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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인동지. 수고스럽지만 여기 내려와 판결을 좀 해주십시오. 이 쇠바줄과 기중기와이야로쁘로 기관을 들어올릴수 있겠는가 없겠는가를 말입니다.》

기관을 싣고온 둔중한 《자주》호의 부르릉거리는 소리, 기관과 《자주》호를 둘러싼 제관공, 조립공, 도장공, 배관공, 용접공들의 청높은 웃음소리, 기쁨에 넘쳐 떠들썩 고아대는 굵고 가는 말소리를 짓누르며 연공반장 김성환의 갈린듯 한 목소리가 배우에 선 최주식에게로 날아왔다.

조문광, 리윤종이들과 함께 자동차적재함우에 놓여있는 덩치가 큰 기관을 주의깊게 내려다보고있던 최주식은 쇠사다리를 타고 배밑으로 내려오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연공반장동무가 나보다 더 잘 알게 아니요.》

보통키에 어깨가 쩍 버그러져 무척 단단해보이는 김성환은 빙그레 웃는 최주식에게 능청스럽게 눈을 슴뻑거렸다.

《원참, 지배인동지두. 그러지 말구 어서 좀 봐주십시오. 제 생각엔 이 와이야로쁘로 기관을 닁큼 들어올릴수 있을것 같은데 기사장동지는 힘들것 같다는겁니다.》

최주식은 김성환이와 리억석을 번갈아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이것참 힘든 판결이군. 옛날 무능하기 짝없는 시골 원처럼 재판을 할수도 없구.》

그 말에 조문광과 리윤종은 물론 기관주위에 촘촘히 어깨 울바자를 치고있던 조선공들이 가볍게 웃었다.

리억석의 머리에는 문득 옛날 시골 원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한 포수가 앓는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려고 한달이나 신고하던 끝에 오석산에서 중소만 한 범을 한마리 잡았다. 그런데 백성의 등을 쳐먹는데 이골이 난 서울 아전놈이 놀러 내려왔다가 그 범을 뺏으려들었다. 포수는 너무나 억울하고 통분하여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다음날 새벽 일찌기 원을 찾아가 송사를 했다. 원은 포수와 서울에 사는 아전을 대청에 불러다놓고 어찌된 사연이냐고 물었다. 포수가 땅에 넙죽 엎드려 울며 하소연했다.

《원님, 로모가 앓고있어 약값을 마련하려고 수십일이나 산속을 헤매다가 운이 틔여 큰 범을 한마리 잡았소이다. 한데 그 범을 서울에 있는 이 어른이 제것이라고 하면서 뺏으려 합니다. 소인은 범을 잡은 사람이 임자인줄로 알고있소이다.》

《옳거니. 범은 응당 잡은 사람이 임자구말구. 그러니 그 범은 마땅히 네가 가져야 할것이로다.》

시골 원의 호기넘친 말에 포수는 가슴가득 차오르는 기쁨을 금할수 없어 노래기 회쳐먹을 서울 아전놈을 슬그머니 곁눈질해보며 어깨를 추슬렀다. 이번엔 아전이 입을 열었다. 《원님, 오석산은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우리 집안의 명산이옵니다. 우리 홍씨의 분묘가 있는 산의 범이니 그 범의 주인은 저인줄로 아옵니다.》

원은 머리를 크게 끄덕거렸다.

《옳거니. 산이 그 집의 산이니 그 산의 범은 그대의것이 분명하도다.》

리억석의 생각은 김성환의 말에 끊어졌다.

《지배인동지, 량쪽이 다 옳다는 시골 원처럼 판결하지 말고 원칙적립장에서 제발 잘 좀 봐주십시오.》

《허허… 그러기요.》

최주식은 중량물인 기관을 비끄러맬 쇠바줄과 기중기의 와이야로쁘를 깐깐히 살펴본 후 그 견인력을 머리속으로 얼른 계산해보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장동무의 말처럼 쇠바줄은 일없겠소. 한데 성임동무가 무거운 이 기관을 꽤 들어내겠는지가 걱정되누만. 전번 협의회때는 들겠다고 장담을 했는데…》

김성환이 어깨를 으쓱거리고 리억석이 빙그레 웃는데 빨간 머리수건을 쓰고 탑식기중기의 운전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박성임이가 챙챙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배인동지. 한가지 물어봐도 일없겠어요?》

《괜찮소. 어서 물어보오.》

최주식이 머리를 뒤로 제끼고 박성임을 올려다보며 시원스레 대답했다.

