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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전 한낮이였다. 날은 유난히 맑고 청명했다. 가없이 넓고 푸른 하늘에는 목화송이 같은 흰구름이 점점이 피여 가벼운 바람을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서히 흘러가고있었다.

이날 최주식은 송두성이와 함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배려하여주신 람홍색공화국기가 새겨진 특별비행기를 타고 낯설은 외국의 비행장에 내리였다. 비행장에는 그 나라 정부의 고위급 일군들과 원사이며 교수이며 박사인 아미르병원 원장 이싸꼬브가 미풍에 은발을 날리며 나와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존함으로 입원신청을 받자 이싸꼬브는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의학경험토론회에 가려던 계획을 단호히 포기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었던것이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 군의로 일한 송두성은 우리 나라에 의료단성원으로 나왔던 이싸꼬브와 구면이였다. 두사람은 반갑게 얼싸안았다.

인사가 끝나자 이싸꼬브는 긴장한 얼굴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안부를 물었다. 송두성이 그이께서는 건강하시다고 대답했다. 이싸꼬브는 우려와 위구로 굳어졌던 긴장을 일시에 날려보내며 입가에 웃음을 띠우고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렴 조선동지들이 존경하는 그이를 잘못 모실수 있을텐가.》

송두성은 만족해 하는 이싸꼬브에게 이번에 입원치료를 받게 될 최주식이라고 간단히 소개했다.

《아, 그렇습니까?》

이싸꼬브는 몇발자국 떨어져있는 최주식의 곁으로 가서 손을 힘있게 잡아흔들었다. 허나 잠시후 그의 기색은 비를 머금은 구름장마냥 어두워졌다. 최주식의 낯에 어린 병색이 영 말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최선생의 병명은 무엇입니까?》

이싸꼬브가 송두성에게 근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송두성은 세계적으로 볼 때 쇠퇴의 일로를 걷고있지만 의학부문에서는 여전히 공용어로 쓰이고있는 라틴어로 최주식의 병명을 알려주었다. 흠칫 놀란 이싸꼬브는 빨간색으로 《+》자표식을 한 고급중형뻐스를 향해 손짓을 했다. 눈처럼 하얀 위생복을 가뜬하게 입은 중년의 키 큰 사나이가 달려왔다. 이싸꼬브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소곤거리더니 《빨리 병원으로!》하고 지시했다.

최주식을 태운 뻐스가 앞서고 송두성이와 이싸꼬브가 탄 까만 승용차가 그뒤를 따라 곧게 뻗은 포석도우를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차창밖으로는 해빛을 받아 빛나는 황금빛 전야가 아득히 펼쳐져있었다. 전야에서 흥겹게 일하며 부르는 처녀들의 멋드러진 노래소리가 곡식익은 냄새를 한가득 실은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황금빛 전야만 끝이 없나요

        님그리는 내 마음도 끝이 없다오

        아 일터에서 정든 파랑눈이여

 

이싸꼬브는 가없이 펼쳐진 풍요한 전야에서 눈길을 떼고 송두성을 보며 나직이 물었다.

《국장선생, 내가 조선에 의료단성원으로 나가있을 때 사단병원에서 수술한 애숭이전사가 기억됩니까?》

《생각나구말구요. 어제 있은 일이런듯 눈앞에 선합니다.》

《그 전사의 운명이 그후 어떻게 되였는지 모르겠습니까?》

《왜 모르겠습니까. 그 전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사랑속에 병을 완치하고 군사대학을 나온 후 지금은 어엿한 조선인민군 련대장으로 일하고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싸꼬브는 기쁨에 넘쳐 부르짖고는 눈을 슬며시 감아버렸다. 그의 머리엔 잊을수 없는 가렬처절한 조선전쟁의 나날이 선히 떠올랐다.

1951년 여름.

