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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에서 열린 동서해안조선소지배인들의 회의에 참가했던 최주식은 오후에야 영포역에 내리였다.

그는 자기가 길을 떠나면 마음조여 기다리군 하는 차씨에게 출장길이 무사했노라는 말을 하러 잠간 집에 들리였다. 그런데 어디 갔다오면 늘 반갑게 맞아주던 차씨의 기색이 웬일인지 밝지 못하다.

《어머니, 병이 더 도진게 아닙니까?》

《병이야 뭘 더 심하겠니.》

《그럼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가요?》

《…》

차씨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포단밑에서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일이 있었지. 새애기가 이 편지를 남겨놓고 오늘아침 탄광으로 떠나갔다.》

차씨는 어두컴컴한 낯빛으로 집에서 있은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최주식이 청진으로 회의를 떠난날 저녁이였다.

차씨가 저녁을 지어놓고 류선화가 퇴근해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있는데 천상 발길을 않던 오매월이가 산삼으로 만든 약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는 조선소에서 선박완성직장 부직장장으로 일하는 홍학주의 처라고 자기를 소개하고나서 얇다란 입술을 나불거렸다.

《어머니의 로환이 심하다는 말을 듣고도 늦게 찾아와 미안해요.》

차씨는 최주식이 지배인으로 임명을 받고 내려온 날 식료품을 들고 왔던 홍학주를 생각하면서 덤덤한 태도로 일없노라고 했다.

《지배인동지의 어머니이면 조선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인데 제몸이 편치 않다보니 비로소 이제야…》

오매월은 말끝을 맺지 않고 진정 미안한 태를 지었다.

《생각해주는 마음 고마우이. 한데 약까지 뭘 지어가지고 왔나.》

《며느리가 의사이니 어머니병을 어련히 봐드리겠지만 이 약을 한번 써보세요. 우리 집 주인은 지배인동지를 잘 만났다고 입술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답니다.》

《원, 칭찬할게 뭐가 있다구.》

《아이참, 어머니두. 집에 같이 있으니 어머닌 얼마나 훌륭한 아들을 두었는지 잘 모르시는군요. 잘 생기구 너그럽구 배를 잘 무어서 조선소는 물론, 온 나라가 다 아는 지배인인데요. 입가진 사람들은 지배인동지가 조선소나 책임질 일군이 아니라고 해요. 그러면서 모두들 하는 말이…》

《그래 모두들 뭐라고 하나?》

차씨가 물었다.

《어머니가 그 말을 들으면 상심해하실가봐 그만두겠어요.》

오매월은 차씨의 평온한 마음을 둔장질하여 잔뜩 헝클어놓고 말끝을 슬쩍 사리였다.

차씨는 속이 달아올랐다.

《무슨 말인데 그래? 남들이 하는 말을 나도 알아야 하지 않나.》

《어머니, 기분나빠하시지 않죠?》

오매월은 만일을 생각해서 다짐을 두었다.

《기분나빠하긴…》

그제서야 오매월은 무슨 긴한 소식을 알려주듯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그럼 제 얘길 하죠. 모두들 말이예요. 지배인동지가 능력이 있으면서도 더 높은 국가간부로 등용되지 못하는건 며느리때문이라고 한답니다.》

《며느리때문에?》

《그래요. 왜놈때 잘산 선주의 외손녀구 해방전 나까무라철공소때 직공장으로 으시대던 류경훈의 딸인 며느리때문이라구요. 더우기 며느리는 악질 김석원이, 조선사람으로 유독 왜놈군대의 련대장까지 한 김석원이와 촌수가 멀게지만 친척이 된다면서요. 그러니 지배인동지가 어떻게 더 발전할수 있겠느냐고들 한답니다.》

차씨는 마음씨 곱고 착한 며느리를 두고 뒤에서 그런 역스러운 시비질을 한다는 말을 듣자 밸이 꿈틀거렸다.

할 일이 없으면 잠이나 잘게지 어떤 못된 년놈들이 남의 집안얘기로 입방아를 더럽게 찧는단 말인가. 벼락맞을것들!

《그런 말 말라구. 우리 나라에선 그런 가정주위환경이나 경력을 보지 않아.》

차씨는 리윤종당위원장이 한 말을 상기하며 오매월이 더 말을 못하게 꾹 눌렀다.

그들은 퇴근해온 류선화가 문밖에서 자기들의 말을 듣고있는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기에 제 뭐랬어요. 남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가 기분나빠할것이라고 하잖았어요. 그런데 어머니와 달리 지배인동지는 그 문제에 신경을 쓴다고 해요. 허홍대실장이란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하는 말을 들으니 지배인동지가 강은주란 처녀와 아주 가깝게 지낸다고 하더군요. 보통사이가 아니라구요.》

그들은 류선화가 흑- 하고 흐느끼며 달려나가는 소리를 듣고서야 말을 끊었다.

