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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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으로는 시커먼 경찰복에 노란 금줄을 두른 모자를 쓴 경찰관이 부하종졸 한명을 달고 거드름스럽게 들어섰다.

허리가 장독처럼 굵고 목이 앙바틈한 난쟁이다.

난쟁이가 문턱을 넘어서자 그때까지 고달픈 인생살이와 시국을 개탄하던 선장이 그게 언제였던가싶게 그앞에 서서 허리를 부러지도록 꺾었다.

《주재관님, 어서 오십쇼.》

《어, 선장! 잘 있었나?》

주재관은 기름기가 번질거리는 유들유들한 볼을 자랑이라도 하듯 실룩거리며 그에게로 하사품이라도 내주듯 마디가 짧은 손을 내밀었다.

선장은 그 손을 자못 공경스럽게 잡았다가 얼른 거북스러운 꼴이 돼서 조봉암과 연경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조봉암은 돌아앉아 시창너머로 바다를 내다보고있고 연경이만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맞다든듯 쓰거운 웃음을 머금고 그들을 바라보고있었다.

선장은 방안에 있는 걸상에는 이미 임자들이 생긴지라 경찰들을 모실 걸상이 없어 자리도 권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였다.

연경이 선장의 그 딱한 속내를 넘겨짚고 눈치빠르게 일어서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 셈평좋게 자리에 앉아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담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 선장! 아래사람들 신칙을 잘해야겠네. 나더러 배표를 내라고 그냥 성화야… 그래 해상주재관이라는 명색에 이 배에 꼭 삯을 내야 할텐가.》

주재관은 오히려 제사 기가 차다는듯 혀를 끌끌 찼다.

선장이 주재관의 지청구에 급해맞아 그냥 허리가 부러지도록 굽신거렸다.

《그래요? 죄송합니다. 우리 배군들이라는게 더러 심술통이 바르지 않아 그렇기도 하옵지만 개중에는 주재관님인줄 몰라본 작자들도 있을겁니다. 제가 대신 사죄합니다. 섬에 가면 단단히 버릇을 떼줄랍니다.》

《그래도 알아볼 사람이야 꼭꼭 점검해두고 있어야지. 이 배를 봐주는게 누구야? 내가 이 배에 처음 올라보는 사람인가?!》

그만했으면 물러서도 되련만 선장의 대답이 그저 개올리는 맛이 없어서인지 주재관이 으르딱딱거리기 시작하였다.

공짜에 이골이 나고 어데 가서나 손끝에 떠받들리우는데 습관되여있는 난쟁이의 오만방자한 선소리에 조봉암은 눈섭머리가 홱 들렸다.

이놈이 돌아가서는 배삯으로 얼마 썼다고 려비계산을 해서 공금도 타먹겠는데 그게 몇푼이라고 선장에게 와서 이따위로 치사스럽게 굴가. 우로 아래로 속속들이 부패하여진 사회에서 도덕성이라고는 이미 줴던지고 사는 좀스럽고 잔악한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페부에 역스럽게 파고들고 그로 해서 당하는 근로하는 민중의 아픔이 눈물겹게 새겨진다.

백성의 등을 쳐먹는것을 능사로 여기는 주재관은 당치않은 수작을 례사롭게 번지면서도 제편에서 오히려 떵떵거린다.

헌데 권력의 포악에 늘 몸살을 앓고있는 선장은 금시에 승냥이앞에 나선 토끼꼴이 되여 연신 굽신거렸다.

《예, 예, 예예… 죄송합니다. 내 우리 배사람들 단단히 신칙을 하겠습니다. 그런 놈을 골라내서 당장 밥통을 떼버리겠습니다. 내 인차 걸상을 가져오리다.》

선장이 주재관의 으름장에 후환이 걱정스러워 자기 걸상을 그에게 밀어놓고 얼른 밖으로 피해가려고 하는데 《선장있나?》
하는 메마른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키가 꺽두룩하고 몸이 마른명태처럼 빼빼 여윈 장년사나이가 어울리지 않게 밤색라크를 먹인 개화장을 짚으며 들어섰다.

《자유당 지부장님께서도 이렇게 오셨습니다?! 영광스럽습니다.》

선장의 든든한 허리가 또 한번 꺾어졌는데 이번에는 주재관앞에서보다 더 수그러들어 여차직하면 뼁끼칠을 한 바닥에 이마가 박힐 판이다.

이 방에 들어와서 안하무인처럼 을러메던 주재관도 손을 날쌔게 채양에 올려갔다.

한데 지부장이라는자는 그쪽에는 눈 한번 주지 않고 선장에게 명령조로 위엄있게 한마디 던졌다.

《인차 떠날테지. 난 시간이 없네.》

그러고나서야 갈퀴같은 눈길로 주위를 훑어보았다.

