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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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놈이군!》 리승만은 손에 들고 보던 문서장을 책상우에 신경질적으로 던지며 꽥 소리질렀다. 령감이 이런 때 보면 입부리가 메돼지주둥이처럼 한발 되게 삐져나오고 눈알이 튀여나올듯 두드러지는게 길가에
세워놓은 두억시니같다. 령감앞에 황소같은 몸집의 사나이인 내무부 장관 권태구가 령감을 내려다보는 자기의 키꼴이 죄송스러워 꺼꺼부정하니
서있다가 리승만의 악청이 자기 면상이라도 후려친듯 후닥닥 놀라 얼른 고개를 쳐들었다가 무겁게 떨구었다. 그가 방금 들고 온 문서장에는 조봉암이 강화도를 시찰했다는 내무부의 긴급정보보고가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정보보고작성자들은 리승만의 주의를 끌도록 조봉암이 분명 선거유세차로 강화도를 시찰한것이 틀림없다고 전제하고 최고집권층에 대한 비판으로
강화도민중의 지지세를 상승시키려고 애를 썼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켜놓았다. 그래야 정보의 가치를 한껏 높여 리승만으로 하여금 정보수집과
작성자들의 수고를 가늠하게 할수 있는것이다. 그자들의 의도대로 리승만은 대뜸 정보에 반영된 내용을 보자 즉석에서 고성을 내지른것이다. 리승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기적엉기적 주단우를 거닐었다. 권태구는 짐짓 자기가 불민한탓으로 령감의 심기를 건드려놓았다는듯 여전히 죄인흉내를 내며 리승만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숨소리마저 죽인채 서있었다. 그는 이따금 밭은 이마아래에 송충이같이 푸시시 일어선 굵고 시커먼 눈섭을 꿈틀거리였다. 리승만이 매운 독을 쓸 때에는 나 죽었소 하는게 상책이다. 프란체스까가 얼른 리승만에게로 뒤따라가 몸을 가누기 힘들어 하는 령감을 부축하여주었다. 《창룡이, 그녀석이 잘못 죽었어. 잘못 죽었다니깐.…》 리승만은 이렇게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권태구는 입속으로 웅얼거리는 령감의 푸념질을 미처 알아듣지 못해 불량스러워보이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령감의
눈치만을 살피였다. 프란체스까만은 령감의 말을 가려듣고 리승만의 불편한 의중에 동감이라는듯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이미전에 리승만은 륙군특무대장이던 김창룡에게 집권에 도전하는 정치적적수들을 견제할데 대한 임무를 주고
오른팔처럼 부려왔다. 김창룡이란 인물은 륙군정보국에 소속된 특무대의 패장노릇을 하던자인데 몇번 만나고나서 일본놈때 특무교육을 받아온
경력과 교형리다운 기질이 쓸모가 있을듯싶어 제놈의 통치권을 떠받드는 외기둥으로 내세운자였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던 바스락별을 두알 달고있던 그놈에게 한해갈이로 큰 별을 데꺽데꺽 달아주어 륙군소장까지
만들어놓았는데 과연 짐작대로 김창룡은 그 무슨 반리승만사건이라는것을 연방 만들어가지고 리승만의 정치적적수들을 닥치는대로 쓸어눕혔다. 그중에는
그놈이 리승만에게 치적인정을 받기 위한 날조품이 태반이였는데 그통에 숱한 애매한 사람들이 고문장과 교수대에서 피를 토하고 숨이 졌다.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녀자도 남자로 만들어놓을수 있다고 장담하던 그놈도 조봉암이만은 끝내 물어넣지 못하였다. 리승만은 지난해말부터 여러차례에 걸쳐 김창룡을 경무대에 불러놓고 조봉암을 될수록 빨리 정치무대에서는 물론 아예
육체적으로 흔적없이 제거하라고 호령질을 하였다. 리승만독재의 우두머리포졸로 정계와 군부에서 첫째가는 실력자라는 평판을 받아온 김창룡은 지난 정월초에 그에게
앙심을 품어온 군부인물들에 의하여 독재의 심복자로서의 더러운 운명을 끝마쳤다. 결국 김창룡은 리승만의 오랜 숙적인 조봉암을 제거하지 못하고 뒈진탓으로 죽어서도 리승만에게서 원망을
사고있는셈이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제가 이미 미8군방첩대장 버드씨에게 부탁해놓았어요.》 프란체스까가 영어로 재빨리 말했다. 리승만이 마누라의 속살거림에 귀가 벌쭉해졌다. 《허, 그래?! … 그 사람들이 그런 일까지 맡아줄가?》 리승만이 반신반의하며 영어로 대꾸하였다. 《그럼요. 버드씨가 하는 말이 괜한 걱정입네다 하겠지요. 곧 워싱톤에 보고하고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어요. 저
사람들과는 달리 한가방 안겨주면 그런 일은 어렵지 않게 해놓을겁니다.》 《허, 딴은 그래. 마미가 발빠르게 일을 제꼈군. 창룡이고 뭐고 일찌감치 그 사람들한테 부탁해보는건데.》 《아유, 그전에야 어디 저 사람들이라구 믿어볼수가 있었나요? 하지때부터 무쵸며 브라운이며 밴플리트며 다 같은
심술쟁이들이였지요.》 《허, 그래. 골치아픈 사람들이였지.》 리승만은 쓰거운 추억을 돌이켜보며 상통을 찌프렸다. 그들은 누구나 리승만이 조선사람들중에서 첫번째 가는 친미주구배라는 인식을 같이하고 믿음도 컸지만 얼마간
