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새 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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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식은 부임인사를 하러 영포조선소 당위원장 리윤종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우에 무득히 쌓아놓은 문건중에서 무슨 문건인가를 펴놓고 열심히 들여다보고있던 리윤종이 최주식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온다는 전화를 며칠전에 받았습니다. 우리 조선소의 책임적인 행정일군들이 오래동안 자리를 비우고있는데다 나라는 사람마저 일을 쓰게 못하다보니 조선소 일이 신통하게 되여나가질 않고있습니다. 그래서 기사장동무가 오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가 자기의 심정을 허심하게 털어놓았음에도 최주식은 어찌된 일인지 리윤종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리윤종의 광대뼈가 두드러진 갱핏한 얼굴이며 상대방의 심리를 투시해보는듯싶은 예리한 눈길때문인지도 모른다.

《잠간만 기다리십시오. 내 보던 문건을 마저 보고 함께 현장을 나가봅시다. 일군들과 인사도 나누고…》

그가 문건에 눈을 주는데 책상우에 놓인 전화기가 따르릉 울리였다. 시당에서 온 전화였다.

《당위원장 리윤종입니다. 문건을 빨리 들여오라구요? 알겠습니다.》

최주식은 리윤종이 한창 바쁜 시간에 자기가 들어왔음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위원장동무, 현장은 내 혼자 돌아볼테니 어서 일을 보십시오. 나야 이젠 여기 사람인데 사업얘기는 후에도 얼마든지 할수 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리윤종은 최주식을 더 붙들지 않았다.

모두의 기대가 큰데 내가 제대로 일을 해낼수 있을가.

당위원장 리윤종의 방을 나와 3층계단을 내려가던 최주식은 상의우에 밤색작업복을 덧입고 마주 올라오는 생산부기사장 리억석을 만났다.

보통키보다 좀더 큰 키에 몸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리억석은 최주식을 보자 철부지 아이마냥 청사가 들썩하게 환성을 올리며 와락 껴안았다. 전쟁시기 해안도시를 함께 해방시킨바 있는 그들은 이미 구면이였다.

《아니, 이게 〈호랑이소대장〉이 아니요? 무슨 바람이 불어 동해에서 서해로 날아왔소?》

《〈직선침로〉가 보고싶어서 왔지요. 그새 잘 있었소?》

최주식이도 벙글거리며 그를 뜨겁게 포옹했다.

《잘 있구말구. 자 내 방으로 가기요.》

리억석이 최주식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니, 방엔 후에 가보기요. 지금은 현장엘 좀 나가봐야겠소.》

최주식은 웃으며 거절했다. 한시바삐 현장을 료해하고싶었던것이다.

《현장을 샅샅이 〈정찰〉하구서 뭘 빼갈 작정이구만. 좋소. 그럼 내 안내하지.》

《안내는 무슨…》

《아니요. 우리 조선소에 와서 혼자 돌아다니다간 각성높은 조선공들한테 걸려 된경을 치르오.》

말을 듣고보니 딴은 그렇기도 했으나 최주식은 이번에도 그의 말을 일축했다.

《그건 일없소. 내 혼자 돌아보고 리동무한테 곧장 갈테니 지금은 자기 볼일을 보오.》

《자, 이런… 이 〈직선침로〉를 손님맞을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는게 아니요? 그러지 말고 어서 같이 나가보기요.》

워낙 대방의 청을 거절하는것은 실례로 된다. 하물며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지간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최주식은 리억석이 얼굴에 웃음을 담고 너무도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자기의 주장을 철회했다.

《그럼 동무 좋을대루 하기요.》

《벌써 그랬어야지.》

두사람은 껄껄거리며 청사를 나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섣달의 맵짠 바람이 그들의 옷깃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으로는 하얀김이 내불린다.

리억석은 청사와 문화회관사이에 놓인 눈에 덮인 운동장을 꿰질러 단조직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 조선소에서 무에 제기되오?》

최주식은 싱글벙글 웃었다.

《서슴없이 말하오. 내 다 풀어줄테니… 전우가 이런 때 도와주지 않구 어느때 도와주겠소.》

《말만 들어도 고맙소. 하지만 뭐… 딱 걸리는게 있어서만 오는게 아니지.》

《아니, 그럼 우리 조선소 구경을 왔단 말이요?》

리억석의 눈은 둥그래졌다.