《예예, 인차 닻을 올리겠습니다.》

선장은 또 한번 마른명태한테 허리를 굽석거려보이고는 전송기가 있는쪽으로 달려가서 입을 대고 크게 소리질렀다.

《닻을 올려라.》

조봉암의 눈길과 마주친 선장의 얼굴이 거매졌다.

물론 《대통령》후보라는 무게는 산같은 위압감을 주는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고향땅이 배출한 인물에 대한 친근함과 존경심도 이루 말할수 없이 크고 진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등뒤에서 눈총을 쏘고있는 두 놈팽이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당장이라도 자기의 목을 칠수 있는 강화도의 자유당과 해상경찰대의 우두머리들이다.

이놈들의 눈밖에 나는 날이면 하루아침새에 밥탁도 떼우고 아니면 약차한 경영손실로 알거지가 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니 못난이구실하는 자기를 량해하여달라는것이다.

조봉암은 선장의 거북한 립장을 이내 헤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장, 여긴 사실 내가 있을 자리가 못되네.》

선장이 안팎곱사등이처지에서 벗어난것이 다행스럽기는 했지만 그것이 조봉암앞에서 또 죄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라 어쩔줄 몰라하였다.

《이거 선생님, 죄송해서 죽을 맛입니다. 쥐구멍에라도 기여들고…》

선장이 조봉암앞에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자 조봉암이 헌헌하게 웃었다.

《아니, 괜찮네. 오래간만에 바다길에 올라 고향을 찾아가는데 난 내 고향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가겠네. 난 갑판에 자리잡겠네. 》

《갑판에요? … 아니, 그거야 어떻게… 제가 얼른 가서 선실에 자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런 수고말고 어서 배나 돌보게. 그 성의 참 고맙네.》

《이거 미안해서…》

선장은 문밖에까지 따라나와 허리를 굽신거렸다.

《자, 어서 일보게. 내 자네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네.》

조봉암은 선장의 허둥거리는 모습이 진심으로 불쌍해서 눈굽이 따끔거렸다.

그래 조봉암은 련민의 정을 금치 못해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따뜻이 위로하여주었다.

《난 개의치 말고 어서 들어가보게. 어서…》

조봉암은 우로부터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곳곳에 역병처럼 속속들이 만연되여버린 권력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새삼스럽게 련이어 목격하자 자꾸만 역기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그속에서 인간의 체모마저 버려야 하는 민중의 처지가 너무도 가긍하여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최근년간에 리승만과는 먼 친척벌이 된다는 리기붕이 대표로 앉아있는 여당인 자유당은 리승만을 등에 업고 온 사회에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고있다.

자유당이란 원래 1952년도에 리승만이 《대통령선거》를 치르느라고 부랴부랴 만들어낸 관제어용정당이다.

자유당은 철저하게 리승만개인의 통치를 위한 치장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독재의 영구적인 존속을 위한 수단이였다.

그러던 자유당이 근래에 와서 나라의 최고권력기관으로 행세하고있다.

독재의 독버섯밑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던 무리들이 이 자유당이라는 간판을 코에 걸고 국가의 모든 중추적인 기관들과 요직에 틀고앉아 권력을 휘두르며 리권에 개입하여 사욕을 채우고 부귀영화를 누리고있다.

자유당고위층의 비위를 건드려놓았다가는 군장성이라 할지라도 하루아침새에 금줄두른 모자를 벗어놓는 판이다.

그런즉 해상주재관의 차렷자세나 선장의 불편스러운 비위맞추기는 지금 이 사회에 너무 흔한 구경거리다.

연경이는 아버지를 따라 선장실을 나서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지부장의 칼칼한 목소리에 신경이 씌여져 걸음을 멈추고 귀를 도사렸다.

《저 사람의 얼굴이 어디서 본듯싶다.》

《저분이 바로 유명한 진보당 대통령후보 죽산 조봉암선생님이십니다.》

《어쩐지 눈에 익다고 했지. 그래 여기 와서 뭐라고 지껄이던가? 선거유세 아니야? 선거법에 선거 한달전에 유세를 벌리면 선거법위반으로 고발해야 하거던. 말해보게, 들은 그대로! 조금이라도 감추거나 빠뜨려버리면 련좌법에 걸려 함께 가막소 가야 돼!》

지부장이 공을 세울 일에 맞다든듯 기세가 나서 선장을 닥달하였다.

그러자 선장의 눈이 퀭해졌다. 앉은자리에서 급살을 맞는다더니 좋은 일하려다가 우환거리를 만들어낸셈이다. 짠물과 손님단련에 쩌들어버린 선장이건만 지부장이 왕청같이 트집거리를 챙겨가지고 서슬이 등등해지자 두눈이 퀭해졌다가 머리를 가로저
었다.

