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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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조봉암은 연경이와 함께 자동차에 오르다가 마당을 휘휘 둘러보았다. 연경이는 아버지가 최금룡을 찾고있다는것을 알고 속이 덜컹했으나 짐짓 대수롭지 않은듯 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이젠 기다리지 마세요.》

그러자 조봉암이 자동차에 오르다가 허리를 돌리였다.

묻는듯 한 눈길에 연경이 얼른 외면하며 기여드는 어조로 토설하였다.

《금룡씬 사직서를 냈어요.》

《사직서?!… 사직서라니?! …》

조봉암은 그 무슨 불꼬챙이가 심장을 면바로 찔러드는듯 한 아픔을 느끼였다.

《…》

연경이의 고개가 꺾어지듯 푹 아래로 떨어졌다.

《그게 참말이냐?》

《…》

《그러면? … 리유가 뭐라더냐? …》

《…》

《얘, 답답하다… 그 사직서라는걸 좀 보자꾸나.》

연경이를 보는 조봉암의 눈빛이 사뭇 준절하였다. 최금룡이 며칠째 앓고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 사직으로까지 번져갈줄은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얼른 가져오지 못할가?!》

조봉암의 목소리가 커졌다.

《저… 사직서는… 제가…》

연경의 고개가 점점 떨어지면서 단발한 머리칼이 갈라져 발갛게 물든 목덜미가 드러났다.

《어떻게 했다는거냐?》

《찢어…》

연경이 차마 다 밝힐수 없어 얼른 뒤말을 삼켜버렸다.

《뭘? … 찢어버리다니? … 그건 어찌된 행실이냐? 사직서야 네게 낸것이 아니고 나를 상대로 낸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네가 마음대로 찢어버리다니…

이건 당규률에도 저촉되는 행위다. 간사장에게 보고하고 시말서를 써서 제출해라.》

조봉암은 엄하게 연경일 닥달하고 차에 올랐다.

2층으로 된 자그마한 당사에 도착할 때까지 조봉암은 무거운 기색으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연경이는 숨소리마저 죽인채 앞좌석에 옹크리고 앉아 눈앞에 최금룡의 얼굴을 떠올려놓고 귀먹은 욕을 퍼부었다.

당사의 정문에 이르러 자동차가 단김을 뿜으며 멈춰섰을 때에야 조봉암은 연경이에게 물었다.

《말해라. 왜 사직한다는거냐?》

《글쎄… 최기오아버님이 자꾸 곁에서…》

《그 사람 소리야 날 념려하여 하는 소리라 크게 탓할게 없다. 새겨들을 소리가 없는건 아니구. 그런데 금룡이가 그것때문에 사직까지 할 사람인가…》

《아버지는 다 모르셔요. 어제는 경무대로 갔다가 오늘은 아버지에게 오고 래일은 또 어데 가서 수하종졸이 될거구… 철새…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사꾸라…》

연경이가 토라져가지고 야단스럽게 모난 소리만 주어섬기자 조봉암은 눈을 흘기며 말허리를 꺾었다.

《모를 소리다… 네가 그 사람한테 단단히 뿔났구나. 남에게 그렇게 마구 험턱을 뒤집어씌우는건 좋은 일이 아니다.

한번 데리고 오너라. 떠나가두 밥 한끼 나누고 보내야 될게 아니냐? 선거나 치르고는 너희들의 식을 올리자고 했는데… 무슨 긴한 리유가 있겠지.》

《됐어요, 아버지. 난 그 사람에게 다시는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했어요.》

조봉암은 연경의 태도가 이상스러워났다. 그가 내뱉는 말도 놀라웠다. 애가 애비믿고 태가락을 부려도 너무 부리는것 같다. 평소에 자기 주장이 강했으나 그것이 뒤날에 정치무대에서 쉬이 꺾이지 않을 기질로 되리라고 좋게만 생각해왔는데 버릇을 잘못 굳혀준것 같다. 그 버릇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르치게 할수도 있다.

조봉암은 연경을 엄하게 타일렀다.

《못쓴다. 녀자란 녀자다운데가 있어야지 그렇게 제 주장만 똑 제일이라고 하면 안되느니라. 정에 얽히고 정에 사는게 인생이다. 더구나 너와 금룡이는 일생을 약속한 사인데 공과 사를 뒤섞어 편협하게 밀어던지면 세상에 사귈 사람이 몇되겠느냐?

세상만물에는 다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무는 호랑이는 뿔이 없고 뿔있는 염소는 물줄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이것은 조봉암이 평생토록 지켜오는 지론이기도 하다.

일찌기 20대 젊은 나이에 조선공산당창건자의 한사람으로 나섰을 때부터 력사에 곡절많은 풍운을 다 겪어온 조봉암에게는 정치적리념으로 변함없이 운명을 같이하여오는 동지들도 있지만 헤여지고 다시 만나고 또 헤여져 정치적적수로 된 인물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조봉암은 상대가 정 반동이 아닌 이상에는 인간적인 뉴대를 이어온다. 그 덕으로 조봉암은 지금도 정치권은 물론 권력기관에도 기업계에도 친구들이 많았으며 그들에게서 이렇게저렇게 협조도 받고있다.

