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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화가 집에 들어서니 차씨는 정호일이를 끼고 아래방에서 가는 코를 골며 쉬고있었고 최주식은 웃방에서 탁상등을 켜놓고 무슨 책인가를 열심히 보고있었다.

《여직 안주무시고 책을 보세요?》

류선화는 입가에 애써 웃음을 띠우고 나직한 목소리로 다정히 물었다.

《당신없이 잘수가 있소?》

보던 책을 덮으며 롱을 하려던 최주식은 류선화의 얼굴색이 밝지 못한것을 보자 곧 어조를 바꾸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아무 일도 없었어요.》

류선화는 태연해보이려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통찰력이 예민한 최주식은 류선화의 편안치 않은 마음을 제꺽 낌새채고 홍학주가 지함을 순순히 받던가고 따져물었다.

류선화는 홍학주내외가 자기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시비질하던 소리는 심중에 묻어두고 그밖의 사실만을 간추려 이야기했다.

《저… 자기들의 성의를 그렇게 무시하는법이 어디 있느냐며 몹시 서운해하더군요. 전… 그들과 긴 말을 하고싶지 않아 그냥 돌아서 왔어요. 한데 또아리를 만들어 이고갔던 머리수건을 그만 그 집에…》

《그것때문에 그러오? 그까짓게 뭐라구?》

최주식의 너무나도 범상한 말에 류선화는 살풋이 내리깔았던 눈을 치떴다.

《그게 뭐라니요? 결혼식때 당신이 저에게 기념품으로 준건데…》

류선화는 자기의 무거운 마음을 머리수건으로 돌린것이 다행스러워 한숨을 내쉬였다.

《여보, 사람은 옛 사람이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이 있지 않소. 내 머리수건을 새것으로 사주겠소.》

최주식은 둥그스름한 얼굴에 빙긋이 웃음을 담았다.

류선화는 최주식의 따스하고 살틀한 정이 온몸에 느껴지자 마음이 너누룩해질대신 웬일인지 더더욱 무거워졌다.

《그건 그렇고…》

최주식은 웃음을 거두고 말끝을 길게 뽑았다.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합숙생활을 시키겠소? 집으로 모셔옵시다.》

《아니, 그건 안돼요.》

류선화는 딱 거절했다.

《호일이를 데려온것만 해도 뭣한데 아버지까지 모셔오다니요? 더우기 어머니가 계시는데…》

《호일이를 데려온것이 그래 어쨌단 말이요? 전사한 혁명동지의 아들을 우리가 키워주는것이 잘못인가?》

《일부 사람들은 당신처럼 생각질 않나봐요.》

《원 참, 구데기 무서워 장못담구겠소? 남들이야 뭐라든 호일이를 키우는것은 우리의 도리이며 의무가 아니요. 난 당신이 처녀의 몸으로 10년 남짓이나 호일이를 꿋꿋이 키운 그 마음에 정말이지 탄복하고있소. 한데 당신답지 않게 그런 말을 하다니…》

《이보세요, 하지만 아버지를 모셔오는 문제는 사정이 달라요.》

《아니, 어머니가 계신다고 못모셔온다는 법이 어디 있소?》

《물론 그런 법은 없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못모셔와요. 아버지도 오겠다고 하질 않을거예요.》

《좋소. 그럼 아버지문제에 대해선 내 다른 방도를 취하겠소. 새 가정을 이루어드리든가…》

《…》

류선화는 목이 메여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결혼을 갓 했을 때는 최주식이 오직 배무이밖에 몰랐는데 몇달이 지난후에는 가정과 조선공들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는것이였다.

류선화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달아오르면서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여보, 왜 그러오? 내 말이 잘못되였소?》

최주식은 눈굽을 훔치는 류선화를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잘못되다니요? 너무 행복해서 그래요. 글쎄 저같은게 뭐라고 그리도 살틀히 생각해주시나요?》

《당신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누굴 생각하겠소.

준엄한 화선의 그날부터 내 마음속에 고이 자리잡고있는 선화인데… 세상 모든것이 다 변해도 당신에 대한 내 사랑만은 결코 변하지 않을거요.》

최주식은 껄껄 웃었다.

《난 선화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것만 같아 늘 송구한 마음을 금할수가 없소.》

그때 아래방에서 호일이의 잠꼬대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어머니, 나 오늘도 물리시험에서 5점을 맞았어요.》

《허허… 녀석두 꼭 깨여있을 때처럼 말하는군.》

최주식은 만족스런 웃음을 웃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보, 호일이말이요. 어째 그런지 어디선가 수태 본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요.》

《같이 살아 정들어 그렇겠지요 뭐.》

《그럴가?》

《그럴거예요. 사람은 정이 들면 이미 오래전부터 친근한 사이였던것처럼 느껴지는 법이 아닌가요.》

《그건 그렇소. 그러나 호일이는 그렇지 않은것 같소. 꼭 누구인가와 모습이 비슷한것 같단 말이요. 그건 이제 드는 느낌이 아니요. 령대탄광에서 호일이를 처음으로 만나보았을 때도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소.》

최주식은 류선화에게서 눈을 떼고 어둠에 잠긴 창밖을 내다보며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세파속에 묻힌 인상은 사막의 신기루마냥 아리숭하기만 할뿐 딱히 떠오르지 않는것이였다.

《자정이 넘었는데 이젠 주무세요.》

《그러기오.》

류선화의 정어린 말에 최주식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호일이의 얼굴이 눈앞에서 자꾸만 가물거려 인차 잠들지 못하고 한동안이나 몸을 이리저리 궁싯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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