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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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링이 리용하는 전용방은 조선호텔의 3층 5호실이였다.

이날 다울링은 홀로 쏘파에 후렁후렁한 잠옷바람으로 앉아 커피잔을 기울고있었다. 급히 이 방에 틀고앉은 리유가 있었다.

다울링은 어제 저녁에 미국무성의 긴급암호지령을 받았다.

《2번이 사라진 현시점에서 미국은 더는 현지주민들의 선택권을 존중할수가 없다. 3번에 대한 선거자들의 지지률이 압도적이라 하지만 워싱톤은 아직 그를 신뢰할수가 없다. 따라서 2번의 사망으로 달라진 선거정국을 절대로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미국은 의연히 1번을 선호하는수밖에 없게 되였다.

서울대사관은 금일부터 선거일까지 비상긴급체계로 넘어갈것이다.》

다울링은 애매몽롱한듯싶은 국무성의 암호지령의 의미를 즉시에 충분히 리해하였다.

신익희의 죽음이 백악관의 뒤통수를 후려친것이다. 미국무성을 벌컥 뒤집어놓은것이다. 미국무성은 리승만과 신익희로 압축된 서울에서 인차 벌어질 3대《대통령선거》의 전망에 대하여 비교적 중도적인 립장을 취하였다. 미국으로 볼 때 신익희는 미국에 대한 《충정도》에 있어서나 지도력에 있어서나 그리고 국제사회나 현지에서 차지하는 무게에 있어서 리승만과는 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신익희가 당선된다고 하여도 워싱톤과 서울에 현재 설정되여있는 수직종속체계에서는 절대로 변함이 없을것이라는것을 중시하고있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오늘의 시대에는 지나치게 독선적이며 과대망상적이고 선거자들 과반수의 도전을 받고있는 리승만보다 신익희를 세워놓는것이 미국의 체면상 리로울수가 있었다.

나이들수록 세계여론앞에서 독재적이며 변덕스러운 정치의 실책으로 현 통치권은 물론 미국의 영상까지도 마구 더럽히는 리승만을 신익희와 바꾸는것이 바람직하다는것이 워싱톤정가의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였다.

미국의 남조선전문가들속에서는 신익희가 몸을 담고있는 민주당의 숭미반공적체질에도 신뢰가 깊다. 민주당이란 리승만의 자유당과 모든 면에서 한 눈금도 곯지 않고 어깨를 다투는 반공극우보수세력의 쌍기둥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다투어가며 통치권을 바꾸어감으로써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눅잦혀 《정치적안정》을 유지해가는 미국의 정치문화를 이제는 남조선에서도 실험해보자는것이 백악관의 일부 모사진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악관은 리승만과 신익희와의 대결로 압축된 남조선의 선거구도를 놓고 어느쪽이나 이겨라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양너머 속국을 넘보고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이 선거정국에 영향을 주거나 지나친 간섭으로 낯짝 깎이지 않게 되였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그런데 신익희가 죽고 조봉암이 그 자리에 나서게 되였다. 남조선의 선거전을 놓고 허리띠를 풀고 졸고있던 백악관과 국무성과 랭글리(미중앙정보국이 자리잡은 곳)가 후닥닥 잠에서 깨여났다.

미국무성과 미중앙정보국도 밤샘을 해가며 조봉암의 실체에 대한 전면적인 정밀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사의 기본징표는 조봉암이 미국의 리권을 어느 정도에서 지켜줄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리상적인 척도는 미국에 충실한 주구로 될수 있는가 하는것이다. 그에 기초한 판단이 백악관의 지휘밑에 심중히, 신속히 나왔다. 그것이 바로 서울대사관에 보내는 미국무성의 짤막한 암호지령으로 함축된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다울링의 지도밑에 서울대사관에서도 동시에 진행되였다. 다울링도 남조선에서 진행되는 선거에 대하여 국무성과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있으면서도 다소 차이가 있었다. 다울링은 조봉암이 선거에 나선데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여왔다. 과대망상에 빠져있는 리승만에게 한번 되게 경종을 울려놓고 얼을 쭉 뽑아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를 놀래운것은 대사관의 여러 기관들에서 급작스럽게 열린 여론조사결과였다. 조봉암이 압도적우세를 보이고있는것이다.

다울링은 공보원에서는 도서관에 찾아오는 학생층과 지식인들을 대상하게 하고, 대사관 경제부서에서는 농민들과 시장에 모여드는 장사군들과 가정주부들을 대상하게 하고, 무관실에서는 현역군인들을 대상하게 하여 리승만과 조봉암에 대한 지지률을 조사하게 하였다.

그런데 모든 단위에서 조봉암이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였다. 지어는 군부에서도 80%이상이 조봉암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였다. 청년학생들은 거의 전부가 조봉암을 지지하였다.

다울링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였다. 아직까지는 리승만이 남조선에서 그 누구와도 견줄수 없는 반공, 숭미에 뼈속까지 젖어있는 첫째가는 인물이다. 이번 선거에서 다울링이 조봉암에게 기대하는것은 다만 리승만의 기를 꺾어버리고 리승만으로 하여금 미국에 더욱 철저하게,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하는것이다.

조봉암의 평가를 놓고 여러 련관부서들에서도 격렬한 론쟁이 있었다. 그의 인간적무게나 지도력이나 남조선사람들의 신뢰도에 있어서는 일치하게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기타 문제에서는 견해들이 달랐다.

남조선에서 제일 오래동안 복무한 경력자이며 남조선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풍습에 이르기까지 도통하고있는 인천령사관 주임연구원 롤만과 극소수의 인물들은 조봉암을 통치권의 중심에 세우는것이 미국에 있어서도 가장 리상적이라고 력설하였다.