사귀여보고는 령감의 체질에 구역질이 나서 갈아버리려고 뒤공작을 벌렸던것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지만 리승만이나 프란체스까는 지금도
그들을 생각할 때면 진저리를 치군 한다. 《버드대좌가 그 일을 그냥 밀어보도록 나도 만나보겠네. 한데 우리 사람들은 참 손탁이 무르구 통 머리가 돌지
않거던. …》 령감내외가 영어로 주고받는 밀담이라 딱히 오가는 내용은 알수 없어도 자기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것이
분명한듯싶어 권태구는 용기를 내여 리승만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각하, 조씨에 대하여서는 너무 신경쓸거 없습니다. 자, 이걸 보십시오. 이런 자료도 들어왔습니다.》 권태구는 가방에서 다른 한통의 문건을 꺼냈다. 《무슨 자료이게? … 또 골치아픈 소식은 아니야?》 리승만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내가 좀 먼저 보자요. 당신네는 대통령께 자꾸만 걱정거리만 보고해서 대통령께서 마음쓰도록 만들군 하니 그게
어디 대통령을 받드는 일이예요? 요즈음 대통령께서 무척 건강이 나빠지시고있어요. 대통령각하의 장생불로를 보장한다고 말끝마다 외우면서도 모두들
이렇게 충심이 부족하게 일하니…》 프란체스까가 권태구에게서 가로채듯 문건을 받아들며 토달거린다. 권태구는 노랑머리의 양녀가 앙탈을 쓰자 혼비백산해져서 커다란 몸통을 연해연방 꺾으며 안절부절하였다. 나라의 맨 웃자리에 있는 인물이라면 마땅히 나라의 안팎정세와 백성의 하정에 귀를 기울여야 되겠으나 리승만도
프란체스까도 기분나쁜 보고가 들어오면 이렇게 괜스레 보고자를 놓고 야단질이다. 특히 여기서 프란체스까의 치마바람이 더 역하고 매몰차다. 프란체스까는 벌써 리승만조정이 선 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그 뾰족한 입부리로 자기의 위엄을 리승만의 장생불로와 관련시켜 과시한바가 있다. 이를테면 리승만의 장생불로는 국사우에 있는 중대사인데 그건 자기가 국민앞에서 책임진다는것이다. 모든 장관들과
기관들이 자기 활동에서 이 문제에 첫째가는 주의를 돌려야 할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리승만의 장생불로라는 명분을 세워놓고 자기를 일약 리승만의
다음번째 권력서렬에 올려세운셈이다. 프란체스까는 그날 년로한 리승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체 행위에 대하여 《불충불효》로 엄단할것이라고
선포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내흉스러운 리승만의 혀끝에 따라나왔는지 아니면 이 나라, 이 민족을 《미개국》, 《미개족》으로 깔본 서양계집의
오만한 발상이였는지는 그 누구도 알수 없었다. 뒤날 프란체스까는 경무대에 올려오는 일체 보고문건이나 신문까지도 리승만의 신경을 거슬려 장생불로에 해끼친다면
아래사람들이 살펴 처리하고 리승만의 집무실문턱을 넘어오게 하지 말라고 그악을 부렸다. 이것때문에 벌써 여러 장관들의 목이 뎅강뎅강 떨어져나갔다. 그런 까닭에 리승만의 주변인물들은 세상이 뒤집혀진다고 해도 리승만의 비위를 건드려놓는 소식은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 결국 리승만의 시야만 점점 좁혀지고있다. 그의 두리엔 《인의 장막》이 두텁게 둘러져있다. 리승만은 그 장막안에
틀어박힌채 이제는 헤여나올수 없게 되였다. 《인의 장막》에서 첫째가는 장막은 도처에 깔려있는 자유당조직들과 그에 소속된 당원들이다. 두번째 장막은
자유당소속의 《국회》의원들이다. 세번째 장막은 행정부의 장관들과 국무위원들이고 최종장막이 경무대에서 리승만을 가까이 보좌하는 비서진이다. 매 장막들에서 출세와 공명을 위하여 아첨군들이 리승만의 총애를 받기 위한 《충정경쟁》을 저마끔 벌린다. 그들은
객관세계를 자기의 리해관계에 리로웁게 분석하여 귀맛좋은 소리만을 골라 리승만의 비위를 맞추는데 여념이 없다. 간신배들의 작간질에 나라가 롱락되고 민중이 소외당하고 리승만의 정치적잔명도 줄어들고있다. 《각하의 장생불로를 바라마지 않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하며 만에 하나라도 각하를 여의는
날이면 이 나라는 세상에서 빛을 잃고 백성들은 거지가 되고 미국도 물러가게 될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리승만을 기회있는껏 춰올리고있다. 권태구도 그 간신배들과 조금도 다를게 없다. 그는 원래 《인의 장막》에서 세번째 장막에 들어있는 인물이지만
나라의 행정관리와 치안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라 최종계선에서 민중과 《대통령》을 격페시키는 부담을 지고있다. 마침내 프란체스까가 문건을 다 보고나서 잠시 문건의 의미를 되새겨보듯 눈알을 뱅글뱅글 돌린다. 권태구의 안면근육이 너무 긴장된탓으로 푸들푸들 떨렸다. 이제 저 올롱한 눈알에서 새파란 불찌가 날고 《아유, 내무부가 정말 이렇게밖에 못하나요?!》 하고 앙칼지게
