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의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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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 제시되다

 

한때 남쪽언론을 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억도 새로운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5공》군사독재의 말기에 당시 신민당소속 어느 한 의원의 《국회》발언이 《좌경용공》으로 파동을 일으켜 그를 구속하는 사태에까지 이른 사건이였다. 그때 그의 발언에서 말썽을 빚은것은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여야 한다.》,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용어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용어보다 그우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였다.

그는 자기의 《국회》발언을 《좌경용공》으로 규정한 근거에 대해 자신의 《국시》론은 문제될것이 없다고 반론하였다.

이 《국회》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통일을 하되 그것은 민족우선의 길, 남과 북의 제도를 초극한 길을 선택하는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점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나라의 통일문제는 민족분렬의 근원인 외세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하며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살고있는 남북간의 불신과 대결을 해소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도모하는 문제라는데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위한 투쟁은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대결이 아니라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간의 투쟁이라는 측면을 파악하는 기초우에서 전개되여야 한다는것이다.

통일의 길은 남과 북의 어느 편이 내놓은 통일방안이냐 하는것보다도 그것이 얼마나 공평하게 전민족적인 요구와 리익을 구현하고있는가에 따라 결정될것이다. 그러한 공정성은 통일하자는 주장과 영구분렬이라는 주장을 똑같이 취급하는 공정성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고하게 통일을 지향하는 공정성, 통일을 지향하면서 남과 북의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부담을 강요하지 않는 그런 공정성이라고 볼수 있다.

결국 통일을 위한 길은 ▲ 다시 하나가 된 조국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것 ▲ 그것이 분렬현실에 발을 붙이고 서있는 실질적이고 가능한 통일의 길이라는것 ▲ 남북관계에서 공정성을 기하는 통일의 길 즉 통일이라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판단의 기준으로 하여 남북 량측에 대하여 옳은것은 옳고 나쁜것은 나쁘다고 평가하고 옳은것을 지지하며 주장하는 공정성인것이다. 이러한 주장과 견해는 민족의 량심을 지니고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한다면 누구나 도달하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필자는 이 절박한 민족사적과제에 해답을 준것이 바로 북에서 내놓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수 없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민족앞에는 1970년대 통일운동의 성과와 교훈에 기반하여 통일에로의 새 진격로를 개척할 과제가 긴요하게 제기되였다. 1970년대 가장 중요한 성과가 조국통일3대원칙에 남북이 합의하고 그것을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채택한것이였다면 반면에 가장 중요한 난점은 미국과 남쪽당국이 남북대화를 파탄시키고 《두개 조선》조작음모를 집요하게 추진시킨것이다.

요컨대 미국과 남쪽당국은 민족분렬의 장기화, 두 체제의 고정화, 그것을 뒤받침하는 《민족이질화》를 내들고 통일의 불가능성, 통일의 료원성을 주장하고 미국의 아시아침략전략에 바탕을 둔 《두개 조선》조작을 노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국통일3대원칙을 구현하는데서 남북간의 리념과 체제상차이라는 맹점을 풀어나가는 통일의 첩경을 탐구하는것이 절실하였다. 이 민족사적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통일의 전망이 좌우될것이였다.

이런 때 김일성주석께서 하신 198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보고에서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이라는 새로운 통일방도가 천명되였다.

김일성주석의 다음의 명제를 인용해보기로 하자.

《우리 당은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하는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방도는 북과 남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북과 남이 련합하여 하나의 련방국가를 형성하는것이라고 인정합니다.》(《김일성저작집》 제35권 346페지)

김일성주석께서 내놓으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본질은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에서 남과 북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내오고 그밑에서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련방공화국을 창립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이다. 다시말하여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방식의 통일국가를 창건하자는것이다.

이 방안의 중요한 측면의 하나를 이루는것은 남과 북이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에서 서로 련합하여 하나의 통일국가를 형성하는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에서 서로 련합하여 하나의 련방국가를 형성한다는것은 남과 북이 제각기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상대방에 강요하려 하지 않고 남과 북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련방형식의 통일국가를 형성한다는것을 의미한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여 민족통일을 실현하는것은 분렬된 두 지역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평화적방법으로 통일하는 가장 리상적이며 합리적인 방도로 된다.

이 방안의 다른 하나의 중요한 측면을 이루는것은 남과 북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내오고 그밑에서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련방공화국을 창립하는것이다.

구체화하면 남과 북이 각각 선출하는 동등한 수의 대표들로 통일정부를 구성하고 이 통일정부의 지도밑에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자기 지역에서 각각 독자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통일국가를 형성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이 전민족을 대표하는 하나의 민족통일정부를 내오고 그 지도밑에 두개의 지역정부들이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면서 활동하는 독특한 형태의 통일국가라는것을 말하여준다.

그러면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 7. 4공동성명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가장 정확히 구현한 조국통일방도로 된다는 점에 대해 전개해보기로 하자.

7. 4공동성명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론리적으로 전개하면 그 연장선에는 하나의 체제를 가진 국가가 아니라 두 체제를 가진 하나의 조국, 련방제의 통일국가가 솟아오른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세가지 원칙에 따라 조국을 통일하자면 련방제의 길로 나갈수밖에 없으며 다르게는 될수 없다.

▲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통일하자고 해도 련방제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국가의 조직형식을 련방제로 하느냐,

아니면 단일제로 하느냐 하는 문제는 자체의 실정에 따라 선택되는 민족자결에 관한 문제로서 어느것은 자주적이고 어느것은 비자주적이라는 문제가 서지 않는다.