의료단성원으로 조선에 나온 이싸꼬브는 어느날 송두성이와 함께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최전선으로 나가게 되였다. 그는 무등 기뻤다. 존경하는 그이의 탁월하고도 비범한 령군술을 직접 보게 된 까닭이였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이께서 최전선을 100여리 상거한 사단군의소에 송두성이와 이싸꼬브를 떨구셨던것이다.

《최전선은 선생들이 나갈만 한 곳이 못됩니다. 여기에서 나의 전사들을 좀 돌봐주십시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도 최전선으로 나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최고사령관동지의 신변이…》

이싸꼬브가 애원조로 어거지를 썼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껄껄 웃으시였다.

《난 일없습니다. 백만관동군도 날 어쩌지 못했는데 감히 미국놈들이… 선생들은 마음을 푹 놓고 여기 계십시오. 내 최전선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리겠습니다.》

그이께서 떠나가시자 이싸꼬브는 송두성이와 같이 군의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사단군의소에 입원해있는 환자들을 일일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마감환자를 보고 군의소장방으로 들어와 담배를 막 붙여물 때다. 땀으로 미역을 감은 단발머리 간호원이 군의소장방으로 다급히 들어오더니 깍듯이 거수경례를 했다.

《소장동지, 밖에 급한 환자를 후송해왔습니다.》

《빨리 들여오시오.》

환자를 들여왔다. 담가에 반듯이 누워있는 부상당한 전사는 나이가 스무살도 못되였을 애숭이 젊은이였다. 무명고지전투에서 키다리 미국놈을 십여명이나 총창으로 찔러눕힌 용감한 전사는 대퇴부와 가슴부근에 심한 총상을 입었는데 오는도중 출혈이 너무 심하여 낯색이 백지같았다. 이대로는 수술을 할수 없다는것이 밤에 불보듯 명백했다. 당장 수혈이 필요했다. 한데 사단군의소에 남아있는 혈장이 얼마 없었다. 군단병원에 갔다오는 사이면 전사가 잘못될수도 있었다. 아니, 잘못될수 있는것이 아니라 현상태와 조건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였다.

(조국의 촌토를 지켜 용감히 싸운 애어린 전사, 나라의 앞날을 떠메고나가야 할 젊은이의 삶이 풀잎에 맺혔던 한방울의 이슬처럼 사라져야 한단 말이지.)

이싸꼬브는 아연했다. 눈앞이 그믐밤처럼 캄캄해지면서 막바지에 이른 인간본능의 슬픔과 비감이 미여지는듯 한 가슴을 여지없이 자극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로 가져갔다.

《이싸꼬브선생, 왜 그러십니까? 몸이 편치 않습니까?》

송두성이 놀라 물었다.

《몸은 일없습니다.》

《그러면요?》

송두성이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금 따져물었다.

(원, 어쩌면… 죽음을 눈앞에 둔 애어린 전사를 보면서 이렇게도 태연히 물을수가 있담.)

이싸꼬브는 못마땅한 눈으로 송두성을 아니꼽게 흘겨보며 거칠게 대답했다.

《젊은 전사가 이제 몇시간후에 운명할것이 가슴아파 그럽니다.》

《이 전사가 죽는단 말입니까? 그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띠우고 맺고 끊듯 말하는 송두성을 보며 이싸꼬브는 몸을 흠칫했다.

《혈장이 없는데 어떻게 살릴수 있단 말입니까?》

《혈장은 비록 여기 없어도 이 전사는 꼭 삽니다. 수령님과 당을 위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용감히 싸운 이 애어린 젊은이는 절대로 죽지 않는단 말입니다.》

송두성은 확신에 넘쳐 말했다.

《그건 아마 송선생의 주관적욕망이겠지요. 살았으면 하는…》

《아닙니다. 주관적욕망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이 여기에 있는데 이 전사가 왜 죽겠습니까.》

이싸꼬브는 흔연스레 하는 송두성의 말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아 머리를 기웃거렸다.

