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4공동성명이 발표되다

 

당시 《뉴욕 타임스》지는 《미국무부 당국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공동성명문안의 어구는 남북조선안의 상반되는 립장을 타협한것으로서 합의된 3대통일원칙이 북조선측 주장을 반영한것 같다.》고 하였다.(《뉴욕 타임스》 1972. 7. 4)

실지로 조국통일3대원칙은 7. 4공동성명에 합의하는 과정에 론난이 있었으나 북의 주도로 합의를 도출하기에 이른다.

조국통일3대원칙이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서의 그 지위와 생활력을 뚜렷이 나타내게 하자면 마땅히 그것을 쌍방의 합의에 기초하여 내외에 선포하는것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남쪽당국은 고위급정치회담에서 조국통일3대원칙을 합의한 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면 남쪽의 각계층속에서 통일열망이 걷잡을수 없이 높아지고 민주세력과 야당들도 저마다 북과의 접촉과 협상을 주장해나서게 될것이 두려웠다.

조국통일3대원칙의 공개를 외면하고 북과의 비밀접촉이나 하는 정도로 지내면서 남북협상을 집권유지의 수단으로 리용하고저 남쪽당국은 공동성명을 외곡하고 그 발표를 지연시키면서 이미 주장해오던 이른바 《단계》론이라는것을 또다시 들고나왔다.

《단계》론은 남과 북사이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절대시하면서 그 상호관계를 화해할수 없는 적대관계로 보는데로부터 체제의 통일이 없이는 민족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반통일론이다.

그들은 통일은 《인도적단계》(서신거래와 같은 인도적교류실현), 《비정치적단계》(경제, 문화교류실현), 《정치적단계》(남북정치협상을 하여 통일문제를 해결) 등을 거쳐야 론의될수 있다는것을 주장하면서 통일문제는 《100년전쟁을 치르듯》이 서서히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하였다.

결국은 《단계》론이 본질에 있어서 시간을 얻어 《실력을 배양》하며 《승공통일》을 하자는것이며 종당에는 《한》반도의 분렬상태를 고착시키자는것이나 같았다.

이런 형편에서 공동성명이 세상에 발표되기까지는 많은 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고위급정치회담에서 북측은 이미 합의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조국통일문제해결에서 공동의 강령으로 삼을데 대한 문제와 민족공동의 상설적협의기구로서 남북조절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문제 그리고 쌍방의 합의사항을 공동성명의 형식으로 발표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남측은 이러한 북의 제의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합의사항을 공동성명으로 발표하는 문제는 《내부사정》때문에 곤난하다고 함으로써 두번째 고위급정치회담에서 공동성명발표문제는 합의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남측이 공동성명의 성격을 공식적인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 아니라 개인들사이의 합의문서로 만들며 조국통일3대원칙을 밝히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당치않은 문제를 조항에 포함시키고 분렬지향적인 저들의 이른바 《단계》론을 조문화하려고 한것과 관련되였다.

판문점에서 진행된 접촉에서 북측대표는 남쪽당국자들이 이미 합의한 약속을 외면하고 비밀접촉이나 하면서 무한정 시간을 끌려고 하는 지연전술에 매달려 공동성명발표에 제동을 거는 배신행위를 단죄하였다.

그리고 남쪽당국자들이 있지도 않는 《남침위협》을 구실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일애국인사들을 탄압하며 반공소동을 벌리고있는것은 나라의 통일을 방해하는 범죄행위라고 규탄하면서 공동성명의 발표를 촉구하였다.

북측의 공세에 남쪽당국자들은 6월 하순에 이르러 공동성명의 문안토의를 위한 련락대표를 파견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으며 1주일후에는 판문점에서 위임을 받은 쌍방 련락대표들사이에 남북공동성명에 대한 가조인이 진행되였다.

1972년 7월 4일 드디여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력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이 평양과 서울에서 동시에 발표되였다.

7. 4공동성명의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리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2. 쌍방은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으며 크고작은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충돌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3.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련계를 회복하며 서로 리해를 증진시키고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4. 쌍방은 지금 온 민족의 거대한 기대속에 진행되고있는 남북적십자회담이 하루빨리 성사되도록 적극 협조하는데 합의하였다.

5. 쌍방은 돌발적군사사고를 방지하고 남북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직접 신속정확히 처리하기 위하여 평양과 서울사이에 상설직통전화를 놓기로 합의하였다.

