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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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이였다.

부산에서 선거선전을 벌리고 숙소로 돌아온 조봉암은 동행한 신창균을 비롯한 간부들에게 자기는 이것으로 선거선전을 마치겠으니 이제는 《부통령》후보로 나선 우달수에게 집중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민주당과의 합의대로 자기에 대한 지지표를 신익희에게 몰아줄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선전하라고 선거선전의 방향을 틀어주었다.

조봉암은 이어 선거대책본부의 윤기중을 찾게 하였다. 자기의 후보직사퇴문건을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문제와 관련한 지시를 주기 위해서였다.

전화가 잘되지 않았다. 신창균이 한시간 남짓이 전화통과 씨름했다. 하지만 윤기중과의 통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리승만일파들의 방해책동임을 간파한 조봉암은 전화를 단념하고 서울로 인차 떠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윤기중간사장한테서 《급래》라는 두 글자만 담고 10분간격으로 세차례나 전보문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지체없이 서울행 렬차에 올랐다. 전보문에 있는 짤막한 글자에 담겨진 엄청난 내용을 조봉암은 렬차안에서 알게 되였다.

렬차방송이 서울라지오방송을 중계하였다. 방송원은 《국회》의장이며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신익희가 과로로 오늘 새벽 호남선렬차에서 급서하였다고 짤막히 보도하였던것이다.

《더러운 놈!》

조봉암의 노성이 터졌다. 그의 뇌리에 선참으로 두억시니처럼 흉물스러운 리승만의 상판부터 떠올랐던것이다.

그놈이 그랬을것이다. 그놈이 선거전의 상대인물에 대한 이 어망처망한 급서놀음을 만들어냈을것이다.

조봉암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바로 엊그저께 부산으로 떠나오기 전에 만났던 신익희였다. 걸음걸이가 다소 휘뚱거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건장하고 힘이 있어보였다. 워낙 바위처럼 든든하게 생긴 로인이 세상풍파에 초연하고 아직도 집념이 강해보여 다행스러웠다.

신익희가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첫번째 전제조건으로 도중하차하지 말것을 재삼 당부했었다. 자기는 아직도 뻗칠수 있는 용기도 건강도 있으니 념려말라고 장담하였다. 그 자신만만한 기백과 투지에 확실히 단단하고 굽힘이 없는 체력이 겸비된듯싶어 조봉암은 마음을 놓고 떠나왔다. 헌데 정식 선거선전에 들어간지 며칠되지도 않아 과로로 쓰러졌다니 이 무슨 변고인가.

조봉암은 문득 려운형의 피살소식을 접하던 때가 생각났다. 한생에서 가장 존경이 가던 벗이였던 그 강직한 열혈의 인간이 정치적적수들의 흉탄에 숨이 졌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 조봉암은 심장이 금시 뚝 멎은듯 온몸에 강직이 와서 말 한마디 번질수 없었다.

해방의 열기가 식지 않았던 그 시절에 일본놈들도 감히 쓰러뜨리지 못했던 그 불굴의 지사를 피살한것은 분명 미국놈들과 리승만일파였을것이다. 려운형이 정의와 민족의 활로를 북과의 련합에서 찾게 되자 그자들이 그런 엄청난짓을 감행하였던것이다.
그때 조봉암은 갈수록 엄혹해지는 정치풍토에 대하여 그리고 그를 헤치고 나가야 할 이 땅의 정치가들의 운명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과연 그때부터 이 땅은 세계적초점을 모은 두 세계의 대결의 전초로 되였다. 준엄한 정치의 숨막히는 기류에 말려들어 민중도 정치가들도 끊임없는 좌절과 실망과 수난을 겪어야 했다. 신익희도 바로 이 첨예한 정치적란무가 빚어낸 희생양이 아닌가.

조봉암은 천령배의 호실에서 벌어졌던 신익희와의 당수회동이 생각났다. 그때 자기 신상에 변고가 생기는 경우 조봉암이 야당단일후보로 나선다는 조항을 기어이 박아넣도록 주장하던 신익희의 모습이 떠올라 더구나 가슴이 쓰려왔다.

(어쩌면 그때 신익희는 자기 운명의 이 비참한 말로를 내다봤던것이 아니였을가? 예상하면서도 대세의 흐름에 대답하여 기꺼이 리승만과의 결투를 선택한것이였을가?

