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생의 곡선
1
세월은 살같이 빠르다는 말이 우연치 않은것 같다.
뜻깊은 당창건 20돐을 기념한지 엊그제같은데 어느 사이 보름이 지나갔다.
현장지휘부에서 기사장 리억석, 계획지령장 주병삼, 계획부장 손병수들과 10월생산총화준비를 빈틈없이 한데 이어 새달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느라고 자정이 퍽 넘어서야 두어시간가량 눈을 붙였던 최주식은 습관대로 조선소내직장들과 구내를 한바퀴 쭉 돌아보고나서 선박완성직장앞 방파제우에 가섰다.
맑은 날씨를 예고하는 우유빛 안개가 너른 서해를 이불마냥 포근히 덮고있었고 일찌기 잠을 깬 몇마리의 갈매기가 끼륵거리며 유유히 날아예고있었으며 바다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오고있었다. 조금있으면 불덩어리같은 해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바다에서 불끈 솟아오를것이다.
최주식은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그것은 일기탓이나 갈매기의 정겨운 울음소리,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나 바다바람때문이 결코 아니였다. 10월 10일까지 년간계획을 앞당겨 완수한 조선소가 기세충천하여 한껏 내닫고있기때문이였다. 난문제로 나섰던 설계며 선대확장공사며 기중기조립이 이미 성과적으로 끝난터여서 최주식은 배무이에 총력량을 집중했다. 그렇게 되니 새형의 선박건조가 비온뒤 대나무마냥 분초가 다르게 으쓱으쓱 키돋움을 하는것이였다. 그중에서도 《지상확대식배무이조립방법》이 큰 은을 내고있었다. 이대로 일을 밀고나간다면 어버이수령님께 맹세올린대로 1년안짝에 능히 진수보고를 드릴수 있다고 최주식은 확신했다. 그는 힘이 솟고 용기가 백배했다. 조선소를 떠났다가 되돌아온 기능공들이 일을 열성껏 했다. 그들은 자기들을 다시 조선소로 불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날이 흐를수록 배무이에 창조적힘을 쏟아붓는것이였다. 새 세대들은 새 세대답게 배무이기술과 기능을 부단히 습득하면서 조선소의 대들보로 착실히 준비해가고있었다. 이제 그들은 새형의 선박건조과정을 통해 자신들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뿐아니라 배무이기술도 한계단 높이 올려세울것이였다.
최주식은 거창한 바다가 가볍게 떠올리는 황금빛 해를 감회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한 그의 머리에는 기사장으로 이곳에 임명되여 지배인으로 된 오늘까지 있은 일들이 새삼스레 얼핏얼핏 스쳐지났다.
그는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맡은 직무를 잘 수행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시금 굳게 다짐하면서 뒤로 돌아섰다.
생신한 아침을 맞이한 조선소는 활기에 넘쳐있었다. 기중기를 부르는 야무진 호각소리, 벽체보다 몇갑절이나 큰 철판을 물고 곧게 뻗은 두줄기의 레루를 따라 윙윙거리며 신이나게 오가는 문형기중기와 왁새기중기소리, 쉭쉭거리는 모래분사기소리, 붕붕거리는 용접기소리, 가위로 엿가락을 자르듯 순식간에 두터운 철판을 뭉청 잘라내는 대형철판절단기소리, 기관단총을 쏘아대듯 따르륵거리는 면따기소리…
최주식은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이 낳은 조선공들의 거대한 창조적열정과 무궁무진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악같은 랭장운반선의 선체가 상가대우에 위엄있게 놓여있는 선박완성직장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가슴속에선 솟구치는 분수마냥 누를수 없는 희열이 뿜어올랐다.
그는 기업소 예술소조원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저도 모르게 입속으로 흥얼거렸다.
갈매기 날아예는 정다운 바다가…
배밑에 이른 최주식은 노래를 뚝 그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현측에 기대놓은 쇠사다리곁에서 곤색작업복을 입은 강은주가 눈굽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왜 그러오?》
강은주의 곁으로 다가간 최주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흠칫 놀란 강은주는 눈가에서 얼른 손수건을 내리웠으나 멋적은듯 인차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활달한 강은주가 어째서 혼자 울고있을가? 도대체 무슨 일이 그를 울릴가?
