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측의 조국통일3대원칙부정의 론리와 반통일방안
7. 4에 위배되는 반통일론리
민족공동의 통일원칙시비반론
7. 4공동성명에 명기된 조국통일3대원칙은 남과 북이 다같이 확약하고 온 겨레와 세계면전에 공표한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다.
그러면 북과 꼭같이 실천의 사명감을 지닌 남쪽당국은 조국통일3대원칙을 구현하는 문제를 과연 어떻게 대하였는가. 총체적으로 남쪽당국의 행적은 시비, 부정, 외곡으로 일관되였다고 볼수 있는것이다.
필자는 이미 조국통일3대원칙과 그 구현을 위한 북의 정책과 활동을 취급하는 과정에 남쪽당국의 반통일적인 정책과 활동에 대해 어느 정도 서술하였다고 본다.
여기에서는 조국통일3대원칙을 부정하는 남쪽당국의 반통일론리와 방안들을 심층적으로 해부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남쪽당국이 7. 4공동성명으로 합의된 민족공동의 조국통일3대원칙 그자체를 시비해나선데 대해 먼저 보기로 하자.
남쪽당국자들은 조국통일3대원칙에서 민족대단결원칙을 빼고 그 자리에 《민주》의 원칙을 들여앉혀 《자주, 평화, 민주》의 3원칙을 내들고 조국통일3대원칙 그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여왔으며 지금도 그러한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
일반적으로 민주 또는 민주주의로 말하면 그것은 근대문명사회가 열린이래 가장 기초적인 정치리념의 하나로 등장하여 현시대의 제반 정치활동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정치원리로 인정되고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의 요구를 기초로 하고있기때문에 그것은 자기주장을 실현할 권리와 함께 동시에 다른 사람의 그러한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까지 지닐것을 전제로 하고있다.
한번 더 통일의 조건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해본다면 민족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파쑈독재와 량립할수 없고 민족분단과 절대로 타협할수 없는 민주주의, 그러면서도 통일을 위하여 각자가 가지고있는 상이한 사상을 인정하고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안에서 상호공존할수 있는 민주주의, 이것이 조국통일에서 실현해야 할 민주주의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통일은 물론 통일후에도 통일국가의 운영에서 의거해야 할 주요원리로 되는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원칙을 철저히 구현한다면 남북이 어느 한쪽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남북의 두 체제, 남북의 각당, 각파와 각계각층의 권익을 공정하게, 균형적으로 보장하게 될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7. 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과 민주원칙과의 관계를 어떻게 리해할것인가 하는것이다.
조국통일3대원칙에서 자주의 원칙은 통일문제해결에서 외세의 간섭을 반대하고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된다는 원칙이다. 평화통일의 원칙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선택한 통일의 방법론적원칙이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민족적인 힘을 결집하려는 조국통일의 방도적인 원칙이다.
이것은 결국 조국통일의 3대원칙이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의 자주권회복문제로 보고 세운 원칙이라는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민족의 자주권이 보장되는 조건에서만 실현될수 있다. 외세에 예속된 민족은 그 성원들에게 민주주의를 실시할수 없다는것이 력사에 의해 확증된 진리이다.
따라서 민족의 자주권회복, 민족의 자주화는 민주주의의 대전제로 된다. 다시말하여 조국통일의 3대원칙과 이 원칙이 목표로 내세우는 민족의 자주권회복은 민주주의의 전제로 되고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조국통일의 근본원칙으로 될수 없다.
그런데 남쪽당국이 《자주, 평화, 민주》를 조국통일의 새로운 원칙으로 설정하면서 그것을 조국통일3대원칙과 대치시키고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이미 온 민족이 합의한 조국통일3대원칙은 뒤전으로 밀어놓고 그들이 구태여 다른 원칙을 들고나온데는 그밑에 반드시 그들나름의 속구구가 깔려있으며 그런 저의는 지금도 후신《정권》들에 의하여 그대로 이어지고있다.
한마디로 조국통일3대원칙에 민주원칙을 첨가하거나 대치시키는 남쪽정부의 진의도는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추구하는데 있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구태여 《자주, 평화, 민주》의 통일3원칙으로 수정하는 놀음을 벌려놓은것은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이라는 《체제흡수》적통일론을 정당화하려는 기도가 내포되여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수 없다.
《체제통일》은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인 조국통일3대원칙을 전면부정하는 관계에 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을 《자유민주주의체제》에 기초한 《체제통일》의 론지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지금 《한》반도에는 대립되여있는 두개의 체제가 존재하고있다. 이남에는 자본주의류형의 체제가 그리고 북에는 사회주의체제가 존재한다. 《체제통일》은 《한》반도의 현실을 놓고 말할 때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적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이남체제와 사회적소유형태에 기초한 사회주의적생산관계가 지배하는 이북체제, 상이한 두개의 체제를 하나의 체제로 통일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상호 이질적이며 불상용적인 소유관계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지는 두 사회체제의 통일은 통일이라는것이 하나로 된다는것을 의미하는 이상 원리적으로 보나 실천적인 견지에서 보아도 일방체제의 소멸을 전제로 하는 흡수통일로밖에 될수 없다.
