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리승만은 비서를 세워놓고 인차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쏘파에 앉아 잠시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고 두터운 눈시울을 내렸다.

다울링이 선거와 관련하여 훈시질을 하자고 찾아온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선거를 놓고 미국측에서는 공식적인 지령이나 립장표명이 없었다. 그저 국무성대변인이 한두번 나서고 미국의 주요신문들이 간간이 기사를 실어 남조선에서 민주주의가 성숙되였다느니, 이번 선거가 이 나라의 발전된 정치실태를 보여줄것이라느니 판에 박은 소리나 싱겁게 냈을뿐이였다.

다울링이 예고도 없이 경무대의 문턱을 넘어선것을 보면 워싱톤의 선거지령이 떨어진것이 틀림없다. 이제 다울링이 들어와서 《민주선거방식》이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어떻소, 《사회의 변혁이 우선시》돼야 하오 하면서 신경을 거슬려놓을것이다.

력대로 맥아더요, 하지요, 무쵸요, 클라크요 하는 미국의 상전들을 번갈아 겪으며 홍역을 앓아온 리승만은 년초에 날아든 다울링과는 좀 의좋게 지내고싶었다.

만나고보니 무척 온후하게 느껴졌다. 좋게 보아주고싶은 기대때문에서인지 무쵸나 브리그스보다 젊고 박식하고 절제가 있어보였다. 말씨도 상냥하고 두눈이 맑고 크고 둥그런게 겁기가 많을것 같았다.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고들 하는데 눈이 그렇게 생긴 사람은 대체로 천성적으로 순하고 솔직하다는것이 리승만의 관상보기이다.

다루기가 버겁게 만나면 늘쌍 티각태각하며 고압적인 자세를 허물지 않던 하지나 무쵸보다 퍽 교양이 있어보였다. 돈을 한푼이라도 더 갉아내려고 기름종지 노리는 고양이처럼 신경을 도사리군 하던 선임대사들이나 주둔군사령관들보다는 재물에 대한 허욕도 덜할것 같았다.

리승만은 여러 방면에서 여러 수단과 방법으로 재물을 옭아내려는 수많은 미국인들의 탐욕을 울며 겨자먹기로 만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늘 돈궤를 따로 가지고있다. 제일 큰 묵돈은 대사나 주둔군사령관의 옆채기에 쓸어들어가기마련이다.

다울링이 열광적인 우표수집가라는 소리도 그의 인상을 한결 부드럽게 해주었다. 그런 취미는 뜻있고 속이 깨끗한 신사들만이 가지고있는 고상한 취미라는 프란체스까의 말을 들은바가 있었던것이다.

그래 리승만은 초면인사끝에 서울생활에 어려움이 많을것이라고 하면서 받지 않겠노라 뒤걸음치는 다울링에게 딸라를 가득 채운 트렁크를 억지로 들려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리승만은 여전히 다울링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신경을 바늘끝처럼 예리하게 도사리고있었다. 미국에서 한생의 절반이상을 보낸지라 그는 미국인들의 이중적성격을 속속들이 알고있었던것이다. 미국사람들과는 한시도 마음을 늦추거나 소홀히 해서는 랑패다. 그들은 식민지종주국의 위엄을 가지고 생사여탈권을 임의의 순간에 휘둘러댄다.

제아무리 경무대의 권세가 하늘을 치닫는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제 나라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미국사람들의 눈에 거슬리면 즉시에 재앙이 닥쳐들고 권세도 재물도 명예도 순식간에 물먹은 흙담벽처럼 되고만다는것을 리승만은 너무도 잘 알고있다.

지금도 리승만은 전쟁시기 겪었던 일들이 악몽처럼 꿈자리에 나타나 진저리를 치게 하고 가위에 눌리워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때가 드문하다.

전쟁시기에 리승만이 부산에 쫓겨가 안팎으로 궁지에 몰려있을 때였다. 밖으로는 공산군이 기세를 올리고 안에서는 조봉암을 위시한 정치적적수들이 리승만을 들어내겠다고 《국회》를 든장질하여 권력의 보짱을 위태롭게 흔들고있었다.

