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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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만은 선거날이 가까워오자 정기적으로 어기지 않고 하던 진해별장 주말휴식마저 걷어치웠다.

리승만은 5월초에 접어들자 권태구와 자유당의 선거위원장으로 있는 량지학을 경무대에 불러들였다. 량지학은 자유당에서 당대표인 리기붕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였다.

리승만은 량지학이 자기에 대한 《충정》에 있어서는 썩 뒤전에 돌아앉아있는 사람이라는것을 알고있었으나 측근들중에서 보기 드문 실력가이고 자유당안에서 흔치 않게 주대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번 선거를 총괄하게 하였다.

량지학은 리승만이 3선출마를 기도하고있는데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이번 놀음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리승만이 하두 불러들이고 주변인물들이 졸라대자 할수없이 그 자리에 나서게 되였다.

량지학은 먼저 걸상에서 일어나 리승만과 프란체스까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경무대비서실과 며칠동안 밤샘까지 해가며 작성한 리승만의 선거일정계획부터 보고하였다.

《각하께서는 5월 15일 선거당일까지 다음과 같은 일정표대로 움직이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래일, 5월 3일 각하께서는 공보실을 통하여 지방유세를 하지 않으며 선거연설은 계획하고있지 않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있게 될 신익희의 첫 유세에 대한 무언의 타격으로 될것이며 신익희와 조봉암의 선거선전을 봉쇄하는 효과를 거두게 할것입니다. 물론 각하의 건강을 고려한것이 중요한 리유이지만…

발표문은 이미 준비되였습니다.》

《허, 그건 잘했네. 나는 지방유세놀음이 딱 질색일세. 뭐, 이 우남이 아무렴 백성들더러 한표 주십쇼 하고 절해야 지지표받는 졸부인가?!》

리승만이 말끝에 창자가 빈듯 허거프게 웃었다.

량지학이 리승만의 웃음소리에 기분이 잡친듯 마뜩지 않게 대꾸하였다.

《딱히 그래서만은 아니올시다. 관례상 선거유세가 중요한데 그래서 미국 같은데서는 현직대통령도 일단 선거전에 나서면 1분간에 1만딸라이상의 자금을 쓰면서도 라지오나 텔레비죤에 출연하는것입니다.

더구나 상대가 지금 사람들속에서 돌풍을 일으키고있는 조봉암과 신익희이므로 선거유세를 중히 여기시고…》

《가만!…》

리승만이 량지학이 저저이 이어가는 설명을 가로챘다.

《뭘, 조봉암까지 때리며 힘 뽑을거야 있나. 조봉암은 이미전에 신익희에게 붙어버리지 않았나?!》

《그렇게만 볼게 아니옵니다.

민주당과 진보당은 절대로 화합이 될수 없습니다.

조봉암이 아무리 설렁거려도 민주당이 등을 돌리고있습니다. 제가 어제 민주당 대표 고병직과 탁준의를 만나보았는데 확실합니다.

결국 조봉암이 그냥 출마할수 있다는 전망도 무시할수 없습니다.》

《허, 자네 그렇게 해서야 어찌 대사를 도모할고… 조봉암이 날 그냥 물어메치겠다고 신익희를 유일후보로 밀어주기로 거 뭐 맹약이라던가…

내무, 이 사람에게 말해주게.》

리승만이 권태구에게 턱질을 하였다.

권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량지학에게 거드름스럽게 말하였다.

《위원장, 어제 오후에 량쪽 당수들의 비밀회동이 있었소.

거기서는 후보단일화에 대한 조봉암의 의지가 재천명되고 량측의 합의가 이루어졌소. 조봉암은 그냥 선거유세를 벌리다가 5월 5일경에 공식출마사퇴서를 제출하게 되여있소.》

《그렇소? … 어디서 전해들은 소리요? 확실하오?…

난 바로 오늘 아침에도 탁준의로부터 두 당의 지지표가 반드시 두쪽으로 갈라질것이라는 담보를 받았소.》

《쯔쯔쯔… 그렇게 눈뜬 소경에 귀머거리가 돼가지고서야 어떻게 고전을 치르겠나? 내무, 이제부터 선거에 관련한 정보들은 입수되는 차제로 이 사람에게도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권태구는 량지학이 아직도 찐덥지 않은듯 한 표정을 짓고있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으시댔다.

《위원장, 우리의 정보는 정확하오. 출처는 당신에게도 밝히지 못하겠소.》

《계속하게.》

리승만이 독촉했으나 량지학은 보고도중에 꺾이여 이내 흥심을 잃고말았다.

그러나 리승만의 눈길이 그냥 자기를 지켜보자 빠져나가는수가 없어 일사천리로 일정계획을 쭉 내리엮었다.

리승만은 량지학이 보고를 끝내자 잠시 이마빡에 주름발을 말아가지고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였다.

《그대로 해보세. 헌데 이제는 과녁을 조봉암으로부터 신익희쪽으로 바꾸고 화력을 총집중해야겠네. 두놈이 뭉쳤으니 이번
선거가 만만치 않을걸세.》

《예, 그래 우리 선거준비위원회에서는 만반의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선 선거가 진행되는 단위들엔 주민지대 리장들은 물론 통장들과 반장들까지 자유당에 입당시키는 방안을 세우고 전국적으로 입당선풍을 일으키고있습니다. 자유당 당원이 아닌 사람은 통, 반장을 할수 없다고 하니 다들 들어온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리장, 반장들을 선거실천위원으로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시행되고있습니다.