조봉암은 차에서 내리며 맏사위에게 말했다.

《봉무 이 사람, 자네 이길로 금룡이를 찾아보게.》

뒤를 돌아보던 조봉암은 연경의 눈굽에 함뿍 고여있는 눈물을 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여느때 같으면 《아버지, 알겠습니다.》하고 시원스럽게 기분을 바꿨겠는데 눈물까지 짜고있으니 상서롭지 않다.

조봉암은 어린시절부터 둘째딸에게서는 눈물을 본적이 얼마 없다. 속통이 큰 성격이 조봉암에게는 무척 대견스러웠다. 그게 연경의 남다른 매력이기도 하였다.

조봉암이 오늘 비록 욕은 했어도 딸의 가슴에 슬픔을 줄만 한 얘기는 없었다. 조봉암은 그 눈물의 의미가 불안하였다.

정말 이태를 나누어온 저애들의 사랑에 서리가 내린것인가? 그래 금룡이가 두루 처신이 거북하여 자리를 뜬것일가?

조봉암은 이렇게 생각이 들자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갈라졌다는거냐? 그 사람이 네게다가 통첩이라도 냈다는거냐?》

《안요.》

연경이는 눈물을 닦고 도리질을 하였다.

《그러면? …》

《아버지를 배신했으니 나를 배신한거죠.》

연경이 애써 자신을 다잡고 서슴없이 대답하였다.

《허, 애도… 그거야말로 흑백론리다. 허허…》

조봉암은 금시 속이 너누룩해졌다. 그는 곱게 도드라져오른 딸의 코마루를 사랑스럽게 튕겨주었다.

우선 마음이 놓이였다. 아직 이들의 정에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다행스러웠다.

사랑이란 함부로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다.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줴버리는 장난감도 아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이 비껴든 고결한 본성이며 사람들만이 맛보고 누리는 락이고 복이다.

인간은 사랑을 위해서 존재하며 사랑을 떠나서는 그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사랑은 가꾸어야 하며 아껴야 하며 지켜내야 한다. 비바람이 세차다고 무너져내리는것을 보고도 외면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본능으로 가지고 사는 인간들의 모양새가 아니다.
그는 이들사이의 골이 깊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경종을 울려놓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연경의 나이나 너무 올곧은 성미로 보면 아버지를 배신하는건 자기를 배신하는거라고 속단을 내리고 결기를 가지고 매듭을 지어버릴수도 있다.

조봉암이 그들의 사랑이 더 벌어지기 전에 단단히 탕개를 조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연경이가 생각깊은 어조로 한마디 하였다.

《저는 이번에 참말로 많은걸 체험하고 배웁니다.》

《그래… 그건 좋은 일이야. 사람의 마음의 키는 사색의 심도에 달려있지. 언제나 모든것에 대하여 수박겉핥듯 하지 말고 그 진속을 빠개보고 거기서 사건과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고 거기서 교훈을 찾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번에 어떤걸 체험하고 어떤걸 배웠는지 어디 한번 들어보자.》

조봉암은 딸의 시작말에 호기심이 동하여 은근히 부추겼다.

《저는 겨울이 돼야 솔푸른줄 안다는 속담을 요새 와서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허, 심각한데.》

연경이는 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여주자 도툼하게 내불린 빨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내처 말을 이었다.

《이번 선거가 어떤 선거입니까?! 진보당과 아버지 그리고 우리 가정도 운명을 걸고나선 어려운 싸움이 아닙니까?!》

《그래, 어려운 싸움이지. 자기를 바쳐야 하는 싸움이다.》

《저는 이 싸움이 시작되자 매 인간들의 진가가 명백해지는것을 느꼈습니다.

리승만계라고 생각했던 적지 않은 사람들까지 아버지의 출마를 축하하여왔지요. 그런데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모셔온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도전하거나 아버지곁을 떠나가는건 정말 리해가 되지 않아요. 글쎄 서정후위원장이나 심운간사 같은 사람들은 원체 권력야심이 큰 사람들이니 아버지를 가로막아나설수밖에 없었겠지요.

헌데 최금룡 같은 사람은 뭐나요?! 최기오아버님은 또… 그뿐인가요? 류선녀선생님도 그렇지요. 서정후위원장이 출마한다고 해서 찾아왔다가 아버지의 출마가 새로 상정되여 당결정으로 눌러지니 사라졌지요.

전 용서할수 없어요. 특히 최금룡같이 그런 꼴기없는 인간과는 절대로 타협할수 없어요. 저도 아버지도 그 사람을 헛보았어요.

이건 배신이예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봉암은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흥분을 누르며 그냥 이어가는 딸의 항변에 가슴에 아릿하게 박혀드는 아픔을 느끼였다.

연경이는 그 총명한 머리와 결바른 성정을 가지고 문제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있다. 거기에는 엄연한 진실이 있으며 무거운 교훈도 있다. 인간사회의 법도도 있다.