《체제통일》이란 이미 지적한바와 같이 일방에 의한 타방의 흡수를 통하여 실현되는것인데 북이건 남이건 어느 일방도 타방에 의하여 흡수되는것을 결사적으로 거부할것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만약 《체제흡수》통일을 강행하려 한다면 그것에 저항하는 타방을 제압하기 위하여 폭력에 호소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렇게 되면 무력에 의거함이 없이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평화통일의 원칙은 물론 사상과 리념, 제도의 차이를 초극하여 민족적대단결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룩할데 대한 민족대단결의 원칙,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자주통일원칙 등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인 조국통일3대원칙의 고상한 리념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것이다.
더우기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은 외세의 이남지배를 허용하고 그것을 전조선땅에 실현하려는것을 본질적내용으로 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그것은 조국통일3대원칙의 전면말살을 초래하게 된다. 사실상 총선거를 통하여 단일체제의 통일국가를 수립한다고 할 때 실제로 그런 총선거를 실시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것을 념두에 둔다면 그 결과 어떤 체제의 통일국가가 수립될것인가는 미리 단정하기 어려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 외세의 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주장한 북측의 제안에 대하여 《유엔감시하의 토착인구비례 총선거》안을 대치시키면서 이를 줄곧 거부해오던 남쪽집권층이 《민주적방식에 의한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공표된 통일헌법에 따라 총선거를 실시》하는것으로 수정해나오고있는데 그 리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동유럽사태의 확산으로 《조만간 이북에서 일어날 변화》에 기대를 걸고있다는 증시이다.
이러한 동유럽사태의 파급에 기대를 거는 《체제흡수》적통일론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삼고 자기식 사회주의건설로선의 고수에서 종국적승리의 담보를 찾고있는 이북과 사회민주주의의 깊은 뿌리를 갖고있으며 외세추종적경향이 강한 동유럽나라들을 동일시하는, 도대체 실현불가능한 비현실적통일론지라는데 대해서는 더 설명의 가치가 없는것이다.
이것이 나아가서는 외세에 편승하여 동족을 제압하려는 《북진통일》론의 구상을 되살린 반통일적론지라는것이 내외의 공정한 진단인것이다.
이렇듯 《자주, 평화, 민주》의 통일3원칙론은 분렬조국의 현실을 외면한, 온 민족의 념원과 지향을 반영한 조국통일3대원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반통일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련방제시비반론
북에서 제안한 련방제 즉 고려민주련방공화국통일방안은 7. 4공동성명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구현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며 통일운동이 심화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타당성이 확인된 방안이다.
그런데 이 방안은 남쪽의 반통일세력들에 의해 비난을 받아왔으며 그러한 책동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그러면 련방제를 비난하는 몇가지 론거를 들어 그 부당성을 지적해보자.
▲ 련방제는 력사에 전례가 없기때문에 불가능하다는것이다. 국가류형론의 견지에 선 반대론이다.
남쪽당국자들은 이때까지 세계에 존재해왔고 존재하고있는 련방제를 포함한 모든 국가는 모두 단일한 사회체제에 기초한것인데 이질적인 두 체제를 결합시킨 국가가 도대체 성립될수 있느냐고 시비해나서고있다.
물론 우리가 론의하고있는 련방제통일국가는 상반되는 두 체제를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력사에 전례없는 류형의 국가이다.
력사에 전례가 없기때문에 그것이 실현불가능한 일이라면 련방제비판론자들에게 되물어보아야 할것이다.
력사란 무엇이냐, 력사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보다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을 지향하는 인간들이 보다 나은것, 보다 새로운것을 지향하여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발전시켜온 과정, 그것이 바로 력사라는것이다.
인간이 지닌 체험과 이미 이루어진 지식에만 매달리고 전례가 없는 새로운 체험을 기피하며 새 지식을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인간사회는 늪과 같이 정체되고 전진을 멈추고말것이다.
누군가가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한것처럼 지금 우리는 수십년에 걸치는 분렬을 끝장내고 통일을 이루어야 할 민족최대의 과제에 림하여 련방제라는 력사에 없는 류형의 통일국가를 창출하려 하는것이다. 련방제비판론자들은 바로 이 력사의 요청을 리해하지 못하고있으며 따라서 력사자체를 부정하는것으로밖에 달리 볼수 없다.
▲ 련방제는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에서 불가능한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다.
