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3대헌장이 정립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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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유훈을 받들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고 또한 민족의 생사운명이 달린 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 북의 투철한 립장과 자세와 활동은 날이 갈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였다.

그것은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제시된 이후의 사태발전에서 뚜렷이 립증되였다.

북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제시된 새로운 환경에서 1993년 5월 25일 조국통일을 위한 중대사들을 포괄적으로 풀어나갈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로 남북최고위급의 특사교환제안을 내놓았다.

여기에서는 나라의 통일문제해결을 위하여 쌍방 최고위급이 만나는 문제와 남북사이의 현안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최고위급의 뜻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하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김영삼은 북의 이 아량있는 제안과 온 민족의 통일념원을 외면하고 민족자주가 아니라 외세의존의 길로, 민족단합이 아니라 남북대결의 길로 나갔다.

또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받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뿐아니라 남쪽의 각 정당, 단체대표들, 각계 인사들에게 보낸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담긴 북의 편지를 가로채여 받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지조차 않았다.

지어 김영삼《정권》은 《핵문제》를 구실로 그 무슨 《군사적대응》에 대하여 운운하면서 외세의 힘을 빌어 동족의 뒤통수를 치려는 비렬한 반민족적행위를 자행해나섰다.

남북최고위급의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시작되여 1994년 3월까지 8차례의 접촉이 있었으나 남측의 부당한 립장과 태도로 하여 결실을 보지 못한채 결렬되고말았다.

바로 이러한 때인 1994년 6월 전 미국대통령 카터의 평양방문이 실현되였다.

이렇게 되자 김영삼은 상전으로부터 소외된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였고 이러한 궁색한 처지에서 벗어나는 출로를 북과의 대화에서 찾고 평양을 찾아가는 카터에게 자기의 의사를 밝히였다.

평양에 간 카터는 김영삼의 그동안의 행적으로 보아서 김일성주석께서 그를 만나주시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평양체류기간이 끝나갈무렵에야 김일성주석께 자기가 서울에 들렸을 때 김영삼이 주석님을 한번 만나뵙고싶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말씀을 올리였다.

한없이 넓은 도량을 지니신 김일성주석께서는 카터의 말을 너그럽게 대하시며 김영삼의 지난날 행적을 불문에 붙이고 만나주시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남북최고위급회담이 일정에 올라 판문점에서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위한 부총리급접촉이 진행되게 되였으며 여기에서 19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최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남북최고위급회담개최를 위한 합의서채택을 통일의 서광으로 받아들인 온 겨레는 희망과 흥분으로 부풀어올랐고 민족의 환희와 기대는 삼천리강토에 차고넘쳤다.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가 최고위급회담의 그날을 기다리며 준비를 다그치고있던 1994년 7월 8일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

이것은 남과 북,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그 무엇으로써도 보상할수 없는 가장 큰 불행이였고 최대의 상실이였다. 게다가 겹쳐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북은 경제건설에서 커다란 난관에 직면하였다.

이를 기화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은 《북조선의 조락은 시간문제》라고 하면서 반제자주의 기치, 사회주의기치를 들고나아가는 북을 압살하기 위해 정치군사적인 압력을 보다 강도높이 가하고있었다.

이것은 북에 있어서 안팎으로 사상최대의 어려운 정세가 조성되였음을 보여주고있었다.

여기에서 잠간 머리를 돌려 비교적 정확한 세계정치분석가들의 론조를 정리해보자.

국제력학의 관점에서 볼 때 1990년대 랭전이 해체되였고 이러한 랭전해체는 미쏘의 량극질서에서 미국중심의 단극질서에로의 이행을 의미했다.

미국은 비교적 신속하게 미국중심의 일극질서를 강압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미국중심의 일극질서를 유지하는 구조는 첫째 전략무기의 독점, 둘째 서유럽과 일본을 전통적인 동맹구조에 재결속하는것, 셋째 미국의 일극질서를 위협할수 있는 잠재적 적대국가의 통제였다.