그래 리승만은 미국 몰래 《헌법》을 뜯어고치고 미국의 승인없이 반대파세력을 헌병들을 내몰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놀음을 벌려놓았다. 이 놀음이 하도 유치하고 하도 무지막지한 불법인데다가 전쟁란리통에 벌어진 놀음이여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로 해서 리승만보다도 그 후견인노릇을 하는 미국이 세계면전에서 불량배라는 모욕과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호미난방격이 되여 쩔쩔맸다. 세계여론은 물론 남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동맹국 정부들까지 미국에 대하여 조롱하고 경멸하고 비난의 도수를 높이였다. 남조선의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저들의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을러메기까지 하였다.

부아통이 터진 백악관은 현지의 미국인들을 불러다놓고 달구어댔다. 상전들로부터 압력과 멸시와 추궁을 받고 온 미국대사 무쵸와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는 리승만을 몰아내기 위한 《레이버드》(항상준비)라고 암호를 단 군사작전을 준비하였다.

그것은 미군이 직접 리승만이 둥지를 틀고있는 부산을 점거하고 리승만을 연금시킨 다음 비교적 각계층의 호응을 받고있는 인물을 내세우는것을 목표로 설정한 일종의 쿠데타였다.

그러나 이 작전은 리승만이 제놈과 깊숙한 내연관계를 가지고있는 미중앙정보국계통으로부터 신호를 받고 태평양을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백악관을 힘들게 움직여놓은것으로 하여 그리고 백악관이 그때까지도 리승만과 교체할만 한 친미주구를 찾아내지 못한 리유로 중지되였다.

두차례에 걸치는 《레이버드》작전은 무쵸의 소환으로 일단 흐지부지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리승만을 정치무대에서 제거하기 위한 작전이 막을 내린것은 아니였다.

리승만이 후견인들을 몽땅 발동시켜 미국정부의 환심을 얼마간 회복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리승만때문에 저들의 영상이 어지럽혀지는것을 묵과하려 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지배층은 리승만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냥 세상을 웃기는 추행을 일삼으면서 대세에 둔감하고 지도력을 상실하여가자 보류시켰던 모살작전에 푸른등을 켜놓았다.

이렇게 되여 무쵸의 후임이였던 엘리스 오 브리그스가 벌려놓은것이 리승만을 서해에서 없애치울것을 목적한 서해무인도총격사건이였다.

유흥차로 호화유람선을 타고 서해상에 있는 무인도로 가던 리승만은 그 섬에 있던 미군특수부대의 무자비한 기관총세례를 받았다. 경호원들이 무리로 너부러지고 려객선의 기관실이 벌둥지가 되였다.

리승만은 프란체스까와 함께 비발치듯 하는 몰사격을 피하여 선창에 넙적 엎드려 간신히 목숨을 건지였다. 전용무전수의 긴급호출신호를 받고 인차 직승기가 날아와 간신히 목숨을 건진 리승만내외와 살아있는 몇명의 수행원들을 걷어싣고 경무대로 황황히 돌아갔다.

노발대발한 리승만이 미국대사 브리그스에게는 물론 백악관과 미국방성에 대고 송사를 하고 분격을 터뜨렸다. 어디서나 똑같은 심술스러운 대답이였다.

《특수부대 경비병들의 자위조치다. 살아난데 대하여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비밀병영주변에 나타난 대상물은 그가 어떤 신분을 가지고있건 예고없는 사격을 받을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사전통보를 하고 다녀야 한다.》

리승만은 노기충천하였으나 미국의 정중한 훈계에는 어쩌는수가 없었다. 리승만이 미군사령부에 사전에 알려주었노라고 했으나 그들도 《노-》 하고 단마디로 일축하여버렸다.

이 일로 리승만은 보름간이나 침상에 엎드려 안정치료를 받기까지 하였다.

이번 선거에서 또 한차례의 경난을 치를 생각을 하면 온몸에 닭의 살이 돋는다.

