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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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선거대책위원회가 수송국민학교의 구석방에서 긴급히 열렸다.
진보당추진위원회는 어제 저녁 밤샘을 해가며 도시의 중심부인 이곳에 선거대책위원회본부가 자리잡도록 하였다.
그것은 이제부터 선거운동을 본격화하여야 하겠는데 진보당추진위원회청사나 조봉암의 집은 도시의 외곽에 있으므로 여러가지로 불편하였던것이다.
마땅한 건물을 임대받는것이 헐치 않았다.
내무부에서 벌써 진보당이 선거거점을 서울중심에 옮기려 한다는것을 냄새맡았던것이다.
도시중심부에 있는 여러 기관들과 기업체들에 진보당에 절대로 건물을 임대하여주지 말라는 밀령이 내려가있었다.
그런데 내무부의 지령에 분격한 수송국민학교의 젊은 교장이 제발로 진보당추진위원회를 찾아왔다.
그는 내무부쪽에서 은근한 압력을 받은데 대하여 폭로하면서 자기네 학교에 비여있는 교사가 있으니 무료로 사용해도 된다고 하였다.
교장은 자기는 이미전부터 진보당의 선거공약을 지지하여왔다고 하면서 뒤날에 이번 일로 교장자리에서 쫓겨난다면 아예 진보당에 들어가 당활동에 참여하겠다고 단호하게 소신을 밝혔다.
윤기중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우선 학생들의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구석진 곳에 있는 세개의 교실을 선택하여 여러개의 간벽을 세우고 선거대책위원회의 각 부서들이 자리를 잡도록 하였다.
수송국민학교에서 열린 첫 회의에는 선거대책위원회와 진보당추진위원회 간부들과 함께 서울의 각 신문사의 기자들도 초청되였다.
회의에서는 신익희의 급서와 관련한 새로운 정세가 론의되고 당론이 수정되였다.
조봉암이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대신 《부통령》후보로 나선 우달수를 사퇴시키고 민주당측 후보인 장면을 《부통령》공동후보로 지지하기로 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윤기중은 고병직에게 전화를 걸어 회의결정을 통고하면서 실무토의를 위해 회담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이미 미국대사 다울링에게서 단단히 침을 맞고 온 고병직은 랭랭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우달수후보의 사퇴는 환영할만 한 결단으로 평가합니다.
헌데 난 지금 해공선생의 장의식과 여러가지 후속처리문제가 산적되여 바쁘므로 수일안으로는 만날수가 없소.》
《바쁜 일이 있어도 이보다 더 바쁜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이제 선거일이 한주일 남짓이 있는데 아직도 후보문제가 어정쩡하니 이렇게 해서야 야당공조가 실현되겠습니까?》
윤기중도 고병직의 태도에 부아가 나서 짜증을 내며 록록치 않게 따지였다.
《하여튼 장의식이야 치러야 될게 아니요?》
《좋습니다. 대표선생이 시간을 낼수 없다면 당대표의 전권을 위임받은 인물을 내세워주십시오. 합의할 문제가 많고 시간을 다툽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가요? 그쪽에서는 그쪽대로,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하면 될게 아니요.》
늘어진 어조로 천연스럽게 둘러치는 고병직의 대꾸질에 윤기중은 그만에야 자제력을 잃고말았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거요?! 야당공조는 깨버리자는거요?!》
쌍겹눈에 불줄기같은것이 번쩍이더니 그 어져보이던 얼굴이 갑자기 격노한 사자마냥 무섭게 일변하였다. 이것은 그저 넘길수 없는 문제였다.
야당공조야말로 현 단계에서는 조봉암의 압도적인 당선을 보장할수 있는 유일한 담보이다.
언제나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당의 중임을 차질없이 맡아오는 윤기중은 거대한 정치적사변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이 시각에 점잔만 뺄수 없었다.