세계사의 관점에서 불행했던것은 일극질서를 구축한 《초강대국》 미국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국제질서구축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했던것은 미국중심의 일극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할만 한 지위에 있지 않은 북, 이란, 이라크 등의 통제와 와해에 과도하게 력량을 집중하여온 점이다.

미국이 원하는것은 항복 또는 정권교체였다. 이로 하여 북 등 이들 나라들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대치의 중심은 군사부문이였다. 쏘련 등 동유럽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앞에서 이들 나라들의 선택은 유일하게 전략무기였다.

미국의 립장에서 북, 이란의 전략무기는 미국의 와해전략을 견제할수 있었고 미국의 전략무기독점을 흔들수 있는 용납 못할 수단이였고 이라크의 전략무기는 이라크를 침공할 빌미를 주었다.

전략무기의 개발도 문제이고(북, 이란) 전략무기가 없는것도 문제인(이라크) 이상한 상황은 비리성적인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딜레마였다. 선군정치를 국제력학의 견지에서 본다면 미국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저 하는 요구의 산물이라고 할수 있다.

북의 립장에서는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위협을 억지할만 한 군사력이 필요했다. 작은 나라인 북이 미국의 군사적위협을 억지할수 있는것은 전략무기일수밖에 없었다.

거슬러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이 선택이 21세기 벽두의 세계사의 흐름을 갈랐다.

랭전이후 미국의 일극질서구축의 표적이 된 북, 이란, 이라크는 군사적인 억지력에 따라 판이한 결과를 빚고있다.

이라크는 미국의 제물이 되였다. 이라크가 미국에 손쉽게 희생될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군사력이 약했기때문이였다.

이라크는 전쟁의 명분이 된 대량살상무기는커녕 정규군대의 재래식군사력마저 장기간의 경제제재로 사실상 와해된 상태였다. 덕분에 미국은 별 부담없이 전쟁을 선택할수 있었다.

그만큼 국제사회는 정의나 원칙이라고 할것이 없는 철저한 쟝글이였다.

다음의 선택은 자주의 나라 북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이렇듯 준엄한 정세속에서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혁명의 주력군인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조성된 난국을 돌파하시려는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게 되였다.

그분께서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드시게 된데는 지금 우리에게는 강력한 당과 국가가 있고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도 튼튼히 마련되여있다, 이런 조건에서 조국의 안전만 수호된다면 경제를 활성화하고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는다, 현시기 보다 절박한것은 원쑤들의 침략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운명,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하는것이다라는 과학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 놓여있었다.

이것은 흰기를 들고 무릎을 꿇을것을 요구하는 미국과 제국주의련합세력에게 보내는 폭탄선언이였고 그들의 고립책동에 대한 준엄한 선고가 아닐수 없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이렇듯 북을 압살하려는 제국주의와의 준엄한 대치상태의 역경속에서도 김일성주석의 통일유훈을 받들어 조국통일의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고 나라의 통일위업을 완성하실 비장한 각오를 다지시였다.

그 일환의 하나로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중대보도가 나간 7월 9일 남북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선포하도록 해당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리하여 남북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알리는 북의 중대조치가 전화통지문을 통해 남측에 공식 통고되게 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그후 김일성주석서거 100일 중앙추모회가 거행된 1994년 10월 16일 일군들에게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수령님의 위업을 계승완성하며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데서 조국통일을 이룩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며 조국통일의 확고한 의지를 밝히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하신 다음의 명제를 인용해보자.

《조국통일을 이룩하는것은 수령님의 유훈이며 온 민족이 통일된 조국에서 화목하게 잘살도록 하시려는것이 수령님의 뜻이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성취하여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꽃피워야 합니다.》(《선집》 제13권 440페지)

그분께서는 지금 단계에서는 잘살겠다는 생각보다 조국통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앞세워야 하며 모든것을 조국통일에로 지향시켜야 한다고,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겨 수행하기 위하여 더 긴장하게, 더 책임적으로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또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수행할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그 준비를 철저히 갖추어야 하며 모진 고난과 시련도 뚫고나가야 한다는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듯 남북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천명한 북의 중대조치는 김일성주석의 통일유훈을 받들어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 민족의 최대숙원인 조국통일성업을 반드시 이룩하시고야말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통일의지를 내외에 엄숙히 선포한것이였다.