밸같아서는 그까짓 《대통령》자리 훌 던져버리고 산수좋은 남도의 해좋은 해변가에서 음풍영월하며 여생을 편하게 즐기고싶은 생각이 없는바도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심하자니 수십가지 유혹과 미련과 걱정거리가 권력의 뒤다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우선 꿀맛같은 권력의 재미를 하루라도 놓치고싶지 않다. 그걸 버리면 인생에 남을게 뭐냐. 사실은 권세가 뻗칠 때 제때에 멈춰설줄도 알아야 되겠으련만 원체 세상의 독재자들 다를바 없이 리승만에게는 용단을 내릴만 한 리성적인 사고력이 없었다.

권세를 휘감아쥐고 두루 달아놓은 빚더미도 큰 우환거리다. 그 빚더미중에서 제일 곤혹스러운것은 숱한 정치적적수들을 만들어 주변에서 내쫓고 목을 치고 페인으로 만들어버린것이다.

이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서는 시각부터 지난 10년간에 지은 죄를 따지고 들겠는데 그걸 무슨 힘으로 막아내랴. 독재의 칼날을 시퍼렇게 갈아가지고있는 지금도 자객들이 부지기수이고 탄핵의 심판대에 올리자는 투서가 경무대에 매일같이 날아드는 판이다.

옥좌에서 물러난다면 이 강산의 절승경개유람은 고사하고 죽어도 묻힐 한평의 땅마저 차례지지 않을것이다.

백성을 대상으로 한 엄청난 협잡은 그 얼마며 기만과 처세에 묶이운 백성의 원성은 또 얼마이랴. 전쟁까지 벌려놓고 나라의 산천을 백성의 피와 눈물로 얼룩지게 했으니 그 역시 누구도 감싸줄수 없는 만고의 죄악이다.

리승만은 권력을 내놓게 된다면 자기가 담장을 둘러쳐놓은 악정의 정체가 낱낱이 드러나게 될것이라는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리승만에게서 권력의 종말은 곧 정치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종말을 의미하였다.

출로는 다르게 나설수 없다. 늙어 제명을 다할 때까지 갖은 요술과 포악을 필사적으로 벌려 옥좌를 깔고앉아있어야 한다. 마감에는 자기를 지켜줄수 있는 믿음직한 독재자에게 권력을 넘겨주어 전생에 저지른 죄악을 력사의 흑막속에 영원히 묻어두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독재자들의 일반적인 속성이기도 하였다.

리승만은 지금도 이렇게 강심을 다지고있었다.

(죽은 다음에는 어찌되든 살아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절대로 옥좌를 넘겨줄수 없다!)

《각하!》

다울링의 방문소식으로 어지럽고도 고달픈 심회에 휘감겨들었던 리승만이 비서의 다소 짜증기어린 부름에 무거운 눈덕을 밀어올렸다.

《엉? … 어, 그렇지. 다울링대사가 왔다고 했지. 모처럼 어려운 걸음을 했는데 만나야지. 무슨 일로 왔다고… 어, 그래 뭘 통보한다고 했지. 5분후에 내 회담실로 가겠네.》

리승만이 제정신으로 돌아가 황황히 덤벼치자 프란체스까가 얄망스럽게 리승만의 말을 수정하여 지시를 떨구었다.

《가만! 이렇게 하세요. 10분후에 나가신다고 전해요. 각하께서 피곤해하시거든요. 그 시간에 비서가 선거와 관련한 미국의 립장을 내탐하세요. 그를 10분간 상대하라는거예요.》

《알았습니다.》

비서가 리승만의 령을 제멋대로 수정하는 프란체스까의 소행이 괘씸하였으나 이러루한 경무대의 질서에 습관되여야만 하는지라 허리를 꺾어보이고는 나갔다.

《장관도 나가봐요.》

프란체스까는 그때까지도 주단우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사뭇 공경스럽게 두손을 주물럭거리고있는 권태구도 쫓아버렸다.

너렁청한 방에 리승만내외만 남았다.

리승만이 다시 눈을 지그시 감고 쏘파에 늘어지듯 허리를 붙였다. 프란체스까가 리승만의 등뒤에 가서 그의 어깨와 목부위를 꽁꽁 주물러주기 시작하였다.