그러나 딸의 평가에는 일면적인것도 적지 않다. 최금룡이나 최기오의 리탈을 꼭 배신이라고 저주해야 하겠는가. 류선녀가 돌아간 리유에 대하여서도 연경은 크게 곡해를 하고있다.

물론 그 모든것들은 다 선거와 관련하여 들쑹날쑹 삐여져나온 일들이니 연경이의 깨끗한 마음에 커다란 충격으로 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조봉암은 다소 착잡한 표정을 짓고 연경의 말을 받아주었다.

《얘야, 난 무슨 소린지 통 가려듣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너의 험구에서 명백히 옳지 않은것은 정을 뚝 떼버린것이다. 어찌 그럴수 있느냐. 네게 가장 가까워야 할 두사람에게 껴잡아 흉한 딱지를 붙여놓는게 나는 싫다.

사람이 한당대 살아가느라면 무슨 일인들 없겠니. 사람들사이에 화목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인내와 자제다. 그래서 참을인자 백자를 써보라는 말도 있는거다.》

《아버지, 저는 참을만큼 참았습니다.》

《하지만 참을인자 백번까지는 써보지 못했겠지. 허허…》

《참, 아버진…》

《내가 아까 네 말을 흑백론리라고 했지. 모든 사물현상을 흰것과 검은것으로만 보는 단순성, 이건 유해로운 인식론이다.

사람들의 마음이란 천층만층이라는걸 생각해봐라. 나의 출마를 반대한다 해서 단박에 배신이라는 욕스러운 딱지를 붙인다는게 말이 되느냐? 그렇다면 네 언니에게는 어떤 딱지를 붙여야 할가? 효경이도 어쩌면 반대파에 속하지 않느냐? 어디 대답해보렴.

그것 봐라. 대답을 못하지 않니. 그리고 류선녀선생이 돌아간것으로 말하면… 흠, 너 아버지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그 사람은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이 죽산이 제발 이번 선거에 나서지 말고 혹 나서더라도 패자가 되라고 빌게다. 그나름으로의 리유가 있었지. 허허…》

조봉암은 헌헌하게 웃어보이였다.

류선녀가 떠나가던 때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류선녀란 몇해전부터 법무부 차관으로 있는 류선민의 누이동생이다. 리화녀자대학교 가정학교수로 있는데 현숙하고 인물곱고
사교성이 있어 서울상류사회에서 손꼽히는 숙녀로 알려져있다.

오래전부터 조봉암을 극진히 사모하여온 녀인이였다. 녀인의 사랑이 해를 넘으며 서울의 상류사회에서도 화제거리가 되여있다. 녀인은 《대통령선거》전을 앞두고 조봉암이 드바삐 뛰여다닐 때 효경이를 도와 선생님의 시중을 들겠다며 찾아왔었다.

그런데 조봉암이 진보당의 결정으로 서정후대신 《대통령》후보로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는 소식에 접하자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하였다.

녀인은 조봉암에게 하직인사를 하였다.

《선생님, 전 그만 돌아갈가 합니다. 주변에서 저의 소행을 곱지 않게들 볼가봐 두렵습니다.》

그러면서 류선녀는 오빠가 자기에게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네가 시기선택을 잘못하였다. 네가 경무대 안방이 탐나서 신당동댁에 찾아들었다면 어쩔테냐. 세상인심이라는게 언제나 고약하기 이를데 없느니라. 남 잘되는것을 좋아하는게 그리 없는줄 알아라. 죽산에게도 흠될수 있고…》

조봉암은 어렵게 넘어왔던 문턱을 다시 넘어가려는 녀인의 심중을 리해하였다.

류선녀는 속눈섭이 촉촉히 젖어들어가지고 오연한 어조로 한마디 덧붙여 남기고 떠나갔다.

《저는 다시 오겠습니다. 다시 들어설 때에는 선생님이 절 내쫓는다고 하여도 이 집 문턱을 더는 오락가락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이번 선거에서 이기시여 경무대에 들어가신다면 다시는 선생님앞에 나타나지 않으렵니다.

저는 대의를 위하여서는 선생님이 승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이번 선거전에서만은 저를 위해 패자가 되여주시기를 빌고 또 빌겠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자신이 후보출마를 단념했다는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가? …

승자와 패자… 참으로 착잡한 의미를 가지고있다.

조봉암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갈래많은 운명과 리해관계가 엇갈리고 골받이하고있는 이번 선거가 생각만 하여도 머리가 핑 돌 정도로 복잡하게 엉켜들군 한다.

그러나 지금 조봉암의 생각은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리승만을 쳐몰아내야 하며 여기에 진보당과 자신의 운명도 복종시켜야 한다는 의지만은 드팀이 없었다.

고향땅이 마음의 보짱을 더욱 든든하게 세워주었다. 그를 버림은 명분이 어떠하든 고향땅의 처절한 울부짖음에 대한 배신이다.