《뭐, 얘기할새가 있었나요? 방금 모셔들어왔는데 저 주재관님이 오시고… 죽산선생님이야 원체 과묵한분으로 소문나지 않았습니까.》

《미쳤나, 그 말버릇… 완전히 환장했군. 선장, 똑똑히 말해. 조봉암이라는 작자로 말하자면 공산당경력자야. 그런자 놓고 과묵한분이야? 이 사람 안되겠어. 지금 국시가 뭐지? 어디 말해봐.》

지부장은 선장의 말꼬리를 넌떡 물어채서 심문조로 따지고 들었다.

《국시요? … 거야 뭐… 반공이지요.》

《알긴 아는군… 헌데 반공에다가 반북이라 해야 알찬 대답이 되는거야. 그런즉 공산당경력자를 그분이라거니, 모신다거니… 이게 쓸개빠진 수작 안야? 당신 사상이 련공이 확실해! 선장의 주의라는게 뻘겋단 말이야.》

《아, 아니올시다! 뻘겋다니요. 그거야말로 언감생심 당치않은 말씀이올시다.》

선장이 마른명태의 체질화된듯 한 의심증과 갈고리질에 덴겁해서 손을 들어 헤덤비며 급급히 대답하였다.

괜히 우물쭈물하다가는 두손에 덜컥 수갑이 채워질 판이다.

《난 확실하게 련공이 아닙니다요, 련공이라니요?! 원, 배끌어먹는 주제에 무슨 사상이요, 주의요, 언감생심… 외람스러운짓입지요.》

눈앞이 아뜩해진 선장이 연해연방 언감생심을 련발하며 급해해서야 비로소 지부장의 어조가 어눌해졌다. 지부장의 위세가 하늘같다는걸 이 배놈이 알아차린게 자못 흡족하였던것이다.

《선장이라면 사상이야 투철해야지. 당치않다니 그건 또 무슨 헌소리야? 모두가 리승만대통령의 사상을 받들어 자유당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해야 한단 말이야. 리박사주위에 똘똘 뭉쳐 북진하자! 이게 바로 자유당의 슬로간이야. 그런데 선장이라는게 사상도 없이 살아? 내 서울서 자유당본부에 있다가 강화섬에 왔는데 자유당 지부장 해먹기가 참으로 고역살이야.

이 강화섬의 무지렁이들은 그저 지방토색에 푹 젖어가지고 고향내기 조봉암이라면 덮어놓고 손들고 만세야. 이번 선거에서 또 이런 페단이 있다가는 선거나 치르고나서 싹 쓸어버리겠어. 리박사의 승리라는거야 밤에 달보기같은 일인데도 이 섬의 백성놈들은 깜깜 맹과니들이란 말이야.》

지부장이 선장을 세워놓고 일장훈시를 하는데 해상주재관이 그저 서있기가 멋적은듯 한마디 비쳤다.

《아니, 지부장어른! 전일에 신문을 보니깐 리박사께서 머사니 이번 선거에는 불출마하겠다고 맹약까지 하셨다고 하던데… 그게 실말인가요? 리박사가 출마 안하면 리기붕대표가…》

《맹약? … 하하하… 경찰들이라는게 무식하기란, 쯔쯔쯔… 저렇게 정치에 암둔해서야 어떻게 나라치안을 맡아보겠나?

리박사께서야 원래 겸양미덕을 두루 갖추신 위인이신지라 나라상좌에 십년가까이 계시는게 백성들앞에 미안해서 한번 사양을 해보신거지.

벌써 민의가 발동돼서 서울이 끓구 부산이 끓구 온 나라가 끓구있는걸 보지 못하나? 여기 강화섬만이 떨떨해있는데 이제 내가 가서 휘저어놓을판일세.

이 땅을 참빗질해보게. 리박사 제껴놓고 누가 무지한 백성놈들 거느리겠는가? 누가 미국의 지지와 원조를 받아내겠는가. 누가 북진통일의 기수가 되겠는가? 어림두 없지.

조봉암이 뭘 말라빠진 후보야? 두고보라구. 조봉암이 주제넘게 또 리박사와 맞붙어봐야 저승길을 앞당길뿐이야.

그 사람이 리박사와 엇나가지고 전전해에는 국회문밖에도 가지 못하고 국회부의장자리마저 떼웠는데 무슨 담통이 있어 또 나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는 격이 아닌가.》

그때까지 문앞에서 지부장의 훈시를 듣고있던 연경이가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선장실 출입문을 홱 열어제끼더니 키다리 마른명태를 쏘아보았다.

처녀는 옆구리에 주먹까지 척 올려붙이고 마른명태를 향하여 굽높은 구두뒤축으로 마루바닥을 딸각딸각 쪼으며 서너걸음 곧추 옮겨놓았다.

두팔을 가슴우에 틀어올리고 위엄있게 일장궤변을 늘어놓던 마른명태가 매서운 표정으로 벼락같이 들이닥치는 처녀의 기세에 영문을 모르고 기가 눌려 눈이 퀭해서 뒤로 물러섰다.