한소리 내지르는 날에는 끝장이다. 마누라의 소리를 되받아 리승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수 있는것이다. 《자네 그동안 장관노릇 하기 고달팠겠는데 이젠 쉬여보지.》 그러면 어데 하소할데도 없이 래일이면 이사짐 싸지고 시골로 락향이라는 명목으로 쫓겨갈 판이다. 천만다행으로 프란체스까의 다음말이 권태구의 귀를 번쩍 트이게 하였다. 《여기엔 그래도 볼만한것이 있군요. 내무부에서 고생이 많습니다.》 《국모께옵서 그렇게 치하하여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그제야 울퉁불퉁하게 생겨먹은 권태구의 상통에서 주름발이 펴졌다. 《하, 그래?! 내무부가 이따금 어여쁘게 일해줄 때도 있지. 자네가 읽어주게, 큰소리로!》 리승만의 치하에 권태구가 얼른 프란체스까에게 다가가 문건을 자못 공경스럽게 넘겨받았다. 그는 리승만을 향하여
허리를 한번 굽석이고나서 주단에 두발을 박고 통나무처럼 꼿꼿이 서서 큰소리로 문건을 읽었다. 《진보당추진위원회 결정, 금일 진보당사에서 진행된 회의에서는 당수 조봉암이 민주당과의 선거련합을 위하여
후보직사퇴를 제기하였는바 다소간의 론난끝에 결정함.…》 《흠, 그러니?…》 리승만의 상통에 느슨한 미소가 떠올랐다. 《예, 각하! 이건 분명합니다. 이 정보는 저와 직접 련계가 있는 믿음직한 선에서 입수한것입니다. 조봉암의
턱밑에서 뽑아낸것이니 확실합니다.》 《그래… 조봉암의 턱밑까지 줄을 뻗쳐놓았다니 내무부가 괜찮으이. 그만하면 자네도 내무부 밥을 헛먹지는
않았군그려. …》 리승만에게서 쉽게 들어보지 못하는 린색하기 그지없는 치하였다. 권태구는 그게 황송스러워 그 장독같은 몸을 또
여러번 굽석거렸다. 《각하, 과찬이십니다. 내무부는 각하를 위해 모두가 순직할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허허… 죽을 생각부터 해서야 안되지. 헌데…》 리승만이 잠시 기분이 떠서 권태구와 프란체스까와 함께 마치도 말의 유희같은것을 놀고있다가 다시 그 상통에
구름을 떠올렸다. 《거기도 새로운 문제가 있네. 신익희한테 표를 몰아준다는건데… 그게 고단수전략이 아닐가? 조봉암이 신익희를
양지에 내세우고 저는 음지에서 그 곰같은 녀석을 내키는대로 주물러댈수 있거던. 조봉암은 수가 있고 궁냥에 있어서 자네들같은건 애꾸러기정도로 여기며 데리고 노는 작자야. 오죽하면 우리
<서울의 비스마르크>라고 하던 김창룡이 끝내 그 작자만은 꺾지 못하고 제 먼저 저승길에 올랐겠나?!》 리승만은 지난 세기말에 프로씨아의 재상으로 《철과 피》를 제창하며 나라를 다스려 력사에 악명을 남긴 인물까지
거들며 시름겹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권태구가 의기양양하게 호기를 부리면서 흰목을 뽑았다. 《그까짓 몰아주게 하십시오. 선거놀음이라면 우리 내무부가 여러차례 치러보아 이제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까짓것들이 암만 그래야 아이들 짝짝꿍이나 다를바 없겠으니 각하께서는 시름을 털고 깊은 잠에 드셔도 됩니다.》 《하, 내가 깊은 잠에 들어도 된다? … 허허… 그 말 참 귀맛 좋다.…》 리승만이 턱방아를 찧으며 흐드덕거리자 프란체스까가 한마디 곁들인다. 《그러문요. 선거에서 승부라는거야 내무부가 결심하기탓인데… 아무렴 내무부 장관님의 수완과 실력이
어련할라구요.》 그 부드럽고 정이 뚝뚝 돋는 소리가 권태구에게는 삼복철에 등골에 박히는 고드름처럼 선뜩한감을 주었다. 선거의
결과에 따라 네녀석의 《충의》정도와 자격이 평가되니 단단히 그 말을 건사해두라고 지레 오금을 박는것만 같았던것이다. 그때 돌연 벼락치듯 한 요란한 함성소리가 경무대의 유리창을 드르릉- 흔들었다. 천지간을 뒤흔드는 함성에 리승만이 깜짝 놀라 몸을 떨고 프란체스까가 금시 눈살이 꼿꼿해졌다. 년놈들이 창문가로 다가가는데 권태구가 벌쭉거리며 아뢰였다. 《각하, 마음놓으십시오. 지금 서울시안의 재벌들이 자기 회사의 로동자들을 데리고 와서 각하께서 대통령불출마를
더이상 고집하시지 말고 계속 옥좌에 계셔야 한다고 구호를 부르는겁니다. 아마 매일 저렇게 모여들겁니다.》 《허허, 그래그래. 요즈음 신문들도 온통 그 소리더군. 내 아무래도 대통령선거에 다시 나서야 할가부네. 허허…
백성의 뜻을 거스르는건 하늘의 령을 저버리는 일이라…》 리승만이 입이 째지게 웃으며 뇌까리는 소리다. 그러자 권태구가 두상태기가 이제야 본심을 뒤집어보이는구나 하고 쓰거운 미소를 속으로 흘리면서 짐짓 다행스러운듯
열을 올려 부채질하였다. 《아, 물론입니다. 온 백성이 각하를 부르고있습니다. 옥좌에 다시 모시자고 입을 모아 탄원하고있는데 더이상
미루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백성이 시름을 놓게 출마선언을 시원스럽게 하는게 좋으실것 같습니다.》 《아, 그건 두고보세.…》 리승만은 《옛 중국의 류비는 여러번이나 사양을 하다가 황위에 올랐다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으나
꿀꺽 삼켰다. 그쯤한것은 저네들이 알아차려야 되겠는데 큼직한 메주덩이같은 저눔의 둔한 골통을 가지고서는 어림두 없다. 그러나 권태구는 지금 정신을 바싹 차리고 외양으로는 우직한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최대의 경계심을 가지고 제
할바를 조심스럽게 하고있었다. 이런 때 어느것이 생존에 리로운가 하는 정도는 헤아려가지고 있는것이다. 권태구는 52년도 선거때 리승만의 불출마선언을 놓고 측근의 고명한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끝장이 난 변괴를
