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당위원회에 들린 최주식은 리윤종에게 청진에 출장가서 있은 일과 집에서 벌어진 사실을 어두운 낯빛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귀담아 듣고있던 리윤종은 갑자기 껄껄 웃었다.

최주식은 어리둥절했다.

자기는 가슴아픈 사연을 힘겹게 털어놓고있는데 리윤종이가 어쩌면 이야기도 채 듣지 않고 웃음을 터뜨릴수 있단 말인가. 종전엔 볼수 없던 일이였다.

《지배인동무, 선화동무는 지배인동무가 애초에 생각한것처럼 의지가 강한 녀자입니다. 그는 자기자신을 이겨냈습니다.》

그가 자기자신을 이겨냈다구? 그럼 선화가 조선소를 떠나지 않았단 말인가.

떠난다는 편지를 눈물을 머금고 써놓은 그가…

최주식은 더욱 의아해졌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럼 선화동무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십시오.》

리윤종은 전화기를 들더니 진료소를 찾았다. 그리고는 류선화를 자기 방으로 곧 보내라고 했다.

무슨 놈의 감투끈인지 통 모르겠군.

최주식은 이렇게 생각하며 담배를 붙여물었다.

얼마후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류선화가 들어왔다. 그는 리윤종과 마주앉아있는 최주식을 띠여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주춤거렸다.

《여기서 얘기들을 나누십시오. 내 볼 일이 있어 좀 나갔다오겠습니다.》

리윤종은 최주식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간다.

어색한 침묵이 해빛 비쳐드는 방안을 꽉 채웠다.

최주식은 격한 심정을 간신히 누르고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있는 류선화에게 물었다.

《여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

《말을 하오. 어떻게 되여 그런 못난이짓을 하게 됐는지?》

최주식의 목소리는 비록 높지 않았으나 질책은 엄했다.

《당신의 속을 태워드려 정말 죄송해요. 제 생각이 너무나도 짧았댔어요. 집에 가서 죄다… 말씀드리겠어요.》

류선화는 흐느끼며 방을 나간다.

《허참!》

최주식은 그의 뒤모습을 보며 어이없고 맹랑하여 쓰겁게 혀를 찼다.

그는 반도 타지 않은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끄고 리윤종의 방을 나왔다.

류선화가 조선소를 떠나지 않았음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개운하지 않았다.

최주식은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 리억석을 불렀다. 잠시후 손기척소리가 나더니 리억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먼길을 갔다올래기 수고했겠소.》

최주식은 싱글거리며 인사말을 건늬는 리억석에게 일없노라고, 그새 기사장이 수고많았겠다고 하며 자기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리억석은 기다란 앞상을 사이에 두고 최주식이와 마주앉았다.

《그래 참모회의에서 내가 얘기한 문제를 토론해봤소?》

《토론했소. 한데 신통한 대책안이 나오지 않았소.》

《대책안이 나오지 않았단 말이지요?》

최주식은 혼자 말하듯 뇌이고는 담배를 붙여물었다.

《기사장동무, 내가 참가시키라고 지적한 대상들은 다 참가시켰겠소?》

《…》

리억석은 대답대신 눈을 슬며시 내리깔았다.

최주식은 그의 거동에서 자기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았음을 대뜸 간파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리억석이 어쩌면 자기의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려드는걸가?

최주식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나서 따지듯 물었다.

《왜 참가시키지 않았소?》

리억석은 숙였던 머리를 들고 눈살을 찌프리였다. 그리고는 불만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무,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하오만 그들이 무슨 건설적이고도 창발적인 안을 내놓겠다구 참가시키겠소.》

그 말에 최주식은 속이 뒤틀리였다. 어쩌면 리억석이 그렇게 단정할수 있단 말인가.

《기사장동무, 동무는 강준호가 국장을 타고난 벼슬자리로 여기면서 조선공들을 깔보고 제기되는 일들을 주관적으로 처리한 까닭에 호된 비판을 받고 여기에 내려와 일하고있는걸 모르오?》

《왜 모르겠소. 한데 참모일군들도 내놓지 못하는 안을 제 앞채기도 하지 못해 오작을 내는 강준호나 류경훈, 기능이 그리 높지 못한 강은주나 박성임이들이 어떻게 제기할수 있겠느냐말요. 그들을 참가시켰더면 아마도 내가 웃음거리를 면치 못했을거요. 기사장이란 사람이 정신이 쑥 빠졌다구. 얼마나 궁하면 참모회의에 조선소에서 나갔던 사람들까지 방청으로 참가시켰겠느냐, 소등에 못실은 짐 벼룩등에 싣겠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군 하고 말이요.》

최주식은 리억석의 말을 들을수록 억이 막혔다.

