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4

 

자기의 아픈 매를 선선히 받아주는 딸과 사위의 대답에 속이 훈훈해진 조봉암이 다시 지나가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에게 이왕지사 한마디 더 하자. 누구 얘긴고 하니 류선녀선생에 대한 말이다. 내 이 말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전에 보니 연경이도 그래, 효경이도 단단히 뿔난것 같애서 이야기하련다.

사람의 마음속은 열길, 백길도 넘는다는거다. 그러니 투시해야 한다는거다.

류선녀선생이 내가 선거에 나선다고 해서 떠나간건 사실이지만 결코 주변의 압력과 위협에 겁이 나서 그런게 아니였다.

날 찾아오기 전에 오빠가 한마디 한게 있다고 하더라. 세상여론이 류선녀보고 경무대안방이 탐나서 신당동문턱을 넘느냐고 하면 어쩔테야 했다는거다. 녀자의 마음으로는 가볍게 넘길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 세상인심이 고약하다는 그의 오빠 말도 일리가 있거던.

그때 떠나가며 하는 말이 자기는 대의를 위해서는 선거에서 승자가 되는걸 바라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제발 패자가 되여달라 빌겠다고 하더라. 그런즉 선녀선생도 녀자라는걸 생각하고 너그럽게 봐주어라.》

《예? 선녀선생이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효경이가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동가슴에 손을 올리며 부르짖었다.

아버지가 전해준 사연이 다른 의미에서 효경의 여린 속을 울려놓았던것이다.

조봉암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어마나, 이 일을 어쩌나?! … 아버지, 그 말씀 왜 이제야 하시나요. 참… 저희들이 너무, 너무 잘못했어요!》

효경이는 커다란 감동과 깊은 회오와 안타까움에 휩싸여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다소 떨리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가 래일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을 잘 모르고있었다고 빌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선생님을 이제는 모셔오자요. 제가 가서 선생님을 모셔오겠습니다. 네, 아버지?》

《허허… 됐다, 됐어! 이제 할 일이 산같다.》

《아버님, 제 생각도 같습니다. 언제는 아버님께서 한가하신적이 있었습니까?》

김봉무가 안해의 말에 진정을 고여 훈수를 하였다.

《이제 당장 해야 할 일이 첩첩해. 우선 중앙당을 만들어야지, 그 다음에는 지방당조직들을 내오구. 그 다음에 보자구. 그리고 아무튼 올 사람이면 올것이니 찾아가지는 말아라.

내가 선녀선생 말을 꺼낸것은 사람들에 대하여 늘 선하게 생각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말을 하고싶어서이다.

최금룡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가벼이 생각지 말아라. 그가 나의 선거출마를 한사코 반대하는데도 복잡한 리유가 있다. 그 사람이 아무렴 공장일이 기울어진다고 금룡이를 빼갔겠느냐.

사람들을 보는 눈이 이지러지면 세상에 고운 사람이 없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점차 어쩔새없이 인간된 아름다움을 잃고 이지러진 인간으로 되고만다.》

《명심하겠습니다.》

효경이내외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였다.

다음날 아침 효경은 아침상을 거두고나서 인차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연경이를 찾아갔다.

마음의 빚을 두고서는 한시도 편히 지내지 못하는 효경의 섬세하고 착한 성정이 그로 하여금 연경에게로 향하게 하였다. 류선녀가 떠나간 사연을 한시바삐 동생에게 들려주고싶었던것이다.

연경이도 그 일때문에 이미전에 류선녀에 대해 품었던 좋은 감정이 물에 씻긴듯 다 지워져있었다. 가능하면 함께 가서 무릎꿇고 빌어야 할가부다.

그런데 연경의 입원실에 들어가니 어떻게 알았는지 류선녀가 와있었다.

그 녀자는 포도당점적을 받느라고 반듯이 누워있는 연경의 머리맡에 앉아서 무슨 얘기인지 소곤소곤 들려주고있었다.

《아, 선생님! …》

효경이는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류선녀를 만나자 당황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이렇게 부르며 류선녀에게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류선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효경이를 반기였다.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 그런데 우리 연경이 입원한건 어떻게 아시구…》

효경이는 류선녀에 대한 죄스러움을 금치 못하여 찾아온 걸음이였는데 그 녀자가 동생의 머리맡에 앉아있는것을 보자 더구나 감동이 크고 의아쩍기도 하여 물었다.

류선녀가 선한 미소만 짓고있는데 연경이가 목멘 어조로 대답하였다.

《언니… 아니 글쎄 선생님이 내가 총을 맞는걸 다 보셨다지 않나요!》

《그럼? … 대전에? …》

《아버님이 대전에 가시였을 때 먼저 가계셨대요.》

《선녀선생님이?!》

효경이는 깜짝 놀랐다. 류선녀가 선거선전장을 찾아가다니?!

