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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기다리고 기다리던 행복이 높고낮은 인생의 언덕을 힘들게 넘어 최주식에게 찾아왔으나 그는 그것을 미처 감득할사이가 없었다.

재난의 타격은 컸다. 희망에 꽃망울처럼 한껏 부풀었던 가슴은 갈가리 찢기는듯 했고 마음은 괴롭고 쓸쓸했다. 피여나던 웃음은 간데없이 잦아들고 빛나던 눈정기는 풀어졌으며 단단한 몸에 충만되여있던 열정과 패기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서해일대를 모질게 휘몰아치던 광풍과 넓고넓은 천지간을 거대한 물줄기로 이어놓았던 청승맞은 폭우는 그다음날 아침에 간곳없이 사라지고 청명한 하늘에서는 며칠째나 눈부신 태양이 밝은 빛을 뿌리고있었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우울과 번민이 체증마냥 무직이 배여있었다.

그런 어느날 저녁 현장지휘부에서 들어온 최주식은 문건들에 결재수표를 하고 어둠의 장막이 고요히 드리우는 밖을 수심에 잠겨 내다보며 창가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현도장사고가 왜 일어났을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자연적인 피해? 아니면 어떤놈팽이의 작간?

현도장사고를 두고 홍학주는 순수 자연적인 피해라고 주장했고 현도공들은 어떤놈의 작간이라고 했다.

최주식이 보기에도 이 문제는 단순히 자연적인 피해로 여겨지지 않았다. 현도공들이 그렇듯 확신한 현도장지붕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놈의 작간이 분명한데 그게 도대체 누구겠는가.

해당 부문 일군들이 수사를 시작했지만 최주식은 최주식이대로 골이 아팠다.

그가 이마살을 찌프리고 한숨을 무겁게 내긋는데 김석홍이가 찾아왔다. 철색을 띤 그의 낯빛이며 눈빛은 침중했다.

최주식은 그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김석홍은 인차 입을 열지 않고 주머니에서 잎담배를 꺼내 부시럭거리며 말았다. 손이 떨려 담배가 제대로 말아지지 않았다.

최주식은 보다못해 《금강》을 권했다. 했으나 그는 《이게 좋아.》하고 단마디로 거절했다. 랭담한 대답에 이어진 무거운 침묵이 최주식의 답답한 가슴을 압박했다. 김석홍의 노여움이 담긴 어조와 눈빛,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꾹 다문 입… 그전에 볼수 없었던 엄한 표정이고 모습이였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 왜 그렇듯 험한 기상으로 찾아왔을가? 말은 어째서 하지 않을가?

김석홍은 담배를 엄지손가락처럼 굵게 한참이나 말았다. 이윽고 만 담배에 불을 달았다. 그리고서도 말이 없더니 담배를 반대나 피우고서야 드디여 무겁게 입을 열었다.

《기사장, 내 자네에게 말 좀 하려구 왔네.》

최주식은 그의 언행을 리해할수 없었으나 입을 연것이 반가와 뒤말잇기를 재촉했다.

《어서 하십시오. 무슨 말씀인지…》

《자네 우리 조선소의 책임일군이 분명하지?》

《?》

최주식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영문을 통 알수가 없고 갈피를 잡을수가 없다. 아무렴 김석홍이가 그것을 몰라 자기에게 물을것인가.

《무슨 일이 생기면 집에서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공장에선 조선공들이 책임일군의 얼굴을 쳐다본다네. 기사장이 심뇌에 잠겨 미간에 내천자를 잔뜩 그리고 얼굴에는 그늘을 짓고 다니면 조선공들의 낯색도 밝지 못하게 되지. 인생을 살아가느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생길수 있는거야.

그걸 새기고 극복할줄 모른다면 무슨 일군이겠나. 속담에두 장수의 가장 큰 장점은 폭풍우속에서도 안정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난 여직껏 자네가 속대있고 강의하고 통이 큰 사람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한것 같아. 일시적인 난관에 부닥치자 낯을 찡그리고 아녀자들처럼 한숨을 내불거든. 우거지상은 약자의 산물이야.》

《…》

《여보게 기사장, 자네 아버지나 며칠전에 세상을 떠난 홍연구지배인은 그렇지 않았어. 곤난한 일이 생기고 난관이 앞을 막아서면 마음속으로 야심을 더 크게 가졌고 겉으로는 대범하게 웃군 하였지. 정말 배포가 유했어.》

《…》

《그런데 자넨 어떤가. 조선공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어야 할 자넨 어떤가말일세. 현도장사고가 났다고 땅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우거지상을 하고 다니고있지. 담이 작아. 그래 가지고서야 앞으로 만t급, 십만t급 배를 어떻게 뭇겠나.

여보게, 그 문젠 해당 부문 일군에게 맡기고 자네는 제발 조선공들앞에서 웃으며 지내라구.

수령님께 일단 천t급이상의 배를 뭇겠다고 맹세한 이상 우리는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되더라도 기어이 해내야 할게 아닌가. 어버이수령님의 믿음에 보답을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는것이 그리도 가슴아파 홍지배인이 눈을 감으며까지 자네의 손을 꼭 잡고 부탁을 했는데…》

《…》

《밤을 밝혀가며 애써 한 현도가 비물에 씻겨 령으로 되였다고 해서 절대로 주저앉을수는 없어.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없단말일세. 마음의 탕개를 더 바싹 조이고 열흘에 할 일감을 하루에 하면 되는거지.》

《…》

최주식은 머리를 수굿하고 앉아 김석홍이 진중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깊이 음미했다. 음미할수록 김석홍의 말은 그의 가슴을 크게 울렸다. 이미 어머니와 안해, 당위원장 리윤종이며 곧은백이 리억석 등 실로 여러 사람들에게서 이런 뜻의 충고를 들은바 있는 최주식이였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이런 말을 할진대 1년안으로 기어이 새 선박을 무어내려는 나의 결심에는 확실히 금이 간게 헨둥하다. 한번 해보아서 경험도 생긴 현도이니 열흘에 할 일을 하루에 하면 되지 않겠는가. 수령님께 다진 맹세는 추호도 흥정할수 없다고 한 아바이의 말은 천만번 지당하다. 그리고 앞으로 만t급이상 선박을 건조해야 할 사람의 담이 작다는 말도…

최주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심이 든든해지면서 새로운 힘이 용솟음쳤다.

그는 충고를 주는 김석홍이가 더없이 고마왔다.

돌이켜보면 자기가 주저앉을 때마다 찾아와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군한 김석홍이다.

(아바이, 정말 고맙습니다. 제 꼭 아바이의 말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는 밝게 웃으며 더 힘껏 일해나가겠습니다.)

그는 속으로 뇌이며 김석홍의 장알이 박힌 커다란 손을 억세게 틀어쥐였다.

김석홍은 최주식의 마음에 굳게 다져진 확고한 결심을 읽자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끄더니 제관공답게 큰소리로 속이 활 풀리는 웃음을 껄껄 웃었다.

《최한무형님이 역시 아들 하나만은 잘 남기고 가셨군!》

김석홍은 자리에서 흔연히 일어섰다.

최주식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매우 만족한 기색으로 힘있게 걸어나가는 김석홍을 청사밖까지 친절히 바래주고나서 그 길로 현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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