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점심을 일찌기 치르고난 조봉암은 연경이를 데리고 고향땅인 강화섬으로 향하였다.

조봉암은 윤기중과 우달수, 신창균이 따라서는것을 산소나 돌아보고 오는건데 하며 한사코 떼놓고는 연경이만 달고 집을 나섰다.

연경은 아버지가 그 무슨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저 고향땅을 찾는다는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손수 담근 국화술 몇병과 제사에 쓸 제물을 꾸려들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국화술은 뜨락에 아버지가 씨뿌리고 김을 매주어 피워올린 국화꽃을 따서 40프로짜리 소주에 우려낸것이다. 색갈이 곱고 술맛이 향기로워서 한번 마셔본 사람들은 그 맛을 쉬이 잊어버리지 못한다.

조봉암은 매일처럼 밀려드는 손님들중에서도 너나들이로 통하는 지기들에게만 이 술을 맛보인다. 그리고 고향을 찾을 때면 반드시 이 술로 옛친구들을 대접한다. 조상의 묘에도 이 술을 제주로 드리군 한다.

연경의 예상대로 조봉암은 풀기 힘든 문제에 말려들거나 무엇인가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면 늘 강화섬을 향하여 바다길에 오르군 하였다.

그쪽에 가면 아직도 산천이 변함없는 고향이 있고 소꿉시절을 함께 보낸 죽마고우들이 여럿이 있다.

옛친구들과 어울려 고향마을을 에돌아간 동락천의 맑은 물에서 천렵도 즐기고 강화섬의 주봉인 마니산에 올라 그들과 함께 고향의 물과 고향의 낟알로 빚은 시큼털털한 막걸리도 들면서 아리랑곡조를 시원히 뽑아보기도 한다.

고향땅의 친구들은 조봉암이 각근히 정을 나누면서 진속을 빠개놓고 시국담도 나눌수 있는 흔치 않은 민중의 대표들이기도 하다. 조봉암은 고향땅에 갈 때면 반드시 찾아보는 조상의 분묘앞에 제상을 고여놓고 대를 물리며 구차하게 살아온 자기의 근본을 되새겨보기도 한다.

나라의 서쪽허리를 지키는 파수군마냥 인천앞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서해의 풍파사나운 바다가운데 마니산, 진강산과 같은 웅장한 봉우리를 떠이고 우뚝 솟아있는 강화섬에는 예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싸운 의로운 선렬들의 고귀한 넋이 깃들어있다.

멀리로는 몽골의 칭기스한과 왜구의 침략을 막아낸 강화섬사람들의 자랑스러운 무훈담이 있다. 가까이로는 미국과 프랑스의 해적들을 쳐부신 애국의 자취가 강화섬의 산과 들, 바다기슭에 력력히 찍혀있다.

조봉암의 선친들도 강화섬에서 농사도 짓고 감도 익히고 고기도 낚으면서 세기를 이어온 섬의 동란에 늘 선참 뛰여들어 피도 흘리고 목숨도 바쳤다고 한다. 하기에 조봉암은 언제나 조상의 령전에 무릎을 꿇고있느라면 그들의 신성한 넋이 가슴에 흘러드는듯싶었고 그네들의 후손으로서의 사명감과 참된 삶의 가치를 되씹어보군 한다.

《피해민중은 뭉치자!》

조봉암이 오늘까지 변함없이 부르짖어온 이 구호도 조상의 묘앞에서 생각해낸것이였다.

로농대중이라는 말이 공산당의 말이므로 리적행위로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도발에 걸려들어 그를 대신할 호칭을 찾아 모색을 거듭하던 조봉암은 자기의 조상들을 생각하면서 봉건적질곡으로부터의 피해, 침략자들로부터의 피해, 달리하는 사상과 신앙으로부터의 피해, 남성으로부터 당하는 녀성의 피해, 권력자들에 의해 당하는 피해, 지주와 자본가들에 의한 피해를 받는 모든 인간들을 피해민중이라는 하나의 호칭으로 묶어세우기로 결심하였던것이다.