남쪽당국자들은 전혀 상이한 리념과 체제를 가진 두개의 이질화된 사회를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합하자면 우선 이질화를 해소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어떻게 련방국가를 형성하느냐, 그래서 단계적과정을 거쳐 남북간의 이질성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것이 선차적과제라고 한다.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에서 두 체제의 병존에 기초한 련방제통일이 불가능한 공론이라면 체제단일화에 기초한 련방제통일은 더우기나 허망한 주장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남북쌍방이 각기 자기의 체제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조건에서 어느 세월에 가서 체제를 단일화할수 있다는것인지 되묻지 않을수 없다.
▲ 하나의 국가형성에 있어서는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을 구심점으로 해서 련방국가를 형성하자는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다고 하는것이다. 다시말하면 국가를 만들어내는 구심점은 단일한 사회체제에 기초하는것이지 이질적인 체제사이에는 구심점이 있을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을 하나의 국가로 응결시키는 구심점이란 무엇인가? 인민의 공동의 권익, 그것이 바로 국가를 형성하는 구심점이라 할수 있다.
우리와 같이 단일한 민족으로서 한국가를 이루고 살아오는 경우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은 민족과 구별되지 않는다.
인민공동의 리익은 곧 민족공동의 리익이다. 한국가안에서 다양한 사상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있는것처럼 비록 체제는 달라도 한겨레라는 운명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의 리익을 위해 한국가를 만들어내자는것이 련방제통일안이다.
체제가 다르면 통일국가형성의 구심점이 있을수 없다고 하는 주장이야말로 민족우에 체제를 올려놓고 민족의 통일을 거부하는 립장외에 다른것일수 없다.
▲ 련방제통일방안은 북에서 주장하기때문이라는것이다. 이를테면 북이 주장하는 련방제는 《적화통일》의 저의를 담고있는 《전술적방안》이라는것이다.
누군가가 《말에 의해서 사람을 버리지 말며 사람에 의해 말을 버리지 말라.》고 했듯이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에 구애되지 말고 실사구시로 옳은것은 옳고 그른것은 그르다고 판단하는것이 옳은것이다.
북이 련방제통일안을 주장하는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북의 주장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거부하는것은 일종의 알레르기증상 다시말하면 《반공알레르기》의 표현으로서 민족의 운명을 건 통일문제에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더우기 련방제통일이란 체제의 단일화를 반대하고 남북의 두 체제가 하나의 통일국가안에서 공존하자는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적화통일》을 노린것인지, 오히려 련방제를 반대하고 《체제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북의 체제를 제압흡수하여 《승공통일》을 하자는것이 아니냐고 따져물어야 할것이다.
이것은 북의 통일정책, 통일방안에 대해 덮어놓고 헐뜯으려는 반공반북책동의 일환으로서 본질상 반통일적이고 분렬주의적립장의 표현이다.
오늘 련방제통일방안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각계 민중속에서 울려나오고있으며 정치권의 일각에서까지 이에 동조하는 조짐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야권의 한 정치가가 《통일에는 남북쌍방이 누가 누구를 흡수, 병합하거나 혹은 압도하거나 압도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존, 공생의 원칙에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련방제라는 개념은 남북이 모두 받아들일수 있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한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고려대학교 한 정치학교수는 《우리는 민족통합의 모델로 삼을수 있는 훌륭한 력사적모델을 가지고있다. 고려를 보면 한민족통합이 보일것이다. 고려모델에 기초하여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사실상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지지하였다.
일본의 정치계와 심지어는 미국정부의 일각에서도 남북련방제에 의한 《한》반도통일에 관심을 표시했다.
일찌기 미국무성 동북아시아담당 차관보였던 울드러츠가 기자회견석상에서 《교차승인이 아닌 새로운 접근방식》이 검토되고있다는것과 그 《새로운 접근방식이란 련방제》라고 말한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련방제가 북에서만 주장하는것이 아니고 남쪽과 해외,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북의 통일방안이라고 하여 이단시하는것은 리성을 잃은 작태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련방제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국내와 해외동포사회계는 물론 세계적으로 높아가고있는 상황은 이 방안의 공명정대성과 당위성을 실증해주고있다.
민족대단결론에 대한 외곡
외세에 의한 분단으로 말미암아 격리된 민족의 재결합을 실현하고 민족적화합을 이룩하는 민족재생의 위업인 조국통일은 남북간의 대립과 갈등을 없애고 온 민족을 하나의 유기체로 전환시키는 민족적단합과 단결을 본원적으로 요청한다.
다시말하여 우리의 민족통일은 그 어떤 기득권층의 독점적지배권확장을 위한 체제통합이거나 타민족지배를 위한 병합이 아니다. 그것은 유구한 력사기간 체질화된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적동질성을 회복하고 민족재결합을 실현하기 위한것임으로 하여 마땅히 남북 온 겨레의 대단결을 필수적으로 요망하게 되는것이다.
사실상 민족대단결을 떠나서는 민족의 자주적평화통일도 민족의 운명개척에 대해서도 생각할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민족대단결은 자주적평화통일의 근본전제이며 또한 그 본질적내용을 이룬다.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중요한것은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이다.