리억석이 지금 제 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인가. 뭐 소등에 못실을 짐 벼룩등에 어떻게 싣느냐구? 조선공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무시할수가 있담. 자기는 조선공들우에 군림한 사람처럼 여기다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듯 지난날을 벌써 잊어버렸단 말야. 그대로 둬두었다간 무슨 일을 또 저지를지 모르겠어.

최주식은 다 탄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끄고 리억석을 주시하며 낮으나 준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 기사장동무, 동무는 해군에 복무하다가 제대되여 이곳 조선소로 와서 기관조립공으로 일하지 않았던가?》

《일했소. 그걸 몰라서 새삼스럽게 묻는거요?》

리억석은 낯이 벌개서 반문했다.

《되묻지 말고 대답해보오. 그때 동무는 창발적인 안과 건설적인 의견들을 제기하지 않았던가?》

《…》

리억석은 최주식의 물음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난날 기관조립공으로 일할 때 열흘이 멀다하게 가치있는 안을 내놓군 하던 리억석이였다. 그래서 그는 기관조립공으로부터 작업반장으로, 반장으로부터 직장장으로, 직장장으로부터 부기사장으로, 오늘은 기사장으로 일하고있는것이였다.

《내 보기에 동무는 지난날을 잊고 조선공들을 얕보고있단 말이요. 조선공들을 믿고 그들에 의거하지 않고선 배를 무을수가 없소. 도대체 지배인이나 기사장, 참모일군들만으로 선박을 건조할수 있는가말요. 나나 동무는 조선공들우에 군림한 관리가 아니요.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군중, 인민대중을 하늘같이 여기고 그들에 의거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심장으로 따라배워야 하오. 기사장동무, 새형의 선박을 제 날자에 무을수 있는 열쇠는 조선공들을 진심으로 믿는데 있다고 보오. 그래야 그들의 창조적열의와 무궁무진한 힘이 남김없이 발휘되오. 그런데 그들을 무시하고 멀리하다니 말이 되는가말요. 동무의 머리엔 선박공업의 주인인 조선공들이 시키는 일이나 수걱수걱하는 사람들로 인박혀있소.

한마디로 사상이 글러먹었단 말요.》

최주식은 리억석을 가차없이 비판했다.

《내 사상이 글러먹었다구요?》

리억석은 되물으며 눈살을 꼿꼿이 세웠다.

《그렇소. 내 명백히 말하건대 조선공들을 혁명의 주인, 선박건조의 주인이라는 관점과 립장에서 보지 않는 동무의 사상은 실상 용서할수 없소.》

최주식은 천t급, 만t급배를 무으며 리억석이와 보람찬 혁명의 한길을 어깨나란히 꿋꿋이 걸어가야 할 혁명동지이기에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더없이 괴로왔지만 혹독한 질책을 들이댔다.

《뭐, 용서할수 없다구요?》

리억석은 분을 못삭여 씨근거렸다.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서 꼭 배반을 당한듯만싶었다.

최주식이 한마디 더 못을 박으려는데 사무탁우에 놓인 전화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는 팔을 뻗쳐 송수화기를 들었다.

《예, 최주식입니다. 옥도리에서 림근상관리위원장이 왔다구요?

교시선박건조에 떨쳐나선 조선공들을 위해 지원물자를 가지고? 알겠소. 내 곧 나가겠소.》

최주식은 들었던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가볍게 놓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어 리억석을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

《지금은 길게 말할 시간이 없으니 회의가 끝난 후에 얘길 계속하기오. 낮교대작업은 이제 반시간밖에 남지 않았소. 계획지령장동무에게 얘기하든가 기사장동무가 직접 포치하든가 해서 공장내 참모성원들은 물론, 작업이 끝난 조선공들을 전부 문화회관에 모이도록 하시오. 특히 조선소에서 나갔던 조선공들은 한명도 빠지지 않도록 하오. 알겠소?》

《알겠소.》

리억석은 최주식의 호된 추궁과 회의소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마지 못해 대답했다.

 

실농군인 림근상관리위원장과 그 일행을 반갑게 만나본 최주식은 회의시간이 되자 행정부지배인을 불러 그들에게 조선소를 견학시키라고 이른후 협의회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리윤종과 함께 문화회관으로 갔다.