그때 갑판우에서 최주식의 의문을 풀어주듯 성난 목소리가 바다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이건 뭐 손가락으로 한거요 발가락으로 한거요?》
《…》
《그래 눈은 가죽이 모자라서 째놓은건가. 선박부문에서 내노라고 으시대던 당신들, 지난날의 관리국장과 고급기능공이 그래 이렇게 일을 해?》
《내가 잘못했다지 않소.》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면 다요?》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로 상대방을 호되게 질책하는것은 홍학주의 목소리였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웅얼웅얼 대답하는것은 강준호의 목소리였다.
최주식은 강은주가 왜 울고있는가를 간파하자 더는 물을 념을 않고 뒤로 돌아서서 쇠사다리의 계단을 성큼성큼 짚으며 갑판우로 올라갔다.
홍학주가 병아리를 덮치려는 독수리기상으로 강준호를 날카로운 눈길로 쏘아보며 오만한 자세로 떡 버티고 서있고 훌렁훌렁한 작업복을 입어 더 체소하고 초췌해보이는 강준호는 매한테 쫓기운 까투리처럼 작은 머리를 좁은 두어깨사이에 잔뜩 틀어박고 기운없이 서있다.
최주식의 뇌리에는 지난날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그전날 강준호가 국장을 할 때 홍학주는 낯간지럽게 알랑거리고 갑삭거리면서 그를 얼마나 개올렸던가. 그리고 강준호는 례의 그 굵은 목소리로 껄껄거리며 얼마나 기고만장해하고… 한데 처지가 달라진 지금은 이들의 행동거지며 말본새가 너무나도 판이하였다.
최주식은 어제날 원만하게 사업하고 옳바르게 생활하지 못한 강준호의 처사가 역겹기 그지없었으나 홍학주가 철직되여내려온 그를 지지리 짓밟고 마구 뭉개려드는것을 보자 웬일인지 강준호에 대한 동정과 련민의 정이 생기면서 홍학주에 대한 노기가 홍두깨처럼 욱 치뻗쳐 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강준호가 지난밤에 어떤 일을 저지른지 모르겠으나 홍학주가 어쩌면 이렇게도 무지하게 미친개 몰듯 강준호를 몰아대며 닦아세울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때문에 그러오?》
최주식은 당장 터져나오려는 분을 가까스로 누르고 낮으나 엄한 목소리로 따져물었다. 그제서야 자기곁에 최주식이 온것을 안 홍학주는 허리를 깊이 굽히며 《지배인동지 나오셨습니까?》하고 상냥하게 인사말을 건늬였다. 그리고는 조금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기염을 토했다. 최주식이와 강준호의 지난날 관계를 손금보듯 알고있는 그는 이때가 두사람의 간격을 최대로 넓힐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 모양이였다.
《지배인동지, 이 알량한 량반이 글쎄 간밤에 류경훈아바이랑 같이 하는 선수상갑판오작을 냈습니다. 성에 있다가 떨어져 내려왔으면 응당 채심을 하고 일을 실속있게 해야겠는데 영 회심하는 티가 안보인단 말입니다. 일을 그르쳐놓고도 오히려 제편에서 떽떽거리는게 국장을 할 때와 조금치도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분수없는 사람이 지난날 어떻게 국장까지 하였는지 참…》
최주식은 듣기가 거북하여 미간과 이마살을 찡그리며 홍학주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만하오.》
했으나 홍학주는 입을 다물지 않고 한술 더 떴다.
《지배인동지, 이건 절대로 소홀히 하거나 스쳐지날 일이 아닙니다. 문제를 되게 세워야 합니다. 제 날자에 수령님의 교시선박을 뭇지 못…》
《그만하라지 않소.》
최주식이 더는 참을수 없어 어성을 높이자 홍학주는 볼편을 실룩거리며 《알겠습니다. 그만하라면 그만하겠습니다.》하고 비양기어린 목소리로 퉁명스레 대답하더니 뒤로 획 돌아선다.