어떤 운동에서든지 주체를 강화하고 주체의 역할을 높여야 승리할수 있다. 이것은 변혁운동의 가장 중요한 진리이며 오랜 변혁운동과정에 얻은 교훈이다.
조국통일의 주체는 전체 우리 민족이다. 온 민족이 하나로 굳게 뭉쳐 통일의 주체를 강화하는 바로 여기에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의 결정적담보가 있는것이다.
조국통일의 원칙으로 제시된 민족대단결은 통일문제를 놓고 남북이 사상과 리념, 체제상차이를 앞세울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극하여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민족대단결을 도모하자는것이다.
민족대단결은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는데서 일관하게 견지해야 할 원칙의 하나인것이다. 민족대단결은 북이 줄곧 주장해온 문제이지만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통해 전면적으로 밝히고 강령으로 구체화한 점이 주목된다.
당시 남쪽의 월간잡지 《정세연구》 1994년 1월호에서는 《변화하는 남북정세와 통일운동의 방향》이라는 제하의 글을 발표한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북이 최고인민회의에서 제기한 《민족대단결10대강령내용에는 남측에서 거부할만 한 조항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자주의 힘에 의거하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외면하는것은 반통일처사가 아닐수 없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당국자들과 그 대변인들속에서는 이같은 민족대단결문제를 놓고 《말이 그렇지 그렇게 될성 싶으냐.》고 반론을 가하면서 북의 민족대단결론에 대하여 극구 반기를 들고나오고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 수십년간의 격페로 이질화된 남과 북을 통일하자면 우선 동질성을 회복해야 하며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한 민족적단합이 불가능하다는것이며 ▲ 민족대단결은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여야 실현될수가 있다고 하면서 민족대단결문제를 《인권》과 《민주주의》문제에 귀결시켜 시비해나서고있다.
우선 수십년간의 격페로 이질화된 남과 북을 통일하려면 민족동질성을 회복해야 하며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한 민족적단합도 통일도 불가능하다는 론리 즉 이데올로기적대립, 체제에서의 대립이 있는 이상 그것이 어느 하나로 동질화되지 않으면 민족적단합이 실현될수 없다는 론거를 보자.
남쪽당국자들과 그 대변자들은 《사상과 리념의 차이는 결국 세계관의 차이인데 7. 4성명이 암시하고있는바와 같이 한민족에 속한다는 리유만으로는 그것을 초극해서 쉽사리 초극될수 있는것이 아닌데에 문제가 있는것》이라고 력점을 가하고있다.
세계관의 차이가 그토록 문제가 선다면 종교인, 비종교인 다시말하여 하느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세계관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때문에 그 차이를 초극할수 없고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공동체의식을 같이 지닐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민족대단결은 이데올로기적문제보다 우위의 개념인 민족적문제이다. 민족적문제와 이데올로기적문제를 혼돈해서는 안되며 또 민족을 사상이나 체제에 용해시키거나 그에 종속시키는것은 착오이다.
민족적단합을 위해서는 사상이나 체제의 장벽을 넘어서서 민족의 지평에 서야 하며 이렇게 문제를 대할 때 이데올로기적차원에서는 수십년을 두고도 이룩할수 없었고 영원히 가망이 없어보이던것도 불과 며칠, 몇시간동안이면 풀릴수 있다.
사상과 리념은 어디까지나 력사적조건과 환경의 산물이지만 민족성은 영원한것이다.
인간은 바로 이데올로기속에서 태여나는것이 아니라 민족속에서 태여나며 민족속에서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것이지 결코 그 반대로 될수는 없다.
사상과 신앙을 같이해도 남은 남이요, 리념과 종교, 정견을 달리해도 형제는 여전히 형제이듯이 이데올로기를 달리했다고 하여 같은 민족이 이민족, 이방인으로 될수 없다.
또 지도리념이 바뀌고 사회제도가 교체된다고 해서 민족이 달라지는것이 아니라는것은 력사가 보여주는 진리이다.
이같이 민족이 이데올로기 이전의것이요, 그 이상의것이 확실할진대 민족공동의 리익을 앞세운다면 얼마든지 리념이나 체제의 차이점을 초극하여 능히 민족대단결을 이룩할수 있으며 계급적리해의 대립이나 체제상차이가 민족단합을 위한 절대적장애로 될수가 없음은 자명한것이다.
민족을 더 중시하고 민족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는것, 이것이 바로 민족대단결의 요구인것이다.
민족적자주권이 침해당하고 민족의 운명이 엄중한 위험에 처해있는 현시점에서 민족의 얼을 잃지 않았다면 그 어느 계급, 계층도, 그 어느 정치집단도 자기의 리해관계를 내세워 민족공동의 위업인 조국통일에 대치시키거나 통일에 역행하는 언행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또한 민족대단결문제를 《인권》과 《민주주의》문제에 귀결시켜 비난하고있는 점을 보자.
