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6. 15 력사의 그날이여

 

력사적인 4. 8남북합의서발표이후 온 민족은 격정과 기대속에 평양상봉의 그날을 기다렸다.

남쪽의 각 정당, 사회단체인사들이 평양상봉을 환영하는 담화, 성명을 발표하였고 모임도 가지였다. 4월 13일 아침 이남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남북수뇌회담을 통하여 《55년 불신과 대립의 력사를 뛰여넘어 민족사적전환점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념원한다.》고 밝혔다.

극우보수정당인 《한나라당》까지도 대세에 밀리워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원》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6월 13일을 앞두고 서울에서 7천여명 시민들의 참가하에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들의 겨레대합창축제》가 열린것을 비롯하여 남쪽의 각지에서 경축행사들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11일 이례적인 축하성명을 발표하여 《전세계인들과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민족의 대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분렬의 아픔을 안은채 55번째 년륜을 새기고있던 삼천리조국강산이 통일의 열풍으로 끓어번질 력사의 순간이 바야흐로 다가오고있었다.

드디여 2000년 6월 13일 오전 남쪽《대통령》의 일반수행원들과 기자 114명을 태운 비행기가 평양비행장에 먼저 착륙한데 이어 남측당국자일행이 탄 《보잉-747》전용기가 서서히 내리였다.

10시 35분 환영군중이 터쳐올리는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과 환영곡이 하늘땅을 진감하는 가운데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비행장구내에 나오시였다.

그 시각 비행기안에서 남측 의례관계자를 통해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마중 나오신것을 알게 된 남측당국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하여 한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남측당국자와 뜨겁게 포옹하시고 굳은 악수를 나누시였다.

그분께서는 남측당국자와 함께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명예위병대를 사열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남측당국자와 함께 타신 승용차는 모터찌클의 호위를 받으면서 수십여만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환영일색으로 단장한 중심거리들을 돌아 숙소로 정해진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였다.

백화원에 이르신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숙소의 홀에서 먼저 김대중《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신데 이어 그들내외 그리고 공식수행원들과 각각 기념촬영을 하시였으며 그들과 함께 응접실에 들어가시여 담화를 하시였다.

6월 14일 오후 백화원 영빈관에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사이에 력사적인 단독회담이 진행되였다.

민족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수뇌분들이 마주앉아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장래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상론하는 력사적인 회담이였다.

남측당국자는 《평화정착》이요, 《경제협력》이요 하면서 이미 베를린선언이라는데서 언급한 《제안》을 되풀이하는 준비된 발언을 길게 하였다.

남측당국자의 발언을 인내성있게 다 들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그것은 이미 보내온 《친서체계》에 다 있는 내용들이라고 하시면서 2000년대를 맞이하는 첫해에 우리가 처음으로 상봉하는것만큼 7천만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락관을 주는 선언적인 문건을 하나 내놓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이어 선언적인 문건에 담을 자주통일사상과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을 철의 론리로 펴나가시였다.

그분께서는 첫째로, 이번에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2000년대에 우리 민족끼리를 공동의 리념으로 하여 나라의 통일을 민족자주적으로 실현한다고 천명하자는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오늘 우리들사이에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데 합의했다고 문건에 밝히자고 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둘째는 련방제문제이라고, 북과 남의 두 제도, 두 체제를 그대로 두고 련방제통일을 지향하되 당면하여 이번 선언에서는 낮은 형태의 련방제문제를 담자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분께서는 남쪽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련합제》와 우리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가 같기때문에 호상 협의해서 하기로 했다, 이렇게 선언에 밝히자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셋째로, 당국대화를 개최하고 련방기구를 내올데 대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남사이에 경제, 사회문화, 인도적문제도 풀어나갈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사리정연하고도 애국애족적인 주장앞에서 남측당국자는 시종 깊은 리해와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분께서는 이제 공동선언이 나가면 아마 세상이 또 한번 놀랄수 있다고, 북과 남이 민족주체를 찾았다고 할것이라고, 바로 우리 민족끼리 한다는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말에 방점이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분께서는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평양상봉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시고 흩어진 가족, 친척문제와 함께 인도적문제의 테두리안에서 해결하도록 하시였으며 단독회담과 회담이 끝나고 남측당국자와 목란관연회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그리고 연회도중에 상론하시여 결말을 보시였다.

남북수뇌분들사이의 단독회담은 무려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였다.

그리하여 공동선언문에 대한 남북쌍방의 최종합의가 이룩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통해서 채택발표된 6. 15공동선언은 머리글에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념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이 평양에서 력사적인 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을 가졌다고 명기함으로써 평양상봉과 남북최고위급회담이 민족의 념원인 조국통일문제를 론의하기 위해 진행되였다는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통해서 채택발표된 6. 15공동선언의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2.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북측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과 남측의 련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

3. 북과 남은 올해 8. 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4. 북과 남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5. 북과 남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안에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우에서 명백하게 지적하고있는바와 같이 5개 항목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6. 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핵으로 하고 겨레의 장래운명을 결정하는 다섯가지 개념 즉 민족자주, 조국통일, 민족화해, 상호협력과 교류, 대화로 그 내용을 집약할수 있다.

6. 15공동선언의 채택발표는 민족분렬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 세기는 통일민족사가 펼쳐지게 될 력사의 새시대라는것을 온 세상에 선포한 민족적쾌거였다. 그것은 공동선언이 온 겨레의 통일념원을 반영하여 우리 세대에 반드시 조국통일을 성취할수 있는 통일의 근본리념과 원칙, 실현방도를 뚜렷이 밝혀주고있기때문이다.