윤기중은 이기죽거리는 고병직의 살진 상판을 답새기듯 송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도대체 민주당은 어떻게 하자는거요?! 당신네는 량심이라는게 쪼각조차 없는 사람들이구만!》
《어, 간사장이 너무 천진하고 정세판별력이 없구만. 원래 량심이라는건 벼슬길이 막혀버린 시골유생들이나 장사밑천 놓친 장사군들이 입에 올리는 흔해빠진 낱말이요. 량심이라는 물건짝은 정치가에게는 더구나 아무런 쓸모도 없는 치레거리라는걸 알아야지. 정치가들이 앞주머니에 차고다니는건 량심이 아니라 리해관계란 말이요.》
고병직은 퇴매한 훈계로 대답을 주고는 인사도 없이 무례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윤기중은 노상 머리에서 떼지 않아온 중절모도 쓰지 않은채 노기가 충천해가지고 민주당사로 차를 몰아갔다.
민주당사 접수실에는 진보당사람은 일체 받지 말라는 당사무처의 지시가 이미 떨어져있었다.
윤기중은 늙수그레한 접수원을 상대로 목에 피대를 세우고 언쟁까지 벌렸으나 끝내 민주당대표와 담판을 하기는 고사하고 코빼기도 못 본채 돌아서고말았다.
이것은 민주당의 배신을 공공연히 알리는 일종의 선언이였다.
야당공조가 깨여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미 곽상훈이 조봉암에게 예고했던대로 민주당지배층은 진보당을 외면했을뿐아니라 점차 반기까지 들고 덤벼들었다.
이날 저녁 민주당선거위원회는 대변인을 내세워 자기 당의 통제속에 있는 서울의 일간신문들을 통하여 야당공조를 겨냥한 첫 포문을 열었다.
《우리 민주당은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한결같은 충의로 다시 대통령후보를 지명하여 싸우고저 했으나 법적불비로 아쉽게도 그 길이 두절되였다.
따라서 본 당 이외의 후보들에 대하여 그 정치적성향이나 로선으로 보아 어느 편도 지지할수 없으므로 부득이 이번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로써 민주당의 정강을 구현하려던 당론관철은 후일로 미룰수밖에 없다.》
다음날 조간신문들에는 당의 두세번째 서렬의 인물인 탁준의의 보다 배신적인 담화가 발표되였다.
《민주당은 체질상 야당측의 공동후보로 부상되여있는 조봉암씨를 지지할수는 없다. 따라서 리승만후보를 지지하는수밖에 없다.》
탁준의의 담화까지 발표되자 정계는 물론 세상여론이 죽가마끓듯 했다.
제일먼저 소란스러워진것은 민주당내부였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곽상훈은 즉시로 소장파인물들의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야당공조를 겨냥한 도전자들의 배신행위를 강도높이 규탄하였다.
《이는 아직 그 체계가 무산되지 않은 두 당의 련합에서 우리 당의 상대에 대한 모욕이다. 동시에 당의 결의에 대한 란폭한 무시이다. 민주당의 도덕성이 이렇게도 경박하고 좀스러워서야 되겠는가. 이것을 분당행위로 제기하고 엄격한 당적제재를 가해야 한다. 즉시 무조건적인 진보당과의 회담에 나서서 공개적으로 당의 립장을 밝히라.》
곽상훈의 주장에 고병직은 코웃음으로 응수하였다.
고병직과 탁준의지지세력에게는 벌써 다울링의 요구와 흉계가 관통되여있었다. 그들은 조봉암의 경력과 로선을 걸고 조봉암에 대한 지지는 민주당에 대한 배반이라고 꺼꾸로 야당공조인물들을 협박하고 비방하였다.
민주당이 선거자들의 의지를 배신하고 리승만을 지지하고있다는 풍설은 이내 남조선의 도시들과 농촌을 휩쓸었다.
민주당사로 련일 수백통의 항의편지가 날아들었다. 각지에서 항의단들이 모여들어 민주당사를 에워쌌다.
야당공조가 흔들리자 두 당의 련합을 추동하여 두 당사이에 가교를 놓아주고 촉매적인 역할을 하여온 무소속의 정계, 사회계인사들과 《국회》의원들이 련일 두 당의 대문을 두드렸다.