다음은 각하의 치적광고선전을 집중적으로 벌리기로 하였습니다. 각하의 공적을 력사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영화도 제작하였는데 래일부터 일제히 전국의 모든 극장, 영화관들에서 무료상영하되 선거자들은 의무적으로 보도록 사람동원에 내무부도 합세하도록 하렵니다.

선거구호도 바꾸겠습니다. <북진통일, 복지사회건설>은 지금까지 늘 해오던 말이여서 새롭지도 못하고 감흥도 적고 해서 사람들에게 잘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조봉암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내용의 구호를 내걸고있는데 대처해서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더 못산다>는 구호를 내들기로 했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더 못산다… 허허허 … 거 구호 하나만은 멋이 있구만.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더 못산다… 허허허… 그러고보면 자유당 모사진도 괜찮아. 엉, 허허허…》

리승만이 흡족해서 연신 너털웃음을 터쳐놓았다.

리승만은 허파에 바람든 놈처럼 그냥 시시덕거리다가 곁에서 그때까지 그리 흥심없이 량지학과의 지루한 대화가 끝나기만 기다리고있는 프란체스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미, 어떻소? 갈아봤자 더 못산다… 신통하지 않아, 엉? … 허허허…》

《예, 좋을듯싶군요. 신통한 구호입니다. 자유당의 어른들이 재간들이 좋아요.》

《하하, 그렇다니깐. 명담이야, 명담. 그 구호 하나만 가지고도 신익희 그 둔한 녀석을 자빠뜨릴수 있어. 신익희는 뭐라고 했더라?》

《이대로는 못살겠다, 한번 갈아보자!》

《흥, 저들이 들어앉으면 별수가 있대?! … 조봉암이네는?》

《진보당에서는 <갈지 못하고서는 살수 없다, 혁신만이 살길이다!>라고 했는데 조봉암이 물러나겠다니 그까짓거 론할바가 아닙니다.》

《좋아! 임자네가 그 구호만 가지고도 신익희를 자빠뜨렸어. 한꼴을 단단히 먹였다. 아니 두꼴, 세꼴이야. 그럼, 갈아봤자 신통한 수가 있나?! 내가 물러서보게. 누가 이만큼이라도 우리 백성들을 먹여살리며 공산당과는 어떻게 싸우겠나?! 신익희가 지금 어쩌구저쩌구 까불구 돌아치는데 상해골목에서 숨어지내다가 장개석의 눈에라도 들어볼가 해서 개다리같은걸 엉뎅이에 덜렁거리며 연안에 들락날락하던 주제에 일국의 수장자리가 당할손가.

갈아봤자 더 못산다… 구관이 명관이다… 하, 명담이야.

그 신통한 구호는 누가 만들었나?》

《저… 모두가 모여들어…》

《허, 신통해. 아무렴, 위원장자리에 오른 사람이니 례사스러울가… 계속하게…》

《뭐 그러루합니다.》

《그게 단가?》

리승만은 벙긋벙긋거리다가 량지학이 년놈들이 노는 꼴이 역스러워 그만 입을 다물려고 하자 불만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량지학의 두툼한 입술이 쉬이 열릴 기미가 없자 권태구에게로 말고삐를 넘겨주었다.

《선거유세가 어찌되였든 선거결과는 임자들 두사람한테 달린거야. 어디 그동안 내무가 만들어낸 수들을 내놓아보게.》

《그동안 우리 내무부는 48년 5월 단선부터 54년의 국회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진행과정들을 종합분석연구한데 기초하여 종합적인 대책안을 대체적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첫째가, 여론전입니다.

부산정치파동때 우리는 국제공산당프락찌야사건으로 위기를 넘기였습니다.

이번에도 5월 10일경부터는 신익희를 겨냥하여 일본과 친교하여 이 나라를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려던 모종의 계획이 들장났는데 주범이 외국으로 도망쳐서 현재 수사중이라는 여론을 돌리려고 합니다. 친일파가 모여든 민주당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으로 될겁니다.

이러루한 여론전은 각하의 이름으로도 할수 있고 내무부의 발표나 혹은 무기명편지공개 등의 형식으로 언론에 넘겨줄수 있습니다.》

《이봐… 거 신익희가 전쟁때 북으로 간 김규식이나 최동오, 김약수, 송호성 같은 도배들과 배가 맞아 돌아갔구 지금도 련계가 있는것 같다고 잘 만들어 써먹으면 모두들 와뜰와뜰할걸세. 허허… 좋아, 계속하라구.》

《각하께서 가르쳐주신 자료가 정말 실효가 크겠습니다. 저희들이 중히 써먹도록 하겠습니다. …경찰국장들과 이미 합의하였습니다만 무데기투표방법도 써먹으렵니다. 각하에게 투표할것을 내려먹이는 한편 미국에서 이상한 기계가 도입되여 비밀투표라 하지만 다 표식이 되니 후과부터 생각하라는 협박성여론도 준비하고있습니다. 야당후보투표지가 많이 나오는 동네는 몰살이 될수 있다는 여론도 돌리고 선거장에서 야당후보를 찍은 선거자를 즉시에 대기하고있는 선거자들앞에서 반죽음이 되게 하는 방법도 써먹고 야당운동원들을 붙잡아다가 주리를 틀어놓는 방법도 있고… 이래도 당선이 확정적이지 못할 때에는 비상수단도 써먹으려고 합니다.