이어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사적과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길이 전해가도록 판문점에 친필비를 세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친필비형성도안으로부터 해설문내용에 이르기까지 건설에서 제기되는 이여의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다.

이리하여 착공을 시작한지 불과 두달만에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친필비가 그이의 통일령도업적을 길이 전하는 불멸의 기념비로 판문점에 건립되게 되였다.

비문판에는 김일성주석께서 고귀한 생애를 마치시기 하루전날에 친히 조국통일관계문건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김일성 1994. 7. 7.》이라는 글발이 그이의 필체그대로 새겨져있다.

그리고 비문판아래 목란꽃장식부분 웃단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사적비문이 새겨져있다.

판문점의 통일각앞에 세워진 김일성주석의 친필비는 우리 인민에게 주실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며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온갖 로고를 다 바쳐오신 김일성주석의 령도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며 그이의 조국통일유훈을 끝까지 실현하고야말려는 북민중의 드팀없는 의지를 담아 세운 불멸의 기념비라는것이 내외의 공정한 평가이다.

한편 북은 1994년 8월 제5차 범민족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것을 내외에 선포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해당 부문의 일군에게 범민족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번에 진행하는 8. 15범민족대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범민족대회인것만큼 수령님의 전민족대단결사상을 받들어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전진시켜나간다는것을 과시하도록 특색있게 크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북의 신문, 방송기자들과 미국 CNN TV방송회사취재단, 영국 BBC방송회사 TV취재단, 카나다 CBS방송국 등 수많은 내외기자들이 붐비는 속에 제5차 범민족대회가 열리였다.

이는 김일성주석의 생전의 념원대로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고야말 겨레의 신념과 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그리고 온 강토에 통일기운이 고조되게 한 력사적계기로 되였다.

조국해방 50돐이 되는 1995년에 들어와서 북은 조국해방 50돐 민족통일대축전을 열데 대한 제안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한 활동도 벌렸다.

1995년 1월 북의 정당, 단체련합회의에서는 조국해방 50돐을 맞으며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고 8. 15를 계기로 판문점에서 대민족회의를 열어 민족공동의 통일방도를 협의확정할데 대한 제안을 담은 호소문을 채택발표하였다.

호소문에서는 조국해방 50돐이 되는 올해의 8.15는 통일조국창조의 일대 분수령으로 된다고 하면서 이 뜻깊은 날에 판문점에서 해내외의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국해방 50돐을 전민족적으로 성대히 경축할것과 여기에서 해내외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 대표들이 참가하는 대민족회의를 열고 민족공동의 통일방도를 협의확정할것을 남과 해외의 정당, 단체 및 각계각층 동포들에게 제의하였다.

그러면서 온 겨레가 친북, 친남을 가리지 말고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기업가, 종교인 할것없이 사상과 리념, 주의주장의 차이를 뛰여넘어 민족공동의 리념, 통일애국의 뜻으로 굳게 단합하여 조국해방 50돐을 공동으로 경축하며 대민족회의를 열고 조국통일방도를 확정할 전민족적통일대축전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나아갈것을 호소하였다.

이같은 북의 정당, 단체련합회의의 호소는 해내외동포들속에서 지지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남과 북, 해외에서 민족통일대축전준비사업이 활기있게 벌어지고 공동합의문까지 발표되게 되자 김영삼《정권》은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통일원 대변인을 내세워 8. 15민족공동행사불허를 공언하면서 남측준비위원회가 북과 련계를 가진것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에 위반된다고 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위협해나선것이다.

하지만 북의 주동적인 노력과 조치,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의 투쟁에 의하여 대축전사업을 파탄시켜보려던 반통일세력의 간계와 도전이 짓부셔지고 조국해방 50돐 민족통일대축전이 성과적으로 막을 올리게 되였다.