결국은 고향땅이 그에게 삶의 목표와 질을 규정하여준셈이다.

《피해민중의 권익을 위하여! 피해민중은 뭉치자!》

이 구호는 오늘 진보당의 강령으로, 구호로, 기치로 되였다.

《금룡이가 아직 일어나지 못하였느냐?》

조봉암은 윤기중과 신창균의 배웅을 받으며 자동차에 오르다가 말고 운전대를 잡은 맏사위인 김봉무옆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연경이에게 물었다.

《저… 글쎄요.》

연경이가 급해맞은 어조로 얼버무렸다.

《글쎄라니… 혹시 병원에 입원한게 아니냐?》

《아니요.》

연경이는 최금룡이 갑자기 열이 나서 집에 가 안정을 한다고 말해왔던것이다.

연경이 더 캐물으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조였는데 다행히도 조봉암은 금룡의 말은 더 꺼내지 않고 차창을 스치는 도시풍경에 눈을 주었다.

자동차는 인천부두를 향하여 살같이 달렸다.

시가지의 어수선한 풍경이 달려오다가 바쁘게 사라진다.

전쟁시기 맥아더의 5만대군이 월미도를 거쳐 서울에 쳐들어올 때 수천대의 비행기와 수만문의 대포로 서울을 죽탕치듯 해놓았다. 지금도 거리의 곳곳에는 그날의 참혹상을 반증하듯 폭격과 포격에 부서지고 부러지고 파헤쳐진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

인민군대는 서울을 해방할 때 공격전에는 밤이 좋으련만 서울시가지에 피해를 줄세라 공격시간을 낮시간으로 정하고 포사격도 하지 않도록 하면서 피어린 전투를 벌렸다는데 미국놈들은 《해방자》라고 떠들면서도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도시를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것이다.

《외세란 그런거지!》

조봉암은 쓰겁게 뇌이며 통분이 서린 눈으로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지난 세해동안 서울이라도 재건하자고 모두 목에 피대를 돋구어왔으나 자재난에 자금난이 겹쳐 복구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있다.

골목골목에 거지들이 울멍줄멍 떼를 지어 다닌다. 지팽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상이군인들이 부지기수로 거리바닥을 휩쓸고있다.

서울시의 중심거리인 명동에 들어서서도 생활고에 허덕이는 민중의 처참한 모습이 끊임없이 조봉암의 가슴을 허비였다.

여기저기서 시커먼 옷을 입은 경찰들이 방망이를 휘둘러대는것이 보이고 머리를 풀어헤친 로점상들이 광주리를 끌어안고 그놈들과 대거리로 다툼질하는 모습도 보여 조봉암은 부지불식간에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전쟁의 포성은 들리지 않으나 서민들의 생활이란 전쟁란리판이나 조금도 달라진게 없다.

《북에서는 그냥 군대도 축소하고 나라통일도 하자고 하는데… 음-》

조봉암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신음소리를 냈다.

리승만은 오히려 군대를 60만이상으로 늘이고 군비예산을 지난해보다 1. 3배로 끌어올려야겠다고 《국회》에 지시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즉… 우리 진보당은 무엇부터 해야 될것인가?)

조봉암은 거리의 한산한 풍경에 눈길을 박은채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그 대답을 찾아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인천부두가에서 자동차는 멈춰섰다.

김봉무가 벌써 매표구앞에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다가 끝내 표를 살수 없게 되자 뒤문으로 해서 장인의 이름까지 팔아 표 두장을 겨우 구해가지고 왔다.

《용케 샀구만.》

조봉암이 배표를 들고 벙글거리며 돌아오는 사위를 칭찬하자 김봉무는 《에이, 전쟁판입니다.》 하면서 얼굴을 붉히였다.

그들이 교두보를 따라 천천히 크지 않은 려객선에 오르는데 어느결에 띄여보았는지 려객선 선장이 반갑게 아는체를 하였다.