그런가 하면 남조선의 정치인물들에 대한 감시와 분석평가를 계통적으로 해온 미8군방첩대장 버드대좌가 조봉암은 어제날의 공산주의자로서 오늘도 래일도 그의 사상적경향에 있어서 본질은 공산주의라고 단언하였다. 버드의 주장에 기울어지는 사람들이 압도적이였다.

대사관의 종합적인 평가는 버드에게로 기울어졌고 다울링도 그쪽으로 손을 들어주었다. 선거대책도 리승만당선에로 모아졌다.

국무성의 암호지령까지 받자 다울링의 결심도 확고해졌다. 선거정국을 손아귀에 거머쥐여야 한다. 밤하늘의 달구경하듯 할수는 없다.

선거일정을 따져보고나니 다울링은 더욱 급해맞았다. 선거날자가 눈앞으로 박두하여온것이다.

다울링은 미국대사관의 전체 성원들과 남조선에 와있는 미국의 여러 기관들의 우두머리들을 모여놓고 이제부터 선거비상긴급체계로 넘어간다는것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대사관 정치참사에게 오전중으로 선거대책방안의 구체적인 세부를 완성할것을 일임하고 이리로 달려와 틀고앉았다.

미국무성은 현지정치정세에 대한 다울링의 보고를 접수하고 다울링의 대사임명은 예정대로 5월 15일에 진행되지만 임명장을 받기 위하여 워싱톤으로 돌아오지 말고 선거를 치를 때까지 서울에 눌러앉아 리승만을 지원하기 위한 제반 작전들을 지휘하라는 지시를 보내왔다.

다울링이 아예 호텔에 눌러붙을 심산으로 양복까지 벗어던지고 호텔식당에서 날라온 식사를 대충 하였다. 밤샘의 후과로 몰려드는 피곤을 커피로 쫓고있는데 이미 지시를 받은 남조선통치권을 떠받치고있는 주요인물들이 줄을 지어 나타났다.

맨 처음으로 달려온건 이번 선거를 총괄해보는 내무부 장관 권태구였다.

그뒤를 이어 자유당 선거위원장 량지학과 경무대비서실의 사회담당 수석비서가 들어섰다.

그들은 쏘파에 까치다리를 하고 밤을 지새운탓인지 충혈진 눈으로 창밖을 멍청해서 내다보고있는 다울링에게 허리를 깊이 꺾어 절부터 하였다.

그 다음에는 각각 자기의 신분을 밝히였다.

통역이 그들의 직위와 명함을 다 전한 다음에야 다울링은 그들에게로 손을 가볍게 들어 답례를 하였다.

다울링은 서두름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을 주섬주섬 걷어입었다. 그는 거울앞에 가서 정장을 꼼꼼히 살펴보고나서 원탁뒤에 있는 안락의자에 가서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삐뚜름하게 앉았다.

다울링은 문가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있는 집권층의 요직인물들을 찬찬히 살피다가 굵은 저음으로 불렀다.

《각하들!》

다울링은 서울의 통치권인물들을 만나면 이렇게 부르군 하였다.

그 부름에 너무도 조롱기가 다분해서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멍텅구리들!》하는 소리로 들려 기분이 잡치군 한다.

리승만의 선거전을 지휘하고있는 우두머리들은 다울링의 다음말에 껑충 놀라 자세를 바로잡았다.

《당신들의 선거정국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무엇보다도 미국은 리승만박사의 재선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는것부터 전하고저 합니다. 따라서 우리 대사관의 활동도 당신들의 전략적목표와 일치되는 방향에서 진행되리라는것을 확언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선거정형을 분석한데 의하면 당신들은 수세에 몰리고있습니다. 무조건 역전시켜야 합니다.

이 시각부터 선거당일까지 나도 이곳에 자리잡고 당신네의 선거업무를 지켜보겠습니다. 오늘부터 당신들은 자기들의 활동정형에 대하여 나에게 직접 보고를 하되 저녁 10시부터 당신…》

다울링이 맨 선참으로 방에 들어선 권태구를 향하여 손부리를 내밀었다.

《내무부 장관 권태구입니다.》

권태구가 허리를 굽석거렸다.

《당신부터 30분정도의 간략보고를 해야겠습니다. 10시 30분부터는 당신…》

다울링의 손부리가 량지학에게로 옮겨졌다. 그러자 량지학이 그 손부리가 자기의 면상을 찌를듯이 겨누고있는것이 불쾌해서 뚝뚝하게 대답하였다.

《자유당이요.》

인차 다울링의 허세가 약간 수그러들었다.

자유당에서 비교적 목대가 꿋꿋한 인물이라는것을 다울링도 알고있었던것이다.

《좋습니다. 자유당에서는 그 시간에 해주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

《경무대 수석비서…》

《아, 좋습니다. 경무대 대표는 마지막으로… 11시경에 해주면 되겠습니다. 당신들의 보고는 그날중으로 백악관에 전달되게 됩니다.

백악관이 당신네 선거에 거대한 의의를 두고있는데 대하여 더 부언하지 않겠습니다.》

《알았습니다.》

《다들 돌아가시오.》

다울링이 이렇게 짤막히 지시를 떨구고 내쫓는 손시늉을 하자 량지학과 경무대 비서는 재빨리 사라졌지만 권태구는 문가에서 되돌아섰다. 그는 굵은 허리를 꺼꺼부정해서 소심하게 말을 꺼냈다.

《각하, 한마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다울링이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서울통치권에서 입심 사납고 저돌적인자로 소문난 권태구가 또 무슨 황당한 수작을 꺼내놓을려는지 호기심도 동하였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 사람들의 정치의식이라는게 발바닥입니다. 민주라는것도 아직은 자리잡지 못하였고 정치표현방식도 미개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즉 이런 무지한 백성과 비민주화된 사회에서 미국처럼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선거>를 치르자니 이게 보통 고역이 아닙니다.》

권태구가 두손으로 형용까지 하면서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 고달픔을 하소연하자 다울링이 거세게 반응하였다.