《다시한번 떠들어봐요!》

《가시내는 누구냐?》

마른명태는 처녀의 다기찬 역습에 흠칫거렸다가 맞불질을 하듯 고함을 쳤다.

《난 서울 백성놈이지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예요?》

《하, 이 가시내 말씨가 어여쁘시네. 난 자유당 강화도 지부장이야. 그래 어쨌다는거야?》

이죽거리던 마른명태가 왜가리소리같은 악청으로 선장실이 떠나갈듯 고아댔다.

선장이 그에게로 얼른 다가가 처녀가 조봉암선생의 따님이라고 나직하게 말해주었다.

《따님? … 흥!》

마른명태는 어쭙잖게 코방귀를 날리였다.

연경은 상대를 도도히 쏘아보다가 자기가 앉았던 걸상에 가서 까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죄인을 심문하듯 차랑차랑하고 올찬 소리로 걸고들었다.

《당신은 지금 법에 도전하고있어요.》

《어랍쇼. 네가 지금 상대가 누군지 알기나 하고 감히 덤비느냐? 나로 말하면 자유당 대표이신 리기붕각하의 처사촌동서 조카로서…》

《호호…》

연경이가 마른명태의 지저분한 설명에 까르르 웃음을 터쳤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도 티없이 맑고 깨끗한지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선장실의 공기마저 일시에 가볍고 정갈해진듯싶었다.

연경이는 때없이 터친 처녀의 웃음에 멍청해진 마른명태와 주재관을 번갈아 보며 또 한마디 신랄한 어조로 비웃었다.

《같은 값이면 왜 태종왕까지 꺼들지 못하나요. 리기붕과 리승만은 리조의 태종왕으로부터 시작된 갈래라는데, 호호…》

《가시내가 감히 내 족보를 가지고 야료인가?!》

마른명태가 골이 나서 씨근덕거렸다.

연경은 마른명태가 하는 수작은 개의치 않고 죄인다루듯 상대의 죄상을 따지고 들었다.

《이것 봐요. 당신은 법을 위반했어요. 당신이 방금전에 범한 죄명이 무엇인지 꼽아볼가요?

첫째, 선거법위반… 당신은 리박사에 대한 선거유세를 벌리고있어요. 당신은 아까 선거법을 선장님께 설명하였지요? 헌데 당신은 제입으로 떠들어댄 선거법을 위반하고 5월 15일 선거날까지는 아직도 한달 반이나 있는데 리박사 <치적>선전을 벌리고있단 말이예요. 선장님, 확인하지요?》

연경은 마른명태에게 어마어마하게 죄명을 들씌워놓고 근거까지 밝혀놓은 다음 선장에게로 묻는듯 한 눈길을 보냈다.

겸연쩍은 생각이 들어 두볼이 그냥 벌겋게 익어있던 선장은 《그거야 뭐… 내만 들었나요? 여기 주재관님도…》 하다가 뒤말을 삼켜버렸다. 땅딸보주재관이 자기를 꺼들인다구 선장에게 눈을 부라렸던것이다.

연경이 그 눈길에 접하자 오히려 더 매몰차게 다불렸다.

《두번째 죄명은 인신모독죄… 선거활동은 민중의 초보적인 정치행사권리이고 법의 보호를 받고있는 민권중의 하나예요. 헌데 당신은 지금 합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 대통령후보를 놓고 저승길 앞당기는 일이라거니, 뭘 말라빠진 후보냐니,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는 격이라느니 입부리 돌아가는대로 흑색악담 늘어놓구있어요. 민중의 민주주의적권리행사를 놓고 자유당 지부장이라는 어르신이 그렇게 함부로 발언하여도 괜찮겠나요? 주재관님, 주재관님도 저 지부장님 발언을 확인할수 있죠?》

《거참…》

연경의 말은 부드러워도 목을 조이는 명주실올가미처럼 마른명태의 숨통을 바싹 조여들었다.

연경의 솜씨있는 반타격에 마른명태는 설태돋은 혀끝으로 까실까실 말라드는 입술만 핥고 처녀를 연신 곁눈질해보던 주재관은 땀발이 돋은 이마를 팔소매로 쓸기만 하면서 마른명태의 눈치만 살살 살피였다.

《셋째 죄목도 있어요. 뭐냐 하면요, 권력을 가지고 백성을 상대로 벌린 공갈, 협박죄… 이건 우리 민사형법 81항에 해당하는 죄명으로서 20년까지의 금고형에 처할수 있는 범죄예요. 당신은 방금 조봉암에게 투표하면 선거가 끝난 후 그런 사람들은 싹 쓸어버리겠다고 했지요? 선장님, 들었지요? 주재관님도 확인할수 있죠?》

연경이 당돌하게 그냥 올가미를 살살 죄여들자 위세가 하늘같던 마른명태는 시퍼렇던 서슬은 다 버리고 법정에 묶이운 죄인꼴이 되여버렸다.