조봉암은 차에서 내려서며 말했다.

《자, 집에 돌아가서 더 얘기하여보자. 아마도 우리의 얘기는 길어져야 할가부다. 그런데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에 표정관리부터 해야겠다. 차안에 들어가 눈물자국이나 지우고 천천히 들어오거라.》

조봉암은 연경의 속을 밝게 해주고싶어 껄껄 웃으며 집을 떠나올 때 맏딸이 호주머니에 넣어준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연경이 얼굴이 활딱 붉어지며 얼른 자동차안에 숨어버렸다. 조봉암이 크지 않은 회의실에 들어서니 진보당추진위원회 핵심간부들이 다 모여들어 왁작 떠들면서 담배를 태우고있었다.

지방에서 윤기중간사장의 긴급포치를 받고 급히 서울로 온 간부들이 조봉암에게 차례차례 다가와서 인사를 하였다.

인차 자리가 정돈되고 주석단에 조봉암과 윤기중 그리고 부위원장인 우달수와 서정후가 자리잡았다.

회의사회자인 윤기중이 진보당추진위원회 집행위원회를 대신하고있는 간부들이 전원참가하였다고 통보하고 선거대책과 관련한 조봉암당수의 긴급제안을 토의하고 해당한 결정을 채택하게 된다고 회의안건을 알려주었다. 조봉암은 입가에 미소를 담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정찬 눈길을 보냈다.

서정후와 같이 여든을 넘긴 로장들도 있고 신창균과 같이 투쟁년조는 오래나 아직 40대의 사나이들도 있다.

그리고 윤기중이나 우달수와 같이 30대부터 벌써 자기의 정치적일가견을 세우고 《국회》나 정치권에서 명성을 떨치고있는 쟁쟁한 정치인들도 있다.

어디에 내놓아도 하나가 열, 백을 당할수 있는 지식과 담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들이다.

조봉암의 두리에 뭉쳐 진보당이라는 진취적이며 변혁적인 당을 목표로 하는데는 각각 여러가지 나름으로의 리해관계와 동기가 있지만 하나만은 일치하니 그것은 리승만독재를 부정하고 끝장내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였다.

리승만은 곧 미국이며 남조선이라는 신화적인 관념이 절대적인 서울의 정치풍토에서 이러한 투지를 가진다는것부터가 죽음을 초월해야 하는 처절한 결사전이였다.

그러한 리유로 하여 조봉암은 언제나 민중의 요구를 대변해나선 전우들이 고마워 그들의 충언을 중히 받아들여왔다.

측근인물들 역시 조봉암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정의로, 명령으로 접수하는데 습관되여있다.

그런데 이미 당간부들의 결정으로 못박아놓은 《대통령》후보를 사퇴할데 대한 문제를 또다시 제기하면 어떻게 나올것인가.

이틀전 회의에선 자기가 내놓은 의견에 대하여 여러명이 반대하였고 지지자는 몇되지 않았다.

어제 밤 우달수에게 옛말까지 들려주며 자기의 결심에 못을 더 꽝꽝 박기는 했으나 회의장에 나서니 긴장감을 덜수 없다.
  조봉암은 다시한번 장내를 둘러보았다.

문득 회의속기준비로 종이장들을 간추려놓고 얌전하게 앉아있던 연경이와 눈길이 부딪쳤다.

회의장에 앉아있는 연경의 모습은 좀전과는 판판 딴 모습이다.

진보당추진위원회에서 홍일점으로 총애를 받고있는 연경은 이런 곳에 나서면 절대로 회의의 분위기에 말려들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다소곳이 자기 일만 한다.

지금도 연경은 아버지의 첫 발언을 속기하려고 큰 눈을 잔조롬히 해가지고 자기를 쳐다보고있다가 자기에게로 와박히는 아버지의 엄숙한 눈길을 받자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다음에는 방긋 웃어보였다. 아버지의 말을 다 리해하고있으니 어서 말씀하세요 하는 무언의 격려요, 지지였다.

조봉암은 자기도 모르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후보출마를 철회할데 대한 긴급제안과 그 필요성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장내가 갑자기 벌집이 터진듯 소란스러워졌다. 예상했던바였다.

새로 이번 회의에 불리워온 간부들이 깜짝 놀라 한마디씩 불만을 던졌다.

《보고를 마저 청취합시다. 발언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윤기중이 쥐고있던 연필로 책상을 두드리며 조용히 주의를 주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의 속말을 듣고있습니다.

민주당이란 어떤 당인가? 지주, 자본가의 당이다.

진보당이란 어떤 당인가? 민중의 당이다.

지반과 목표가 상극인 두 당의 련합이 가당한가?

