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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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그리 높지도 않은 바다길을 느릿느릿 힘겹게 미끄러져가는 려객선은 저녁무렵에야 강화섬에 이르렀다.

조봉암과 연경은 선장의 곡진한 청에 이끌려 이 강화섬에서는 그만하면 유족한 멋이 풍기는 선장의 집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을 일찍 치른 그들은 섬의 북쪽기슭에 있는 자그마한 바다가마을로 갔다.

거기에는 조상대대로 내려온 선친들의 묘소가 있고 맏형의 자식들이 살고있었다.

그들은 태를 묻은 섬마을에서 크지 않은 감나무밭을 가꾸고 바다가에서 매생이 하나를 가지고 굴도 따고 미역을 거두면서 가난하게 살아간다.

조봉암은 여기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거쳤다. 일본으로 고학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를 도와 지주집에 가서 삯일을 해주고 뙈기밭을 일구어 조와 수수도 심고 배를 타고 고기도 잡으며 닥치는대로 일하였다.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이영이 고삭은 초가집들이 무덤같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기와집이라고는 마을복판에 크게 부지를 잡고 웅크리고 앉은 지주족속들의 집 두어채뿐이다.

조봉암이 고향을 뜬지가 마흔해도 넘어되지만 도간도간 나무이영을 하고 무슨 술집이라고 간판을 내붙인 집들이 들어선것을 내놓으면 하나도 달라진게 없다.

해방전이나 지금이나 세월의 뒤바뀜과는 등지고 사는듯싶은 고향마을의 초라한 풍경이 향수에 젖어든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그는 맏조카의 집에 들려 인사를 나눈 다음 인차 조카와 함께 마니산기슭에 있는 조씨가문의 산소에로 향하였다.

조부모와 부모의 합장묘 상돌우에 준비하여온 술과 마른음식들로 제상을 차려놓고 절을 한 다음 마지막으로 안해의 묘지에 갔다.

무덤들은 하나같이 알뜰하게 손질되여있었다.

맏조카가 조씨가문의 장손구실을 열심히 하고있다는것이 무덤앞에 놓인 비돌이나 상돌이며 일매지게 씌워놓은 금잔디를 보고도 쉽게 알수 있었다.

듬성듬성 잎사귀가 바늘같은 전나무들이 위병들처럼 서있다. 이태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것 같다.

《조카, 고맙네. 난 도와주지도 못하고 평생 떠살이만 해오는데… 조카앞에서 참 면목이 없구만.》

조봉암이 자기 안해의 봉분앞에서 북두갈구리같은 조카의 손을 쓸어만지며 물기어린 목소리로 사례하였다.

《삼촌, 안할 말씀이예요. 조상의 선산을 지키는거야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죽산집 일이라고 하면서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도와주지요. 저 전나무들도 지난해 가을에 동네사람들이 나서서 마니산에 가서 떠다가 옮겨심었답니다.

나는 이따금 신문에서 삼촌이 통일세상, 민중세상 만들려구 열심히 뛴다는 소식만 들어두 시름이 없어져요. 어서빨리 민중세상만 만들어주세요. 나는 삼촌이 언젠가는 민중이 주인질을 하는 세상을 만들것이라고 믿어요.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혈붙이처럼 아껴주구 가난뱅이들을 위해 애쓰는 삼촌은 우리 강화섬의 자랑이라구 법석들 하지요.

난 삼촌을 생각하면 힘든줄도 모르겠구 걱정거리도 잊혀지군 한답니다. 어서빨리 백성들이 잘사는 세상을 가져다주세요. 우리 강화섬사람들은 삼촌만 믿어요.》

《나를 믿는다구?…》

조봉암은 조카의 진정에 가슴이 쩡해왔다.

자기에게로 향한 고향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이 산악과 같이 너무도 거창하게 안겨드는것이였다.

《그럼요. 아버지도 늘 얘기했어요. 삼촌은 한다면 해내는 대틀이라구요.》

《그래?! 음- 난 형님께 참 빚진게 많다. 사실은 형님이 온곱지 못한 나때문에 속을 많이도 썩였지. 그리고 대틀로 말하면 형님이 대틀이였어.

어렸을 때 난 장난이 남달리 세찼지. 너의 아버지는 평생토록 나를 위해 고생을 많이두 했어. 그래도 언제 한번 내색을 하지 않았어.》

조봉암은 목메이는 감회에 잠겨 이렇게 말하였다.

조봉암의 고백대로 그는 어린시절에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누구도 당하지 못하는 장난꾸러기요, 말썽꾸러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장난에 팔려 책보를 싸둔채로 놔두었다가는 다음날 그대로 어깨에 질끈 동여매고 덜렁덜렁 학교로 가군 하였다.

대를 이어 내려온 까막눈의 집안이라 조봉암이만은 식자있는 사람이 되길 바래서 그리도 왼심을 써왔던 부모와 형은 아예 실망하고말았다.