원래 사상과 리념, 체제의 차이를 초극해서 하나의 민족으로서 대단결을 도모하는 민족대단결원칙은 그자체가 진정한 민주주의리념이고 구현인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적요구는 한마디로 말해서 자유롭게 자주적으로 살려는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고 신장시키는데 있다. 자유는 매 인간에게 똑같이 주어진 권리이며 여기에서 사상과 신앙의 자유, 량심의 자유는 근간을 이루고있다.
특정한 사상이나 신앙만이 인정되고 어떤 사상은 이단시되는것은 민주주의리념과 어긋나는것이며 그것은 파시즘으로 나가게 되는것이다.
바로 민족대단결은 모든 민족구성원들의 민족적권익을 옹호실현하는데 그 근본목적을 두고있다. 따라서 민족대단결은 남북민중을 망라한 모든 민족구성원의 사상과 리념, 신앙의 자유와 그 권리에 대한 용인, 불침해, 존중을 전제로 하기마련이다.
이러한 민족대단결은 리념적 및 체제적차이점을 절대시하고 그에 집착하는 온갖 배타적이고 페쇄적이며 보수적인 리념을 불식하고 민족의 모든 힘을 민족통일위업수행에로 매진하게 한다.
결국 민족대단결은 남북민중, 각계각층의 공동의 민족적권익을 옹호실현하는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고 그것을 지향한것으로 하여 그 실제적가능성을 갖고있음이 분명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대단결을 《민주주의》, 《인권》문제와 별개의것으로 억지로 귀착시켜 반론을 가하는것은 《북의 자유, 인권문제》를 상정시킴으로써 반북대결정책을 계속하려는 시도를 은페하려는것외 다른것이 아니다.
원래 《북의 자유, 인권문제》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반북대결정책의 소산이다. 북에서는 전민중이 인간의 본성적요구에 맞게 자유롭고 평등한 정치, 경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있다.
민중을 하늘처럼 여기는 이민위천의 정치철학에 바탕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구호아래 사회구성원모두가 믿음과 사랑으로 상호협력하는 속에서 진정한 자유, 평등, 인권이 존재하는 사회가 바로 북의 실상인것이다.
더군다나 개개인의 창의와 인권을 짓밟는 이남의 법적, 제도적장치의 철페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민족대단결을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로 둔갑시켜 북의 자유, 인권을 걸고드는것이야말로 민족적대단결을 외면하고 통일을 바라지 않는 반통일세력들의 적반하장격의 론리에 지나지 않는다.
8. 15해방직후 민족의 리익보다는 주의주장을 앞세우면서 대아를 소아에 복종시키려드는 사람들이 나타나고있을 때 백범 김구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찌기 어느 민족에게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리해의 충돌로 하여 두파, 세파로 갈라져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놓고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것으로 민족은 필경 바람잔 뒤의 초목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상호겯고 한수풀을 이루고 살고있다.》
백범 김구는 이같은 민족우선으로부터 주의주장과 정견을 초극하여 민족을 위한 대국적견지에 서는 자세에서 련공, 련북의 길에 나섰던것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통일을 위해 사상과 체제를 초극하여 단합하는것, 그것은 허리끊어진 국토와 피줄이 잘린 겨레를 재통합하는 민족사의 지상명령으로 저버릴수 없다는, 분단때문에 생긴 모든 불행에 책임을 느끼는 민족량심의 문제인것이다.
보론: 반통일기조론
○ 《기능주의》
력대적으로 남쪽당국자들의 반통일을 합리화하기 위한 리론적인 기조론으로서는 《기능주의》론과 《체제우위》론 등을 들수 있다.
먼저 《기능주의》론을 보자. 남북통일에 관한 리론적연구자들은 흔히 통일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북은 련방주의를, 남은 기능주의를 채택하고있다.》고 말한다.
원래 《기능주의》론은 19세기 후반기이후 서유럽과 미국에서 점차 자리를 굳혀온 과학분야에서의 연구방법론의 하나이다.
《기능주의》란 영어에서 기능 또는 작용을 의미하는 《펑크션》(Function)과 주의, 주장을 의미하는 《이즘》(ism)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펑크셔널리즘 (Functionalism)이라는 말의 번역어이다.
기능주의란 사물을 주로 작용의 측면에서 고찰하는 방법론이다. 의식현상을 그 내용에 따라서가 아니라 작용에 따라 파악하는 경우 의식을 기능적으로 고찰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능주의를 사회정치분야에 도입한 대표적인물이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미트라니이다.
그는 l948년에 발표한 세계조직에의 기능적접근과 l966년 시카고에서 출판한 《로동평화체계》에서 첨예한 사회정치적문제들에 대한 분석방법에 《기능주의》론을 적용할 때 합리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리론을 제기했다.
