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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병원에 들렸다가 최주식기사장네 집으로 향하는 리윤종의 갱핏한 얼굴은 무거운 비구름을 안은 하늘처럼 어둡고 컴컴했다. 홍연구지배인의 병에 전혀 차도가 없을뿐더러 더 악화되여 운신조차 못하기때문이였다. 키는 비록 작으나 박달나무처럼 몸이 단단하던 홍연구였는데 12지장궤양과 위병, 백혈구감소증에 시달려 눈이 떼꾼해진게 그 정상이 영 말이 아니였다. 며칠전에 들렸을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피골이 상접하지는 않았었다. 병원원장과 기술부원장, 담당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그사이에도 중앙병원에서 이름있는 의사들이 수태 내려와보았고 협의진단도 여러차례 진행하였으며 우리 나라와 외국에서 제약한 좋은 약들을 다 써보았는데 백약이 무효로 병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백혈구감소증에 여러가지 병이 합친, 참으로 특수한 병입니다. 백혈구를 보충하면서 이 병에 맞는 약을 쓰면 또 다른 병이 악화됩니다. 그러고보니 하루 식사량은 한홉이 되나마나한데 그나마도 소화를 시키지 못합니다. 약으로 살아가려니 몸이 허약할대로 허약해질수밖에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교시선박을 제대로 뭇고들있는지 모르겠다며 늘 조선소일을 걱정하고있습니다.》
담당의사는 진정 안타까움에 넘쳐 리윤종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리윤종은 홍연구지배인이 누운 침대곁에서 손수건을 꺼내 슬며시 눈굽을 훔치는 최주식이며 리억석, 한숨을 짓는 조문광을 못본체했다. 자칫하면 자기도 눈물을 쏟고야말것 같았다. 그는 배뭇는 일을 돕지는 못하고 여러 동무들에게 페만 끼쳐 미안하다고 기운없는 목소리로 띠염띠염 말하는 홍연구지배인에게 괴롬과 울분을 강잉히 참고 병을 꼭 이겨내야 한다고, 선박건조는 제대로 되여가고있으니 걱정말라고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조문광은 병원일군들을 만나 의술은 곧 인술이니 있는 정성을 다해 홍연구지배인을 잘 치료해주라고 신신당부했다.
…
《당위원장동지, 기사장동지네 집에 다왔습니다.》
운전사는 깊은 생각에 잠겨 눈을 지그시 감고있는 리윤종에게 귀띔했다.
리윤종은 차에서 내렸다.
조문광은 병원을 나서는 길로 평양으로 올라가고 최주식이와 리억석은 조선소로 들여보낸터여서 최주식이네 집에는 리윤종이 혼자 왔다.
《어머니 계십니까?》
리윤종은 무거운 기분을 날려버리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군지 어서 들어오시우.》
방안에서 차씨의 가냘픈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여나왔다.
《제 조선소 당위원장입니다.》
리윤종은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토방돌우에 올라섰다.
《일이 바쁜 당위원장이 어떻게…》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려놓고 아래목에 누워있던 차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주름진 눈가에 애써 웃음을 담는다.
《바쁘다고 올 집이야 못오겠습니까. 그런데 병이 더 심해진것 같군요.》
《늙고보니 오가는 고뿔까지 날 얕잡아보고 못살게 굴질 않수. 이젠 열이 떨어져 좀 일없수다.》
했으나 리윤종은 차씨의 로환이 간단치 않음을 쉽게 간파했다.
처녀시절의 아름다움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얼굴은 누렇게 병색을 띠였고 이마와 눈귀에는 굵고 가는 주름이 가득했으며 볼에는 살이 빠지고 머리칼은 파뿌리처럼 하얗게 세여있었다.
젊었을 때 더없이 매력있었을 눈에서만 따스한 정이 봄기운마냥 흘러나오고있다.
리윤종이 차씨에게 자리에 눕기를 재삼 권고했으나 차씨는 사양했다.
그의 심정은 다시금 무거워졌다.
병약한 차씨, 그를 홀로 집에 두고 조선소에서 침식을 하고있는 최주식…
류선화와의 관계를 빨리 매듭짓도록 해야겠구나.
《어머니, 선화를 며느리로 데려오는 문제는 아직도 생각중입니까?》
차씨는 한숨을 내쉬더니 뜨직뜨직 말문을 연다.
《전번날 내 약을 지어가지고 출장왔다 들린 선화를 만나봤수다. 한떨기 꽃같은 그는 인사성 밝고 싹싹한게 어찌도 마음에 드는지…》
그 말에 리윤종은 입가에 웃음을 담았다.
《어머니의 마음에 든다니 저도 기쁩니다.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당에서는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고 일했든 본인의 현재 생활을 기본으로 보고있습니다.
어머니, 제 담보하건대 류선화의 가정주위환경은 기사장동무의 발전에 아무런 장애로도 되지 않습니다.》
차씨는 가슴이 찌르르했다.
(내 몇번씩이나 찾아와 하는 당위원장어른의 말도 안들으면 누구의 말을 들을텐가. 참 고맙기란…)
《당위원장어른, 내 이젠 마음을 질정했수다.》
《그러니 선화를 며느리로 맞아들이는데 아무런 의견도 없단 말씀이지요?》
《그야 물론이지요.》
차씨는 흔연히 승낙했다.
《어머니, 그럼 오래 끌것 없이 이달에 제꺽 결혼식을 하는게 어떻습니까. 두사람의 애간장을 지지리 태우지 말구말입니다. 거 왜 소뿔두 단김에 뽑으랬다는 말두 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런데… 약혼식두 하지 않고 결혼식을 어떻게 하겠수?》
차씨의 말에 리윤종은 환히 웃었다.
《아, 약혼식이야 화선에서 언약을 한것으로 대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위원장어른의 말을 듣고보니 따는 그렇기도 하웨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전 가겠습니다. 잔치준비는 걱정말고 병치료나 잘하십시오.》
최주식의 집을 나선 리윤종은 조선공들의 사택을 몇채 더 돌아보고나서 가벼운 걸음으로 조선소로 향했다.