명심하고있었다. 그때 리승만이 제입으로 늘쌍 《평생의 지기》라고 불러주던 서정후나 리승만의 오른팔이라고 서로 승벽내기로
리승만의 곁에 한걸음이라도 다가서기 위해 《충정경쟁》을 벌리던 고병직이며 장면이며 미국에서부터 리승만을 가까이에서 섬겨오다가 리승만의
초대비서실장노릇을 하던 윤치영도 리승만이 요술을 부리는것을 잘못 판단했었다. 그들은 리승만의 불출마선언을 놓고 그것이야말로 《애국자》다운
《대결단》이라느니, 《거인적인 자세》라느니, 만대에 길이 전해질 《민주주의초석》이라느니 한마디씩 찧고 까불다가 《이놈!-》 하는 리승만의 호령
한마디로 실각되고 추방되여 리승만의 진영에 다시는 발을 붙일수 없게 되고말았던것이다. 《참, 각하…》 권태구가 리승만을 더 흡족하게 만들고싶어 바싹 다가붙었다. 《백성은 끄는대로 발을 옮기는 황소무리이기는 해도 저를 먹여주는 주인은 압니다.》 《허허, 끄는대로 발을 옮기는 황소무리라구?… 거 임자도 내무노릇 몇해 하더니 주어듣는 소리가 많군그래.…》 리승만은 권태구의 소리에 신명이 나서 껄껄 웃었다. 하기는 리승만은 어느때든지 민중을 력사를 떠밀어가는 동력이라고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리승만에게서
백성이란 임금의 손짓, 눈짓에 공손히 복종하고 따르는 《무지렁이무리》일뿐이였다. 그러기에 리승만은 벌써 청년시절에 왕만 제끼면 된다는 《의기》에
따라 고종을 몰아내기 위한 정변에 관여하였다. 일후에는 가난하고 억눌린 백성을 일떠세워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생각은 없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권력자들을 찾아다니며 굴욕적인 독립청원놀음으로 세월을 보내왔다. 지금도 리승만에게는 그 《무지렁이무리》가 정권을 만들어내며 그 정권을 뒤집어놓을수 있다는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권태구가 흐물거리는 상전을 공경스럽게 쳐다보다가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저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아무렴 이 나라에 각하와 감히 견주거나 각하를 대신할 인물이 어데 있겠습니까. 이제 각하께서 2층로대에 오르시여 손이라도 한번 저어주시면 저 사람들이 감지덕지해할것입니다.》 리승만이 권태구의 아첨기어린 노죽에 귀가 솔깃해서 흥떠진 소리로 받아주었다. 《그래?… 그럼 한번 나서볼가? 숱한 사람들이 이 우남더러 나서달라고 떠드는데 그냥 웅크리고 앉아있는것도
덜퉁해보일수 있구.》 리승만까지 솔깃해나서자 프란체스까가 앙칼진 소리로 장관을 꾸짖었다. 《안돼요. 무슨 재변을 당하게 할라구 로대에 내세우자는거예요? 천에 하나 공산당이 섞여있어 총소리를 내면 장관
목 하나 가지고 그 대가를 보상할수 있겠나요? 제정신 가지고 그런 소리 탕탕 해요?!》 《예, 참 제가 아둔하기 그지없는 놈입니다. 국모님의 말씀이 천만지당합니다.》 프란체스까가 또 한번 사무럽게 독기를 뿜자 권태구는 흠칫 놀라 허리를 굽신거리였다. 리승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렇구말구. 마미 걱정 괜한게 아니야. 좋네, 좋아. 그럼 내 임자네 경찰들이 몰려오면 그때는
나라위해 수고하는 그 사람들앞에 나가서 손을 흔들어주지. 사실인즉 어느 놈이 어쩐다 저쩐다 해도 경찰들만큼 이 우남을 위해 수고를 하는게
있는가? 경찰은 사실 내 식솔과 같지.》 《각하, 황송합니다. 경찰들에게 각하의 그 말씀을 전해주겠습니다.》 권태구가 리승만이 경찰을 잔뜩 춰올리자 또다시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허허… 그리구 이보라구, 오늘 저녁까지 경무대에 와서 소리치게 하고는 래일부터는 일체 경무대근방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라구. 아까 마미가 하는 얘기 들었지? 그 숱한 사람들가운데 공산당이 껴들어 이쪽에 대고 총탄을 날리면 어쩔라구?! 그리고 저
고함소리에 심장이 와뜰거리기도 해서 좋지 않네. 이왕이면 소리나 치지 말구 후세에 전하기 좋도록 련판장 같은걸 만들어 보내오는게 어떤가? 52년에도 그렇게
하더구만. 그걸 건사해놓아야 하는건데 서울로 돌아올 때 다 없어졌네. 그게 좋겠어.》 《련판장말입니까?》 련판장이란 선거자들의 이름을 쭉 적어보내는 문서장을 이른다. 권태구는 눈을 꺼벅거렸다. 그것 또한 곤욕이다. 숱한 종이장에 지장들을 누르라고 강박해야 할 고생이 숨가쁘게
느껴졌다. 세상을 웃기는 《민의》라는 놀음을 이제는 걷어치우는가 했더니 또 해괴하기 그지없는 놀음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어찌하랴. 일단 리승만의 령이 떨어졌으니 섶지고 불무지에 뛰여들라 해도 그렇게 해주는수밖에 없다. (에익, 두상태기! 먹을수록 냠냠이라 하더니 그쯤으로 접어들 노릇이지 련판장은 또 무슨 놈의 련판장이야?!) 권태구가 이렇게 속으로 개욕을 퍼붓는데 거기에 프란체스까도 참녜하며 양념을 친다. 《옳습니다, 각하… 그것 명안입니다. 련판장을 만들어 보내면 지금부터 지지표를 받아두는것이나 같지 않겠습니까?