하여튼 각하, 선거문제때문에 너무 심뇌하실게 없습니다. 우리 경찰들이 언제는 곱다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저희들에게…》

이렇게 의기양양해서 불법무법의 깡패놀음각본을 주어섬기던 권태구는 피끗 량지학을 돌아보고나서 말을 이었다.

《저희들 자유당과 내무부에 다 맡겨주십시오.》

사실은 내무부가 통채로 맡겠다고 말하고저 했는데 량지학의 거친 눈빛이 느껴졌던것이다.

《어떤가, 위원장?》

리승만이 자못 흡족해서 동의를 구하듯 량지학에게 물었다.

찌글써해있던 량지학이 앉은자리에서 자세를 바로하며 조심스럽게 평가하였다.

《전반적인 의도와 충정은 좋은데 고단수의 수가 있었으면 합니다. 선거를 치르고나면 노상 열병을 겪은듯 사회전반이 위축되고 국론이 분렬되고 부정선거라는 외국의 여론도 무성해지는데 우리 사회가 더이상 저질사회로 비쳐지는 일이 지속되여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좀 단수있는 책략이 구사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선거자들과 여론앞에 각하와 자유당의 모습이 정직하고 존엄있게 돋보이도록 내무부가 잘 조처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니 량지학씨, 이 판에 와서 자유당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는 아주까리기름까지 척 바르고 신사체면만 지키겠다는겁니까?! 정직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보자는건가요?

그래 이게 정직해가지고 되는 일이요? 난 이겨야 하는게 선거이니 이기는데 필요하다면 그따위 알량한 체면이나 존엄이나 단수는 일고의 론의가치도 없다는거요.

거 자유당에서는 너무 팔짱 끼고 올방자 틀고 뒤에 앉아서 애들 재담같은 소린 하지두 마슈.

만에 하나 각하께서 옥좌에서 쫓겨, 아니 내리시면 우리 민족은 어떻게 되고 나나 량지학씨나 하루 세끼 고기국에 한잔 술일망정 걸칠것 같소?》

《허허… 내무가 너무 열을 올리는군. 자중하게. 뜻이야 좋지, 좋구말구. 량지학위원장이 정직하게 정치하자는 소리도 좋은거구…》

리승만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두사람사이를 비집고 나섰다.

《정직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으니 내 생각되는게 있어.

내 전쟁후에 미국에 갔다가 아이젠하워대통령이 백악관식당에 차린 만찬회에 초대된 일이 있었네. 식당에 들어간즉 정면벽에 이런 글이 써있더구만.

<하나님, 이 집과 장차 이 집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최대의 축복을 내려주옵소서. 정직하지 않고 현명하지 않은자가 이 지붕아래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없도록 하옵소서.〉

그건 140년전에 미국의 2대대통령 죤 애덤즈가 자기 안해에게 써보낸 편지의 한구절인데 기도문의 1절이라고 하더구만. 참, 명문이야. 그때 대통령관저로 백악관이 건설되고있었는데 애덤즈의 처가 그 글구를 새겨넣도록 했다는거요.

내 그때 글귀가 오묘해서 아이젠하워에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쓰겁게 웃더구만. 나도 속으로 코방귀를 뀄네.

미국의 대통령치고 과연 정직한 인물이 있었는가?! 아니! 정직해서야 어떻게 대통령 해먹나?! 나라 위해 그냥 요술을 부리고 안팎눈치 봐가며 거짓말을 능사로 해야 대통령자리 지키는거라…

집권여당의 신상관리도 정직, 성실, 순수함에 너무 구속되여서는 랑패야.》

리승만은 또 속이 궁근 웃음을 터치였다.

량지학은 이편저편의 불편한 속을 어루만져주는 리승만의 능청스러운 수작에 자기의 말이 완전히 무시를 당한듯싶어 다시 입을 열었다.

《각하, 실은…》

그러나 리승만의 로골적인 편역에 우쭐해진 권태구가 기고만장해서 그의 말허리를 푸접없이 꺾었다.

《량지학씨, 자꾸 각하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시오. 뭘 되지도 않을 소리로 각하에게 심려끼치는거요? 어떤 대답을 듣고싶어 그러시오?》

《뭐라구?!》

권태구의 분수에 넘친 면박에 더는 참아낼수가 없었던 량지학이 마침내 분통을 터뜨려놓았다.

《이봐, 권태구! 똑똑히 들어둬! 항간에서 당신을 두고 미꾸라지국 먹고 룡트림하는 사나이라고 하더니만 참말로 오만방자하기로 범잡은 포수격이군그래. 각하를 보필하는게 자기만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니야? 당신 자유당에 대고 함부로 삿대질하는데 자유당과 그렇게 척지고 깔보며 눈을 빨다가 당신 자리가 며칠이나 갈것 같은가? 그래 당신 자리가 어떻게 마련된 자리야?》

량지학은 자유당은 물론 《국회》에서도 영향력있는 실력자였다. 사실 량지학이 권태구를 내무부 장관으로 정한 리승만의 임명장을 통과시키느라고 크게 반발해나선 야권세력과 《국회》에서 싱갱이를 벌린적도 있었다.