최주식은 홍학주가 찌뿌둥한 낯으로 씨근거리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마뜩잖은 눈길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강준호에게 물었다.
《국장동지, 일이 어떻게 된겁니까?》
자기가 그렇게도 믿었던 홍학주에게 무지한 구박을 당하면서 머리를 푹 숙이고있던 강준호는 최주식에게서 따스한 정을 느끼자 잔약한 어깨를 떨며 참고참았던 설음과 괴로움을 눈물에 담았다.
최주식은 문득 외국에 가서 병을 완전히 치료받고 지배인으로 조선소에 온 다음날 강준호를 집에 초청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 강준호는 최주식의 뜨거운 마음을 깊이 느낀모양 검소하게 차린 식상앞에서 흐느껴 울며 이렇게 말했었다.
《지배인동무, 고맙소. 난 지배인동무가 날 이렇게 따뜻이 대해줄줄은 정말 몰랐소. 홍학주며 허홍대는 물론 은주마저도 날 쓴외보듯 하고있는데말요.》
최주식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눈가로 수건을 가져가던 그날의 강준호를 돌이켜보며 《국장동지!》하고 불렀다. 강준호는 숙였던 머리를 들고 얼핏 최주식을 올려다보고나서 다시금 눈을 내리깐다.
《지배인동무, 제발 말을 낮춰주오. 내가 이제야 무슨 국장이겠소. 의리를 저버리고 제앞의 일도 제대로 못하는 조선공인데… 그저 강동무라고 불러주오. 부탁이요.》
그는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씹어삼킨다.
《하긴 이번 일은… 내가 전적으로 잘못했소. 류경훈동무에겐 잘못이 없소.》
《그럼 국장동지가 오작을 낸게 사실이란 말입니까?》
《사실이요. 한데…》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입을 봉한다.
왜 그럴가? 어째서 말을 하려다 그만둘가?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은데…
《할 말이 있으면 터놓고 하십시오.》
《아니, 할 말이 없소. 죄지은 놈이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말을 한대야 구구한 변명으로나 되지…》
《?》
최주식은 서리맞은 풀잎마냥 기가 푹 꺾인 그의 초라한 모습을 대하자 지난날 그리도 도고하던 강준호가 옳긴 옳은가싶어지면서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상갑판도면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에 있소.》
최주식은 도면을 보고나서 웃주머니에서 노란색칠을 한 나무접이자를 꺼내들고 상갑판의 길이를 재보았다. 도면보다 철판의 길이가 무려 50센치나 짧아졌다.
이럴수가 있나? 아무리 도면을 헛갈려본다 한들 반메터나 작아지게 절단하다니?…
《도면의 요구대로 제작한것이 이렇게 되였단 말이지요? 수치는 잘 보입니까?》
최주식이 따져묻는 말의 뜻을 알아챈 강준호는 시꺼매진 얼굴을 가득 채우다싶이한 금테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띠염띠염 대답했다.
《잘… 보이구말구요. 중요한 일감이기때문에… 류경훈동무와 몇번씩이나 도면의 수치를 확인하고 제작했소.》
《?》
최주식은 다시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배무이에서 두번째 손가락에 꼽으면 나무람할 강준호와 류아버님이 오작을 내다니? 선박건조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만 선수상갑판제작은 더 중요하다. 그래서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있는 조선공, 책임성이 있는 일군을 일에 붙이는것이다. 강준호와 류경훈을 믿고 선수상갑판제작을 맡긴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된다. 그런데 그들이 도면의 수치를 재삼 확인하고 제작했음에도 오작을 낸것이다.
최주식의 머리에는 문득 현도장사고가 떠올랐다.
혹시 어떤 놈이 이들을 모함하려고 작간을 부린것은 아닐가?
최주식은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직장장들의 모임시간이 이제 반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기술과 기능을 겸비한 강동지나 류아버님이 선수상갑판을 오작낸건 돌이킬수 없는 수치입니다. 조선소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맡은 중요한 일인데 오작을 내다니요.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최주식은 뒤를 누르고 돌아서자 직장장들이 기다리고있을 자기 방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놓았다. 손에는 둘둘 만 상갑판도면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