《장관! 당신은 지금 뭘 지껄이자는거요? 그래서?  …나에게서 무엇을 얻자는거요?!》

다울링의 예견치 않았던 까박에 권태구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되여 굳어졌다.

권태구는 사실은 내무부 장관으로서 이제 선거를 둘러싸고 제가 휘몰아가야 할 선거부정의 회오리에 대한 책임운운이 거론되는 뒤날 미국이 눈을 감아줄수 있다는 담보를 받아내고싶어서 한마디 주어섬겨봤던것이다.

선거전례를 훑어보면 선거직후에는 반드시 미국쪽에서 군사설을 몇마디씩 하군 한다. 포식뒤에 흔히 있는 이리들의 게트림같은것이였다. 실은 국제적인 여론을 피할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미국이 벌리는 교활한 수작이였다. 문제는 그때문에 노상 선거를 치르고나면 흔히 그 란리판을 벌려놓은 내무부 장관들의 목이 성해본 일이 없다는데 있다.

부정선거의 원흉을 잡아내라는 여론과 선거자들의 목소리에 미국이 고양이소리만큼이라도 합쳐주기만 하면 첫번째 올가미는 늘 내무부 장관의 목에 걸려 선거제물로 진상되는것이 선행자들의 가련한 말로이다.

권태구는 이제 또 그 아비규환의 란투극을 끌고나갈 위험천만한 멍에를 메기 전에 자기의 목건사를 위하여 다울링한테서 아예 담보를 받아내고싶은 심기가 발동된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말뒤에 숨겨진 말을 가려낸 다울링이 말꼭지 떼기 바쁘게 호령질이다.

권태구는 비둔한 체통이 순간에 김빠진 고무풍선처럼 오싹 졸아드는듯싶었다.

다울링도 지금 권태구의 속심을 정확히 넘겨짚고있었다.

(가련한 인간, 불쌍한 인생…)

그것이 이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더욱 키질하였다.

(그럼 뒤날에 너대신 날 제물로 바쳐달라는거야?! 제 몸값두 모르구 설치는 미욱한 놈 같으니…)

만약에 권태구가 반지빠르게 요구하는대로 미국은 너의 놀음에 눈을 감아줄것이라고 얼빠진 소리를 한마디라도 할것 같으면 뒤날에 그 말 한마디가 제 목에 감겨들게 되리라는것은 불보듯한 일이다.

력사란 언제나 가변적이다. 통치자의 구미에 따라 그려지는 그림과도 같은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시각에 서울에서 미국을 대표하고있는 이 다울링은 자기의 원칙과 립장을 력사의 심판대를 피할수 있도록 제때에 선포해놓아야 한다.

《이것 보시오, 권태구씨!》

다울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도 수만청중을 향하여 연탁에 나선듯 장중하게 대답하였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의 보루이고 그 구현을 위한 세계적사명을 지니고있는 자유의 성지요. 나는 이곳에서의 선거도 가장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으로 진행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있소.

권태구씨, 내 말이 리해됩니까?》

《예? 예, 물론입지요.》

다울링의 모순적인 말을 들으며 얼음판에 자빠진 소눈깔처럼 두눈만 멀뚱거리고있던 권태구는 헤식은 웃음을 짓는수밖에 없었다.

다울링은 상대를 매섭게 쏘아보다가 그 큰 몸을 어떻게 건사할지 몰라 연신 목덜미를 팔소매로 닦고있는 꼴이 불쌍하기도 해서 그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잠시 방안을 오락가락하였다.

내무부 장관의 지능계수가 낮아도 한심하게 낮은것 같다. 저런놈을 다 나라의 행정관리를 책임진 자리에 올려놓다니. 리승만이 얼마나 통치하기가 쉽겠는가.

다울링은 리승만이 이놈에게 선거라는 복잡다단한 일을 맡겨놓은것이 참 신통력이 있는 현명지책이라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 무식한 인간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단순한가.

이제 선거나 치르면 저놈에게는 내무부는 물론 정계의 어느 자리도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 하긴 저따위쯤이야 선거전에서 맹활약하여 몸값이나 하게 하고 제물로 써버림이 마땅하지.

어쨌든 지금은 저런 망둥이같은 인간이 필요한 때이다. 권태구는 지금 이곳에서의 선거에서는 반드시 방망이가 제일이라는 소리를 하고싶어한다. 여기서는 단순명백한 그것이 선거에 대한 가장 적합한 정의로 되는게 아닐가.

다울링은 자기의 직무에 대하여 다시 되새겨보았다. 그것은 미행정부의 정책적의도를 실현하는 자리다.

백악관은 지금 리승만을 다시 올려놓을것을 결심하였다. 모든 수단과 가능성을 탐구하고 동원해야 한다. 방망이가 제일이라면 그걸 마음껏 휘두르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저 아둔한 작자에게 대사의 얼굴에 흠자리는 내지 않으면서도 주먹을 휘둘러대든 총탄을 날리든 리승만을 올려놓기만 하라는 자기의 립장을 전달할수 있겠는가.…

다울링은 잠시 망설이다가 보다 가까이 접근된 해석을 주리라고 결심하였다.

《권태구씨,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들어봤소?》

《글쎄요…》

《패전한 장수에게는 죄를 묻지만 전승한 사령관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은 들어봤소?》

《글쎄요…》

《글쎄라니?! 당신이 정말 경찰방망이 틀어쥔 장관은 맞소?》

권태구는 그 무슨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의 철리라도 넘겨주는듯 우쭐해가지고 자기를 중학교 학생 다루듯 하는 다울링의 말에 엿 먹어라 하는 배심이였지만 오래지 않아 정식 서울의 총독으로 취임할 다울링에게서 뒤날에 언질로 삼을수 있는 말을 한마디라도 우려내고싶어 그냥 어리숙한 흉내를 냈다. 두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드디여 마음내키는대로 해보라는 상대의 가리워
진 속대사를 찾아냈다.