그 골자를 보면 대립되여있는 체제간이나 국가간에 평화를 유지하면서 대립점을 해결하려면 정치적령역에서의 접근을 피하고 비정치적령역 이를테면 사회적, 기술적, 인도적분야에서의 접근을 강화하는것이 합리적이라는것이다.
이같은 《기능주의》론의 본질적인 약점은 현상적이고 기능적인 부분에 일방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사물의 본질적, 근원적의의를 가지는 문제를 거기에 매몰시켜버리는데 있다.
이 《기능주의》론은 박정희《정권》이래 집권세력들의 통일정책수립의 합리화를 위한 리론의 하나로 정립되여 자리를 굳혀갔다.
그러면 《기능주의》론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보기로 하자.
▲ 엄연한 정치적문제인 통일문제를 비정치적문제로 외곡시하여 통일운동에 차단봉을 내리고있다는데 있다.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그 성격으로 보아 엄연한 정치적 문제 즉 외세에 의해 강요된 나라의 분렬을 끝장내고 빼앗긴 령토와 주권을 되찾으며 나라의 완전자주독립을 이룩하려는 우리 민족의 사활적요구에 관한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에서의 통일의 기본장애는 정치적지배로 대표되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이고 그와 결탁한 사대매국세력의 분렬주의정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세의 지배와 간섭, 그와 결탁한 사대매국세력의 반통일적정책을 종식시킴이 없이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문제해결에서 제기되는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수 없다.
그런만큼 외세의 지배와 간섭의 청산과 같은 근본문제들을 회피하고 비정치적인 문제를 가지고 점차적으로 남북분렬을 해결하자는 《기능주의》론은 사실상 통일을 하지 말자는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러한 기능주의적주장은 정치적문제의 해결이 경제적문제해결에서 결정적역할을 하며 따라서 정치적해결이 없이는 이여의 다른 문제들이 해결될수 없다는 사회력사원리에 어긋나는 비과학적인것이다.
력사적교훈은 분렬로 산생된 인도주의적문제, 경제적문제들을 비롯한 통일도상에서 해결하여야 할 문제들이 정치적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풀려질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남쪽당국자들과 관제언론은 이같은 상황을 무시하고 《기능주의》론을 내들고 통일문제는 비정치적방법, 기능주의적방법으로 도출해야 한다고 고집해나서고있다.
이들은 《지금의 적대적남북분단을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될수 있는 한 적대적이메지를 줄이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문호개방과 교류를 앞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이한 정치관에서 오는 불가피한 대립을 피하고 정치문제를 탈정치화하며 비정치적부문의 교류확대를 증대시키는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적대국의 경우에는 기능적 비정치교류를 통한 관계정상화를 기할수 있다.
그것은 쌍방의 정치적체제와 사회적구조가 상호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상태이기때문에 비정치적분야의 교류를 통한 관계정상화가 비교적 순조로이 이루어질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정치화시키지 않을수 없도록 되여있는 우리의 남북관계문제의 경우 현재의 상황을 상호간에 해치지 않는다는 정치적담보를 전제하지 않는 한 교류 등 비정치적관계문제들이 해결되기 힘들다.
결국 《기능주의》론은 본질적으로 정치적문제이며 그래서 정치적성격을 띠는 통일문제를 비정치적문제로 이끌어내여 정치문제와 분리시킴으로써 현 분단상태를 고착시키고 나아가서 분렬을 영구화하려는 반통일적론리라는것을 알수 있다.
▲ 《기능주의》론의 문제점은 남북사이의 물리적분단을 국경으로 간주하여 나라의 분렬을 지속시키려 하고있다는데 있다.
원래 《기능주의》론은 같은 민족국가내부에 적용되는 리론이 아니라 리념이나 체제는 물론 민족적으로 상호 구별되는 독립적인 국가들사이에 적용되는 리론이다. 즉 국가들사이에 갈등을 일으킬수 있는 위험성이 큰 정치적문제를 떠나서 보다 낮은 단계의 령역 즉 비정치적령역에서 협동과 통합을 촉진시킬것을 추구하는 론지이다.
이같은 《기능주의》론을 우리 나라에서의 통일문제에 적용하려는것은 남과 북을 완전히 독자적성격을 가지는 2개의 독립국가로 간주하고 유럽공동체와 같은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그릇된 론리이다.
남북분렬은 국제정치학적으로 파악되는 일반국가가 독립적으로 수립되여있는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단일민족의 혈통을 면면히 이어온 남북민중에게 있어서 상호의존관계, 협조관계는 체질적으로 지니고있기에 그 어떤 점진적, 단계적인 기능주의적접근이 필요없다.
남북민중에겐 직접적인 민족적의사소통이 능히 가능할뿐 아니라 다방면적인 교호작용을 즉각적으로 실현하고 통일할 실제적가능성이 있는것이다.