참, 현명하십니다.》 《어, 그런 입빠른 얘기는 함부로 발설하는게 아니지.》 《예, 그러문요. 권장관이야 사실인즉 우리하구 한식솔이니 해보는 소리지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네.》 권태구는 령감내외가 부르고 쓰는 얕은 수작에 입안에 쓴 물이 돌았으나 아첨만이 살길인 주구신세라 귀맛좋은
말치레를 연해연방 주어섬기는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그렇게 해나가야 하는건데 노상 각하께서와 국모께옵서 이렇게 친히 가르치심을 주셔야 하니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둔한 머리통과 충의심 하나만 가지고 각하를 보필하는 저희들이 참말로 죄송합니다.》 《허허… 그 충의심이라는게 기본이야. 난 그거면 만족이야.》 권태구는 리승만이 자기 어깨를 투닥거리는것을 감지덕지해하면서도 또 이제 《련판장운동》이라는 지겨운 일을 새로
벌려놓을 일이 한심해서 심기가 무직하기만 하였다. 련판장이라는 새로운 놀음의 의미를 옛날 피아노나 뚱땅거리고있었다는 저 서양녀자까지 어렵지 않게 발가놓는데 지금
후각이 예민해있는 야당권이 눈을 감아주겠는가. 단박에 야당에게 발목이 잡혀 《너희들 선거유세냐?!》고 주먹질당할 판이다. 코코에 물고뜯을 건덕지를 찾지 못해
눈을 밝히는 야당들이 모여들어 《선거법》위반이라며 또 한차례 돌풍을 일으킬것이 뻔하다. 그 사람들과 맞붙어서 또 억지놀음을 해야 할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뒤머리가 지끈거린다. 권태구는 또 한번 속으로 개탄하였다. (자가당착이라더니 자꾸만 제가 빠질 함정을 제가 파놓은셈이 아니야?! 이건 죽은 누가 써놓고 누가
코박는거야?) 이번에 새로 개정한 《선거법》은 사실상 야당의 선거유세를 극력 차단시킬 목적밑에 부랴부랴 만들어냈다. 거기서
골자는 선거 한달전부터야 선거활동을 할수 있다는것이다. 리승만은 선거유세를 오래동안 벌려놓으면 정치적혼란과 경제적피해를 가증할수 있다는 리유로 야당의 반대를
눌러버리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법의 구속을 이렇게 자기들부터 먼저 받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였다. 이제 이 문제를 걸고 민주당이나 진보당이 《국회》청문회에 자기를 끌어다 세워놓고 눈에 쌍심지를 켜달고 달려들어
닥달을 하면 용빼는 수가 없다. 이건 내무부 장관의 해임까지 밀고나갈 특종사건으로 취급될수 있다. (두상태기! 앉으면 눈덕을 붙이고 꺼덕꺼덕 졸기만 하고 국무회의에 참석해도 맥빠진 방귀만 풍풍 뀌여 사람들을
웃기는 주제에 그만 해먹지.) 한번 사내답게 씨원스레 대거리를 하고싶기도 하다. 어떤 때는 다 죽어가는 송장같은 령감한테 어처구니없는 졸경을 당하고는 《너도 사내냐?!》하는 자격지심과
자기불만으로 목구멍으로 굴뚝같이 치밀어오르는 분통을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저 두상한테서 받은 장관벙거지이니 두상이 꺼져버리면 요행 받아쓴 그 감투도 벗기울 판이라 어차피
우뚤거리고 달아 뺄수도 없다. 장관감투란 곧 권력과 돈과 명예를 이르는 호칭인데 그걸 내놓으면 뒤끝이 남을게 없다. 하기는 자기네 족속들 다 모여놓고 훑어봐야 두상을 대신할 녀석이 없는것도 사실이다. 어쩌구저쩌구해도 저
두상처럼 미국사람들에게 꼬리를 치면서도 제볼장은 다 보는 수단군이 없다. 망나니족속이 틀림없는 사나운 우익보수계의 맹장들을 떡고물 주무르듯 마음
내키는대로 흔들어댈만 한 아귀센 인물도 없다. 그리고 저 두상이 통치권의 중심에 장승처럼 버티고있으니 재간이라고는 일제때 익힌 검도술밖에 없는 자기같이
하찮은 존재도 항간에서는 리승만의 사냥개자리로 칭하긴 하지만 집권자의 턱걸이자리라도 차례진셈이다. 또 그 덕에 재물 뫃고 사는 재미도 있으니
리승만의 치하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다. 주종간의 관계란 원체 권세라는 지체에 보은이라는 물건을 주고받는 장사거래와도 같은것이다. 권태구에게는 애당초 무슨 주의주장이란게 있어본적이 없다. 오로지 배짱과 주먹으로 살아왔는데 지금은 거기에
아부아첨이 앞자리에 놓여있다. 그래 이번에도 하는수없이 두상을 《대통령》으로 밀어붙이자고 밀약이 되여있는데 리승만이 너무도 얕은 계교를 자꾸만