리승만! … 이놈! … 네놈이 정말 이제는 못하는 지랄이 없구나. 고금동서로 네놈처럼 선거적수를 거리낌없이 제껴버리는자가 있었더냐?! 네놈이 언제면 살인깡패기질을 버리겠느냐?!…)

조봉암은 커다란 분노와 비애속에 려운형이며 김구며 장덕수며 신익희와 같은 인물들의 죽음이 순환과 악순환이라는 류사한 의미를 가지고 자기에게도 드디여 육박해오는 거친 파도처럼 느껴졌다.

조봉암의 번민과 좌절감은 신창균과 함께 서울역에서 곧바로 마중나온 윤기중을 앞세우고 삼청동에 있는 신익희의 자택으로 갈 때까지 그냥 속을 후벼냈다. 려운형의 집과 이웃하고있는 삼청동의 자그마한 2층집은 수천명의 군중에 에워싸여있었다. 높이 쌓은 담을 둘러싸고 운집한 군중은 목갈린 소리로 구호를 웨치고있었다.

《사인을 규명하라!》

《살인자를 잡아내라!》

《못살겠다, 갈아보자! 독재를 타도하라!》

꼭 려운형이 피살되였던 10년전 그날을 방불케 한다. 그때도 이 삼청동은 군중의 분노에 찬 함성으로 움씰거렸다.

격노한 군중은 자기들을 감시하면서 여차직하면 달려들 태세로 총을 꼬나쥐고있는 전투경찰들에게 돌멩이를 던지며 기세를 올렸다. 신창균이 앞에 서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봉암의 이름을 불러주며 겨우 대문까지 비집고 들어갔다. 방탄복까지 떨쳐입은 여러명의 무장경찰들이 대문가에 버티고 선채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다. 신창균이 그냥 경찰들과 옥신각신하는데 찌그덩하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다.

거기서 한대의 풍을 친 차가 밖으로 나오고있었다. 그런데 누구인가 마당에서 메가폰에 대고 소리쳤다.

《해공선생님을 경무대에 끌고 간다!》

그러자 또 한명이 그 소리를 받아 웨쳤다.

《선생님의 시신까지 빼앗아가는 리승만졸개들을 때려눕혀라!》

경찰들이 신익희의 시신을 경무대로 끌고 가려고 하자 그의 지지자들의 자제력이 폭발한것이다.

《와-》

함성소리가 하늘을 찌를듯 드높아졌다.

왜 시신을 가져가려고 하는가?

조봉암도 사태를 알아차렸다. 리승만이 무엇인가 뒤가 켕겨 전전긍긍하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쳐라! 리승만졸개들을 쳐라!》

거센 탁성이 군중의 머리우에 또다시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 소리가 도화선이 되여 군중은 경찰들에게로 달려들었다. 대문가에서는 고인을 넘겨줄수 없다거니, 경무대의 지시로 국장을 치른다거니 싱갱이가 벌어지고 그것이 몸싸움으로 번져갔다.

군중들은 자동차의 운전대에 올라가 운전수를 들어내고 자동차를 밀어 마당쪽으로 후진시켜놓았다.

총소리가 여기저기서 꽝꽝 울리고 비명소리가 났다. 여러명이 땅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경찰 수백명이 증원되여왔다. 그들은 마당에 들어선 군중들에게 달려들어 곤봉을 휘두르고 수십명의 사람들에게 수갑을 채워 경찰백차에 끌어갔다.

《까막귀신들을 때려엎어라! 저놈들이 해공선생을 급서하게 하였다!》

누군가의 격노한 목소리가 또 한번 군중을 격발시키자 주춤거리던 지지자들이 와- 함성을 올리였다. 육박전같은 싸움이였다.

경찰들은 하는수없이 시신을 도로 들여갔다.

조봉암은 신창균을 따라 어깨성을 쌓은 신익희지지자들의 틈새를 뚫고 령구를 안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민주당 중앙의 원로들이 호상을 서고있었다.

그들은 조봉암일행을 침통한 기색으로 맞아들였다.

《해공! 이게 웬 일입니까?! 해공, 눈을 뜨오. 저기서 통곡하는 군중의 소리를 들으시오?!》

조봉암은 령구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비통하게 소리쳤다.

그가 령구앞에서 일어설념을 않고 비분의 눈물만 흘리고있자 호상객인 민주당 최고위원 곽상훈이 그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 고정하십시오. 여기 상제들이 있습니다.》

그제야 조봉암은 신익희의 아들내외와 딸내외 그리고 손주들을 알아보고 그들에게로 다가가 위로를 하였다.

