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보, 오늘은 당신이 나에게 한잔 단단히 내야겠소.》

홍학주는 아래방문턱에 걸터앉아 긴다리를 흔들거리며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있는 오매월에게 까마귀청으로 지절댔다.

《원참, 매일 매끼 술을 마시면서 새삼스럽게 한잔은 또 뭐람.》

오매월은 눈을 할기죽하며 빈정댄다.

《오늘 그 알량한 강준호와 류경훈이한테 내가 오작감투를 맵시나게 씌웠단 말요.》

《어처구니없네. 그쯤한게 뭘 대수라구 큰소릴 친담?》

오매월이 이번엔 거들떠도 보지 않고 토달거렸다.

홍학주는 급기야 흔들거리던 다리를 멈추고 정색을 지었다.

《허 모르는 소리. 그게 어떤 오작인지나 알구서 그래? 선수상갑판이란건데…》

《…》

오매월은 일손을 멈추고 지지리도 못생긴 홍학주의 곰보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홍학주는 숭글숭글 얽은 낯가죽을 슬슬 긁으며 흡족해했다. 그는 새형의 선박건조에서 선수상갑판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과장해서 떠벌이고 말을 이었다.

《한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그보다 더 큰것은 그 오작으로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벌둥지처럼 온통 쑤셔놓은거야. 최주식의 멱살을 쥘 실머리두 만들구…》

《아니, 그 일로 하여 어떻게 최주식의 멱살을 줴요?》

오매월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기심을 나타내자 홍학주는 다리를 다시 흔들거리며 이죽거렸다.

《내가 강준호를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드립다 닦아세울 때 최주식이 거기에 나타났거든.》

《최주식이 어떻게 그 시간에 거기엘 나타났을가.》

오매월은 리해가 안되는듯 동그랗게 떴던 눈을 쪼프리였다. 이런 때엔 아무런 말을 해도 무탈하다는것을 알고있는 홍학주는 혀끝 돌아가는대로 내뱉았다.

《요런 맹추라구야, 내가 오늘 새벽 여느때없이 일찌기 나간건 바로 그 녀석때문이였어. 최주식인 새벽에 조선소안을 쭉 돌아보고 그날 할 일을 꼼꼼히 타산하거든. 어벌이 크면서두 내밀성이 있구 일에 들어서선 참빗장사도 혀를 찰만큼 빈틈이 없는 녀석이지. 지배인하긴 참 아까와. 내 전번에도 말했지만 아마 앞으루 국장이나 상두 할수 있을지 몰라. 그런 최주식이가 내가 놓은 덫에 단단히 걸려들었단 말야.》

《원, 무슨 소린지… 다람쥐 채바퀴굴리듯 빙빙 돌리기만 하니 어디 알아듣겠어요?》

오매월이 슬쩍 약을 올리자 홍학주는 시누런 이발을 드러내며 설명을 했다.

《이보라구. 내가 강준호를 되게 욕질할 때 최주식이 가만있으면 내 말이 그의 마음에 드는것으로 되잖아. 그럼 내가 최주식의 점수를 따는것으로 된단 말야. 하지만 그가 강준호를 두둔하면… 그땐 그자식이 죄지은 놈을 감싸주는것으로 된단 말야.》

《참말이지 당신 머리는… 내 일전에두 말했지만 모자걸개는 아니야요. 내 오늘 당신의 청대루 단단히 한잔을 내죠.》

오매월은 머리를 까딱거리며 방정맞게 깔깔 웃는다.

《그러라구. 한데 이거 당장 목이 컬컬하구만.》

홍학주가 비죽이 웃으며 한잔 달라고 손을 내민다.

《원, 우물에 가서 숭늉 찾겠네.》 그때 밖에서 터벅터벅 발자국소리가 났다.

그에 뒤이어 《부직장장동무 계시오?》하는 부름소리가 따랐다.

《쟈 이런…》

홍학주는 입속으로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게 누구요?》 하며 벌컥 문을 열었다. 밖에는 절구통같은 허홍대가 벌씬벌씬 웃으며 서있다.

망할 녀석, 무엇에 주린 수캐마냥 뻔질나게 찾아오는걸 보니 매월이 맛을 단단히 봤군.

홍학주는 속으로 게두덜거렸으나 겉으로는 제법 반색을 했다.