그러나 상반되는 두 체제로 분리되여있고 남쪽에 외세가 틀고앉아 모든것을 좌지우지하는 우리 민족의 경우에는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면 련방제의 통일방식을 선택하는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할수 있다.

이것은 다음의 두가지 근거에서 말하게 된다.

우선 련방제통일의 길로 나가야 외세를 배제하고 민족의 단합을 도모할수 있고 따라서 자주적으로 통일할수 있다는것이다.

민족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이라고 할 때 그 생명력은 단합된 우리 민족의 힘, 민족의 단결력에 기초하고있다.

《단결은 곧 힘》이라는 말도 있지만 단결되지 못한 민족은 힘을 낼수 없고 힘이 없는 민족이 대내외정책에서 자주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것은 자명한 리치이다.

남북에 상극적인 체제가 존재하고있는 현실에서 체제통일은 한쪽이 다른쪽을 누르고 흡수하는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남북간의 대결이 격화되여 전민족의 단합을 이룰수 없고 따라서 그에 기초한 자주통일을 성취할수 없게 된다.

련방제통일을 지향할 때만이 상극적인 두 체제가 서로 용납하는 관계로 전환되여 민족의 총의에 기초한 자주통일이 가능하게 되는것이다.

력사적으로 볼 때에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허용하는 통일론의는 체제통일을 목표로 하는것이였다.

미국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는 리승만《정권》의 《북진통일》론이 그러했고 장면《정권》의 《유엔감시하의 총선거안》이 바로 그런것이였다.

박《정권》의 《선건설, 후통일》론도 따지고보면 미국과 일본의 힘을 빌어 실력을 배양한 다음에 북을 압도하는 통일을 한다는것이다.

7. 4공동성명이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천명한것은 바로 이러한 체제통일이 부당하다는것을 확인한것으로 리해해야 하며 그렇다면 련방제통일방식을 선택할수밖에 없는것이다.

▲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방법으로 통일을 하자고 해도 련방제방식을 선택해야 할것이다.

두 체제로 남북이 대립되여있는 현실에서 무력통일이 체제통일을 의미한다면 평화통일은 련방제통일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을것이다.

물론 상대방에 자기쪽의 이데올로기를 불어넣어 내부적으로 와해시킨 다음에 통합하는 흡수통일도 그것이 군사적방법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평화적방법이라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는 흡수통일은 상대방을 누르고 먹어버리는것을 의미하며 남북간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는 평화적방법이 아니다.

누군가가 《스스로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치권력은 없다.》고 했듯이 우리는 남북에 굳어져버린 체제의 존재를 다같이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제 와서 어느 한쪽을 부정하고 통일한다는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그것은 평화통일주장이라 할수 없다. 7. 4공동성명이 밝힌 평화통일이란 남북의 두 체제를 다같이 인정하고 하나의 국가의 틀안에서 병존시키는 통일, 련방제통일을 의미한다고 리해해야 옳을것이다.

▲ 사상과 리념, 체제의 차이를 초극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대단결을 도모한다는것은 명백하게 련방제통일을 가리키는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사상과 리념, 체제의 차이를 초극하는것이나 하나의 민족으로서 대단결을 도모하는것이나 그것은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용납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에 기초한 통일은 련방제통일일수밖에 없는것이다.

분렬이 아니라 통일하자는 립장에 서고 7. 4공동성명의 리념과 원칙에서 출발한다면 련방제를 생각하게 되고 련방제통일을 주장하게 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수 있다.

7. 4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시기에 련방제통일론이 널리 대두되기 시작한 사실이 7. 4공동성명에 따르는 통일의 길은 련방제에 의한 통일일수밖에 없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2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특징

 

필자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라는 리론적인 탐색을 함에 있어서 그의 특징을 옳바로 분석해보는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래야만 이 방안을 보다 옳게 리해할수 있을것이기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선 북이 1960년이래 여러차례에 걸쳐 제시한 남북련방제안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그것은 ▲ 남북련방제안이 총선거를 통하여 통일적중앙정부의 수립에로 가는 과도적대책이였다면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련방국가의 창립으로 통일국가의 수립을 완성하는것이며 ▲ 남북련방제가 최고민족회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절하며 선거를 준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것이였다면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서로 다른 사상과 리념, 사회제도를 가진 남과 북의 두 지역과 두 정부를 련합한 하나의 통일련방국가로서의 기능을 행사하는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현실적인 무게와 당위성이 부각된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련방국가의 조직과 구성원칙, 권한분배와 임무, 통일국가의 성격과 국호, 그 대외적지위 등을 남과 북의 공통한 지향과 요구에 맞게 그리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규정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사상과 정견, 신앙이 어떠하건, 그가 북에 있건 남에 있건 관계없이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을 념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같이 공감하고 접수할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안으로 되고있다.

실로 련방형식의 통일국가를 창립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방안은 민족을 우위에 놓고 민족적리념에 따라 통일방도를 새롭게 밝히고 민족을 최우선적지위에 놓고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극하여 통일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길을 밝힌 독창적인 방안이다.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련방국가가 실시하여야 할 10대시정방침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독창성과 현실성, 북의 자주적인 통일의지와 신념을 뚜렷이 부각시켜주고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의 10대시정방침을 조항별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성견지, 자주적정책 실시

둘째, 나라의 전지역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민주주의 실시, 민족의 대단결 도모

셋째, 남북의 경제적합작과 교류 실시, 민족경제의 자립적발전 보장

넷째, 과학, 문화, 교육분야에서 남북간의 교류와 협조 실현, 과학기술과 민족문화예술, 민족교육의 통일적발전

다섯째, 남북사이의 끊어졌던 교통, 체신의 련결, 전국적범위에서 교통, 체신수단의 자유로운 리용 보장

여섯째,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과 전체 민중들의 생활안정 도모, 복리의 계통적증진