그렇게 놀음에 빠진 조봉암이가 성적이 높을리 없었다. 형한테 붙들려 노상 머리를 쥐여박히군 하였다. 다행으로 기억력이 좋고 말솜씨가 있었던 덕에 소학교와 2년제농업보습학교를 남들보다 성적이 그닥 떨어지지 않고 졸업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장난세찬것은 여전하였다.

학교에서는 창유리가 박살이 나면 조봉암이 언제 왔더냐고 물었다. 어디서 학생이 엉엉 울고있어도 조봉암한테 얻어맞았는가고 물을 정도였다.

이쯤되니 동네장독이 깨져도 조봉암의 집에 와서 야단을 쳤는데 십중팔구는 조봉암이 친구들을 휘동해가지고 벌려놓은짓이였다.

하루건너로 학교선생이나 이웃들이 찾아와 《봉암이가 우리 애의 머리를 깼소.》, 《우리 집 돌담을 허물었소.》, 《교실창문을 부셔놓았소.》 하고 송사질을 하였다.

그러면 마음착한 아버지는 나무는 어려서 휘여야 한다는데 이제는 둘째가 사람되기 글렀다고 입만 쩝쩝 다시였을뿐 별소리가 없었다. 그대신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야단을 부리고 형이 밖으로 달아나는 동생을 붙잡아 회초리로 종아리를 쳤다.

형이 다시 그런짓을 하겠느냐고 매끝에 엄포를 놓으면 조봉암은 대답없이 고개만 한번 끄덕했는데 하루도 못 넘겨 다음날에는 또 일을 저질러놓고 형의 매를 맞군 하였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둘째가 저질러놓은 일때문에 학교와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사과를 하고 변상을 하느라고 가난한 살림을 갉아내군 하였다.

그러던 조봉암의 안팎모양새가 놀라우리만치 달라지게 되였다.

그가 열일곱살 잡히던 해 이른봄이였다.

그때 강화섬에서는 독립운동가들과 사회주의운동가들이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지도밑에 반일계몽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여기에 조봉암도 망라되여 계급에 대한 리해도 가지고 10월혁명소식도 듣고 래일에 대한 희망도 가지면서 인격이 바로서기 시작했다.

그럴즈음에 3. 1인민봉기가 터졌다.

강화섬의 주봉인 마니산에 홰불을 올리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제타도를 부르짖는 함성이 섬을 뒤흔들었다.

조봉암은 시위대의 맨 앞장에서 주먹을 흔들며 나아갔다.

조봉암은 놈들에게 잡혀 강화섬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지도하던 유봉진이라는 선각자와 한감방에서 옥살이를 하였다.

유봉진은 의지가 굳센 사람이였다.

그는 감방에서도 《독립운동가 유봉진》이라고 크게 죄수복에 써붙이고 징역살이를 하였다. 간수나 감옥장이 그것을 떼여버리려고 달려들군 하였으나 끝내 떼버리지 못했다.

취조장에서도 재판정에서도 왜놈들이 반말을 쓰거나 상스러운 말을 쓰면 일언반구도 응대하지 않고 조선사람의 얼을 지켜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쏘아보군 하였다.

애국적신념과 사나이다운 담력이 드세찬 유봉진의 모습이 조봉암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유봉진의 사상과 기질은 그대로 조봉암에게 이어졌다. 유봉진의 그 결곡한 모습은 철없던 시절과 작별하던 조봉암의 우상이고 본보기였다.

고문과 위협, 추위와 주림, 굴욕스러운 감옥생활일과와 질서는 제멋대로 살아온 농사군자식에게는 하루도 참아내기 어려운 고역이였건만 조봉암은 점차 그를 이겨내고 그 과정에 마음의 키가 우쩍우쩍 솟아올랐다.

유봉진도 왜놈들의 그 어떤 고문과 공갈에도 끄떡없는 조봉암의 범상치 않은 모습에서 전도유망한 선각자의 싹수를 찾아본듯 그에게 남다른 뜻과 신념을 심어주기 위하여 성의를 다하였다.

유봉진은 언제나 이렇게 훈계하였다.

《왜놈을 몰아내는건 우리의 당면목표일뿐이다. 우리도 로씨야와 같은 민중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민중이 잘 먹고 잘 입고, 마음편히 사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공산주의혁명을 하여야 한다.》

어느날 유봉진은 한자도 빠짐없이 외우고있던 맑스의 공산당선언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조봉암은 그 피가 뛰는 구절구절을 통채로 머리에, 심장에 쪼아박았다.

유봉진은 왜놈들의 악랄한 고문으로 끝내 조봉암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때 조봉암은 유봉진의 앞에서 이제부터 자기는 민중의 해방과 행복을 위하여 공산주의운동가로 살아가겠다고 엄숙히 맹세하였다.