옳습니다. 그들은 본질에 있어서 자유당과 다를바 없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철저한 대변자들이라면 우리는 사회민주주의를 제창합니다. 그들은 리승만의 <북진통일>과 근사한 실력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주도하는 통일을 바랍니다. 우리 당은 평화적통일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민주당과 진보당련합의 최대공약수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리승만독재에 대한 심판입니다. 바로 이걸 위하여 두걸음 후퇴하자는것입니다. 리승만독재의 종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최대의 당면과제이며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종국적승리를 위한 커다란 한걸음의 전진을 의미합니다. 2보후퇴, 1보전진…

그러나 우리는 당초에 설정된 선거를 통한 우리의 목표를 상실하지는 않을것입니다. 나는 다만 후보를 민주당후보인 신익희에게 양보하고 부통령후보는 우리 당의 우달수후보가 그냥 담당하게 함으로써 선거전을 통하여 우리 당의 강령을 꾸준히 민중에게 선전하고 우리 당의 민중적지반을 확보하자는것입니다.》

또다시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속에서 제일 고령인 서정후가 곰방대를 틀어쥔채 길게 드리운 채수염을 흔들면서 짜증기가 나서 소리쳤다.

《아, 떠들지들 말고 당수선생의 경륜을 다 들어봅쉐다. 뭐 그리 급해들 하오.》

이어서 조봉암은 민주당과의 실무접촉문제를 비롯하여 야당련합을 위한 절차에 대하여 자기의 구상을 내놓았다.

조봉암이 자기의 주장을 대체로 전개하고 자리에 앉자 방금전의 기세와는 달리 좌중은 물뿌린듯 잠잠해졌다. 방안의 분위기는 갑자기 그 어떤 중압에 눌리워 허탈감에 사로잡힌듯 침울하고 무거워졌다.

윤기중이 그 숨막힐듯 한 침묵과 저조해진 분위기에 도전하듯 손을 들어 내저으며 웅글은 어조로 소리쳤다.

《찬반론의를 하겠습니다. 토론들을 하십시오.》

이번에도 역시 첫 토론자는 서정후였다.

조봉암은 이미 서정후의 립장을 알고있는지라 귀를 강구지 않고 자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서정후는 강화섬을 다녀온 그날 저녁에도 자기의 침실에 와서 자면서 후보직사퇴의사를 철회할것을 집요하게 권고하였던것이다.

서정후에 이어 여러명이 그의 주장을 지지하여 강한 어조로 토론하였다.

왜 《대통령》후보를 철회하고 민주당에 양보하면 안되는가?

론조들이 강렬하고 치밀하였다. 반론할 여지가 없이 무조건 당수는 선거전에 나서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군 한다.

조봉암은 부지중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문득 연경의 눈길과 부딪쳤는데 얼른 눈을 피하는것을 보니 연경이도 당안의 여러 중진들의 열화같은 격정과 빈틈없는 론조에 박수를 보내고있는듯싶다. 하기는 이번 선거를 놓고 연경이는 벌써부터 꿈이 컸고 열광에 가까운 흥분을 감추지 않았었다.

《대통령》후보사퇴설이 나왔을 때부터 좌절감에 휩싸여 기분이 처져있었는데 모두가 입을 모아 후보사퇴를 반대하여나서니 다행스러운 모양이다.

조봉암은 사태를 그대로 방임해두었다가는 여기 모인 당의 중진들이 거지반 야당련합을 용인할수 없다는쪽으로 립장을 정리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고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이들의 량심과 욕망과 기대의 표출이였다.

이들은 지금 누구나 례외없이 연경이처럼 커다란 흥분과 환희에 사로잡혀 선거전을 준비하고있다. 실패와 후퇴와 피어린 고행끝에 드디여 고고성을 올린 진보당은 리승만세력의 갖은 방해책동을 박차고 《대통령》후보까지 정정당당하게 출마시킬수 있게 되였다.

진보당의 집안에서는 지금 대다수의 인물들이 경축의 분위기에 들떠있다. 한달 남짓한 선거날까지 발이 닳게 뛰면 리승만을 경무대에서 쫓아낼수 있으며 세상은 마침내 진보당천하가 될것이라고 믿고있다.

불이 일고있는 현훈증에 이제는 랭철하게 물을 끼얹어야 한다. 보다 현실적인 안목으로 대세를 들여다보도록 리성을 찾아주어야 한다.

정치란 투기가 아니다. 그것은 고도로 정제된 예술이며 과학이다. 어느 하나의 세부에 집착되거나 어느 하나의 선률에 매혹되여서는 전체를 망칠수 있다.

조봉암은 아직도 술렁거림이 멎지 않은 회의장을 둘러보다가 두손을 쳐들어 장내 정숙을 보장하여달라는 신호를 하였다.

조봉암이 재차 일어나려고 하는데 우달수가 그를 앞질렀다.

그는 장내를 한바퀴 휘둘러보고는 담담하게 토론을 시작하였다.

《여러분, 변혁의 기개와 열정, 욕망이 곧 우리 정치부대의 힘의 전부일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정세평가와 전술작성에서 과학적인 인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시대와 민중의 요청에 대한 당리당략을 뛰여넘는 애국헌신이 필요하며 보다 안전하고 믿음직한 그리고 보다 심오한 책략이 필요합니다.