6. 쌍방은 이러한 합의사항을 추진시킴과 함께 남북사이의 제반 문제를 개선해결할 목적으로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7. 쌍방은 이상의 합의사항이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념원에 부합된다고 확신하면서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리행할것을 온 민족앞에 엄숙히 약속한다.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 4공동성명의 발표는 우리 나라의 남과 북에 두 체제가 객관적현실로 굳어진 시점에서 채택된 공식문서이다.

그것은 체제의 상극관계를 서로 용납하는 관계로 전환시키고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길을 명시한것이라 할수 있다.

7. 4성명이 밝힌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세가지 원칙은 남의 나라 방식이 아닌 우리의 방식으로 조국통일을 성취할수 있는 길을 제시한 명제인것이다.

온 민족앞에 엄숙히 선언한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 4남북공동성명의 발표는 통일문제해결에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이 아닐수 없었다.

▲ 남북의 장벽에 파렬구를 내고 우리 민족앞에 통일의 밝은 전망을 열어주었다.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의 발표로 우리 민족은 민족분렬후 처음으로 하나의 합의된 원칙과 견해를 가지고 통일을 위해 공동보조를 맞추어나갈수 있는 통일강령을 갖게 되였다.

통일의 대강령이 탄생하게 된것은 남북대립이 화합으로 이어질수 없으리라고만 생각해오던 사람들의 의식구조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동시에 사람들을 통일의 환희와 격정속에 통일의 밝은 래일을 그려보며 통일운동에 분기하게 하였다.

▲ 7. 4남북공동성명의 발표는 오래동안 지속된 남북간의 통일정책의 대결에서 자주로선의 승리를 의미하는것이였다.

통일문제해결에서 자주냐 외세의존이냐, 평화통일이냐 무력통일이냐, 민족대단결이냐 남북대결이냐 하는 문제는 통일정책의 근본출발점으로 되였다.

북은 분렬된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시종일관하게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해결할것을 주장하였으며 이 원칙을 구현하는 통일방안들을 내놓고 일관한 노력을 기울였다.

남북고위급정치회담을 계기로 남쪽이 북쪽의 조국통일3대원칙에 동의하고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된것은 지금껏 민족통일의 자주적궤도를 개척해온 북측의 통일정책의 정당성과 통일노력의 진지성이 가져다준 열매였다. 동시에 남쪽당국자들로 하여금 외세의 편에서 민족의 편으로 돌아설수 있는 길을 열어준 중대한 사변이였다.

▲ 나라의 영구분렬을 추구하는 제국주의자들과 국제반동세력에게 타격을 주었으며 자주를 지향하는 세계 진보적인류에게 고무를 주었다.

제국주의와 반동세력들이 저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제아무리 강권을 휘둘러대며 다른 나라들의 자주권을 침해해도 자주성을 위한 인류력사발전의 흐름은 절대로 돌려세울수도 멈추어세울수도 없다는 철리를 깊이 새겨주었다.

이렇듯 조국통일의 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남북공동성명의 발표는 통일운동사에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사변이였다.

분렬의 비극과 설음을 겪고있던 온 민족을 격동시킨 이러한 사변으로 하여 삼천리강토는 조국통일의 새로운 열정으로 들끓었다.

남쪽 각계층은 분렬의 장벽이 한꺼번에 무너지는것을 보는듯 《조국통일3대원칙에 대한 합의 및 발표는 우리 민족의 자랑일뿐아니라 그 민족적긍지를 세계에 그대로 보여준것》이라고 하였다.

해외동포들속에서도 7. 4공동성명에 대한 반향이 일어났다.

해방후 처음으로 일본의 총련산하 동포들과 민단산하 동포들이 공동으로 7.4공동성명을 지지하는 대회를 가진것을 비롯하여 일본의 많은 지방들에서 단체와 소속의 차이를 초극하여 총련과 민단의 각급 기관과 계층별단체들의 공동모임들이 진행되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힘을 합칠것을 다짐하였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 국가수반들과 국제민주단체 지도자들, 세계 각국의 사회계, 정계인사들 그리고 국제기구들도 공동성명을 지지하여 축하편지와 담화와 성명을 발표하였다.

편지와 성명, 담화 등으로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와 환영을 표시한 나라와 국제기구의 수가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후 5일간에만도 40여개에 이르렀으며 세계 중요통신들이 날린 보도와 론평이 100여건에 달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7. 4공동성명이 가지는 세계적인 견인력을 실감하게 한다.

《뉴욕 타임스》지가 정평을 가하였듯이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 4공동성명의 발표로써 조국통일의 근본초석이 마련된것은 분명 북의 폭넓은 남북정치협상방침과 자주적평화통일로선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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