실로 감옥생활은 혈기넘치던 젊은 시절의 문어귀에서 조봉암의 평생의 목표와 뜻을 새롭게 세워주고 투사다운 인격의 골간을 다듬어준 인생교련장이기도 하였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의 조봉암은 단순히 일본놈들이 조선사람을 천대하고 멸시하는데 대한 불만과 분노만이 골수에 사무쳐있는 반항아였다.

감옥을 나설 때에는 나라와 민족을 알고 착취받고 압박받는 무산계급이 주인된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확고한 애국애민의 신념을 지닌 공산주의신봉자로 되였다.

그러한 조봉암을 보면서 형은 크게 놀랐다. 오히려 불안해하였다. 입이 무거워지고 행동도 기품이 서고 품행마저 단정해진,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동생의 변모된 모습에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하였다.

뒤날에는 동생의 앞날을 위하여 묵묵히 자기를 바쳤다. 조봉암이 더 공부를 하겠노라며 농사일에서 손을 떼려 할 때에는 고개를 가로젓는 부모들과는 달리 형은 기꺼이 그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그가 서울로, 도꾜로, 상해로, 모스크바로 진리를 찾아 기약없는 만리길에 오를 때에도 피땀흘려 가꾸어낸 감과 어물들을 팔아 로자를 마련하여주고 학비를 보태주기도 하였다.

민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는 정치가로서의 조봉암의 오늘은 참으로 유봉진과 함께 형이 거름이 되고 빛이 되여 가꾸어준것이기도 하다.

그가 평생토록 형에게 준것이 있다면 끊임없는 부담거리들이였다. 그것은 집안사람들의 궁핍과 고달픔을 가증시켜주었을뿐이였다.

구태여 남겨준것이 있었다면 래일에 대한 약속이였다. 일본놈들을 반드시 몰아낸다, 이제 당도 만들고 나라도 세운다, 혁명이 승리하고 무산자의 세상이 온다는 약속이였다.

어떤 때는 조봉암이 형을 앉혀놓고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인터나쇼날이란 무엇인가, 쏘련에서 로동자, 농민들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꿈같은 소리를 한바탕 늘어놓군 하였다.

공산당선언을 뜬금으로 뜨르르 외우기도 하고 《인터나쇼날》노래를 힘차게 불러도 주면서 멀지 않아 로씨야와 같은 사회주의를 건설할수 있을거라며 팔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형은 장난꾸러기였던 동생의 그 희한한 모습에 감동되여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허허… 그래그래! 이왕 나섰으니 끝장을 봐라. 그 무산자세상이라는건 말만 들어도 배가 부르구나.》

순박하고 인정많고 대범하던 형은 끝내 그렇게도 그리던 기쁜날을 보지 못하였다. 민중세상이라는 귀맛좋은 별천지를 꿈으로, 소원으로 남겨둔채 해방의 날을 한해 앞두고 이 양지바른 기슭에 누워있다.

하지만 조봉암에게는 지금도 형이 땅속에서 민중세상을 어서 만들어놓으라고, 그 길에서 주저앉지 말라고 일깨워주고 힘과 용기를 보태주는것만 같았다.

조봉암은 농사일에 절은 형님의 손을 잡은듯 험하게 터갈라진 조카의 마디굵은 두손을 그냥 꽉 잡은채 어머니의 봉분앞에 제상을 차려놓고있는 연경이를 덤덤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상돌우에 구색에 맞게 제상이 차려지자 연경이가 먼저 나부시 앉은절을 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절까지 하고나서 연경이는 다시 일어나지 않고 봉분을 쳐다보았다.

《엄마!》

그렇게 부르니 벌써 연경이는 목이 꺽 메고 눈앞이 뽀얘졌다.

가슴속에 뜨거운 그리움의 정이 꽉 차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정이 다 담긴듯싶은 이 부름.

세상에 어머니란 말보다 더 다정하고 더 살뜰한 말이 있을가.

어린시절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엄마라고 부르며 재잘거리며 깡충거리는 제또래 동무들을 볼 때면 너무도 부러워 눈물부터 그렁해지던 연경이였다.

이제는 어머니가 되여야 할 시절이련만 아직도 연경이는 엄마라는 그 정다운 부름을 시도 때도 없이 입에 올리고싶고 속이 후련하게 부르고싶은 애달픈 심회에 젖어들 때가 많다.

지금도 연경이는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 봉분을 얼쓸어안고 어머니를 부르며 아이처럼 목놓아 울고싶었다.

남모르는 시름과 마음쓰린 고민도 낱낱이 고백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한마디라도 들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머니, 연경이예요. 둘째… 제가 보고싶었지요?》

연경이는 무릎을 잔디우에 박고 입안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머니… 최금룡이라구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전전해에 아버지 모시고 여기로 와서 인사드리던 그 사람… 떠나가버렸어요, 아버지품을… 그래 저도 결심했어요, 헤여지기로… 다신…)

연경이 자기 설음에 북받쳐오르는 오열을 참느라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번에도 최금룡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여기 상돌앞에, 어머니앞에 나란히 섰을것이다.