《허실장동무요? 어서 들어오우.》

그리고는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허홍대실장이 왔소.》

요염한 오매월은 허리에 두른 행주치마에 물젖은 손을 문지르며 허홍대를 반겨맞았다.

《아이구, 허선생 오셨네요. 방으로 어서 들어가셔요.》

마디마디에 정이 똑똑 흐른다. 대번에 속이 느긋해진 허홍대는 오매월의 해반주그레한 얼굴이며 날씬한 허리를 아래우로 욕심스레 훑어보면서 뜨직뜨직 대답했다.

《늘 홍부직장장의 신세를 져서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 내외를 모셔가자고 들렸수다.》

녀석, 매월이두 보구 한잔 생각두 나서 기신기신 찾아와가지구선 뺑덕에미 심봉사 업어넘기듯 하려드는군.

허홍대의 얕은 수를 빤히 들여다본 홍학주는 혀를 찼다.

《아이구, 말씀만 들어두 고마워요. 이왕지사 오신 길이니 재미난 얘기나 하면서 한잔 하시구 가셔요. 소털같이 많은 날에 허선생네 집에는 후날 가두 되잖나요. 오늘만 날이 아닌데요 뭘.》

김이 뽀얗게 서린 부엌에서 한달음에 달려나온 오매월이 방긋방긋 웃으며 살그머니 등을 밀고 방안에선 홍학주가 가방을 당기는터여서 허홍대는 못이기는척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인차 주안상을 차릴테니 잠간만 앉아계셔요. 실장선생네 집만은 못할테지만요.》

《아니, 무슨 말을… 아주머니 음식솜씨를 누가 감히 당하겠기에…》

허홍대는 껄껄 웃었다.

《실장선생, 과찬 마세요.》

오매월이 눈에 애교를 띠우고 상냥스레 말하는데 홍학주는 담배와 성냥을 허홍대앞에 내놓고 레코드를 틀었다. 녀성독창가수의 노래소리가 위선이 찬 방안에 나직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허홍대는 담배를 붙여물고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홍형, 내 이제 여기로 오면서 아주 재미있는걸 구경했소.》

《재미난거라니요?》

홍학주가 물었다.

《글쎄 리억석이가 길가에서 강준호를 닦아세우는데 가관이였다오.》

《아니, 기사장이 길에서 강준호를 욕하더란 말요?》

홍학주가 쨉째부레한 눈을 크게 뜨며 반신반의해하자 허홍대는 물밖으로 아가미를 내밀고 공기를 마시는 붕어처럼 두툼한 입술을 넙죽넙죽하면서 가락지모양으로 내불던 담배연기를 훌 날려버리였다.

《그럼요. 잠간 서서 들어보니 욕도 이만저만한 된욕이 아닙디다. 강준호가 꿈쩍 못하고 서있는데 그 꼬락서니가 꼭 밭가운데 세워놓은 허수아비같더라니까요.》

《아이참, 어쩜. 세도가 당당하던 그 어른이 욕을 먹다니… 그것도 길가에서…》

오매월은 혼자 말하듯 중얼거리고나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간참했다.

《한데 욕은 왜 먹는가요?》

《강준호가 선수상갑판오작을 냈답니다. 그래서…》

허홍대는 부엌에서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오매월을 내려다보며 싱글거린다.

《기사장어른의 성미가 이만저만 급하지 않은가보죠.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서 욕하는걸 보면요.》

오매월은 속이 여간만 달콤하지 않았으나 아닌보살하고 혀를 찼다.

《아주머니, 그래서 리억석기사장을 〈곧은백이〉 혹은 〈땅크〉, 〈직선침로〉라고들 부른답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무지할정도로 자신을 다잡지 못하니까요.》

허홍대와 오매월이 찧고까불며 주고받는 말에 홍학주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리억석일 부채질하면 강준호와 류경훈, 류선화를 가운데 놓고 최주식이와 대판 대들이를 시킬수 있겠구나. 그러면 조선소 책임일군들사이가 버그러질게고 그 두사람관계가 나빠지면 그 밑의 녀석들도 자연 갈피를 못잡고 갈팡질팡할테지. 배도 제날자에 뭇지 못하게 될거야. 내 어쩌면 그런 생각을 미처 못했을가?