리승만일파의 독재적전횡은 지금 극에 이르렀습니다. 리승만의 묵인과 조장밑에 불법, 무법이 란무하고 정치의 도덕성은 찾아볼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 시대에 다행으로 정의의 기발을 공개적으로 추켜든 유일한 정당인 진보당의 진출을 봉쇄하기 위하여 그 어떤 추행도 가리지 않을것입니다.

얼마전에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리승만은 내무부 장관 권태구를 불러놓고 우리 당수를 정치적으로 영원히 매장할데 대한 모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 정보는 믿을만 한 소식통으로부터 통보받은것입니다.》

우달수는 손에 든 문건을 흔들었다.

좌중은 일시에 거칠게 술렁거렸다.

《당장 불집을 터뜨립시다. 적법한 절차를 밟아 등록한 후보를 놓고 무슨 놈의 망나니짓이야?! 리승만의 짓거리를 초전박살해야 돼!》

제일먼저 팩해서 분노를 격발시킨것은 서정후였다. 그는 정하게 다듬은 하얀 채수염을 흔들며 주먹으로 앞상을 쳤다. 리승만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는 로정객이다.

원래 서정후와 리승만은 배재학당의 동창으로서 수십년세월을 너나들이로 가까이 지내왔다.

호남평야의 만석군의 자손인 서정후는 벌써 지난 세기말에 리승만과 함께 당시 봉건정부를 뒤엎으려는 박영효의 쿠데타사건에 나섰다가 역적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였다.

1920년대 중반기에는 지주계급의 울타리를 뛰여넘어 조선공산당의 역원으로 활동했으며 상하이림시정부에서도 굵직한 자리에 앉아 왜놈들에게 여러번 끌려다니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자주 건너가 리승만의 독립구걸놀음에 합류하여 그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결의형제까지 맺고 지내던 그들의 사이가 앙숙간으로 쩍 벌어지게 된데는 웃지 못할 희비극이 있었다.

1952년 봄이였다.

당시 미국에 가있던 서정후는 리승만의 선거불출마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거기서 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리승만이 피난가 살던 부산으로 날아들었다.

리승만을 방문한 서정후는 어리석게도 선거불출마선언에 가리워진 리승만의 음흉한 속내를 미처 헤아려보지 못하고 그를 《애국적인 결단》으로 면전에서 평가하면서 자기가 대신하여 출마하겠으니 자기를 잘 밀어달라고 청탁까지 하였다.

리승만이 《잘해보게.》 하고 손까지 흔들어주었는데 서정후가 자기가 속았다는것을 깨달은것은 그날로부터 열흘정도 지나서였다.

리승만은 《민의운동》이라는 해괴한 놀음을 벌려놓고서는 불출마선언을 취소하기로 하였던것이다.

이를 계기로 리승만은 서정후가 제발 다시 출마하라는 요청은 못할망정 자기 자리를 넘본 고약한 놈이라고 귀먹은 욕을 퍼붓기 시작하고 서정후는 리승만이 평생지기를 손끝에 올려놓고 희롱질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경무대로 가서 리승만이 준 모든 공직을 버리겠다고 사직서를 갈겨써서 던져주고는 평생을 이어왔던 우정을 끊어내치고 리승만과 결별하였다.

그길로 민주당의 전신인 대한국민당청사를 찾아가 입당을 청원하고 그 지도부 성원으로 들어앉았다.

그뒤에는 민주당의 권세놀음에 휘말려들었다가 지도인물들과 또 한차례 언쟁을 벌린 다음 천령배의 소개장을 들고 조봉암을 찾아왔다.

《리승만은 기어이 쫓아내야 할 인간페물이요. 리승만과 싸우는 일에는 이 서정후를 앞에 내세워주오. 로병은 지팽이를 짚고 죽산을 따라가겠소.》

그때 서정후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맺힌 한을 털어놓았다.…

지금도 서정후는 자나깨나 리승만을 몰아낼 생각만 하고있다.

서정후가 리승만의 짓거리에 고성을 내지르자 회의참가자들은 앞을 다투어 리승만에게 저주를 보냈다.

《당장 대법원에 제소를 합시다!》

《아니 비상국회를 열어 탄핵소추를 요구합시다!》

《언론에도 공개하고 여론재판부터 벌립시다!》

《두상태기! 로망에도 분수가 있어야지. 이건 완전한 정치깡패요, 불망나니짓이 아닌가. 그놈을 당장 민중의 심판대에 끌어내야 합니다.》

언변들이 좋고 기개 드높은 사람들이 윽윽거리니 장내가 움씰움씰거리고 당장 일을 칠듯 기상들이 무서웠다.

《제가 왜 구태여 이 말을 꺼내놓는가?