하지만 최금룡은 깃을 내렸던 보금자리를 털고 홀연히 날아가버렸다. 어쩌면 영원히 이 자리에 오지 못하게 될것이다.

아버지에게는 꺼내놓기 두렵다. 언니에게 역시 자초지종을 그대로 밝히기가 서슴어지는 아픈 사연이다. 무덤속의 어머니앞에 꿇어앉아 아뢰이자니 갑절이나 가슴이 쓰려났다.

(어머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살아계시였으면 벌써 열번도 넘게 애타는 이 마음을 헤쳐놓고 속쓰린 설음을 달랠수 있었으련만… 어머니는 어이하여 우리 자매 남겨놓고 이 바람찬 기슭에 홀로 누워계시는거예요?!

연경이는 그만 설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금잔디를 입힌 봉분에 얼굴을 묻으며 《엄마야!-》 하고 통곡을 터뜨렸다.

조봉암은 잔디를 박박 쥐여뜯으며 태질을 하는 딸에게로 다가가다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연경이는 어머니의 정을 모르고 자라났다. 어머니의 얼굴에 대한 기억조차 없다. 연경이는 태여나서 두해도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얼굴은 조봉암이 소중히 보관하여온 한장의 작은 사진을 통하여 알고있을뿐이였다.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고운 얼굴에 활짝 피는 웃음을 머금은 녀인의 사진이 연경의 침실에 걸려있고 지금 상돌우에도 세워져있다.

조봉암은 슬피 우는 딸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쳐들고 흐릿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카가 온몸을 떨며 엄마를 부르는 연경이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무슨 말을 했던지 연경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헉헉 흐느끼며 봉분뒤에 있는 숲속으로 비칠비칠 걸어갔다.

딸이 자리를 내자 조봉암이 상돌앞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그런데 조카가 와서 앞을 막아서며 조심스러운 어조로 여쭌다.

《삼촌, 삼촌은 옆에 앉아만 계세요.》

산소에 와서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례법을 지키라는 조심스러운 권고다.

안해의 산소에 와서는 남편되는이는 허리를 굽힐수 없다는것이다.

녀자란 남편을 돌보다가 남편을 땅에 묻은 다음에야 저승길에 오르는것이 법도라 한다. 헌데 먼저 갔으니 남편의 절을 받을수 없다는 리유가 선다는것이다. 이러루한것이 애당초 남존녀비의 악습에서 생겨난 법도이기는 해도 조상전래로 굳어져온것이니 누구도 거역할수 없다는것이다.

조봉암은 그 소리에 흠칫 굳어졌다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조카, 이 사람이 누구때문에 때일찍 땅에 묻혔는지 아나? 나를 따르지 않았다면… 내탓일세. 그러니… 조카…》

조봉암의 말은 나직하였으나 드틸수 없는 무게와 혼신의 피를 끓게 하는 절절한것이 있었다.

그것은 가문의 승계자로서 이러루한 일들에 치여 조상이 만들어놓은 가훈과 계률을 엄격히 받들고 지켜가는 조카도 두말없이 비켜서게 하였다.

조카는 삼촌이 삼촌어머니와 따로 마음속얘기를 나눌수 있게 해주고싶어 연경이가 사라진 숲속으로 향했다.

조봉암은 조카가 부어놓고 간 술잔을 상돌에 고여놓고 정성을 다하여 세번 절을 하였다.

《이옥이, 부실한 남편 봉암이 당신께 절을 하오. 당신은 나때문에 너무 이른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였지. 당신까지 황천에 올려놓고 한생토록 세상천지를 메주밟듯 바람을 일구며 뛰여다녔건만 당신이 그리도 바라던 밝은 세상은 찾아오지두 못하구 이렇게 맨손으로 왔소. 난 지금도 시름만 가득 안고 찾아왔다우.》

조봉암은 마치도 살아있는 녀인을 대하듯 애수에 차서 속삭이였다.

그는 상돌옆에 쭈그리고 앉아 안해에 대한 추억에 잠겨들었다.

세월은 멀리도 흘러갔다.

녀인이 세상과 슬프게 하직한지 어언 20년세월도 썩 지나갔다.

숱한 눈보라와 비바람이 인생의 거친 자취를 추억속에서 훑어던져 지워버리기도 했으나 녀인에 대한 추억만은 세월을 넘어오며 오히려 더 생생하게 그의 넋을 휘감고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갖 추억이 아니였다.

슬픔이였고 아픔이였다. 눈물겨운 회한이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악몽과도 같이 느껴지는 그 추억에서 피하고싶어 도리질도 해본다. 그럴수록 오히려 더욱 끈질기게 온몸과 마음속의 구석구석에 사무쳐들어 뼈를 저리게 한다.