《인민군군인들이 어떻게 사경에 처한 이 전사를 살릴수 있는지 전혀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리해하게 될것입니다.》

그때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벌어졌다. 수혈이 필요하다는것을 어떻게들 알았는지 사단군의소 군의며 간호원은 물론 쌍지팽이를 짚은 환자들까지 달려와 승벽내기로 팔을 걷어부치며 열정적으로 부르짖는것이였다.

《내 피를 수혈해주시오.》

《난 〈0〉형이요.》

이싸꼬브는 눈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 이래서… 이래서 전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송선생이 확신에 넘쳐 말했댔구나. 정녕, 얼마나 훌륭한 조선사람들인가!

그는 감동에 젖은 눈을 슴벅이며 저도 모르게 자기의 실한 팔을 걷어붙였다.

허나 군의소장과 송두성이 극구 만류했다.

《난 왜 안된다는거요?》

《글쎄 선생은 안됩니다. 의료단성원으로 자진해서 우리 나라에 온것만도 더없이 고마운 일인데 수혈까지 하다니요.》

이싸꼬브는 할수 없이 집도라도 하겠다고 나섰다.

《이싸꼬브선생, 감사합니다. 그러나 선생은 좀 쉬십시오. 집도는 내가 하겠습니다.》

군의소 소장이 웃으며 진중한 목소리로 그것마저 거부했다.

이싸꼬브는 자기의 성의가 너무나도 무시당한것만 같아 속이 탔다. 그래서 그는 부푸는 노여움을 삭이지 못하고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울분을 왈칵 토했다.

《너무합니다. 내가 의료단성원으로 조선전쟁에 자진해서 나온것이 무엇때문이겠습니까. 내가 무엇때문에 하많은 과학중에서 의학을 전공했겠습니까. 수술은 내가 하겠습니다.》

하여 이싸꼬브가 끝내 집도하게 되였다.

수술은 오래 걸렸다. 그때 전선시찰을 마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사단군의소에 다시 들리시였다.

암회색하늘에선 비가 내리고있었다.

대야로 퍼붓는 그런 비도 아니고 놋날 드리우듯 하는 비도 아니였지만 구멍이 송송 뚫린 가는 채로 치듯싶은 보슬비는 수술장이나 수술장밖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가닥의 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윽고 수술을 끝낸 이싸꼬브가 하얀 가제마스크를 벗고 넓은 이마에 송골송골 내밴 보슬비같은 땀을 훔쳤다. 그의 입가에는 힘든 수술을 원만히 해낸 기쁨의 미소가 담뿍 어려있었다. 수술장안의 사람들이 밝은 표정을 짓고 저마끔 수고했다는 인사를 할 때 송두성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싸꼬브선생,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선생의 수술이 끝나기를 아까부터 밖에서 기다리고계십니다.》

김일성동지께서요?》

놀라 묻는 이싸꼬브의 입가에선 미소가 가신듯 사라지고 경련이 인듯 입술이 경탄으로 바르르 떨리였다.

분초가 새로우신 그이께서 한 전사가 무엇이기에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계셨단말인가. 더우기 생사운명을 판가름하는 준엄한 조선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고계시는 그이께서…

이싸꼬브는 위생복을 벗을 사이도 없이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나갔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애어린 전사의 생명이 걱정되신듯 어깨에 우장마저 걸치지 않으시고 찬비를 맞으시며 군의소앞을 천천히 거닐고계시였다.

그이께서 입으신 수수한 군복은 가랑비에 후락하니 젖어있었다.

김일성동지!》

가슴이 화끈 달아오른 이싸꼬브는 목메여 부르짖었다.

그이께서는 이싸꼬브의 약내 풍기는 부드러운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그래 수술은 잘되였습니까?》

《무리없이 되였습니다.》

이싸꼬브는 높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정중히 대답올렸다.