선장과 주재관은 신비로운 눈으로 살결이 뽀얗고 눈꼬리가 만만치 않게 들린 처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이슬머금은 아침의 나리꽃처럼 청초하면서도 연해보였는데 문초를 하는걸 보니 속알이 여무지기로 고추알같다.

잠시후에야 자기를 수습하고난 마른명태가 간담이 서늘해져서 씨근벌떡거리다가 《허- 그 애비에 그 딸이라… 에, 에…》하고 겨우 몇마디 씨부렁거리더니 연경이를 흘겨보며 꽁지를 뺐다.

주재관도 더 앉아있기가 머쓱해져서 선장실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사렸다.

《지부장님, 주재관님, 언감생심 그러시면 안되죠.》

선장이 급히 그들을 부르며 따라가는척 하였으나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고말았다.

《에익, 태백산호랑이는 뭘 자시고 사노?! 저따위 시러베자식들이나 콱 물어갈게지.》

선장은 돌아오자마자 사뭇 들떠올라 출항을 알리는 고동소리를 길게 울렸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장은 키를 천천히 돌리면서도 덩달아 통쾌한 기분에 휩싸여 제 홀로 흐덕흐덕거리다가 칭찬하였다.

《아가씨가 용해!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이야! 그놈 그 말 한마디만은 쓸말을 하고 줄행랑쳤지. 에- 얼음물 한사발 들이킨것만 하다. 내 15년을 이 바다길에 바쳐오다가 오늘처럼 속씨원한 날은 처음일세. 그놈들 도망치는 꼴 보기 좋더라. 꼭 고양이 본 생쥐들 꼴이야. 하하…》

선장은 방안이 떠나갈듯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고나서 구구하게 속죄를 하였다.

《헌데 이놈은 바지입은 바다사내면서도 뻐꾹소리 한번 내질러보지 못했지, 사내값은 고사하고. 에에, 내 아씨앞에 부끄럽기 그지없네. 아차, 이 정신 봐! … 선생님을 모셔들여야지.》

선장은 조봉암을 찾아 선장실을 바쁘게 나섰다.

조봉암은 어느새 손님들이 빼곡이 들어찬 갑판의 복판에 틀고앉아 그들과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조봉암의 앞에는 얼굴이 까맣게 탄 나이지숙한 사람과 등이 굽은 로파가 앉아있고 선객들이 주위를 에워싼채 조봉암의 구수한 얘기를 듣느라 목을 빼들고있다.

태반이 강화섬의 보짐장사군들이다. 강화도의 해산물과 감을 비롯한 토산물을 인천이나 서울에 가져다 넘기고 거기서 살림살이에 필요한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을 구해가지고 섬사람들에게 팔아준다. 누구라 없이 고달픈 인생이 비껴있는 초라한 행색들이다.

선장은 조봉암의 두리에 어깨성을 쌓은 그들사이를 비집고 조봉암에게로 다가갔다.

《선생님, 이젠 저의 방으로 돌아갑시다.》

《어, 선장이 왜 나왔소. 내 걱정은 말고 배나 잘 몰아주오.》

《선생님, 어서 가십시다.》

선장은 조봉암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 아, 이러지 마오. 난 여기가 좋소.》

조봉암이 한사코 손을 내두르자 선장이 허리를 굽히며 큰소리로 떠들었다.

《선생님, 노여움은 푸시고… 아까는 제가 불민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감생심 그게 하바닥인생들이 살아가는 꼴이니 저를 리해하여주십시오.》

《노여움은 뭐고 리해하지 못할건 뭔가. 이 사람아, 내가 뭣 때문에 이 배에 올랐겠나. 고향의 이웃님들 보고싶어 한해 건너서야 비로소 걸음을 하는데 몸에 맞지 않는 선장귀빈구실이 될말인가. 괜한 념려말고 어서 들어가오. 참, 우리 애는 어데 있소?》

조봉암은 선장의 옹색해하는 속을 풀어주며 물었다.

《따님말입니까? 지금 저의 방에 있습지요. 그 세도쟁이들의 버릇을 뚝 떼놓았답니다.》

《버릇을 떼놓다니?》

《쫓아버렸지요.》

《쫓아버리다니? … 누가 누구를 말이요?》

《저, 거시기 그 멋스럽게 생긴 따님이 말입니다. 세도줄을 믿고 우쭐거리던 지부장을 다몰아대는데 대단했습니다. 하하… 쑥대우에 오른 민충이처럼 우쭐렁거리던 말라꽹이가 따님앞에서 호랑이앞에서 바들거리는 여우꼴이 돼가지고 하하… 따님이 법조항까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이리 패고 저리 휘두르고… 굉장했습죠.》

선장은 성수가 나서 연경이가 그 놈팽이들을 답새기던 통쾌한 광경을 간간이 웃음을 섞어가며 익살스럽게 늘어놓았다.

