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한여름의 눈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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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중순의 그날 일기는 하루사이에 열두번 변하는 심술사나운 아낙네의 마음처럼 변덕이 심하였다.
새벽에는 청명한 날씨를 예고하듯 젖빛안개가 시내를 자욱히 덮어놓았었는데 불덩이같은 해가 불끈 솟아오른 아침녘엔 가로수의 푸르른 잎사귀와 뾰족한 풀끝에 맺혔던 맑은 이슬이 한줄기 실바람에 떨어져 넓디넓은 대지의 품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정오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어디선가 날아온 멍석만한 크기의 심상찮은 매지구름이 련화봉우를 새매마냥 감돌더니 저녁무렵에는 먹장구름이 하늘을 꽉 메우면서 대줄기같은 비를 쫙쫙 쏟아부었고 서해로부터는 강한 태풍이 드갈개며 불어쳤다.
그날의 일기는 어찌보면 최주식이 지낸 하루일과와 비슷하였다.
최주식의 애타는 마음을 활 풀어주는 크나큰 경사,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한데 어우러져 가슴뻐근하도록 찾아온 그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괴롬과 슬픔이 겹친것이였다.
아무리 바쁜속에서도 인륜대사는 하기 마련이여서 그날 최주식이와 류선화의 결혼식이 행정부지배인의 주최하에 진행되였다.
…
그전날 오후, 최주식이 모르게 리윤종의 부탁을 받은 리억석은 시간을 내여 승용차와 화물차를 끌고 류경훈을 대동하고서 선화를 데리러 령대탄광으로 갔다.
류선화는 마침 집에 있었다. 그는 리억석이며 류경훈을 보자 갸름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우며 《아이, 부기사장동지 오셨군요. 아버지도…》하고 반색했다.
《잘 있었소? 어디 손이나 잡아봅시다.》
리억석은 싱글싱글 웃으며 류선화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어 그들은 웃음발을 날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제 얼른 밥을 지을테니 얘기를 나누며 잠간만 기다리세요.》
류선화는 누구에게라 없이 이렇게 말하더니 부엌으로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억석이 여기로 오는 길에 식당에 들려 저녁을 먹고왔다며 선화를 눌러앉혔다. 그리고는 규모있게 알뜰히 꾸려진 방안을 빙 둘러보며 귀염둥이 호일이는 어데 갔는가고 물었다. 동무네 집에 숙제하러 갔다고 류선화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부기사장동지,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받들고 새형의 선박을 건조하느라 수고많겠어요. 이젠 설계며 선대확장공사, 현도 등이 퍼그나 진척되였겠지요?》
《많이 진척되였소. 총책임을 진 최주식기사장동무며 아버지가 특히… 밤낮없이 일을 다그치고있다오.》
리억석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화제를 돌려 최주식의 심신을 지지리 괴롭히는 사람이 령대에 있다고 싱그레 웃으며 말했다.
《동무는 그의 속을 여간만 태우고있지 않소. 아마 좀더 태우면 그의 심장은 까만 숯이 될거요.》
《?!…》
리억석은 일전에 조선소에 지도를 내려왔던 조문광이 최주식을 만나 류선화를 두고 한 말이며 리윤종당위원장이 조선공들의 사택을 돌아보다가 기사장네 집에 들려 차씨와 합의본 일을 루루이 설명했다.
《그래서 당위원장동무랑 토론하고 선화동무를 아예 데려가려구 이렇게 왔소.》
《?》
너무나 갑자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시에 들이닥친 일로 하여 류선화의 얼굴은 익은 도마도처럼 빨갛게 물이 들었다. 그는 윤기도는 까만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숨을 할딱거린다. 탄탄하고 동실한 어깨가 잦은 가락으로 오르내렸다. 잠시후 떨리는 손으로 옷깃을 매만지던 류선화는 숙였던 머리를 살그니 들며 낮으나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기사장동지, 그건 안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어요. 다시는… 다시는 그런 말씀 마세요.》
《선화동무, 기사장동무는 선화동무외엔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를 않소. 방금전에두 말했지만 그의 어머니도 이미 승낙하셨단 말요.》
리억석은 애가 타서 자기도 모르게 버럭 어성을 높였다. 류선화는 가늘게 숨을 내쉬였다. 방안엔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류선화가 입을 열었다.