《죽산선생님, 찾아주시여 고맙습니다.》

신익희의 아들이 조봉암의 인사에 눈물이 글썽하여가지고 답례를 하였다.

《선생님, 저 좀 봅시다.》

그들의 인사가 끝나자 곽상훈이 그를 옆방으로 안내하였다.

곽상훈은 민주당안에서 혁신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비교적 지각있고 례의가 있으며 정치적안목이 넓다는 여론의 후한 평가를 받고있다.

그래 민주당안에서 체질변화를 요구하는 혁신계소장파들은 오십대가 저물어가는 그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내세우고있다.

방에 들어서니 몇명의 호상객들이 무슨 론의를 하고있다가 조봉암을 알아보고 일어나서 깍듯이 인사들을 하였다.

《잠간 자리를 피해주시오.》

곽상훈이 말하자 그들은 두말없이 방에서 나갔다.

《죽산선생님! 선생님은 이러고계실 때가 아닙니다. 빨리 사태를 수습하시고 주역이 되여 선거전을 밀고나가야 합니다.》

《곽선생! 상가에 와서 어찌 이런 화제를 떠올리겠소. 난 사실 부산에서 정식 후보사퇴서를 제출하기 위하여 서울에 방금전에 올라왔소. 부고는 렬차에서 들었소.》

《고맙습니다. 우리 당수가 비명에 저세상으로 가셨어도 선생님의 이 신의에 감사해할것입니다. 사퇴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은것이 다행입니다. 그걸 제출했더라면 리승만쪽에서 그걸 걸고 또 오그랑수를 썼을것입니다.》

《그래도 난 해공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오. 바로 우리가 합의한 사퇴서제출날자가 오늘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하여서는 저도 잘 알고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나서야 합니다. 론의할나위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고인의 유지라고 생각하여주십시오.

해공선생님은 선생님얘기를 우리 혁신계의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죽산선생의 뜻과 도량을 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의 차례입니다.

언제인가 해공선생님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자기 자리에는 죽산선생을 모셔야 한다고, 이건 진보당의 신의에 대한 우리 당의 보답으로서 당론이라고 강하게 강조한바도 있습니다. 당수합의문에도 명기되여있지 않습니까?!》

《그건 해공선생이 그때 굳이 우겨서 한조항 박아넣은겁니다. 고병직대표는 지금 어떻게 하고있습니까?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구만.》

《그 사람에게 신경쓸것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고대표의 립장여하에 구애될것도 없는 두 당의 합의사항입니다.

고대표는 아직까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고 자기가 해공 대신 후보로 나서보겠다고 발빠르게 움직이고있습니다. 자기 당수의 초상에 낯짝도 내밀지 않는 이런 패륜이 또 어데 있단 말입니까?!

아마 지금쯤 선거위원회에 가서 싱갱이를 벌려놓고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두 당의 합의에도 저촉되는 일이지만 선거법에도 합당치 않으니 아무리 수를 쓰고 기운을 뽑아야 절대로 성사되지 않을것입니다.

다울링이 그를 만나자고 했다는데 무슨 꿍꿍이가 있겠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죽산께서 이제는 해공의 유지를 받들어 선거전면에 나서주십시오.》

《해공선생은 청렴결백한분으로 내가 존경하여마지 않던 정치가였소. 난 지금 하늘이 무너지는것을 보고있소.》

《선생님! 다시한번 진심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는 이 력사적시각에 감상을 버리고 대세를 옳게 평가하여 결정적인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선생님은 여기서 비탄의 한숨이나 쉬면서 시간을 보내서는 안됩니다. 이건 리승만이 바라는바입니다.

야당련합의 상징적의미에서 호상객으로는 당의 중진 두세분만 남겨주십시오. 장례일은 그분들에게 일임하고 다시는 이쪽에 걸음하지 마시고 선거에 전념하여주십시오.》

곽상훈은 진정을 담아 부탁하였다.

《좋습니다. 해공선생의 유지를 따르지요. 민주당일이 걱정스럽습니다. 해공께서 별세했으니 집안단속이 쉽지 않을겁니다.》

《바른 말씀입니다. 우리 민주당에 크게 기대는 걸지 마십시오.