바다바람에 고동색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에 다부져보이는 중년의 사나이였다.

《장관님 오십니까?! 반갑습니다. 전전해 가을에 뵙고는 처음입니다.》

《원, 내가 장관감투 벗어내친게 언제라구… 그간 잘 있었소?》

두사람이 주고받는 인사에 갑판에 벌써 콩나물처럼 빼곡이 밀집해있던 선객들이 고리눈이 되여 조봉암과 연경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량미간에 깊은 골이 째져있는데다가 예리한 눈빛이며 꾹 다물린 입매가 록록치 않은 인상을 주는 다부진 몸집의 조봉암을 알아본 두세명의 사람들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조봉암은 그들속에 조용히 끼여앉아 민중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듣자던 노릇이 선장의 인사로 틀어지자 눈꼬리가 긴 두눈에 미소를 담고 모두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하였다.

엄엄하던 기색을 가시고 밝게 웃는 조봉암의 모습은 그대로 너그럽고 인정많은 보통중늙은이였다.

《자 자, 여러분, 좀 자리를 냅시다. 이분으로 말하면 우리 강화섬의…》

선장이 큰소리로 선객들에게 량해를 구하자 연경이가 그의 말을 막았다.

《선장님, 너무 떠들지 마세요. 앉을자리만 있으면 되지요.》

연경의 언짢은듯 한 만류에 《뭐라구?》 하며 욕설을 퍼부으려고 돌아서던 선장은 연경을 알아보고 이내 기색을 바꿨다.

《따님이시군. 생각이 나요. 장관님 모시고 왔댔습죠? 그때보다는 활짝 피여났네요. 그때는 대학생이였던가…

저 장관님, 우리 배 객실이라 해야 마구간처럼 냄새가 역한데… 어데다 모신다? … 내 방으로 갑시다. 퉁탕소리는 좀 나도 거기가 이 배에서는 1등실이라니깐요.…

원 참, 장관님을 이렇게 우리 배에 모시다니… 영광스럽습니다. 지금 강화섬에서는 우리 고장에서 기어이 대통령을 뽑아내게 되였다고 입들이 째졌지요.》

여전히 선장은 제멋에 겨워 수선을 피우며 배고동처럼 굵은 목청으로 마구 떠들었다.

선장도 진보당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조봉암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였다는 소식을 얻어들은 모양이다.

《선장님! 아, 선장님!》

선장의 다사스러운 말이 어데까지 뻗어갈지 아니아니한 심정이 된 연경이 성이 나서 또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 아, … 내가 좀 말이 많습죠. 예예, 이제 입을 다뭅죠. 밤낮 손님들에 치여서 뭐 해볼만 한 소리가 있다구요. 헤, 그러던차에…》

선장이 여전히 주절거리자 조봉암의 미간의 골이 더 깊어지고 눈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그는 진중하게 말을 받아주었다.

《선장, 나를 구차스럽게 만들지 말게. 난 아직까지 내 고향사람들을 위하여 마음뿐이지 하나도 좋은 일 해드린게 없네. 그리고 내 걱정은 말게. 오래간만에 바다길에 올랐는데 해풍도 쐬일겸 여기서 다른 손님들과 함께 가겠네.》

《아니, 안될 말씀입니다. 언감생심 내 고향의 성인을 그렇게 모시면 강화사람들이 이 선장에게 매타작을 하려고 달려들겁니다. 장관님, 어서 갑시다.》

《선장님, 아버님의 말씀대로 하세요. 그리고 그 장관이라는 말씀 걷어주세요. 우리 아버님이 리승만의 장관감투 언제 던져버렸다구요.》

연경이 장관이라는 부름이 듣기 싫어 저으기 증을 내는데 선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만 하였다.

《아, 이 서울아씨 봐요?! 그럼 죽산선생을 장관이라 부르지 말면 뭘로 불러요?! 원, 장관노릇 몇해 하지 않았어두 농군세상 만들어보겠노라 무상몰수, 무상분배요, 농업공동조합이요, 작히나 좋은 일하셨나요?! 그게 글쎄 말로 그치기는 했어도 얼마나 귀맛좋고 고맙다구요.