사실 오늘 기능주의적통일론의 합리적적용이 안되여 분렬이 지속되고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은 남북간의 민족적인 공동리익이 분명히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외세와 그에 추종하는 분렬주의세력이 끈질긴 반통일책동에 집착하고있기때문이다.
《기능주의》론은 비정치적분야의 교류를 통하여 파급효과를 점진적으로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통합을 실현하려는것이기때문에 필연적으로 《단계》론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단계》론은 《기능주의》론에 종속된 리론이다.
《기능주의적단계》론은 남북통일문제를 한정없이 끌고감으로써 완료형으로서의 통일을 하루속히 이룩할수 없게 한다.
이들은 두개의 존재에서 하나의 존재에로의 도약을 목적으로 하는 련방주의적접근은 실현성이 희박하며 통일은 비정치적분야에서 정치적분야에로의 단계적인 확산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능주의적인 《단계》론을 제창해나오고있다. 즉 기능주의적실현과정을 3개의 단계 다시말하여 기능적인 상호의존관계의 형성단계, 공동적인 통합리익의 산생단계, 통합단계(인도적단계, 비정치적단계, 정치적단계)로 나누어 인위적인 단계를 설정해놓고 점진적방법으로 통일문제를 다루려 하고있다.
이것은 결국 조국통일에 차단봉을 드리우기 위한 반통일분렬주의세력들의 정치적립지를 합리화하는데 있다.
하기에 사회일각에서 《기능주의적접근시도를 우리의 통일정책목표로 본다면 착각이다. 이것은 단순한 긴장완화는 통일로 이어질수 없을뿐만아니라 정상적인 의미의 남북관계정상화를 이루게 할수도 없는것이다.》라고 꼬집은것은 남쪽당국의 《기능주의》적통일론의 반동성을 강하게 시사하고있다.
이것은 《기능주의》론이 북의 공명정대한 통일론과 통일방안에 대한 그리고 민족의 통일의지를 차단하는것과 같은 반통일기조론이라는것을 그대로 보여주는것이다.
○ 《체제우위》론
현 리명박《실용정권》에 이르기까지 남쪽의 집권세력은 례외없이 《체제우위》론에 바탕하여 남북관계를 다루며 통일문제를 해결해보려 하고있다.
《체제우위》론은 한마디로 남과 북이 리념과 체제가 상호 다르기때문에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인데 여기에서도 이남당국자들의 반통일적립장과 자세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고있다.
그러면 남쪽당국자들이 들고나오고있는 《체제우위》론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 민족문제인 통일문제를 체제문제에 귀결시키는데 있다. 즉 민족통일문제를 체제통일문제로 오도함으로써 통일문제의 성격을 외곡하고있다는데 있다.
남쪽당국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통일은 민족이라든가 혈맥의 문제이기에 앞서 사상과 제도라는 정치리념의 문제》라고 하면서 상반되는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있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그런가. 민족을 출발점으로 해서 사회체제를 리해한다면 그것은 민족의 생활을 규제하는 정치적, 경제적 및 기타 각 분야의 질서와 제도의 체제라고 파악할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 독립, 발전을 지향하는 민족생활에서 사회체제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체제가 민족보다 우위에 있다거나 체제가 민족의 존재를 결정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민족사회가 민족사회로 되는 본원적의미는 무엇보다도 민족사회의 실체인 민족 그자체를 떠나서 론할수 없는것이다. 민족을 그 실체로 하지 않는 사회는 민족사회일수 없다.
민족이란 력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체제와 리념이전의 존재이며 그 이상의 존재이다.
그것은 체제를 창출하고 체제를 변혁쇄신하면서 자기 신장을 기해나가는 자주적, 창조적실체이다.
체제는 력사적변환과정을 겪게 되지만 민족사회의 실체인 민족 그자체는 고유한 자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
민족과 체제간의 이러한 관계는 민족과 체제가 각각 형성 또는 성립되는 계기를 비교해보아도 뚜렷이 알수 있다.
민족은 혈통과 언어의 공통성에 기초해서 형성되는데 반해 사회체제는 사람들의 리해관계와 그 반영인 이데올로기를 기본으로 해서 성립된다.
민족이란 그 누가 바란다고 해서 다른 민족의 구성원으로 변할수도 없는,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깨뜨릴수 없는 가장 견고한 운명공동체라면 체제는 인간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의도적으로 취사선택될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민족자결에 따라 하나의 체제가 새로운 체제로 이행될수 있는 가변적인 사회적관계이다.
따라서 체제가 민족을 형성할수 없어도 민족은 체제를 결정할수 있다는것이 명백해진다.
또한 력사적견지에서 볼 때도 민족은 오랜 과거에 형성되여 오늘에 이르고있고 미래에 잇닿아있는 련면한 존재이지만 사회체제는 이 무한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부침하는 존재인것이다.