회관에는 조선공들과 참모일군들이 모여 웅성거리고있었다.

최주식은 리윤종이와 함께 주석단에 앉았다.

객석의 맨 앞줄에는 심기가 좋지 않아 어두운 낯색을 한 기사장 리억석이며 사색형의 계획지령장 주병삼 그리고 생산, 기술, 과학발전, 설비를 담당한 부기사장들과 여러 직장장들이 나란히 앉아있었고 그뒤로는 김석홍, 류경훈, 윤재수, 박성임, 강은주, 김찬 등 조선공들이 점잖게 앉아있었다.

최주식은 주병삼에게 참가정형을 묻고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협의회에 들어가기전에 동무들에게 한가지 알려드릴게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 새형의 선박을 우리가 뭇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전에 여러 곳에서 지원물자를 보내왔었는데 오늘은 룡강군 옥도리농장원들이 선박을 제기일에 어김없이 건조해달라고 100kg가 넘는 돼지 스무마리와 사과를 실은 자동차를 무려 열대나 보내왔습니다.》

장내가 흥성거렸다.

《강선과 황철을 비롯하여 우리와 련관된 전국각지의 공장, 기업소들에서도 선박건조에 필요한 자재와 부속들은 념려말라고 합니다. 동무들도 보다싶이 수령님의 믿음에 보답하려는 우리 조선공들의 열정과 기세는 매우 높아서 새형의 선박이 눈에 띄게 키돋움을 하고있으며 진수날자를 가까이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한 공장내 일부 책임적인 일군들이 동무들에 의거하여 통이 크고 대담하게 그리고 깐지게 일판을 벌리지 못하다보니 더 거둘수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당면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동무들의 의견을 좀 듣자고 합니다.》

최주식은 이렇게 서두를 떼고나서 오작난 상갑판철판을 되살려쓸데 대한 문제며 외국에 의뢰했다가 제기일에 만들어줄수 없다고 해서 그 나라와의 계약을 걷어치운 추진기를 주물직장에서 자체로 부을데 대한 문제, 그밖에 애로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를 툭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그는 상정시킨 문제들에 대한 자기나름의 대책안을 이미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조선공들의 광범한 의견과 보다 합리적인 좋은 안을 듣기 위하여 먼저 내놓지 않았다. 그의 예견대로 장내는 생각들을 주고받는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얼마간 활기로운 시간이 흐른뒤 홍학주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사람들은 입을 봉하고 그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저는 귀중한 철판을 강준호동무가 못쓰게 만든것이 너무도 가슴에 맺혀 되살려쓸데 대한 문제를 지배인동지가 제기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철판을 되살려 쓰는 문제나 추진기를 주물직장에서 붓는 문제들은 엄밀히 따져놓고 보면 실현불가능한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도대체 오작난 철판을 어떻게 되살려쓴단 말입니까. 엎지른 물을 주어담을수가 있습니까. 하기에 엊그제 기사장동지가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참모회의를 장시간에 걸쳐 진행했는데도 이렇다할 대책안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설사 오작난 철판을 이러저러하게 붙인다고 합시다. 그러면 상갑판이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아마도 숭글숭글 얽은 내 얼굴과 같이 될것입니다.》

긴장해있던 사람들이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즘즉해지자 홍학주는 심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동지들, 우리는 지난날 200t급 2척기선저예망선을 잘못 무어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지적의 교시를 받았는데 그 교시를 반드시 명심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새형의 선박을 더덕더덕 붙여무어 수령님께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린다면 우리가 무슨 참된 조선공이겠습니까. 나는 힘이 들더라도 새 철판을 구입해다가 상갑판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학주가 앉자 허홍대가 잔기침을 하며 불룩하니 나온 배를 두손으로 안고 일어섰다.

《홍부직장장동무의 말에 동감입니다. 그리고 추진기를 여기서 붓는 문제도 락관적이 못됩니다. 속담에 이불기장 보구서 발을, 아니 다리를 펴랬다는 말이 있는데 현재 주물직장의 로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새형의 선박에 달 추진기의 막대한 주물량을 전기로나 유도로, 반사로나 도가니로를 가지고는 부을수가 없습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아이는 어른 신을 신을수 있어도 어른은 아이 신을 신을수 없단 말입니다. 추진기를 우리 조선소 주물직장에서 붓자는것은 어른이 아이신을 신자고 애쓰는것과 같습니다.》

그의 그럴듯 한 말에 장내엔 다시금 소요가 일었다.