최주식은 이곳 조선소로 조동된 사실을 그에게 언제까지나 가무리고있을수가 없어 몇걸음을 걷다가 정색해서 기사장으로 임명되여왔노라고 했다.

리억석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다. 그는 최주식의 손을 힘있게 잡아흔들며 웨치듯 말했다.

《진작 그렇게 말할게지. 만나자마자 사람을 감쪽같이 업어넘기는 법이 어디 있소?》

《업어넘기긴. 참… 얘길 들으니 리동무가 수고를 많이 하고있더구만.》

《수고는 무슨… 하지만 혼은 났소. 지배인도 기사장도 없고보니 모든게 내 어깨우에 실리는게… 그러나 이젠 한시름 놓이요. 정말이지 마음이 든든해진단 말이요.》

《허허 참, 날 너무 믿지 마오. 내가 아는거란 쥐뿔만큼밖에 안되오. 앞으로 많이 도와주오.》

《지나친 겸손성은 교만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자신을 너무 낮추지 마오. 하지만 내 힘자라는껏은 돕겠소.》

최주식은 리억석의 시원시원하고 가식없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무릇 인간이 가져야 할 장점중의 하나가 솔직성이 아닌가. 솔직한 인간은 정의감이 강하다. 정의감이 강하다는것은 배심이 있고 매사에 진취적이라는것을 의미한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창창한 바다에 배를 무어 띄우는 조선업은 더더구나 의지가 강하고 열정적인 일군, 만난앞에 주저와 동요를 모르는 철의 일군을 요구한다.

최주식은 벙글거리는 그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직선침로》인 리억석이, 바로 이런 일군들에 의거하여 앞으로 사업을 전개해나가면 못해낼 일이 없을상싶기도 했다.

《꼭 그래주오.》

두사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년말의 단조직장은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단조공들의 드높은 숨결을 말해주듯 로에서는 거세찬 불길이 이글거렸고 1t마치와 5t마치들이 모루우에 놓인 시뻘겋게 단 쇠덩이를 떡 주무르듯 승벽내기로 조겨댔다.

그들은 단조직장을 나와 주물, 공무, 의장품, 동력, 현도, 기계직장들을 차례로 돌아보고 선체가공직장으로 향했다.

회관앞으로 난 길을 걷던 최주식은 뒤에서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요란스레 부르릉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구내 기본도로라고 볼수 있는 기계직장 앞길에는 적재함을 따고 철판을 만재한 《승리 58》형 화물차와 기다란 산형강을 가득 실은 《자주호》가 이마를 마주 대다싶이하고 서있는데 운전사인듯 한 두 사람이 팔을 내흔들며 어성을 높이고있었다. 아마 길이 좁아 비키기 힘들어 그러는것 같았다.

《잠간만 기다리오. 내 가보고 오겠소.》

리억석은 말을 맺기 바쁘게 그곳으로 달려갔다.

《여, 〈자주호〉, 동무가 몇m 뒤로 뽑으면 되잖아!》

리억석이 큰소리로 웨치자 《자주호》운전사는 볼이 잔뜩 부어 《자 이거야 어디 해먹겠나? 이 골목에만 접어들면 매번 이 모양이니…》하고 투덜거리며 운전칸에 뛰여올라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자주호》는 역증이 난듯 시커먼 가스를 왈칵 내뿜는다.

《승리 58》형 운전사는 자기를 도와준 리억석에게 허리를 굽석하며 《생산부기사장동지, 고맙습니다.》하더니 싱글거리며 차에 올랐다.

최주식은 두 운전사를 떼말리고 온 리억석에게 물었다.

《저런 일이 자주 있소?》

《드문하오.》

리억석은 신임기사장에게 못볼것을 보인듯 맹랑한 웃음을 웃고나서 가던 길을 걸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해엔 이런 일도 있었소.

현장에 철판이 딸려 쩔쩔매는데 철판을 실으러 역에 나간 차가 어디 와야지. 역에 알아보니 떠난지 오랬다는거요. 그래서 난 〈분명 도중에서 고장이 난 모양이구나.〉하고 생각하며 역으로 향했소. 그런데 웬걸… 조선소 정문안, 구내도로를 얼마쯤 들어와서 이제처럼 철판과 협동품을 만재한 두 화물차가 서로 어기지 못해 애를 먹고있더란 말요. 그런데 가관인건… 한 운전사는 앞차가 빠지기를 기다리다 못해 운전칸에서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오. 6면까지 다 보았는데도 앞차는 아직도 빠지지 못했더라지. 그래 가까이 가보니 그 운전사도 운전칸에 비스듬히 누워 부피 두터운 장편소설을 보더라나…》

최주식은 혀를 찼다.

