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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시간이 넘은지도 벌써 두시간이 되였다. 성청사의 방들에는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다만 3층에 있는 한 방에서만 환한 불빛이 밖으로 흘러나오고있었다.

조문광의 방이였다.

그는 지금 강준호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있었다. 국장직에서 해임된 강준호가 래일 아침차를 타고 영포로 내려가기에 앞서 조문광을 오늘밤 만나러 오겠다고 해서였다.

조문광은 량수책상우에 놓인 사기재털이에 담배꽁초가 수북했지만 담배를 또 피워물었다.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영포조선소 조선공으로 정작 내려가게 되니 마음이 어수선하고 착잡했다.

내가 그의 사업과 생활에 보다 일찌기 주목을 돌렸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것인데…

길게 한숨을 내불고 푹신한 의자에서 움쭉 몸을 일으킨 그는 백설처럼 하얀 죠세트문보가 살랑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창가에 가 섰다.

방안에서 내비치는 불빛이 미치지 않는 밖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어둠에 잠겨있었고 삼라만상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크고작은 뭇별이 깜빡이던 하늘에서 한개의 커다란 별찌가 긴 꼬리를 끌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떨어져내렸다.

조문광은 입안으로 깊이 빨아들였던 담배연기를 한숨에 담아 내뿜었다. 그러자 문득 며칠전에 있은 성당총회가 뇌리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날 성당위원장의 보고가 있은 뒤에 오부상이 자기비판을 성실히 했고 강준호가 두번째로 비판무대에 나가섰다. 토론준비를 실속있게 하지 않은 강준호는 당원들의 비판을 허심하게 접수하려들지 않고 이구실저구실을 대면서 요리조리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자 회의장분위기는 엄엄하다 못해 랭혹해졌고 호상비판의 말마디들은 면도칼날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와졌다.

《강준호동무는 사상이 틀려먹었습니다. 외국에서 배운 토끼꼬리만한 선박기술에 한껏 도취되여 우리의 선박공업과 조선공들의 무궁무진한 힘을 무시하고 멋없이 우쭐대고있습니다.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그것이 낳은 교만과 공명주의, 게다가 안하무인격인 월권행위…》

키가 꺽두룩한 영포조선소 담당지도원 송명근이 목에 퍼런 피대줄을 세우고 한방망이 되게 안겼다.

강준호는 숙이고있던 머리를 들고 금테안경너머로 송명근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는 일종의 멸시와 아니꼬움이 력력하게 슴배여있었다.

《그건… 상동지가 료양을 가시고 안계시기때문에 내부사업을 맡아보는 오부상동지와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한 일이요.》

그의 어조는 매우 랭담했다. 평시에 곰살궂던 모습이나 자책감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선박기술이 능하고 사업에서 수완이 있는 나를 네가 감히 어쩌겠는가 하고 생각한때문인지, 아니면 나도 이젠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하고 생각한때문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강준호의 오만한 말투와 거동에 송명근은 홍두깨같은 부아가 목구멍까지 쭉 뻗쳐올랐다.

《국장동무, 그러면 조선소들에 대한 유람식지도도 오부상동지와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한겁니까? 더우기 류경훈동무를 다시 탄광에 나가도록 한것도, 홍학주네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먹자판을 벌린것도 오부상동지와 사전에 토의를 하고서 한거구요?》

장내에선 강준호에 대한 조소와 함께 격분의 파문이 세차게 일었다.

《아니, 강준호국장이 그렇게까지 머리가 썩었단 말요?》

《그런 일을 하고 다니면서도 아닌보살을 하는게 기가 막히구만.》

강준호는 속이 찔끔했다. 이미 땅에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다시 담을수가 없는것이 아닌가. 하지만 강준호는 얕은수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일이 없었노라고 뻗대기로 결심했다.

여기에 앉아있는 사람치고 저 키꺽다리 송명근을 내놓고서야 누가 자기 일을 속속들이 알수 있을텐가.

《송동무, 내가 비판무대에 나섰다고 해서 할말, 못할말 아무말이나 탕탕하면 되오? 내 동무를…》

강준호의 도고한 변명을 썩뚝 자르며 회의집행석에서 노기에 찬 웅근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강준호동무, 예가 어디라고 계속 잔꾀를 부리려드는거요? 자신의 사업과 생활을 깊이 분석해보고 심중히 뉘우칠대신에…》

그 목소리의 임자는 조문광이였다.