《고맙습니다, 각하!》

권태구가 그제야 가슴을 쭉 펴고 사뭇 기운차게 소리쳤다.

다울링은 권태구가 방안에서 나간 다음에도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권태구의 울퉁불퉁한 상통에 떠돌던 왈패스러운 살기를 생각하고있었다.

이제 저놈이 남조선천지를 폭압과 피비린 전장터로 만들어놓을것이다.

벌써부터 그의 눈앞에는 수라장이 된 선거장들이 보이였다.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하는수 없다. 나는 백악관의 령을 따르는 현지대표이다. 그래, 그렇구말구.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것이 미국식의 실용과 실존이 아닌가?! 죄는 저놈들에게 씌워놓으면 된다.

미국의 외교력사에는 목이 잘린 식민지의 독재자들은 여럿이 되지만 미국의 대사가 목이 날아난 례는 없다.

다울링, 기운을 내라!)

다울링은 으스스하게 공포가 휘감겨들자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자기를 달래고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가다듬었다.

다울링은 민주당대표이며 민주당 선거위원장인 고병직이 방에 들어설 때까지 그냥 방안을 거닐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다.

고병직은 너렁청한 호텔방에 들어서자 다울링이 내미는 손을 건성 잡아주고는 제 먼저 쏘파에 가서 까치다리를 하고 틀스럽게 앉았다.

그는 이 방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다울링이 접대부를 초인종으로 불러들여 커피를 끓이게 하고 접대부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커피를 잔에 부어 내밀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다울링에게 차거운 눈길을 던지고있었다.

그는 행동거지가 무척 완만하고 거방스러운데가 있었다. 그것이 리승만세력과 어깨를 겨루는 우익야당의 당수라는 직함과 어울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을 쉽게 얼어들게 한다.

실한 뼈대에 바위턱처럼 든든해보이는 뭉싯한 어깨, 쩍 버그러진 가슴은 벽도 문이라고 밀어댈 미욱함과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살집도 좋아 온통 투실투실한게 비게덩어리같고 망짝처럼 류달리 큰 처진 엉덩이는 한번 묵직하니 들어앉으면 지레대로도 들어일구기 어려우리만치 끈덕지고 지독스러운 성미를 대번에 짐작케 한다.

너무 많이 붙은 살점으로 흉해보이는 상판에 벌떡 뒤집어진 두툼한 입술과 눈섭이 없는 살진 눈두덩이, 마마자국이 두세군데 깊게 패여있는 크고 살진 주먹코가 자꾸만 벌름거릴 때면 전체 인상이 징그럽고 심술궂어보인다.

민주당안에서 고병직의 아첨군들은 자기네 두령이 호랑이상이라고 우겨대지만 아무리 분칠을 하고 봐주어야 못생겨도 너무 안생긴 얼굴이다. 그의 상판이 얼마나 안생겨먹었는지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모상을 그대로 빼문 딸에 대해서까지 서울장안에서 심심치 않게 돌아가는 객담이 있다. 그 녀자를 보면 세번 크게 놀라게 된다는… 처음에는 뒤모습이 하도 아릿다워 놀라고 불러놓고 마주서면 너무 못생겨 두번째로 놀란다고 한다. 그 다음 아버지의 직함이 야단스러워 세번째로 크게 놀란다는 희극적인 얘기다.

리승만이 통치권을 처음 만들어낼 때 하지의 강한 입김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고병직을 측근에서 밀어낸 리유는 그가 코코에 말짼 하지의 심복이라는 리유와 함께 그 미욱해보이는 관상때문이라는 설도 나돌았다.

다울링은 고병직이라는 인간의 친미적인 경향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파악이 있었다.

고병직은 젊은 시절부터 철저하게 숭미분자로 살아온다. 미국선교사가 세운 연희전문학교에서 그리스도교에 중독된 고병직은 1914년에 학교를 졸업하자 미국에 가서 대학을 다니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에 건너온 고병직은 그리스도교청년회의 리사로 있으면서 당시 가장 친일적인 신문으로 규탄을 받고있던 《조선일보》의 전무 및 영업과장으로 일제의 충견노릇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후에는 언더우드의 추천에 따라 미군정의 초대경무부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치의 사다리에 한발을 걸쳐놓은것이다. 미군정이 페지되자 호남벌의 대지주인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와 함께 한국민주당(략칭 한민당)을 만들어내는데 한몫을 하였다.

기회가 왔다. 민주당은 김성수가 죽은 뒤로는 고병직의 당으로 되였다. 고병직의 손끝에 따라 당이 움직이고 고병직의 주장이 당의 뜻으로 되여있다.

리승만을 제끼자고 하니 근량이 모자랐다. 시기상조인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리승만을 그대로 옥좌에 앉힐수 없다고 이를 갈았다. 신익희를 내세워보자고 속구구를 하였다.

도리질하는 신익희를 당수로 내세웠다. 말그대로 명목상이였다. 뒤에 웅크리고 앉아 끈을 쥐고있는것은 고병직이였다. 때가 되면 신익희를 제끼는것은 크게 품들게 없다. 신익희는 《대통령》후보로 내세우기는 했으나 고병직이 내세운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였다.

다울링은 고병직의 이러한 엉큼한 계교를 대사관모사들로부터 다 들어왔다. 그는 고병직이 신익희가 죽자마자 재빨리 당수로 취임하고 신익희를 대신하여 후보출마를 위해 분주하게 뛰고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것은 선거와 관련한 새로운 문제점이고 불길한 움직임이였다.

다울링은 측근들로부터 현 단계에서 고병직의 선거출마는 욕망뿐이지 조봉암과는 절대로 대적이 될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차라리 고병직을 조봉암에게서 떼내여 리승만을 지원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제기하여왔다. 그러자면 고병직의 선거출마를 봉쇄해서 민주당의 표를 리승만에게 몰아주는것이 눈섭에 떨어진 불이다. 한시바삐 불은 꺼야 하였다.