조국해방 50돐 민족통일대축전은 련방제방안을 민족공동의 통일방도로 확정하고 내외에 선포한 력사적인 축전이였다.

동시에 7천만겨레의 통일열망과 의지를 과시하고 통일의 열풍을 일으켜 통일운동의 새로운 활력을 부어준 민족적회합이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대로 김일성주석의 통일유지를 관철하려는 북의 드팀없는 의지의 발현이라는것을 그대로 립증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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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3대헌장의 정립

 

제국주의련합세력이 북에서의 대국상이후 이제 북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별의별 험담과 요언을 다 퍼붓던 시기, 바깥사람들의 말을 빌면 또 하나의 《통장훈을 불러내는 력사적인 쾌거》소식이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나아가서 이것은 김일성주석의 생전의 뜻과 유훈을 받들어 나라의 통일을 기어이 이룩하려는 겨레의 지향을 날로 고양시키는 유리한 분위기를 가져왔다. 총체적으로는 조국통일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전개해나가게 하는 격동을 불러온것이다.

바로 1996년 11월 24일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단행하신 판문점에 대한 력사적인 현지시찰에 그러한 중대한 의미가 부여되였다.

그때로 말하면 극도로 팽팽해진 북미관계, 남북관계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당시의 판문점에는 다치면 터질듯 한 긴장한 분위기가 조성되고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신변안전에는 아랑곳없이 판문점에 대한 현지시찰을 단행하시고 이날 판문점에 건립된 김일성주석의 친필비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던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위업에 기울여오신 수많은 낮과 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로선과 방침, 방안과 제안들을 몸소 구상하시고 작성하시였으며 그것을 해마다 보고와 연설, 담화를 통하여 천명하시였는데 그 수는 수백건에 달할것이다, 북과 남이 합의하고 민족앞에 엄숙히 선언한 조국통일3대원칙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도 다 우리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가장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침이다,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이것이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말할수 있다라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단행하신 판문점에 대한 시찰은 조국통일의 길에 한생을 바치신 김일성주석의 사상과 업적을 그대로 계승하여 기어이 통일을 이룩하시려는 철의 신념과 의지가 만천하에 과시된 력사적인 계기로 되였다는 내외의 공정한 평가를 받았다.

그후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조국해방 52돐에 즈음하여 1997년 8월 4일에 발표하신 고전적로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조국통일3대헌장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하시였다.

그분께서는 로작에서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령도업적을 총괄하면서 주석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새롭게 정립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하신 다음의 명제를 인용해보자.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김일성동지께서 위대한 주체사상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정에 이룩하신 고귀한 경험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방도들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조국통일의 3대헌장이다.》(《김정일선집》 제14권 344페지)

로작에서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조국통일문제를 민족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갈수 있는 근본립장과 근본방도를 천명한 조국통일의 초석으로 규제했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민족대단결의 목표와 리념적기초, 단결의 원칙과 방도가 전면적으로 명시된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강령으로 내세웠다.

또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통일국가의 전모와 그 실현방도를 밝힌 설계도로 밝히였다.

로작에서는 김일성주석의 필생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어떤 정세와 환경속에서도 조국통일3대헌장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하여 밝히고 그 실현을 위한 다음의 근본원칙과 방도들도 명시하였다.

△ 나라의 통일문제는 어디까지나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해결하여야 한다는것,

△ 온 민족이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굳게 뭉쳐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튼튼히 마련하여야 한다는것,

△ 조국통일을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방법으로 실현할데 대한 우리의 원칙적립장과 우리 당의 변함없는 로선을 틀어쥐고나가야 한다는것,

△ 조국의 통일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도는 련방제방식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여야 한다는것이다.

로작에서는 이밖에도 당면하여 남북의 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문제들도 제시하였다.

이렇듯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고전적로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사상과 로선을 전면적으로 체계화하여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정립하심으로써 조국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룩해나갈수 있는 억척기둥이 마련되게 된것이다.