《참, 그건 돈내고도 못 보는 구경거린데…》

선장이 제 홀로 봐준게 못내 아쉬운듯 혀를 끌끌 차기까지 하며 말을 끝내자 여기저기서 찬탄의 목소리가 튀여나오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갑판이 온통 웃음판인데 때마침 그 당자인 연경이가 나타났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조봉암도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려 웃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연경이를 달고 다니느라면 이렇게 드문히 뒤날에 입에 담아볼만 한 후문이 심심치 않게 생기군 한다.

담차고 돌진적인 기질에다가 정치학까지 공부한 덕으로 론조가 사리정연하고 언행에 실수가 없어 론적들과 맞붙으면 상대에게 언질을 주지 않아 믿음직스럽다.

고려대학교에 입학할 때 조봉암은 연경이더러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연경이는 자기도 아버지처럼 못난 사회부터 수술을 해야겠다면서 부등부등 정치과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

조봉암의 수하에는 간사장인 윤기중을 비롯하여 법학전문가들이 많았는데 그는 이들뿐아니라 연경이한테서도 요긴한 도움을 받군 한다.

연경은 선객들의 따스한 눈길이 자기에게로 모여들자 괜히 몸처신이 거북스러워져 공연히 귀밑머리를 쓸어넘겼다.

그가 새까만 눈망울을 두리두리 굴리며 선장에게 묻는듯 한 표정을 짓자 조봉암이 짐짓 핀잔조로 선장의 대답을 대신하
였다.

《얘, 조심해. 지금 네가 그 사람들과 맞붙은 이야길 듣던중이다. 원, 애두… 권력이 시퍼런 세도군들과 웬 대거리야. 그렇게 맨손으로 부딪쳤다가 아차 실수 한번에 피를 보면 어쩔려구 그러느냐?》

엄한 말투와는 달리 은근히 대견해하는듯 한 아버지의 눈길을 일별한 연경은 싱긋 웃어보이고나서 도담하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배워준거죠 뭐.

정의에 살려거든 권세에 아부말며 용사로 살려거든 고행길 피하지 말지어다.》

《저런! 이젠 아버지까지 거들구. 우리 딸이 이렇답니다. 허허…》

《아버지, 저의 몸에도 강화섬의 피가 흘러야 한다 하잖았나요. 그것들이 노는 꼴 정말 밉상이였어요.》

《그래그래, 강화섬의 사람들은 외세와 악덕의 반항아들이였지. 그렇구말구. 허허, 그런즉 너도 오늘 강화후손의 본때를 보인셈이렷다?》

짧으나 의미깊은 부녀의 대화에 속들이 후련해서 고개를 끄덕이던 선객들은 조봉암의 능청스러운 물음에 또 한번 와그르 웃음을 터쳤다.

그러면서도 저저마다 보기 좋은 몸매에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게 들이박힌 연경의 얼굴이며 담찬 기상에 반해서 겨끔내기로 덕담 한두마디씩 건늬였다.

앞으로 아버지와 같은 녀걸이 되겠다거니, 자손이 크게 번성할 상이라거니, 과시 강화섬의 기상이라거니 그 칭찬이 가지각색이다.

딸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푸수한 덕담을 들으면서 조봉암은 부끄러워 목덜미가 빨개서 선장의 등뒤에 숨어버린 연경이를 새삼스럽게 돌아보았다.

연경의 얼굴은 어머니의 이목구비를 쏙 빼닮아 귀염성스레 생긴 제 언니와는 달리 아버지인 자기를 닮아 시원한 눈과 선이 굵은 생김새를 넘겨받았는데 거기에 녀성적인 미가 조화를 이루기는 했어도 어디 가서나 곱다는 소리는 별로 듣지 못한다.

부드러운 곡선이 둥실하게 돌아간 뭉실한 턱만은 어머니를 닮아 무척 량순해보인다. 그러나 그우에 오똑하게 솟은 코마루는 드세보이는 자기 코를 닮아 무척 영악해보이기도 한다.

연경의 얼굴에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끄는것은 영채가 유난한 깜장눈과 그 주위를 휘우듬하니 돌아간 속눈섭이다.

마치도 처녀를 만들어낼 때 크고 시원한 눈에 티라도 들어갈세라 새까만 머리칼을 가쯘히 잘라서 눈가에 바람막이숲을 세우듯 빼꼭이 박아준듯싶다. 말총처럼 발이 굵고 빽빽한게 그 속눈섭속으로는 그 어떤 먼지도 바람결도 뚫고들어갈것 같지 못하다. 그 촘촘한 속눈섭이 아버지를 닮아 크고 새까만 눈망울이며 희맑은 눈자위와 어울려 눈의 모양새를 이채롭게 해준다.

