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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실이나 부기실, 기요실이나 기술준비실, 야금실이나 기술발전실에 비해 배나 크고 넓은 기사장방은 2층 동쪽으로 면한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여느 일군들의 방처럼 책상은 T형으로 놓였고 벽에는 쏘파와 개인용의자들이 줄느런히 놓여있었다. 창턱밑에는 두메터가 실히 되는 고무나무가 커다란 오지화분에서 가지를 활짝 펼치고 푸르싱싱한 기운을 풍기고있었으며 창턱에는 뱀꼬리선인장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선인장이 보기 좋게 자라고있었다. 방의 한쪽 모서리에 놓인 긴 탁자우에는 《신흥호》로부터 《2척기선저예망선》에 이르기까지 조선소의 선박건조력사를 실증해주는 배모형들이 의젓하게 자리잡고있었다.
까만 모직으로 만든 단추 다섯알박이의 닫긴 옷을 단정히 입고 커다란 량수책상이 놓인 자기 자리가 아니라 앞상에 마주앉아 무득히 쌓인 문서중에서 하나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최주식은 후끈한 방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웃단추를 두개 벗겨놓았다. 그리고는 재털이옆에 놓인 《건설》 한대를 꺼내 입에 붙여물고 다시 문서에 눈을 주었다. 금년도 월별계획과 수행정형에 대한 자료였다. 최주식은 그 자료를 다 보고나자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내였다. 그것은 최근 몇해동안이 그러한것처럼 금년도 역시 여름철과 겨울철의 배무이실적이 시원치 않은것이였다. 그중에서도 선체가공직장과 선박완성직장이 더하였다. 아마도 선체나 완성직장들이 로천에 있어 계절적영향을 받아서일것이다. 하지만 건물안에 있는 주물이나 단조, 기계나 동력직장들의 생산감퇴는 어디에 기인되는것인가. 물론 모든 사물이 서로 련쇄되여있고 한 고리가 튀면 다른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선체나 완성은 배무이공정중에서도 제일 마감공정인 까닭에 앞의 공정에 크게 영향을 미칠것은 못되였다.
그렇다면?
최주식은 담배연기를 깊숙이 들이켰다가 길게 내뿜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기창을 열고 어둠이 깃드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밤하늘에 일찍 뜬 별들이 그에게 머리를 좀 쉬라고 속삭이듯 깜빡거린다. 하지만 사색을 중단할수가 없었다. 그는 뒤짐을 지고 넓다란 방안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혹시 조선공들의 드높은 열의에 지도일군들의 사업조직이 안받침되지 못하는것은 아닐가.
그의 눈앞엔 구내도로의 폭이 좁아 생산에 지장을 주는것은 고려함이 없이 배무이에만 열을 올리고있는 리억석의 모습이 바람같이 스쳐지났다.
그때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중키에 체격이 알맞춤한 계획지령장 주병삼이 반메터쯤되는 길이의 네칸으로 된 나무함을 들고 들어 왔다.
그것을 보자 최주식의 무겁던 머리는 좀 거쁜해졌다. 그는 나무함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대패질을 매끈하게 하고 노란색 라크칠을 한 나무함은 보기에도 산뜻했다.
《아주 잘 만들었구만. 수고했소.》
최주식은 입가에 만족한 웃음을 띠웠다.
《그게 뭐, 품이 드는겁니까. 의장품직장의 오동무가 몇분간에 제꺽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건철을 보면서 난해한것은 없습니까?》
주병삼이 빙그레 웃으며 앞상우에 무득히 쌓인 문건철을 가리켰다.
《아니, 다 알아볼만 하오. 문건이 일목료연하게 아주 잘 정리되였구만. 그런데 이 문건을 보니 생산에서 계절적파동이 매우 심하다는게 대뜸 알리오.》
주병삼은 문건의 수자속에서 조선소에 내재하는 선박건조의 부족점을 제꺽 찾아내는 최주식의 예리한 관찰력과 정확한 판단력에 내심 혀를 찼다.
신임기사장이 조선소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부기사장동지에게 구내도로가 좁다고, 이래가지고야 앞으로 어떻게 많은 배를 빨리 무어내겠느냐면서 당장 도로확장공사를 벌려야 한다고 했다더니 그게 우연칠 않구나, 다른 일군들과 일을 시작하는 잡도리가 달라.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최주식에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겨울과 여름철엔 배무이실적이 푹푹 떨어집니다.》
모든 책임이 마치도 자기에게 있기라도 한듯 뒤더수기로 손을 가져가며 얼굴을 붉히는 주병삼을 보며 최주식은 이 사람은 꽤나 어지고 량심적인 일군이구나, 좋은 사람인걸. 앞으로 손잡고 일해볼만 하겠어 하고 생각했다.
《그래, 그에 대한 대책은 세워보았소?》
《뭐. 이렇다하게…》
《알겠소. 연구해가지고 후에 토론해봅시다.》
최주식은 이러고나서 네칸으로 된 나무함에 ① ② ③ ④ 하고 수자를 적어놓았다.
주병삼이 의아한 눈길로 최주식을 바라보았다.
《기사장동지, 그건 뭘 표시하는 수자입니까?》
《허허, 이 수자말이요? 이건 내나름의 일이요. ①은 이미 한것, ②는 지금 하고있는것, ③은 이제 할것, ④는 제기되는 문제지요.》
최주식은 대답하고나서 주병삼을 가까이로 불렀다.