이 고전적로작은 발표되자마자 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하바드대학 극동공산주의운동권담당 고급연구원은 1997년 8월 30일 방송기자와의 대담에서 《김일성북조선 령도자가 얼마나 강한 사회주의고수론자이고 자기가 달성하려는 목표에 대한 요구를 얼마나 높이는가 하는것은… 최근 광복절 52주년에 즈음하여 발표한 론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보아도 알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오직 한반도의 남과 북, 해외의 조선민족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여야 하며 또 반드시 그렇게 할수 있다는것을 진지하게 강조하고있다.》고 말하였다. 필자는 이것이 그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념두에 두고저 한다.

그러면 조국통일3대헌장의 당위적근거는 어디에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생명으로 여기는 민족자주정신으로 일관되여있다는데 있다.

조국통일3대헌장에 관통되여있는 기본사상, 근본핵이 민족자주정신이다.

외세에 의해 강제된 민족의 분렬을 반드시 자체의 힘으로 끝장내야 한다는 자각과 의지를 가지게 하는것이 바로 민족자주정신인것이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민족자주정신으로 일관되여있는것으로 하여 온 겨레의 심장을 틀어잡고 자주통일운동을 추동하고있는것이다.

▲ 전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는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구현하고있다는데 있다.

조국애와 민족애는 모든 민족성원들의 공통된 사상감정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존엄을 귀중히 여기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며 민족적특질인것이다.

외세에 의해 강제된 분렬로 하여 오늘날 우리 겨레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고있어도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통하여 형성되고 공고발전된 우리 민족의 애국애족의 정신과 고유한 민족성에는 변함이 없는것이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민족성원들이 지니고있는 조국애와 민족애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함으로써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나라와 민족의 통일을 하루속히 실현할수 있게 한다.

▲ 남과 북에 상호 다른 사상과 제도가 오래동안 존재하여온 우리 나라의 현실적상황과 통일을 갈망하는 민족의 지향에 맞게 하루속히 조국통일을 실현할수 있는 가장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이라는데 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조국통일은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는 문제가 아니라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민족적화합과 단합을 이룩하는 문제인것이다.

따라서 남과 북이 사상과 리념, 제도의 차이를 뒤로 미루고 민족공동의 리익을 앞세우고 그에 기초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것이다.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뒤로 미루고 민족공동의 리익인 조국통일에 모든것을 복종시켜나가는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지향이자 요구인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적조건과 민족의 의사에 맞게 조국통일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해나가자면 마땅히 민족성원 누구에게나 접수될수 있는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민족의 이같은 절박한 요구와 나라의 현 상황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방식의 민족통일국가를 창립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데 대하여 밝히였다.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정립한것은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서 필수적인 세 요소 즉 목적과 원칙, 방도를 일관하게 관통시켜 해결한 조국통일의 대헌장이라는 실로 거대한 민족사적의미와 력사적의의를 담고있다.

그것은 전민족적인 요구를 반영하여 조국통일실현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원칙과 전략, 방도와 방식을 전면적으로 밝혀주고있는것으로 하여 그리고 통일된 후 련방국가의 참모습과 전도에 대해서도 뚜렷이 명시하고있어 민족의 통일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다 공감하고 접수할수 있는 가장 옳바른 조국통일대강으로 되는것이다.

여기에서 조국통일3대헌장의 내용을 이루는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상호 련관성을 명백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다같이 조국통일운동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으로 된다는 공통성을 가지고있다.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옳바로 그리고 하루속히 앞당겨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민족이 받아들일수 있는 통일의 근본원칙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만약 우리 민족에게 민족공동의 통일원칙이 없으면 통일을 위한 노력은 좌왕우왕하게 된다. 결국 통일문제는 많은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게 되며 통일의 그날은 앞당겨질수 없게 되는것이다.

더우기 민족의 통일은 어느 한 계급,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온 겨레의 힘을 모아야 하는 거족적인 위업인것만큼 처지와 립장, 견해가 서로 다른 각계층의 사람들을 하나로 똘똘 결속해낼수 있는 근본원칙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민족적화합과 단합을 이룩하자면 과학적인 단결의 강령이 또한 필요한것이다. 다시말하면 민족대단결의 목표와 리념적기초, 단결의 원칙과 방도를 명백히 제시하는 기발이 있어야 그밑에 민족이 모여들고 보조를 같이해나갈수 있는것이다.