수집음이나 애교가 따로없이 노상 설렁거리는 처녀의 밝고 명랑하고 경쾌한 언행이며 푸접이 좋고 탁 트인 기질은 어디라 없이 현대판 총각들의 사랑의 이목을 쉽사리 잡아끄는데가 있었다.

조봉암은 둘째딸의 인끔을 돋보이게 하는 자유분방하고 정의롭고 활달한 성격을 어린시절부터 무척 사랑하며 그의 개성이 흐트러질세라 조심스럽게 이끌어온다.

그러나 조봉암은 자유당 지부장이나 해상주재관을 일격에 답새겨 사족을 못쓰게 했다는 딸애에 대한 선장의 이야기가 무심히 들리지 않았다.

바다길에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연경이다. 그런데 어찌되여 도전세력에게 쓸데없는 불질을 했을가.

그는 구태여 책망하고싶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냥 스쳐보낼수도 없었다.

딸애의 지나친 행동을 꼭 정의감으로부터 출발한 의기로만 보기에는 어쩐지 이상스럽다.

노상 설렁거리는것 같아도 분수없는 행동을 극력 삼가해온 연경이가 보잘나위 없는 놈팽이들의 비난따위에 반발하여 정면에서 답새겨댄것이 그 무슨 성풀이같이 여겨진다.

좀처럼 흐린 모습을 볼수 없었던 연경이에게서 요새 와선 간간이 낮은 한숨소리가 새여나오군 한다. 처녀의 시름거리는 대개 사랑때문에 생겨난다는데 혹시 그와 최금룡사이에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닐가.

그러고보면 최금룡이 나타나지 않아 물을 때마다 별스레 허둥거리던 연경의 행동은 물론 최금룡의 처신에도 의혹이 간다. 최금룡이 아무리 아프다한들 한주일가까이 자기 자리를 비워둘 사람이 아니다. 더우기 오늘같은 나들이엔 마땅히 최금룡이 옆에 있어야 했다.

최근에 들어와 최금룡이 자기가 하는 일들에 대하여 비판적의식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조봉암은 심상치 않게 헤아려보고있었다. 더구나 자기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자 앞을 다투어 수하에 모여든 정계와 권력의 요진통에서 움직이던 인물들에게 당의 요직을 맡겨주는 호의를 베푸는데 대하여서도 최금룡은 상당히 비판적이였다.

최금룡의 주장은 《대통령선거》전에 뛰여드는것은 필요성이 적고 승패가 명백한 비효률적인 재력과 에네르기의 소모라는것이다. 앞으로 당중앙으로 될 선거대책위원회도 고무풍선처럼 확대하지만 말고 정간화해야 하지 않는가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조봉암은 가끔 여기저기서 들어오던 말이였으나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최금룡의 입을 통해 다시 듣고보니 새삼스럽게 신중해졌다. 그만큼 실망도 컸다.

이태동안 함께 지내고보니 최금룡은 말 한마디도 허투로 던지는 법이 없고 언행이 무겁고 론조가 매우 치밀하였다. 뒤날에 정치의 큰 동량감이 될것이라는 믿음이 절로 갔다.

뿐만아니라 최금룡은 정열적이고 진지한데가 있었다. 당의 강령과 규약초안을 검토할 때도 매 문장, 매 단어의 의미를 깊이있게 소화하였고 자기의 불만도 조봉암에게 내비치군 하였다.

조봉암이 최금룡에 대한 생각을 신중하게 굴리게 된것은 그의 아버지인 최기오의 최근동향과도 관계가 있었다.

최기오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풍파를 함께 겪어온 오랜 지기였다.

조봉암이 3. 1인민봉기후 감옥에서 풀려나서 피신할겸 공부하러 일본 도꾜에 갔을 때 하숙생활을 함께 한것이 인연이 되였다.

그들은 엿장수로부터 도매가격으로 매일 엿판대기를 하나씩 받아가지고 그걸 팔아서 학비를 마련하였다. 하루 두끼 죽으로 에우면서 공부도 하고 사회주의운동에도 함께 참가하였다.

그런데 해방후에 남조선좌익권에서 지도적지위를 차지한 박헌영일파들에 의하여 투쟁전렬에서 두사람 다 소외되였을 때부터 그들의 인생길이 크게 달라졌다.

조봉암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출로를 모색하여 고뇌를 썩이다가 통치권에 대담하게 뚫고들어가 자기의 정치적리념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면 최기오는 정치운동에 좌절감과 환멸을 금치 못하고 정치생활의 종료를 선언하고 기업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우의는 여전히 두터웠다.