민족과 체제는 주체와 객관적사회관계라는 상호관계에 놓여있다.
민족이 자주적으로 자기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에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확립하고 존속시키며 부단히 갱신해나가는것이 체제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삶의 과정을 보장하는 사회적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민족은 체제보다 우위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민족의 운명문제는 체제문제보다 더 중요하고도 절박한 문제로 제기되고있다.
끊어진 민족의 혈맥이 이어지고 민족이 하나로 화합하면 체제문제는 그 민족공동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선택될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통일문제는 곧 민족적성격을 띠는 문제 즉 민족자주권확립문제이고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는 민족적성격을 띠는 문제인것이다.
▲ 《체제우위》론의 문제점은 통일을 이룩하려면 《체제통일》 즉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로 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있다.
남쪽당국자들은 체제통일을 운운하면서 《통일된 우리 사회의 상은 민주적인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제도》이라느니, 《통일후의 체제는 경제적으로 시장경제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라느니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의 통일을 주장하고있다.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이남의 주도하에 이남식으로 북을 《흡수통일》하겠다는것이다.
통일문제는 남북간의 체제상차이와 대립을 해소하고 체제통일을 이루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각도에서 론증이 되였다.
다시말하면 체제상차이때문에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분렬이 외세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오늘까지 통일이 성취되지 못하고있는 원인도 외세의 지배와 간섭에 기인되고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8. 15후 미국이 《한》반도의 38˚선이남에 자기의 지배체제를 확립한것으로 분렬체제가 발생했다. 이로 말미암아 근 70년이나 분렬이 지속되는 비극적상황이 빚어지게 되였다.
남과 북에 서로 다른 리념과 체제가 존재하게 된것은 전적으로 외세에 의한 나라의 분렬과 분렬이 지속되는 상황속에서 생겨난 결과이다.
그런만큼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무엇보다도 분단을 초래했고 분렬을 지속시키고있는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문제 다시말하면 외세의 작용을 배제하고 외세의 지배체제하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리념과 체제의 차이가 분렬에 의해 생겨난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하여 리념과 체제의 차이가 통일을 가로막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되지 않는다. 사회정치체제가 서로 다른 국가들도 그 차이를 뛰여넘어 우호친선을 도모하고있는것이 오늘의 국제정치의 현실일진대 하물며 한민족끼리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적대시하고 대결할 리유가 없다.
오히려 남북간의 리념과 체제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뛰여넘어 불신과 대결을 지양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리념과 체제의 차이를 뛰여넘어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립장에 서서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게 되면 분렬의 기본원인인 외세의 지배와 예속에서 벗어날수 있으며 통일을 촉진할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이남의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주장하는것은 반통일론자들의 통일론의의 진의도가 본질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하에서 북을 먹어보려는 《흡수통일》론이라는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남쪽당국자들이 통일을 위해서는 《북체제의 변화가 우선》이라느니, 어떤 경우에도 《북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통일론의란 무의미하다.》느니 하면서 《체제통일을 하되 북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론리를 드러내고 심지어 《북정권은 무너져야 한다.》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고있는데서 적라라하게 표출된다. 이러한 주장은 통일상대방을 심히 자극하고 남북대결을 더욱 고취시킴으로써 통일도상에 더 큰 장애를 조성하는 매우 유해로운 주장이다.
이북의 체제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이북민중이 스스로 선택하고 누려가는 민중중심의 사회주의체제이다.
이북의 체제는 민중을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그들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할수 있는 민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인것이다.
민중이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주인다운 생활을 보장받고있으며 때문에 이북민중은 자기가 선택한 민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를 귀중히 여기고있다.
오히려 그들은 외세의 식민지적지배밑에서 민족적자주성을 유린당하고있으며 당국자들을 비롯한 기득권세력들의 권력과 전횡이 존재하고 절대다수의 민중이 정치생활과 경제생활을 비롯한 전반적인 사회생활령역에서 소외당하는 이남의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하여 혐오하고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이남에서 절대다수의 민중은 식민지 및 계급적지배하에 2중적으로 억압당하고있으며 그것을 제도적으로 뒤받침하고있는 체제가 다름아닌 《자유민주주의체제》이다.
북이 남쪽의 사상이나 체제에 대하여 거론하지 않고 남과 북의 사상과 체제를 그대로 두고 민족적통일을 이룩할것을 제기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쪽이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해치면서까지 《북의 체제의 변화가 없이는 통일이 이루어질수 없다.》는 궤변은 민족통일의 상대방인 이북의 자주권과 존엄을 건드림으로써 인위적으로 통일도상에 장애를 조성하는 반통일론지라는것을 그대로 드러낸것이다.
진심으로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바라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남과 북에 존재하는 사상이나 체제를 시비하거나 상대방을 자극하는 론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에 자기의 사상이나 제도를 강요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것은 통일에 백해무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