아직 병원에 있는 천령배도 너무 통분하고 안타까워 민주당계의 중진인물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야당공조를 력설하였다. 천령배는 원래 정계인물들속에서 관심인물로 되여있던지라 누구나 공명정대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그의 말을 무겁게 들어주군 하였다.
그러나 야당공조문제를 놓고서는 민주당의 보수계인물들은 이미 고병직으로부터 단단히 다짐을 받은터이라 응해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지어는 우달수의 후보사퇴로 크게 진보당의 덕을 입게 된 민주당의 《부통령》후보 장면까지도 량심과 체면을 따지고 드는 천령배에게 이렇게 뻔뻔스럽게 뇌까렸다.
《나도 민주당의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니 당지도부의 결정을 따를수밖에 없소. 그러나 나는 례의상 조봉암씨에게 지지표를 바치겠소.》
그럴수록 조봉암은 진보당선거대책위원회로 하여금 여러차례 성명을 발표하여 민주당이 야당공조를 위한 회담에 응해나설것을 호소하게 하였다.
안팎으로 압력을 받게 된 고병직과 민주당지도부는 다울링의 지시밑에 탁준의를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구성하여 서정후를 수석대표로 하는 진보당대표단과의 회담에 나오게 되였다.
두 당의 회담은 민주당사에서 진행되였다.
서정후와 함께 우달수가 회담에 참가하였다.
여기에 연경이도 대표단 서기의 자격으로 말석에 앉아있었다.
연경이는 대표로 나선 민주당인물들을 보자 회담의 결말이 어렵지 않게 예상되였다.
가죽잠바를 걸치고 나선 탁준의의 좌우에는 신통히도 야당공조에 극성스럽게 반기를 들었던 인물들만 거드름스럽게 앉아있었던것이다.
그들의 표정과 자세에는 하나같이 마치도 빚지러 온 채무자를 대하는것처럼 거만하고 조롱기가 다분히 풍기고있었다.
서정후가 먼저 앉은자리에서 신익희와 조봉암사이에 있었던 여러차례의 비공개회동에 대하여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강조하였다.
《민주당은 자기의 립장을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밝혀주기 바랍니다.
첫째, 당수회동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귀측이 의연히 계속 준수할 의향이 있는가?
둘째, 지금 귀 당안에서 여러가지 론조의 립장이 제기되고있는데 어느것이 민주당의 당론인가?
셋째, 야당공조를 위하여 민주당은 실질적인 대책을 취할수 있는가?》
탁준의는 서정후의 발언이 시작될 때부터 시종 두툼한 눈덕을 내리붙이고 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는 서정후가 발언을 끝내고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문 후에도 그냥 부동의 자세로 눈을 감고있다가 불시에 눈을 뜨며 도전적으로 이렇게 반문하였다.
《서옹, 내 좀 물어볼게 있습니다.
첫째, 진보당은 자기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서는 조봉암후보를 당선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둘째, 우리 당의 양보는 어느 계선까지 기대하는가?》
《그건 참 괴이한 질문이요.》
서정후가 동문서답식의 물음에 대번에 팩해서 탁준의의 유들유들한 상판을 노려보았다.
탁준의는 호박같이 둥글둥글한 상통에 엷은 웃음발을 지은채 매끄럽게 따지고 들었다.
《서옹의 답변을 듣고야 대답하겠습니다.
어디 들어봅시다. 귀 당에서는 반드시 우리 당의 양보와 후원을 받아내야 자기 후보를 당선시킬수 있는가? 우리 당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똑똑히 빠개주시오. 피차에 마주앉은 이상 속을 내놓아야 건설적인 합의가 이루어질수 있지요.》
그때 서정후의 옆에 앉아 상대방대표들을 주의깊게 살피고있던 우달수가 입을 열었다.
《탁준의선생, 내가 답변하리다.》
말문이 막혀 잦은 기침만 깇고있던 서정후는 우달수의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우직하기로 메돼지같은 탁준의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은 때부터 잔뜩 긴장되여있던 서정후는 갑자기 들이대는 그의 말장난에 사실 말문이 막혀있었다.
우달수는 명석한 두뇌로 탁준의의 말뒤에 숨어있는 엉큼한 저의를 즉시 간파하였다.
