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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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은 산에서 내리자 조카를 앞세우고 강화도의 어촌마을과 읍거리를 돌아보았다.
어디 가나 못살겠다 아우성이요, 갈아보자 윽윽이다.
강화섬도 눈여겨보니 일제때보다 썩 변화가 보였다. 헌데 그 변화가 그때보다도 못하게 달라진것이다.
해방을 맞아 이젠 백성도 살맛이 있는 세상이 왔다고 춤추고 눈물짓던게 어제같은데 섬은 더욱 한산해졌다. 구석구석 인생막바지의 궁핍이 눈을 찌른다.
변화의 물결이 느껴지는것은 읍거리는 물론 어촌마을에도 유흥시설이 늘어난것이다.
여기저기에 군대와 경찰이 늘어나고 경치좋은 곳에는 철조망과 포대들과 보초막들이 촘촘히 들어앉았다. 어린시절에 발목이 시도록 뛰여다니던 해변가와 울창하던 수림을 꿰지른 군용도로우에 꺽두룩한 미군보초들이 카빈총을 건들거리며 서있었다. 껌을 질근거리다가도 주변에 사복입은 사람들이 얼씬거리면 호각을 획획 불며 총부리를 돌려댄다.
그만큼 섬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줄어들어 벌어먹을데가 없다고 한숨이다.
조봉암은 찾아올 때와는 달리 돌아갈 때에는 선장실의 창가에 덤덤히 틀고앉아 멀리 수평선에 눈길을 박은채 입을 다물고 무거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마치도 검푸른 주단을 펴놓은듯 한 바다의 한끝은 하늘과 맞붙어 희푸릿한 운무에 흐려져있다.
봄날의 다양한 해볕에 재글거리던 잔잔한 물결이 배머리가 들이닥치면 화닥닥 놀라 좌우로 달아나면서 흰 물거품을 폭죽처럼 뿜어올린다. 뭍이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점점 갈기를 더 크게 쳐들고 배길을 막아선다.
거창한 바다에서는 마치도 함지박같이 작고 초라해보이는 려객선이지만 둔탁한 기관소리를 신음소리처럼 쉴새없이 내지르며 지꿎게 쫓아오는 물거품을 선미에 달고 뭍을 향해 힘겹기는 해도 근기있게 달리고있었다.
지금 조봉암의 눈앞에는 모처럼 취해볼수 있는 바다풍경이 아니라 떠나온 고향의 어수선한 정경과 그속에서 고달프게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들이 떠나지 않고있었다. 고향땅에서 보고 들은것들이 그를 새롭게 흥분시키고 격노하게 하는것이였다.
그는 앙양된 감정을 눅잦히며 보다 랭철한 리성의 자대로 1950년대를 재평가하고 진로를 모색하였으며 당면한 선거와 관련한 전략적대안을 검토하고 확정하여보았다.
몸을 담아온 생활의 보람, 한생을 다 바쳐온 조국이 지금처럼 음울하고 불쌍하게 느껴진적이 일찌기 없었던것 같다.
래일이 없고 전도가 없기에 더욱 가슴이 아리고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나라의 정치나 경제나 도덕생활이나 총체적인 파국에 허덕이고있다.
나라도 백성도 그리고 권력층도 그 어떤 목표도 전망도 락관도 실종된채 어둠속의 거친 풍랑우에서 표류하고있다.
전쟁와중에 이러저런 요인으로 상처입은 뭇인생들이 아직도 쓰린 가슴을 부여안은채 억울함에 눌리워 울고있다.
경제는 아직도 허덕이고 농어촌까지 일자리없이 떠다니는 실업대군이 날을 따라 늘어나는데 통치자들은 백성구제대책은 안중에 없이 백성의 불만과 반항을 억누르기 위한 집권연장의 수단으로 그냥 《멸공》과 《북진》나발만 열심히 불어대고있다.
서울에 가면 웬만 한 집에서는 촌에서 한입이라도 덜고저 올라온 젊은 녀인들을 식모나 가정부라는 명목으로 데리고있다.
도시는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으로 되였다. 정치나 경제에 풀기 난해한 문제가 많은데다가 정신의 황페와 문화의 타락은 더욱 심각하다.
농어촌의 서민들은 그래도 아직 몽득이나 병수나 바위쇠처럼 푸수한 인정이라도 남아있건만 서울을 비롯한 도시들에는 요새 언론들에서 무수히 떠드는 《악의 꽃》이 어지럽게 피여나 인간성을 마멸시키고있다.