다울링은 측근들의 분석과 대책적제안이 그럴듯하다고 인정하고 고병직과의 사업을 자기가 직접 기꺼이 맡기로 하였다. 그들의 대화는 통역이 없이 진행되였다.

고병직의 영어발음은 다울링이 놀랄 정도였다.

행동거지가 위엄있고 절제가 있어보이면서도 심술스럽게 생긴 고병직이 리승만에 대한 표지원을 제기하자 얼굴표정부터 얼어붙은 섣달 달빛처럼 시퍼렇게 살아올랐다.

신익희가 죽자 당안의 주류인 고병직세력은 기다린듯 이제는 눈치를 보지 말고 고병직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며 장면이는 이미 결정한대로 《부통령》후보로 나서고 선거가 승리하는 경우 《총리》직은 탁준의가 담당하게 하자는 공론이 무르익어가고있었다.

그런데 지금 다울링은 남의 집안 속사정쯤은 안중에도 없이 리승만을 지원하라고 하니 그게 쉬이 먹어들리가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미국사람들과 어울려지내온 고병직은 미국을 하내비처럼 섬겨왔지만 미국대사들과는 력대로 사이가 좋지 않아 원한이 컸다.

자기 기반을 착착 다져오면서 집권의 기회를 달라고 미국에다가 쉴새없이 추파를 보내건만 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거들떠보지 않았다.

벌써 10년째 서울주재 미국대사들은 자신과 민주당을 쓴외 보듯하면서 통치권에서 한사코 밀어던져온다.

고병직은 즉석에서 다울링의 제안을 일축하였다.

《그건 말도 안됩니다. 나와 우리 당이 리승만의 숙적이 되여있는데 우리더러 리승만을 지원하라구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열두쪼각나도 그런 일은 없을거요!》

고병직이 뒤로 한걸음도 물러설 기미가 없이 망짝같은 엉치를 쏘파에 붙인채 이렇게 떡 버티자 다울링은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래 대표선생, 당신은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지금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더우기 승리할수 있다고 판단합니까?》

고병직은 허여멀끔한 볼을 두손으로 신경질적으로 비벼대고나서 말없이 다울링을 쏘아보았다.

두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속구구를 읽어보려고 애쓰며 시간을 보냈다.

《대사선생, 난 출마할 가능성도 승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래일중으로 비상국회를 열어 선거법에 조금 손을 대려고 합니다. 국회를 우리 민주당이 통제하고있는것을 대사선생도 알고있겠지요. 나는 선거자의 과반수 지지를 받게 될것입니다.》

고병직은 배를 내밀고 떡심좋게 대답을 던졌다.

그 말에 다울링은 여전히 성깔이 돋쳐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상대의 지위를 존중하여 정중하게 그와의 사업을 하려고 하였는데 그게 오산이였다. 그는 말투부터 고압적으로 바꾸었다.

《과반수? … 조봉암이 후보출마를 철회하지 않았는데두요?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조봉암이 물러설 가능성은 없습니다.》

《아니, 내가 신익희를 대신한다면 우리 두 당의 공조는 그냥 유효합니다. 조봉암의 지지자들은 틀림없이 나를 지지하게 될것입니다. 미국도 나의 선거운동을 밀어주기 바랍니다.

내가 미국을 평생의 벗으로, 스승으로 숭상하고있다는것은 오래전에 언더우드선생이 보증하였고 당신들의 문서고에 다 기록되여있을것입니다.》

언더우드는 오래전에 서울에서 활약한 미국의 특수계통의 첩자로서 선교사의 탈을 쓰고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고병직을 심복으로 길들이기 위하여 숱한 돈을 뿌려가며 미국에 류학을 보내주고 그를 정계에 내세워주었다.

고병직은 지금도 미국의 대조선정책작성과 그 집행에 깊이 관여하고있는 언더우드2세의 유력한 후원을 받고있었다.

다울링은 고병직이 방금 꺼내놓은 후원자타령에 넌덜머리가 났다.

서울정치권에서 리승만을 포함하여 세력이 있는 놈이라면 누구라 없이 미국에 후원자가 있다. 다울링은 그들의 비호를 그 무슨 주패장처럼 휘두르는것이 서울정치인들의 례상사로 되여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서울정치권의 어느 인물을 다쳐놓으면 즉시로 워싱톤쪽에서 함께 몸살이를 하는 작자들이 나타나 서울대사관에 대고 삿대질이다.

《만약… 미국이 당신을 현 단계에서는 밀어줄수 없다면?》

다울링은 비웃듯이 한마디 꺼내놓고 상대의 안색을 훑었다. 그의 말에는 로골적인 멸시가 어려있었다.

다울링의 예상대로 고병직은 그 무슨 흉기에 얻어맞은듯 목을 움츠리고 오만상을 지었다. 그는 아래우로 뒤집혀진 입술을 푸들거리며 사나운 눈찌로 다울링을 쳐다보았다.

다울링이 입가에 깨고소해하는 조소와 경멸의 비웃음을 담고 느물거리자 목에 힘을 주어 자신만만하게 맞받아 대꾸하였다.

《지지하게 될거요! 리승만은 산송장이요. 자기 시대를 끝냈단 말이요. 미국이 더이상 그에게 기대를 거는것은 미국을 위해서도 위태한 도박이요.

미국은 보다 안전하고 믿음직한 지탱점을 찾아내게 될거요. 그래 미국이 리승만때문에 얻은 실점이 아직도 모자란단 말이요?!》

이미 미국무성의 지령까지 받은 다울링에게는 고병직의 그러한 입심드센 주장도 한갖 김빠진 심술로만 여겨졌다.

여전히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를 물고 점잖게 훈계하였다.