이른봄의 써늘한 숲바람에 곡절많은 세월이 만들어낸 흰오리가 섞인 머리칼이 흩날렸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마디마디 페부를 찌르며 구슬프게 울고있었다.

조봉암은 안해의 어깨를 쓰다듬어주듯 달아오른 손으로 봉분을 조심히 쓸어보았다.

뒤로는 마니산을 병풍처럼 뒤에 세우고있는 남향받이 산자락인지라 봉분을 정갈하게 감싼 금잔디가 주단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조봉암과 그의 처 김이옥은 소꿉시절부터 이웃을 하고 가시내야, 머시매야 하며 친오랍누이처럼 지내왔었다.

그 녀인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강화섬의 마니산의 숲길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정깊은 이곳, 나서자란 고향땅에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는 함께 어울려 물장구치던 마을앞의 작은 시내물도 있었으며 울바자에서 꼬리를 달싹거리는 잠자리를 좇아다니던 동구길도 있었다. 이옥이에게 제일 크고 곱게 익은 감알을 따주느라 아버지 몰래 감나무에 기여올라 싱글벙글거리다가 떨어져서 어머니한테 야단맞던 어린시절의 즐거운 추억도 있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그 어떤 의미도 없이 례사롭던 소년, 소녀들의 우정이 감미로운 애정으로 넘어간것은 3. 1인민봉기의 함성이 삼천리를 진감하던 그해 봄부터였다.

조봉암이 일제경찰에 잡혀 서울로 끌려갔을 때 서울에 가서 녀자고등학교를 다니던 김이옥도 시위대렬에 참가하였다가 왜놈들에게 체포되였다.

그들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같이 하였다.

드문히 만나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이옥이 형무소에서 보다 억세여지고 장부다워진 호남아 조봉암에게 백배로 마음이 끌리게 되였다.

먼저 감옥에서 풀려난 김이옥은 사흘거리로 조봉암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을 마련하여왔다. 그때마다 보다 심원한 뜻을 안고 투쟁열의와 기개를 떨치는 조봉암에게 반해버렸다.

그들의 교제는 사랑으로 깊어졌다. 미래를 의탁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당시는 반상이 분명한 시절이였다. 김이옥의 집은 가난해도 대를 이어온 량반의 문벌에 속해있었다. 상놈의 자식을 받아들일리가 만무였다.

조봉암과 함께 도꾜로 고학의 길에 오르기로 약조했던 김이옥은 그걸 눈치챈 완고한 부모들의 반대로 따라서지 못하였다.

지금도 조봉암은 마가을의 찬비가 날리던 서울역에서 김이옥과 작별하던 때를 종종 생각하군 한다.

그것은 뼈를 저미는 회한속에 생활의 순간마다에 추연히 떠오르는 회억의 소중한 토막이였다.

《이봐요, 난 기다릴래요.》

김이옥은 렬차의 승강기에 오르는 조봉암에게 급히 꾸려간 엿보퉁이를 내밀며 수집어하면서도 또렷하게 자기 속을 내비치였다.

조봉암이 그 소리에 승강대에서 도로 내리였다. 그리고 리별의 슬픔을 이겨내느라고 애쓰고있는 김이옥에게 자못 신중하게 타일렀다.

《이옥이, 기다리지 마오. 난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소. 헌데 말이요. 그게 십년이 되겠는지 이십년이 되겠는지 뉘 알겠소. 그러니 날 기다리지 마오. 부모님의 뜻을 따르오. 난 지금 죽을 각오를 하고 서울을 떠나오.》

그러나 처녀는 짤막히 되뇌일뿐이였다.

《천리건 만리건 따라가겠어요. 기어이… 기어이…》

비록 이번 길에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함께 가지는 못해도 한생을 다 바쳐 자기들의 사랑의 언약을 지켜가겠다는 그 녀자의 맹세에 조봉암은 세차게 도리질을 하였다. 그는 움직이기 시작한 부산행 렬차의 승강대에 뛰여올라 큰소리로 웨쳤다.

《이옥이, 그래서는 안되오! 고생을 사서 하지 말고 부디 부모님들 뜻을 따르오.》

조봉암은 그때 이미 자기 인생의 표대를 굳건히 세워놓고있었다. 그는 피어린 가시밭과 눈보라치는 준령을 각오하고있었다.

처녀의 애정이 그지없이 소중하기는 했으나 청운의 뜻을 안고 오른 역풍의 만리길이 기약없는 싸움길이기에 사나이답게 강심을 먹었던것이다.