통일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자면 어떤 형태의 통일국가를 창립할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밝힐 때만이 통일운동을 전민족적범위에서 더욱 활성화시킬수 있게 된다.

온 민족의 통일운동에서 원칙이 되고 대단결의 강령이 되며 전민족적합의를 도출해내는 통일방도를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조국통일3대헌장이야말로 통일운동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민족공동의 강령적지침으로 되는것이다.

그러면 조국통일3대헌장의 내용을 이루는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과 어떤 상호 련관성을 가지고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구현하고있는 통일방안이 바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라는것이다.

리념과 체제상의 차이를 절대화하지 않고 민족을 우선시하는 립장에 서서 남과 북의 련합으로 상호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민족의 리익과 념원에 맞게 통일을 실현하는 련방국가창립방안은 자주의 원칙을 완전히 구현하고있다고 말할수 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상호 용납하고있는것만큼 어느 일방이 타방에 대해 자기의 리념과 체제를 강요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남과 북의 대표가 동등하게 참가하는 통일정부를 수립하는것만큼 어느 일방이 통일정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시도도 실현할수 없게 한다.

이것은 남과 북사이의 대립과 불신을 없애고 평화적분위기를 마련함으로써 조국통일을 평화적방법으로 실현할수 있게 한다.

련방국가창립방안은 민족대단결의 원칙도 구현하고있는것이다.

련방국가의 창립은 남과 북의 어느 일방이나 특정한 계급, 계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과 북은 물론 해외동포들까지 온 민족의 힘을 묶어세울 때만이 실현될수 있는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련방국가를 창립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그자체가 남과 북의 불신과 대립을 없애고 민족대단결을 실현하는 대제를 해결하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과의 상호관계도 마찬가지로 설명이 된다.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에서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과 같은 범민족통일국가창립을 통일의 총적목표로, 전민족대단결을 통일의 근본방도로 제시하고 대단결실현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완벽한 해명을 주었다.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에서 말하는 범민족통일국가의 창건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의 창건을 의미한다.

그리고 10대강령에서 제시된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복종시키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련방제방식의 통일국가수립의 요구를 구현한것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련방제통일방안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는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바탕우에서 상호 련합하여 하나의 민족통일국가를 형성한다는것이다.

이것은 남과 북이 각기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상대방에 강제하지 않고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면서 민족적통일을 이룩한다는것이다.

이와 함께 련방제통일방안의 다른 하나의 내용은 남과 북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밑에서 상호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기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과 북은 하나의 통일국가의 테두리안에서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면서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해나가게 되는것이다.

이같이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모든것을 통일에 복종시키는 원칙은 련방제통일을 예견한것으로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사이에 밀접한 상호관계를 가지고있다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이렇듯 조국통일3대헌장은 상호 밀접한 련관성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한 리론적, 실천적문제들에 해답을 준것으로 하여 그것이 가지는 민족사적의의는 실로 거대한것이다.

조국통일3대헌장에는 우리 민족이 분렬된이래 장장 반세기 기간 조국통일을 위한 운동이 성공해오는 과정에 통일문제의 본의와 통일운동의 주체적력량을 마련한 경험, 조국통일을 위한 대중운동지도경험과 다방면적인 협상경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경험 등 조국통일운동의 제 분야에 걸치는 고귀하고 풍부한 경험이 집대성되여있는것이다.

장구한 기간 조국통일운동과정에 이룩된 이렇듯 풍부하고 다방면적인 경험이 전면적으로 집대성되여있는 바로 여기에 조국통일3대헌장의 생명력이 있고 그 민족사적의미와 위력이 있는것이다.

조국통일3대헌장이 마련됨으로 하여 우리 민족은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숙망을 성공적으로 해결해나갈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이상에서 본것이 새 세기를 구획짓는 2000년대 이전의 북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안과 조치와 활동들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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