만들어내니 이렇게 발바닥이 닳도록 뛰여도 두상이 쑤셔놓은 불집을 끄는게 여간 신역이 아니다.… 권태구는 이러루하게 구차스러운 속투정을 늘어놓다가 령감의 입에서 몰방으로 터져나오는 기침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령감의 해소병이 겨울이 지나 봄철에 잡아드니 마누라가 오만상을 찌프릴 정도로 심해지고있다. 《각하, 주치의를 불러올가요?》 물러날 기회만 찾던 권태구가 얼른 구실을 찾아냈다. 그러자 리승만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둘렀다. 《가서 일보게. 조봉암이 물러선다구 마음놓을건 하나두 없네. 어쨌든 그놈은 나를 넘어뜨릴 잡도리인데 이제 또
뭘 가지고 이 우남의 뒤통수를 조기겠는지 알수가 없어. 그깟놈, 신익희라면 힘뺄것도 없지만… 조봉암이 그뒤에 서있다는걸 명심하게. 이젠 진보당까지 만들었으니 호랑이
날개까지 돋친셈이라. 김창룡이 잘못 죽었어. 그녀석이 정말 잘못 죽었다니깐. 아, 그녀석 왜놈특무노릇 했노라 모두들 눈빠는걸 그만큼
곱게 봐주구 뒤를 봐주었는데 제 할 소임이야 다하고 뒈져야 할노릇이 아니야?!》 리승만은 이렇게 사공 배머리 돌려대듯 이리저리로 화제를 비틀어가다가 이젠 땅속에서 해골이 되여가고있을
김창룡에게 그냥 욕설을 퍼부었다. 권태구는 리승만의 그 욕지거리가 자기의 뒤통수에 불화살이 되여 박히는듯싶어 온몸이 오싹하여졌다. 특무대장인 김창룡이 죽어버린 덕으로 일약 리승만의 특급문지기로 자기가 천거되여 턱밑까지 마침내 들어서게
되였으나 이제 혹 비명에 자기가 묻히면 리승만은 자기를 놓고도 고운 말은 하나 없이 저렇게 개욕질할게 아닌가. 좋은 말로 불러주면 《충신》이요, 그 의미그대로 불러주면 권력자의 노복이라는 장관자리가 뭇사람들을 부리고
그들의 목을 걸고 도박을 하는 재미가 있기는 해도 이렇게 구차스럽고 역스럽기 그지없다. 《자네 이젠 돌아가보지. 내무장관은 콩튀듯 해야 하는 벼슬일세.》 《각하, 소임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어서 가보게. 조봉암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게. 자네도 알아둘 필요가 있네. 그 사람이 원체
관상이 직심스럽고 준수한데가 있어. 정치시켜볼만 한 력량도 있고… 그래 내 처음으로 장관들 뽑을 때 주위에 모여든게 전탕 일본놈들의 주구배노릇 한 사람들과 미국에서 나한테
붙어살던 사람들뿐이라 세간의 눈치가 나빠 공산당경력자이지만 그 사람을 불렀지. 좌익도 품어안는다는 소리가 필요했던거야. 내 그때 <대동단결> 소리치며 좌우합작 주장한걸 임자두 알테지? 그래 그 사람 도리질하는걸 얼려서 장관두
시켜보구 부의장노릇두 시켰지. 당을 만들라 부탁두 해보았는데 그냥 뿔나서 골받기야. 그 사람에게 나를 믿으라고, 나를 따르라고 그만큼 신호를
보냈건만 이 우남의 하해같은 아량을 그냥 희롱질했단 말이요. 그런즉 이 우남 따르지 않는 인간은 이 서울땅에 살아숨쉴수 없다는것을 보여주어 후세에 조봉암 같은 역신들이
나오지 않게 해야 돼. 지금 진보당지지표가 얼마쯤 된다구?》 《뭐, 보잘것없습니다. 가난뱅이들과 멋모르는 학생애들이나 따라다니는지… 각하께서 마음쓰실거 없습니다. 각하께서
친히 세워놓으신 자유당이 우리 내무와 함께 떡 버티고있는데 진보당이 설자리가 있겠습니까?》 《너무 가볍게 볼게 아냐. 조봉암이 신통력이 있는 놈이야. 내 그놈때문에 52년도에 곤욕을 치렀지. 자네
<손자병법>이라는 말 들어봤나?》 《손자의 병법말입니까? …》 《허허… 자네하고는 의사소통이 잘 안돼. 내무장관노릇 뚝심으로만 해서는 안되네. 좀 식자가 있어야지. <손자병법>은 먼 옛날 중국의 손자라는 이름난 군사가가 각이한 군사전법에 대해 쓴 병서라네. 거기에 보면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항상 위험한 다리를 건느게 된다고 했지. 새겨봐야 할 글귀일세. 자네들은 자기도 잘 모르는데다가 상대도 모르고 헤덤비는게 큰 탈이야.》 《각하! 그 <손자병법>, 아니 각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일이 틀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내무가 내 마음에 들어. 그래, 이제부터 일정을 어떻게 잡는다구?》 리승만이 기분이 떠서 어서 가보라고 등을 떠밀던게 언제였더냐싶게 또 말주머니를 풀어놓았다. 리승만은 아직도 근력이 있어 기분이 좋을 때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입을 다물지 않아 상대를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 래일부터 사흘정도 민의시위를, 아니 각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일단 민의운동은 종결하고 련판장운동을
