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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련화봉우에서 금빛해살을 뿌리고있었다.
조문광을 정문까지 바래주고난 최주식은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 녀서기가 가져온 문건들에 결재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문건들을 깐깐히 보며 수표를 거의 끝내갈무렵 문두드리는 소리가 가볍게 났다.
《들어오시오.》
최주식의 대답에 이어 문이 열리더니 사복을 한 서른안팎의 내무원 김창준이 들어왔다. 김창준은 문가에서 절도있게 인사를 하더니 《지배인동지, 좀 조용히 만날 일이 있어 왔습니다.》하고 낮으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앉으시오.》
최주식은 자기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김창준은 최주식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최주식은 잠간만 기다리라고 이른 후 보던 문건을 마저 보고 수표를 했다.
그가 초인종을 누르니 키가 쑥 빠지고 얼굴이 해사하게 생긴 녀서기가 들어왔다.
《서기동무, 손님이 오거든 대기실에서 좀 기다리라고 하시오. 그리고 내 방으로 오는 전화를 그쪽으로 돌리고…》
최주식은 결재한 문건을 내밀며 지시했다.
《알겠어요.》
녀서기는 쟁반에 은구슬을 굴리는것 같은 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사쁜사쁜 걸어나갔다.
《그래 무슨 일이요?》
최주식이 웃으며 친절히 묻자 김창준은 삼면쟈크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였다.
《지배인동지, 선박완성부직장장을 하던 홍학주를 체포했기에 그 소식을 알려드리자고 왔습니다.》
《체포?》
최주식은 체포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김창준은 지난밤에 있은 일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새형의 선박이 완성되여가자 홍학주는 망책의 지령에 따라 기관옆에 폭약을 설치하고 배관에는 걸레를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래전부터 그놈의 뒤를 미행하던 김창준은 폭약을 해제하고 걸레를 배관에서 뽑아냈다.…
《지배인동지, 그놈의 본명은 주달수이고 출생지는 갑산입니다. 놈의 애비는 왜놈때 갑산에서 악착하기로 소문난 목재상 주수웅(친일분자입니다)인데 달수놈은 수웅의 맏아들입니다. 놈은 함흥에 있던 영생중학교를 나온 후 일하기가 싫어 전국을 싸다니며 술과 계집질을 일삼다가 황주 대지주의 둘째딸인 오매월(본명은 홍인숙입니다)년의 기둥서방이 되였습니다. 놈들은 해방후 남쪽으로 도주하여 석도훈련소에도 얼마간 있었습니다. 일시적후퇴시기 홍학주는 〈치안대〉완장을 끼고 돌아쳤으며 미국놈들이 쫓겨가자 리력을 기만하고 조선소에 기여들었습니다. 년놈들은 뢰물과 권모술수, 아첨으로써 강준호와 허홍대를 손아귀에 거머쥐였습니다.》
김창준은 태풍이 부는 날 현도장지붕이 날아가게 음모를 꾸민것도 그놈들이고 류선화가 조선공들의 건강을 위해 애써 만든 보약에 독을 친것도 그놈들이 한짓이며 도면의 수자 8을 3자로 고쳤다가 남모르게 다시 8자로 고쳐 선수상갑판오작을 내게 한것도 그놈들의 행위라고 했다. 그리고 류언비어를 퍼뜨려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한것도 그놈들의 작간이며 현도장사고를 계기로 조문광에게 최주식을 철직시켜야 한다는 무기명편지를 써보낸것도 그놈들이라고 했다.
《놈들의 정체와 망책을 비롯한 선들을 발가냈기에 두어둘 하등의 필요가 없으므로 체포했습니다.》
최주식은 김창준의 말을 듣고 너무 분개하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앞에는 혁명적인 언사를 써가며 목청을 높이기도 하고 갑삭거리기도 하던 홍학주놈의 흉물스런 곰보낯짝이 얼핏 스쳐지났다.
《창준동무, 정말 수고했소.》
《수고는 무슨 수고겠습니까. 저희들이 할 일을 했을뿐인데요.》
김창준은 서류를 가방에 넣자 곧 자리를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