최주식은 홍두깨같은 밸이 울컥 치밀었으나 꾹 누르고 굵은 목소리로 좌중에 대고 물었다.

《홍부직장장동무나 허홍대실장동무와 견해를 같이하는 동무들은 또 누가 있습니까?》

《…》

잠잠했다.

맨 앞줄에 앉아있는 리억석은 그들의 제기가 자기의 생각과 별반 다를바 없었으나 웬일인지 기분이 나쁘고 입안이 소태처럼 썼다. 그래서 그는 앉은채로 목을 뒤로 돌리고 꽥 소리쳤다.

《무슨 제기가 그렇소? 우리가 여기에 다시 모인건 안된다는걸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게 하기 위한 대책안을 토론하자는거란말요.》

《허참, 벽을 문이라고 내밀어서 나갑니까?》

허홍대가 두툼한 입술을 보기 흉하게 비쭉 내밀며 기름기가 번질번질 도는 퉁트무레한 얼굴에 조소와 비웃음을 띠우고 비양조로 말했다.

참다못해 김석홍이 일어섰다.

《여보게 허실장, 그런 쓸개빠진 말이나 하겠거든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구. 여기서 공시간을 보내지 말구.》

허홍대의 흰자위많은 눈이 메밀처럼 세모졌다.

《아니, 아바이가 도대체 뭐기에 나더러 가라말라, 잠이나 자라말라 하는거요?》

《뭣이?》

김석홍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치솟는 분을 참을수 없어 갓난아이 머리통만 한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홍학주는 협의회분위기가 자기의 의도대로 되여가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장내는 어수선해졌다.

최주식은 허홍대나 홍학주에게 된벼락을 안기고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협의회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것 같지 않아 부걱부걱 괴여오르는 노기를 간신히 참았다. 그때 낮으나 매우 엄한, 어쩌면 날카롭기까지 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쩡 울리였다.

《홍부직장장동무나 허실장동무! 동무들은 여기가 협의회장이라는걸 망각하고있는게 아니요? 다른 조선공들의 생각은 안중에 없이 어째 안된다는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오?》

리윤종이였다.

협의회장은 조용해지고 허홍대와 홍학주는 어깨밑으로 머리를 틀어박았다.

최주식은 자기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회의분위기를 바로잡아준 리윤종을 고마움에 찬 눈으로 일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직장장동무나 허실장동무의 견해는 알만 하니 이젠 다른 동무들의 의견을 좀 들어봅시다. 자기의 생각을 기탄없이 내놓아주십시오.》

류경훈이 머리를 수굿하고 일어섰다.

《이제 앉은 자리에서 계산을 해보았는데 오작난 철판의 겉부위와 맞대일 철판밑에다가 ㄴ형강대신 ㄷ형강을 대고서 상하로 용접을 하면 강도가 충분히 보장될것 같소.》

최주식은 자기의 생각이 바로 그러하였으나 전혀 그런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얼마전에 연구사로부터 용접연구실 실장으로 된 장현복을 불렀다.

보통키에 몸이 탄탄하고 얼굴이 동그스름한 장현복이 일어섰다.

《실장동무, 이제 좋은 안이 제기되였는데 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될것 같소?》

《맞대고 상하로 그저 용접이나 해선 용접물이 적게 들어가기때문에 좀 미타합니다.》

용접전문가의 사색이 담긴 대답은 역시 깊이가 있었다.

《그럼?》

장현복이 주밋거리자 윤재수가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는 따발총을 련발에 놓고 쏘듯 자기 생각을 단숨에 털어놓았다.

《지배인동지, 맞붙이는 철판의 부위들을 45도로 죽이고 용접하면 용접도 든든히 되고 용접한 자리도 없어질거라고 봅니다.》

수학적두뇌가 비상한 최주식은 머리속으로 제꺽 계산을 해보고 완전히 가능하다는것을 확신했다.

《실장동무, 용접공 윤재수동무의 안대로 하면 어떻겠소?》

《될것 같습니다.》

《되겠소? 될것 같소? 어느쪽이요?》

여유를 두고 하는 장현복의 대답에 최주식은 악의없이 따져물었다.

《되겠습니다.》

장내에선 가벼운 웃음이 피여났다.

