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3

 

동틀무렵에 갑자기 대문가에서 울리는 초인종소리가 연경의 방으로 전해져왔다.

여느때나 다름없이 새벽일찍 일어나 세면을 하고 화장을 끝내던 연경이가 얼른 뛰여나가 대문의 쪽문을 빠끔히 열어보았다. 초면의 신수멀쩡한 사나이가 서있었다.

《우리 집을 찾아오셨나요. 이 집은 죽산선생님의 댁이랍니다.》

《아가씨는?》

《저는 둘째딸입니다.》

《그래요?! 나는 여기서 왔소.》

사나이는 틀스럽게 양복 웃주머니에서 명함장을 꺼내보였다.

명함장에는 경무대비서실 비서라는 직함과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런데요?》

연경이가 허우대큰 사나이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나는 경무대비서실의 의례담당 비서요. 죽산선생님을 경무대의 조찬에 초대한다는 리박사의 전갈을 전하려고 왔소.》

《조찬에요?》

연경은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전갈이라 뜨아한 어조로 물었다. 그는 의심쩍은 눈매를 짓고 허우대큰 사나이를 깔끔하게 쳐
다보았다.

《아버님께 전달하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절차가 있으니깐요. 아버님께서 당내협의없이 초대를 받아들일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연경이는 일부러 절차를 걸고 시치미를 뗐다.

신익희의 급사를 당하고보니 아버지의 신상관리가 더없이 걱정스러웠다.

어제 밤에 효경이까지 연경의 방에 와서 자면서 아버지의 후보 재출마를 두고 걱정을 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는데서는 자기 말 열마디보다 연경의 말 한마디가 더 효험이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효경이는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아버지마저 여의면 어쩌느냐고 눈물이 가랑가랑해지기까지 하였다. 네가 한번 말씀을 드리되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세우도록 기회를 보다가 잘 말씀드려보라고 부추겼다.

아버지의 신상관리문제로 예민해진것은 그들뿐이 아니였다.

어제 심야에 조봉암의 참가없이 소집된 긴급 당중진회의에서는 조봉암의 신변경비문제가 첫째 의안으로 토의되였다.

토의끝에 이제부터 진보당핵심들로써 조봉암의 집과 당사무실에 대한 경비력량을 증강하며 조봉암의 침실곁방들에는 반드시 측근인물들이 두세명씩 숙박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봉암의 침실도 서울시안의 여러 군데에 정해놓고 자주 옮기도록 하였다.

신당동집에도 새로 중대문을 더 만들어 세우고 2중으로 경비진을 치며 괴한들의 불의습격을 막아낼수 있게 만단의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이 사업들은 중앙본부에서 재정과 특수사업을 담당한 신창균부장이 총괄하게 되였다.

경무대 비서는 연경이가 자기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자 초청이 사절을 당할수 있다는 우려로부터 틀스럽던 태도를 바꾸었다.

비서는 연경의 불신을 해소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한껏 말씨를 부드럽게 하면서 각근하게 주해를 달았다.

《아가씨, 리박사께서 모처럼 죽산선생을 조찬에 초청하시였는데… 다른 문제는 전혀 없구요. …경무대까지는 진보당측 인물들이 모시고 가면 됩니다.》

《이런 일에야 원래 사전합의가 있어야 될게 아닙니까?! 이렇게 새벽참에 찾아오시니 선뜻 대답을 드릴수 없지 않나요?!》

연경이는 여전히 쌀쌀하게 핀잔을 주며 난색을 보였다.

《거야… 리박사께서 새벽에야 비로소 저희들에게 말씀하시였으니 우리들이야 달리할수 있습니까.》

《좋아요, 아버님께 전해드립지요.》

《고맙습니다.》

연경이가 비서를 그냥 대문밖에 세워놓고 쪽문을 닫았다.

몇걸음 옮기던 연경이가 되돌아섰다.

《초청리유를 어떻게 말씀드릴가요? … 당수회담입니까? 아니면 후보들의 대담입니까? 아니면 사적인 용무인가요?》

연경이가 여전히 침착하면서도 상대의 어기를 누르는 담찬 눈으로 상대를 보며 깔깃깔깃하게 따지고 들었다.