《정말 수고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치하하시였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사단군의소에서 수술까지 할 생각을 하였습니까?》

이싸꼬브는 그이의 무랍없고 친절한 물으심에 자기가 느낀바를 가식없이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 저… 그것은… 조선동지들의 뜨거운 마음에 깊이 감동되여서입니다.…

저는 이 세상 그 어느 민족도 조선민족처럼 훌륭하지는 못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시며 그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시였다.

《선생이 옳게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우애심과 정의감이 아주 강한 민족입니다. 뿐더러 진리를 사랑하며 의리를 귀중히 여기고 동정심이 많으며 례절이 밝고 겸손한 품성을 가지고있습니다.》

끝없이 달리던 이싸꼬브의 생각은 《원장선생님, 병원에 다 왔습니다.》하는 운전사의 나직한 말에 동강이 났다.

송두성이와 이싸꼬브는 승용차에서 내리였다. 고급 중형뻐스를 타고 한발먼저 도착한 키가 큰 의사가 재빠른 걸음으로 이싸꼬브에게 다가왔다.

《어떻소?》

이싸꼬브가 그 의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매우 심합니다. 어쩌면 두세가지 병이 합쳐진것 같습니다.》

의사가 정중히 대답하자 이싸꼬브는 최주식을 빨리 진찰실로 안내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송두성에게 병원에서 채양이 제일 좋고 가장 훌륭하게 꾸린 최주식의 입원실을 보여주었다.

《입원실을 아주 잘 꾸렸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송두성의 말에 이싸꼬브는 흡족해했다.

《새로 꾸린 방이 마음에 든다니 고맙습니다.》

이싸꼬브와 송두성은 입원실을 돌아본 후 곧 진찰실로 가서 최주식을 깐깐히 진찰했다. 그 얼마뒤에 이싸꼬브는 송두성이와 함께 의사협의회를 진지하게 진행하였다. 병원의 이름있는 의사들은 과학적인 진단결과를 놓고 수술을 빨리 해야 한다는 의견을 일치하게 내놓았다. 그리하여 송두성의 립회하에 이싸꼬브가 직접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수술은 예상외로 오래 걸렸다. 마취제를 놓고 절개해보니 다른 병이 한가지 더 합병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무려 다섯시간에 걸친 힘겨운 수술끝에 이싸꼬브는 한껏 지쳐서 봉합을 하듯마듯 그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거퍼 여섯시간을 자고서야 깨여났다. 이싸꼬브의 풍부한 수술경험과 박식한 의학기술, 능란한 솜씨는 누구도 따를수 없으리만큼 높은 경지여서 수술은 아주 원만했다.

《난생 처음으로 그렇듯 어려운 수술을 했습니다. 며칠만 더 있었으면 참으로 큰 일이 날번 했습니다.》

이싸꼬브는 속심을 숨기지 않고 송두성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원장선생이 정말 수고했습니다.》

송두성이 진심으로 치하했다.

그날 저녁이였다.

송두성이 서쪽하늘가에 불처럼 타오르는 장미빛 노을을 바라보면서 최주식의 입원실에 앉아있는데 이싸꼬브가 전보용지를 들고 들어오며 아이들처럼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국장선생, 이런 기쁨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걸 좀 보십시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저에게 축전을 보내주셨습니다.》

송두성은 그가 두손으로 내미는 전보용지를 받아보았다. 전보에는 꼰쓰딴찐 이싸꼬브원장선생이 전쟁때 우리의 인민군전사들을 사심없이 치료해준것처럼 최주식동무를 성심껏 돌봐주고있는데 대하여 자신께서 최대의 감사를 보낸다고 하면서 인류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선생의 고귀한 국제주의적정신은 력사와 더불어 영원불멸할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송두성이 전보용지를 내주며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인사하자 이싸꼬브는 격정을 금치 못해했다.

《우리 집에 대를 두고 길이 전할 가보가 생겼습니다. 가보가!》

최주식은 그의 웨침을 들으며 눈굽을 적시였다.

(어버이수령님, 제가 무엇이기에,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이렇듯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십니까.)