《대표선생, 미국은 이미 선택하였소. 이에 대하여 솔직히 말해봅시다.

지금 리승만에 대한 이 나라 사람들의 불만이 절정에 이르렀다는것은 미국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리승만은 여전히 서울의 보수정치권을 휘잡고있는 지도력을 가지고있으며 조봉암을 누를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여기서 다울링은 뒤말을 꿀떡 삼키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미국은 오직 리승만을 통하여 불가능한 일들을 성취할수 있다고, 이런 측면에서 당신이 그를 대신할수는 없다고 분명히 찍어두고싶었다.

사실 미국이 늙다리주구를 아직도 비호하고 기어이 다음기 권력의 자리를 안겨주려는것은 바로 리승만이 늙었으며 대세의 추이에 암둔하며 완고한 독재광이라는데 있었다.

리승만도 미국만이 자기의 늙은 육체를 소중하게 아껴주고 버티여줄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따라서 미국이 원하는대로 결심하고 움직이며 자기의 여력을 깡그리 미국을 위하여 쏟아버릴 하나의 의지로 살고있었다. 이것이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리승만의 쓸모이며 남조선에서 집권자선정의 첫째가는 징표였다.

최근에 와서 남조선에서 서서히 일기 시작한 반미열풍은 리승만 같은 독재적인 체질로만 가라앉힐수 있었다.

미국이 이 땅에서 강행하고있는 식민지화, 군사기지화정책도 리승만을 내세워야 담보될수 있다.

로망든 리승만에게는 지금 한 나라의 통치자라는 사명감이나 체면이나 자존심도, 후세의 평가에 대한 감각도 전혀 없다. 다만 영구집권에 대한 허욕만이 검질기게 남아있을뿐이다.

다울링은 고병직이 아직 그런 면에서는 리승만을 따라설수 없다는것을 넌지시 암시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보다 직선적으로 정치주로를 그어주었다.

《당신은 다음기 후보로 나서시오. 정치가란 시대가 요망할 때 나서야 합니다. 지금은 당신의 차례가 아닙니다. 당신이 나설 기회가 아니지요.》

《아니, 난 나서겠소. 결심이 됐소. 난 미국의 지지를 강력히 요구하오. 다시 말하건대 나는 미국에 충실하여왔소. 우리 반도에서 미국의 리권을 옹호하는 충실한 벗으로 될거요.》

《다시 명백히 말하겠습니다. 순풍이 불 때는 돛을 올리고 풍랑이 일면 닻을 내려야 하오.

당신은 지금 주관에 빠져 대세를 판별하지 못하고있소. 미국은 지지하지 않소. 미국의 지지를 받지 않고 당신이 한번 객기를 부려보시오.》

《아니, 이건 객기가 아니요. 당신네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해낼거요! 두고보시오!》

고병직은 다울링이라는 집요한 벽에 부딪쳐 허둥거리며 악이 치받쳐서 데퉁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는 이제 차례질수 있는 옥좌를 그냥 지나쳐버릴수 없어 평생에 처음으로 미국앞에서 감히 주대를 세워보는것이였다.

미군정에서 복무할 때나 그뒤로 리승만의 도전자로서 민주당을 끌고 오면서도 미국이라는 우상앞에서는 언제나 무릎꿇고 설설 기기만 하던 고병직이였다.

그러한 인간이 줌에 잡히게 될 권력이라는 황홀한 무지개를 놓치고싶지 않아 한번 배짱을 세워보았으나 미국은 역시 자기의 리해관계를 놓고서는 추호의 흔들림도 양보도 없었다.

다울링은 목대가 실한 주구배의 종작없는 넉두리에 기가 버쩍 살아올랐다.

고병직을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국무성의 지령을 집행할수 없다는 생각에 로골적으로 협박하기 시작하였다.

《고병직씨!》

다울링은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까지 해가며 호되게 채찍을 휘둘렀다.

《당신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요. 미국이라는 큰 언덕에 기대여 큰 사람이요. 헌데 미국을 아직도 다는 모르고있구만.

그래 미국의 지지가 없는 정치가의 생명이 이 나라에서 존재할수 있다고 보는가? … 그렇다면 어리석소, 당신은 미국이 하느
님이라는 생각을 잊은게 아니요? 미국이 이 나라를 해방하였고 당신네를 먹여살렸고 이 나라를 지켜주고있다는 생각을 잊고 사는게 아니요? 리승만의 집권이 어떻게 보장되고있는가에 대하여 당신은 생각해야 할거요.

당신은 똑똑한 바보이구만. 미국의 지지가 없이도 대통령이 될수 있다니 이게 제정신 가지고 하는 수작이요? 그 말 한마디만 가지고도 당신은 이 나라의 정치권에서 영영 추방될수도 있소. 이건 나의 협박이나 경종이 아니요. 이 나라 통치자들의 생존방식이 무엇인가? 서울대통령학의 서문에 속하는것도 모르고 당신은 지금 옥좌를 바라고있는데 천진하오. 당신의 선행자를 따라가겠으면 선거에 뛰여들어보시오. 우리는 도전자에 대한 리승만의 분노를 멈춰세울수 있는 대안이 없소.》

다울링이 이 정도로 을러메니 고병직은 점차 쫓기는 토끼 벼랑바위 쳐다보듯 혼맹이가 절반은 빠져가지고 결기오른 상대의 낯판대기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매부리코가 한층 날이 서서 당장 덮쳐들어 이마빡을 쪼아줄듯 싶다. 그는 자기의 실체를 다시금 확인하는수밖에 없었다. 속이 불끈거리지만 하소할데가 없다. 설혹 하소한다한들 누가 이 고병직이라는 존재를 변호하여 나서겠는가.

그는 눈건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다가 고개를 들고 천정의 한점을 초점잃은 눈으로 멀거니 쳐다보았다.