그날밤 류선화는 자정이 되여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차씨는 상심해하는 류선화에게 그런 말같지 않은 떠돌이말을 듣지 말라고 일렀다.

《어머니, 쉬쉬하며 돌아가는 그러루한 말을 전 이미 여러번 들었어요. 그러나 귀등으로 흘려버리며 마음을 다잡고 여태껏 살아왔어요. 하지만 날이 흐를수록 제 마음은 어쩐지 편안칠 못해요. 저때문에 그이가 더 중요한 국가적직무를 맡아하지 못한다면 하고 생각되여서 말이예요.》

《그런 생각 말아라. 그러면 못써.》

했으나 류선화는 깊은 생각에 잠겨 다녔고 이틀밤을 뒤치락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최주식은 차씨의 말을 듣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얼굴이 시뻘개지다 못해 시꺼매졌다.

세상에 별 치사한 말이 다 돌아가는군.

그는 쓸데없는 말질을 하고다니는 홍학주의 처가 괘씸했고 한편 류선화가 불만스러웠다.

어쩌면 선화가 그런 말같지 않은 말을 듣고 집을 나갈수 있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도 옹졸한 녀자였던가.

최주식은 후들거리는 손으로 편지의 겉봉을 뜯고 속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호일이 아버지 보세요.

저를 믿고 저에게 지금까지 사랑만을 안겨준 호일이 아버지, 이런 글을 남기고 떠나는 미비한 저를 욕많이 해주세요. 아마도 저는 당신과 같이 행복하게 살 녀자가 못되는가봐요. 옆에서들 말하고있는것처럼 저는 이랬든저랬든 선주의 손녀이고 왜놈때 밥술이나 먹으며 직공장을 한 사람의 딸이 아니예요. 조국이 불탈 때 손에 총을 잡고 미국놈을 때려부신건 저에게만 한한 자랑거리가 못된다고 봐요. 아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성전에 참가하지 않았나요.

여보, 저를 두고 입이 헤프고 잰 일부 녀자들이 〈처녀가 싸움판에 나가 아이를 벌어왔다〉느니, 〈가정주위환경이 복잡한 녀자가 지배인댁이노라고 으시댄다〉느니 하는 시비질같은건 얼마든지 참을수 있어요. 하지만 선박건조에 정력을 깡그리 쏟아붓는 당신이 저때문에 말밥에 오르는것은 참을수가 없어요. 들리는 말엔 당신이 저와 한가정을 이루고 살기때문에 더 중요한 직책에서 일을 못한다고 해요. 사실이 그렇다면 저에게 있어 그보다 더 큰 죄악이 어디 있겠어요.

여보, 저는 당신이 그 어떤 성미 활달한 모처녀를 가까이하고있다는 말같은건 믿지 않아요.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 듣지 않아요. 하지만 저로 하여 당신이 억센 나래를 활짝 펴고 푸르른 대공을 훨훨 날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호일이 아버지, 저는 그 어디에 가든 당신만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겠어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당만을 믿고 억세게 살아가는 당신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겠어요. 기나긴 나날 〈화선언약〉을 지켜 저를 애틋이 기다려준 당신, 가정을 이루고 산 날은 비록 짧아도 오직 저에게만 있는 정, 없는 정을 고스란히 부어준 당신, 당신과 헤여지자니 그리운 정은 더더욱 끓고 눈물은 분수마냥 걷잡을수 없이 솟는구만요.

빨아서 다림질해놓은 당신의 옷가지와 호일이의 옷들은 뒤주와 양복장안에 넣어두었어요.

병약한 어머님을 잘 모시며 철없는 호일이를 당분간 돌봐주기 바래요. 호일이는 후날 제가 데려다 키우겠어요.

당신의 귀한 몸 부디 건강하며 심혈을 기울여 뭇고있는 교시선박건조에서 큰 성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못난 저를 잊으시고 현숙한 녀인을 택하여 길이길이 행복하게 사세요. 류선화드림》

 

최주식은 편지를 와락 꾸겨쥐였다. 숯불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험상궂게 이지러지고 입술은 경련을 일으킨듯 실룩거렸으며 어글어글한 눈에선 노기가 이글거렸다.

선화, 당신은 내 생활에, 내 가슴에 칼을 박았소. 어쩌면 이렇게도 모진 글을 남기고 떠날수가 있단 말이요. 새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라구? 도대체 그것두 말이라구 하오? 너무하오. 당신은 정녕 너무나도 무정하오. 내가 뭐 일신의 공명이나 출세, 권세나 명예를 바라고 사는 사람인가.

최주식은 무딘 칼에 살점이 저며진듯 마음이 괴롭고 쓰리고 아팠다.

그는 집을 나서자 무거운 걸음으로 조선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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