《대통령》의 건강은 자기가 책임졌다고 입버릇처럼 외우는 그녀자는 실제로 안마술까지 배워가지고 리승만이 사무의 여가에 피곤을 풀도록 이렇게 성의를 고인다.

녀인의 부드러운 손길이 이쪽저쪽에 따스한 온기를 주며 어루쓰다듬었다. 리승만은 인차 노근해져서 코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프란체스까는 그 소리에 잠시 손을 떼고 얼기설기 깊은 주름이 덮이고 눈시울이 축 처져내린 령감을 련민에 겨운 눈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권력에 대한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늘그막까지 한시도 편할새없이 허둥거리며 지내는 령감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내 녀인은 쪼프린 두눈에 불꽃을 팔팔 튕기며 얇다란 입술을 옥물었다. 리승만에 대하여 제일 잘 알고있는것은 이 녀자였다.

리승만은 권력에 맛들어 자기에 대한 과신이 골수에까지 젖어있다. 자기를 이 나라의 《수호신》으로, 《희세의 천재》라고 믿고있다.

그에게서는 자기의 세계에서 동떨어져있는 모든것은 지나가는 바람결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서울정치는 오직 자기의 손아귀에 의해서만 전진하며 자기의 호령과 기분에 따라 움직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주장이야말로 진리이고 정의이며 자기가 하는 일은 어느것이든 다 력사의 검증을 받은것이라고 인식하고있다.

측근인물들 역시 리승만의 호령에 습관이 되고 눈이 멀어 늙은 령감의 이러한 인식착오와 주관에 심취된채 정신없이 추종하고있다.

그러나 프란체스까의 눈에는 리승만이 력사의 망나니로, 권력에 환장을 한 미국의 늙은 주구로만 비쳐있을뿐이다.

이 녀자는 령감보다는 훨씬 리지적이고 총명하고 랭철한 판단감각을 가지고있었다.

그리고 현실적인 안목과 타산적인 사고로부터 모든것을 예리하게 직시하고있었다.

령감도 자기도 이미 권력이라는 주패장을 들고 행운을 향한 도박놀이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이제는 거기서 정지할수 없고 돌아설수는 더욱 불가능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제는 딴 길이 없다.

일찌기 환락에 무르녹던 30대시절에 이미 인생의 락조가 두텁게 비낀 이 늙다리한테 쾌히 몸을 내맡겼던것이 무엇때문이였던가.

이 옥좌에 대한 령감의 자신감에 매료된것이 아니였더냐.

이 령감을 따라서면 황후로 혹 될수도 있다는 권세에 대한 허욕이 기약없는 인생의 승부놀이에 허영의 주패장을 던지게 한것이다.

끝내는 이겼고 소원은 성취되였다.

그러니 어찌되든 령감은 달든쓰든 이 옥좌를 지켜내야 한다. 명줄이 끊어질 때까지 옥좌에 버티고있어야 한다.

《암, 그렇구말구!》

이 땅이 황페화되든 백성이 아우성을 치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내게는 황금의 거위알같은 옥좌만 있으면 된다. 옥좌야말로 재물도 존엄도 도락도 다 안겨주는 만복의 요술지팽이이다.

프란체스까는 이렇게 입속으로 열에 떠서 되뇌였다.

시계를 보고난 그 녀자는 신경의 흥분을 자극하는 인중을 눌러 얼풋이 잠든 령감을 깨우고 정신을 가다듬게 하였다. 령감이 눈을 뜨고 게접스럽게 하품질을 하였다.

그 녀자는 재빨리 우유를 탄 커피잔을 령감의 입술에 대주었다.

《어?》

리승만이 기력을 회복하자 기지개를 늘어지게 하였다.

그는 거울앞에 어정어정 걸어갔다. 옷매무시를 봐주는 프란체스까의 손에 몸을 맡기였다.

프란체스까가 흩어진 령감의 백발을 상아로 정교하게 세공한 빗으로 비다듬어주었다. 그 다음에는 옷깃에 프랑스주재 대사가 다달이 보내오는 빠리향수를 두세방울 뿌리였다. 리승만은 프란체스까가 내미는 팔에 의지하여 휘뚤휘뚤 위태로운 걸음씨로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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