일곱째, 남북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의 해소, 민족련합군 조직, 외래침략으로부터의 민족보위

여덟째, 해외동포들의 민족적권리와 리익의 옹호보호

아홉째, 남북이 통일이전에 다른 나라들과 맺은 대외관계의 옳바른 처리, 두 지역정부의 대외활동의 통일적조절

열째, 전민족을 대표하는 통일국가로서 세계 모든 나라들과 우호관계의 발전, 평화애호적인 대외정책의 실시

우에서 알수 있듯이 정치강령, 경제강령, 군사강령과 문화강령 그리고 외교강령으로 나누어볼수 있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이 실행하여야 할 10대시정방침은 련방국가의 성격과 사명에 맞게 우리 민족의 공통된 지향과 요구, 리익을 정확히 반영하고있다. 그리고 통일된 조국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고있는 애국애족적이며 평화애호적인 정부시정강령이다.

이렇듯 련방국가창설방안과 련방국가의 시정방침은 조국통일3대원칙을 철저히 구현하고 남과 북의 현실적조건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에 기초한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며 조국통일의 대헌장이다.

이미 우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 조국통일3대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애국애족적이며 공명정대한 통일방안이라는데 대해서는 언급이 되였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리해를 가져야 할 점은 련방국가창립방안이 남북의 지역상호간, 계급상호간의 리해관계는 물론 다른 나라의 리해관계까지도 다 최대로 존중하고있다는것으로 하여 누구나 다같이 접수될수 있는 통일방안이라는 점을 좀더 전개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 이 방안은 남북 량지역 정부의 관계를 완전히 평등하게 정하고있다.

민족통일정부구성에서 남북이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지닌 동수의 대표를 내게 되여있으며 지역정부는 련방정부의 지도만을 받으며 량지역 정부 상호간에는 하등의 규제관계가 없다.

그리고 련방정부는 량지역의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 자기의 의사를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지도한다.

▲ 이 방안은 남북의 모든 계급과 계층, 당파의 리익을 다같이 존중하고 보호하는 원칙을 지키고있다.

련방정부는 전체 남북민중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들의 근본리익과 요구에 맞는 정책을 실시한다.

례를 들어 남북 전지역에서 정치, 경제, 문화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며 특히 근로자들과 각계층 민중의 생활안정과 복리증진을 도모하게 된다.

그리고 련방정부는 민족의 장래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나 개인에 대해서는 과거를 일체 따지지 않고 단결하며 어떤 형태의 정치적보복과 박해도 불허하며 남북에 있는 국가소유와 협동소유, 사적소유와 개인소유를 다같이 인정하고 보호하며 독점과 매판행위를 하지 않는 한 자본가들의 소유와 기업활동을 제한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

이런것들은 련방정부가 특정한 계급, 계층이 아니라 모든 계급, 계층의 리익과 요구를 보호한다는것을 의미한다.

▲ 이 방안은 주변국가들과 평화애호적인 세계민중들의 념원까지도 충분히 고려하고있다.

련방국가는 통일이전에 이남에 투자한 외국자본의 리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남북이 사회체제에 구애됨이 없이 외국과의 경제관계를 계속 유지하는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주변국가들이 《한》반도의 통일로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고있다.

련방국가는 자주적, 중립적, 평화애호적인 국가를 지향하고있으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옹호하는 동시에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에도 적극 기여하려는 자세를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결국 련방국가는 어떠한 렬강의 위성국으로도 되지 않고 어떤 외부세력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비동맹중립국으로 되는 자기의 위상을 확고히 정립하고있는것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그 타당성으로 하여 민족적인 통일을 실현하는 가장 옳바른 길임을 알수 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분렬국에서 사회체제를 달리하는 두 지역의 련방이라는 점에서 세계정치사에 새 국면을 열어놓은 독창적인 련방국가인것이다.

여태까지 지구상에 존재해온 련방국가는 하나이상의 민족이나 국가 또는 자치주 등이 공동의 리해관계에 의해 련합하여 하나의 중앙권력을 가진 국가형태로 이루어졌다.

련방국가의 원류는 고대그리스의 도시국가동맹이지만 근대적이라는 의미에서 련방국가형태를 취한 나라는 미합중국, 스위스, 도이췰란드 등이 대표적이고 오늘에도 련방국가가 수십여개에 이르고있다.

그러면 고려민주련방공화국과 기존의 련방국가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보자.

▲ 련방국가형성의 기초로 볼 때 기존의 련방국가들은 공통적인 사회체제에 기초하고있는 련방국가이다. 그러나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서로 다른 사회체제를 포용하면서 공동의 민족적리념에 기초하고있는 련방국가이다.

▲ 련방국가형성의 목적으로 볼 때 기존의 련방국가는 국가간, 민족간, 자치주간의 공통적인 리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련방을 형성하였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의 경우에는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고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련방을 형성하는것이다.

▲ 련방국가의 형태에서 볼 때 기존의 련방국가는 다민족, 다국가, 다자치주에 의한 련합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의 경우는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두 지역의 자치제에 의거하는 련방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분렬된 나라에서 서로 사회체제를 달리하는 두 지역의 련방이라는 점에서 세계정치사에 새 국면을 열어놓은 독창적인 련방국가인것으로 하여 민족적인 지지와 호응을 불러냈다.

여기에서 잠간 다른 분렬국가들의 통일의 경우를 살펴보자.