만약 서정후가 민주당의 도움을 꼭 받아야 조봉암이 당선될수 있다고 하면 그 주제에 선거에는 왜 출마하였는가고 마음껏 비양거릴것이다.
반면에 진보당의 힘으로 능히 당선을 기대할수 있다고 하면 그렇다면 왜 구태여 민주당에 손을 내미느냐고 회담을 끝내려 할것이다.
탁준의가 쉽게 도망칠수 없도록 앞뒤문을 막아야 할것 같았다. 이자들에게 언질을 줄수 있는 명백한 대답은 피하는것이 회의에서 주동을 틀어쥘수 있는 상책이다.
원칙을 가지고 다불려야 한다.
《오늘의 회담은 선거결과에 대한 의혹으로부터 제기된것이 아닙니다. 지금 야당의 지지자들은 야당공조에 대한 두 당 지도부의 립장 특히 민주당의 립장에 대하여 명백히 알고저 합니다.
우리 당은 이미 내외에 그에 대한 립장을 명백히 밝히였습니다.
그런데 귀 당에서는 해공선생의 급서후에 서로 엇갈리는 주장들이 나오고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귀 당의 립장을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당사이에는 양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두 당사이에는 당수회동에서 합의된 계약이 있으며 그에 따르는 두 당의 의무만이 있을뿐입니다.
우리는 두 당이 당수회동에서 자기 당에 지워놓은 의무를 변함없이 리행할것입니다. 그 실례가 바로 부통령후보의 주동적인 사퇴입니다.
하지만 우리 당은 우리측의 양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상대측을 일방적으로 리롭게 하는 양보가 아닙니다. 의무의 리행입니다.》
우달수는 마디마디에 력점을 찍으며 탁준의의 음흉한 도전을 즉석에서 분쇄하여버렸다.
탁준의는 반격할수 있는 구석을 노리다가 끝내 그 머리통을 쥐여짜야 신통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지 뒤자리에 앉아있는 모사와 몇마디 수군거리고나서 20분간 휴회를 제기하였다.
회담을 조기에 결렬시키려고 꾀하던 회담전술이 더 구사해볼 여지가 없이 우달수의 여유작작한 공세에 파탄되자 새로운 트집거리를 만들어내야 하였던것이다.
탁준의의 족속들이 면담실에서 황황히 퇴장하자 서정후는 우달수의 손을 덥석 잡으며 진심으로 치하하였다.
《이 사람아, 용케 빠졌네. 그녀석이 그따위 수작으로 덤벼들줄을 누가 알았나. 난 사실 눈앞이 새까매졌댔네. 빈손으로 돌아가면 당수앞에서 면목이 설텐가?!》
《아직 탕개를 풀어놓을건 못됩니다. 저놈들이 이번에는 아예 돌아앉자고 어거지를 부릴겁니다. 그놈들의 도발에 걸려들지 않도록 해야 할것 같습니다.》
우달수는 서정후의 산골물같은 성미가 념려되여 주의를 주었다.
《내 조심하겠네. 이제부터는 임자가 다 맡게. 내 머리로는 안되겠어. 너무 늙었거던.》
서정후는 흔연하게 우달수에게 전권을 위임하였다.
20분후에 다시 나타난 탁준의는 저으기 의기양양한 기색이였다. 걸상등받이에 허리를 붙이고 제빠듬히 앉아있는 그의 뱁새눈에도 여유있는 웃음이 흐르고있었다.
그는 회의를 속개하겠다고 선언하고는 첫 발언을 하였다. 그가 제기한 문제는 너무도 뜻밖이고 파렴치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지금 귀측에서 조봉암당수가 공동후보로 나선데 대하여 당수회동의 합의를 줄곧 강조하고있습니다. 그 테두리안에서 오늘의 회담도 계속해나갈 의향을 보이고있는데 난 사실 지금까지 그에 대한 아무런 문건기록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생뚱같은 트집에 서정후와 그의 곁에 앉아있는 우달수마저 아연해졌다.
어느새 날래게 가방에서 두툼한 문건철을 꺼내든 연경이가 서정후곁으로 다가와 낮은 소리로 귀띔하였다.