서울통치권의 정치도덕성이 어느 지경에까지 추락되여있는가를 말하자는것이며 이번 선거에서 우리 진보당에 대한 압박도수가 어떠하리라는것을 말하자는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같은 소식에 놀라워하거나 뒤걸음치지는 않을것입니다. 다만 통치집단의 용렬하고도 구차스러운 작태를 다시 보게 되여 부끄럽고 그런 정치추물들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은 민중으로서의 비애를 다시금 느끼게 될뿐입니다. 그리고 기어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런자들을 권력의 자리에서 들어낼 투지를 더 굳세게 가다듬을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의 동토대에서 우리 당이 권력을 장악할수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민중은 지금 우리에게 리승만을 들어내줄것을 간절하게 바랍니다. 우리는 당리당략에 집착되여 오늘의 시대가 우리에게 부과한 민중적요청에 책임적인 대답을 주지 못하거나 회피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책임적인 대답, 승리할수 있다는 확답을 어데서 찾겠는가?

그것이 바로 민주당과의 련합입니다. 민주당과의 련합으로는 능히 당면한 정치과제를 해결할수 있습니다.

물론 아까 어느분이 지적한바와 같이 민주당과 진보당은 절대로 화합이 될수 없는 상반되는 극을 이루는 실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파쑈독재의 종식을 바라는 민중을 위하여 내키지 않지만 민주당에 손을 내밀어봅시다. 그러되 그들에게 명백히 찍어줍시다. 민주당과는 정략적이고 시한부적동반자관계이지 절대로 우리 당의 종착점까지 한배에 올라 동고동락할 린접은 아니라는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민주당과 련합하면서도 철저한 자본주의적정당인 민주당의 반민중적행위에 대해서는 타협없이 공격할것입니다. 민중앞에서 민주당의 허물을 감싸주거나 미화분식해주는 둘러리는 절대로 되지 않을것입니다.

우리는 야당공조가 성사되고 후보불출마를 공포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선거를 치른 그 다음날부터 여전히 우리 당의 정책으로 민주당정책의 착취성, 반동성, 기만성에 대하여 공세를 늦추지 않을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에 대한 지지표를 민주당에 몰아주는것으로써 파쑈적억압에 짓눌려 신음하는 가난한 민중에게 희망을 주고 새 제도에 대한 기대를 주고 행복에 대한 신심을 주고저 합니다.

저는 이번에 제 분수에 어울리지 않게 부통령후보로 천거되여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자리에 연연하면서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당수의 제안을 지지하자니 사실은 땀이 납니다.

도의를 저버리는 일 같기도 하구…》

우달수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자 조봉암이 불쾌한 어조로 저력있게 경종을 울려놓았다.

《지금 우리는 당회의를 하고있소. 도의라는 말을 꺼낼 때가 아니요. 그리고 부통령후보는 호강하는 자리가 아니요. 참호에 나선 1선전투원이요.》

《좋습니다! 그럼 우부위원장에게 하나 물읍시다.

우리의 기본싸움은 언제부터요? 목표가 뚜렷하고 로정이 명백해야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이 아깝지 않을게 아닌가.》

뒤에서 누구인가가 앉은채로 열정적으로 물었다.

《그에 대하여서는 내가 대답하리다.》

윤기중이 서두름이 없이 천천히 말꼭지를 뗐다.

《4년후… 4년후요.

난 원체 사흘전에 당수의 긴급제안을 반대하여 두번세번 풀무질하듯 일어났던 사람이요.

하지만 우리 당수의 긴급제안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며 과학적이며 거시안적인것이라는것을 확인하고 이렇게 립장을 달리하게 되였습니다.

여러분, 4년을 더 기다려봅시다.

4년후… 우선 사회의 민주적발전을 진일보시키고 힘과 지혜를 키워내는 시공간을 가져봅시다. 미래를 위해 약진하는 우리 당에 4년은 전략적목표에 확실하게 접근할수 있는 충분한 과도기로 되여줄것입니다.

다시 확언하건대 우리 당의 운을 건 대결전무대는 다음기의 선거전으로 될것입니다. 이것이 당수의 긴급제안의 의미라고 판단하였기에 괴롭지만 저도 자기의 립장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 쓰겁더라도 두걸음 물러섭시다. 당수를 따라 영예롭고도 착실한 한걸음의 전진을 위하여 두걸음 물러섭시다!》

우달수와 윤기중이 이렇게 련이어 당수의 긴급제안을 열렬하게 옹호하여나서자 신창균도 커다란 흥분에 휩싸여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옳소! 나도 지지하오!》하며 그는 제 먼저 박수를 쳤다.

당의 중진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삼총사가 윽윽하자 단번에 회의장분위기가 바뀌워졌다.

기다린듯 회의참가자들이 신창균을 따라 열렬한 박수로 조봉암의 긴급제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답답하게 얼어들었던 가슴들이 열풍을 받은듯 일시에 풀려버렸다. 침울하게 가라앉았던 회의장분위기는 다시 희망찬 환희로 끓어번지였고 참가자들은 승리가 기필코 도래할 4년후의 결사전에 나선 용사들마냥 주먹을 부르쥐고 용기백배하여 가슴들을 들먹이였다.

아버지의 립장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있던 연경이도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고있는 아버지를 촉촉하게 젖어드는 눈으로 바라보며 힘껏 박수를 보냈다.