맨 먼저 통일을 실현한 오스트리아는 자본주의유럽에서 사회주의적동방이 분립되여 동서랭전체제가 수립되기 시작한 첫 시기에 동서방사이에 균형을 보장하는 중립화방법으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것은 통일후 동서방간의 대결과 충돌을 완충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윁남은 프랑스와 미국의 식민주의, 지배주의에 저항하는 민족해방투쟁을 통하여 통일을 실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윁남의 통일은 아시아, 아프리카예속민족들의 해방운동을 고무하는 역할을 하였다.

도이췰란드의 통일의 경우에는 유럽에서 《랭전구조의 해체》라는 특이한 력사적환경속에서 자본주의서부도이췰란드가 사회주의동부도이췰란드를 흡수통합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동서방간의 힘의 균형의 파괴에 의한것이며 유럽에서의 랭전질서의 이러한 변화는 민족들의 의지를 외면한 반력사적인 흐름이였다.

앞으로 우리 조국이 통일되면 그것은 외세에 의한 분렬체제를 없애버리는 민족해방의 과제를 완성하는것이라는 점에서도 도이췰란드는 물론 엄격한 의미에서 식민지가 아닌 오스트리아의 통일과도 성격이 다르다.

분렬국가들에서 처음으로 체제통일이 아닌 두 체제를 병존시키는 련방제통일이라는 점에서 윁남과도 다른 독특한 통일의 모델이 창출되게 될것이다.

이렇듯 련방국가창립방안은 어느모로 보나 우리 나라의 현실상황으로부터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임을 단정할수 있다.

이 방안은 분렬의 력사속에서 피어린 통일에로의 노력가운데 창조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이며 전민족의 통일에로의 의지와 힘을 하나로 모아 기어코 실현해야 할 민족의 통일대강이라는 점을 재삼 강조하게 된다.

3

련방국가창립을 위한 조치와 활동

 

북은 두개 정부, 두개 제도에 근거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시한 이후 그 실현을 위한 조치들을 강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들을 보기로 한다.

○ 민족공동의 협의기구, 민족통일촉진대회, 100인정치인련합회의 제의

북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실제적인 조치로서 1980년 11월 11일 북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의 련석회의를 열었다.

여기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남쪽과 해외의 동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편지에서는 민족의 총의와 온 겨레의 힘을 모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려는 일념으로부터 출발하여 남북, 해외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적당한 수의 대표들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준비위원회와 같은 민족공동의 협의기구를 시급히 내올것을 제의하였다.

이러한 협상기구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각각 먼저 내오고 그에 토대하여 전민족적인 통일협상기구를 내오는것이 합리적일것이라고 하면서 이 모든 문제들을 합의하기 위하여 남과 북, 해외의 각계 인사들사이에 예비회의를 가지는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였다.

북은 1981년 8월 6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제67차회의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의 정당, 단체대표들과 해외동포들로 구성되는 민족통일촉진대회를 소집하고 거기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비롯하여 통일과 관련되는 제반 문제들과 기타 남북사이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협의할것을 다시금 제의하였다.

이어 북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1982년 2월 10일 성명발표로 남과 북, 해외의 정치인들의 100인련합회의를 소집할것을 제의하였다.

련합회의는 과거여하에 관계없이 통일에 뜻을 둔 개별적정치인으로서 해외인사들을 포함하여 남과 북에서 각각 50명으로 구성하여 회담형식은 남북사이의 쌍무회담이 아니라 모든 인사들이 거주지역과 소속에 관계없이 남북을 초극하여 통일문제를 론의하는 다무적원탁회담으로 할것을 예견하였다.

이러한 100인련합회의는 당시 조건에서 민족의 통일념원을 성과적으로 실현할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통일협상으로 될수 있으며 민족대단결의 마당으로 될수 있다는 북의 판단에 의한것이였다.

○ 북과 해외와의 련대

1980년대초에 북과 해외동포들사이에 대화와 접촉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속에서 북은 해외와의 련대를 위하여 해외민주인사들과 종교단체들에 편지를 보내여 다각적인 접촉과 대화, 협상을 진행할것을 제기하고 그 성사를 위한 활동도 벌렸다.

이리하여 1981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중심의제로 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첫 력사적인 대화가 개최되였다. 그후 1982년 12월 3일부터 5일까지 기간에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제2차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가 진행되였다.

제1차 대화는 주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였다면 제2차 대화때부터는 그리스도교신자뿐아니라 각이한 계층이 참가한 범동포적인 대화로 발전하였다.

거듭되는 접촉과 대화, 협상을 통하여 북과 해외동포들사이에는 신뢰의 정이 두터워지고 통일운동에서의 련대가 실현되게 되였다.

1984년 1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이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는 북과 해외동포들간의 범동포대화가 열리고 비상설협의체로서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이 결성되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의 출현은 해외의 서로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있는 동포들간의 단합을 도모하고 그들을 통일애국투쟁에 적극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동시에 통일운동의 자연발생성과 분산성을 극복하고 운동을 통일적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부각된다.

○ 3자회담제의

북은 1983년 12월 북과 미국, 남측사이에 3자회담을 진행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게 되는데 이 역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실현을 위한 조치의 하나였다.

이에 대해 하신 김일성주석의 명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에서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고 평화통일의 전제를 마련하자면 우리와 미국, 남조선사이에 3자회담을 진행하여야 합니다.》(《김일성저작집》 제40권 238페지)

사실 3자회담문제는 1976년 8월에 당시 미국무장관이였던 키신져에 의하여 제기된바 있었다.

그러나 3자회담이라는 회담형식에서는 동일한것이였지만 북의 제안과 미국의 제안은 회담자체의 목적과 내용에서 근본적으로 다른것이였다.