《저, 그건… 글쎄 나로서는 딱히 대답을 드릴수 없습니다.》

《의례절차를 너무 소홀히 하였습니다. 대통령후보가 다른 후보를 초청하는 일인데 격식을 차리고 례의를 지켜야 할게 아닙니까. 이건 상대방에 대한 례절없는 무시입니다.》

연경이는 경무대라는 턱을 걸고 도고한 자세로 나타났던 비서에게 따끔하게 훈계하였다.

사나이는 몹시 당황해져서 저도 모르게 뒤덜미에 손이 올라갔다.

《죄송합니다. 문득 내려진 지시이고 서둘러 오다나니… 량해하여주시오.》

권세가 뜨르르한 경무대 비서라는 명함장이 처녀의 다듬어진 훈계앞에 무색해지고말았다.

경무대 비서는 속으로는 (요놈의 계집애가 여간 아닌데.) 하고 괘씸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꼭 빼물었군. 젠장,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나지 않겠는걸.) 하고 탄복해마지 않았다.

아직은 아침녘에 망울을 터친 나리꽃마냥 싱싱하면서도 천진란만해보이는 처녀가 제법 세련된 몸가짐을 보이며 씹어뱉는 말마디 하나하나가 무척 정제되고 씨알이 들어있어 허투로 대하다가는 더 말도 붙이지 못하고 쫓겨날 판이다.

그래 경무대 비서는 짐짓 정중하고도 례절있는 자세를 보여주느라고 왼심을 썼다.

연경이는 짤막하게 주고받은 대화를 통하여 비서가 가져온 초청전갈의 진위에 대하여 확신이 생기자 비로소 상냥한 어조로 량해를 구하였다.

《미안합니다. 수고스러운대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연경이는 마당을 총총히 가로질러 조봉암의 침실앞에 있는 대기실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방에서는 윤기중과 신창균이 자고있었다.

그들이 깨여나자 방에 들어선 연경이가 손님이 찾아온 사유를 전하였다.

간밤을 새우다싶이 했던 그들은 바지를 꿰고 일어나앉긴 했어도 잠기에 눌리워있다가 리승만의 비서가 왔다는 소리에 눈들이 떼꾼해졌다.

《모를 소리다. 비상시국에 두상태기가 식전바람으로 우리 당수는 왜 찾는다는거냐? 조찬은 무슨 놈의 조찬… 명함장을 봤냐?… 잡놈이 아니야?! 새벽바람에 수상하다.》

신창균이 얼른 웃옷에 팔을 들이밀다가 퉁명스럽게 역증을 냈다.

《명함장을 보았습니다. 초청도 옳은것 같고…》

연경이는 신창균의 말에 주눅이 들어 자신없는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가만, 떠들지들 마오. 내가 나가보지. 경무대비서실 사람들이라면 내 두루 아니까. 명함장이나 봐선 확인을 다할수 없소.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건너야 할 때가 아니요?!》

윤기중이 신창균의 옷섶을 잡으며 일어섰다. 리승만의 직계에서 활약한바도 있는 윤기중은 그곳에서 복무하는 리승만의 충견들과 대부분 면식이 있었다.

신창균도 간사장의 말이 그럴상싶어 윤기중을 앞세우고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서다가 자기까지 나서는게 멋적은 생각이 들어 이내 돌아섰다.

《아, 간사장!》

윤기중이 대문을 열자 초조하게 기다리고있던 경무대 비서가 구원자라도 만난듯 오른손을 번쩍 머리우로 올리며 반갑게 소리쳤다.

《아, 이거 정비서로군. 무슨 바람이 불어 새벽참에…》

《예, 조찬초청심부름을 왔시다. 빨리 준비하여주시오.

그런데 방금 나왔던 그 처녀 여간내기가 아니더구만. 하마트면 문전축객을 당할번 했시다.》

《하, 우리 연경서기말이요? … 조봉암선생의 둘째따님이지요. 진보당추진위원회의 홍일점이라오. 단단히 땀개나 뽑았던 모양이구만.》

《원, 봇나무처럼 민츨한 아가씨가 그렇게 고추알같다구야. 경무대신임장도 통하지 않더구만. 죽산선생이 따님건사를 잘하셨더라구요. 과시 녀걸의 싹수가 보인다니깐요. 여, 들어들 오라구.》

경무대 비서가 바깥에 대고 큰소리로 소리치자 금줄을 모자에 두른 경호원들이 우르르 대문안으로 쓸어들었다.