최기오는 마치도 해방직후부터 정치투쟁의 일선에서 도피한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속죄를 하듯 진심으로 조봉암의 변혁을 위한 정치투쟁을 옹호하였다. 다달이 자금지원도 성의껏 하여왔다. 아들이 그의 수하에 들어갔을 때 쾌히 지지하였다. 뿐더러 연경이를 앞으로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로 약조하였다.

그런데 이번 선거출마만은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반대하였다.

한마디로 최기오의 주장을 추려본다면 더이상 권력투쟁에 뛰여들지 말라는것이다.

자기는 이제 더는 조봉암이 이루지도 못할 정치의 옥좌를 빼앗아내기 위한 선거놀음을 지지할수 없다는것이다.

얼마전에는 만약 기어이 나선다면 수하에 거두어주고있는 아들도 데려갈것이라고 말하였다.

자기의 일신상문제를 놓고서는 언제나 결패있게 매듭짓고 살아온 최기오로 보면 그게 한갖 위협이나 경고라고 볼 일이 아니였다.

최기오는 그 리유에 대하여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은 권력기관이 자기와 자기 기업을 대상하여 압력을 가해오고있다고 솔직하게 토설하였다.

근래에는 국세청의 세무관리들이 뻔질나게 공장에 드나들면서 기업운영전반을 눈에 쌍심지를 켜달고 훑고있다고 하였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 미상불 자기 집안도, 자기 기업도 쑥밭이 되고말것이라는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남조선사회풍토에서 절대로 공정한 선거를 치를수 없으며 리승만과 맞붙어보아야 결말은 뻔하다는것이다.

다 일리가 있는 친구의 비난이였다.

리승만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후원세력을 가지고있다.

벌써부터 미국은 백악관 대변인이나 국무성인물들을 내세워 남조선에서 민주주의적으로 선거가 진행될것을 바란다고 요설을 돌리고있지만 속셈은 뻔하다.

민주주의적선거를 치를수 있는 사회적풍토가 마련되여있는가. 이 사회는 아직도 민주주의의 초보적인 기틀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기오가 말한것처럼 리승만은 력대로 조봉암의 팔다리를 잘라내군 하여왔다.

이번에도 다를바 없는것이다.

자기와는 복잡다단한 세월의 년대를 함께 넘어온 친구이며 이제는 사돈까지 맺게 된 최기오도 무사할리가 없다. 그에 대한 압력은 곧 자기에 대한 도전이고 공갈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최금룡이 전례없이 자기 주위에서 한주일이나 자리를 비워둔것이 심상치 않았고 연경의 속풀이도 다 무관하지 않다. 결국 선거놀음때문에 저애들의 사이가 벌어지고있는게 아닐가.

얼마전에 조봉암은 윤기중간사장으로부터 최금룡과 연경이 사업상문제를 놓고 이따금 충돌한다는 말을 들은바가 있었다.

최금룡이 사내대장부답게 다른 일들은 다 연경에게 양보하고 아량있게 감싸주지만 정치적인 문제나 당내의 여러 문제를 놓고서는 일가견을 세워놓고 거기에서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는것이다.

그래 조봉암도 이따금 양보없이 티각태각거리기도 하는 그들이 부부궁합이 맞지 않는 배필인듯싶어 차라리 맏사위와 둘째사위감이 바뀌였더라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에 혼자 웃어도 본다.

맏딸부부는 둘 다 성격이 온화하고 유순하며 너무 착하고 고지식하다.

모든 사물현상이 음과 양으로 결합되고 강, 온이 조화롭게 합쳐져야 균형이 이루어지겠는데 두 딸의 배필들이 제대로 골라지지 않은것 같다.

두 딸과 두 사위를 둘러볼 때면 조봉암은 착하기만 하던 아버지와 성깔드세던 어머니를 생각하군 하였다. 판이한 두 성격이 집안에서 서로 충돌이 없이 받아주고 감싸주면서 가난한 집안에 노상 단란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군 하였다.

너무도 일찌기 요절한 안해를 그려보기도 한다. 안해는 행동적이고 강한 기질인 자기와는 너무도 대조되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미를 타고났다. 말소리까지도 조봉암은 평소에도 웅글진 탁성으로 솰솰거리지만 그 녀자의 목소리는 맑고 은근하고 노래와 같은 선률이 있어 듣는 사람이 저절로 속이 밝아지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상반되는 두 성격이 집대문안에 들어서면 별다른 불협화음이 없이 잘 융합되여 아늑하고 명랑한 선률을 뽑아내며 행복의 보금자리를 함께 꾸려가군 하였다.

조봉암은 이러루하게 생각을 굴려가다가 자기딴에도 너무 왕청같이 가지를 뻗어가는 생각이 멋적어서 제풀에 픽 웃고말았다.

그러면서도 최금룡의 병문안도 한번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선장은 조봉암이 여전히 갑판에 박힌듯 틀고앉아 일어설념을 보이지 않자 더 권하지 못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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