《저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은 무척 고마와요. 하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떨구는 그의 눈엔 눈물이 핑 고인다. 리억석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류경훈이 옆에서 보다못해 한마디했다.
《선화야, 내 조선소에 가서 일하며 보니 최기사장은 흔치 않은 사나이더라. 너와 한 〈화선언약〉을 지키려고 여직껏 기다려온 그 확고한 신의를 네 어찌 저바리려고 하느냐. 최기사장의 전정을 생각하는 너의 곡진하고 결백한 그 마음을 내 모르는바 아니다만 일이 이쯤 되였으니 그의 간곡한 뜻을 더는 어기지 말아야 할것이라고 본다.》
《아버지, 아버지까지 그러시면 난… 난… 어떻게 해요.》
류선화는 말을 맺듯마듯 일어서 밖으로 황급히 달려나간다.
그가 사라진 밖을 초연히 내다보고있던 리억석이 단호히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 이건 말로 해선 안될 일이군. 냅다 밀어야지. 류아바이, 선화동무의 짐을 차에 실읍시다.》
《…》
《리윤종당위원장동무와 최기사장의 어머니가 약혼식을 〈화선언약〉으로 치고 결혼식날을 래일 일요일로 정했는데 이러고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리억석의 완강한 주장을 따라 그들은 류선화의 짐을 화물차에 싣기 시작했다. 그들이 짐을 다 싣고 담배를 대여섯대나 피웠을 때에야 류선화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리억석이들이 한 어망처망한 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부기사장동지, 어쩌면… 어쩌면 이럴수가 있어요?》
《량해하오. 이렇게밖에 할수 없는 날…》
리억석은 그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듯 소리내여 껄껄 웃는다.
《아!》
류선화는 가슴을 움켜쥐고 부르짖었으나 자기로선 이제 더 어떻게 할수 없었다.
…
결혼식은 비록 소박하고 검소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축하하러 온 사람들의 진정이 온 집안팎에 스며있어 분위기는 자못 활기로왔다.
둘러리는 수박색 넥타이를 매고 제낀 회색 양복을 쭉 빼입어 미끈하기 그지없는 리억석이가 섰으나 그의 인품은 눈이 서글서글하고 름름하게 생긴 최주식에게 겨를바가 못되였다.
더우기 처녀때는 총각들이 넝쿨에 호박달리듯 했다는 신부의 인접을 선 인민반의 갓 서른된 쌍둥이어머니조차도 수수한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은 류선화에 비하면 공작과 닭같았다.
류선화의 나이가 인접보다 두살이나 우였으나 탄력있고 날씬한 몸매며 동그스름한 어깨, 갸름한 얼굴이며 반달같은 눈섭, 부채살같은 긴 속눈섭이며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눈, 희디희고 매혹적인 얼굴의 두볼에 어린 발그레한 홍조, 연하게 연지를 바른 도톰한 입술, 입을 방실 벌릴 때마다 드러나군하는 박속처럼 하얀 이, 이른아침의 장미마냥 아름답고 생신한 기운이 풍기는 그의 자태는 뭇사람들의 눈뿌리를 뺐다.