《력기선수들은 자기 몸무게보다 배나 되는 구환을 어떻게 들어올리나요?》

최주식은 처녀의 물음이 자못 뜻밖인듯 뒤더수기로 손을 가져가며 껄껄 웃었다. 모여선 사람들도 유쾌하고 명랑하게 웃는다.

《거 기중기운전공처녀가 보통이 아니구만. 지배인동무를 쩔쩔매게 만드는걸 보니말이요.》

조문광은 이렇게 말하면서 최주식의 곁으로 왔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춰 《지배인동무, 기중기로 기관을 들어올릴수 있겠소?》하고 걱정했다.

《상동지, 근심마십시오. 성임동무가 너무 긴장해있는것 같아 마음을 늦궈주느라고 한마디 한겁니다. 이미 제가 연공들을 시켜 기중기팔 반대쪽에 5톤의 중량물을 매달아놓았습니다. 기중기 발통도 레루에 비끄러매구요.》

최주식은 조문광을 안심시키고나서 박성임을 다시 쳐다보았다.

《성임동무, 내 소원을 풀어주면 동무의 그 물음에 기꺼이 대답하겠소.》

박성임의 까만 눈은 머루알처럼 동그래졌다.

《무슨 소원입니까?》

《기중기에 앉아 수리개처럼 푸른 하늘을 한번 날아보고싶어 그러오.》

《아이참, 그쯤한 소원이야 못풀어주겠습니까?》

박성임은 최주식이 소원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말에 그 어떤 힘든것으로 여겼다가 고작 기중기에 앉아 흰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을 날고싶다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가벼워져 깔깔 웃었다.

《좋소. 약속했소.》

《약속했어요.》

조선공들은 최주식의 말이 롱말이려니 여기였다. 그것은 조문광이도 리윤종이도 리억석이도 마찬가지였다. 최주식이 기중기에 앉아 맑게 개인 푸른 하늘을 수리개처럼 난다는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최주식의 말은 롱말이 아니라 진담이였다. 연공반장 김성환이 기관의 동체를 맨 쇠바줄을 기중기갈구리에 걸고 박성임이더러 들라고 신호할 때 최주식이 기중기발판을 밟으며 날쌔게 우로 올라가기때문이였다.

《아니. 지배인동지,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어서 내려오십시오.》

김성환은 물론 눈이 둥그래진 조선공들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만류했다.

《지배인동무. 내려오오. 그게 무슨 짓이요.》

조문광이도 소리쳤다.

《전 이미 성임동무와 약속을 했습니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최주식을 바라보는데 박성임이 다시금 소리내여 깔깔 웃는다.

《좋아요. 지배인동지의 소원을 풀어드리겠어요. 하늘을 날다가 무서워 내려가겠다고 하지 마세요.》

《무서우면 내려가야지뭘.》

《그건 안돼요.》

박성임은 최주식이 엉너리를 부리자 다시금 까르르 웃으며 권양스위치를 넣었다. 윙- 소리를 내더니 기중기팔에 드리운 와이야로쁘가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이어 기관동체가 서서히 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배인동지, 일이 잘못되면 로동안전규정을 위반한 처벌을 받을줄 아십시오.》

김성환이 얼굴이 꺼매서 을러멨다.

《그러겠소.》

최주식은 운전칸우로 올라가며 흔연스레 대답하더니 박성임을 보며 싱글거렸다.

《아니, 지배인동지. 운전칸으로 들어오십시오. 위험합니다.》

《허허. 일없소. 지배인이 어떻게 운전공과 같이 앉겠소. 지배인이야 어디까지나 지배인이지. 회의할 때도 보오. 주석단에만 앉군 하는걸.》

그리고는 슬쩍 말꼬리를 돌리였다.