무장인원들의 돌입에 당황해난 윤기중이 고함을 내질렀다.

《이건 뭐요?! 어쩌자는거요?!》

경무대 비서가 벙글거리며 설명하였다.

《리박사의 호의요.》

윤기중의 눈확이 굳어지면서 눈섭머리가 곧추섰다. 그는 중절모까지 벗어들고 두팔을 벌리며 경찰들을 막아섰다.

《리박사의 호의? 무슨 놈의 호의가 이래?! 섯! … 돌아섯!》

《하, 그러지 말라는데. 이 사람들은 경무대 경찰서 경호원들이요. 이제부터 선거날까지 죽산선생의 경호를 담당하게 될거요.》

《그래? … 호의는 고마운데… 등 치고 배 만져주는 일 아니요? …》

윤기중은 께름직한 생각이 들어 두팔을 거두지 않은채 여전히 큰 눈을 두릿거렸다.

리승만의 경호원들에게 그의 정치적적수로 나서는 조봉암을 맡긴다는게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다. 마치도 승냥이무리에게 양을 지켜달라 맡기는 격이 아니겠는가.

리승만이 신익희를 쓰러뜨리고나서 내외의 분노와 의심을 무마시키려는 수작이 분명하다. 또는 앞으로 있게 될 불상사를 미리 예상하며 지금부터 빠져나갈 뒤문을 하나 만들어놓는 수작일수도 있다.

윤기중의 두뇌는 이렇게 재빨리 회전하였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봐야 이건 례사로운 일같지 않다.

경무대 비서가 윤기중의 신중한 낯빛에서 그의 의심짙은 속심을 대충 읽고 말투에 진정을 담으려고 애쓰며 설명하였다.

《너무 색안경 쓰고 보지는 마시오.

리박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원래 신익희의장의 경호도 나라에서 맡아해야 하는건대 자기가 놓치고있었다고 개탄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죽산선생의 주변을 잘 지켜주고 주치의도 한두명 붙여주자고 하시였소. 여기에 다른 의문을 붙이지 말고 리박사의 호의를 받아들일것을 부탁하오.

이 사람들은 내가 직접 떠나오기 전에 선발해서 데리고 왔으니 다른 일이 없을거요. 주치의사는 당신네가 선발해서 나라부담으로 데려다 쓰도록 하시오.》

경무대 비서의 설명에서 어느 정도의 진실이 느껴지자 윤기중은 다소 누그러졌으나 아직도 뜨아한 기색이다.

《그런데 아까 연경서기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어이구, 제복쟁이들까지 몰고 들어서다간 당장 그 아씨님께 퇴박을 맞겠는데… 하하… 내 말 믿으시오. 아무리 경무대 비서라 한들 목을 몇개 건사했다고 이런 일 놓고 장난치겠소?》

윤기중이 경무대 비서가 주어대는게 정 헛소리는 아닐것 같아 정색을 하고 경호원들에게로 돌아섰다.

《진보당의 간사장선생이시오, 국회의원이시구.》

경무대 비서가 경호원들에게 정중하게 소개를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손을 들어올리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제군들, 고맙습니다.》

윤기중은 경호원들의 제식인사까지 받자 더는 어쩌는수가 없어 우선 이렇게 답례를 했다. 그는 중절모를 점잖게 다시 쓰고 경호원들을 한사람한사람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 다음 경무대 비서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곧 죽산선생님께 보고하겠으니 기다려주시오.》

윤기중은 방으로 돌아와서 대기하고있는 신창균과 연경이에게 경무대 비서의 말을 전하고 경호원들까지 열명이나 왔다고 알렸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리승만이 어찌되여 갑자기 그런 선행을 배푼단 말이요? 늑대가 양으로 됐다는건가?! 그래 신익희를 잡아먹더니 이제는 우리 당수까지 공개적으로 물어메치겠다는거요?

우리 당수의 활동을 경호라는 구실로 구속하자는것이 분명하오. 여차하면 손쉽게 변을 낼수도 있구.

조찬초청도 우습단 말이요. 후보로 나선 인물이 후보로 나선 상대를 만나는것인데 그 무슨 회동의 성격이 분명해야 될게 아닌가?!

공식회동인가, 비공식회동인가? 론의문제는 무엇인가? 신익희가 죽자 별안간 도전자에게 선심베푸는게 수상하오.