《아이구, 어쩌면 신부가 저리도 아릿다울가. 저런 꽃같은 처녀를 데려오느라구 기사장어른이 여태껏 장가를 안갔구먼. 한데 저렇듯 어여쁜 색시를 데려다놓고 우리 기사장이 조선소에 나가서 배를 제대로 무어낼가?》
《우리 기사장어른은 어떻구요? 난 되려 신부가 마음을 놓을것 같지를 않수다.》
《그럼 내내 지켜앉아있어야겠구만. 일도 안나가구.》
《애개개, 별소리를 다하네.》
푼수없는 늙은 로친네들과 무슨 일이든 간참하기 좋아하는 중년의 아낙네들이 수다스럽게 주고받는 말에 처녀들이 얼굴을 활딱 붉히며 《애개개》소리를 련발하자 방안팎에서는 와- 하니 웃음판이 터지였다.
《자, 좀 조용들 하십시오. 이제부터 신랑 최주식동무와 신부 류선화동무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행정부지배인은 이렇게 서두를 떼고나서 간단히 주례를 한후 먼저 조선소의 《산 력사》인 김석홍아바이의 축사가 있겠다고 선언했다. 리윤종의 옆에 앉아있던 김석홍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빗으로 상고머리를 쓸어넘기고 석쉼한 목소리로 뜨직뜨직 축사를 하기 시작했다.
《에… 나는… 로세대조선공들을 대표하여 오늘의 결혼식을 열렬히…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나는… 당과 수령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할… 아들 다섯… 딸 다섯… 합해서 열자식을 무우뽑듯 낳고…》
좌중이 술렁거렸다.
《아니, 열명씩이나 무우뽑듯 낳으라니… 욕심두 원…》
《아, 스무명을 낳으면 어떻소? 나라에 충성하는 자식들만 낳으라는데…》
《거 신부가 그렇게 많이 낳구 꽤 견디여낼가?》
《원, 이 좋은 세월에 못견딜건 또 뭐람. 옛날 소외양간에서 외양쇠를 낳고서 혼자서 태줄을 끊던 때와 같은줄 아시우?》
아낙네들이란 역시 수다스러웠다. 가만둬두면 언제까지든 입방아를 찧을것 같았던지 누구인가가 악의없는 소리를 크게 질렀다.
《거 입들을 좀 봉하시구레. 떠들어서 어디 아바이의 축사를 제대로 듣겠소?》
김석홍은 웃거나말거나 떠들어대거나 소곤거리거나 상관치 않고 축사를 계속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백년해로하기를 천만번 바라고 또 바랍니다.》
박수갈채와 웃음소리가 집안팎을 들었다놓았다.
(오늘같은 날 령감이 앉아계셨으면 한대포하며 얼마나 좋아할가?)
차씨는 겉으로는 웃고있었으나 속으로는 저세상으로 먼저 간 최한무 생각이 간절히 나서 축축해진 눈굽을 지근지근 눌렀다.
곁의 사람들은 차씨가 기뻐서 그러는줄로만 알고 개의치 않았다. 기쁜날 어찌 눈물인들 흘리지 않을것인가고.
차씨의 심중엔 아랑곳없이 결혼식은 절차대로 착착 진행되여나갔다. 로세대를 대표한 김석홍의 축사가 끝나자 신부인 류선화가 놋잔에 찰랑찰랑 차넘치는 술잔을 꽃접시에 받쳐들고 차씨, 류경훈, 김석홍, 리윤종, 리억석의 순서로 쭉 돌아가며 술을 권했다. 그다음은 신랑이 신부에게, 신부가 신랑에게 두손으로 부어준 술을 나란히 들어마시였으며 그것이 끝나자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 상에 놓인 술과 음식들을 들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락회를 하는데서는 용접 잘하고 언변이 좋고 서근서근한 윤재수가 크게 한몫을 했다.
그는 자칭 오락회책임자로 나섰는데 다사하고 수다스런 아낙네들 찜쪄먹을 방치같은 노적으로 사람들이 배를 끌어안고 웃게 만들었으며 지명당한 사람은 시든 노래든 춤이든 웃기는 얘기든 아무것이나 한마디씩 하고야 제자리에 앉게 했다.