강준호는 얼핏 조문광을 훔쳐보는 순간 목을 자라목처럼 두어깨사이에 틀어박았다.

시퍼렇게 성이 난 조문광의 엄엄한 기상을 처음보는 까닭이였다.

조문광은 눈에 노여움으로 이글이글 타는 불을 담고 볼편을 떨며 책상우에 올려놓은 커다란 손을 꽉 움켜쥐고있었다.

《이제보니 동무는 조선공들이 제기하는것처럼 국장자격이 없소. 아니 국장은 고사하고 당원의 초보적인 풍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있소. 당원동무들의 정당한 비판을 어쩌면 그렇게도 허수히 대할수 있는가.》

조문광은 잠시 말을 끊고 장내를 일별한 후 강준호에게로 다시금 눈길을 돌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조선공들을 믿으시고 새형의 선박무이구상을 내놓으셨을 때 자신이 취한 행동을 한번 돌이켜보오.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누구보다 앞장에 서야 할 동무가 어떻게 처신했소? 현재 우리 나라 선박공업의 실태로 보아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단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최주식동무가 아니였다면 아마도 난 그때 심장이 터졌을거요. 그런데도 동무는 최주식동무가 수령님의 웅대한 선박무이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소구내도로확장공사를 벌린데 대하여 트집을 걸었고 조선공들을 새 선박무이에로 불러일으킨 최주식동무에게 태풍에 현도장지붕이 날아난것을 구실로 기사장임무를 수행못하게 했고 현도공으로 무보수로동을 시켰단 말요. 붙는 불에 찬물을 끼얹어도 분수가 있지 그게 무어요. 그랬지만 최주식동무는 동무를 탓할대신 오히려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보답 못한 자신을 심심히 자책하면서 현도장을 몇달동안이나 한시도 떠나지 않았으며 몸이 쇠약해지고 전쟁시기 부상당한 부위에 동통이 심하고 신병으로 고통이 컸지만 짧은 기일안에 현도를 훌륭하게 원상복구했을뿐아니라 일을 많이 진척시켰단 말요.》

조문광은 숨을 톺고나서 말을 이었다.

《내 며칠전 영포에 내려가보았는데 송명근동무의 비판이 다 정확하오. 최주식동무가 당위원회와 토론하고 데려온 류경훈동무를 믿지 못하고 탄광으로 다시 내보냈으며 최근에 와서는 또 부상직위를 넘보면서 조선소에 내려가 동에 닿지도 않는 말을 하잖았소. 기계공업성 부상은 아무리 둘러봐야 자기밖에 할 인물이 없노라고 했다면서…》

장내는 태풍에 높뛰는 성난 바다물결같았다.

강준호는 외래자합숙에서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며 홍학주와 허홍대앞에서 한 말이 어떻게 되여 조문광의 귀에까지 들어갔을가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이 얘기했을리는 만무인데… 은주도 그렇고…)

《강준호동무, 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과 당을 받드는데서 당원답지 못하오. 당의 크나큰 믿음으로 전쟁시기 외국류학까지 하고 국장직무를 맡았으면 마땅히 우리 나라의 선박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할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소총명에 사로잡혀 국장자리를 마치도 타고난 벼슬로 여기면서 우리의 로동계급을 무시하고있단 말요. 내 생각엔 동무가 국장직무를 내놓고 로동계급속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일하면서 그 머리에 낀 때를 벗겨야지 그대로 놔두었다간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소. 물론 동무가 그렇게 된데는 나의 책임도 크오. 때문에 나는 이 회의에서뿐아니라 당중앙위원회에 가서 자신을 심각히 비판하고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결심이요.》

조문광의 생각은 갑자기 울리는 뢰성에 뚝 끊어지고말았다. 하늘을 쳐다보니 반짝이던 뭇별들은 온데간데 없고 우주는 먹물을 뿌린듯 캄캄했다.

어디선가 습기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칼날같은 번개가 어둠의 장막을 쭉 찢었다. 열어놓았던 창문들이 문틀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였다.

조문광은 창문들을 꼭꼭 닫아걸고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작은 바늘, 큰 바늘이 마치도 키대보기를 하듯 우로 나란히 서있었다.