《좋소. 나도 되리라고 믿소.》

최주식은 빙그레 웃었다.

《윤재수동무, 용접은 동무가 맡아서 하오.》

《지배인동지, 알겠습니다.》

윤재수가 활기에 넘쳐 대답했다.

최주식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첫번째 문제가 풀렸으니 이번엔 추진기문제를 의논하자며 주물직장장을 불렀다. 몸이 뚱뚱하고 얼굴이 너부죽한 주물직장장이 일어섰다. 우리 나라에서 주물은 내노라하는 사람이다.

《주물직장에서 현존 로를 가지고 추진기를 부어낼수 있겠소?》

《바쁠것 같습니다.》

《어째서?》

《앞서 허실장동무도 말했지만 전기로나 반사로, 도가니로나 유도로의 주물량이 엄청나게 딸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최주식은 로들의 쇠물량을 한데 합치면 되지 않겠는가고 말을 하려다가 좀더 의견을 들어볼 심산으로 장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김찬이가 일어섰다.

《지배인동지, 거 뭐 어렵게 생각할게 있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조선소내 일군들은 물론 주물전문가들도 난문제로 여기는 일을 그가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것 같아서다.

최주식은 어떻게 하면 될것 같은가고 물었다.

김찬은 대답했다.

《지배인동지, 제 언젠가 여러 동무들과 함께 김응서장군이 무술을 익히던 황룡산성에 갔던적이 있습니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아니, 황룡산성에 갔던 얘기는 왜 꺼낼가?》

《임진왜란때 평양성에서 왜장 소서비의 목을 자른 김응서장군이 어떻다는거요?》

《추진기 붓는 문제와 룡강의 황룡산성이 도대체 무슨 련관이 있소?》

최주식이 조용하라고 두어번 주의를 주어서야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잠자누룩해졌다.

《김찬동무, 말을 계속하오.》

구미가 동한 최주식은 독촉했다.

《거기에 가보니 글쎄 커다란 못이 성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못의 물은 샘에서 솟아난것이기도 하겠지만 경치수려하고 웅장한 황룡산의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차있는것이였습니다.》

옆에서 혀를 차거나 못마땅한듯 투덜거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가을뻐꾸기소리같은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자는건지 모르겠군.》

《글쎄말이요. 황룡산성이니, 김응서장군이니, 늪이니 골짜기니 하구 빙빙 에도니 어디 알겠소?》

하지만 최주식은 김찬이가 하려는 말의 취지를 이미 알아차리고 역시 김석홍아바이의 아들이 다르구나, 새 세대가 달라, 아주 훌륭한 착상을 했거든 하고 생각하며 만족한 웃음을 빙그레 웃었다.

《지배인동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이듯 여러 로의 쇠물을 형타에 주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찬이 말을 맺고 앉자 그의 기발한 묘안에 어떤 사람은 입을 쩍 벌렸고 어떤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릇 세상만사는 모르고보면 해낼 엄두가 안나고 까마득히 솟은 벼랑앞에 선듯 눈앞이 캄캄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못해낼 일이 없는 법이다.

알키메데스가 목욕탕에 앉아 부력을 생각해낸거며 최무선이 흑색화약을 연구한것, 프랑스의 르느라르가 가스기관을 발명한것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주물직장장동무, 김찬동무의 말처럼 하면 되지 않겠소?》

최주식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주물직장장이 자리를 차고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하면 추진기에 필요한 쇠물량은 되겠습니다. 한데 그 온도를 과학적으로 어떻게 일치시키겠는가 하는것이 문제입니다.》

(주물에선 늘 자기가 제일이라고 떠드는 사람이 하나에서 열까지 의탁하려드는군, 조금만 머리를 쓰면 될 일을 가지고. 그러니 창발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이 나올리 만무하지.)

최주식은 안일하고 소극적인 그의 태도가 심히 못마땅하여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때 머리를 깊숙이 수그리고 한마디의 말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있던 강준호가 천천히 일어섰다.

《내 생각엔 그게 문제로 될것이 없다고 봅니다. 로들의 포금용해시간을 일일이 측정하면 그 답을 쉽게 얻을게 아니겠소.》

《쉬운것 같지만 바로 그게 문제란말입니다.》

주물직장장이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또 우는 소리를 했다.