《당수회동때 해공선생의 비서와 제가 정리해서 수표를 남긴 회담기록입니다. 이것은 복사문건인데 원문은 민주당에서 건사하고있을겁니다.》
《그래?! …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탁준의가 그 소리를 여겨듣고 뻔뻔스럽게도 늘어빠진 어조로 길게 말꼬리를 뽑았다.
그러자 연경이가 이번에는 그를 말끄러미 쳐다보며 침착한 어조로 설명하였다.
《그때 해공선생님은 선거유세도중에 자기 신상에 변고라도 생기면 진보당 당수가 자기를 대신해야 한다고 주동적으로 제의하였습니다. 그리고 회담기록에도 남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연경이가 한마디한마디를 씹으며 상대를 빠져나갈수 없이 얽어매놓자 탁준의는 상판이 원숭이볼기짝처럼 벌개서 잠자코 있다가 《처음 듣는 소리다-》하고 되뇌였다.
너무도 비렬한 탁준의의 궤변에 속에서 분기가 부걱부걱 괴여오른 서정후는 방금전에 모든것을 우달수에게 일임한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 문건철을 들어보이며 열을 올렸다.
《무슨 황당한 생트집이요? 이자 방금 우리 서기의 말을 들었겠지요? 샘물같은 처녀앞에서 그런 허튼소리하기 부끄럽지 않소?! 당신들은 도대체 량심이라는 물건짝은 어데다 저당잡히고 사는거요? 난 우리 연경서기의 설명에 더 보탤게 없소. 나도 당수들의 비밀회동에서 내 귀로 들었던바요. 당신도 한번 보우.》
서정후는 탁준의의 앞으로 문건철을 신경질적으로 홱 밀어놓았다.
탁준의는 그것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를 이미 예견하고 불을 걸었던것이다.
탁준의는 심술스럽게 제잡담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문제시하게 되는것은 그 당수회동의 대표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거 역시 동문서답이요, 생트집이다.
《당수회동의 대표성이라니?! 아, 거야 량측에서 당수가 참가하지 않았소. 그쪽에서 장면씨가 나오게 되였는데 갑자기 몸져 누웠다고 나오지 못했고… 우리측으로 말하면 당수와 내가 참가하였소.
그때 량측에서 다 당지도부에서 결정된 문제를 통보하고 합의를 보았소.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니 그건 도대체 무슨 뜻이요?! 당수들이 모여서 합의를 보면 그게 대표성이지 무슨 놈의 말장난이요?》
서정후가 사실을 가지고 따지고 들자 탁준의가 역증스럽게 되받아넘겼다.
《회동에 참가했던 우리측 당수는 이미 고인이 되였소. 누가 그 자리에서 합의된 문제를 책임질수 있나 하는 문제요.》
《뭣이?! 그러니 이제 회담에서 그 어떤 문제에 합의를 본다고 해도 당신이나 내가 오늘 밤에라도 덜컥 죽는다면 그 역시 대표성을 상실하니 백지화된다는거요? …
차, 이런! 민주당의 대표성이라는게 그렇게도 초보적인 도덕과 질서와 규률이 무시되는것이라면 어떻게 신의를 가지고 합의라는걸 만들어내겠소?
그래 민주당이라는게 도대체 정치단체가 옳기는 옳소? 장사치들도 저들끼리 장사계약을 맺으면 죽으나사나 지켜가는데 정치한다는 정당이라는게 이리도 허술하고 각자가 제멋대로 놀아대서야 무슨 당이고 정치집단이요?
우부위원장, 저 사람들과 당초에 자리를 같이한게 부끄럽소. 우부위원장이 부통령후보사퇴를 제기한것은 당초에 잘못 되였소. 다시 복구합시다. 저 사람들은 그 무슨 일거리를 만들자고 나온게 아니라 만들어진 일거리를 뒤집어놓자고 나온게 틀림없소.》
서정후가 크게 격앙되여 곰방대를 든 손으로 탁준의에게 삿대질을 하였다.