세도가 하늘같은 리박사와 떡 맞서가지고 냉중에는 장관감투 씨원스럽게 벗어던진걸 강화사람치구 모르는 사람 없지요. 우리 백성들을 무지렁이라 숫보다간 큰코 다친다구요. 눈이 우멍해도 볼건 다 보구 구구표를 외우지 못해도 회계치를건 딱딱 회계쳐서 이 머리속에 착착 적어두구있다우.

내 엊그저께 신문을 볼라니 이젠 리박사 때려붙이고 대통령옥좌에 오를판인데 내 고향의 자랑스러운 인걸을 어떻게 달리 부르고 이 부잡스러운 자리에 어떻게 모신단 말이시우?!》

선장은 연경의 면박이 제사 섭섭하다는듯 침방울을 날리며 열을 올려 법석 고아댔다.

그 소리에 선창에서 소란스럽게 구구거리던 선객들이 박수를 치며 그 말이 옳다고 소리를 쳤다.

《허허, …세상은 한해사이에도 수태 달라졌군.》

조봉암은 선장의 구변좋은 덕담에 이렇게 대꾸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람들앞에서 누가 저 사람처럼 리승만의 뒤통수에 대고 감히 손가락질할수 있었겠는가. 단통 어느 놈이 팔목을 비틀고 사람들은 그런 소리 듣는것조차 무서워서 비실비실 꽁무니를 뺐을것이다.

선장의 말은 어찌 보면 민심의 반영이라 하겠다.

의식구조가 많이 달라져간다. 정치성도 짙어가는가 하면 리승만에 대한 원성도 높아졌다는것을 의미한다.

조봉암은 이런 생각을 더듬고나서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선장도 배사람은 배사람이구만, 배머리돌리듯 척척 둘러맞추는걸 보면.》

조봉암은 강화섬의 배고동소리처럼 굵으면서도 구성진 말씨로 엮어대는 선장의 너스레가 귀맛 좋았다. 쏟아주는 고향의 인정이 후더분하게 가슴에 젖어든다.

강화사람들은 예로부터 외세의 피해와 력대 통치계급의 포악을 남달리 많이 받으며 삶의 터전을 가꾸어온다.

왜놈들과 서양놈들이 대포를 쏴갈기며 이 땅에 침노하였을 때에도 맨 처음 피의 항전을 벌려온 사람들이 강화사람들이다.

강화섬은 예로부터 봉건정부의 부정부패를 반대하여 들고일어났던 의로운 사람들이 포박을 당한채 선창에 딩굴며 풍랑을 넘어왔다가 한많은 세상을 저주하며 불운의 생을 속절없이 끝내던 정배살이고장이다. 력사에 반항아로 전해져온 그들의 후손들도 뭍에서 벌어지는 시국에 대하여 늘 랭소적이며 회의적이다. 조봉암의 조상들도 몇대를 거슬러오르면 리조의 권력에 대항하여나섰던 경상도출신의 한 정배군의 피가 흐르고있다.

조씨가문의 조상들은 락동강류역 창녕의 기름진 옥토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왔다. 그런데 조봉암의 고조부가 지난 세기 중엽부터 벌어졌던 개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이곳에 추방되여 강화섬의 처녀와 가정을 이루고 뿌리를 내렸다.

조봉암의 강의한 의지와 대담성에도, 마니산같은 억척의 신념과 불의에 대한 타협없는 반항의식에도 세월의 온갖 풍랑을 다 이겨온 강화섬의 기개와 뜻이 내배여있는것이다.

참으로 강화섬이야말로 조봉암에게 드놀지 않는 강의한 성격과 훌륭한 인격을 선사한 요람의 땅이다.

조봉암은 선장의 말에서 바다처럼 끈질기고도 드세찬 강화섬사람들의 억센 성미를 다시한번 느끼였다.