《성임동무, 이거 정말 하늘을 나는 쾌감이 이만저만 아니구만. 〈하늘나라〉에 사는 동무가 정말 부러운데…》

박성임은 그의 말에 응하는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기쁨을 여기선 느끼게 된답니다.》

조문광은 가슴이 뭉클했다.

최주식이 기중기운전칸우에 올라가면 위험하다는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성임이에게 신심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 저 기중기칸우에 올라가 천연스레 웃으며 말을 걸고있는것이 아닌가. 사람이 어쩌면 저리도 자기의 몸은 생각지 않고 오직 사업만을 귀히 여길가.

그것은 비단 조문광의 느낌만이 아니였다. 그의 옆에 서서 최주식이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런 심경에 잠겨있었다.

《성임동무, 하늘에 오르니 땅우에 서있는 사람들이 모두 난쟁이처럼 보이는구만.》

《호호… 지배인동지두. 그야 응당하죠 뭐.》

《동무도 날 그렇게 보군했겠구만?》

《그래요.》

《그러면 안되겠는데. 자기네 지배인을 난쟁이처럼 보며 좋아하다니…》

최주식은 박성임이 긴장해할가봐 자꾸만 말을 붙였다. 그러는사이 하늘로 곧추 솟아오른 기관본체는 빙그르르 돌아 갑판우에 잠시 멈춰섰다가 배안으로 서서히 내려지기 시작했다.

《멋진 비행을 했군. 성임동무, 정말 고맙소.》

최주식은 박성임을 보며 치하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깔깔거리며 밝은 낯으로 웃고있던 처녀의 눈가에는 맑은 이슬이 그렁하니 고여있는것이 아닌가.

《?》

최주식이 눈을 슴벅이는데 박성임이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지, 고마와요. 하지만 저에게 다시는 그런 약속을 하자고 하지 마세요.》

《!》

최주식은 불시에 눈굽이 달아올랐다. 몸매는 비록 작고 체소하지만 얼마나 속이 깊고 옹골찬 처녀인가. 자기의 마음을 이미 환하게 들여다보고 약속을 지켜준 성임이였다. 지난날 제관공들과 배관공들, 조립공들과 용접공들이 저마끔 제 할 일감을 먼저 들라고 윽박지른다면서 기중기운전공을 못하겠다고, 그러니 다른 직종으로 제발 옮겨달라고 울며불며 찾아다니군 했다던 그런 성임이가 아니였다. 이제는 조선공으로 당당히 자란 처녀, 그 어떤 광풍이 몰아쳐와도 바다기슭을 힘있게 날아예는 억센 갈매기!

최주식은 성임에게서 눈길을 떼고 기관을 들여놓자마자 조립을 다그치는 기관조립공들과 상갑판을 놓기 위해 분주히 서두르는 김석홍, 강준호, 류경훈, 윤재수들을 비롯한 제관공, 용접공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조문광이 최주식을 불렀다. 그는 최주식을 방파제로 데리고가더니 낮으나 엄한 목소리로 추궁했다.

《지배인동무, 숱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처신하는 법이 어디 있소. 내 겉으론 웃고있었지만 속으론 진땀을 뺐소. 선박공업을 떠메고나가는 기둥이 잘못될가봐서말요.》

최주식은 자기를 끔찍이 아껴주는 조문광의 마음을 깊이 느끼자 머리를 숙이였다.

《상동지, 죄송합니다. 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조문광은 최주식을 미더운 눈길로 이윽히 바라보다가 선박건조에서 제기되는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한데 사고가 드문드문 일어나는게 수상합니다.》

《당위원장동무한테서도 그런 얘길 들었소. 새형의 배를 뭇고있으니 나쁜 놈들이 바스락거릴수도 있소. 교시선박건조가 마감고비에 이르렀는데 바싹 경각성을 높여 일하오.》

《그러겠습니다.》

갈매기들이 끼륵거리며 유유히 날아예는 수평선 저 멀리에서 어깨를 겯고 늠실늠실 밀려온 누런 바다물이 방파제에 부딪치며 하얀 포말을 사방으로 날리였다.

그들은 물결을 헤가르며 먼바다로 기운차게 내달리는 배들과 풍어기를 휘날리며 포구로 들어오는 어선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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