량지학의 결패있는 소리에 권태구의 볼편이 푸들거렸다.

《내 자리는 각하께서 하사하신 자리요!》

권태구는 량지학의 말끝을 물어채고 기가 뻗쳐 응대를 하였다.

리승만의 권세와 신임을 등에 업고있는 그로서는 더구나 리승만이 곁에 있는 좌석이여서 량지학이 아무리 들구쳐야 눈섭 한오리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이지.》

량지학이 대뜸 실수를 알아채고 얼른 비켜섰으나 그냥 몰아대야겠다고 결심했다. 내친김에 아예 기를 죽여버려야 했던것이다. 주먹패나 다름없는 망종같은 자식과 이러쿵저러쿵하는것부터가 내키지 않는데 리승만의 앞이라고 목대를 세우는 고약한 버릇을 그대로 넘길수 없었다.

《헌데 각하의 체면이 깎이는것을 허용하면 어찌한단 말이요? 자유당이자 각하이고 각하의 위엄이자 자유당의 위엄이란 말이요. 지금 여러 나라들에서 선거때문에 내란까지 벌어지고 통수권자들이 비명에 죽거나 족쇄를 차고 끌려다니고 국가존망이 위태롭게 번져진다는 소릴 당신은 듣지 못하오? 미국무성이 벌써부터 <선거지침>이요, <민주방식>이요 부산을 피우는게 우연인줄 아오? 지금 세월이 어디 주먹 하나로 움직일 때요?! 당신네 내무부가 백성을 소 때려몰듯 해서 견뎌낼상싶소?!》

량지학이 그냥 밸머리가 꿈틀거려 냅다 갈겨대자 권태구도 골이 나서 맞받아 고함을 쳤다.

《우직한 놈 범 잡는다 했소. 우리는 견뎌냈소. 각하께서 계시는 한 이번에도 견뎌낼거요.》

《견뎌낸다구?!》

량지학이 두눈을 부릅뜨고 따지고 들려 하다가 리승만의 밭은 기침소리에 주접이 들어 슬며시 고개를 돌리였다.

생각 같아서는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달아빼고싶었다. 위원장자리든 자유당감투든 다 던져버리고 리승만을 추켜올리는 이 역겨운 놀음에서 발을 뽑고싶었다.

리승만을 가까이에서 상종할수록 그 단순하고 안하무인격의 체질에 메스꺼워만진다. 자기가 어떻게 되여 저런 두상태기를 《국부》라고 부르며 섬겨왔는지 자신이 혐오스럽기만 하다.

리승만《신화》가 먹혀들어가는 무지한 인간들에게는 리승만이 전지전능한 하느님처럼 떠받들리지만 이렇게 막상 자리를 같이하고보면 권력욕에 환장한 두상태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소라도 식자가 있고 분별력이 있는 눈에는 대번에 저질의 인간됨이 드러나는 로망한 늙은이에 불과하다.

《에이 참! 이 나라는 망했지, 망했구말구…》

노상 만나고난 뒤끝이 이러루한 푸념이고 귀먼 욕이지만 그래도 별수없이 리승만의 몸값올리기에 나서야 하는데 량지학의 고민이 있었다.

리승만의 측근인물들이 권태구처럼 너무 알랑을 피울 때는 그들과 함께 자리를 해야 하는 자신이 얼굴이 뜨거워진다.

두사람의 언쟁이 리승만을 사이에 세우고 격렬해지자 프란체스까가 요염스러운 어조로 끼여들었다.

《두분께서 이러시면 안되죠. 각하를 모시는 충의가 두터운분들이 이러시면 대사를 어떻게 도모하여가겠습니까?》

뚱해있던 리승만이 역증을 내며 마누라의 말을 받았다.

《부질없는 티각태각일세. 서로 남의 허물 꼬집지 말고 제 코들이나 잘 씻도록 하게.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이기는거야. 그 다음 생기는 문제는 그 다음에 보면 돼.

요즈음 내 꿈자리가 불길해. 며칠전에는 룡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데 시커먼 구름장이 내앞에서 야료를 부려. 괴이하게도 눈부시던 하늘의 별들이 빛을 잃고 마침내 룡마저 바다에 곤두박히는게 아니겠나. 눈을 뜨고 곰곰히 해몽을 해보니 룡이 내리박히는건 우리 위업이 내리박히는거요, 별빛이 흐려지는건 우환거리가 생겨남이라, 구름이 앞길을 가로막는건 장애가 첩첩해진다는 의미이니 다 흉조란 말이요.

그러니 나도 내 마음을 억척으로 가다듬고 자유당과 백성들을 위하여 다시 나서서 국운을 바로잡아야 하는거요. 그런즉 이겨야 하는거야. 이기는 수가 고단수야.

미군이 우리 땅에 총과 대포를 가지고 꽉 차있는데 무슨 내란걱정인가?! 그리고 미국무성의 지침이라는것두 애덤즈의 소리처럼 새겨둘 가치가 없는거야. 그 사람들이야 그렇게 해두는게 좋을듯싶어서 말공부를 하는거지.

다 제 할바를 해! 자유당은 자유당답게, 내무는 내무답게…

총칼을 든 무리는 어쨌든 무서워야 하고 우직해야 하는거야. 자유요, 민주요 하는 말 외곬으로만 생각하지 말게. 아무리 고운 절세가인이라 해도 속옷까지 벗겨보지. 그 말쑥한 몸에 어여쁜것두 있지만 퀴퀴한 똥구멍, 오줌구멍두 있는 법이라.