구내도로가 좁은탓에 차마 웃지 못할 일까지 있었댔구나. 그러니 배무이에는 얼마나 지장을 주었을가.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선체가공직장에 들어서니 저예망선의 건조가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키가 꺽두룩한 탑식기중기며 왁새기중기들이 철판과 산형강을 물고 긴팔을 휘두르며 기운차게 오가고있었고 배우에서는 면따기(곡낑)기계가 따발총을 쏘듯 따르륵거리고있었다. 산형강을 교정하는 함마질소리, 쿵-철썩하는 철판절단기소리, 산소노즐(절단기)로 환강과 두터운 철판을 자르는 쉭쉭소리, 솨솨하는 모래분사기소리, 새된 호각소리가 한데 어울려 작업장은 말그대로 치렬한 전투장을 방불케 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속담그른데가 없구만. 전쟁전엔 기중기 한두대가 겨우 서있었고 또 저기 선대가 놓인곳은 갈게가 우글거리는 감탕판이였는데…》

《그게 다 전후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설한거요.》

리억석이 긍지높이 말하였다. 그때 저쪽 기중기밑에서 2척기선저예망선의 현측을 가용접하던 청년이 용접면을 왼손에 들고 용접고대는 바른손에 들고서 기중기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 기중기, 기중기!》

어찌보면 용접공청년의 목소리는 역증에 차있는듯 했다. 기중기우에선 응대가 없었다.

《기중기!》

용접공청년이 다시 고함을 질러서야 기중기운전칸문이 열리고 빨간 머리수건이 나타났다.

《기중기, 기중기… 내 이름이 뭐 기중기인가요?》

갸름한 얼굴에 쌍겹진 눈의 아름다운 처녀가 뾰로통해서 오돌차게 내쏘았다.

아니, 기차칸에서 나와 2중창을 부른 처녀가 아니야?!

최주식은 류선화와 모상이 신통히도 같은 기중기운전공처녀를 알아보았다.

그럼 저 청년은 누굴가?

그의 머리엔 문득 사과구럭을 들고 찾아와 엉너리를 부리던 청년이 떠올랐다.

그렇지. 《밀양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던 동무로구나.

최주식이 머리를 끄덕이는데 용접공청년은 기중기운전공처녀의 뾰로통한 말엔 개의치 않고 다시금 시까슬렀다.

《기중기가 아니면 뭐야?》

《난 기중기가 아니라 기중기운전공 성임이예요. 박성임! 다시 기중기, 기중기하고 불렀다간봐요.》

《어랍쇼. 기중기운전공을 기중기라 불렀는데 어쨌단 말야. 그럼 존경하는 박성임동지!》

용접공청년은 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거 앉아서 무얼해? 철판을 똑똑히 들고있어야 용접을 제대로 할게 아니야. 안에서 거울만 들여다보고있으니 어디 용접인들 제대루 하겠어?》

처녀는 생트집을 거는 용접공청년이 얄미워난 모양 참대살처럼 꼿꼿해진 눈길로 쏘아부쳤다.

《아이참, 어처구니가 없네. 누가 거울을 본단 말이예요.》

《동무가…》

《싱검둥이처럼 놀지 말구 용접이나 제대로 하라요.》

이어 운전칸문으로 빨간 머리수건이 홱 사라졌다.

이기죽거리던 용접공청년은 그쯤한 말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헤벌쭉 웃고 격검선수들의 얼굴가리개같은 용접면을 쳐들었다.

《여보게 재수, 작업중에 무슨 쓸데없는짓인가. 그러다간 사고를 쳐. 롱담도 때와 장소가 있는거야.》

산형강을 교정하는 저쪽에서 악의없이 타이르는 석쉼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알겠어요. 아바이!》

윤재수는 덴겁을 한듯 기린의 목처럼 잔뜩 빼여들었던 목을 자라목처럼 움츠리고 용접면을 얼른 뒤집어쓰더니 기중기운전공처녀를 언제 시까슬렀던가 싶게 붕붕 용접을 하기 시작했다. 하얗고 빨간 불꽃들이 축포마냥 피여올랐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내린다.