평생을 풍파많은 정치운동의 무대에서 보내온 서정후에게는 기실 무서운게 없었다. 그는 민주당에서 일약 2인자의 서렬에 뛰여오르고 그 기질에 있어서 메돼지같다는 탁준의쯤은 아이취급을 하는 정도였다.
《선생님! 우리는 지금 회담에 나선 대표올시다. 고정하십시오.》
우달수가 급해맞아 타일렀으나 이미 분격을 터뜨려놓은 로인은 자신을 걷잡지 못하고 채수염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하… 서옹, 이거 회담장에서 웬 행악이시오? 상대를 숙맥같이 보는게 아니요? 서옹이 도대체 진보당대표로 오신게 분명하오? 그렇게 해서야 합의는 고사하고 명이나 건지고 돌아가시겠소? 거 뭐, 자중하시오다.》
탁준의가 여전히 눈에 엷은 웃음을 실은채 령감의 속을 그냥 얄밉게 쑤셔댔다.
탁준의네는 방금전에 고병직의 방에서 회담전술을 바꾸기로 급히 합의하였다.
대표단의 활동정형과 회담의 진행과정을 청취하고난 고병직이 사리와 론조를 따져가느라면 수세에 빠져 솟구쳐나오기 힘들므로 서정후의 성격적약점을 리용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리하여 모여앉아 꾸며낸 계교가 서정후의 감정을 계속 자극하여 그가 회담장에서 자진퇴장하도록 하는것이였다. 저들의 계교대로 된다면 야당공조가 깨여질것은 물론이요, 그 책임도 회담장에서 일방적으로 퇴장해버린 진보당에 들씌우게 될테니 일거량득이 아닐수 없었다.
일은 고병직의 엉큼한 의도대로 되여나갔다.
탁준의가 또 한번 천연스럽게 던져온 질책에 서정후는 자존심이 상하자 우달수를 더는 안중에 두지 않고 더욱 목청을 높이였다.
《당신들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겠소. 이 자리에서는 서로간에 맥이 통하지 않는구만.
우부위원장, 돌아갑시다. 여기서 저 사람들과 왈가불가할 의미가 더는 없소.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허리를 굽히고 손을 내민단 말이요?!》
《선생님, 그래도 이 기회에 좀더 론의해보는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두 당의 립장을 조률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달수는 이미 모닥불처럼 확 타오른 서정후의 흥분이 쉽게 꺼지지 않으리라는것을 느꼈으나 이렇게 물러서는게 너무 랑패스러워 서정후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서정후가 타오른 불을 끄기 전에 탁준의가 날쌔게 그 붙는 불에 부채질하였다.
《서옹, 우리는 이 회담에서 밑져야 본전이요. 손을 내밀고있는건 당신들이고 덕을 줘야 할 사람들은 우리들이요. 헌데 주객이 전도되고 덕볼 사람들이 큰소리니 일이 성사되기는 코집이 틀렸구려. 마음대로 하시구려.》
탁준의가 심술스럽게 빈정거리자 서정후는 더이상 버티고있을수 없어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뭣이?! 탁준의! 너 언제부터 그따위 야질거리는 법을 배웠느냐?!
고병직대표에게 전해! 이 서정후가 채찍질하더라구. 민주당도 이제는 제발 자기 체통에 맞게 점잖게 처신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이야. 당신네 대답을 기다리겠소!》
서정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도 민주당의 더러운 악취를 날려버리듯 하얀 두루마기를 툭툭 털며 면담실에서 나갔다.
우달수는 속이 한줌으로 졸아드는듯 한 아픔과 좌절감을 금할수 없었으나 수석대표를 따라 자리를 이는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냥 물러설수는 없었다. 끈을 달아놓아야 하였다. 심술스럽고 철면피한 상대이지만 큰일을 위해서는 거슬려놓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준의선생, 우리 수석대표에 대하여 너무 나무랍게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아무튼 우리는 대의명분을 세워놓았으니 사사로운 감정에는 구속되지 말아야 하리라고 봅니다. 나의 후보사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음… 그 말이 옳소. 그런데 한가지만은 우리사이에 합의를 보기요. 모처럼 열린 회담이 진보당대표들의 일방적인 퇴장으로 결렬되였다는것을 말이요.》
탁준의는 함지박을 엎어놓은것처럼 큰 배를 거드름스럽게 내밀고 앉아서 승리자연한 배포와 희열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주절거렸다.