《죽산선생님, 어서 가십시다.》

선장이 조봉암을 기어이 선장실에 모시고싶어 그의 팔소매를 끌었다.

조봉암은 선장의 성의를 지내 무시하는것도 도리가 아니였으나 민중과 접촉하는 기회를 놓치는게 아쉬워 그냥 도리질을 하였다.

《선장, 고맙소. 하지만 난 선실에서 이분들과 함께 가겠소.》

《에, 거긴 선생님을 모실 자리가 안된다니깐요. 우선 초만원이 돼서 발 옮길수 없고 쩍하면 뭍놈들 주먹패가 기승을 부려 란장판이 벌어져 눈뜨고 볼수 없지요.》

《그래두… 난 그리로 들어가겠소. 그것도 민중이 사는 모습이니 눈에 익혀둬야 하지 않을가.》

《하, 선생님두… 좋시다. 그렇다면 내 오늘 배삯을 공으로 칠셈으로 선객들을 절반 물리겠시다.》

《물리다니? … 그건 무슨 소리요. 그러면 저 사람들이 이 조봉암을 어떻게 보겠소. 그건 더구나 안될 말이요. 민중세상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이 민중을 깔보는 일이 있어서야 무슨 렴치에 표달라고 하겠소.》

《사정을 드려얍지요. 강화섬이 낳은 대통령될분을 모시는 일인데 백성도 도리가 있어얍죠. 죽산선생님이 강화섬에 왕림하신다면 다 받아줄겁니다. 한절반 내려놓으면 선생님께서 선실에 들어가시여도 불편이 덜어질겁니다.》

권력의 악행에 참말로 백성이 뿌리이고 하늘임을 모르고 사는 무력하고 몰지각한 인간상이 력력한 그의 말을 들으며 조봉암은 그만에야 성을 내고말았다.

《선장, 나를 그냥 낭끝에 몰아세우지 말게. 내가 강화길을 하루 미룰지언정 삯까지 낸 배손들을 배에서 내리도록 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요. 정 그렇다면 내가 선장실로 가겠소.》

조봉암은 하는수없이 정말 립추의 여지가 없는 갑판을 지나 선장실로 향하였다.

그제야 선장도 속이 풀리는지 벙실거렸다.

조봉암과 연경은 그의 뒤를 따라 선장실로 들어갔다.

선장이 한 선원에게 나무걸상 두개를 들려가지고 뒤따라 들어섰다. 그리고는 때가 반질반질한 자기의 안락의자를 조봉암에게 권하고 연경에게도 들고 온 나무걸상을 권하였다.

조봉암은 선장이 쭈그러진 주전자로 따라주는 더운물 한고뿌를 받아들며 물었다.

《그래 어떻소? 좀전에 매표구앞에서 듣자니깐 배삯이 너무 폭등한다구 손님들이 말들이 있더구만.》

조봉암이 이렇게 화제를 던지자 대뜸 퉁투무레한 선장의 볼이 시뻘겋게 달아올라가지고 곱지 않은 어투로 응수하였다.

《에- 말두 마십시오. 저들이 배사정을 알기나 한답디까?

물가라는게 하루밤 자고나면 하늘 높은줄 모르고 껑충껑충 뛰여오르는 판에 배삯이라고 제자리걸음을 할수 있나요? 기름값이 전쟁말기에도 한도람에 1만 2천이였는데 지금은 10만도 옛말이 됐습니다. 엔진 한번 정비하자고 수리공장에 들이밀면 그 값이 너무도 약차해서 볼이 다 얼얼해지는 판입죠.

물가폭등뿐입니까? 달에 달마다 무슨 법이요, 규칙이요 하면서 벌금조항만 자꾸 만들어 이 선장의 등껍데기를 세벌네벌 벗기는 판입지요. 바다출입세요, 물세요, 항로경비세요, 부두세요, 국방세요… 하여간 배를 뭍에 대기만 하면 인천의 탐관오리들이 저마끔 달려들어 갉아내는데 참,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내 배길에서 뼈가 여물어온 놈이지만 지금처럼 배끌기가 고달픈적은 없었지요. 리박사가 이런 말 들으면 귀가 가려워 역증을 내기는 하겠지만 정말 이놈의 세상 콱 문드러졌으면 씨원하겠시다.

