수습해야 할 골치아픈 일들이 수다하게 생겨나 자기의 어깨에 우박처럼 쏟아지리라는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제멋대로 갈갬질을 하는 망아지들을 올가미로 죄여매고 고삐를 바싹 쥐고있어야지 눈뜨고 뒤통수를 얻어맞을수도 있다.
다울링은 그러되 아직은 이쪽저쪽으로 확고하게 고개짓을 해줄수 없었다.
조봉암을 어떻게 할것인가? 진보당은 또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제거? … 보호? … 서울정치란 참으로 혼란스럽다. 생각을 굴릴수록 심연은 더 깊어만지는듯싶다.
그는 좀더 지켜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