좌중이 신랑과 신부의 노래를 청하자 윤재수는 값비싼 노래는 아꼈다가 맨 나중에 들어야 한다며 독단을 부렸다. 그의 해학과 유모아가 섞인 요구에 못이겨 리윤종도 김석홍도 류경훈이도 리억석이도 다 노래를 불렀다.
흥겹고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가는법이다. 해는 어느새 련화봉너머로 기울어졌다. 한데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금빛여광이 채 사라지기도전에 먹장구름이 갑자기 온 하늘을 꽉 덮었다.
《불을 켜라구.》
김석홍의 말에 김찬이가 날쌔게 방안을 나들며 미리 준비해놓았던 백촉짜리 전구를 여러등 켰다.
집안과 뜰은 대낮같이 밝아졌다.
결혼식의 흥취는 더더욱 고조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은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였고 어떤 사람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수저로 사발굽도리를 쳤으며 어떤 사람은 거쉰 목소리로 노래를 뽑았다.
…
우리는 자랑찬 사회주의건설자
…
여러 사람이 각이한 목소리로 그 노래를 받았다.
…
천리마 타고서 번개처럼 달린다
…
그에 보조를 맞추듯 캄캄한 하늘에선 번개가 번쩍이고 대줄기같은 비가 쫙쫙 쏟아졌으며 바다쪽에선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윤재수가 하늘을 우러러 두팔을 쩍 벌리고 시아닌 시를 읊기 시작했다.
우리 기사장동지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천상에서, 대양에서 찾아오는 사신들
바줄같은 비며 드세찬 태풍이여
그대들을 우리 반겨 맞노라
한잔 술에 얼근해진 젊은이들은 흥에 겨워 오는 비, 부는 바람을 달게 맞으며 손에 손을 잡고 《옹헤야》를 부르며 빙빙 돌아가는데 오래에 있던 늙은이들과 아낙네들은 방안으로, 부엌으로, 처마밑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때 야간당직을 서던 교대지령장 리정서가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오더니 리윤종을 불러내여 귀속말로 무어라고 소곤거렸다.
《뭐라구? 바람에 현도장지붕이 날아갔어?》
리윤종은 깜짝 놀라 부르짖고는 최주식의 옆에 앉아 즐거움에 취해있는 리억석을 밖으로 잠간 나오라고 했다. 리억석이 밖으로 나오자 리윤종은 꺼매진 낯으로 금방 조선소에서 일어난 사고를 얘기하고나서 물었다.
《부기사장동무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리억석은 길게 생각지 않고 대답했다.
《당위원장동무, 큰 사고인데 기사장동무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소?》
리윤종은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 그건 안되오. 기사장동무에게 어떻게 마련된 오늘이요. 우리가 대책을 강구합시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리억석이더러 그냥 눌러있으라고 했다.
《동무까지 자리를 뜨면 기사장동무가 별다르게 생각할거요. 기사장이 혹시 나에 대해 물으면 시당에서 급히 불러서 갔다고 하오.》
리윤종은 그 길로 조선소를 향해 교대지령장 리정서와 함께 달려가고 리억석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 태연스럽게 자기자리에 가앉아 당위원장 리윤종은 시당에서 무슨 급히 포치할 일이 있는지 불러서 갔다고 최주식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에둘러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무겁고 초조했다.
현도장지붕이 날아났다니 그새 현도한것은 어떻게 되였을가.
그는 애써 웃으려고 하여도 웃음이 나오지 않고 말을 하려고 해도 혀가 굳어져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좀이 쑤셔난 리억석은 종내 몇분을 견디여내지 못하고 춤을 추고 있는 윤재수를 불러 이젠 그만들하라고 일렀다. 했으나 조선소에서 지금 어떤 엄중한 사고가 생겼는지, 리억석의 심정이 어떤지를 전혀 모르는 윤재수는 우리 기사장동지의 결혼식축하를 이렇게도 빨리 끝낼수 있는가고 너스레를 떨었고 최주식이며 차씨도 오늘은 밤을 새우며 즐기라고 곡진히 권하였다.