(거 누군지 참 대바른 말을 하는걸.)

최주식은 관심을 가지고 석쉼한 목소리가 날아온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그러한 그의 어글어글한 눈은 대번에 기쁨으로 빛났다.

《아니, 저기서 일하는 사람이 김석홍아바이가 아니요?》

《그렇소. 우리 조선소의 〈산 력사〉로 불리우는 제관공 김석홍아바이요. 저 아바이를 아오?》

리억석이 반문했다.

《아, 알다마다… 우리 아버지와 딱친구였소.》

최주식은 이렇게 대답하며 김석홍이가 일하는 제관작업장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뒤를 리억석이 따랐다.

최주식은 허리를 꺼꺼부정하고 일에 여념이 없는 김석홍의 옆으로 가자 하얀 토끼털모자를 벗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아저씨, 그간 안녕하십니까?》

일손을 놓고 허리를 편 김석홍은 최주식을 보자 대뜸 반색을 했다.

《아니, 이게 누군가? 〈항우〉의 아들 최주식이로구만.》

《그렇습니다.》

《〈ㅎ〉조선소에서 부기사장으로 일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머니랑 다 무고하신가?》

《무고합니다.》

리억석이 두사람의 이야기에 끼여들었다.

《아바이, 우리 조선소에 기사장으로 왔습니다.》

《그래? 거참 잘되였구만. 앞으로 수고많겠네.》

김석홍은 선망과 기대에 찬 눈길로 최주식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이마에 깊숙이 패인 여러갈래의 굵고 가는 주름이 일시에 다 펴지는듯 했다.

《제대로 일을 해내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해내야지. 그래 오늘 왔나?》

《예.》

최주식의 대답에 리억석이 싱글벙글하며 오자마자 현장을 돌아보는 길이라고 주를 달았다.

김석홍은 머리를 의미있게 끄덕이고나서 물었다.

《어머니도 같이 왔겠지?》

《저 혼자 왔습니다.》

김석홍은 같이 올걸 그랬다며 서운한 기색을 지었다.

《어머닌 그럼 며느리와 함께 있겠구만. 자식들도 퍼그나 컸을테지?》

《자식들이라니요? 전…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습니다.》

최주식은 뒤더수기로 손을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뭐?! 아직두 장갈 안들어? 그럼 어머니 혼자 계신단 말인가?》

《예.》

김석홍은 최주식의 가정사에 대해 더 물어보려다가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아 말을 돌렸다.

《여보게, 내 지금 작업중이여서 그러는데 이따 저녁에 우리 집에 꼭 오게. 자네에게 보여줄것도 있고 그간의 회포도 나누구.》

최주식은 김석홍의 뜨거운 마음이 가슴무득히 안겨들어 눈시울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바이, 오늘저녁은 우리 집으로 청하려고 하는데요.》

리억석이 한발 나서며 그들의 말에 께끼였다.

《그건 안돼네. 꼭 우리 집으로 와야 해. 우리 마누라가 얼마나 기뻐하겠나, 부기사장, 자네도 같이 오라구. 알겠나?》

더는 고집을 부릴수가 없게 된 리억석은 머리를 끄덕여 수긍했다.

《아바이, 그럼 저녁에 갈테니 한상 푸짐히 차려놓으십시오.》

《암 그야 여부가 있나.》

최주식은 빙그레 웃는 김석홍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한후 리억석이와 선박완성직장으로 향했다.

그들이 완성되여가는 2척기선저예망선밑에 이르렀을 때 작달막한 키의 한 중년사나이가 구을듯 내달려왔다. 그는 리억석의 앞에 오자 허리를 깊이 구부려 인사를 했다.

《부기사장동지, 나오셨습니까?》

리억석은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나서 최주식에게 그를 소개했다.

《선박완성직장 부직장장 홍학주동무요.》

그리고는 홍학주를 보며 말했다.

《부직장장동무, 인사하오. 새로온 기사장동무요.》

홍학주는 리억석에게 인사할 때보다 허리를 더 깊숙이 굽히였다. 머리를 드는 그의 숭글숭글 얽은 네모진 얼굴에는 반가운 웃음이 한가득 어려있었다.