북의 3자회담제안은 ▲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쪽당국과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을 마련하기 위한것이라면 미국이 제안한 3자회담은 ▲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협상할 권리가 없는 남쪽당국을 회담에 참가시켜 그들을 국제적으로 인정케 하며 미국의 이남지배와 《두개 조선》정책을 합리화하려는 기도가 내포되여있었다.

북이 3자회담을 통하여 이루려고 하는 평화제안은 평화문제의 해결을 통하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며 전쟁을 근원적으로 청산할것을 예견하고있는 자주적이며 철저한 평화제안이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문제와 관련한 모든 유관국과 문제를 폭넓게 전면적으로 해결하려는 포괄적인 평화제안이며 조국통일의 전제를 마련함으로써 조국통일을 앞당기려는 통일지향적인 평화제안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그러면 북이 제기한 3자회담제안의 현실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 《한》반도의 실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에 기초하고 전민족의 지향과 세계인민들의 절실한 요구를 다같이 충분히 고려하여 평화적출로를 명시한 현실적인 문제해결방도이다.

북의 3자회담제안이 제기될 때 미국의 핵전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의 정세는 극도로 긴장하여 전쟁전야에 처하여있었다.

이로부터 내외여론은 《한》반도에서 새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핵전쟁으로 될것이며 이 전쟁은 쉽사리 《한》반도경외로 확대되여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파괴하고 인류를 핵전쟁의 참화속에 밀어넣을것이라는 위구를 표시하였다.

《한》반도에 조성된 전쟁의 위험은 미국과 남쪽당국의 전쟁책동에 기인하는것만큼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서는 북과 미국, 남쪽당국 3자가 한자리에 모여앉아 진지하게 협상함으로써만 실질적으로 해결할수 있는것이다.

▲ 조선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실현할수 있는 효과적이며 합리적인 방도이다.

3자회담을 통하여 조미사이에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사이에 불가침선언이 채택되면 남에서 미군이 나가게 되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근원이 없어지게 될것이다. 결국 이는 조선의 통일문제해결의 밝은 전망이 열리게 될것이였다.

○ 평화적조건과 긴장상태완화대책

북은 3자회담제안을 내놓은이래 여러 기회를 리용하여 3자회담의 실현을 촉구하여왔다. 련방국가창립을 위한 평화적조건을 마련하고 긴장상태를 완화하며 전쟁위험을 가시기 위한 노력도 벌렸다.

1985년 4월 9일 북의 최고인민회의 제7기 제4차회의에서는 《북과 남사이에 민족적화해와 신뢰를 도모하며 나라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실제적조치를 취할데 대하여》를 토의하였다. 여기에서는 남북국회회담을 열어 불가침선언을 채택발표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북의 남북국회회담제안은 3자회담이 실현되기 전까지라도 나라의 평화문제를 가능한 한 남북사이에 할수 있는데까지 자체로 풀어나가려는 진지한 립장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남북국회회담에서 불가침선언을 채택발표할데 대한 제안의 당위적근거는 ▲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통일에 유리한 전제를 조성하며 남북 각계각층 민중들과 여러 정당, 사회단체들의 광범한 의사를 폭넓게 반영하여 평화와 평화통일문제를 옳바르게 해결할수 있게 하는 방안이라는것이며 ▲ 대화와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남측이 표시한 일련의 견해와 주장도 폭넓게 고려하고있으며 조선에서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념원도 정확히 반영한 공명정대한 제안이라는데 있다.

북은 1986년 6월 남북군사당국자회담을 가질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은 남북국회회담이 성사되지 못하고있는 형편에서 전쟁을 막고 긴장을 완화하며 대화에 유리한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도였다.

이후 북의 군최고사령부는 1986년 9월 6일 련합부대와 부대, 조선인민경비대 15만여명을 평화적건설에 참가시킬데 대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로써 북은 진실로 긴장완화와 군비축소의 립장에 서있음을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북은 1986년 12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회의를 통해 남북고위급정치군사회담을 가질데 대한 중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은 남과 북사이에 쌓이고쌓인 심각한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고 긴장완화의 매듭을 풀수 있는 열쇠이며 긴장완화와 평화문제를 진지하게 협의해결할수 있는 적중한 제안이였다.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북의 제안이 실현되면 자연히 중단된 여러 갈래의 대화도 재개될수 있고 나아가서 최고위급회담도 열릴수 있었다.

통일의 장애물인 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려는 북의 진지한 태도는 그후 대규모적인 군축제안과 평화방안들에서 더욱 여실히 증시되였다.

북은 1987년 7월 23일 5개 항목의 대규모적인 단계적무력축감제안을 내놓고 이 제안에 따라 1987년 12월말까지 10만명의 군대를 제대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북은 이어 1988년 11월 7일 긴장완화와 평화보장을 위한 근본원칙과 포괄적인 평화방안인 통일지향, 외군철수, 남북군축, 당국자협상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보장4원칙을 내놓았다.

○ 정치협상회의 제의

북은 전민족적인 대화를 마련하여 민족대통일전선형성의 결정적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노력도 전개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1989년 신년사를 통해 가까운 시일안에 평양에서 남과 북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의사를 대표할수 있는 지도급인사들의 남북정치협상회의를 가질데 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으시고 남쪽의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총재들과 김수환추기경, 문익환목사, 백기완 등을 평양에 초청하시였다.

그리고 이 정치협상회의의 테두리안에서 남과 북의 지도급인사들은 다무적인 회담뿐아니라 쌍무적인 대화도 나눌수 있을것이라는것, 남쪽의 지도급인사들이 건설적인 통일방안을 가지고 평양을 방문한다면 그들을 환영할것이며 그들이 내놓은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함께 허심탄회하게 협의할것이라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이 방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라의 영구분렬을 막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접수될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발기였다.