송두성의 심정도 최주식이와 다를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바뀔수록 혁명전사들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더 크고 뜨거워만지는것이였다.

그후 이싸꼬브의 정성은 더 극진해졌다.

그는 하루에 네번씩 최주식의 병을 꼭꼭 돌봐주었으며 고가약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역시 의술은 인술이였다.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이싸꼬브며 병원내의사, 간호원들의 따뜻하고 친절하고 그러면서도 정열적인 치료로 하여 최주식의 병은 날이 흐름에 따라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입원후 두달반이 되자 최주식의 병은 가신듯 사라지고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였다.

최주식은 건강이 좋아지자 조선소가 더더욱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새형의 배를 뭇느라 씨름질하고있을 리윤종이며 리억석, 김석홍이며 류경훈의 얼굴이 떠오르는가 하면 어머니며 류선화, 호일이의 모습도 안겨왔다.

서해로 뻗어들어간 선대며 새로 만든 기중기, 조선소구내에 꾸린 아담한 남산공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던 현도장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와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그것들은 최주식에게 어서 빨리 조선소로 돌아오라고 부르는것만 같았다.

그들은 지금 힘겨운 전투를 하고있을텐데 나는 이게 무슨 꼴이람.

최주식은 받아안은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고 외국병원에 입원하여 편안히 병치료를 받고있는 자신이 죄스러웠다.

여기서도 조선소에 필요한 일을 할수 있지 않을가?

그는 조선소를 잊지 않고있으면서도 왜 이런 생각을 못했는가고 자신을 호되게 질책했다.

(조선소에서만 밤을 밝혀가며 일하거나 〈지상확대식배무이방법〉을 연구창안한다는법은 없다. 몸이 어디 있든, 그 누구든 자기 분야에 유익한 일을 할수 있다. 작가는 창밖을 멍청히 내다보는것 같지만 창작적사색을 한다고 한다. 어느 수학자는 길을 가는중에 령감이 떠올라 마차뒤를 따라 달리며 공식을 풀었다고 한다. 그럼 내가 여기서 배무이나 조선공들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은 어떤것일가.)

이렇게 생각하는 최주식의 머리에는 조선소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작업중의 하나인 도장일이 떠올랐다.

도장작업반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 선박완성직장 도면관리원을 하는 오옥주, 스스로 도장공이 된 강은주 등 도장공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재미가 있다고 하였지만 대부분의 도장공들은 영예가 없어했다.

최주식은 그것을 충분히 리해하고있었다.

비좁은 2중저밑에서 일하는 때가 많은 도장공들은 여름이면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먼지속에서, (불볕에 철판이 달면 2중저안은 꼭 한증탕같다.) 겨울이면 30도를 오르내리는 《랭동기》안에서 일을 한다. 한편 그들의 작업복은 뼁기가 묻어 온통 울긋불긋하다.

그런 일터이므로 녀성들은, 특히 꽃나이 처녀들은 도장작업반에 가기를 저어한다.

최주식은 일에 다몰려 배무이에만 급급하고 도장공들의 그러한 작업조건과 생활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심심히 뉘우쳤다.

그들이 바다바람을 마음껏 마시며 선체에 뼁끼나 록장을 바를 때처럼 맑은 정신으로 일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그렇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가?

사색과 탐구의 드넓은 바다를 이리저리 헤염치던 그는 번개처럼 스치는 한가지 생각에 집착했다.

흡진, 흡공기! 그래 그것이다. 여름에는 2중저안의 더운 공기와 먼지, 코를 자극하는 알싸한 냄새를 뽑아내도록 찬공기를 쏘아주고 겨울에는 찬 공기와 먼지, 냄새를 뽑아내고 더운 공기를 넣어주는 기계를 만든다면…

무릇 세상일은 속내를 알고보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간단하고 명백한것이다.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것은 그 방도가 없을 때 하는 약자의 소리다.