큰 감투 한번 써볼가 해서 씩둑거려보기는 했으나 미국이라는 괴물앞에서는 쥐새끼에 불과한 주구배일따름이다.

더구나 너의 육체는 내 손끝에 달려있다는, 네가 밸통대로 해야 신익희의 전철을 밟게 되리라는 로골적인 공갈까지 당하자 속이 후두둑했다.

미국놈들이란 일단 결심만 되면 산 구렝이 눈알도 우벼낼 흉물들이다.

고병직은 자기의 의사에는 관계없이 운명의 올가미는 미국의 손끝에 걸려있다는것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다울링의 고함이 채찍소리처럼 앙칼지게 울렸다.

《가시오! 가시오, 고병직씨! 당신과는 더 얘기를 나누어볼 흥미가 없소.》

다울링은 성벽같던 상대의 심장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혼비백산해지는것을 정복자의 거만한 눈으로 깨고소하게 지켜보면서 한번 더 깊숙이 칼을 박아넣었다.

고병직은 다울링이 여전히 개몰듯 채찍을 휘둘러대자 더는 쏘파에 엉뎅이를 박고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고병직은 의기양양하던 배심은 언제더냐싶게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더니 목이 눌린듯 꺼져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각하, 나에게 시간을 주시오.》

시퍼렇게 살아있던 고병직의 낯빛은 순간에 긴장하고 불안한 빛을 띠였다.

다울링은 고병직이 이제는 기라면 기고 뛰라면 뛰여야 하는 주구배의 처지를 깨달은듯싶어 허리띠를 조금 늦추어주기로 하였다.

그는 어조를 약간 너글너글하게 바꾸어가지고 말을 이었다.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합시다.

난 방금전에 당신에게 미국을 대표하여 다음기를 담보해주었소. 그것이면 당신에 대한 미국의 신임의 크기에 대하여 알수 있을게 아니겠소?!

차기라 해야 고작 4년후요. 당신도 권력에 평생을 투자하여온 정치가인데 그래 4년을 기다리지 못한단 말이요? 4년만 넘기면 고스란히 옥좌가 차례질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목을 내대야 할 투전판에 뛰여들어 인생모험을 하려고 하오? 난 당신에게 다음기에 대한 미국의 담보를 제공하는 대가를 이번 선거에서 선불로 치러주기를 부탁하겠소.》

고병직이 인차 대답이 없자 다울링은 성급하게 다그어댔다.

《우리의 계약에 응할수 있소?》

고병직이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다울링은 그의 눈통가까이 손가락을 활짝 펴 들어보이였다.

다울링은 엄지손가락을 고병직의 눈앞에서 접으며 위협했다.

《첫째, 후보출마를 위한 막후공작은 걷어치우시오.

둘째, 조봉암을 패배에로 몰아가기 위한 리승만세력의 힘에 가세해야겠소.

셋째, 야당공조는 물론 깨야 될것이구…》

다울링의 손바닥에서 엄지손가락에 이어 집게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이 련이어 힘있게 구부러들었다.

《어떻습니까?》

다울링은 가운데 세손가락이 접혀든 손바닥을 무례하게 고병직의 눈바투 갖다보이며 다그어댔다.

고병직은 하는수없이 침울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시간을 주시오. 야당공조는 당론인데 그걸 바꾸는게…》

고병직이 여전히 꺼져드는 어조로 변명하자 그 어정쩡한 말투에 부아통이 터진 다울링은 또다시 눈을 부라리며 말을 가로챘다.

《아니요! 이제는 생각할 겨를이 없소. 시간을 줄수 없소. 시간을 놓치면 기회를 놓칠수 있소.

한시바삐 우리는 행동해야 하오. 정세는 지체말고 행동할것을 요구하고있소.》

다울링은 이 인간도 어쨌든 미국의 빵부스러기로 살쪄온 인간이며 그렇게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는 체질판단이 이미 되여있는지라 더는 숨박곡질을 하고싶지 않았다. 생각나는대로 주무르고 휘둘러댔다.

고병직도 이 자리에서 자신이 살아온 평생을 돌이켜보고있었다.

자기가 미국의 손끝에 의하여 조종되고있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것을 이 시각 다시금 통절하게 느끼고있었다.

어쩐지 가슴에서 역기가 치밀어올랐다. 부정맥이 오는지 가슴이 답답하고 동통이 느껴졌다. 목놓아울고싶었다.

덩지큰 당의 당수라는게 무슨 꼴이야? 《대통령》자리를 바라보는 인간이 주제가 됐느냐?

미국을 믿어온 인간의 말로란 이렇게도 처참한것이더냐. 그러나 어찌하랴. 미국의 품에서 탈출한다는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는다는것을 의미한다. 때늦은 탄식이다.

미국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반공》이요, 《자유》요 하는것도 헛나발이다. 미국을 등지면 생존조차 할수 없는 운명이다.
미국이 턱질하면 어차피 감탕판에도 뛰여들어야 한다.

구역질나는 주구의 고달픈 심회를 통감하며 고병직은 그 유들유들하던 상통이 급기야 소금에 절인 배추속처럼 후줄근해져서 숨쉬기조차 가빠했다.

마침내 고병직은 미국의 요구앞에서 흰기를 들고 무릎을 꿇는수밖에 없었다.

《다울링각하, … 미국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다울링은 고병직이 어깨가 처져가지고 시들하게 말하자 그에게로 다가가 한손으로는 그의 손을 잡아 흔들어주었다. 다른 손으로는 장한 일을 한 손주의 등을 쳐주듯 고병직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은근한 어조로 달랬다.

《나는 당신이 이 나라의 정치가로서 애국적인 초지와 자기 민족에 대한 커다란 사명감으로부터 출발하여 쉽지 않은 용단을 내렸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심심한 동정과 사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아울러 나, 다울링은 당신의 변함없는 후원자로 남아있게 되리라는것을 이 자리에서 확언하는바입니다. 미국은 언제나 자기 벗들의 협조에 대하여 공정한 보상과 신의를 지켜왔습니다.