그러나 남쪽당국자들은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북의 성의와 노력을 외면하고 범죄적인 《북방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모략선전에 매여달리면서 남북고위급인사들의 정치협상회의제안을 방해해나섰다.

미국의 각본에 따라 남쪽당국자들이 들고나온 《북방정책》은 북쪽의 사회주의나라들에 《문호를 개방》하고 체육, 문화, 경제교류의 단계를 거쳐 《국교수립》에까지 나간다는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있다.

남쪽당국자들이 《북방정책》을 통하여 추구하는 목적은 분렬주의적인 《교차승인》을 실현함으로써 저들의 《유엔가입》을 차단해온 《사회주의벽》을 허물고 《두개 조선》조작의 돌파구를 열어보려는데 있었다.

하지만 북의 정치협상회의제안은 남쪽의 정계, 사회계 진보적인사들속에서 지지와 환영을 받았다.

남쪽 각계층은 남북고위급인사들의 정치협상회의의 조속한 실현을 촉구해나갔다.

이 과정에 남쪽의 전국민족민주운동련합 고문 문익환과 백기완은 1989년 2월 4일 공동기자회견을 가지고 성명을 발표하여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남북지도급인사들의 정치협상회의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러면서 남북정치협상회의에서는 외세를 몰아내는 문제와 분렬을 청산하는 문제 그리고 남북 각계의 통일방안 등이 솔직하게 론의되여야 한다고 주장해나섰다.

문익환목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3월 25일 만난을 무릅쓰고 유원호, 정경모 등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였다.

문익환목사를 접견해주신 김일성주석께서는 그가 평양을 방문한데 대하여 열렬히 환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남쪽의 민주인사들과 각계각층 민중들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면서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위업을 실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또한 민주자 통일이고 통일이자 민주라고 말해온 문익환목사의 견해를 긍정해주시면서 반파쑈반독재민주화, 반외세반침략자주화, 평화적통일, 이 셋이 하나이며 우리 민족앞에 나서는 기본과업은 이 세가지를 실현하는것이고 여기에 모든것을 복종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하려는 북의 시종일관한 립장과 조국통일은 반드시 련방제방식에 의하여 실현되여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시고 련방국가는 철저히 통일국가로 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한편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을 해소하고 긴장상태를 완화하는것과 함께 갈라진 가족들의 래왕, 남북사이의 철도련결, 경제, 문화 및 인도적문제도 풀어나가야 할것이라고 하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조국통일은 온 민족의 거족적인 위업인것만큼 누구든지 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찾아오겠다면 개별적으로라도 오는것을 환영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말씀을 듣고난 문익환목사는 전적인 공감을 표시하면서 특히 련방제통일방안이 아주 훌륭한 통일방안이라고 적극적으로 지지해나섰다.

북의 각계 인사들과도 접촉하고 대화를 진행한 문익환목사는 4월 2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일군들과 회담을 진행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1. 쌍방은 상치되는 리해와 주장을 넘어 7. 4남북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것을 재확인한다.

2. 쌍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분렬의 지속을 목적으로 하는 《두개 조선》정책을 반대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그리고 통일된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는것을 확인한다.

3. 쌍방은 정치군사회담을 추진시켜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동시에 흩어진 가족문제와 다방면에 걸친 교류와 접촉을 실현하도록 적극 노력한다.

4.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련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5. 쌍방은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은 남북대화와 평화 및 통일의 성취와는 량립될수 없다는것을 확인한다.

6. 문익환목사는 《교차승인》, 《교차접촉》에 대한 북의 거부적립장과 통일의지를 확인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목사가 주장하는 남북교류와 점진적련방제통일제안이 《두개 조선》을 지향하는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7. 쌍방은 우리 민족이 굳게 단결해야 할 필요성과 그 절박성을 통감하면서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며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여 나라의 통일위업실현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한 공동의 념원을 표시하였다.

8.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전민련의 범민족대회소집제안을 지지하고 문익환목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 평양축전에 참가하려는 남쪽청년학생들을 지지하며 쌍방은 그 실현을 위하여 계속 인내성있게 노력한다.

9. 쌍방은 이상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금후 남북사이의 다각적인 공식대화에서 협의의 기초가 될수 있고 가교의 역할을 할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 실천대책을 남북당국과 제 정당, 단체들에 건의한다.

쌍방은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이 민족통일운동사에 기록될 획기적인 쾌거로서 회담당사자들사이에 다같이 유익하였다고 인정하면서 쌍방의 합의의 결과는 나라의 통일을 념원하는 민족적량심을 지닌 남과 북의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였다.

남쪽의 문익환목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대화와 협상을 진행한것은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통일의 출로를 열어보려는 남쪽민중들의 지향을 반영한 의로운 애국적소행이였다.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을 전후하여 남쪽의 각계층속에서는 북과의 접촉과 통일대화의 기운이 급격히 높아갔다.

그러한 속에 1989년 6월 30일 평양에 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고 북의 대학생들과 통일문제를 광범히 협의하였다. 7월 7일에는 전대협을 대표하여 조선학생위원회와 함께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관한 남북청년학생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민심과 대세의 추이가 전민족대단결로 흘러가고있음을 증시해주는것이였다.

○ 조국통일5개방안 제시

북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조국통일을 위한 새로운 방안과 제안들을 련이어 제시하여 분렬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앞당겨오기 위한 활동을 벌려나갔다.