찬찬히 보니 개개의 얽음자리마다에서 웃음이 남실남실 피여나는것 같다.

《기사장동지,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배워주십시오.》

(인사성이 밝은 사람이군!)

최주식은 홍학주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날 많이 도와주오.》

《원, 아니할 말씀을…》

세사람은 배에 놓은 사다리를 타고 완성중에 있는 저예망선으로 올라갔다.

2중저밑에선 배관조립과 기관조립이 한창이였고 어창에선 도장작업이 진행되고있었다.

현장을 구석구석까지 깐깐히 돌아본 최주식은 홍학주의 인사를 뒤에 남기고 청사를 향해 걸음을 옮겨놓았다.

리억석이 현장을 돌아보니 어떤가고 물었다.

《신심도 생기고 어깨가 무거워도 지오. 그런데 내가 기사장직무를 꽤 수행할수 있을가 하는 위구와 불안은 어쩐지 좀처럼 가셔지지 않는구만.》

《너무 그렇게 생각지 마오. 아, 나같은게 다 기사장을 대리로 1년 가까이 했을라니… 한데 첫눈에 보건대 배무이가 어떻소?》

《글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는데 현 상태에선 배무이가 괜찮게 되고있는것 같구만. 조선공들의 열성도 높고…》

《그렇소? 하지만 1년전까지만 해도 2척기선저예망선을 잘 뭇지 못했소. 그래서 조선소를 찾아주신 수령님으로부터 심려의 교시를 받았지. 수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배를 아이들의 헌바지 깁듯 한다고 지적하시면서 몸소 그 해결방도를 일일이 가르쳐주시였소. 그후에 정신을 버쩍 차리고 내미느라고는 하지만 요구수준에 비해볼 때 아직도 거리가 머오.》

《배를 잘 무어야지. 력사가 있는 조선소인데 허술히 배를 무어서야 되겠소? 앞으로 배를 더 잘 뭇기요. 그런데…》

최주식은 걸음을 멈추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리억석을 바라보았다.

《현장을 쭉 돌아보고 제일 불만스럽게 생각되는건말요. 구내도로 폭이 좁은거요. 정문에서 하선장까지의 도로를 조선소에서 기본도로라고 볼수 있는데 리동무가 나서서 짐실은 차를 〈지휘〉해야 하니 배를 어떻게 빨리 무어낼수 있겠소. 그리구 길옆엔 가로수 하나 똑똑한게 없소. 잘 꾸리면 조선공들의 휴식터로 리용할수 있는 남산도 막 내버려두고… 가로수를 심고 남산을 공원으로 꾸리는것 같은 일은 봄에 가서 한다쳐도 구내도로 확장공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벌려야 할것 같소. 부기사장동무 생각엔 어떻소?》

리억석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최주식이가 현실을 보고 생각하는 품이 자기로선 도저히 따를바가 못된다고 여겨졌다. 숫제 자기는 배를 뭇는 일에 발목이 잡혀 팽이 돌듯 돌아갔는데 최주식은 도로를 쭉 뽑고 가로수를 심으며 남산을 조선공들의 휴식터로 만들자고 한다.

순간 리억석의 머리엔 곧고 넓게 뽑힌 시원한 구내도로며 그옆으로 하늘을 찌를듯 높이 자란 푸르싱싱한 아름드리 가로수며 점심시간이나 퇴근후에 조선공들이 웃고 떠들고 다정히 속삭이며 새소리, 매미소리 아름답게 울리는 남산공원에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활기넘친 모습이 상상되였다.

(최주식이 어쩌면 오자마자 그런 랑만적인 생각을 다 했을가.)

그는 최주식의 구상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동삼에 어떻게 구내도로확장공사를 벌린단 말인가. 더우기 긴장한 2척기선저예망선건조는 어떻거고…

리억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기의 속심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한번 해볼만 한 일이요. 아니, 꼭 해야 할 일이요. 그렇지만 땅이 얼고 눈이 강산을 하얗게 덮었는데 어떻게 당장 공사를 시작하겠소. 더우기 2척기선저예망선을 뭇는 일이 급한데…》

최주식은 도로공사안을 선뜻 지지해나서는 그가 고마왔다. 하지만 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조건과 환경, 때에 구애되여 겨울이 지난후에 일판을 벌리자는데는 불만이였다.