자기가 나선 폭풍치는 길에는 고생을 크게 모르고 고이 자라난 처녀가 어울리지 않으며 따라서 그를 돌려세워주는것이 처녀를 진정으로 아껴주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뒤로 조봉암은 활동장소를 옮겨가며 조선독립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느라고 로총각이란 말을 듣기도 했으나 부단히 왜놈들의 지명수배를 당하여 지내는 처지에 가정을 무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무변광대한 대륙의 광야를 천방지축 넘나들며 걸음걸음 죽음의 언덕을 넘어야 하였던 그 시절 찬비뿌리던 역두에서
입술을 옥물던 처녀의 모습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언제인가는 꼭 온몸에 스며들던 그 애모쁜 속삭임을 앞세우고 문득 눈앞에 나타날것 같은 막연한 기다림을 지워버릴수 없었다.

마침내 그런 날이 오고야말았다.

김이옥이 강화도를 떠나 일본을 거쳐 상해에 나타났다.

당시 조봉암은 국제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조선공산당을 창건하는 사업을 마무리하고나서 상해에서 국제공산당 원동지국의
조선담당 조직원으로 중국과 일본의 공산당지도자들과 같이 활동하고있었다.

상해에 도착한 김이옥의 몸상태는 말이 아니였다.

페가 심하게 나빠진데다가 고향을 떠날 때부터 고생을 겪으며 온탓으로 바람결에도 날아갈듯 몸이 쇠약하였다. 눈도 꺼지고 통실통실하던 두볼대신 관골이 삐쭉 솟아있었다.

김이옥은 조봉암에게 부모들의 승인을 받아내고 만리길을 넘어온 사연부터 들려주었다.

김이옥의 부모들은 여러번 사위취재를 하며 딸을 시집보내느라고 들볶아댔으나 오로지 대륙의 풍운아가 되여 투쟁의 길에 나선 조봉암에게 바친 사랑의 순정을 간직한 처녀는 그들의 혼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구하여 어느해 가을에 김이옥은 상사병에 걸려 몸져눕고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페염까지 겹쳐들었다.

아버지가 얼마 되지 않은 가산을 날려 서울로, 금강산으로 명의를 찾아다녔으나 병은 점점 심해졌다. 그제야 그의 부모들은 더 시간을 끌다가는 딸을 건지지 못할것만 같아 죽기 전에 조봉암을 한번이라도 보고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처녀는 가누기도 힘든 몸을 끌고 서울을 거쳐 일본의 시모노세끼로 가서 려객선을 타고 홍콩을 거쳐 상해에 이르게 되였던것이다.

당시 조봉암도 여러 동지들로부터 가정을 이루라는 조언을 듣군 하였다. 투쟁대오에 함께 서있는 녀동지들이나 중국에 기거하는 녀성교포들을 소개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봉암은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있었다.

물론 투쟁환경이 너무도 간고하고 생활조건이 렬악한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기의 뇌리에서 이옥이의 모습을 지워버릴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던 판에 김이옥이 나타났는데 처녀는 자기의 한심한 주제를 의식하고 인차 돌아가겠노라며 서둘렀다.

조봉암은 사랑과 가정이라는 단순하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되였다. 청춘을 고스란히 자기에게 바쳐온 녀인, 봉건의 질곡과 사랑의 번민으로 몸까지 바스러뜨린 한 불쌍한 녀인이 자기를 보겠다고 혈혈단신 병자의 몸으로 만리길을 넘어왔다가 언제 잦아들지도 모를 몸으로 귀향길에 오르고저 하는것이다.

병색짙은 얼굴에 제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들어하는 처녀의 모습은 꺼져가는 생명의 초불처럼 가냘파보였다.

분명 처녀는 비바람에 떨기떨기 흩날려버린 철지난 꽃처럼 어여쁨도 생신함도 향기도 다 사그라진 몸이였다.

조봉암은 자기의 추억속에 언제나 아름다운 빛과 그윽한 향기로 간직되여있던 처녀가 너무도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데 놀랐다.

처녀에게서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릴만 한 모습이라고는 세월의 썰물이 다 안고 가버린듯싶었다. 당황하기도 하고 짜릿한 아픔속에 동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뇌리에 감겨드는 지꿎은 감정의 이그러진 유혹에 침을 뱉았다.

건전한 리성의 꾸짖음에 자기의 량심을 깨끗이 닦았다.

(이옥이를 귀향길에 오르게 하는것은… 아니, 그렇게 하면 나는 혁명가는 고사하고 인간이 아니다. 혁명이란… 왜 하느냐.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

갑자기 그에게는 혁명이라는 위대하고 무한대한 리상의 바다가 사랑이라는 작고 고요한 못으로 비껴드는것이였다.

바야흐로 각일각 꺼져가는 생명의 비참한 초불에 다시 불을 지펴주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누가 남녀간의 사랑을 가리켜 감정이라고만 불렀더냐.

아니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고급한 감정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리성이라는 려과기를 통하여서만 비로소 더욱 열렬하게, 더욱 굳건하게, 더욱 아름답게 불타오르는것이다.