커다란 감동과 고마움에 젖어든 효경이의 눈길을 받자 류선녀는 괜히 수집어하는 소녀들처럼 납작한 볼이 발깃하게 물들여지면서 화제를 돌리려 하였다.

《됐어요, 효경이! 이번에 연경이가 참말로 아버님을 위하여 큰일을 했어. 그리고 아버님이 그리도 사랑하시는 민중을 위하여 장한 일을 했어요. 난 연경이가 이렇게 소생한걸 보니 기쁘기만 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속을 저희들은 너무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난 이번에 많은걸 새롭게 깨닫고 죽산선생님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게 되였어요.》

류선녀는 사려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그 녀자는 이번에 대전뿐아니라 조봉암이 5월 6일부터 다녀간 모든 지방도시들과 지역들을 돌아왔다. 그것은 그나름으로 깊은 고뇌속에서 생겨난 용단이였다.

오빠의 곡진한 념려가 있고 주변의 여론도 커질듯싶어 조봉암의 출마가 진보당의 결정으로 선포되자 물러서기는 했으나 조봉암에게로 달리는 그리움과 애정은 오히려 배로 커지기만 하였던것이다.

자기가 오빠의 말 한마디에 덜컥 놀라 주변의 흉흉한 구설수에 오를것만 우려하면서 그렇게 황황히 달아빼온것이 조봉암과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여러해나 마음을 굳혀온 녀자로서 과연 지각이 있는 처신이겠는가고 깔끔하게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경무대로 향하는것은 조봉암의 당면정치의 목적이고 리상이다.

헌데 조봉암선생의 리상을 접수할수 없다면 사랑이라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마침 조봉암이 후보에서 물러났다가 신익희를 대신하여 다시 후보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서울을 들썩거리게 하였다.

류선녀는 모진 자책과 고민끝에 조봉암의 선거선전장을 따라다니기 시작하였다. 선거자들앞에 나선 그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싶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싶었다. 그의 사상과 리념, 그의 인격에 대한 선거자들의 평가를 자기의 눈과 귀와 리성으로 정치전의 한복판에서 가늠하고싶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에서 조봉암이 펼쳐놓는 미래에 심취되였다. 자기의 사상과 리념의 정당성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주장에 황홀하여졌다. 그리고 민중에 대한 그의 열렬한 사랑과 충직성에 탄복하였다.

선거선전장을 진감하는 선거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지지, 열기에 눈굽이 달아올랐고 그도 어쩔새없이 목소리를 합치게 되였다.

그는 조봉암의 인격에 반했던 녀인으로부터 그의 사상과 리념에 대한 철저한 지지자로 되였다.

투표장에서는 조봉암에게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치는 심정으로 서슴없이 지지표를 바쳤다. 그리고 주변의 여론에 동요하였던 자신에게 화를 내기도 하였다. 그분에게 크게 죄를 졌다고 자신을 랭혹하게 꾸짖기도 하였다.

마침내 류선녀는 오락가락하던 동요와 고민도 떨쳐버리고 자기를 다잡았다.

(조봉암선생님은 경무대를 기어이 차지하여야 한다.

그것은 시대의 요청이고 민중의 하나같은 지향이다. 나라의 통일도, 사회의 변혁도 현 단계에서는 그걸 떠나서는 기대할수 없다.

그분을 정말로 사모한다면 주변의 어지러운 눈길을 꺼려할것이 무엇이냐. 거기에 주접이 든다는것은 범속하고 부질없는 녀자의 섬약한 마음의 동요일뿐이다. 그까짓, 세상이란 그런것이다. 범상치 않은 사나이를 향한 녀인의 사랑도 범상치 말아야 한다.)

류선녀는 이렇게 고민속에서 흔들리던 마음에 버팀목을 단단히 세우고 오빠를 찾아가 자기의 결심을 꺼내놓았다.

《오가는 험담 두렵지 않아요. 저를 더는 막지 말아주세요.》

류선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류선민은 눈을 흡뜨고있다가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네가 정 풍랑속에 뛰여들겠다 하는구나. 외유내강이라는 말, 재색겸비라는 말 널 위해 생겨났구나. 에 모르겠다! 좋다! 찾아가보기는 하라마는 네가 지금 호박쓰고 돼지굴에 뛰여드는게 아닐가. 사랑이라는게 참말로 요사스럽기도 하구 모질기도 하구나!》

류선녀는 이렇듯 헐치 않은 마음속의 진통을 겪고나서 이날 연경의 병문안차로 분연히 자리를 차고 병원으로 달려왔던것이다.

효경은 류선녀를 찾아가 심심히 뉘우치고 용서를 빌고저 준비해놓았던 말들이 그에게서 새롭게 받아안은 충격으로 해서 홀연히 사라지고말았다.

《선생님! 실은 선생님께 찾아가려고 연경에게 들렸습니다. 선생님께 속죄하고싶어서…》

효경은 열적은 빛을 가무리지 못한채 가책에 눌리워 조심조심 말을 뗐으나 끝내 말끝을 여물지 못하였다.