이따위 선심공세로 노리는게 무얼가? 이것부터 해명해야 하오.

난 일단 반대요. 경호원들도 철수시키고 조찬제의도 묵살해버립시다. 말도 안되는 소리요.》

신창균이 일장 열을 올리며 리승만의 제의에 깔려있을수 있는 흉계를 앞질러 신랄하게 까밝혀놓았다.

윤기중도 신창균의 주장이 그럴상싶다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연경이도 그들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하였다. 경호원들을 달고 왔다는 소리가 더구나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셋의 의견이 무시해버리자는것으로 합의가 돼가는데 안방침실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조봉암이 나왔다.

《허허… 왜들 새벽바람에 깨여나 3자회담이요?》

조봉암은 이들의 대화를 자기 방에서 이미 귀동냥하고 나온지라 이렇게 롱조로 물어놓고는 윤기중의 보고에 앞서 결론부터 내놓았다.

《가야지. 령감이 아침을 함께 먹자고 하는데 싫다고 돌아앉으면 인사법도가 아니지 않을가? 나도 경무대구경을 한지 오래오. 한번 가보구싶구만.》

조봉암의 셈평좋은 말에 신창균이 볼부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범의 굴에 찾아가는것 같애서…

뭔가 불길합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중대시국에 사소한 위험요소라도 피하는게 순리입니다.》

《부장선생님의 말씀이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경이도 맞장구를 쳤다.

《허허… 범을 잡자면 범의 굴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무서워할게 없소. 그 령감이 아침상을 내게 안겨주고 흥정을 붙여보자는거겠지. 공밥을 먹여줄라고 부르는건 아닐거구.

한즉 그 흥정거리가 뭐겠는지 들어보는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것 같소. 사전통보도 없이 식객을 불러들이는걸 보면 령감이 뭘 급해맞은게 있는것이 틀림없어. 암만해두 겸상단짝으로는 이 조봉암이 두루두루 어울리지 않겠는데… 그 무슨 중대사가 걸려있지 않을가? …

하여간 식객으로 와달라니 일단 가주는게 례절일것 같구만.》

그 무슨 대꾸를 할 여지가 없는 소리에 세사람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을뿐 더 반대를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만약의 일이 있더라도… 누가 함께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연경이가 뒤로 물러났으나 아무래도 미타해서 타협조로 한마디 하자 신창균도 윤기중도 그게 좋겠다고 지지하였다.

조봉암은 딸을 향하여 껄껄 웃었다. 시원스러운 웃음소리가 다소 긴장해진 방안의 분위기를 눙쳐주었다.

《나를 청했으니 나만 가야지 괜히 더 따라갔다가 아침상에 숟가락 하나만 놓아주면 그런 옹색한 일이 어디 있을가?!

하하하…

걱정말아. 손님을 제 집에 불러들이구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아무렴 좀스러운 일을 벌려놓을가.

령감이 분명히 나 하나 밥상앞에 앉혀놓고 쏙닥거리고싶은게 있겠지. … 짐작되는것이 있소. 내 하고픈 소리도 있구. 그리고 알고픈것도 있구.

어떻소? 이번 걸음이 내게도 두루두루 의미가 있을것 같구만.

그러니 거, 리승만의 호의라는것도 받아들이기요.》

《좀더 생각을 굴려볼 일이 아닐가요? 리승만의 흉칙한 저의가 느껴집니다.》

윤기중이 아직도 미타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비치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건 반드시 선생님에 대한 모해가 있으리라는 경종이나 같은겁니다. 신익희를 모살해버리고보니 리승만이 세간의 눈총에 지금 만신창이 되고있지요.

리승만을 바라보는 눈이 다들 곱지 않습니다. 내부에서도 소요가 일어나고있습니다. 그러니 부랴부랴 요술을 피우는거지요. 승냥이가 염소흉내 내고싶어하는겁니다.

자, 봐라. 난 조봉암후보와 정치의 상담역으로 늘 접촉하며 내 경호원들까지 뚝 떼서 붙여주었다- 그러고나서 또 더러운짓을 벌려놓고 수염을 쓱 쓸어볼판이지요. 령감의 속궁리 야밤에 불보듯 뻔합니다.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 경호원들속에서 칼을 감추고 온 놈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자객 한두놈 박아넣을수도 있습니다.