김일성주석께서 하신 1990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사이의 장벽을 마스고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시하며 이를 위하여 남과 북의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과 각 정당 수뇌들의 협상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새로운 획기적인 조국통일방안의 제시가 그것이였다.

이어 북은 1990년 5월 24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5개 조항의 조국통일방침을 제시하였다.

그것을 조항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하여야 한다는것,

둘째로, 분렬의 장벽을 허물고 북과 남사이의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여야 한다는것,

셋째로, 북과 남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는 원칙에서 대외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것,

넷째로, 조국통일을 위한 대화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것,

다섯째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조국통일5개방침은 통일의 주체인 우리 민족의 힘과 지혜를 총발동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일관되여있다.

이것은 민족의 통일념원과 정세발전의 추이를 정확히 반영하고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것은 대세의 흐름이 완화와 군축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있으며 자주위업수행에서는 예견치 않았던 복잡성이 많이 조성되고있는 조건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제기되는 초미의 문제들,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한 전면적이며 완벽한 해명을 준 정당한 방침이였다.

북은 1990년 5월 31일 중앙인민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정무원 련합회의를 열고 조국통일5개방침이 온 민족의 절박한 념원에 맞게 조국통일을 앞당겨 이룩할수 있게 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도로 된다는데 대하여 일치하게 확인하고 그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련합회의에서는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할데 대하여》(《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를 검토하고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새로운 군축제안은 북이 이미 1988년 11월에 내놓은 포괄적인 평화방안을 현실적조건에 맞게 더욱 구체화한것으로서 ▲ 남북신뢰조성 ▲ 남북무력축감 ▲ 외국무력의 철수 ▲ 군축과 그 이후의 평화보장 등 4개 부분으로 되여있다.

북이 제시한 새로운 군축제안이 《한》반도에서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고 철저한 군축을 실현할수 있게 하는 당위적인 평화방안으로 되는 근거로는 군축제안에 남북의 무력을 3단계로 나누어 축감하여 나중에는 10만이하로 유지하도록 하며 군축의 첫 단계에서 모든 민간군사조직과 민간무력을 해체할것을 예견하였다는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긴장격화의 요인을 근원적으로 해소시키는것으로 된다.

새로운 군축제안은 또한 상대방의 주장을 반영한 현실성있는 제안이였다.

남북사이에서 군축과 불가침문제가 론의될 때마다 남쪽당국자들은 항상 신뢰조성문제를 들고나왔다.

새 군축제안은 남쪽당국자들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그것을 군축내용에 포괄시켰다.

북의 새 군축제안은 긴장완화와 평화문제를 가능한 한 민족내부의 힘으로 풀어나가려는 주체적립장에서 출발한 방안이였다.

《한》반도에서 공고한 평화를 실현하자면 3자회담이 열려야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기 전이라도 불가침문제, 군축문제를 남북이 먼저 풀어나가자는것이다.

그리고 미군과 핵무기철거도 남과 북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해결하며 외국무력의 간섭과 개입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철저히 배제하자는것이다.

북의 새로운 군축제안은 그 당위성과 합리성으로 하여 남쪽에서 긍정적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남의 각계층 민중들은 물론 민정당 전 《국회》 특별위원장도 북의 새 군축제안을 접한 자리에서 《북의 불가침선언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군축회담도 조속히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어 남쪽의 통일원 장관까지도 《북의 군축제안이 명확하게 된 조건에서 내각차원의 론의를 거쳐 대응방안을 마련하여야 할것》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북이 제시한 조국통일방안들이 1990년대에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고 련방제방식에 의한 통일국가를 창립하기 위한 겨레의 투쟁을 추동하는 가운데 1990년대 첫해만 하여도 평양과 서울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와 남과 북의 첫 코리아유일팀이 태여나 일본에서 진행된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뽀르뚜갈에서 진행된 제6차 세계청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런가 하면 1990년 10월 18일부터 23일까지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의 막이 오른데 이어 1990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의 사이에 서울에서는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진행되였다.

이로 하여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만천하에 과시한 격동적인 나날들에 온 겨레와 세계량심은 통일된 우리 민족의 모습을 내다보았다.

○ 남과 북, 해외의 3자련대

북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좋게 발전하는 이러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범민족대회를 성사시켜 남과 북, 해외의 3자련대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범민족대회를 소집하려는 기운은 이미 1980년대말에 움터나오기 시작하였다.

남쪽의 민족민주운동세력의 대표적인물들은 1988년 8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추진본부를 발족시키고 범민족대회소집운동을 벌리였다.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들의 범민족대회소집운동에 대하여 지지를 표명하고 그를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대표접촉을 제의하였다. 이에 해외동포들이 적극적으로 합세함으로써 범민족대회가 일정에 오르게 되였다.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속에서도 범민족대회준비가 착실히 추진되고 범민족대회분위기가 높아가는 가운데 남쪽의 전민련대표가 사선을 헤치고 평양에 도착하였다. 일본, 아메리카주, 유럽, 이전 쏘련, 중국 등지의 해외동포들과 총련대표단이 또한 평양에 모였다.

1990년 8월 15일, 조국해방 45돐이고 민족분렬 45돐이 되는 이날에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기 위한 력사적인 회합인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가 겨레의 관심속에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같은 날, 같은 시각 서울에서 열린 범민족대회는 전투경찰들을 동원하여 《원천봉쇄》를 하고 수백명을 체포해가는 남쪽당국의 살벌한 폭압을 물리치는 치렬한 투쟁속에서 진행되였다.

1990년대의 첫해에 성과리에 열린 범민족대회는 남과 북, 해외의 각계각층 동포들의 통일념원을 반영한 력사적인 대화의 마당,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대단결마당이였다.