권력기관의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억압은 극도에 이르렀다. 불의에 도전하고 싸우려는 대중의 건강한 정신력도 더욱 희미해지고있다.
배웠다고 하는 도회지의 청년들도 미래를 잃고 청춘이라는 기개와 넋이 없이 환락과 무위도식의 심연속으로 빨려들고있다.
미국에서 쓸어드는 헐리우드영화나 쫓아다니는 그들에게는 이미 이 땅의 혼은 사라진지 오래고 회의적이며 방관적이며 퇴페적인 풍조에 깊이 만연되여가고있다.
서울의 거리들에 두세집 건너 다방과 당구장이 생겨나고 밤이나 낮이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정신이 빈곤해지고 문화가 경시되니 물질숭배풍조가 창궐하고있다. 어떻게든 무슨짓을 하든 잘살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법치》란 말뿐이다. 극우반공리념을 장식하는 간판에 불과할뿐이다.
각종 리권단체나 협회라는것들도 그렇고 지어 농민회요, 교원조합이요 하는것들도 사소한 독자성도 용납되지 않는 어용단체로 되여 리승만의 눈치보기만 하고있다.
이러한 정치풍토, 정신의 풍토에서 이번 선거도 그 결말이 뻔하다.
최금룡이나 그의 아버지 최기오나 일부 측근들까지 선거불출마를 권하는게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민중의 아우성은 저렇게 높아가고있지 않느냐. 못살겠다고, 갈아달라고 이제야 겨우 걸음마를 떼고있는 진보당에 하소연하고있지 않는가. 외면할수가 있는가. 더이상 입을 다물고있을수는 없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대중의 의식을 한걸음 비약시켜야 한다. 변화를 바라는 피해받고 사는 민중의 울분을 진보당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공개하여야 한다.
그러니? … 승리를 위하여서는…
조봉암의 사색은 사회의 전반에 대한 분석과 평가로부터 점차 당면한 전술적문제로 서서히 좁혀들었다.
리승만을 꺼꾸러뜨리자면 한편으로는 미국을 견제하고 다른 편으로는 반리승만세력을 하나로 묶어세워야 한다.
어차피 그걸 위해서는 남조선통치권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권을 이루고있는 민주당과 제휴할데 대한 문제를 관철시켜야 한다. 민주당세력이라는것이 썩은 내가 물씬 풍기는 정치간상배들과 지주, 자본가들의 리권을 철저히 대변하고있는 집단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쪽에 힘을 몰아주는것이 리승만을 제발 들어내달라고 절규하는 저 불쌍한 민중의 요구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책이다.
그러나 바로 전날에 열렸던 진보당추진위원회에서 제기되였던 이러저러한 반론들이 떠올라 머리가 무거워졌다.
이제 또 벌리게 될 부서장들의 비상회의에서는 아마도 그러루한 주장이 되풀이될것이다. 그들을 설복한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을 설복하지 못한다면 민주당과의 련합은 성사될수 없다. 야권이 둘로 쪼개지면 독재자를 꺼꾸러뜨릴수 없다.
조봉암은 바다에 눈길을 박은채 그냥 자기 생각에 골몰하였다.
마침내 강화섬을 떠나 련이어 막아서는 물결을 헤쳐온 려객선은 인천부두에 고동소리를 길게 울리며 들어서자 이내 닻을 떨구었다. 여러날 갈래많게 표류하던 조봉암의 립장에도 닻이 내렸다.
(민중이 살아가는 길이 따로 없다. 어서빨리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하여 무익한 재력의 탕진을 종결하고 모든 힘을 경제진흥에 돌리는 길이다. 통일만이 민족이 살아나가는 길이다.
그러자면 다른 수가 없다. 통일의 걸림돌부터 쳐갈겨야 한다. 리승만이나 미국쪽에서 입방아를 어떻게 찧건 진보당은 평화통일의 구호부터 더 높이, 더 굳건히 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물론 사회전체를 바닥채로 변혁해야 한다. 당면한 선거전에서는… 진보당은 이제 민중의 절절한 호소에 대답을 줄것이다. 진보당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전민중적리해관계를 위해 두어걸음 후퇴할수도 있다.
가장 가능하고 확실한 한걸음의 전진을 위하여!)
그는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배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