커다란 정치적경륜을 안고 바다같은 도량과 가장 설득력있는 승리의 전망도를 펼쳐놓은 아버지가 한없이 돋보였다.

장내를 뒤흔드는 박수는 오래동안 계속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당수에 대한 진심으로 되는 례찬을 금치 못하며 감격과 흥분에 넘쳐있었다.

그것은 조봉암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고 존경이고 믿음이였다. 민중에 대한 무한한 복무정신, 폭넓은 식견, 자기 위업에 대한 굳은 확신, 예리한 정치적감각과 림기응변,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유연한 전술적방략…

회의장의 분위기에 압도된듯 서정후가 립장을 바꿔가지고 일어섰다.

《난 지난 이틀밤, 이틀낮 우리 당수의 제안을 놓고 생각이 많았소. 어제 저녁까지만 하여도 난 줌안에 잡힌 황금새를 놓치는 심정이였소. 처음 접했을 때는 내가 울컥했던것도 주지의 사실이구요. 어디 그뿐이요? 좀전에 역시 그때와 마찬가지의 심정이여서 누구보다 먼저 반대토론을 하였소. 하지만 난 지금 우리 당의 립장이야말로 배포가 저 삼각산만 한 어른만이 내놓을수 있다는것을 깨닫고 크게 감복하였소. 전날에 이 서옹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통령감투를 한번 쓰고싶어 신경을 쓰고 로망을 부린바도 있는데…》

《선생님, 그 말씀은 왜 또 하십니까?… 정치적야심이 없다면 어떻게 정치인이라 하겠습니까?

리승만도 지금 여든을 넘겼는데 선생님의 년세가 일국의 수장으로는 그렇게 물 건너간게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께서 겪어오신 정치적경난이 저보다 승리에 가깝게 할수 있습니다.》

《허, 우리 당수는 마음씨 너무 고와 흠일세. 내가 그 말을 왜 하는고 하니 이 소인배 서옹은 권력의 자리에 연연해서 체면도 잃고 떠다녔는데 우리 당수는 자진해서 천재일우의 기회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가 하는거요. 이 서옹에 비한 우리 당수의 인간됨됨을 말하자는거요.》

《아아, 선생님! …》

조봉암이 그냥 옹색해서 서정후의 도도한 언변을 가로막았으나 서정후는 약간 굽을사 한 허리를 버티고 그냥 서있었다.

조봉암은 정치의 수많은 경난을 겪어오며 그 누구에게도 머리숙인적 없다고 자부하는 도고한 서정후가 대중앞에서 자기를 잔뜩 추켜올리는것이 면구스럽기 그지없었을뿐더러 어딘가 석연치 않아보였다.

여론이 삐죽거리건말건 서정후는 《어느때나 항일과 독립과 민중을 위한 정치가로서의 한생을 꿋꿋이 펼쳐왔다.》고 자화자찬하는 로정객이다.

그는 정치의 철새기질을 가지고있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그건 철새여서가 아니라 정치적신조를 지키기 위한 방랑이였다고 일축하여버리군 한다.

《정치가란 낯가죽이 곰의 발바닥처럼 두터운 사람이 돼야 한다. 상판에 흠자리 날가봐 바질거려야 무슨 정치하는 사람인가. 적어도 정치가는 발가벗고 십리 가는 근기가 있어야 한다.》

이게 서정후가 후배들에게 공공연히 들려주는 지론이다.

그러던 서정후가 이렇게 자기 속주머니를 활활 털며 허심하게 자기를 뉘우친다.

진정일가, 노죽일가. 정말 뼈속까지 절어있던 정치적야망을 지워버렸을가.

조봉암이 아직도 령감의 속내가 짚이우지 않아 기웃거리는데 서정후가 밭은 기침을 몇번 캥캥하고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난 두 당 련합으로 권력을 잡으면 거국내각을 조직하되 총리로 우리 당수를 옹립하여야 한다는것을 야당련합의 최저한의 요구로 내세울것을 주장합니다. 우리 당수가 행정부의 수석에 오르고 점차적으로 50년도부터 각계에서 거론되여온 내각책임제개헌안을 성사시켜나간다면 현하 단계에서 우리 당은 양보의 대가를 보상받을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우리 당의 지지표로써 민주당후보인 신익희당수를 밀어주는 대가를 절대로 가볍게 받아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서정후가 좌우를 둘러보자 여러명의 참가자들이 동감이라는 뜻으로 박수를 쳤다.

조봉암은 이제야 서정후가 슬쩍 가무리고있던 속심을 드러내는듯싶어 시뭇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습니다. 실무적문제는 연구하여봅시다.… 그런데… 야당련합과 관련한 실무적문제는 당분간 비밀에 붙여져야 하므로 교섭실무단을 구성하고 거기에 일임하기로 합시다.》

이렇게 되여 이날 진보당추진위원회는 심각한 격론을 거쳐 야당련합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민주당과의 교섭실무단 성원으로 조봉암과 서정후가 임명되고 서기로 연경이가 나서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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