벌써부터 당안에서 야당련합을 깨자는 심술스러운 소리가 울립니다. 고병직은 물론 탁준의가 맞장구를 치고 장면도 우유부단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당의 결정이나 립장이라고 해서 당전체를 대표하는 견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우리 당안에도 선생님의 뜻을 지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는것을 믿어주십시오.》

《고맙소. 헌데 곽선생, 처신이 힘들면 인제라도 몸담을 곳을 찾으시오. 정치가가 소신을 지켜 자기 둥지를 버리는것은 변신이 아니지요. 해공도 민주당의 체질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실토한바가 있습니다. 우리 진보당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묻지 않을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전도를 두고 오래전부터 고민하여왔습니다.

당내혁신이 말뿐이지 의연히 완고한 보수, 반공의 벽에 부닥쳐 일보의 전진도 없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쪽에서 움직이는것이 죽산선생님에게도 다소나마 지원으로 될겁니다. 우리 혁신계는 선거나 치른 후 곧 자기의 거취를 따로 선택하게 될것입니다.

선생님께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지금 리승만이 해공이 현직국회의장이므로 즉시 시신을 경무대에 넘겨 국장을 치르며 신체에 손을 대는 경우 조상의 관혼상제계률을 어기고 함부로 국가공인의 신체를 모독한 대역부도죄로 엄하게 조처할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있습니다. 그 진의는 뻔합니다. 제놈들의 살인범죄를 덮어버리자는것입니다. 그게 드러날가봐 사인규명을 못하도록 억지를 부리는겁니다. 놈들의 이 파렴치하고 야수적인 행위가 이제는 선생님께로 옮겨질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안전에 류의하시고 선거에서 승리할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곽선생의 부탁을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당은 민주당을 위하여 신의를 지켰습니다. 앞으로도 지켜갈것입니다. 우리 당은 바로 그것으로 리승만독재를 거부하는 민중의 기대에 보답하였습니다. 민중은 우리 당의 도덕성에 찬사를 보내였습니다.

이제는 민주당이 민중앞에서 자기 당의 정치적원숙성과 도덕성을 검증받게 될것입니다. 력사는 이에 대하여 낱낱이 기록하게 될것입니다.》

《말씀의 깊은 뜻을 알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사람은 손을 굳게 잡고 헤여졌다.

조봉암은 신익희의 가족들에게 다시 조의를 표시하고나서 호상객들과도 몇마디 인사를 건늬고 신익희의 저택을 나섰다.

그는 호상객들속에서 탁준의가 자기에게로 독기어린 눈총을 쏘고있는것을 띄여보았다. 노상 치레거리처럼 걸치고 다니는 누런 색갈의 미군잠바우로 살진 목대가 뻗어올랐는데 그우에 무겁게 얹혀있는 호박같이 두리둥글한 얼굴에 온통 개기름이 번들거린다.

두볼이 터질듯 부풀어오른 호박상에 비하면 어방없이 작은 쥐눈같은것이 박혀있는데 자기를 쏘아보는 눈길에 조봉암은 어쩐지 속이 섬뜩하여졌다.

조봉암은 수천명의 군중이 장사진을 치고 리승만일파에게 저주를 퍼붓고있는 신익희의 집대문을 나서면서도 그냥 탁준의의 피발이 선 송곳같은 눈이 자기 몸에 와박히는듯 한 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어째서 저 인간은 스스로 나와 평생의 숙적이 되여가지고 저렇게 살기를 풍겨오는거지?》

탁준의의 소갈머리가 역겹기만 하다.

어찌 보면 그들은 일찌기 한전호에서 생사를 같이하던 동지이기도 하였다.

처음으로 그들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것은 조선공산당이 창건되던 1925년이였다.

당창건후 탁준의는 자기의 지지자들을 묶어 로어로 표기한 맑스와 레닌의 이름에서 첫자를 따서 첫 파벌인 엠엘파를 내왔다. 그리고는 저들만이 맑스와 레닌의 사상을 대표한다면서 공산당의 《령도권은 엠엘파가 쥐여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조선의 붉은 심장》은 엠엘파라는것이였다.

조봉암은 젊은 나이와 미숙한 혁명리론을 가지고 그들을 설복하느라고 애를 태웠다.

탁준의는 가까스로 걸음마를 떼는 당의 활동을 사사건건 걸고들면서 분파싸움으로 당을 사분오렬시키였다. 조봉암과 그의 지지자들에 의하여 령도권의 야망을 성취 못한 탁준의는 일후에 감자도장까지 만들어가지고 국제당의 승인을 받으려고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였다.

조봉암은 당의 령도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체면도 량심도 잃고 분파싸움에 미쳐돌아가는 탁준의가 지도적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철저히 견제하였다.