사랑의 의미가 페부에 닿지 않는 단순한 감성의 충동이나 즉흥은 무분별한 사랑의 희롱일뿐이다.

리성의 교열을 받지 않은 사랑의 감정이란 쉽게 꺼지기마련이다.

김이옥에 대한 조봉암의 사랑은 리성으로 승화된것이기에 흔들림이 없었다.

조봉암은 김이옥을 안해로 맞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건전한 리성의 승리였다.

인간 조봉암의 승리였다.

혁명가 조봉암에 대한 확인이였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거리가 생겼다. 그 녀자가 결혼소리에 도리질을 하는것이였다.

어느날 저녁녘에 들어오니 그 녀자가 지성을 담아 차려놓은 밥상에 쪽지 한장 남겨놓고 사라졌다.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당신을 끝없이 사랑하기에 떠나갑니다. 조선독립과 민중해방을 위해 더 큰 사랑을 바쳐주세요.》

그 녀자는 조봉암의 주변에서 생김새 곱고 수준도 높은 녀성혁명가들을 보면서 그리고 대오에서 권위있는 지도급인물로 성장한 조봉암을 접하면서 이 사람의 배필로는 이모저모 너무 기울어지며 그의 미래를 위하여 물러서는것만이 조봉암에 대한 참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조봉암은 쪽지를 움켜쥐고 상해역전으로 바삐 달려갔다.

기적소리가 울리는 역두에서 그 녀자는 조봉암의 손에 잡혀 울먹이며 안타깝게 빌었다.

《이봐요, 저를 놓아주세요. 당신은 큰일을 하셔야 할분이예요. 제가 곁에 있어야 당신에게는 짐밖에 되지 않아요.》

조봉암은 그를 그러안고 준절하게 선언하였다.

《내가 만약 이옥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다면, 만약 내가 그 어떤 리유로 우리의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난 스스로 공산주의자라는 귀한 이름을 더럽히고 저버리는것으로 될거요. 공산주의라는게 뭐겠소. 인간에 대한 참사랑이요. 한 녀자의 운명도 지켜주지 못하는 사나이가 무슨 공산주의자란 말이요.》

조봉암의 이 엄한 꾸중과 훈계에 이옥이는 발걸음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동지들은 꽃같은 처녀들도 한사코 마다하던 조봉암이 이옥을 맞아들이는것에 반신반의했으나 눈물겨운 사연을 들어보고는 무척 감동되여 결혼식을 성의를 모아 차려주었다. 동지들은 상해의 뒤골목에 자그마한 세방을 주선하여 신접살림을 펴도록 극진히 돌봐주었다.

비록 여라문평방밖에 안되는 단칸세방이였으나 그 어떤 호화찬란한 궁궐에도 대비할수 없는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사랑하는 심장들이 열화같기에 그들에게는 부러운것이 없었다. 여전히 분망한 일거리에 묻혀살면서도 조봉암은 미처 주지 못했던 사랑을 다 쏟아주는 심정으로 안해를 극진히 아껴주고 보살펴주었다.

금방이라도 명이 진할것 같던 녀인이 사랑의 힘에 이끌려 드디여 병마를 이겨내고 건강을 기적적으로 회복하게 되였다. 삐죽이 내밀었던 관골이 탐스러운 사과알마냥 발깃한 색조를 머금고 통통히 살아오른 볼살에 가리워졌다. 정기가 사라졌던 두눈에는 옛시절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흑진주처럼 반짝이였다.

안해의 건강이 거짓말처럼 회복되고 예전의 생기와 활력을 되찾는것을 보면서 조봉암조차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반년이 지나자 그 녀자를 병자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름답고 례절바르고 언행에 기품이 어린 녀인을 보면서 동지들은 사랑이 낳은 기적이라고 화제에 올리기도 하였다.

사랑의 영양소는 그 어떤 값진 보약이나 진수성찬도 비할수 없는 무한의 힘과 열정과 아름다움을 소생시켜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랑의 갈증에 타들고 주려 꺼져가던 녀인은 해님을 향하여 밝게 웃으며 삶의 환희와 희열에 넘치는 신혼의 꿀맛으로 조봉암에게도 보다 억센 정력과 힘을 안겨주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김이옥은 남편과 려운형이 맡아보고있는 국제당의 한 지부가 발행하는 기관지인 《혁명》과 《조선지평》을 중국과 국내에 보내주는 일을 맡아하게 되였다.

이 나날에 그는 공산당원으로까지 되여 조직활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게다가 련이어 꽃같은 딸을 둘이나 낳았다.

한창 소담한 꽃을 피우고 향기로운 열매를 거두던 그들의 결혼생활에 또다시 거치른 풍파가 덮쳐들었다.