만에 하나 있을수 있는 일도 피해야 할 시국에 이런 위험천만한 일은 허용될수 없습니다. 죽산선생님은 이제는 자기 결심대로 거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중대문제는 지도부의 합의를 보아야 합니다.》

신창균이 리승만의 속내를 버선목 뒤집듯 발가놓으며 자기 의견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신창균은 이런 일에 비상한 후각과 쓰라린 교훈을 가지고있었다.

김구의 측근으로 있을 때 신창균은 그를 암살한 안두희가 김구에게 접근하는데 대하여 무척 경계하고 김구에게 그의 방문을 받아들이지 말것을 여러번 경고하였다.

안두희는 해방후에 북에서 도망쳐나온 놈으로서 신창균의 눈에는 그때 벌써 관상에 음기가 성하고 안팎이 다른 언행때문에 수상한 인물로 비쳐져있었던것이다.

김구가 설마하며 신창균의 충언을 가볍게 물리치군 하다가 끝내 그놈이 날린 총탄에 절명하고말았던것이다.

연경이도 윤기중도 신창균의 앞지른 소리에 가슴들이 서늘해져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조봉암은 신창균의 말에 진실이 있을수 있다고 받아들이면서도 헌헌한 웃음으로 대답하였다.

《허허… 신부장이 결심하면 되는거지 밥먹으러 가는것까지 합의요?》

그는 신창균의 주장을 그저 무시할수 없어 뒤말을 이었다.

《좋소, 이렇게 합시다. 우선 우리가 경무대로 간다는것을 본부에 전화로 통보해놓읍시다. 그리고 경무대까지는 우리 차로 갑시다. 경무대대문까지는 몇명 함께 갑시다. 20분후에 떠나도록 하기요.

연경이는 효경이더러 양복을 준비하란다고 일러라.

경호원들은 이렇게 하자구. 일단 우리 집에 좋은 일 해주러 왔다니 아침식사를 륭숭하게 대접해주고 내가 올 때까지 접수실에서 기다리게 합시다. 례의야 지켜야지. 그 친구들 처리는 내가 온 다음에 하여도 늦지 않소.》

조봉암이 일단 화제를 맺고 짜르자 세사람은 군말이 없이 인차 자기 소임을 찾아 방을 나섰다.

20분후에 자동차는 대문을 벗어나 경무대를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뒤로 경무대비서의 자동차가 달리였다.

경호원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를 가지고 따라서려는것을 윤기중이 막아섰다. 오늘 여기서 지형도 료해하고 경찰전화도 가설하고 경호절차와 형식도 신창균부장과 합의해야 되겠으니 움직이지 않는것이 어떠냐고 점잖게 눌러놓았다.

경호원들은 중절모를 틀스럽게 눌러쓴 신사풍의 정객답게 무게있게 처신하는 윤기중의 주장에 저들끼리 수군덕거리다가 어쩔수없이 물러섰다.

김봉무가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아갔다. 앞좌석에는 연경이 다소 긴장되여 앉아있었다.

조봉암은 뒤좌석에 윤기중과 나란히 앉아 차창밖으로 스쳐가는 서울풍경을 내다보았다.

이른새벽이라 거리에는 행인들도, 오가는 자동차도 별로 없어 조용하였다.

이따금 거리의 중심도로를 따라 전차가 덜커덩거리며 지나간다. 승객들도 몇되는것 같지 않았다.

다만 물장수들이 물지게를 지고 분주히 오가며 굳게 닫겨진 집대문들을 두드리거나 물을 사라고 소리를 치는것이 보였다.

아직도 도시의 곳곳에 상수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적지 않은 시민들이 한강물을 사마시며 살아간다.

시안의 중심거리에 들어가자 골목골목에 거지아이들이 금방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듯 삼삼오오 떼를 지어 굶주린 배를 채워줄 귀인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눈을 아프게 하였다.

《후-》

조봉암은 가슴이 꺼질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리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뭐니뭐니하여도 저애들부터 거두어주어야 하겠는데…)

조봉암은 이렇게 속을 끓이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디로 가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너무도 비참해서 정사에 몸을 담고있는 자기가 죄스럽기만 하다.

조봉암의 생각은 리승만에게로 뻗어갔다.

두억시니같은 령감의 상판이 눈앞에 어지럽게 떠오른다.

그 령감과 상종하여온지 이제는 10년세월이 되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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