《계획지령장동무, 왔던김에 내 일을 좀 도와주지 않겠소?》
《도와주다뿐이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조선소에서 지금 하고있는 일과 이제 해야 할 일, 그간 제기된 문제들을 수고스러운대로 좀 뽑아주시오.》
《알겠습니다.》
주병삼은 최주식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최주식이가 내주는 카드만 한 규격의 백지에 만년필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최주식은 몇분간에 빈종이를 꽉 채우는 주병삼을 자못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주병삼이 조선소실정을 손금보듯 너무나도 휑하게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조선소실태를 잘 알고있소?》
최주식이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진정을 담아 물었다.
《기사장동지두… 무슨 그쯤한걸 가지고 그러십니까. 계획지령장은 군대로 말하면 작전참모인데 배무이실정을 몰라가지고야 어떻게…》
《하긴 그렇소만… 자기 하는 일에 막히지 않고 정통한 사람이 어디 많소?》
그때 최주식의 책상우에 놓인 전화종이 자지러지게 울었다.
최주식은 주병삼이 쓴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송수화기를 들었다.
《최주식이 전화받습니다. 홍학주부직장장동무라구요? 오늘 저녁에?… 초청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못가겠습니다. 다른 곳에 좀 들려볼데가 있어서…》
최주식이 송수화기를 놓자 주병삼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홍부직장장동무의 아주머니 음식솜씨가 이만저만 아닌데 갈걸 그랬습니다. 1급료리사 찜쪄먹게 수준이 있답니다. 그전에 나도 한번 초청을 받아 갔더랬는데 정말이지 그 음식맛은 별맛이여서 혀가 다 녹을번 했습니다.》
《혀가 녹는다? 거 정말 녹기라도 하면 야단이 아니요.》
최주식이 껄껄 웃는데 손에 크지 않은 꾸레미를 든 리억석이 싱글거리며 들어섰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군요. 방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여난걸 보니…》
《어서 오오. 홍학주부직장장 아주머니의 음식솜씨가 하도 훌륭하여 혀가 다 녹을번 했다기에…》
최주식이 리억석을 보며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웠다.
《아니, 어떻게 그런 화제가 올랐소?》
리억석이 여전히 싱글거리며 최주식이와 주병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부직장장동무한테서 기사장동지를 자기 집에 초청하는 전화가 방금전에 왔댔습니다. 그런걸 기사장동지가 사양하기에 제가 그런 말을 꺼냈었지요.》
주병삼이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그랬댔구만.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아주머니의 음식솜씨가 정말 대단하오. 상냥하긴 또 얼마나 상냥하다구.》
리억석은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김석홍아바이가 집에 오라고 한 청은 어떻게 하겠소?》
《약속을 안했대도 가야 할 처지인데… 가야지요. 한데 상점문이 닫기지 않았을가?》
최주식은 걱정했다. 그러자 리억석이 손에 든 꾸레미를 쳐들어보였다.
《근심마오. 내 미리 좀 준빌 했소.》
《그거 정말 고맙소. 그럼 가기요. 계획지령장동무도 같이…》
《아니, 전 오늘 우리 애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그 녀석이 공부에선 남의 축에 빠지지 않는데 장난질이 세차서 때때로 말썽을 일으키군 합니다. 어제는 동면하는 개구릴 잡아가지고 학교에 갔다가 그놈이 가방에서 뛰쳐나오는바람에 수업시간을 말아먹었다고 합니다. 원, 어떻게 돼먹은 녀석인지…
제 생각은 말고 어서 두분이나 가십시오.》
주병삼은 두사람에게 모두걸이로 인사를 하고는 누가 붙들세라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최주식이와 리억석은 사무실을 나섰다.
련화봉우에는 상현달이 걸려있었다. 그 달빛으로 하여 사위는 희끄무레했다.
훈훈한 방에 있다가 나온 두사람은 차거운 바다바람이 오히려 시원하여 페부깊이 들이켰다.
심신이 무척 상쾌해졌다. 그들은 가벼운 걸음으로 곧추 뻗은 닻거리를 기분좋게 걸어갔다.
《부기사장동무, 김석홍아바이가 아까 현장에서 무엇인가 보여줄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무언지 모르겠소?》
《글쎄,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이제 가보면 알겠지요.》
그들의 옆으로 털모자의 귀덮개를 내리우거나 외투깃을 곧추 세운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김석홍이네 집은 수산사업소와 항이 경계를 이룬 곳의 도로건너편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저 집이요.》
리억석이 벽에 회가루를 칠하고 지붕에 스레트를 얹은 아담한 단층집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손에 든 꾸레미를 최주식에게 내밀었다.
《아니, 왜 그러오?》
최주식이 꾸레미를 넘겨주고 돌아서는 리억석에게 물었다.
《내야 뭘 들어가겠소. 어서 혼자 들어가보오. 아바이와 조용히 할 얘기도 있겠는데…》
최주식이 리억석을 붙들었으나 그는 어서 들어가라고 손사래를 치고는 빙그레 웃으며 자기 집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참, 사람두. 어쩌면 그리도 직통배길가. 최주식은 중얼거리고나서 혼자서 김석홍이네 집대문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