둘째딸 연경이가 태여난지 한달후에 조봉암이 상해에서 변절자의 밀고로 동지들인 려운형, 안창호 등과 거의 동시에 각이한 장소에서 붙잡혀 10년형을 언도받고 신의주감옥으로 끌려간것이다.

남편이 잡혀가자 기관지는 페간되고 조직도 파괴되였다.

뒤미처 남편이 신의주감옥에서 동상을 입고 고생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김이옥은 죽어도 조국땅에 가서 남편의 옥바라지를 해야 하겠다는 불같은 생각에 떠밀려 어린 두 딸을 업고 안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와 신의주에 눌러앉았다. 여기서 삯빨래도 하고 어물장수노릇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감옥시중도 들었다.

조봉암은 안해가 고역살이로 바꾸어오는 차입물을 받아들 때마다 그것이 꼭 녀인의 피와 살점같아서 자기는 일없노라고, 예서 고생하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들이나 잘 키우고 자기 몸이나 돌보라고 간곡하게 타일렀다. 어떤 때는 모진 신역과 마음고생으로 초들초들 말라가는 안해의 신색이 념려스러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내기도 하였다. 안해는 고개를 끄덕거려보이군 하였으나 다음 면회날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또 왔소? 당신 고역살이에 내 가슴이 먼저 멍들고있소.》

조봉암이 이렇게 또 성을 내면 김이옥은 방긋 웃어보이고는 조봉암을 나무랬다.

《당신도 참, 하고파 하는 일이예요. 고역살이라는 말 싫어요. 처녀때도 아버지 몰래 서울감옥을 찾아 바다를 넘군 했는데 두 딸까지 낳고 사는 제가 이런걸 고역살이로 생각할것 같애요?》

조봉암은 안해를 떠나보내고는 감방에 들어와 소리없이 울었다.

칼로도 베여던질수 없는 수난많은 이 나라 녀인들의 눈물겨운 사랑에 가슴이 저렸다.

그럴 때면 이제 감옥에서 풀리면 그 녀자를 기어이 옥방석에 앉히고 백배로, 천배로 사랑의 정을 듬뿍 안겨주리라 골백번 맹세하였다.

조봉암은 자기의 맹세를 실현할수 없었다. 그가 감옥에 갇힌지 두해도 못되여 설상가상으로 이옥의 페병이 도지여 운신할수가 없게까지 되였던것이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친정아버지가 딸과 외손녀들을 무작정 고향으로 데려내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병마가 온몸에 덮쳐들어 더는 구원할 기미가 없을 때였다.

김이옥은 약조차 변변히 써보지 못한채 끝내 조씨가문의 선산에 묻히게 되였다.

그후 옥살이에서 풀려나온 조봉암은 비명에 숨진 안해를 잊을수 없어 다른 녀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홀몸으로 두 딸을 키워왔다.

지금도 조봉암의 인격에 반하여 그를 사모하고 대담하게 대문을 두드리는 녀인들이 여럿이 있다.

가까운 지인들도 사회적지위로 보나 나이로 보나 여생에 마음이라도 얹어둘 녀인이 있어야 한다고 이른다. 교양이 있고 나이도 알맞는 녀인들을 소개하여오기도 한다.

효성이 지극한 딸들도 새 엄마를 모셔오자고 극성이다. 그들은 사업에서는 언제나 전투적이고 락관적이며 만사를 초탈하는 아버지이지만 생활에서는 무척 외롭고 불우하다는것을 아버지의 신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녀성의 육감으로 느끼군 하였다.

셈이 들면서 자매는 수십년 어머니없는 자기들에게 설음이 있을세라 돌봐주는 아버지를 성의를 다해 극진히 모시면서도 자기들의 효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랑하는 녀인의 정에는 비길바가 못된다는것을 책에서 혹은 체험자들의 말에서 귀동냥으로 들어왔다. 그래 효경이와 연경이는 진심으로 새 어머니를 모시고싶어 왼심을 써온다.

조봉암은 혼담이 나서면 단마디로 사절이다. 그것만이 짧은 인생을 자기를 위하여 깡그리 연소하고 꺼진 한 녀인의 깨끗한 순결에 대한 사나이의 보상이다, 그 못된 세월에도 청순한 사랑을 고이 지키고 간 이옥이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린다면 인생의 표대와 량심은 어떻게 지켜가겠는가, 이런 심중으로 안해에게 다 주지 못한 정을 딸들에게 몰아준다.

조봉암이 안해의 체취에 취한듯 눈굽이 찌르르해서 상돌옆에 쭈그리고 앉아 돌덩이처럼 굳어져있는데 문득 산기슭에서 나무가지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석쉼한 부르짖음이 초봄의 산바람을 타고 울려왔다.

《죽산-》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분명하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죽산-》

정을 담은 투박한 부름이 다시 들려왔다.

조봉암은 비로소 눈물겨운 애수와 회억에서 깨여나 목을 빼들고 산기슭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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