허, 이 사람이 안올모양이군. 그럼 내가 가볼수밖에… 한데 제먼저 오겠다구하구서 안오는건 무슨 일때문일가. 해임되여 현장에 내려가는것이 불만스러워서인가, 아니면 짐을 채 꾸리지 못했는가.

조문광은 옷걸개에서 회색봄가을외투와 모자를 벗겨 천천히 입고 쓴 다음 사무실문을 잠그고 청사계단을 내려 현관을 나섰다.

캄캄한 하늘에선 수심을 자아내는 을씨년스러운 가을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고있었다.

그는 차를 부를가 하다가 그만두고 포석도우를 걷기 시작했다.

조문광이 얼마쯤 걸었을 때 다시금 천지를 진감하며 뢰성이 울고 뱀의 혀바닥같은 파란 번개가 번쩍했다. 사위가 일순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속에서 그는 자기처럼 비옷도 걸치지 않고 머리를 푹 숙이고 마주오는 한사람을 띠여보았다.

작은 키, 체소한 몸매…

빛은 이미 사라졌다. 어둠과 비, 바람…

《강준호동무 아니요?》

조문광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동지십니까?》

강준호가 조문광의 곁으로 물탕을 튕기면서 절버덕거리며 다가왔다.

《어디에 가는 길입니까?》

《동무를 기다리다가 안오기에…》

그 뒤말은 바람소리가 삼켜버렸다.

《상동지, 미안합니다. 절 기다리다가 이렇게 비오는 길을 걷게 하여서… 실은 짐을 꾸리다가 집사람이 하필이면 영포로 내려가겠다고 할게 뭐냐, 그곳 사람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느냐 하고 옹알거리며 자꾸만 약을 올리기에 그만…》

《그래 한바탕 다투었소?》

《예.》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강준호는 뒤로 돌아서서 조문광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걸 그랬소.》

《…》

침묵이 흐르는속에 바람질이 더 세졌다. 조문광은 옷이 푹 젖었으나 그런것엔 전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 떠날 차비는 다 했소?》

《다 했습니다.》

말없이 몇걸음을 더 걸었다.

《날 왜 만나자고 했소?》

《상동지, 제 지난날을 며칠동안 곰곰히 돌이켜보니… 확실히 일을 쓰게 못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의리를 저버렸단말입니다. 조선소에 내려가… 일을 잘하겠습니다.》

진심과 솔직성은 언제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법이다.

조문광은 사무실을 나설 때 강준호가 혹시 불만을 가지고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자신을 깊이 뉘우쳤다.

《고맙소. 그렇게 다짐한 강동무를 난 조금전까지도 잘못 생각했더랬소. 혹시 조선소로 내려가는데 불만을 가지고있지나 않는가 하고말이요.》

조문광은 자기속을 툭 털어놓으며 껄껄 웃었다.

《…》

《강동무, 사람이란 한생을 살아가면서 크고작은 과오를 범할수 있소. 한데 중요한것은 그 과오를 진정으로 깨닫고 곧 시정하는거요.》

《상동지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조선소에 내려가면 이러저러한 난관에 봉착할수 있을거요. 안해보던 일을 하려면 육체적으로 고달플수도 있구 정신적으로 괴로울 때도 많을거요.

그럴수록 마음을 굳게 먹구 새형의 선박건조에 힘과 능력을 쏟아부으며 조선공들의 정신세계를 따라배우시오.》

《알겠습니다.》

《좋소. 그럼 오늘밤은 우리 집으로 가기요. 집에 동무가 좋아하는것이 있을거요.》

《상동지, 자정이 넘었습니다.》

《자정이 넘었으면 뭐라오. 가기요.》

조문광은 강준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상동지, 제 그럼 오늘 술로 마감을 짓겠습니다.》

《허허… 그건 곧이 들리질 않는데… 술을 끊겠다고 맹세를 다지는 사람은 내 많이 보았지만 실지로 끊은 사람은 보질 못했소. 그래서 난 술군이 술과 안주를 보면 맹세도 잊는다는 속담이 맞는다고 생각했소.》

《속담에 사나이 말은 천금과 같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두고보십시오.》

《그러기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조문광은 호탕하게 웃으며 쏟아지는 굵은 비발속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를 강준호가 잰걸음으로 부지런히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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