최주식은 병을 치료받고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흡진, 흡공기창안에 지혜와 열정을 쏟아부었다.

한가치의 성냥이 일으킨 불이 온 산판을 태우듯 그의 머리속에서 벙끗 일어난 창조적불씨는 온몸을 불태웠다.

최주식의 산보는 잦아졌다. 진찰시간이나 주사시간, 식사시간이나 취침시간을 내놓고는 입원실에 거의 붙어있지 않았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담당의사나 간호원, 지어 이싸꼬브까지도 치료는 환자자신이 의식적으로 극성스레 해야 한다며 기뻐했다.

최주식의 머리에 무르익은 탐구와 사색의 결정체, 도장공들을 위한 《흡진, 흡공기》는 며칠후에 자그마한 수첩에 옮겨졌다. 자기 자랑을 금물로 여기는 그는 완성된 정신적산물을 송두성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고이 주머니에 간직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퇴원을 하루 앞둔 날 저녁이였다. 이글이글 불타던 은백색태양은 서산을 넘어갔지만 그 금빛여광은 뭉게뭉게 떼지어 흐르는 갖가지 형태의 구름이며 무한대한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고있었다. 그 얼마후엔 어스름이 그림자같은 날개를 펼치고 병원뜰로 살금살금 기여들었다. 그 어둠과 미리 약속이나 한듯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은 정향나무의 무성한 잎사귀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진한 꽃향기를 입원실로 실어왔다.

송두성은 소풍하러 나간 최주식을 기다리며 문보가 하느적이는 입원실 창가에 서서 명상에 잠겨있었다. 그때 손기척소리를 내고 이싸꼬브가 방으로 들어왔다.

《마침 혼자 계시는군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잠시 주밋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국장선생, 래일이면 최선생이 퇴원하겠는데… 실례이지만 한가지 묻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송두성은 선선히 대답했다.

《저… 최선생이 어디에서 일을 보십니까? 당중앙위원회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정부의 요직에서?》

《그곳도 아닙니다.》

송두성은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이싸꼬브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럼 존경하는 김일성동지의 친척되는분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우리 나라 서해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조선소의 기사장으로 일하고있습니다.》

태연자약한 송두성의 말에 이싸꼬브는 자제력을 잃고 성을 내였다.

《난 진심으로 묻고있는데 국장선생은 어쩌면 롱을 합니까? 진심에는 진심으로 대하는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까.》

《원장선생, 난 사실을 말하고있습니다.》

《흠, 사실이라구요? 누가 그 말을 진담으로 믿겠습니까. 세살난 철부지가 아닌담에야…》

송두성은 얼굴이 벌개졌다. 자기의 마음을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수도 없지 않는가.

참, 이런 때는 어쩌면 좋담?

그가 전전긍긍 하고있는데 직일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송두성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이싸꼬브에게 말했다.

《원장선생님, 조선대사관에서 금방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로 올터이니 자리를 뜨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알겠소.》

이싸꼬브가 대답하자 직일의사는 돌아서 나갔다.

뒤이어 소풍하러 나갔던 최주식이가 들어왔다.

《사업토의중입니까?》

최주식은 정색해서 앉아있는 송두성이와 이싸꼬브를 보며 문가에서 주춤거렸다.

《아니요. 어서 들어오오.》

송두성은 조난을 당해 사경에서 헤매던 선원이 구조선을 만나기라도 한듯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방금전에 이싸꼬브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최주식은 마음편히 싱글싱글 웃으며 이싸꼬브를 바라보았다.

《원장선생님, 우리 국장동지의 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전 조선소에서 일하고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요?》

이싸꼬브는 미덥지 않은듯 눈을 실그리며 반문했다.

《정말입니다.》

《정말이라? 그럼 존경하는 그이께서 한낱 조선소일군을 위해 자신의 존함으로 입원을 신청하고 또…》

최주식이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다급히 이싸꼬브의 말허리를 잘랐다.