《여보 직장장동무, 동무는 너무나도 명백한 안이 나왔는데도 철부지애들처럼 어거지를 쓰누만. 그래 눈앞에 가져다놓은 사탕을 입안에까지 넣어주어야 군말이 없겠소? 두말말고 김찬동무와 강준호동무가 제기한대로 해보오. 꼭 될거요.》

최주식이 잘라말하고 협의회를 결속지으려는데 김석홍이 일어섰다.

《지배인동무, 거 이왕지사 상갑판이 늦었는데 며칠간만 더 뒤로 미루면 안되겠소?》

《뒤로 미루다니요? 그건 어째서입니까?》

최주식은 웃음을 거두고 의아한 눈으로 김석홍을 바라보았다.

《상갑판을 씌우면 기관을 부득불 해체해서 배안에 넣어야 하지 않소?》

《그야 물론이지요.》

《그러느라면 시일이 곱절이나 걸리지 않겠소. 기관을 밖에서 해체하느라 숱한 공수가 들어 해체한것을 배안에 집어넣느라 품이 들어 들여놓고선 또 비좁은데서 일일이 조립하느라 낑낑거려야 하니말이요. 그래서 내 생각엔 아직 상갑판을 씌우지 않은 조건에서 기관을 통채로 제자리에 넣었으면 하는거웨다.》

최주식은 그제서야 마음속 의문을 풀고 무릎을 쳤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좋은 생각인가. 숱한 밤을 밝혀가며 배무이공정을 여러번 깐깐히 따져본 자기가 어째서 그런 공간을 찾아내지 못했을가. 그는 이마와 입귀의 잔주름을 펴며 빙그레 웃고있는 《조선소의 산력사》를 존경에 찬 그리고 감동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바이, 그런 묘안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냈습니까?》

《내가 무슨 묘안을 찾아냈겠소. 지배인동무가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깊이 학습하고 륵골에 외판을 한장한장 붙이던 종전의 방법대신 토막식으로 배를 뭇는 〈지상확대식조립방법〉을 연구해낸걸 보고 기관을 통채로 들여놓을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했지요.》

《!》

최주식은 《토막식배무이조립방법》을 선체조립에만 도입하는것으로 만족했던 자신의 짧은 생각을 자책했다.

《아바이는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어 선박건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토막식배무이조립방법〉을 선체가공직장과 선박완성직장에 도입하는것으로만 만족해하였습니다. 련관부분에 그것을 도입하고 활용할데 대하여서는 정말이지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김석홍아바이가 바로 그 점을 얘기함으로써 기관을 곱절이나 빠른 시일안에 들여놓을수 있는 안을 찾게 되였고 화로 되였던 상갑판오작을 복으로 전환시켰습니다. 단지 문제로 제기되는것은 왁새기중기로 그 무거운 기관을 통채로 들수 있겠는가 하는건데… 그것도 지혜를 짜내고 생각을 합치면 좋은 대책안이 나올것이라고 봅니다.》

《그건 기중기운전공이 더 잘 알지 않을가요?》

최주식의 허심탄회하고도 신심과 락관에 넘친 말을 들으며 조선공들이나 참모일군들이 자신들을 돌이켜보고있는데 회관 복판에서 누구인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눈길은 왁새기중기운전공 박성임에게로 쏠렸다. 박성임은 일순 까만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가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일어섰다. 앉아있을 때보다 그의 얼굴엔 익은 도마도색갈의 홍조가 더 함뿍 피여났으나 목소리는 더없이 맑고 챙챙했다.

《그 문젠 저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방법을 연구하여 꼭 들겠어요.》

《작아도 고추로군!》

최주식은 박성임의 신심에 넘친 여무지고 당돌한 태도가 꼭 마음에 들어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그러자 장내에서도 와 하니 기쁨의 폭소가 터졌다. 박성임은 자기의 말을 못믿어 웃는줄 알고 울상이 되여 웨쳤다.

《지배인동지, 왜 웃으세요? 제가 못들어낼것 같아선가요?》

《원, 무슨 소릴? 성임동무가 못들긴 왜 못든단 말요. 난 동무의 대답이 너무도 나의 마음에 들뿐아니라 기특하고 대견해서… 그리고 힘이 솟아서 웃었소.》

최주식의 진정이 담긴 말에 박성임은 언제 울상을 지었던가싶게 자리에 앉으며 가쯘하게 박힌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생글 웃었다. 조선공들의 얼굴마다엔 누구라없이 밝은 웃음이 어려있었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하나같이 명랑했으며 움직임엔 활기가 넘쳐있었다. 했으나 리억석은 머리를 푹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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