리억석은 속이 탔다.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수도 없으니 참으로 야단이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다가 김석홍이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끔뻑했다.
김석홍은 리억석의 걱정어린 눈빛에서 어떤 급한 일이 생겼음을 간파했다. 《자, 결혼식축하는 잘된것 같으니 그만들 가세.》 김석홍은 이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젊은이들과 아낙네들은 오늘의 기쁨을 더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모두들 자리에서 따라 일어섰다.
밖에선 여전히 채찍비가 우우 소리를 지르며 내린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한결 뜨음하다. 그대신 바람질이 더 세차졌다.
리억석은 차씨와 최주식, 류선화에게 편히 쉬라고, 앞으로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깍듯이 인사를 하고 맨 마감으로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한발 먼저 나선 김석홍이와 류경훈, 김찬이와 윤재수, 박성임이와 강은주들에게 같이 가자고 웨치면서 진탕을 튕기며 달려갔다.
그들이 다 가버리자 최주식이네 집은 언제 그렇듯 떠들썩한 대사를 치르었던가싶게 호젓해졌다.
했으나 최주식이며 차씨, 류선화의 마음은 크나큰 기쁨으로 고무풍선처럼 한껏 부풀어있었다. 그것은 리윤종이며 리억석, 김석홍을 비롯한 조선공들이 성의를 다해 차려온 결혼식기념품들, 이불장이며 양복장, 재봉기며 다리미, 벽시계며 거울, 풍경화며 갖가지 부엌세간들이 방에 그득 차있어서만이 아니였다. 그들을 친혈육처럼 따뜻이 대해주는 꾸밈없는 마음, 순금처럼 티가 없고 샘처럼 맑고 흰눈처럼 깨끗하고 바다처럼 웅심깊은 그 마음들이 참으로 귀중해서였다.
방안에 앉아있는 세사람의 가슴을 후덥게 한것은 다른것이 또 있었으니 차씨의 경우는 열아들 부럽잖은 아들을 두었다는 자부심으로 하여, 최주식의 경우는 한떨기 백합같은 류선화와 드디여 가정을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으로 하여, 류선화의 경우는 창창한 전정을 안중에 두지 않고 끝까지 자기를 버리지 않은 대바르고 호협하며 믿음직하고 억세며 열정적인 최주식을 한생의 반려자로 삼고 살아가게 되였다는 기쁨으로 해서였다.
《내가 주책머리없이 왜 이러고 앉아있노, 너희들 어서 웃방에 올라가서 쉬거라.》
차씨의 말에 류선화는 얼굴이 빨개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차씨의 이부자리를 내리워 아래방 따뜻한 목에 반듯하게 펴며 은쟁반에 구슬을 굴리는듯 맑고 부드럽고 고운 목소리로 살틀히 말했다.
《무척 피곤하시겠는데 어머님이 먼저 쉬세요. 전 부엌 뒤거두매를 하고 자겠어요.》
《새애기야, 그건 내가 어련히 하지 않으리. 어서 올라가 쉬거라. 결혼식 첫날은 일찍 자야 한다. 그래야 한생 행복만이 차례진다더라.》
《어머니, 전 이미 복을 받잖았어요. 그러니 앞으로두 저에겐 행복만이 찾아올거예요.》
류선화는 방그레 웃으며 백설처럼 흰 깡똥한 앞치마를 버들잎같은 허리에 살짝 둘렀다.