벌리겠습니다. 사흘후에는 각하께서 백성들의 요청에 대답하여 출마선언을 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선거날이 한달 조금 남짓하므로 이제 더 늦잡아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사흘후에는 자유당대회를 열어 각하의 후보출마에 대한 당의 결정을 받도록 합니다. 당대회결정을 뽑아낸 다음에는 각하께서 미국무성 순회대사를 접견하여 출마소식을 통보하고 백악관과 미국무성의
공식적인 리해와 지지를 받도록 하셨으면 합니다. 경찰은 선거유세에 들어가는 법적허용날자인 4월 15일부터 선거비상태세로 넘어갑니다. 일사불란하게 우리
민주사회의 참모습을 세상에 선보이도록 하려고 합니다.》 《허… 그쯤이면 내무의 머리에 선거방략이 쭉 그어져있군. … 말은 토장국처럼 구수한데 맛은 먹어봐야 알겠거늘
잘 조처하도록 하게. 참, 임자 자당생신날이 4월 초파일이라 했더라?》 《예? … 그건 각하께서 어떻게?!…》 권태구는 과시 《전지전능하신 각하》께서 자기 모친의 생일을 알아두고있는것이 희한하고 감지덕지하여 어쩔줄을
몰라하 《허허… 대통령이 수하사람들을 부려먹기만 해서야 되나? 대통령노릇이라는게 뭔가? 여러 측근들을 살붙이처럼
살펴주는거야. 그래야 자네들도 백성들을 잘 살펴주고 나라정사를 실수없이 해나갈게 아닌가? 그런즉 5월 초순이 되겠다? 임자네 자당께서 올해 여든이라 하니 생일상은 우리 마미가 궁성에서 차려주기로
했네.》 리승만이 살갑게 하는 소리다. 《각하, 국모님…》 권태구가 돌연 리승만과 프란체스까앞에 허리를 깊이 꺾었다. 《황송합니다. 제 기어이 각하를 다시 옥좌에 모시는것으로 하해같은 은덕에 보은을 하겠습니다. 각하는 …
만년토록 …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권태구는 커다란 소리로 떠듬거리며 감동에 젖어 울먹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그 무슨
축사라도 하듯 공개장소마다에서 리승만의 심복들이 늘쌍 외워대는 말을 반복했다. 《각하께서는 옥체를 귀하게 여기시여 장생불로하셔야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각하를 여의면 이 땅은 빛을 잃고
백성들은 거지가 되고 미국도 손을 털고말것입니다.》 《충의》에서 우러나온 권태구의 화답에 흐뭇해진 리승만은 비주름히 웃음을 머금은채 허리를 꺾고 서있는 권태구를
굽어보는데 프란체스까는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황소같은 몸통에 어울리지 않게 요글요글한 감사가 마디마디 우습기 그지없다. 어느 녀석이 그런 말을 만들어 시작했는지 이제는 기억에 삭막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거북살스럽기도 해서 그런
말은 거두라고, 각하께서도 달게 받으시지 않는다고 지어낸 겸양도 부리는척 했는데 이제는 너무 흔하게 들어 면역까지 생겨났다. 오히려 그 알량한
말치레를 하루에 한두번 들어야 마음이 편하다. 첫눈에 주먹패같은 감사나운 인상을 주는 장관이 감개무량해서 금시 울음이라도 터쳐놓을듯 잔뜩 상을 찡그리고
목메여 괴여올리는데 그것 또한 볼만 한 구경거리다. 권태구의 꼴불견에 흥이 난 프란체스까가 한수작 더 붙이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방에 조심스럽게 들어서던 비서가
아직도 허리를 직각으로 꺾고 서있는 내무장관의 망측한 꼬락서니를 보고 터져나오려는 폭소를 참다못해 소리를 죽여 키득거렸다. 리승만이 그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더니 비서에게 눈총을 쏘았다. 부하의 지극한 《충의》를 좀더 보아주며
어깨라도 한번 다독거려주자고 했는데 비서가 메뚜기처럼 날아들어 이 거룩한 례식을 깨쳐버린것이다. 이런게 바로 권력을 쥔 인간만이 맛볼수 있는 천하제일미가 아니겠는가. 사람의 운명이라는걸 손아귀에 쥐고
마음내키는대로 주무르는것보다 재미나는 일이 없다. 《어째서? …》 불쑥 리승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세상별미를 보는 흥을 깨쳐놓은 비서가 괘씸해졌던것이다. 비서도 자기가 때아닌 때에 나타나 그것도 경망스럽게 웃음을 참아내지 못한 큰 실책을 범한것을 때늦게 후회하다가
정중하게 대답하였다. 《미국무성 순회대사 다울링각하께서 찾아오시였습니다.》 《다울링대사? … 며칠후에 만나자고 내무도 초를 잡아두었는데…》 리승만의 입이 슬그머니 벌어지고 상통에 내흉스러운 랭소가 그물거렸다. 다울링이 서울에 오기까지 미국과 벌린 아슬한 줄당기기가 언뜻 생각났던것이다. 윌터 다울링은 지난해 5월에 임명되여왔던 3대 서울대사 윌리암 비레이시의 후임으로 부랴부랴 선발된 인물이다. 레이시는 서울에 발을 들여놓은이래 반년후에 물러갈 때까지 한번도 공식적인 장소에 얼굴을 내밀어보지 못하였다.