허허… 세상만사란 그런거야. 하물며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어떻게 꾀꼬리소리만 내겠나. 난 내무가 들고 온 패쪽이 괜찮다고 보네. 이러하든 저러하든 타고앉아야 하는거야. 옥좌를 떼운 다음에 아무리 존엄이요, 정직이요 떠들어봐야 패자의 넉두리야.》

리승만은 이렇게 권태구쪽에 손을 올려주었다. 당자는 리승만의 타산된 력설에 우쭐해졌다.

자기의 주장이 여지없이 무시된 량지학은 어깨가 축 처졌다. 량지학은 속이 불끈거렸으나 리승만앞이라 어쩌는수가 없었다.

(독재란 원체 이런것이 아닌가. 독재의 시녀된 신세에 제 주장이란 애당초 꿈같은 소리다. 독재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란 어차피 비굴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비굴해지지 않으면 생존할수 없는것이 독재의 하수인들의 존재방식이다.

참자, 참아내야 한다. 저 령감이 이제 옥좌에 있어야 고작 몇해를 더 넘길가?! 와신상담이라 써도 삼키며 웅크리고있느라면 때가 오겠지. 그까짓 리기붕이야…)

량지학이 이렇게 울컥해오르는 속을 다독이며 문가에까지 이르렀는데 리승만이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이보라구…》

두사람이 그 소리에 다 걸음을 세웠다.

《자네들 아귀다툼을 하는 바람에 내 잊은게 있네. 그래, 내가 긴히 풀어줘야 할 일이 없겠나? 서슴지 말고 제기하게.》

리승만이 선심을 쓰겠다는 소리에 량지학은 쓰거워서 덤덤한 표정이였으나 권태구가 노죽을 부리며 나섰다.

《지금은 없는데 선거를 치르고난 날에 돼지 한마리 잡아주십시오. 이 위원장님하고 설악산에 메고 가서 통구이나 하고 오게 말입니다.》

《돼지? 허허, 이기면야 어째 돼지겠나? 까짓거, 소 몇짝 끌고가 불고기를 맘껏 하지 뭐. 우리 내무가 괜찮아. 하긴 비위살이 엷어서야 권태구겠나? 허허…》

방안의 네사람은 각이한 의미의 웃음을 큰소리로 터쳤다.

때아닌 웃음판으로 분위기가 좀 풀린데 용기를 얻은 량지학이 머뭇거리면서 제기하였다.

《지난해말에 상공부 장관이 선거자금으로 1억환밖에 끌어오지 못하였습니다.》

1억이라는 소리에 권태구가 눈이 커지고 프란체스까도 깜짝 놀랐다.

리승만은 얼마전에 불출마선언을 할 때 나라의 어려운 재정형편을 력설하면서 나라의 안정도 도모할겸 선거를 조용히 치르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후보 한명당 500만환을 넘길수 없다고 그 한도량을 그어놓았다. 그런데 1억환밖에 끌어오지 못했다고 하니 그 엄청난 수자에 모두가 놀랄수밖에 없었다.

리승만이만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다그었다.

《그런데?…》

《자금부족으로 지방들에서 손을 내밀고있습니다.》

《그러니 1억도 모자란다는 말인가?》

《예.》

《허… 선거놀음이라는게 과소비풍조를 만들어낸다고들 하던데 그 말이 적실해. 헌데 그렇다구 중도에서 돌아설수도 없는 일이 아니여?》

《그렇습니다.》

《그럼 상공부 장관에게 또 얘기해보지.》

《힘들어합니다.》

《뭐?…》

그 소리에 금시 리승만은 퉁방울눈이 되여 꽥 고함을 질렀다.

《그 사람 선거후엔 입에 풀칠하고 살겠대? 그 인간은 이 우남덕이 없이 살아갈수 있대?!》

《…》

리승만의 역증에 두사람은 괜스레 송구스러운듯 허리를 굽석하였다.

《내가 부탁한다고 하게. 그 사람이 그냥 모르쇠를 하면 내 다르게 변통해보지. 그까짓 지금 유럽에서 투자권을 내라구 나더러 자꾸 보채는데 서울지하철 하나만 던져줘도 그만한 돈은 쉽게 나오네. 쓸만큼 쓰게.… 문제는 이기는거야.》

《고맙습니다.》

그들이 방에서 나가자 리승만이 상공부 장관으로 해서 치민 성을 가라앉히느라고 주단우를 시적시적 거닐다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내무 하나는 잘 둔것 같애. 그 사람 장관인준을 받을 때 국회것들이 그 사람은 식자도 없는 불량한 인간이여서 내무를 시키면 서울에 벼락이 난다고 모다들어 주먹질이였다는데 그게 바로 저 사람의 장끼야. 저만한 재목감 어데서 구해들이겠나?》
《예, 각하께서 그 사람을 수하에 끌어들인건 선견지명있는 결단이였습니다.》

《저 사람의 모친 생일연을 선거뒤날로 미루세.》

《그게 좋겠습니다.