제발 죽산어르신네께서 이번에 대통령으로 되시여 물가도 잡고 서민들의 피를 모기처럼 빨아내는 그 여우, 승냥이같은 탐관오리들과 까마귀무리(경찰)의 못된 버릇을 뚝 떼여주시유.

헌즉 배삯 높이는게 이 선장이 고약한 돈벌레가 돼서 그러는게 아닙지요. 그러지 않으면 배를 물에 띄우지 못할 판인데 그럼 강화사람들 장사길이 막히고 숨길이 끊어질 판인데 어쩌겠나요. 하는수없이 배삯도 하루 다르게 올라가게 되는겁지요.》

조봉암은 뻗닿게 떠들어대는 선장의 넉두리에 공감이 가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는 한숨부터 내쉬며 안락의자의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며 물었다.

《바다세란 무슨 세금이요?》

《하, 바다세라는건 한달전에 뭐 해양청에서 만들어낸거라나요. 세금징수라는게 온통 말투레질같은 수작이지요. 배가 물에서 떠다닌다는거지요.》

《물에서 떠다닌다구? … 그럼 언제는 배가 땅우에서 미끄러져 다녔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바다에 배를 띄워 돈을 모은다나요. 그러니 바다에 은혜갚음이 있어야 된다는거지요. 언감생심 개판입지요.》

《바다에 은혜갚음이라? 허허허… 바다은혜라면서 돈은 저들이 먹는다?》

조봉암은 해양청이 새로 내건 세금징수라는게 참으로 괴이하기 그지없어 껄껄 웃었다.

선장도 조봉암이 웃자 말하다말고 배허벅을 들먹거리며 덩달아 웃고말았다. 나라의 《법》이라는게 허망하고 그 집행을 맡아보는 아전들이라는게 하나같이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들이니 나라가 하는 일에 위엄은 고사하고 이렇게 웃음거리밖에 될수 없다.

조봉암은 또 한번 길게 한숨이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리승만의 악정이 배설한 무수한 독소에 시달리는 민중의 고달픔이 피부에 와닿아 가슴을 후벼내는것이였다.

어데 가나 듣느니 못살겠다는 아우성이고 한이다.

선장의 말이 그냥 방안을 처량하게 흔들었다.

《우리 배군들이 당하는 고생이 그뿐인줄 아십니까.

이건 날마다 바다우에서 <북진해상연습>이요, <반공주간>이요, <똥키부대출격태세점검>이요, <섬방위민간연습>이요 … 뭐, 끝이 없시다. 그때마다 해상금지령이라는게 떨어집니다.

그런데 손님들은 몰켜들어 당장 배를 띄우라고 아우성이지요. 내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 이 배가 허술해보여도 강화사람들의 명줄이나 같애요. 별수 있나요. 배는 띄워야겠구 그러자니 길을 헤쳐야 되겠구. 하니 모아들인 돈을 꿍져가지구 해상보안대요, 항 파출소요, 경비정이요 찾아다니는데 그것들은 점점 염통이 커져서 웬만한 돈봉투는 선자리에서 쫙쫙 찢어던지지요. 에? 썩었어요, 썩었어요. 속속들이 썩었어요. 웃대가리부터 꽁지까지 썩었지요.》

선장이 점점 열이 오르자 두팔을 내저어가며 기염을 토하는데 선장실 출입문을 야단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선장이 그쪽으로 달려가며 성이 나서 꽥 고함을 질렀다.

《어떤 놈이야? 문짝이 부서지는걸 보고싶어?! 명동골깡패 아니야?!》

선장이 밸쓰는 기세가 사뭇 바다사나이다운데가 있어 연경이가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다.

선장이 고리를 잡기 전에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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