《아서라. 그럼 저리 래일 아침에 함께 거두자꾸나.》
《어머니, 그게 무슨 큰 일이라구 같이 하겠어요. 제 인츰 설겆이를 하고 올라올테니 마음 푹 놓으시고 자리에 누우세요.》
류선화가 부엌으로 사뿐사뿐 걸어나가자 차씨는 웃방으로 올라가 최주식이와 류선화의 잠자리를 펴놓고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에서는 방에 들어가 쉬라고 서로 살틀히 권하는 차씨와 류선화의 다정한 다툼소리가 울리였다.
최주식은 서로 아끼고 귀히 여기는 어머니와 류선화의 살뜰한 모습을 대하자 가슴이 뭉클했다. 그와 차씨만이 있을적에는 이따금 내긋는 병약한 차씨의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최주식의 마음에 짙은 그늘을 지어주군했었다. 허나 오늘은, 아니 앞으로는 아지랑이 피여나는 화창한 봄날처럼 집안에 화기가 내내 넘쳐흐를것이였고 생기넘친 웃음소리와 명랑한 말소리가 힘과 기쁨과 용기를 주며 울릴것이였다.
(아, 가정에서 주부의 존재란 이렇게도 소중하고 귀중하며 값있는것인가.)
끝없는 행복의 요지경속에 잠겨있던 최주식은 천지를 진감하는 요란한 천둥소리와 우우 세차게 불어대는 비바람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불현듯 그의 머리에는 시당에 회의를 간다고 하며 감쪽같이 사라진 리윤종이며 그가 자리를 뜨자 태연함속에 불안을 감추고 결혼식을 빨리 끝내려고 서두르던 리억석의 모습이 스쳐지났다.
혹시 조선소에 무슨 일이 생긴것이나 아닐가?
최주식은 의혹과 위구, 불안이 가슴가득 갈마듬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자 조선소에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웃방으로 올라가 벽에 걸린 비옷을 서둘러 벗겨 입었다.
《어머니, 제 조선소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무슨 소릴 하느냐. 조선소로 나가다니?…》
부엌에서 차씨의 노염기 어린 놀란 목소리가 날아왔다.
최주식은 그 말엔 대답을 않고 문을 나서자 태풍이 불어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캄캄한 어둠속을 살같이 달리였다.
그가 조선소구내를 돌자 현도장에 이르렀을 때 홰불을 켜든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현도장지붕을 씌우느라고 벅작 고아대고있었다.
최주식은 아연실색했다.
태풍에 날아난 천정으로 쏟아져내린 모진 비가 석달동안이나 현도공들이 밤을 패우며 애써 현도한것을 죄다 씻어버리고 만것이였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말인가.》
너무나도 억이 막힌 최주식은 시꺼멓게 죽은 낯빛으로 얼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멍히 서고만있었다.
그날밤 조선소에는 설상가상으로 또하나의 재난이 겹치였다.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있던 홍연구지배인이 오늘밤을 넘기지 못하고 운명할것 같다는 련락이 왔다.
최주식은 현도장일을 리억석에게 부탁하고 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비눈물을 주먹으로 문대기며 리윤종과 함께 시병원으로 천방지축 달려갔다.
오랜 기간 백혈구감소증과 여러가지 합병증으로 신고하던 홍연구지배인은 두 일군의 눈물어린 어두컴컴한 얼굴을 번갈아보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띠염띠염 말했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배려만을 받아안고서… 보답을 못한채… 가는… 날 용서해주오…》
그리고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마지막 힘을 모아 최주식의 손을 잡으며 곡진히 당부했다.
《기사장동무, 부디… 수령님께서 교시하신… 새형의 선박을… 제기일에… 어김없이… 무어주길… 바라오… 믿소!》
홍연구지배인은 간신히 말을 마치자 스르르 눈을 감는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듯 하늘에선 천지를 뒤흔들며 뢰성이 울고 뿌얘진 창문을 두드리며 굵은 비가 쫙쫙 쏟아졌다.
《지배인동지, 눈을 뜨십시오. 큰 일감을 남기고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합니까.》
최주식은 비분에 잠겨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의 두볼로는 주먹같은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