차기내각에서도 저 사람에게는 특별한 보답이 있어야 할텐데요.》

《보답? … 건 안돼. 선거란 숱한 말썽거리를 남기게 되겠는데 그럼 후환은 누가 걷어안아야 되겠나?》

《그럼 저 사람을 제물로…》

《어쩌겠나. 정치하는 인간이 죽어야 할 리유가 있으면 제때에 제 목을 내대야지. 제물이 커야 궁성의 액운도 피할수 있는거야.

권태구의 잡두리를 보니 선거가 끝나면 종신금고나 교수대에 오를만 한 죄를 뒤집어쓸게 뻔해. 그렇다고 감방에 보내게 해서는 안되고 더구나 큰 자리 주는건 이 우남의 목을 대신 내놓아라 하는것이나 다름없어. 그러니 내 저녀석이 평생 호강하며 살도록 돈자릴 주려고 하네.

지금 살펴보면 나라의 동서남북으로 도로를 뽑는게 급선무인데 그 자리에 앉혀놓으면 돈이 궤짝으로 날아들게 되네. 그래 내 도로공사라는걸 하나 큼직하게 만들어 저 사람을 사장자리에 밀어줄 생각일세.》

《예, 말씀을 듣고보니 그게 참 겉보기도 좋고 안보기도 좋은 묘안입니다. 사실이야 돈만 있으면야 뭐하러 아전노릇 하겠습니까.》

《거야 그렇지. 하여튼 두고보세. 권태구를 내무에 내세운건 잘한 일이야.》

리승만은 통치관을 단순하게 규정하여온다. 통치자의 통치능력은 능력있는 관리를 찾아내는 능력과 그를 쓰되 제때에 우대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것이다.

다음날 리승만은 아침 일찌기 자유당선거위원회를 통하여 간단히 담화를 발표하였다.

《본인은 백성들의 생활기반을 흔들거나 피해를 주는 선거유세에 로력적으로나 자금사정으로나 여러모로 페액이 크다고 예상되므로 지방유세를 하지 않을것이다.

본인은 현직대통령으로서 한번 지방에 나갈것 같으면 경무대 비서실이며 경호실이며 란리가 나서 통채로 묻어다니고 지방의 관헌들이 업무를 집어치우고 영접행사에 바삐 돌아치고 주민들이 생업을 미루고 길닦기며 미화작업이며 고역에 동원되고 결과로 물적, 인적, 재정적랑비가 헤아릴수 없다는것을 알고있다. 이는 나라와 백성의 생활을 고달프게 하는 까닭중의 큰 까닭으로 된다.

자고로 뜻높은 선비들이 임금의 지방순행을 금하는게 어떠냐고 품하여왔거늘 그 갸륵한 뜻을 알면서도 치적광고하러 선거유세라 돌아친다면 어찌 령수라 할수 있겠는가.

따라서 본인은 선거유세에 나서지 않으려 하니 선거자들은 본인의 이러한 심중을 널리 량해하여주기 바란다.》

리승만의 담화를 놓고 어용선전매체들이 일제히 《고매한 애정》이라고 야단스럽게 떠들었다. 허지만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리승만의 구차스러운 넉두리를 다 넘겨짚고있었다.

리승만이 선거선전을 두고 제일 겁나하는것은 세월이 어찌할수 없이 만들어놓은 로쇠가 선거자들에게 그대로 비쳐지는것이였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여 연탁앞에 오래 서있지 못하는 80객 늙은이의 병약한 로쇠에 접할 때 선거자들의 정서가 어떻게 흐르겠는가.

그렇다고 앉아서 선거연설을 하는 꼴은 차라리 나서지 않는것보다 못하다.

리승만이 근래에 와서 대중행사를 기피하는것은 정치적적수들에 대한 공포심때문이기도 하였다. 늙어갈수록 생에 대한 끈질긴 애착과 집념에 젖어있는 리승만은 그 어디에선가 예고없이 날아들수 있는 총탄에 뒈질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한시도 덜지 못하고있었다. 아무리 철통같은 경비진을 치더라도 어중이떠중이들을 다 모여놓은 선거선전장에 나섰다가 여차직하면 적수들의 총탄세례를 받을수 있다. 이것은 죄많은 인간의 어찌할수 없는 공포심리였다. 리승만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차례나 총탄세례를 받아온다.

리승만은 선거선전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다. 이제는 정강발표나 선거공약을 사리정연하게 풀어낼수도 없고 더구나 선거자들의 질문공세에 맞다들면 망신만 당하리라는것이 자명하였다. 즉석질문에 즉석대답을 할수 있도록 머리가 팽팽 돌아주지 않고 모든 사고와 언어표현장치가 둔화되여 청중들에게 실망만 줄뿐이다. 결국 선거선전이라는게 오히려 역효과를 거두기가 십상이다. 반공, 반북, 멸공이라는 몇마디밖에 힘을 주어 말할수 없는것이 리승만의 실상이다.

그래서 리승만은 귀맛좋은 감언리설로 《선거선전을 그만두겠다.》고 흉칙하게 선포하기까지 했던것이다.

그러나 이날 저녁 량지학이 경무대로 의기가 처져가지고 나타나자 리승만은 더이상 경무대골방에 태평스럽게 틀고앉아 호통만 치고있을수 없게 되였다.

량지학의 말이 낮시간에 한강변에서 열린 신익희의 선거유세에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도 3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어 신익희만세를 불렀다는것이다.