당신이 오늘의 의거를 그 무슨 운명의 좌절이나 정치적초지의 상실로 비관할것은 전혀 없습니다.

정치가란 멀리를 바라보면서 정치적인 투자도 해가며 실수없는 한걸음한걸음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군사조례에는 두 계급의 승진이라든지 두알이상의 별 진급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병사로부터 장군으로, 바스락별로부터 왕별로 되자면 밟아야 하는 사다리의 모든 단을 빠짐없이 밟아야 한다는것입니다.

대표선생, 내 말이 리해됩니까?》

고병직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상대를 길들여놓고 희열에 떠서 다사스러워진 다울링의 장광설이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찌뿌둥한 표정을 지우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였다.

다울링은 가장 가까운 지기나 되는듯 그의 어깨를 가벼이 끌어안았다.

다울링은 이렇게 장시간에 걸쳐 거물급주구의 간을 뽑고 턱부리를 쓰다듬어주고 얄팍한 입술에 간특한 웃음을 담았다.

《감사합니다.》

고병직은 쓰거워도 이렇게 례의를 차리는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환멸이 그냥 굴뚝처럼 뻗쳐올라 상통은 벌레를 씹어삼킨듯 다시 우거지상으로 되였다.

밉살스러운 생각 같아서는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이 흰둥이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싶었으나 참는수밖에 없었다.

(자식! 네놈이 4년후에 서울땅에 있겠는지 뉘 안단 말이냐?

그리고 있다한들 네놈들이 그때에 가서도 내 잔등 두드려주겠는지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 양놈들 심보 조변석개라는걸 내 모르는바가 아니다.)

목구멍까지 울화가 치밀어올랐으나 함부로 터칠수 없는것이 고병직의 가련한 억하심정이였다. 참으로 어찌할수 없는 종복의 운명이였다.

고병직의 이날의 맥빠진 속투정은 4년후에 현실로 되였다. 다울링은 다음기 선거에 관여조차 하지 않았던것이다.

다울링은 선거를 반년 앞두고 서울에서 사라졌다. 그의 소환과 함께 고병직과 철석같이 다지였던 약속도 씻은듯이 사라졌다.

그때 고병직이 선거를 한달 앞두고 용기를 내여 다울링의 후임자인 맥코노이대사를 찾아갔다. 선임대사와의 합의사항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는데 맥코노이는 금시초문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뿐아니라 필생의 한을 풀고저 옥좌를 쳐다보며 출마하였던 고병직은 신익희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였다. 그 역시 선거를 며칠 앞두고 신익희처럼 급살함으로써 평생토록 꿈꾸어오던 옥좌는 고사하고 육체적으로도 완전히 매장되여버렸다.

물을 즐기는자 물에 빠져죽고 불을 즐기는자 불에 타죽는다.

권력에 미친자 그 권력에 의해 목떨어지는건 어찌 보면 세상살이의 랭담한 리치이다.

이것은 고금동서로 노예사회로부터 숨가쁘게 이어져온 인류력사의 교훈이고 변증법이기도 하다.

권력자들의 수명은 길고 짧음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칼을 휘두르던자들은 언제나 그 칼에 피투성이가 되여 력사의 한토막을 어지럽게 장식하여온다.

말을 타고 유럽까지 짓밟았던 칭기스한의 후손들, 나뽈레옹과 무쏠리니, 히틀러와 도죠의 인생말로가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났다.

력사란 인류의 교과서요, 현재와 미래를 펼쳐주는 설계도이고 매 인생들의 거울이다.

정치를 지망하는 인물이라면 먼저 력사가 자기의 피로써 아로새겨 후손들에게 전하는 이 장엄하고도 비장한 메아리에 귀를 기울여야 되겠으나 흔히 권력야심이라는 행운의 무지개에 홀리워 력사의 장님으로, 귀머거리로 되여버린다. 그리고 종당에는 력사의 쓰레기통에 구겨박히고만다.

권력에 대한 야심이란 그렇게도 숱한 사람들을 머저리로 만들고 타락시키고 피를 흘리게 했건만 지금도 꽤 똑똑하다는 인물들이 권력야망이라는 요귀에게 유혹되여 멸망의 심연속으로 덤벼치며 다투어 뛰여든다.

고병직은 력사에 의해 검증된 권력과 인간사회의 비정의 변증법들을 알려고도, 알아도 재음미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투정질을 해보지만 그것은 저도 인간이라는 자체위안에 불과하였다. 다울링이 요사하게 슬쩍 던져주는 권력의 미끼를 미식하고나자 이제는 다울링의 노복으로 쾌히 복무하는 길을 택하게 된것이다.

그 길은 바로 4년후의 비극적인 죽음에로 잇닿은 길이였다.

고병직은 다음기라는 다울링의 낚시에 깊숙이 물린채 비명횡사라는 처참한 말로를 향하여 비극의 첫걸음을 옮겼다.

그는 다울링에게 다시한번 말없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호텔방 출입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울링이 그의 한쪽팔을 잡아주는것으로 사뭇 정을 퍼주는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또박또박 과업을 상기시켜주었다.

《당신의 당면과제는 총적으로 조봉암을 락선시키는것이요. 조봉암에게로 몰려가는 민주당지지표를 봉쇄해버리시오.

당장 시행해야 할 문제가 있소. 오늘중으로 진보당과의 공조를 공개적으로 취소하시오. 그 다음에는 민주당지지자들에게 리승만지지에로 돌아서거나 중립적인 립장을 지키도록 지시하시오.

난 이번 선거에 미국의 국익이 크게 걸려있다는것을 숨기지 않소. 방도는 당신들이 찾으시오.》

고병직은 두툼한 입을 꾹 닫아붙인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호텔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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