《속죄를 한다구… 나한테? …》

《그럼요… 얘 연경아, 우린 선생님께 너무 큰죄를 짓고있었구나. 우린 바보들이였어.》

효경이는 동생에게로 고개를 돌리였다.

《음? … 언니야. 그건 무슨 소리나?》

연경이가 꼬리머리없는 언니의 속죄소리에 둥그래진 눈을 슴벅거렸다.

《우리 같이 선생님께 사죄를 하자. 죄를 졌거던.》

《내게 사죄를 한다구? … 효경이 그게 무슨 생광스러운 소리나요?》

류선녀의 고운 눈에 고요한 리지의 빛이 어렸다.

《저희들이 선생님을 크게 오해하고있었습니다.

전번 선거전에 저의 집에 오셨다가 돌아가실 때 저희들은 선생님이 여러가지 위험이 두려워 가시는줄로 알았습니다. 그게 미웠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원 참… 난 무슨 큰일이 생겼다구.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지. 죽산선생님의 따님들로서는 옳은 립장이구. 됐어요. 호호…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던가요?》

류선녀가 맑은 얼굴에 함뿍 미소를 담으며 다심하게 물었다.

《예, 어제야 저희들에게 말씀하시였어요. 저희들의 생각이 부실한탓이지요.》

효경이는 아직 영문을 몰라하는 연경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하였다.

언니의 말을 듣고난 연경이가 자기들의 엄청난 오해를 깨닫고 대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리고는 그도 가책에 잠겨든 소리로 사죄를 하였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의 깊은 뜻을 너무도 몰랐습니다. 저를 욕해주십시오. 사실 언니보다는 제가 더 오똘했습니다.》

《됐어, 호호. 우리 연경이는 어디 내세워도 사내 찜쪄먹을 녀걸인데 이런 때 보면 속이 너무 무르다니깐. 어서 눈물을 그쳐요. 몸에 나빠요.》

류선녀는 연경의 눈굽을 쇠침대에 걸려있는 세수수건으로 닦아주며 너그럽게 위로하였다. 연경은 눈물에 씻긴 눈망울로 류선녀를 쳐다보며 응석을 부리듯 청을 드렸다.

《선생님, 저희들을 용서하신다면 이제라도 집으로 돌아오세요.》

《그렇게 해주세요. 우리 아버님도 실은 선생님을 그리워하세요. 선생님, 이 자리에서 약속해주세요.》

자매가 련달아 진심을 고여 청을 올리자 류선녀의 두눈도 눈물이 그렁해졌다.

《고마워! … 그럴 때가 올거야. 난… 난… 그날이 오리라고 믿어요. …》

류선녀는 자매의 손목을 하나씩 잡고 젖어든 어조로 대답하다가 부지불식간에 목젖너머에서 왈칵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금할수 없어 얼른 입을 싸쥐고 입원실에서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이 순간 그 녀자는 조봉암에 대한 자기의 애정이 정말 짝사랑으로 그치는게 아닐가 하는 애모쁜 설음의 덩이를 깨물고있었던것이다.

이날 해떨어질무렵에 조봉암은 김봉무, 효경이와 함께 부산으로 떠나는 천령배부부를 서울역전에서 바래워주었다. 천령배는 처와 함께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 가서 연경의 병문안을 하고 그와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천령배는 동래온천에 가서 료양생활을 한달정도 한 다음 정식 출국수속을 하고 일본으로 떠나게 되였다.

조봉암은 천령배와 함께 렬차에 올라가 서로 얼싸안고 굳어진채 렬차가 제동을 푸는 소리가 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시간을 보냈다. 헤여지기 전에 서로 상대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넣고싶어 쳐다보기만 하면서 서로의 정을 괴롭게 묵새기고있었다.

드디여 천령배가 작별의 인사를 올리고싶어 그의 품에서 떨어져 허리를 굽히다가 비칠거렸다.

조봉암이 얼른 부축여주며 당부하였다.

《령배! 어데 가건 무슨 일을 하건 도탄에 빠진 겨레를 잊지 말라구!》

《선생님! 그 말씀 제 페부에 새기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저는 사지판에 선생님을 두고 가는게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렬차는 석별의 정에 목이 멘 그들을 떼여놓고 남쪽으로 멀어져갔다.

조봉암은 시야에서 렬차가 사라지자 갑자기 현기증이 와서 비칠거렸다. 입새로 김빠진 소리가 시름겹게 새여나왔다.

《령배도 떠나갔구나.》

자기 몸의 한 부분처럼 아끼고 사랑해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기 품을 떠나는것이 더없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떠나는 리유들이 각각이지만 그들을 끌어안을수 있는 덕망과 도량과 힘이 딸리는것이 주되는 리유일것이라는 생각이 요새 조봉암의 흉중에 아프게 박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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