《뭐라구?! 30만이 신익희만세를 불렀다구?! 괘씸할지고!…》

리승만은 이렇게 눈을 흡뜨고 개탄하였다. 30만이면 서울선거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자이다. 리승만이 눈을 흡뜨게도 되였다.
량지학이 물러나자 뒤이어 권태구가 사색이 되여 리승만앞에 끌려왔다. 권태구도 한강변에서 30만의 서울시민이 신익희만세를 불렀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이것때문에 리승만이 기절초풍했다는 소리를 량지학으로부터 들었던것이다.

리승만은 프란체스까와 함께 초달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짐짓 어깨를 옹송그리고 서있는 거구의 사나이를 쏘아보다가 권태구의 예상을 뒤집어엎고 한껏 여낙낙한 어조로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이봐, 내무! 낮시간에 한강변에서 어찌되였다구?》

불호령을 기다리고있던 권태구는 리승만의 말투에 눈이 떼꾼해졌다. 하지만 이것은 또 한차례의 회오리를 예고하는 전조였다.

《각하,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불민해서 그놈들이 내지르는 고함질을 막아내지 못하였습니다.》

《허허… 내무가 제갈량이 된들 무슨 재주로 30만이 줴치는 소리 막아낸단 말인고… 뭐 대책이 없을가?》

리승만이 여전히 차분히 다가드는데 프란체스까가 령감과는 달리 낯색이 새파래가지고 쏘아붙였다.

《정신차리세요. 장관님이야 각하의 제일 큰 은총을 받고 사는분 아니세요?》

《예, 예. 그런데 말입니다. 대책은… 저, 어떻게? …》

《어떻게라니? 그 궁리 내가 대신해줘야겠나?》

리승만이 미련하기 그지없는 심복부하의 어정쩡한 태도에 골이 났으나 애써 참아내며 눈을 흘기였다.

《아유, 답답두 하네요. 장관님!》

프란체스까도 말귀가 어두운 권태구의 곰같이 비둔한 몸통을 경멸에 차서 흘겨보며 뇌까렸다.

《각하!》

권태구는 령감내외간이 겨끔내기로 몰아대는 소리에 속이 덜컥하여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기만 하였다.

돌연 권태구의 고개가 결패있게 번쩍 쳐들렸다. 그의 컴컴하던 상판으로 어둠을 찢는 불줄기같은것이 휙 지나갔다. 이제야 년놈의 시커먼 속내가 짚어졌던것이다. 권태구는 마침내 제 할바를 찾았다.

《각하! 이 서울세상은 리승만각하의 천하라는것을 제가 이제 보여줄랍니다.》

권태구가 당장 재구를 칠듯 기고만장해서 떠들자 리승만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음, 음… 조용, 조용히… 이게 첫째야.》

《알았습니다.》

리승만은 살기가 뻗친 심복부하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얼른 프랑스꼬냐크를 한잔 따라 든 프란체스까가 술이 찰랑거리는 잔에다가 상대를 사르르 녹여내는 교태까지 담아 내밀었다.

《어서 드세요. 누구누구 해도 장관님의 고생이 크지요.》

녀자나이로는 한물 건너간 프란체스까였지만 이럴 때 보면 가느스름하게 뜨고 마주보는 눈가에 아직도 뭇남성들의 가슴을 단박에 파고들어 울렁거리게 하는 색기가 남실거린다. 그 가살스러운 목소리도 종달새의 노래처럼 귀전에 찰찰 감겨든다.

권태구는 리승만도 그 옛날 이국땅에서 저 교기어린 눈매와 목소리에 혼맹이가 빠졌을것이라는 황당한 생각을 하면서 두손으로 황송스럽게 잔을 받아 허리를 돌려가지고 쭉 마시였다.

리승만은 더는 경무대에 틀고앉아 선거전을 지켜볼수만 없게 되였다. 리승만은 선비들이 자고로 어떠했소 하며 선거선전을 그만두겠다던 수작질이 언제였더냐싶게 비서실에서 부랴부랴 만들어낸 연설원고를 들고 경무대를 떠나는수밖에 없었다. 권태구가 전역에 태풍을 몰아올 잡도리를 하고 떠나가기는 했어도 그만 믿고 셈평좋게 경무대에 틀고앉아있을수도 없었다.

프란체스까도 리승만을 따라섰다. 그 녀자는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걸친 령감의 행장에 구색을 맞추느라고 진회색의 양단저고리에 담록빛치마로 굵은 몸을 휘감고 거기에 흰고무신까지 받쳐신었다. 그런데 순 조선식의 옷차림이 오히려 노랑머리와 비쭉 솟아오른 코마루를 더 두드러지게 하여 리승만의 일행에 이색적인것을 강조하는듯싶었다.

리승만은 론산에 있는 훈련소에 가서 군인들을 상대로 첫 선거연설을 하였다. 이어 조치원과 천안, 평택과 수원, 안양 등의 각지를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주로 기차역에 서둘러 준비한 연탁에 나서서 10분정도의 연설을 하였다.

어데선가 문득 날아들 총탄이 두려워 비서실에서 이 소리 저 소리 주어담은 원고대로 길게 연설을 할수 없었다. 그 이상 전개할 리론도 없었다. 사리정연하게 선거자들을 납득시킬 마음의 여유 또한 없었다.