2년후에 있은 조선공산당 역원들에 대한 일제의 검거소동에 걸려든 탁준의는 격검채에 엉덩이가 몇번 터지더니 전향하고말았다.

조봉암은 금후 공산주의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혈서까지 쓰고 일제에게 투항변절한 탁준의에 대하여 국내외의 조직들에 통보하고 다시는 그가 혁명대오에 기여들지 못하도록 경계하였다. 왜놈들의 밀령을 받고 혁명대오에 숨어들려던 탁준의의 시도는 좌절되였다.

일후에 탁준의는 공개적으로 일본놈들의 개로 변신하고 살아왔다. 그는 조선공산주의운동의 가장 악랄한 적수가 되여버렸다. 지금까지 근 30년세월을 일본놈의 개로, 리승만의 개로, 미국놈의 개로 이쪽저쪽으로 호적을 옮겨 변신하면서 살아왔다.

《엠엘파는 조선의 붉은 심장》이라고 희떱게 주절거리더니 백색의 공포에 겁이 질려 사상의 전향정도가 아니라 미쳐버린 반공광신자로 더럽게 늙어가는 탁준의를 만날 때마다 조봉암은 그 음침하면서도 독이 서린 송곳눈을 피하군 한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순간도 자리를 같이한적이 없다.

어쩌면 인간이 저렇게도 변할수 있을가. 한때는 그가 공산주의자로 행세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에 분하기도 하고 불쌍하고 가련해보이기도 하였다.

해방후에 탁준의는 리승만의 사타구니에 붙어 법무장관감투를 쓰고 우쭐해다니다가 리승만의 눈에 덧나서 지주와 친일파들이 모여든 한민당(민주당의 전신)에 들어가 가장 악질적인 반공분자로 자처하면서 조봉암과도 맞서왔다.

조봉암이 공산당이라고 제일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들고 다니는자도 탁준의다. 지금 야당공조에 대하여 제일 반기를 들고 진보당을 배척하는자도 탁준의다.

그가 신익희가 사망한 지금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은 명백하다.

《선생님! 민주당쪽에서 표지원을 어느 정도로 해줄수 있을가요?》

조봉암을 뒤따라 자동차에 오른 윤기중의 목소리가 어지러운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윤기중의 질문도 인차 고달픈 심회에 빠져들게 하였다.

조봉암은 인차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의 표지원?…)

그에 대한 대답인듯 고병직이 자기 당수의 초상에 낯짝은 들이밀지 않고 후보직이 탐나서 여기저기로 발빠르게 싸다닌다고 하던 곽상훈의 분개한 목소리가 귀전을 울렸다. 그런 놈팽이들이 틀어쥐고있는 무리에게 기대를 걸건 없다.

그는 확고한 어조로 대답을 주었다.

《간사장, 기대를 걸지 마오.》

조봉암은 무거운 어조로 설명을 달았다.

《그 무리는 사실상 정치간상배들의 집단이요. 제 낯짝이란 없는것들이요.》

윤기중이 볼부은 소리를 내는데 신창균이 그 소리를 받아 목청을 돋구었다.

《어찌 그럴수 있습니까?! 아니, 받아내야 합니다.

더두 말구 우리가 넘겨주기로 한 그만한 수의 표를 받아내야 합니다.

이건 이미 당수회담시 해공선생이 민주당의 명의로 확약했던 바가 아닙니까? 그런게 없었다 해도 이건 야권의 륜리이고 도덕입니다. 우리가 양보를 할 때는 쉽게 했습니까?》

신창균은 제김에 부아가 동하여 들어올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조봉암은 전우들의 순결하고도 의로운 모습에 속이 후더워져 신창균의 어깨를 꽉 움켜잡고 창밖으로 눈길을 옮겼다.

이게 바로 나의 동지들이다. 자랑스러운 나의 전우들이다!

결바른 성정!

아름다운 륜리!

고결한 도덕성!

깨끗한 량심!

이것은 인간고유의 미덕이다. 동시에 사람들의 운명을 걸머진 우리 당의 미덕이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당의 질적평가의 기준점이다. 다른 당들과 구별이 명백한 우리 당의 체질이다.

말단의 당원으로부터 당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미덕으로 체질화되고 뭉쳐질 때 당의 전투력은 백배해진다.

우리 당과 우리의 전우들은 이러한 미덕을 가지고있다. 그래서 우리 진보당은 민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있는것이다.

그는 신당동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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