1990년 8. 15범민족대회는 실제상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의 형성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실정에서 민족대통일전선을 확대공고화하며 조국통일을 위한 남과 북, 해외의 모든 단체들의 활동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상설적인 통일전선체를 내오는 문제가 중요하게 나섰다.

실제적으로 상설적인 전민족적통일전선체를 결성할수 있는 현실적조건이 성숙되고있었다.

남쪽에서 전민련을 비롯한 련합전선체조직들이 나왔고 해외에서도 일본, 미국, 카나다, 프랑스 등 동포민족단체대표들의 참가밑에 《민주민족통일 해외한국인련합》이 결성되여 여러 지역에 지부를 두고 사무국을 설치하여 활동하고있었던것이다.

8.15범민족대회의 성과에 토대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적조직을 내오기 위한 일환으로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는 남과 북, 해외의 통일애국세력의 련합체로서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을 내오기로 결의하였다.

그 실천을 위해 1990년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 남과 북, 해외측 대표들이 참가한 3자실무회담에서는 범민련을 명실공히 전민족적인 통일운동기구로서 결성하기로 합의하고 구체적인 대책들이 토의되였다.

전민족적인 통일기구인 범민련은 《한》반도의 평화보장을 위한 외국군철수, 핵무기철거, 군비무력의 상호감축,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정치적장벽으로 되고있는 《보안법》을 비롯한 제반 악법의 철페, 물리적장벽의 제거를 통한 남북간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실현을 위한 투쟁과업을 내세웠다.

회담에서는 베를린3자실무회담 공동선언문과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베를린3자실무회담의 결의에 따라 1990년 12월 베를린에서 범민련 해외본부가, 1991년 1월에는 범민련 북측본부가, 1995년 2월에는 범민련 남측본부가 결성되였다.

이로써 범민련은 남과 북, 해외측을 포괄하는 전민족적인 통일운동련합체로서의 자기의 면모를 완비하게 되였으며 범민련의 통일운동을 확대발전시킬수 있는 조직적기초가 보다 강화되게 되였다.

1992년 4월 일본 도꾜에서 진행된 범민련 제1차 공동의장단회의에서는 범민련의 기본과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①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와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채택되고 발효된것을 적극 지지환영하면서 그의 성실한 리행을 쌍방당국에 촉구하는 강력한 운동을 전개한다.

② 7천만겨레의 통일념원에 맞게 전민족적인 정치협상회의를 조속히 소집하며 조국통일방도에 관한 전민족적인 합의를 이룩하기 위하여 각 방면으로 노력한다.

③ 범민련의 조직화를 완성하고 대중적지반을 확대하여 민족대단결을 더욱 폭넓게 이룩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한다.

범민련 제1차 공동의장단회의의 결의에 따라 1992년 8월 13일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방도를 확정하기 위한 범민련대표들의 정치협상회의에서는 나라의 통일이 더는 미룰수 없는 지상의 과제이며 통일방도를 확정하는것이 이제 더는 지체할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는데 대하여 의견을 같이하였다.

그리고 통일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련방제형태의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대하여 내외에 천명하였다.

○ 북의 주동적인 유엔가입

북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엔가입을 통해 국제적공간을 리용하여 나라와 민족의 분렬을 영구화, 합법화하려는 남쪽당국자들의 불순한 기도가 명백해진 조건에서 이로부터 초래되는 엄중한 후과를 막고 《한》반도문제를 민족적리익에 맞게 해결하기 위하여 남쪽당국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주동적으로 유엔에 들어가는 획기적인 조치도 취하였다.

만약 남쪽당국이 유엔에 단독으로 가입하는것을 방치한다면 유엔무대에서 미국과 남쪽당국자들이 아무런 구속도 제한도 받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분렬주의적책동을 감행할수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북의 외교부는 1991년 5월 27일 성명을 발표하여 남쪽당국의 《유엔단독가입》책동에 의하여 조성된 일시적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현 단계에서 북이 불가피하게 유엔에 가입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는것을 밝히였다.

그러면서 북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두개 조선》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할것이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엔에서 남과 북이 하나의 국호를 가지고 하나의 의석을 차지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그 실현을 위해 적극 투쟁할것을 선언하였다.

이리하여 북은 160번째 유엔성원국으로 되였다. 남북이 유엔에 따로따로 가입한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조치이다.

북은 외교부성명을 발표하여 북의 유엔가입을 지지환영한 모든 유엔성원국들에 깊은 사의를 표하였다.

그리고 북이 유엔에 가입하였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조선으로 조국과 민족을 통일할데 대한 기본립장에는 변함이 없다는데 대하여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이제 조선의 북과 남이 각각 유엔에 가입한 조건에 맞게 조선의 통일을 다그치기 위한 길이 개척되여야 한다고 인정한다.

유엔가입을 기화로 하여 <두개 조선>으로 나라의 분렬을 고정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방식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것이 현 단계에서 누구에게나 접수될수 있는 가장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승공>과 <적화>도, 북침과 <남침>도 다 용납하지 않는 평화적인 통일방안이다.

이 방안은 국제관계에서 평화와 정의를 수호할 사명을 지닌 유엔의 고상한 목적과도 일치되는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조선인민은 자기들의 정당한 민족적리념이 유엔성원국들의 지지와 동정을 받게 될것이며 오늘은 비록 북과 남이 각각 유엔에 들어가지만 통일된 조선이 유엔에서 하나의 의석을 차지하게 될 날은 반드시 오게 될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상에서 본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실현을 위한 북의 조치와 활동은 하나의 조선을 향한, 조국통일을 위한 북의 투철한 의지와 신념을 강하게 엿볼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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