《결렬이 아니지요. 우리측의 태도표명이지요. 그리고 일방적인 퇴장이 아니지요. 당신들은 벌써 이 회의장에 나타날 때부터 회담의 결렬을 노렸고 의도적으로 그쪽으로 회담을 몰아갔지요. 이것을 명백히 합시다.》
우달수는 랭철하게 상대의 위선적인 립장을 분석하여놓았다.
《피장파장이요.》
탁준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달수가 내미는 손을 건성 잡아주고는 주인으로서의 례의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면담실을 빠져나갔다.
회담결과를 보고받은 조봉암은 아직도 성이 가라앉지 않은 서정후를 타내지 않고 헌헌히 웃었다. 오히려 자기 성미때문에 대사를 그르쳤다고 하는 서정후를 너그럽게 위로하여주었다.
《너무 상심마십시오. 그 사람들이야 원래 막돼먹은 정치간상배들이 아닙니까. 이제 고병직이 그걸 걸고 우리에게 역공세를 벌려올수 있는데 우리는 일일이 대응하지 맙시다. 그저 우리 당은 여전히 문을 열어놓고있으며 민주당이 야당공조에 복귀할것을 바란다는 정도로 내외에 한마디 간단히 발표합시다.
그리고 모두 더이상 기대를 걸지 말고 각자가 제 할 일들을 합시다.》
일은 그들의 예견대로 번져졌다. 민주당은 진보당의 일방적인 퇴장으로 야당공조가 깨지였다고 왁작 떠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야당공조는 종말을 고했다는것을 자기 당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널리 선전하면서 신익희지지표가 조봉암에게로 쏠리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수를 썼다.
민주당은 추모표라는 해괴한 궁리까지 해가지고 어느날 세계의 선거력사상 전고미문의 성명을 발표하여 세상을 웃기고 진보당세력을 경악하게 하였다.
《요즈음 각지에서 고 신익희후보를 추모하는 비통한 심정에서 그에게 투표할 작정인데 어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우리는 그에 대하여 각자 자유권에 속한다고 대답하는수밖에 없다. 그러한 투표는 무효표라고 할지라도 불법은 아닐것이며 정치적으로 볼 때 일종의 의사표시가 될수 있다.》
추모표란 량쪽 후보에게 반대도 지지도 하지 않고 신익희의 이름을 적어 선거함에 넣는 선거표를 말하는것이였다.
민주당은 이렇게 발표함과 동시에 즉시 산하조직들에 리승만에게 지지표를 바치되 정 싫으면 신익희의 이름을 적어 선거함에 넣을것을 당명으로 엄하게 지시하였다.
이것이 공개되자 진보당지지자들은 격분하여 민주당거점들에 몰려들어 분노를 터뜨리고 조소하였다.
《추모표라는건 또 뭐냐?! 추모표라는것도 있다드냐?!》
민주당의 지지자들중에서는 자기 당중앙의 배신행위에 격분하여 당에서 나가거나 아예 진보당쪽으로 돌아앉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달수와 진보당중진들이 민주당과의 협의를 위해 그냥 움직이고 무소속중립파정치인들이 무리지어 민주당사를 찾아갔으나 고병직은 자기 당청사의 철문에 빗장을 단단히 지르게 하였다.
아예 만나지 않는것이 상책이라고 산하당조직들에도 지시를 떨구었다.
조봉암은 측근들에게 민주당에 대한 기대는 걸지 말되 관계를 끊지는 말라고 이르고 서울을 떠나 선거선전으로 각지를 돌아다녔다. 민주당의 배신은 이미 예상했던바였으므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세력의 도전이 커갈수록 반드시 선거에서 이겨 민중의 기대에 보답해야 되겠다는 의지가 천백배로 불타올랐다.
후보직을 내놓은 우달수가 조봉암의 선거선전에 합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