일이란 워낙 뒤로 미루기 시작하면 한정이 없는 법이다. 아마도 그래서 소뿔은 단김에 빼라는 말도 생겼을것이다.

최주식은 오자마자 자기의 주견을 너무 내세우는것 같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구내도로확장공사는 한시도 드틸수 없는 문제라 여겨져 세운 주장을 내밀었다.

《부기사장동무, 앞으로는 뭐 배뭇는 일이 적어질것 같소? 지금보다 더 많은 배를 더 크게 무어내야 할게고 그러면 일감은 더 많아질게요. 시작이 절반이란 말이 있는데 시작을 해보기요.》

리억석은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반대의사를 표시한대도 최주식이 좀처럼 물러설것 같지를 않다.

《기사장동무, 우리 그 문제를 당위원회에도 제기하고 참모회의에서도 토론해보는게 어떻소?》

《그게 좋겠구만. 그러기요.》

두사람은 마주보며 껄껄 웃고 청사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놓았다.

최주식이 리윤종의 방에 들어서니 그도 금방 시당에서 온 길이였다. 최주식은 현장을 돌아본 느낌을 얘기하고나서 구내도로확장공사를 당장 시작했으면 좋을것 같다고 했다.

리윤종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최주식의 열에 떠 불깃한 얼굴을 찬찬히 보며 《당장 말이지요?》하고 물었다.

최주식은 그렇노라고 확답했다.

(허참, 남은 연구해볼 시간적여유도 주지 않고 자기 생각이 확정적인듯이 내미는걸 보니 주견이 여간만 강하지 않군.)

주대가 있고 내밀성이 있는 일군을 좋아하는 리윤종은 최주식이 흠뻑 마음에 들었으나 그런 속내는 내비치지 않고 말을 꺼냈다.

《기사장동무, 긴급한 저예망선건조과제를 끝내고 동삼이 지나 땅이 녹은 다음에 도로공사를 벌리자는 리억석부기사장동무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낮에 배를 뭇고 하루일이 끝난 뒤에 언땅을 파헤치는 일이 쉽지 않겠는데요.》

《?》

최주식은 대답을 하지 않고 리윤종의 랭담한듯싶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리윤종이 진정에서 하는 말인가 생각되여서였다. 어쩌면 진심에서 하는 말같기도 하고 어쩌면 자기의 결심을 한번 더 들어보려고 하는 말같기도 했다.

땅이 녹은 다음에 공사를 벌리면 물론 지금보다 쉽게 일할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조건에 구애되여 뒤로 미루는건 일군이 지녀야 할 품성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 최주식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위원장동무, 부임해오자마자 현장을 돌아보고 내 주장만을 너무 내세우는것 같은데 도로확장공사는 배무이 못지 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절대로 차요시하거나 등한히 할 문제가 아니지요. 말이 난김에 몇마디 더 하면 도로확장공사는 실상 이미 했어야 할 일이지요. 난관에 구애되여 일을 뒤로 미룬다는건 죄악입니다. 도로를 넓게 뽑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큰 배를 무을수 있겠습니까. 구내도로확장공사는 장래 우리 선박공업발전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것입니다. 부기사장동무에게도 현장을 돌아보면서 얘길했지만 봄철에 가면 배무이 일이 적어질것 같습니까?》

《…》

《그리고 도로확장공사를 하는데는 기술적으로 크게 문제시되는것이 없습니다. 직장별로 구간을 분담하고 종업원들이 몇m씩 언땅을 파내면 되는거지요.》

(배심이 있는 일군이야. 당위원회에서 잘만 뒤받침해주면 모가 나게 일을 해내겠어.)

《기사장동무, 나도 오늘밤 생각을 좀 해봅시다. 당위원회성원들과도 토론을 해보고… 한데 일단 문제가 결정되면 끝까지 내밀어야 합니다. 내가 제일 질색하는것은 일을 시작해놓고 중도반단하는겁니다.》

《당위원장동무, 그건 앞으로 두고보면 알게 아닙니까.》

최주식은 리윤종이가 매사에 여간만 신중하지 않은 당일군이라는것을 대번에 느꼈다.

겉보기엔 몹시 까다로워보이고 융통성없고 뚝뚝해보이는데 실은 그렇지 않은것 같군.

그는 책상우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 붙여물며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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