특히 공동선언에 명기된 5개 항목중에서 제1항인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가 가장 중요한, 기본을 이루는 항목이다. 왜냐하면 이 조항에 공동선언의 기본정신과 본질적인 의미가 집약적으로 담겨져있기때문이다.

그러면 6. 15공동선언에 관통된 기본정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자.

일반적으로 기본정신이라고 하는것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 리론의 기초와 근본으로 되는 사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은 선언의 기초와 근본을 이루는 사상 즉 근본핵을 의미한다.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은 조국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남과 북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것이다.

다시말하여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여 통일문제해결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간다는것으로서 이것은 곧 민족자주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동선언은 민족자주의 원칙을 중핵으로 한다는것을 말해준다.

민족자주의 원칙은 조국통일의 근본원칙이다. 자주의 원칙이 근본원칙으로 되는것은 우리 민족의 분렬이 전적으로 외세인 미국에 의해 초래되였으며 오늘까지 분렬이 지속되고있는 원인이 또한 미국이 남쪽땅을 정치군사적으로 간섭, 지배하고있기때문이다.

재삼 강조하건대 8.15후 미군이 우리 나라의 38°선 남쪽을 강점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는 애당초 분렬되지도 않았을것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자주권이 침해받고 유린당하지도 않았을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분렬을 강요한 외세는 결코 통일을 고스란히 선사하지 않는다. 이것은 력사적사실에 의해 립증되였으며 공동선언발표이후에 나타난 반통일적인 책동을 보아도 명백한것이다.

통일은 누가 선사해주는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여 우리 민족스스로가 이루어내야 할 민족적과제라는것은 분렬력사가 실증해주고도 남는다. 외세의존이나 외세의 간섭을 용납하는 통일이란 있어서도 안되며 오직 민족의 자주적인 력량에 의해 이루어지는 통일만이 겨레의 의사와 요구에 철저히 부합되는 통일로 될수 있다.

자주의 원칙을 구현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통일을 이룩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인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공동선언 제1항에 명기된 민족자주의 원칙은 철저히 외세의존, 외세의 간섭을 배제한 원칙이다.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배격하는것은 우리 겨레의 하나같은 립장이며 통일을 지향하는 남쪽동포들도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있고 주《한》미군철수운동을 보다 대중적으로 벌리고있는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6. 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하자는 숭고한 의미로 하여 온 겨레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은 물론 세계 진보적인류의 지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남쪽의 정계, 사회계, 학계, 종교계가 앞을 다투어 공동선언에 지지를 표시하였다.

당시 남쪽의 집권당이였던 민주당은 공동선언이 발표되자 즉각 《이번 합의문은 남북정상들이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론의하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공동선언에 합의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대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평하였다.

야당인 자민련대변인은 《반세기의 분단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초석을 쌓았다.》고 지지립장을 밝혔다.

남쪽의 언론들도 남북공동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환영하면서 그 력사적의미를 대서특필하였는데 그 몇가지를 보면 아래와 같다.

《… 통일문제의 자주적해결, 남북통일방안의 공통점모색, 리산가족상봉과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 및 당국간 대화계속 등 5개 항은 <우리도 할수 있다. 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것도 비공개장소에서의 은밀한 합의가 아니라 생방송으로 전세계, 온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룩한 합의이기때문에 그 약속이 더욱 값지다. 이제 남북관계는 한개의 큰 산을 넘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이런 정도의 합의를 도출해낸것은 수뇌회담의 력사에서 일찌기 없었던 일이다.》(《동아일보》 2000. 6. 15)

《6. 15남북공동선언의 채택으로 남북은 반목과 대립, 대결로 지나온 불행과 과거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협력에로 나아가 통일로 이어지는 디딤돌을 마련했다.》(《경향신문》 2000. 6. 16)

《이번 공동선언에서 무엇보다 충격으로 다가온것은 바로 1항의 <자주>라는 표현과 2항의 통일방안일것이다.

누구도 남북정상이 첫 만남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 통일방안을 합의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시사져널》 2000. 6. 29)

《남북의 두 지도자가 만나 자리를 함께 한 날은 2박3일에 불과했다. 55년만의 만남치고는 너무 아쉬울만큼 짧은 시간이였다.

그러나 그사이에 <평양대특급>이라 할만 한 세기적작품을 성공리에 완성시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평양대특급>은 <21세기의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청산하는 동시에 랭전시대를 최종 마무리하는 기념비적작품이였다.》(《월간중앙》 2000. 8)

전세계도 벅적 끓어번졌다.

중국공산당 강택민총서기는 6월 16일 김정일국방위원장앞으로 축하전보를 보냈으며 로씨야의 뿌찐대통령도 그분께 축하의 뜻을 담은 친서를 보냈다.

180여개 나라의 국가 및 정부 수반들과 정당, 단체 책임자들은 《세계를 진감시킨 특대사변》, 《김정일각하의 애국애족의 대용단이 낳은 빛나는 결실》, 《조선통일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놓고 조선민족앞에 화해와 단합의 문을 열어놓은 결정적계기》로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표시하였다.

세계가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을 지구에 던진 《평양의 통일핵폭탄》으로 묘사한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였다.

이렇듯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고 6. 15공동선언이 채택됨으로써 남북관계발전과 통일실현을 위한 길에서는 새로운 전환적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통일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력사적인 사변으로서의 중대한 의미를 새기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