연설원고는 거들떠보지 않고 제잡담 떠들어대는 그의 얘기란 대체로 신익희를 야비하게 헐뜯는 험담투성이였다. 조봉암은 이제 선거를 앞두고 물러선다는것을 알고있었으므로 구태여 시비질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것이다.

리승만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터갈라진 쉰소리로 이렇게 주장하였다.

《나는 현직대통령으로 자화자찬은 아예 질색이요. 그러니 이 우남이 지난 기간 치적이 뭐냐 하는 소리는 걷어치우고 딱 요긴한 말 몇마디만 하겠소.

지금 일본과 결탁하여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발전시키겠다고 떠들어대는 무리가 있는데 이건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겨도 좋다는 수작이요.

그러면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왜놈들에게 내내 허리를 굽혀왔고 지금도 허리를 굽실거리는 매국무리가 누구들인가? 그게 바로 민주당이고 그 당수가 바로 민주당후보 신익희요.》

리승만은 가는 곳마다 줄창 이 말만은 두세번 곱씹어 뱉아놓고서 자못 엄숙한 어조로 다짐을 받아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나와 같이 끝까지 싸워서 일본놈들에게 다시는 국권을 빼앗기지 말고 또 북진통일도 해서 잘살아봐야 될게 아니요? 그런즉 우리 다같이 맹약합시다.》

그러면 역전에 모인 청중들은 처음에는 모두 얼떨떨해있다가 리승만옆에 주런이 진을 친 경호관들과 자유당선거진이 일제히 주먹을 쳐드는데 따라 서로 눈치를 슬금슬금 봐가며 줄레줄레 손들을 든다. 그리고는 무슨 이렇다할 의미도 새겨보지 못한채 《맹약합니다.》 하고 자유당선거진의 선창을 따라 웨쳤다.

그러면 리승만은 주먹을 쳐든 청중을 기분이 좋아서 입을 헤 벌리고 휘휘 둘러보다가 또 한바탕 군사설을 늘어놓군 한다.

《내 재삼 강조하거니와 해방전 왜놈의 도움을 받아 벼슬하고 돈 뫃고 권력을 잡았던자들이 문제요. 그중 얼마간은 일본에 도망쳐가서 왜놈의 사냥개노릇 하고 또 얼마간은 국내에 남아있어 <민주선거>요, <자유권행사>요 하는 간사스런 구실로 일본과도 련합해서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정권만 한번 잡아서 더 큰 부자가 될 궁리만 한단 말이요.

그래 왜놈치하에서 못 먹고 못살고 피눈물 뿌려온 여러분네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투표를 해주면 어찌될것 같소?! 그들에게 표를 주는건 반역자들을 도와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행위로 된단말이요. 내 이 말을 하고싶어 팔순나이에 분망한 정사를 뒤로 미루고 여기까지 왔으니 독립이 뉘 덕인지 알고있을 여러분은 끝까지 이 우남과 함께 나라를 지켜냅시다.》

리승만이 이렇게 씨들지 않은 소리로 씨부렁거리고나면 서울에서 데리고 간 구호대가 째지는듯 한 소리로 웨쳐댔다.

《리승만각하를 다시 옥좌에 모시자!》

《갈아봐야 더 못산다! 구관이 명관이다! 리승만박사 만만세!》

구호대가 밸이 터질듯 기운을 다 짜내 웨치면 운집한 군중도 유세장의 분위기에 얼이 빠져 구호대를 따라 팔을 창대처럼 하늘로 뻗치며 소리쳤다.

어떤 곳에서는 이런 구호도 터져나왔다.

《<신>, <조>에게 찍으면 역도가 된다! 친일분자, 친공분자 타도하자!》

리승만의 유세장에 끌려나온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똑같이 그날 점심이나 저녁 한끼를 푸짐히 먹을수 있는 돈과 세면수건 하나, 《아리랑》표 담배 두갑, 고무신 한컬레가 차례지군 하였다.

리승만이 론산을 떠난 때로부터 비행기들이 각 지역으로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리승만의 초상이나 자유당의 선거공약, 리승만지지표를 구걸하는 내용을 담은 삐라가 비행기의 꼬리로 날려 하늘을 하얗게 덮었다.

영화관과 극장들에서 일제히 리승만의 치적을 선전하는 영화들이 상영되였다. 소리방송에서는 리승만이라는 호칭을 하루에도 수십번을 곱씹었다. 서울로부터 산간벽촌에 이르기까지 중, 고등학교와 국민학교의 철부지들이 줄레줄레 끌려나와 리승만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며 도시와 농촌을 누비였다. 남녘의 전역이 경무대가 일으킨 선거미친바람에 휘감겨 일대 정치만화를 펼치고있었다.

다만 지주, 부자들의 돈을 먹고사는 민주당계렬의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같은 일간신문들만은 리승만의 치적선전에 입을 비쭉거리고있었다.

점차 선거전은 리승만 대 신익희로 좁혀들어갔다. 조봉암이 신익희와 약속한 선거후보사퇴날자가 다가옴에 따라 간간이 자신의 후보철회를 거들면서 그 경우에 신익희를 지지해줄것을 호소하였던것이다.

조봉암의 립장이 명백해지자 백악관은 미국무성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비밀전문을 다울링에게 보내여왔다.

《금일부터 미국의 서울현지기관들은 선거에 개입하지 말것이며 서울선거자들의 선택을 존중해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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