아니, 쫓겨간셈이다. 그 일을 생각할 때면 리승만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감히 백악관 보짱을 한번 울려 그 집 주인들에게 이 우남의
뚝심이 어떤가를 멋지게 보여준것이다. 레이시는 원체 운수가 매우 고약하게 비틀어진 사람이였다. 그는 미국내외에서 모략의 명수, 친미정권의 산파역으로
악명을 떨쳐왔다. 레이시가 대사로 가있는 나라마다 언제나 현지집권자들의 교체놀음이 벌어지군 한다. 서울로 오기 전에도
필리핀대사로 있으면서 필리핀대통령이 친미로부터 중도온건로선으로 기울어지자 주저없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암살하고 친미우익인물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백악관은 레이시가 그쪽에서 원성을 사게 되자 얼른 뽑아냈다가 마침 대사교체가 벌어지게 된 서울로 파견하였다.
리승만은 레이시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끝에 그를 환영할수 없는 인물로 공식적인 립장표명을 하고 그로부터
신임장을 받는것을 거절하였다. 외교관례상 신임장을 봉정하지 못하면 대사는 대사로서의 직능을 수행할수 없게 되여있다. 리승만과 미국무성사이에 근 반년에 걸쳐 줄당기기가 벌어졌다. 미국의 지령이라면 쓰든 달든 허리굽히기가 체질화되여있는 리승만이 레이시의 대사부임을 놓고 자기의 운명을 건
용기있는 소신을 보인데는 그나름으로서의 고충과 공포심리가 있었다. 리승만은 전쟁시기에 당시 미국대사 무쵸가 자기에 대한 실각작전을 계획한 때로부터 미국대사들에 대한 공포증과
불신감으로 악몽에 시달려왔다. 레이시는 선임대사들따위는 찜쪄먹을 정권교체의 모사로 소문까지 놓고있는 인물이니 리승만이 지레 겁에 질려 소동을
부릴수밖에 없게 되였다. 리승만은 노발대발하여 레이시를 서울에 파견한 저의가 뭐냐고 미국의 곳곳에 있는 제놈의 후견인들을 통하여
백악관과 미국무성을 들볶아대며 앙탈을 부렸다. 끝내 백악관은 서울의 로망든 황둥이가 성가시기 그지없다고 하면서도 리승만의 울화를 받아들여 임명된지 반년도
안되는 레이시를 철수시키였다. 그리고는 후임으로 미국무성에서 비교적 온건파인물로 알려져있는 다울링을 내정하여놓고 리승만의 사전동의까지 받아가는
이례적인 선의를 보였다. 미국무성은 지난해 가을부터 서울대사로 물망에 오른 다울링의 임명날자를 남조선에서 선거가 있게 되는 5월
15일로 정해놓고 부임날자도 7월 중순으로 미루어놓았다. 이것은 남조선의 중요정치행사에 미국은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을것이며 남조선선거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간특하기 그지 없는 제스츄어였다. 미국이 저들의 리해관계가 철두철미 얽혀있는 서울의 중대사에 돌아앉아있을리 만무하였다. 선거전이 다가올수록
미국의 초조와 불안은 부풀어올랐다. 반년이 썩 지나도록 비워놓고있는 서울대사자리를 더는 공석으로 둘수 없었다. 이렇게 되여 백악관의 긴급지령에 따라 미국무성은 아직 정식 대사의 임명장을 받지 못한 다울링을 서울에서 있게
되는 《대통령선거》를 현지에서 총괄하도록 실태료해라는 명분을 세워서 서울에 급파하였던것이다. 리승만은 다울링이 서울땅에 미국무성의 순회대사라는 어정쩡한 직함을 가지고 나타났으나 관례를 깨뜨려 최대의
국빈으로, 자기의 유일한 상전으로 깍듯이 영접하고 모시였다. 리승만은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바람으로 후계자로 지목해놓은 리기붕의 안내로 경무대로 직행하도록 하고
비공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하였으나 가장 호화스러운 연회상을 안겨주었다. 그 자리에 자기의 측근인물들을 다 참가시켜 인사를 시키고 면목을
익히도록 하였다. 뿐더러 조선호텔에서 지난 시기 하지가 사용하던 최고급호화방을 무료로 제공하고 알알이 골라낸 망울같은 처녀들을
매일 밤 다울링의 침방에 들이밀어 서울의 화끈한 대접을 받게 하라고 비서실의 의례담당 비서에게 특별지시까지 주었다. 그는 다울링과의 관계에 많은것을 걸고있었다. 이제는 정치적명이 다 끝난 자기의 지위와 당면해서는 3대《대통령선거》의 승패와 관련되여있는 운명적인 문제였다. 아직은 서울정치나 《대통령》의 업무와 관련하여 꼬집는 주장은 내놓지 않고 눈치만 보고있는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왜 왔을고?… 아무런 선통도 없이 어째서?…) 다울링의 갑작스런 출현이 선거와 관련되여있을것 같다. 미국으로 볼 때는 이번 선거놀음도 그리 탐탁치
않아보일것이다. 끄집어내자고 들면 문제점이 될만 한게 벌써 부지기수라고 볼수 있다. (무엇때문일가? … 혹 나의 불출마선언과 민의운동때문일가?) 《민의운동》이라는걸 하나만 빠개놓아도 교묘하게 위장된 위선인것은 사실이다. 리승만은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는것을 느끼며 무겁게 중얼거렸다. 제아무리 하늘의 달도 끌어내리고 날뛰는 풍랑도 손짓 한번으로 다스린다고 부하들이 극구 개올리는 리승만이지만
오만하고 경박하기 그지없는 미국앞에서는 빚진 종이라는 굴욕적인 복종의식에 푹 젖어있는 늙다리주구에 불과했다. 비서가 리승만의 눈치를 살피다가 설명하였다. 《뭐, 미국무성에서 보내온 통보문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통보문?… 그래그래…》 리승만은 마뜩지 않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 어조를 가지고서는 좋다는건지 불쾌하다는건지 분명치 않았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