《그래, 허실장동문 강건너 불보듯 보고만 있었소?》

자기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한 홍학주가 빙그레 웃으며 흥미있는듯 물었다.

《내가 왜 보고만 있겠소? 철직되여 내려온 강준호를 동정해서 뭘 얻어먹을게 있다구. 그래서 리억석에게 저따위 인간속물은 왜 조선소에 받았는가, 조선소가 뭐 철직된 사람이나 받는 곳인가. 제구실 못하는 저런 사람들때문에 교시선박을 제 날자에 건조하지 못하면 어쩌는가고 따끔하게 말을 했지요.》

허홍대는 손세를 써가며 무슨 장한 일을 한듯 열을 올렸다.

홍학주는 말대가리같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허실장의 판단력에 내 진정으로 탄복하오. 어느때 보든 허실장은 모든 문제를 매우 예리하게 분석하고 해부하거든. 그런데 지배인은 말요. 오작문젤 놓고 강준호를 두둔하려든단 말이요.》

《모를 소리. 최주식이가 어떻게 강준호를 두둔한단 말요? 강준호가 국장을 할 때 그 두사람사이는 쥐와 고양이같지 않았소?》

《지난날엔 물론 그랬지요. 한데 오늘은 그를 비호하려들거든요.》

홍학주가 씩뚝거리자 허홍대는 개구리눈알처럼 툭 불거져나온 눈을 크게 뜨고 디룩거렸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게 사실이요?》

《아무렴 내가 허실장에게 거짓말을 하겠소? 갑판우에서 내가 강준호를 호되게 비판하니까 최주식이 나서서 내가 하는 말을 막 밀막더란 말이요.》

《원 세상에… 그게 뼈대가 있는 사람인가. 자기를 잡으려고 날치던 강준호를 감싸려들다니… 가정주위환경이 복잡한 녀편넬 데리고 살더니 계급성두 원칙두 다 줴버렸구만요.》

《그런것 같소.》

홍학주가 허홍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허홍대는 허옇게 앉은 담배재를 재털이에 탁탁 털더니 중요한 그 무엇이 생각난듯 홍학주앞으로 한무릎 다가앉으며 입을 열었다.

《아, 강준호를 두둔할 일이 있수다.》

《?》

홍학주는 호기심이 나서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볼상스런 박죽귀를 잔뜩 도사리였다.

《최주식이 강은주를 가까이 한다는 소문이 얼음판우의 팽이처럼 돌기에 무슨 그러랴 했더니 부직장장동무의 말까지 듣고보니 그게 공연한 소리가 아니였군요.》

《강은주를 가까이 해요? 은주야 김석홍령감의 아들 김찬이와 눈이 맞아 돌아가지 않소? 그래서 어느 중앙기관에서 일하는 간부의 아들도 마다했다고 하던데?》

홍학주의 말에 허홍대는 눈섭을 쭝긋거렸다.

《원, 홍형두. 그거야 낙지처럼 먹물을 뿜어 연막을 친거겠지요.》

《들어보니 따는 그렇기도 하오. 강은주가 김찬이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도 요즈음 가만히 눈치를 보면 서로 개닭보듯 멀리하거든. 그게 다 알속이 있어서였구만.》

《흠 그렇다니까요. 내 오늘두 볼 일이 있어 지배인방엘 잠간 들렸더니 강은주가 화장을 곱게 하구서 최주식이와 무슨 얘긴가 정답게 속살거립디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가니까 아닌보살하고 자리를 일었는데 글쎄 내가 옆에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주 오라거니, 오겠다거니 하질 않겠소.》

《아이구, 망칙두 해라. 처녀의 몸으루 어쩌면 여게 붙었다 저게 붙었다 할가. 그리구 지배인이 우리 집에 초청하는데도 안오기에 꽤나 청렴결백하구 도리에 밝은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까 속이 아주 엉큼한 사람이였군요.》

부엌에서 오매월이 비양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강은주와 최주식의 더러운 관계를 들으니 속이 다 메슥메슥해지오. 주안상이 되였으면 어서 들여오오.》

홍학주가 독촉했다.

《알겠어요.》

오매월은 대답하고나서 술과 안주가 놓인 소반을 들고 방문턱을 넘어섰다.

레코드에서는 《봉선화》가 끝나고 《고향의 봄》이란 노래가 은은히 흘러나오고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