《원장선생님, 이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저를 위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명함으로 이곳 병원에 입원을 신청하셨다구요?》

《그렇습니다. 그건 국장선생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본인이 모른단 말입니까?》

최주식은 놀라서 되묻는 이싸꼬브에게서 눈길을 떼고 송두성을 주시했다.

송두성은 입귀를 실룩거리며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동무, 그건 죄다 사실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우리 나라의 수만금을 준대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존함으로 입원을 신청하시였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특별비행기를 배려해주시였고 나를 여기로 함께 오도록 조치를 취해주셨소.》

《!》

최주식은 심장이 터져나올듯 가슴이 높뛰였다.

그이께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명함으로 입원을 신청하시다니…

거세찬 격정의 파도가 흉벽을 쾅쾅 두드렸다.

세상에 은정이면 이런 은정, 사랑이면 이런 사랑이 또 어데 있을가.

최주식은 송두성의 손을 틀어잡으며 그런 말을 왜 이제야 하는가고 들이댔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의 병이 완쾌되기전에는 이런 사연을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시였소.》

《아, 제가 무엇이라고,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토록 뜨거운 사랑과 크나큰 은정, 인간 최대의 믿음을 안겨주십니까!》

목메여 부르짖는 최주식의 눈귀로는 굵은 눈물이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줄을 지어 흘러내렸다. 그것은 송두성이나 이싸꼬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이런 심정은 대사관일군의 출현으로 더더욱 격앙되였다.

최주식의 병문안차로 이미 여러번 병원을 다녀간바 있는 대사관일군은 이싸꼬브에게 인사를 하고나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한 전화교시를 전달하였다.

《원장선생, 어버이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번에 보낸 전보로는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표현할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어주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영포조선소기사장으로 일하고있는 최주식동무를 치료하느라고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의학부문 경험토론회에도 참가하지 못한 사실을 료해하시고 참으로 미안하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주식동무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서 원장선생이 주요한 의학적문제를 새롭게 찾아내였다고 말씀올리자 그러면 다소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면서 원장선생을 조선으로 초청하시였습니다. 지난 조선전쟁때 의료단성원으로 나와 잠시도 쉬지 못하고 우리 인민과 군인들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하였고 이번에는 최주식동무를 치료하느라고 심혈을 다 기울였는데 금강산이나 묘향산에서 휴식하면서 피로를 풀겸 꼭 조선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양에서 회포도 나누고…》

《!!!》

이싸꼬브는 진정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일성동지이시야말로 얼마나 위대한분이신가. 세상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수령이 있지만 이처럼 걸출하고 인간애가 넘치는 위대한 수령은 동서고금에 없지 않는가. 정말이지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을 창시하신 김일성동지는 탁월한  사상가일뿐아니라 고매한 인간성을 지니고계시는 인걸중에 인걸이시고 령수중에 령수이시다. 조선땅에 태여나 그이의  자애로운 품에 안겨  사는 이 사람들, 수령과 인민이 혈연적뉴대를 이루고 끝없이 믿고 따르며 세상에 부럼없이 살아가는 영웅적조선인민,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높이 모신 이들보다 더 행복한 인민이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이싸꼬브는 속으로 절절히 뇌이며 질적해진 눈굽을 훔치였다.

《고맙습니다. 후에 시간을 내여 꼭 조선에 가겠습니다. 이제 조선에 가거든 이 백발로인의 마음까지 합쳐 존경하는 김일성동지를 잘 모셔주시오. 그리고 입원치료비는 한푼도 내지 않아도 좋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준 그이께 진심으로 드리는 저의 인사를 전해주시오.》

이싸꼬브의 진정에 넘친 고백에 송두성이도 대사관일군도 머리를 끄덕이였다.

최주식은 자기에게 돌려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헤아릴수 없는 사랑과 배려, 은정과 은덕에 목이 메여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 어깨를 떨며 오래동안 흐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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